성경 용어 사전

꼭! 알아야 할 회개와 자복의 차이점

하나님아들 2024. 5. 26. 22:31

꼭! 알아야 할 회개와 자복의 차이점
마3장6절-12절

 

6.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  7.요한이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세례 베푸는데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8.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9.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10.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우리라 11.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 실 것이요 12.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회개라는 말이 기독교의 전유물이 되다 싶이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들이 ‘회개’란 말을 많이 하지만, 회개가 자기 삶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것은 회개에 대한 그릇된 이해 때문입니다. 회개를 바르게 이해하려면 먼저 ‘회개(改悔)’와 ‘자복(自服)’의 차이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오래하면서 회개와 자복을 가장 크게 혼돈하는 것 중에 하나입니다.

 

 회개하라! 회개하라 외치는 본인도 무엇이 회개인줄 모르면서 외치는 것같습니다. 성도들은 거의가 회개하면 잘못한 것을 불어라, "네죄를 알렸다"하는 뜻으로 받아드립니다. 우리 카페 회원님들도 다르지 않습니다. 댓글을 쓰는 것을 보면 잘못한 것을 지적하여 "네죄를 회개하라는" 표현을 하는 것을 볼때 바로 가르쳐 주어야겠다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회개 란? ①회개는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계2:5) ② 마음보와 생활을 고치는 것입니다.  ③옳은 말을 하게되면 듣고 따르는 것이 회개입니다. ④회개란 옛 시대를 버리고 새 시대를 받는 것도 회개입니다. ⑤회개는 잘못가고 있는 길에서 바른 길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1. 회개와 자복의 차이점
 ‘자복하다’는 헬라어로 (ξομολογέω 엑소몰로게오)라고 하는데 이 뜻은 ‘고백하다’입니다. “제가 이러이러한 잘못을 범했습니다”라고 한다면 그것이 고백입니다. 둘째는 자복하다는 말은 ‘동의하다’입니다. ‘저를 향해 지적하신 제 잘못들을 인정합니다’라고 하면 이것은 동의입니다. 셋째 자복한다는 것은 ‘약속하다’입니다. ‘앞으로 잘못을 범치 않고 바르게 살겠습니다’라고 하면 이것은 약속입니다. 이 세 가지의 공통점은, 고백이든 동의든 약속이든 모두 입으로, 말로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회개하다’는 헬라어(μετανοεω 메타노에오)라는 말은 아예 돌아서거나 길을 바꾼다는 의미입니다. 이를테면 동쪽으로 가던 사람이 자신의 방향이 틀렸음을 아는 즉시 180도로 돌아서는 것입니다. 회개는 또 움켜쥐고 있던 것을 놓아 버리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군대 용어로 "뒤로 돌아 앞으로 가" 가던길에서 반대로 오라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자복은 입으로 하는 것이고 회개는 말이 아니라, 철저하게 행동으로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자복이 회개의 시작일 수는 있지만, 그 자체가 회개인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 제가 이런 잘못을 범했습니다. 다시는 그 짓을 하지 않겠습니다”라는 것은 자복입니다. 그리고 이 자복이 행동으로 드러나는 것이 회개입니다.

 전도를 하다가 보면 “교회에는 가고 싶은데 죄가 많아서 못 가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내 몸에 때가 많아서 목욕탕에 갈 수 없다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에 대해 동의는 하지만, 죄의 삶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 자신이 죄인임을 자복은 하면서도 회개할 마음은 없는 것입니다.

 도둑이 가게에서 물건을 훔치다가 주인에게 들켰습니다. 그는 주인에게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다음부터는 절대로 훔치지 않겠다고 눈물을 흘리면서 약속했습니다. 주인이 그 말을 믿고 용서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좀도둑이 다음에 같은 가계에서 또 도둑질을 했다면, 그는 그 전에 주인 앞에서 자복만 하였을 뿐 회개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회개가 이와 같습니다. 우리의 회개는 대부분 경우 자복으로만 끝나 버립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회개한 것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나의 잘못을 지적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동의하고, 나의 잘못을 고백하고, 바른 삶을 약속하는 것은 대단히 잘하는데, 그것이 자기 삶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회개로 이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자복은 하는데 회개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신앙의 진보가 없고 성령의 충만한 삶을 살지 못하는 성도가 의외로 많습니다.

 자복은 점(點)입니다. 자신이 잘못한 것을 깨닫는 즉시 하나님께 입으로(마음으로) 자복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점입니다. 그러나 회개는 선(線)입니다. 회개는 지속적인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점이 선의 시작일 수는 있지만 점 자체가 선일 수는 없는 것처럼, 자복이 회개의 출발점일 수는 있으나 자복 그 자체가 회개일 수는 없습니다.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세례요한의 회개촉구

육적인 회개, 생활과 관계를 회복하라.

 누가복음 3장 7절-9절에 보면 세례요한이 사람들에게 죄를 자복하라고 하지 않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강조했습니다. 회개가 반드시 행동으로, 삶으로 드러나야 함을 일깨워 준 것입니다. 그리고 세례요한은 다음과 같이 구체적인 회개의 삶을 촉구하였습니다.

누가복음 3:10-11에 “무리가 물어 이르되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대답하여 이르되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하고”라고 되어 있습니다.

 세례요한이 사람들에게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하니까 사람들이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하고 행함에 대해 묻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회개에 합당한 열매이겠습니까?’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여기서 ‘옷 두벌 있는 자’와 ‘먹을 것이 있는 자’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세례요한은 그들에게 자신의 여유분을 없는 자와 나누는 것이 회개의 삶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대답 역시 구체적인 행동에 대한 대답이었습니다.

세례요한 당시에 세리는 로마제국으로부터 도급 맡은 사람들로 백성의 재산을 좌지우지하였습니다. 예컨대 로마제국이 할당한 세액을 초과하는 금액은 모두 세리들의 몫이었습니다. 따라서 세리들은 자신들의 배를 불리기 위해 세금을 많이 매겨서 백성의 고혈을 짰습니다.

 

 누가복음 3장12절-13절에 “세리들도 세례를 받고자 하여 와서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이르되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 하고”라고 되어 있습니다. 세리들이 세례를 받으려고 세례요한에게 나와서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때 세례요한은 세리들에게 법으로 정한 세금 외에는 거두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남의 재산을 세금이라는 명목으로 부당하게 탈취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남의 재산을 좌지우지하던 세리들의 회개는, 자신의 직책을 이용하여 남의 재산을 더 이상 부당하게 탈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리에게는 회개입니다.

 세례요한이 군인들에게는 다음과 같이 촉구했습니다.

누가복음 3장14절에 “군인들도 물어 이르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이르되 사람에게서 강탈하지 말며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군인들에게는 손에 총칼을 들었다고 사람들을 협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라는 것은 중상모략하지 말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는 말은 봉급으로 만족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당시 타인의 생명을 좌지우지하던 군인에 대해 세례요한이 촉구한 내용입니다. 즉 타인의 생사여탈권을 지닌 사람의 회개는, 타인의 생명을 담보로 하여 더 이상 자신의 사익을 채우지 않는 것임을 세례요한은 분명히 하였습니다.

 이처럼 세례요한은 사람들에게 자복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삶과 행동이 수반되는 회개의 열매를 촉구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구구절절 옳은 말만 하는 세례요한의 말을 듣고 사람들이 모두 회개했습니까? 사람들은 옳은 말을 듣는다고 해서 모두 회개하는 것은 아닙니다. 세례요한은 구약의 마지막 대표 선지자입니다. 그는 당연히 율법을 지킬 것을 외쳤습니다.

 ‘네 여분의 것을 없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라’는 세례요한의 말에 부자들이 행동으로 응답했겠습니까? 돈을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돈의 효용성을 더 잘 알기 마련입니다. 한 달에 십만 원 버는 사람이 십일조 만 원 내는 것은 의외로 쉬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월 수입이 일억 원인 사람이 천만 원의 십일조를 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일억 원을 버는 사람은 십만원 버는 사람보다 천만원의 가치와 효용성을 더 잘 알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자기 여분의 돈의 효용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부자들에게 “네 여분의 것을 이웃에게 나누어 주라”고 한들 누가 쉽사리 응하겠습니까?

 세리가 지금 세무서에 앉아 자기가 도장을 찍느냐 마느냐에 따라 자기 주머니에 거금이 왔다갔다 하는 판에, “정해진 세금 이외에는 거두지 말라”는 말을 듣고 그릇된 생활을 곧바로 청산하기가 쉽겠습니까? 로마 군인들이 지금 정복자로 도시를 덮치는데, 그 앞에서 “사람에게서 강탈하지 말라”고 소리친다고 되돌아가겠습니까? 권력자가 자기 권력을 이용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 욕심과 욕망을 채우고 있는데, “너는 하나님 앞에서 잘못하고 있다”라고 외친다고 그가 권력의 선한 청지기가 되겠습니까? 그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세례요한이 회개를 촉구한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마가복음 1장4절-5절에 “세례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세례요한은 바른 말로 질책하며 회개를 촉구했지만, 사람들은 단지 자복만 했을 뿐이었습니다. 그들의 자복이 회개의 삶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세례요한처럼 야단치고 명령하는 것으로는 상대의 동의나 고백, 약속까지는 받아낼 수 있지만, 그 자복을 통해 회개를 끌어내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들은 본래 독사의 자식이기에 심지어 세례요한의 책망을 받았던 해롯은 세례요한을 투옥시켰다가 끝내 목베어 죽여 버리고 말았습니다(눅3:19).율법은 범한 것을 지적하여야 하는 것은 세례요한에게 주어진 일입니다. 세례요한은 그것을 완수하고 죽었습니다. 율법의 마지막 선지자이기 때문입니다.

 세례요한의 삶은 질책과 명령만으로는 인간의 회개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사람들은 그런 ‘말’을 듣는다고 해서 회개하지 않습니다. 교회에서 아무리 좋은 설교를 들어도, 또 그 설교로 인해 양심의 찔림을 받고 입으로 자기 죄를 자복해도, 그 자복이 예배당 밖에서 회개의 삶으로 이어지는 것은 지극히 어렵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경험으로 잘 알고 있습니다. 교인들이 교회를 오래 다니면서 죄와 자기의 실수와 잘못에 대해서 주님께 자복은 하는데 도무지 삶으로 이어지지 않아서 변화되지 않는 교인들의 모습을 보면 부흥회 때마다 눈물 콘물과 땅을 치고 몸부림치고 자복을 하는데 변한사람 있으면 나와 보시길 바랍니다.

 

 세례요한이 회개를 촉구한 것은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로서 율법을 지키지 않은 것과 세상에서 살면서 사람과 사람의 문제를 지적하여 강하게 그것을 지킬 것을 외쳤습니다.옷두벌 가진자와 풍족한 부자와 세리와 군사들, 그런자들에게 바르게 살 것을 외쳤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과 이스라엘과 맺은 소금 언약입니다. 그 언약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자기들 옳은대로 사는 것을 하나님과 약속한 것을 지키고 돌아오라는 회개를 외쳤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율법을 줄때 자기들 스스로 율법을 다 지켜행하겠다고 말하여 오히려 올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돌아서서 자기들이 다 지켜행하겠다고 한 율법을 스스로 지키지 못하여서 하나님으로부터 징게를 받게됩니다. 멸망당한 이스라엘의 최후는 자기들이 스스로 지켜서 의롭게 되겠다고 한 율법을 지키지 않은 죄입니다. 예수를 믿으면서도 예수를 안믿는 것은 율법을 지켜서 자기가 의롭게 된다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의 회개의 중요성

영적인 회개를 하여서 천국가는 회개


그렇다면 회개가 왜 중요한지 성경 말씀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성경 본문에는 예수님이 “회개하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3:1-3에는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말하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때”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세례요한이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던 때입니다. 그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는,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던 세례요한의 핵심 메시지였습니다.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마4:17).

 

 마태복음 23장 23절-25절에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소경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약대는 삼키는도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이 때부터”는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부터 입니다. 예수님께서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는 말씀으로 공생애를 시작하셨습니다. 따라서 회개는 하나님나라의 전제조건입니다. 회개하는 자가 하나님나라를 얻습니다. 하나님을 우습게 알고 율법을 교묘하게 바꾸어서 제사장이나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부자들은 율법을 잘 지키는 것같이 하면서 그 무거운 짐을 백성들에게 지우고 자기들은 손하나 까딱 않하는 시대에 예수님은 그들에게 회개를 촉구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회개를 제일 먼저 말씀하셨고, 세례요한도 회개를 강조했습니다. 이처럼 회개가 중요하다면, 회개하지 않을 경우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마태복음 11장20절-24절에 보면 회개하지 않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또 누가복음 13장1절-5절 에서는 예수님이 회개하지 않으면 다 망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또 요한계시록 2장4절-5절에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에베소교회에 대한 책망입니다. 하나님의 신뢰받는 도구로 쓰임받기 위해서도 회개가 중요합니다. 주님을 믿다가 주님의 사랑을 저버리고도 회개하지 않으면 주님께서 촛대를 옮기십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2장 37절-38절에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회개가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입니다. 소위 성령충만한 삶을 살기 위해 회개가 필요합니다. 사도행전에서는 성령충만한 삶을 이렇게 풀이하고 있습니다. 또 사도행전 3장19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 회개하고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은, 영육간에 새롭게 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새롭게 되는 날이란 말의 본뜻은 ‘시원하다’입니다. 옛날 성경에는 “유쾌하게 되는 날”이라고 하였습니다.

 

 주님께 회개한 자는 죄를 다 용서받고 천국에 이르는 선물을 받습니다. 요한복음 4장에 야곱의 우물에서 예수님을 만난 사마리아 여인은 그 아끼던 물동이를 집어던지는 회개를 하였습니다. 삶이 바꾸어진 것입니다. 세리장 삭게오는 체면을 내던지고 올리브 나무에 올라갔습니다. 그는 즉시 회개 하였습니다. 누가복음 19장8절에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 눈물을 흘리고 잘못을 인정하는 것도 좋지만 진정한 회개는 자기의 잘못된 길에서 돌아서는 것입니다.

 

 흔히 목사님들이 회개를 가르칠때 다윗의 회개를 예를 들면서 시편6편 6절을 인용하여 침상을 띄우는 회개를 하라 가르칩니다. 다윗은 회개를 할때 나단 선지자 앞에 죄를 인정만 하였습니다. 그것으로 끝나고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왜 울었느냐? 자식을 살려달라고 울며 금식하면서 기도하였습니다. 시편 6편은 하나님 성전에서 현악에 맞추어서 노래하는 찬송시입니다. 사무엘하 12:13-14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이 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원수가 크게 비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 당신이 낳은 아이가 반드시 죽으리이다 하고"

관련자료보기=다윗의 침상을 띄우는 눈물이 죄를 회개하는 것인가?

 

 예수님을 믿는 성도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어린양의 제물로 죽으셨기에 죄 때문에 천국 못간다하면 예수님을 믿지않는 것입니다. 그 믿음 없는 것을 회개치 않으면 지옥갈 것입니다. 믿음 없는 것을 회개하여야 합니다. 믿음이 있노라하지만 무엇을 믿는 믿음인지 바로알고 회개하시길 바랍니다. 인간과의 생활에서 발생하는 죄는 세례요한이 외쳤던 바르게 사는 문제입니다. 예수님을 믿는자가 죄를 진다면 죄에서 돌아서십시요. 만약 회개치 않으면 고난을 받게되지만 그죄는 천국 못갈 죄가 아닙니다. 어기면 육신과 상관이 있어서 매를 맞든지 벌금을 내든지 침상에 던져져서 병을 앓든지 죄값을 받게 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6장18절에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느니라" 


 이제 예수님을 믿는것이 무엇인지 분별하셔야 합니다.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믿습니까? 이제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가 용서된 것을 믿습니까?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자만 육신의 죄는 자복하면 용서받는 것을 믿습니까? 우리의 육신은 죄로 인하여 죽지만 나의 영혼은 예수그리스도로 인하여 은혜로 천국갈 것을 믿습니까? 믿어지지 않는다면 믿음을 선물로 주시는 아버지께 구하고 회개하시길 축복합니다

'성경 용어 사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진정한 회개가 무엇인가?  (0) 2024.05.26
생명 얻는 회개(悔改)는 무엇인가?  (0) 2024.05.26
복(福)의 개념  (0) 2024.04.06
구약성서에서의 “쉼” 이해  (0) 2024.04.02
성경의 아멘  (0) 2024.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