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성장을 위한 영성개발
1. 들어가는 말 (영성개발의 필요성)
오늘날 교회에는 실패와 좌절을 겪은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런데 그들을 위하여 교회는 그들을 위한 별다른 해결점을 제시해 주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교회 내에서도 소외된 자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교회 내에서도 그것을 위한 해결점을 제시해 주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단지 내가 속해있는 교회라는 공동체에도 이렇게 많은 소외되고 실패와 좌절을 겪은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우리 사회 전체로 본다면 얼마나 많은 수의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을지는 헤아리지 않아도 짐작케 한다. 이러한 모습의 현대인들의 모습들을 보면서 과연 현대인들은 어디에서 평안을, 어디에서 위안을, 어디에서 새 힘을 얻을 수 있을까? 를 생각해본다.
컬리 (Iris V. Cully)는 「영적성장을 위한 교육」에서 현대인의 방황을 심각하게 묘사하면서, 영성개발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인간들은 오늘날 이러한 불안한 마음 가운데서 평화를 얻고자 하여 많은 기술과 방법들을 개발하여왔다. 그리고 영성훈련에 관한 안내서가 새롭게 각광을 받아 왔다. 이는 현대인이 어느 시대 보다 불안과 적개심으로부터 도피하며 마음의 평온을 찾고자 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자신들을 불안 또는 적으로부터 해방시켜 줄 수 있는 방법으로 평화를 추구하지 않고 힘을 추구함으로 더욱 불안상태에 빠지고 있는 것이 오늘날 세계의 모습이다. 더욱 더 강해지면 안정과 평화를 가져올 줄로 생각하지만 그러나 그럴수록 더욱 더 불안을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자신의 세계가 불안정한 것처럼 보일수록 안정을 위한 갈구는 더욱 강렬해 진다.
결국 이러한 문제들의 답들을 우리는 영성이라는 주제를 부각시켜서 해결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성숙한 영성은 불안한 마음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다. 창조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은 하나님과의 깊이 있는 관계를 추구한다. 이러한 관계는 합일의 형태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영성은 아무 노력없이 자연적으로 임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들이 양육을 통하여 성숙하듯이, 우리가 영적인 삶이라고 부르는 하나님과의 관계도 점진적으로 발전될 수 있을 것이다. 즉 영성은 개발되는 것이라고 말할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이해의 빛에서 오늘날 현대교회에서 영성개발의 영역이 가장 중요한 영역으로 부각되고 있다. 영성이 점차 고갈되어가는 현실 속에서 교회가 교회다울수 있는 원동력은 바로 영성이기 때문이다. 즉 영성은 교회의 존재의 근원이면서 성장의 원천이 될 수 있으며 그리스도인을 그리스도인답게 살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영성개발이란 새사람을 만들어 나가는 인간의 훈련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우리들 속에서 새창조의 역사를 행하실 수 있도록 성령님께 우리 자신을 드리는 훈련인 것이다.
2. 영성개발의 방법
영성은 개발되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영성개발이라고 했을 때 그것을 어떤 기술적인 것으로 혼돈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런 기술적인 것이 영성개발이 아니라 영성개발은 나를 쳐서 복종시켜 성령이 내 안에서 역사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할수 있다.
영성개발의 방법은 어떤 고정화된 방법이 있는 것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시대적 상황에 따라 다소 다르게 나타났다. 한국교회에도 영성개발에 관한 관심이 증대되면서 영성에 관한 서적이나 많은 논문이 발표되고, 나름대로 영성개발에 관한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지만 그러나 교과서적인 방법들이 정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앞으로 한국교회의 영성훈련이 어떻게 진행되어야 하는가 하는 방안으로 김외식 교수님이 제시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의 모델로서, 포스터(Richard Foster)의 영성훈련의 방법을 통하여 영적개발의 방법을 찾고자 한다. 포스터는 그의 훈련의 분류방법을 내적훈련, 외적훈련, 단체훈련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는데, 이 분류방법을 이용하여 한국교회에서의 영성개발의 방법을 찾아보고자 한다.
1) 내면적 훈련
(1) 묵상훈련
토마스 머튼은 “진정한 묵상은 심리학적 기술이 아니라 신학적 은혜이다”라고 말을 했는데, 묵상은 언제나 기독교 신앙의 중심이었다. 묵상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영의 양식으로 섭취하는 방법이다. 묵상이란 하나님과 교제하고, 대화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말씀을 받아 순종하며, 하나님께 응답하고, 기도하는 시간이다. 묵상의 목적은 그 자체가 아니라 더욱 거룩하며, 결심을 굳게 하려는 것이며, 맹목적인 자기애와 세속의 타락이라는 것보다 높은 차원으로 정화시키는 것이다. 또한 묵상훈련은 마음의 고요와 평안은 물론 복잡한 사회속에서 인간이 자기의 주체성을 찾을 수가 있다.
그런데 한국교회의 경우 묵상기도보다는 통성기도를 선호하는 편이어서 묵상기도의 장점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인데, 큐티나 기타의 방법을 통하여 지속적으로 훈련해야할 훈련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2) 기도훈련
묵상이 우리에게 내면 생활을 안내하고, 금식은 거기에 따르는 수단이라고 한다면 우리를 인간정신의 가장 깊고 가장 높은 곳으로 인도하는 것은 기도라고 할 수 있다. 기도는 삶의 창조요, 변화이다. 기독교인들은 기도훈련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며, 주님의 말씀에 따라 주께 드리며, 끊임없이 내 자신을 돌이키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의 영성개발에 있어서 기도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기 때문에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한다. 그런데 기도는 어느 곳에서나 골방에서처럼 오직 하나님 중심으로 기도를 드려야 한다. 기도하지 않으면 자신을 모르게 되며 자신을 모르면 하나님과 이웃을 발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더 참다운 기도를 드리고 진실한 기도를 드리려면 훈련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시간을 정해놓고 또 기도일기를 쓰면 효과적일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이 기도훈련을 함에 있어서 기도와 실천이 다르게 나타나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여야 할 것이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성도들의 삶을 보면 기도의 삶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운 실정이다. 중보기도라든지 서로 실천할수 있도록 기도 도우미 등을 통하여 함께 기도하는 방법 등을 병행하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특별히 김외식 교수님의 기도훈련 방법을 참조하여 기도를 그냥 성도들에게 알아서 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체계적으로 가르쳐 주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또한 몸으로 드리는 기도방법을 개발하여 적용하는 것도 효과적일 것으로 생각되는데, F.S. 우엘너는 그의 저서 「몸으로 드리는 기도」에서 우리의 신앙이 예수의 성육신에 뿌리박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추구하는 어떠한 형태의 영성이든지 성육신적이어야 한다는 것에 근거하여 우리의 신체적 자아와의 변화된 관계성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로서 치유된 풍성함과 온전함을 경험할수 있다고 말한다.
(3) 말씀공부 훈련
공부란 객관적 구조를 주의 깊게 관찰함으로써 사고과정을 어떤 방식으로 움직여 가는 특별한 종류의 체험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객관적인 구조를 잘 관찰함으로써 사고작용을 일으켜 어떤 습관으로 옮겨감을 말한다.
말씀공부 훈련이란 정기적으로 시간을 정하고 성서를 연구하는 것을 말한다. 말씀공부 훈련은 마음의 변화, 삶의 진정한 변화를 가져다줄 수 있다. 말씀공부는 진리를 깨닫는 길이요, 성령의 역사를 가능케 하는 것이다. 말씀공부는 말씀묵상과는 다르다. 묵상이 경건이라면 공부는 분석이요 해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말씀공부는 4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는 반복이다. 반복은 정신을 특정 방향으로 늘 향하도록 하는 방법이다. 이 반복을 통해 사고의 습관을 형성한다. 두 번째 단계는 집중이다. 연구내용에 집중한다면 학습은 크게 증대될 것이다. 세 번째는 올바른 이해이다. 이해는 통찰과 분별로 이끌어 간다. 이는 올바른 인식을 위한 기초가 된다. 네 번째는 숙고이다. 숙고를 통해서 의미를 알 수 있다. 숙고를 통해서 하나님의 관점에서 사물을 보게 해준다.
이 공부에 있어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는데, 역시 공부는 대상적인 느낌을 갖게 되는데, 공부는 무엇보다도 자기자신을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공부의 대상은 자기자신이라는 것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으면 그 공부는 올바른 길로 갈 수 없고, 방향을 상실한 위험이 있다. 그래서 공부하는 자는 먼저 객관적인 사고와 열린 마음을 갖되 진지한 노력의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이 성경공부는 한국교회의 특징 중에 빠지지 않는 부분일 것이다. 성경에 대한 많은 공부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강의식이나 문제만 푸는 형식에서 벗어나 자유로우면서 체계적인 방식을 취한다면 더 효과적일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많은 교인들이 교육을 원하지만 이들을 지도해 줄 사람을 찾는 것도 시급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지속적으로 전문 사역자들을 양성하는 일이 필요하다.
(4) 금식 훈련
금식훈련은 ‘나’의 삶 속에 하나님의 영광을 방해하는 요구가 있어 ‘나’의 삶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울 때, 금식하면서 하나님이 내 속에 있는 죄의 요소를 씻으시도록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성경에 나타난 금식은 영적인 목적을 위해 음식을 단절하는 행위이다. 중세에는 금식이 지나친 고행이라는 나쁜 평판이 있었다. 그 이유는 내면적 본질적 추구가 시들고 겉 형식만 강조되어 영혼의 힘이 제외되고 형식만 나타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기독교 역사를 통해 많은 훌륭한 그리스도인들이 금식을 하였고, 금식은 영적 교제를 더 깊이 갖도록 한다.
모든 훈련이 그러하듯 금식을 위해서도 준비가 있어야 한다. 먼저 기도로 준비해야 한다. 금식은 다른 곳에서 얻을 수 없는 영적인 도약을 가져다 준다. 금식기도의 주의점으로는 타인에게 보이려고 하지 말고 목적 없는 금식을 하지 말아야 한다. 금식은 음식뿐 아니라 마음도 금해야 한다.
이상과 같이 내면적 훈련은 그리스도에게 자신을 못박고 온전히 드려 하나님 중심의 삶을 위한 훈련이라고 할 수 있다.
2) 외면적 훈련
(1) 단순화 훈련
현대인들은 내면성이 복잡하기 때문에 외적 생활양태도 단순하지가 않다. 또한 문화가 병들어 가면서 이런 것들이 인간을 구속하고 있다. 병든 사회풍조는 기독교인의 생활에도 영향을 주어 물질만능주의와 세상적 성공주의가 팽배해져 가면서 인간의 참 자유를 구속한다. 이런 면에서 생각해보면 단순성은 “자유”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단순성의 훈련은 기쁨과 안정을 가져오는 훈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성서에 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소유욕 때문에 영적 혼란을 가져왔다. 예수께서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하셨다(눅 16:13). 그러므로 단순성은 소유물의 노예상태에서 벗어나서 그것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유일한 실재이다.
이 단순화를 교회에 예를 들어 적용한다면 교회의 건축이나 장식에 있어서 지나치게 화려한 귀족적 분위기에서 벗어나 실용적이고 기능적인 측면을 고려해 건축하거나 장식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교회가 지나치게 화려할수록 교인들의 심리적 부담은 더 커진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2) 고독 훈련
아빌라의 테레사는 “고독 안에 확고히 서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마음속에 오신 그 분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혼자 남는 외로움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고독은 내적인 충만을 가져다준다. 고독훈련은 내면의 소리를 듣는 훈련이다. 이 훈련을 통하여 인간은 고독과 공포에서 자유케 한다. 그리고 고독안에서 하나님의 침묵을 체험하게 되고 내적 침묵에 이르게 된다. 고독훈련에 관하여 포스터는 몇 가지 방법을 제안한다. 첫째, 하루생활 중 짧은 시간동안 홀로 있기의 훈련을 할 수 있다. 둘째, 홀로 있기 위해 집안에 고요한 장소를 마련한다. 셋째, 집을 떠나 고요한 장소를 찾아서 할 수 있다. 넷째, 하루종일 침묵의 생활을 시도한다. 다섯째, 일년에 서너차례 정도 삶의 목표를 재정비하기 위한 홀로의 시간을 기도원 같은 곳에서 할 수 있다.
한국교회는 교회내에서 너무 말들을 많이 하는 경향이 있어서 이 훈련은 반드시 필요한 훈련인 것 같다. 이 고독훈련은 나의 주장이나 나의 생각은 있지만 남의 의견을 들으려고 하는 것으로 특별히 목회자나 임원들이 실천하도록 권하는 훈련이라고 생각한다.
(3) 순종 훈련
순종훈련은 삼위일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 하나님의 말씀, 가족 그리고 이웃, 교회공동체에 대한 순종을 말할 수 있다. 순종에 대하여 성서는 서로 복종하는 마음을 가지라고 가르치고 있다. 순종할 때 그리스도인은 자유로이 이웃을 소중히 여길 수 있다. 자기 권리를 포기할 때 해방과 자유함이 있다. 순종에 대하여 예수님은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을 것이니라” (막 9:34) 에서 엿볼 수 있다. 여기에서 자기부정은 자기경멸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부정은 타인에게 양보하는 자유를 의미한다. 분명 십자가의 삶이란 자발적인 순종의 삶을 말하는 것이다. 분명 순종은 신약전체를 뚫고 흐르는 윤리의 주제이다.
순종은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가져야 할 자세이다. 순종의 훈련은 겸손함으로 하나님과 이웃과 세계를 섬기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순종을 통하여 영적 권위를 증가시키도록 자신을 훈련해야 할 것이다.
(4) 섬김 훈련
섬김훈련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종이 되어 그들을 섬기는 봉사훈련이다. 섬김은 이미 순종의 현실속에 암시되어 있다. 예수님도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함이라”(마 20:28) 이라고 가르치셨고, 유월절 최후의 만찬에서 친히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는 섬김의 본을 보여주셨다(요 13:14-15). 참된 섬김은 침묵하고, 인내하며, 꾸밈없이 다른 사람의 필요를 겸손히 돌보아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섬김의 삶을 위해서는 훈련을 받아야 한다. 섬기기 위해 봉사할 때는 주도권을 포기하고, 숨은 봉사가 있어야 한다. 의무 때문이 아닌 내면의 인격에서 솟아 나오는 섬김이어야 기쁨이요, 평화인 것이다. 그런데 참다운 봉사는 봉사를 수행하는 것만큼 자유롭게 봉사를 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독선적인 봉사는 공동체를 파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섬김훈련은 우리의 가정부터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우리의 가족 구성원들이 섬김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비록 자녀라 해도 하나님의 자녀라고 생각하고 인격적으로 대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것이 확대되어 교회에서도 사회에서도 이런 섬김의 자세가 확대된다고 하면 그 공동체는 분명 사랑이 가득한 공동체가 될 것이다.
3) 공동체 훈련
(1) 예배 훈련
예배훈련은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사람들이 함께 하나님 앞에 자신을 드리며, 함께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함께 하나님의 사명을 받으며, 하나님의 교역 (ministry)을 위하여 함께 세상으로 나가며 세상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창조역사에 동참하는 훈련이다. 예배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그러기에 예배를 신앙생활에서 가장 우선권을 두어야 한다. 예배의 인도자는 살아계신 단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우리는 예배를 통하여 영원히 거룩하신 분 앞에서 변화를 받게 된다. 예배의 시작이 거룩한 기대인 것처럼 그 끝은 거룩한 순종이다. 우리의 예배는 그분을 진정으로 만났을 때 가능하지만, 동시에 예배의 의무를 다하여, 예배를 최우선의 과제로 삼고 예배하기를 힘쓸때에 그 예배 가운데 현존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예배의 모습을 보면서 비판하는 것 중에 하나가 생활과 예배가 분리됨으로써 제대로 생활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다고 하는 것이다. 교회에서 드려지는 예배도 중요하지만 삶에서 드려지는 예배가 더욱 바람직하고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2) 인도 훈련
그리스도인이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이다. 성령의 인도하심이 개인적이다 또는 집단적이다 하는 것은 조직체란 뜻이 아니고 유기적이고 기능적인 뜻에서 한 말이다. 오늘날에는 신성한 인도에 대한 집단적인 면이 결핍되어 있다.
인도훈련은 개인적 차원을 넘어서 공동체의 사건 속에서 성령의 역사를 깨닫고 참여하는 훈련이다. 예수님은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마 18:19-20) 하셨다. 이러한 의미에서 성령께서 직접적이고 실제적으로 인도하시는 일을 개인적으로 아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고 개인적으로 인도하심을 받는 훈련을 낳아야 한다.
개인이나 집단을 인도할 때 성령의 내적 권위와 성경의 외적 권위가 항상 있어야 한다. 사실상 성경자체가 집단인도의 형태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을 통해 말씀하신 하나의 통로이다. 그러한 공동체는 성령이 통치하시고 성령의 훈련으로 변화하는 공동체가 된다. 그들은 온유하게 공격적이고 부드럽고 강하며 고난받음으로 승리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을 모아 하나의 공동체로 부르셨다. 이때 영적 지도자를 통해 인도하신다.
(3) 경축 훈련
하나님은 인간에게 경축을 가져다 주셨다. 그리고 경축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이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 (요 15:11). 구약에서 특히 우리는 많은 축제를 보게 된다. 경축은 모든 성서훈련의 중심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모든 훈련에 즐거움과 감사의 성격이 있어야 한다. 또한 기쁨은 성령의 열매이다. 기쁨은 다른 모든 것을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영성생활에서 참다운 기쁨을 생산하는 것은 오직 하나 바로 순종이다. 그리스도인의 행복의 비결은 순종의 기쁨이다. 하나님께서 바라는 것은 불행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순종하며, 사랑하며, 봉사하고, 섬김으로 오는 기쁨을 알도록 하신다. 이처럼 경축은 하나님 의지의 행위요 하나의 훈련이다.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할 때 당연히 기쁨이 샘솟는다. 그리스도인은 나름대로 경축행사를 개발해야 한다.
이상과 같이 교역자의 영성개발을 위하여서는 구체적인 방법인 내면적 훈련, 외면적 훈련, 공동체 훈련를 통하여 성령을 통하여 자신을 그리스도 앞에 새롭게 고쳐나가고, 하나님께 거룩한 산제물로 드리며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데 동참하여야 하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이 경축을 절기행사에만 국한시켜 그것도 굉장히 축소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다양한 경축행사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 모든 생활에서 감사하고 축하하는 일들은 삶의 활기를 주고 그리고 모든 매사에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조건이 넘친다는 것을 의미함으로 교회에서 먼저 이러한 경축프로그램들을 다양하게 실천하고 이를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리라고 생각한다.
나가는 말
오늘날 목회현장에서 올바른 영성에 대한 이해와 정립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교역자의 영성은 교회성장에 지대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교역자는 소명의식이 투철해야 할뿐만 아니라 성경에 근거한 영적 체험과 말씀을 순종하는 가운데 체험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목회현장에서 예배를 통하여, 치유와 성만찬을 통하여 적용되는 영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질적, 양적으로 조화를 이루어 성장하는데 크나 큰 역할을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영성생활이란 추상적인 종교적 신앙생활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인간으로써의 수임된 과제를 수행하여 너와 내가 공존하는 참된 인간화된 삶 자체일 것이다. 단지 선한 인간성의 함양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과정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하여 꾸준히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삶을 사는 것이 참된 영성적인 삶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교회의 앞으로의 영성훈련은 아동기적 신앙형태를 재강화 시키는 것이 아니라 성숙한 신앙을 향한 뚜렷한 비전을 가져야 할 것이다. 즉 율법적인 신앙을 포괄하면서도 그것을 뛰어넘는 복음적 신앙훈련이 필요하고 인본주의적 윤리규범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성령으로 승리하는 삶의 비결을 개발하며, 개인주의적 구원의 과정을 중시하면서도 공동체적 구원의 측면을 보완하며 진정으로 통합적이고 전인적인 구원의 방향으로 영성훈련이 개발되어 나가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분명 기독교의 영성은 결코 탈세적인 영성이 아니라 이 세상 한복판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현하는 이 세상 속에서의 영성, 즉 이 세상의 소외된 자들을 돌보는 ‘섬김과 헌신의 영성’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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