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재 박사의 등정론, “종교다원주의 가르쳐야 용기 있는 교회”?
[최덕성 칼럼] 종교다원주의 신학자들의 핵심이론 (2)
학술지 <선교와 교회(Vol. 11, 2023 Spring)>에 게재된 최덕성 총장님의 논문을 소개합니다. 해당 내용은 ‘종교다원주의 평가와 선교의 방향’을 주제로 열린 지구촌선교연구원·중동성서신학원 주최 2023 선교포럼의 발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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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재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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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대표적인 종교다원주의 신학자들의 주장
1. 김경재의 등정로(登頂路) 이론
고신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한 어느 학생이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 진학했다. 어느 날 급우들과 함께 교정에 있는 이 학교의 조직신학 교수 댁을 방문했다. 그 교수는 그 학생에게 보수계 대학 신학과를 졸업한 사람이 진보계 신학교에 입학하여 목사 수업을 하는 까닭을 물었다. 그 학생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여 사람들이 예수 믿고 구원 받도록 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답했다.
그 교수는 “그렇다면 예수 믿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하는가?”라고 물었다. “그렇다”고 답하자, 교수는 “예수 믿지 않고 죽은 자네 선조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라고 물었다. 학생이 머뭇거리자 그 교수는 벌컥 화를 내면서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이 후레자식아, 조상들은 지옥에 두고 네 혼자 천당에 가겠다는 말이냐?” 그 학생이 이 이야기를 필자에게 직접 들려주었다.
김경재 박사(1942-)는 종교다원주의자이다.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조직신학을 35년 동안 가르치고 은퇴했다. 김경재는 저서 『이름 없는 하느님』(2002)에서 배타적이며 이기적인 기독교가 우리 조상이 기독교를 모르고 예수 이름을 듣지 못했다고 하여 모두 지옥에 갔다고 가르친다고 질타한다. 그러한 가르침이 조상을 구원받지 못한 자리로 내몰고 만다고 혹평한다.
종교다원론을 적대시하거나 비진리로 규정하는 신학이야말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고 하나님을 아주 편협하고 공격적이고 무자비하고 인정사정 없는 신으로 소개하고 만다고 한다. 한국의 신학자와 목회자 상당수가 종교다원론을 성도들에게 가르칠 용기가 없는 탓으로 한국교회 안에 무지와 혼란이 거듭되고 있다고 한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가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원 불교경영자 최고위과정(2004. 5. 12)에서 ‘불교에도 구원이 있다’는 발언을 한 것이 알려졌을 때, 김경재는 “조용기 목사 같은 지도자가 자신의 생각을 뒤늦게나마 솔직하게 표현한 점을 높이 평가한다. […] 한국의 종교 간의 협동에 큰 디딤돌을 마련한 것이다. 한국 기독교 역사에 큰 전환점을 마련한 사건이다”고 말했다.
김경재는 기독교인들이 지구라는 행성과 수천억 대은하 세계를 창조한 하나님을 ‘기독교’라는 울타리 안에 가두어 놓고 자신들만 사랑하는 옹졸한 신으로 제약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한다. 하나님은 모든 종교를 합한 것보다 더 크고 높고 영원하며 신비한 분이므로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이 그를 독점하고 있다고 하는 망상에서 깨어나야 한다고 한다. 기독교가 일신론적(一神論的) 유일신관을 버리고 종교다원주의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김경재에 따르면,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성경의 강렬하고도 배타적 유일신 신앙”을 수용하는 “지독한 종교적 이기심”에 젖어 있다. 기독교를 포함한 모든 역사적 종교들은 다양하고 구체적인 삶의 자리에서 형성되고 고백된 ‘구원의 길’이다.
불교, 힌두교, 기독교, 이슬람교 등 어떤 종교도 자기 종교를 다른 종교보다 더 우월하다고 말할 수 없다. 세계 도처에서 발생하고 있는 종교 간 갈등의 가장 큰 원인은 기독교의 배타성이다. 이 배타성은 기독교 목회자들과 신도들의 편협성, 보수성, 근본주의 신학, 성경무오설, 성경 권위 절대화 등으로 나타난다.
김경재는 타종교에 대한 열린 마음과 존경심을 갖되, 자기가 귀의하는 종교에 깊이 헌신하는 것이 진정한 신앙의 자세라고 본다. 유일신 신앙을 신이 한 분이라는 숫자에 사로잡힌 일신론적 신화로 이해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모든 역사적인 것들과 유한한 것들에서 드러나는 무한하고 절대적인 진리 자체를 증언할 수 있다.
하나님은 이름이 없는 존재이다. 신의 이름은 인간이 자신들의 살아온 역사, 문화, 풍토, 환경 속에서 자신에게 가장 적실한 언어로 붙인 것이다. 하나님, 알라, 비로자나불, 브라만, 한울님, 로고스, 도, 태극 등으로 명명한 것이라고 한다.
김경재는 이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유일신 사상이 강한 셈족계 종교(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에서 하느님이라는 이름이 어떻게 사용되어왔는가를 검토한다. 한국의 전통 속에 등장한 불교, 유교, 동학, 원불교 등의 하느님 신앙과 그 존재 의의가 무엇인가를 논한다.
노자가 갈파한 ‘절대적 진리 자체’나 ‘유일하신 하느님’ 또는 ‘참 도(道)’는 인간 역사 속에서 형성된 문자나 발음에 매여 있는 제한된 하느님이 아니다. 인류의 역사 속에 나타난 다양한 유일신의 이름들은 절대 포괄자이다.
이 이름들은 궁극의 신적 실재가 구체적인 인간 공동체들의 삶의 자리에서 계시된 형태의 해석학적 반응이다. 『도덕경』의 “명가명 비상명(名可名非常名: 이름 할 수 있는 이름은 영원한 이름이 아니다)”이라는 말은 ‘유일하신 참 신은 이름 없는 하느님’이라는 뜻이다.
김경재에 따르면 유일신에서 ‘일(一)’이라는 단어는 ‘하나’라는 숫자 개념이 아니라 무한 궁극의 실재, 우주적 초월성을 나타내는 원(圓) 또는 존재의 시원(始原), 순환, 지고선(至高善)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야훼(여호와)를 포함한 어느 한 신이 다른 신들보다 우월하거나 지존의 신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유대교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은 유태 민족의 신이며, 한국 민족의 하느님과 내재적 연속성을 가지고 있다.
김경재는 ‘궁극의 신적 실재’라는 철학 개념을 바탕으로 각 종교의 신들을 포괄적으로 이해하려 한다. 그러나 기독교의 하나님을 종교철학의 실험관 속에서 풀이한다. 성경이 말하는 신은 존재의 시원(始源)이나 지고의 선이나 무한의 개념으로 이해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야훼 하나님은 무속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신이 아니다.
김경재의 ‘이름 없는 하느님’은 관념에 지나지 않는, 속성 없는 신이다. 하나님 말씀이 제시하는 여호와 신은 초월적인 동시에 내재적이고, 인격적인 동시에 역사적이며, 지존의 존재인 동시에 비천한 인간의 형태로 역사 안에 찾아왔다. 김경재는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종교철학의 시험관 속에서 완전히 분석되는 유한한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망각하고 있다.
김경재는 한국의 보수계 기독교인들이 외래 신, 수입된 신, 배타적 종파의 신을 믿고 있다고 질타한다. 예수께서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고 말했는데, 그가 자신만을 통한 구원 진리를 선포한 것은 매우 이기적이고 배타적인 주장이라고 한다. “기독교가 다른 종교에 대한 열린 마음이나 포용적 태도”를 가지지 않는 것은 “성경이 주장하는 강렬한 배타적 유일신 신앙의 색깔 때문이다”고 한다.
김경재는 다양한 구원의 길이 있다고 본다. 마치 산을 서로 다른 방향에서 등정(登頂)하듯, 각각의 종교를 거쳐 모든 인간은 동일한 구원에 이르게 된다고 한다. 길이 다를 뿐, 궁극의 신적 실재에 이르는 것은 다 마찬가지라고 한다. 등정로마다 산의 풍광이 다르고 산세나 기후 변화도 다르지만 일단 정상에 오르면 호연지기가 통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느 종교를 통하든 절대자를 만날 수 있고,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김경재는 한국기독교장로회 전남노회에서 목사로 장립을 받았고, 1970년부터 현재까지 장로교 목회자들을 양성해 왔다. 유서 깊은 기독교가 구원을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사역을 거쳐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것으로 보는 것과 완전히 다른 구원의 길을 말하고 있다. 기독교 구원의 유일성을 부정한다.
김경재가 주장하는 종교다원론은 서양 세계의 종교다원주의자들의 주장을 모자이크한 것이다. 칼 라너의 ‘익명의 그리스도론’, ‘신은 이름을 가지지 않았다’고 하는 존 힉의 ‘신중심주의’, 파니카의 ‘보편적 그리스도론’, 폴 니터의 ‘신중심주의 그리스도론’ 등을 엮은 것이다. 현대신학의 신론과 기독론 그리고 자유주의 기독교가 무엇을 ‘고백’하고 있는가를 알아 볼 겸, 종교다원주의자들의 이론을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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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슬리 아리아라자 박사(왼쪽)가 WCC 부산총회에 참석해 4일 ‘마당’에서 최덕성 박사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종교다원주의자 아리아라자는 WCC 유급 신학자로, 십여 년 동안 제네바 WCC 본부에 근무하면서 종교다원주의를 발전시켰고 ‘바아르 선언문’ 초안을 작성했다. ⓒ크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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