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모음
▶百番 읽기 바라며, 日本人이 잘 사는 理由 <國民 精神文化의 比較>
⑴한국인은 좋은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자랑으로 알지만, 일본인은 평범한 근무 복이나 작업복을 입고 다니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⑵한국인은 호의호식하는 것을 성공으로 알지만, 일본인은 공기 밥 1사발, 단무지 3개, 김 3장 정도면 충분하다고 여긴다.
⑶한국인은 크고 으리으리한 집에 사는 것을 자랑으로 알지만, 일본 수상이나 일본인은 20평정도 집에서 사는 것을 자족으로 알고 만족한다. 실제로 전직수상이나 각료들이 20평 규모의 집에 사는 것이 일반화된 나라다.
⑷한국인은 비싼 외제승용차를 몰고 다니는 것을 자랑으로 알지만, 일본인은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것을 상식으로 생각한다.
⑸한국인은 탈세, 감세를 하려고 거짓신고가 다반사인데, 일본인은 세금을 꼬박꼬박 내면서 정직하게 살려고 한다.
⑹한국인은 아홉 번 잘하다 한번 잘못하면 손가락질하며 따돌리는데, 일본인은 한번 잘하고 9번 실수를 해도 한번 잘한 것을 칭찬격려 해 준다. 일본인은 전두환 노태우가 감방에 가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울었다고 한다.
⑺한국인은 조금만 알면 더 이상 배우지 않으려는 꽉 찬 물병인데, 일본인은 아무리 알아도 또 공부하고 노력하는 빈 항아리이다.
⑻한국인은 자기를 높이고 과시하며 상대방을 깔보려 하는데, 일본인은 자기는 낮추고 상대방을 높이려 한다.
⑼한국인은 수단방법 불문하고 내가 출세해야 자손이 잘산다고 생각하는데, 일본인은 내가 열심히 노력하고 절약해야 자손이 잘 산다고 근검절약이 몸에 배여 있다.
⑽한국인은 나라를 비판하고 대통령을 욕하는 것을 애국자 인양 여기는데, 일본인은 나라를 받들고, 총리 말을 바르게 실천하는 것을 애국이라 생각한다.
⑾한국인은 모르는 것도 아는 체 하고 단독으로 일을 처리하는데, 일본인은 아는 것도 동료와 협의 확인을 하며, 일을 처리함에 전문가의 조언을 경청한다.
⑿한국인은 말로만 애국애족을 떠들고 실천에는 소극적인데, 일본인은 애국애족을 말로 떠들지 않고 소리 없이 실천한다.
⒀한국인은 외국에 나갈 때 빈손으로 나가서 잔뜩 사들고 오는데, 일본인은 자국 상품을 들고 나가 실컷 홍보하고 자랑하고 돌아온다.
⒁한국인은 높은 자에겐 약하고 아랫사람에겐 강한 상약 하강형이 많은데, 일본인은 만나는 사람마다 깍듯이 대하며 예의가 지나칠 정도로 바르다.
⒂한국인은 안 먹어도 먹은 척, 책임이 있으면서 없는 척 오리발을 내미는데, 일본인은 잘못은 서로 책임지겠다고 하며, 그 책임자는 할부를 해버린다.
?한국인은 개개인이 사치하여 국가는 가난한데 비하여, 일본인은 한국보다 훨씬 어렵고 못사는 것 같지만 국가는 세계 초일류 부강 대국이다.
?한국인은 혼자서는 잘 하는 것 같지만 여럿이 하는 일엔 싸움이 일어나고, 일본인은 개개인을 보면 형편없이 보이지만, 뭉치면 뭉칠수록 단결이 되는 민족이다.
?한국(노조)은 회사가 2천억 이상의 손실이 나도 성과급 달라고 파업하는데, 일본(노조)은 흑자가 나도 회사의 앞날을 생각하여 임금동결을 자청한다.
※萬事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라고 봅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세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꼭 필요한 사람입니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사람입니다. 있어서는 안될 사람입니다.' 국가에도 꼭 필요한 정치가가 있어야 하는데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정치가가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있어서는 안될 정치가도 있어서 정치를 혼란스럽게 합니다.
교회나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꼭 있어야 할 사람으로 남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사회를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더 나아가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반드시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사람도 불행하지만, 더 불행한 사람은 있어서는 안될 사람입니다. 남을 비난하는 사람, 공연히 트집을 잡는 사람, 불평과 원망만 하는 사람,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 이런 사람이 많아지면 사회가 혼란해집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 이왕이면 더 크게 쓰임 받는 그릇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동 작가 정채봉씨가 쓴 '만남'이란 제목의 글이 있습니다.
가장 잘못된 만남은 생선과 같은 만남이라고 했습니다. 왜? 만날수록 비린내가 묻어오니까 그렇습니다. 가장 조심해야 할 만남은 꽃송이 같은 만남이리고 했습니다. 왜? 피어 있을 때는 환호하다가 시들면 차 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비참한 만남은 건전지와 같은 만남이라고 했습니다. 왜? 힘이 있을 때는 간수하고 힘이 다 닿았을 때는 던져 버리니까 그렇습니다. 그리고 가장 시간이 아까운 만남은 지우개 같은 만남이라고 했습니다. 왜? 귀중한 만남이 순식간에 지워져 버리니까 그렇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아름다운 만남은 손수건과 같은 만남이라고 했습니다. 왜? 힘이 들 때는 땀을 닦아주고, 슬플 때는 눈물을 닦아주니까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만남을 가지고 있습니까? 힘이 들 때 땀을 닦아주고, 슬플 때는 눈물을 닦아주는 손수건 같은 만남의 주인공들이 다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한 소년이 자신의 어머니에게 이렇게 물었답니다. '어머니, 사람은 몇 살에 죽어요?' 아들의 질문을 받은 어머니는 그 아들을 데리고 공동묘지에 갔습니다. 그리고는 '얘야, 무덤의 비석에 씌어진 사람들이 몇 살에 살다가 죽었는지 연수를 헤아려 보아라'고 말했습니다.
소년은 수많은 비석을 살펴보고 나서 '사람의 죽는 나이는 정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 때 어머니가 복음을 주고 예수를 영접시키고 훌륭한 믿음의 아들로 키웠답니다.
여러분! 우리가 아는 것처럼 노인은 죽습니다. 그러나 젊은 사람도 죽습니다. 부자도 죽습니다. 가난한 사람도 죽습니다. 죽음은 동서양이 따로 없습니다. 남녀노소의 차별도 없습니다.
이 죽음의 길은 모든 사람이 다 가는 길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죽음의 길에 대해서 무관심합니다. 죽음은 우리들 앞에 놓여져 있건만 죽음과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같이 살아갑니다. 이건 아주 큰 착각이고 오해입니다.
성경을 한번 보세요!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여기 '정한 것이다'라는 말은 '정해 놓은 것'이란 말로 '앞에 가로 놓여 있는 것, 피할 수 없는 것, 운명'이라는 말입니다.
'호라티우스'는 '이 세상의 부나 권력이 끝끝내 이겨내지 못하는 것이 죽음'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시면 아니 갈 장사가 없습니다. 정든 집을 떠나야 합니다. 사랑하는 남편을 두고, 아내를 두고 가야 합니다. 철부지 어린것들을 두고 가야 합니다. 붙잡아도 가야 합니다. 내 앞으로 등기된 땅도 집도 채권도 저금통장도 다 놓고 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 죽음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생명의 정지상태를 죽음이라고 합니다. 신학적으로는 영혼과 육체의 분리를 죽음이라고 합니다. 육체적으로 죽음은 심장이 멈추어지고 호흡이 끊어지고 몸이 뻣뻣하게 굳어지는 상태입니다.
지금 우리 가슴속에 있는 심장은 365일 하루도 쉬지 않고 뛰고 있습니다. 국경일도 없이, 휴일도 없이 뛰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쩌다가 이렇게 열심히 뛰는 심장이 멈추어 지는 일이 일어납니다. 죽음은 무자비합니다. 죽음은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사람 어느 누구도 이 죽음에서 예외인 인생은 없습니다.
죽음은 인생의 종착역이 아닙니다. 종지부가 아닙니다. 전12:14절에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 두렵지 않습니까?
▶로마 '우르반' 대학의 정문에는 <그 다음에는 그리고 그 다음에는>이라는 글이 기록되어져 있다고 합니다. 그 사연인즉, 이 대학에 법대를 다니며 장래가 촉망받는 한 청년이 있었는데 가난하여 한 부자를 찾아가 학비를 부탁하자 그 노인은 그 청년의 학비를 대어 주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자네는 법대를 졸업하고 무엇을 하려는가?' '변호사가 되려고 합니다.' '그 다음에는?' '돈을 벌어서 부자가 되겠습니다.' '그 다음에는?' '좋은 집을 짓겠습니다.' '그 다음에는?' '좋은 차를 사겠습니다.' '그 다음에는?' '예쁜 아가씨와 결혼하겠습니다.' '그 다음에는?' '아들딸을 낳아 잘 기르겠습니다.' '그 다음에는?' '점점 늙게 될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청년은 아무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때 노인은 청년에게 '그 다음에는 죽을 것이며,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가리켜 주었답니다. 크게 깨달은 그 청년은 세상을 공들여 살다가 그 학교에 총장이 되어 젊은 청년들에게 '인생이 어디서 와서 무엇 때문에 살고, 어디로 가는가?'를 바로 알고 죽음을 준비하면서 사는 자가 되라는 묵시적인 교훈입니다.
▶헬라제국을 통치하던 알렉산더 대왕의 부친 '필립' 왕에게는 이상한 신하하나가 있었는데 이 신하는 다른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직 한 가지 일만 합니다.
그 일이 무엇인가 하면 이른 아침에 이 신하는 왕의 침소 머리맡으로 나아갑니다. 그러고는 큰 소리로 왕을 깨웁니다. '왕이시여. 오늘이 어쩌면 대왕마마의 마지막 날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 소리를 듣고 '필립' 왕은 깜짝 놀라면서 일어난다고 합니다.
'그래. 맞아. 안개 같은 인생,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이 될지도 모르지. 이 귀중한 날을 내가 헛되게 보낼 수 없지' 그리고는 부랴부랴 진지 상 앞에 왕이 앉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 신하는 자기 몸 안에서 흉측하게 생긴 해골바가지를 끄집어내어 왕의 진지상 위에 올려놓습니다.
왕은 밥을 먹으면서 연신 그 해골을 쳐다봅니다. '그래 맞아.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되겠지' 빌립 왕은 그 해골을 바라보면서 욕심 없이 겸손한 마음으로 하루 하루를 소중하게 백성들을 다스렸다고 합니다.
▶이화대학의 최화숙 교수가 쓴 '아름다운 죽음의 안내서'에 보면, 사람이 죽을 때는, 장갑을 끼었다가 벗을 때 약간의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사람의 영혼이 몸에서 빠져나갈 때 약간의 시간이 걸리는데 그 때에 현세와 내세를 동시에 보며 신비의 세계를 말해준다고 합니다.
교회에 다니던 17세 난 소년은 죽기 직전에 '아! 베드로가 보인다. 그 옆에 빛나는 분은 누구냐?'고 엄마에게 묻기도 하고, 아무 것도 안 보인다고 하니까, '큰일났다. 나는 천국 가는데 우리 엄마는 지옥 가겠다'고 걱정을 하다가 '엄마, 나는 먼저 천국에 갈 테니 엄마는 나중에 오세요'하며 천사 같은 얼굴로 세상을 떠나더랍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은 내일 일을 모릅니다. 그래서 복음 성가에 <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하루하루 살아요, 불행이나 요행함도 내 뜻대로 못해요>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죽음은 만인이 필히 가야할 길입니다. 남자도 죽고, 여자도 죽습니다 할아버지도 죽고, 아버지도 죽고 손자도 죽습니다. 건강한 사람도 죽고 약한 사람도 죽습니다. 부자도 죽고 가난한 사람도 죽습니다. 배운 사람도 죽고, 배우지 못한 사람도 죽습니다 노인도 죽고 어린 아기도 죽습니다. 임금도 죽고, 신하도 죽습니다. 검은 사람도 죽고, 흰 사람도 죽습니다.
스승도 죽고, 제자도 죽습니다. 진자도 죽고, 이긴 자도 죽습니다. 환자도 죽고, 의사도 죽습니다. 시인도 죽고, 백정도 죽습니다. 아내도 죽고 남편도 죽습니다. 죄수도 죽고, 판사도 죽습니다. 부모도 죽고, 자식도 죽습니다. 귀족도 죽고, 노비도 죽습니다. 미녀도 죽고 추녀도 죽습니다. 사병도 죽고, 장군도 죽습니다.
정복자들도 죽었습니다. 중국 대륙, 구라파 제국, 러시아 변방까지 손에 넣고 세계 최대의 영토를 가슴에 품은 징기스칸도 죽었습니다. 마케도니아의 무적의 황제 알렉산더도 일생 33세를 넘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자신이 정복한 구라파의 광대한 땅을 어머니 앞에 자랑한 프랑스의 나폴레옹 황제도 죽었습니다.
세계의 절세 미인들도 죽었습니다. 애굽의 클레오파트라. 중국의 양귀비가 죽었습니다. 세계의 미스 유니버스들도 때가 되면 한 사람 한 사람 생명이 진하면 죽을 것입니다. 화려한 배우들도 죽었습니다. 은막의 여왕 마릴린 몬로, 잉그릿드 버그만, 오드리 햅번, 서부의 사나이 죤 웨인도 죽었습니다.
독재자들도 죽었습니다 히틀러, 호메니, 마르크스, 스탈린, 김일성도 죽었습니다. 예술가들도 죽었습니다. 베토벤, 바하, 슈베르트, 모차르트가 죽었습니다. 밀레, 고호, 미켈란젤로, 피카소가 죽었습니다.
과학자들도 죽었습니다. 뉴우톤, 갈릴레오, 아인슈타인이 죽었습니다. 유명한 정치인들도 죽었습니다. 처칠, 워싱턴, 케네디, 이승만씨가 죽었습니다. 우리 민족의 스승들도 죽었습니다. 조만식, 김구, 윤봉길씨가 죽었습니다.
갑부들도 죽었습니다. 오나시스, 록펠러, 이병철씨가 죽었습니다. 통일의 꿈을 앉고 1000마리 소 떼를 몰고 방북 했던 정주영씨도 통일을 보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마호메트, 공자, 부처도 죽었습니다. 부자도 죽고, 거지 나사로도 죽었으며 십자가에 못 박힌 두 강도도 죽고 그들을 십자가에 못 박은 로마 군사들도 죽었습니다. 모두 죽었습니다.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전3;2절에 '죽을 때가 있나니' 욥34:15절에 '모든 혈기 있는 자가 일체로 망하고 사람도 진토로 돌아가리로다' 히브리서 기자는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죽음은 밤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새벽에도 있고, 낮에도 있습니다. 죽음에는 휴일이 없습니다. 죽음은 전쟁터나 병원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집에도 있고, 산에도 있고, 바다에도 있고 거리에도 있습니다. 죽음은 전쟁시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평화시에도 있습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정하신 것이요' 이 말씀은 진리입니다. 피할 수 없습니다. 누군들 죽음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 죽음을 가르쳐 주거나 배운 적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죽음은 찾아옵니다. 죽음은 연습 한 적이 없는데도 죽게 됩니다.
▶일제시대 조선일보 사설에 <일금 천 원은 누구의 것이냐?>란 제목의 글이 기재되었습니다.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던 한 사람이 그 당시 인력거를 끌며 천 원만 예금하면 집을 사고, 가게를 내고, 알뜰한 부인을 만나 행복하게 살리라고 야무지게 계획했습니다.
그래서 새벽부터 밤중까지 뛰고 달리고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저금통장의 액수는 점점 늘어가고 마침내 천 원이 되었습니다. 그는 희망찬 앞날을 생각하며 기뻐했지만 갑자기 큰 병에 걸려 앓다가 죽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무런 가족도 없던 그였기에 시청에서 그의 시신을 장사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통장에 남아 있는 일금 천 원이 문제였습니다. 황천에 우체국이 있다면 부쳐주겠지만 그럴 수도 없으니 어쩌면 좋으냐고 사설은 말하고 있습니다.
잘 살기 위해 밤, 낮 없이 뛰고 달리며 사업을 확장하고 원대한 계획을 세운다 해도 죽음 앞에서는 그 모든 것이 허무하게 됩니다. 재산이 많다고 죽은 다음에 가지고 갈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죽음이 자기와 상관없다고 하는 생각도 계산 착오입니다. 그러므로 사업 때문에 신앙생활을 등한히 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일본 도쿄에서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딴 이봉주선수가 뒤에 우승 소감을 말하기를 '뛰는 도중에 고통을 견딜 수가 없어서 차라리 죽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죽고 싶도록 고통스러웠지만 왜 끝까지 뛰었습니까? 바로 상 때문입니다. 그 상이 그를 뛰게 만든 것입니다. 그것이 없었더라면 아마 그는 그때 인내하지 못하고 그만 주저앉아 버렸을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힘들고 지치고 어려울 때도 많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처럼 하늘의 상을 바라보고 뛰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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