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악!! 불신앙의 요소!!

원죄 개론 (原罪槪論)

하나님아들 2023. 8. 27. 20:38

원죄 개론 (原罪槪論)              

 

1. ‘원죄’라는 단어가 성경에 등장하나요?
원죄 (peccatum originale)라는 단어는 어거스틴이 처음으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어거스틴이 처음으로 사용했다고 해서 성경에 원죄의 개념이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레이블이 붙여지지 않았다고 해서 없는 것은 아니니까요. 예컨대 “삼위일체”라는 단어는 성경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에 대한 계시는 풍부하게 나타나지요? 원죄의 개념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어거스틴 이전에는 이레니우스, 오리겐, 아타나시우스, 터툴리안, 시프리안, 암부로스 등도 원죄에 대해서 가르쳤습니다. 예컨대 사도 요한의 제자였던 폴리캅으로부터 배웠던 이레니우스는 ‘이단에 대하여’라는 책에 다음과 같이 원죄를 묘사했습니다.

첫 번째 사람은 그의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하여 하나님께 불순종했다. 그 결과 전 인류는 그와 더불어 타락했다. 인간은 타락으로 인해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고 죽음의 희생자가 되었다.

보시다시피 ‘원죄’라는 단어는 등장하지 않지만 그 개념이 사용됐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원죄”라는 개념이 어거스틴 때부터 생겼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참고로 교부들마다 ‘원죄’라는 단어에 부여했던 의미의 경계선은 다릅니다. 예컨대 어거스틴이 사용한 ‘원죄’의 개념은 몇몇의 다른 교부들과는 달리 아담이 역사적으로 지은 첫 번째 죄와 그로 인해 전 인류에게 전가된 부패성까지 의미하지요. 그러나 이런 경계선의 차이는 본글이 겨냥하는 범위 밖인지라 여기까지만 언급하겠습니다.


2. 유대교는 원죄를 어떻게 보나요?
유대교인들에게는 원죄 개념이 없습니다. 그대신 인간의 부패성을 의미하는 “예세르 하라(יֵצֶר הָרָע)”라는 표현이 있지요. “예세르 하라”는 창세기 6:5; 8:21에서 기인된 것으로 ‘악한 성향,’ 혹은 ‘악한 충동’을 의미합니다. 유대인교들은 “예세르 하라”와 반대되는 개념인 ‘선한 성향,’ 혹은 ‘선한 충동’을 의미하는 “예세르 하토브 (יֵצֶר הַטּוֹב)”를 통하여 율법을 격렬하게 지킴으로 “예세르 하라(יֵצֶר הָרָע)”를 정복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예컨대 바벨론 탈무드 키두신 30 b를 보면 “만약 네가 토라를 공부하는데 최선을 다한다면, 예세르 하라의 권세 아래로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는 문장이 있고, 미쉬나 피르케 아보트 4. 2를 보면 “누가 강한가? 자신의 성향을 복종시키는 자가 강하도다”는 문장이 있습니다. 
유대교인들의 예배 의식을 봐도 다음과 같은 아침 기도문과 저녁 기도문이 있습니다:
(1) 아침 – ואל תשלט בנו יצר הרע (예세르 하라로 하여금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게 하소서),
(2) 저녁 – וישלט בי יצר טוב ואל ישלוט בי יצר הרע (예세르 하토브로 하여금 나를 지배하게 하고, 예세르 하라로 하여금 나를 지배하게 하지 못하게 하소서).
그래서 신학자들은 이와같은 유대교인들의 이중적 개념을 “두개의 성향 이론 (A Theory of Two Yeṣarim)” 혹은 “악한 충동 이론(The Doctrine of the Evil Impulse)”이라고 부릅니다. 하나 더 알아야 할 것은 “예세르 하라(יֵצֶר הָרָע)”를성향이 아니라 인격체로 구분하는 유대교인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예세르 하라(יֵצֶר הָרָע)”는 악한 성향이 아니라 악한 영, 곧 마귀라는 뜻이지요. 이럴 경우 인간의 부패성에 대한 개념은 자동적으로 축소가 됩니다. 이처럼 유대교인들의 원죄 개념은 기독교 보수진영에서 의미하는 원죄의 개념과 상당히 다릅니다.


3. 천주교는 ‘원죄’를 어떻게 보나요?
천주교는 기독교와 거의 비슷한 개념으로써의 원죄론을 받아들입니다. 트렌트 공의회는 1546년 6월 17일에 모여 신앙 고백의 다섯 번째 세션인 “원죄론”에 대한 조항을 만들었습니다. 그 때 만들어진 원죄론은 다섯 개의 조항으로 구성됐는데, 그 중에 세 개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 번째 조항: 만약 누구라도 아담이 ‘원죄’를 범한 후 하나님께서 주셨던 거룩함과 의로움을 잃어버렸다고 고백하지 않는다면 영원한 형벌에 처해질 지어다 (Si quis non confitetur … anathema sit).
두 번째 조항: 만약 누구라도 아담이 범한 ‘원죄’가 아담에게만 영향을 미치고 우리에게는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면 영원한 형벌에 처해질 지어다 (Si quis Adæ prævaricationem sibi soli … anathema sit).
세 번째 조항: 만약 누구라도 우리의 유일한 중보자이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 이외의 것으로 ‘원죄’가 치료될 수 있다고 믿거나, 침례/세례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가 임한다는 것을 부인한다면 영원한 형벌에 처해질 지어다 (Si quis hoc Adæ peccatum … aut negat ipsum … anathema sit).
보시다시피 ‘원죄’가 “무엇으로 치료되는가 (예수님의 공로)”에 대해서는 복음주의 기독교 진영의 믿음과 같습니다. 그러나 세 번째 조항에서 볼 수 있듯이 “어떻게 치료되는가 (믿음 vs. 침례/세례의식)”에서 차이를 보이지요.
하나를 더 언급하자면 성도들이 침례/세례를 통해 ‘원죄’를 씻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죄를 짓는 이유는 육욕이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육욕이란 는 아니지만 죄를 향해 기우는 성향입니다. 유대교인들의 “예세르 하라(יֵצֶר הָרָע)”와 비슷한 개념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인간의 성품을 “변화시킨다”는 기독교의 개념과는 달리 “완전하게 한다”고 보는 천주교 교리를 엿볼 수 있습니다.


4. 초대교회사에 흐르는 원죄의 교리는요?
가장 간단하면서도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헬라 교부들과 라틴 교부들을 구분하여 보는 것입니다.
(1) 헬라 교부: 헬라 교부들은 원죄에 대한 개념 대신 온 인류가 아담으로부터 부패한 육신을 전가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 혹은 죄성으로까지 보지는 않았지요. 결국 인간의 자유의지 능력은 죄에 의해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에 육체의 부패성으로부터 간접적인 영향만 받는다고까지 주장했습니다. 인간은 각각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지 아담에게 책임을 전가할 수 없다는 생각이지요.
그렇다고해서 헬라 교부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부인했던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그들도 모든 인류는 육체의 부패성으로 인해 짓는 죄로부터 구원이 필요하며, 구원은 오직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고 가르쳤으니까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헬라 교부들이 갖고 있던 죄에 대한 개념은 결국 원죄 자체를 부인하는 펠라기우스 주의로 연결되고, 종교개혁 시대에는 소치니파에 의해 받아들여집니다.
(2) 라틴 교부: 반면에 라틴 교부들은 ‘원죄’를 인정합니다. 터툴리안에 의해 본격적으로 사유된 ‘원죄’는 암부로스를 거쳐 어거스틴에 의해 체계화되지요. 어거스틴은 아담의 죄로 의해 육체적으로 도덕적으로 완전히 타락한 인간은 자유의지를 제한받아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상태가 됐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사유에서 “인간은 죄를 짓지 아니할 수 없다 (non posse non peccare)”는 어거스틴의 유명한 이중부정 문구가 생겨난 것이지요.
중요한 점은 라틴 교부들은 헬라 교부들과는 다르게 인간의 이런 상태는 단순한 육적 부패가 아니라 안팎의 부패로 봤으며, 그 결과 하나님 앞에서 심판받아 마땅한 죄인으로 봤다는 것입니다. 이런 어거스틴의 사유는 캔터베리 안셀름과 루터와 칼빈에 의해 받아들여졌지요.
참고로 각각의 라틴 교부들이 갖고 있던 ‘원죄’의 개념은 거시적 관점에서 동질성을 띄지만 미시적 관점에서는 차이성이 있습니다. 예컨대 알렉산드라의 클레멘트나 암부로스는 다른 교부들과는 달리 ‘원죄’는 성적인 죄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본 글의 주제는 원죄의 특성이 아니라 존재 여부인 고로 이 부분도 생략하도록 합니다.


5. 원죄에 대한 개념을 볼 수 있는 성경구절은 어디에 있나요?
‘원죄’의 개념이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나와 있는 구절을 구약과 신약으로 나누어 적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1) 구약: 창 3:1-24; 6:5, 11-12; 8:21, 열왕기상 8:46, 역대하 6:36, 욥기 4:17; 14:4; 15:14; 25:4, 시편 5:9; 10:7; 14:1-3; 51:5; 58:3; 130:3; 143:2, 잠 20:9, 전도서 7:20; 9:3; 예레미야 17:9; 이사야 53:6; 59:7-8; 64:6-7 등.
(2) 신약: 마태복음 15:19; 19:17, 마가복음 7:21; 요한복음 1:29; 8:44, 로마서 1:18-32; 3:9, 23; 5:12-21; 8:6-6; 11:32, 고린도 전서 15:22, 갈라디아서 3:22; 5:19-21, 에베소서 2:4, 히브리서 9:26, 약 3:2, 요일 1:8, 10 등.


6. 원죄론의 비전가적 관점(Non-Imputation Theories)이 무엇인가요?
아담의 죄가 인류에게 전가되지 않거나, 전가가 된다고 해도 인류가 아담의 죄에 대한 책임을 지지는 않는다는 관점입니다. 이런 관점은 크게 (1) 펠라기우스 주의(2) 알미니아니즘, 그리고 (3) 새학파에 의해 사유되고 있습니다.
(1) 펠라기우스 주의
하나님께서 개인의 영혼을 각각 만드시기 때문에 아담의 죄는 다음 세대로 유전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아담의 죄는 인류의 자유의지에 손상을 입히지 않았기 때문에 인간은 스스로 노력함으로 하나님과 가까워질 수 있고, 또한 죄도 전혀 짓지 않을 수 있습니다. 심지여 갓 태어난 아이들도 하나님께 철저히 순종할 수 있다고 말하지요. 아담은 그저 하나님께 부여받은 능력을 잘못 사용한 나쁜 표본일 뿐입니다. 즉, 펠라기우스 주의에 의하면 구원은 하나님께서 개입하사 주시는 선물이 아니라 인간이 탄생 후 지켜내야하는 세이빙일 뿐입니다.
(2) 알미니아니즘
인류는 아담으로부터 부패성, 죄책감, 그리고 정죄를 물려받습니다. 그러나 아담의 죄에 책임이 없고 오직 자신이 직접 지은 죄에만 책임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행적 은총(Preventing Grace)”을 통해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것들을 무효화 하시기 때문이지요. 그 결과 인간은 스스로의 노력으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고, 또한 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3) 새학파
인류는 아담의 타락에 책임이 없고, 스스로 죄를 범할 때만 책임을 지게 된다고 주장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의 죄나 원초적 죄성을 인류에게 전가시키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모든 인류는 필연적으로 죄를 범할 수 밖에 없도록 하는 육적, 도덕적 체질을 타고나지만, 체질은 인간을 죄를 짓도록 유인할 뿐 죄는 아닙니다. 그 결과 인류가 맞이하는 죽음도 아담으로부터 기인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죄를 짓기 때문에 받는 인과응보가 됩니다. 그래서 “정죄할 수 없는 사악성 이론”이라고도 불립니다.


7. 원죄론의 전가적 관점(Imputation Theories)이 무엇인가요?
아담의 죄가 인류에게 전가되었다는 관점입니다. 이런 관점은 아담과 인류가 사회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보는 (1) 언약적 대리 이론(Federal/Representative/Forensic Headship)과 유기적/생물학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보는 (2) 생물학적 대표 이론(Natural/Seminal/Physical Headship)에 의해 사유되고 있습니다.
(1) 언약적 대리 이론
첫 번째 사람인 아담은 법적 대리인으로 인류를 대표합니다. 그러므로 아담의 행동은 모든 인류에 법적 영향을 끼치지요. 하나님께서 아담의 행동을 모든 인류의 행동과 동일하게 보시기 때문에 아담의 복은 모든 인류의 복이요, 아담의 저주는 모든 인류의 저주로 필히 귀결됩니다.
언약적 대표 이론에 따르면 아담은 본래 인류의 생물학적 대표였을 뿐, 죄를 전가시킬 수 있는 언약적 대표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일의 계약/일의 언약(A Covenant of Works)을 맺음으로 인류의 언약적 대표가 되지요. 아담이 맺지 않아도 되는 일의 계약/일의 언약을 굳이 맺은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와 그의 자손들에게 계약/언약을 통한 영생을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담아, 네가 나와 일의 계약/일의 언약을 맺은 후 순종하면 너와 너의 자손들에게 영생이 임할 것이고, 불순종하면 다 함께 영원한 형벌을 받을 것이다. 나와 언약을 맺겠는냐?”는 하나님의 제안을 아담이 받아들였다는 것이지요. 이를 시점으로 하나님과 아담의 관계는 동산 주인과 동산 지기라는 계약적 관계가 됩니다. 즉, 아담은 모든 인류의 법적 대리자로 에덴 동산에서 일을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하나님께 불순종 함으로 죄를 범하고, 하나님께서는 계약에 따라 아담의 죄를 그의 후손들에게 전가시키십니다. 그 결과 아담의 자손들은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도 죄를 짓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죄를 범한 것처럼 여겨져 부패성을 갖고 태어나 죄를 범할 수 밖에 없는 삶을 살게 되지요. 그래서 언약적 대표 이론을 받아들이는 자들은 “전 인류가 아담 안에서 죄를 범했다”고 능동태적으로 말하지 않고 “전 인류가 죄인으로 여겨졌다”고 수동태적으로 말합니다.
James P. Boice, Lewis S. Chafer, Mark Pretorius, Herman Bavinck, John Calvin 등이 거시적 틀 안에서 언약적 대리 이론을 믿었습니다.
(2) 생물학적 대표 이론
첫 번째 사람 아담은 생물학적 조상으로 인류를 대표합니다. 그러므로 아담의 죄가 인류에게 전가되는 이유는 인류의 첫 번째 조상인 아담 안에 온 인류가 “씨앗”으로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지요.
여기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씨앗으로써의 인류란 아담과 분리될 수 있는 타자가 아니라 유기적 공동체로 엮어진 동질자를 의미합니다. 인류는 물리적으로 태어나기 이전에 아담 안에 물리적(physically/seminally) 씨앗으로 들어있었기 때문이지요. 마치 알을 배고 있는 어미 물고기처럼, 혹은 뿌리와 몸통과 가지로 연결되어 있는 한 그루의 나무처럼 아담과 그의 씨앗은 단절될 수 없는 유기적 관계성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 결과 아담이 범죄했을 때 아담 속에 있는 씨앗들도 함께 죄를 범했던 것으로 사유되지요. 그러므로 생물학적 대표 이론을 받아들이는 자들은 인류가 “죄를 범한 것으로 여겨졌다”는 수동태적 표현이 아니라 “함께 죄를 범했다”는 능동태적 표현을 사용합니다.
Millard J. Erickson, John Miley, F. Leroy Forlines, Archibald A. Hodge, John F. Walvoord, Augustus H. Strong, Oscar L. Joseph, C. H. Spurgeon 등이 거시적 틀 안에서 생물학적 대표 이론을 믿었습니다.
깜짝 퀴즈:
John H. Walton은 박스 안에 담겨진 방사선을 예로들어 원죄를 설명합니다. 어떤 동산에 동산 주인, 동산지기, 박스가 있었습니다. 동산 주인은 박스를 절대 열지 말라고 말했지만, 동산지기는 그 말을 어기고 박스를 엽니다. 그 결과 박스로부터 흘러 나온 방사선은 동산 안팍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오염시켰습니다. 질문입니다: 박스 안의 방사선 비유는 언약적 대리 이론에 적합할까요, 생물학적 대표 이론에 적합할까요? 혹은 둘 다 일까요? 아니면 둘 다 아닐까요? 여러분 스스로 답해보세요!


8. 위에 언급된 이론중 가장 성경적인 이론이 무엇인가요?
여기서부터 조금 복잡해지기 때문에 최대한 쉽게 풀어서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지금까지 읽은 글을 기억하면서 읽어내려가시면 비교적 쉽게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1) 비전가적 관점 vs. 전가적 관점:
시편 51:5이나 로마서 5:12등을 성서신학적으로 볼 때 전가적 관점이 성경적이라고 보입니다. 시편 51:5을 봅시다.
필자번역 – 보라(הֵן)! 내가 죄 안(בְּ)에서 출생했고, 어머니께서 나를 밴(יֶֽחֱמַ֥תְנִי) 순간부터 죄인이었도다
ㄱ. 한글 성경에는 번역되지 않았지만 히브리어 성경에는 앞으로 말하려고 하는 것의 사실성과 중요성을 나타내는 강조형 불변화사 헨(הֵן)이 있습니다.
ㄴ. 다윗은 자신이 죄 “안(בְּ)”에서 출생했다고 고백합니다. 사방이 죄로 가득찬 곳에서 출생했다고 고백함으로 자신의 성품은 죄로 찌들어 있고, 결국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연약한 인간임을 인정한 것으로 보입니다.
ㄷ. 다윗는 “어머니께서 나를 밴 순간부터 죄인이었도다”고 말합니다. “배다”고 번역된 히브리어(יחם)는 ‘자녀를 갖기 위한 성적인 열망,’ ‘여자가 임신할 수 있는 상태,’ 혹은 ‘성적인 관계’등을 의미하는 폭넓은 단어입니다. 신학자들은 다윗은 자신의 존재가 시작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시점을 지목하면서 그 때부터 자신은 벌써 죄인이었다고 말하기 위해 이 단어를 사용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처럼 다윗은 자신의 죄인됨을 존재의 시작으로부터 봄으로 원죄의 전가적 관점에 한 표를 던집니다. 이번에는 로마서 5:12를 봅시다.
필자번역
그러므로 죄가 한 사람을 통해 들어왔고(εἰσῆλθεν), 이처럼 죽음도 죄를 통해 [들어왔다]. 모든 사람들(πάντες)이 죄를 범했고(ἥμαρτον), 이로인해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퍼졌다(διῆλθεν).
ㄱ. 죄를 능동적으로 범한 주체가 “모든 사람들(πάντες)”이라는 복수 주격으로 되어 있어 단수 아담뿐 아니라 복수 인류가 죄를 지었음을 의미합니다.
ㄴ. ‘들어오다,’ ‘범하다,’ ‘퍼지다’는 세 개의 동사가 ‘들어왔다(εἰσῆλθεν),’ ‘범했다(ἥμαρτον),’ ‘퍼졌다(διῆλθεν)’는 일반과거형 동사로 쓰였습니다. 대게 일반과거형 동사는 지속적이거나 습관적인 사건이 아니라 단회적 사건을 강조할 때 사용됩니다. 게다가 세 개의 사건이 일반과거형동사로 묘사되어 있어 같은 시간대에 즉각적으로 일어났음을 의미합니다. 즉 모든 인류가 아담의 선악과 사건때 죄를 지었다는 의미지요 (John Stott, Nigel Turner, John Murray, William Hendricksen, F. F. Bruce, August H. Strong, Guy P. Duffield, Lewis Sperry Chafer).
이처럼 로마서 5:12도 아담의 죄와 인류의 죄를 연결함으로 전가적 관점에 한 표를 던집니다.
(2) 언약적 대리 이론 vs. 생물학적 대표 이론:
성경에 일의 계약/일의 언약에 대한 내용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과 히브리서 7:9-10을 성서신학적으로 볼 때 생물학적 대표 이론이 성경에 더 부합한다고 생각됩니다. 히브리서 7:9-10을 보겠습니다.
개역개정
또한 십분의 일을 받는 레위도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십분의 일을 바쳤다고 할 수 있나니 이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날 때에 레위는 이미 자기 조상의 허리에 있었음이라
ㄱ. 아브라함이 멜기세댁에게 십일조를 드렸을 때 레위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위도 멜기세댁에게 십일조를 바쳤다고 할 수 있는 이유는 아브라함이 십일조를 바칠 때, 레위도 이미 아브라함의 허리에 있었기 때문이랍니다. 이처럼 성경은 후손들의 씨앗이 조상들 안에 이미 들어 있다는 관점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 관점이 생물학적 대표 이론을 지지하는 기반이지요.
ㄴ. “허리”라고 번역된 헬라어(ὀσφῦς)에는 생식기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이럴경우 아브라함의 생식기 안에 레위가 씨앗으로 들어 있었다는 의미가 됩니다. 첫 번째 인간인 아담의 생식기 안에 모든 인류의 씨앗이 생물학적으로 들어 있었다고 주장하는 생물학적 대표 이론과 방향을 같이합니다.
이처럼 성경에 일의 계약/일의 언약에 대한 내용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과 히브리서 7:9-10의 내용을 통해 볼 때 생물학적 대표 이론이 성서에 바탕을 둔 개념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9. 생물학적 대표 이론으로 원죄를 쉽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제가 가르쳤던 사람들 중 가장 어린 아이는 만으로 4살이었고, 다음과 같은 비유를 통해 원죄론을 쉽게 이해하는 것을 봤습니다. 제가 사용했던 비유는 (1) 물고기와 (2) 나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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