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하나님의 영감된 계시의 말씀 / 나용화 교수
성경은
역사적으로 가장 널리 읽히고 꾸준하게 가장 많이 팔린 베스트셀러 교양서적인가?
어떤 50대 철학자는 자기가 중학생 시절에 이미 성경을 사서 읽는 적이 있기 때문에
성년이 되어서는 구태여 읽을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그 철학자의 경우는 성경이 단순한 교양서적에 지나지 않는다.
그에게는 성경이 매일 읽고 묵상해야 하는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결코 아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의 사건을 확증해주는 참고자료(reference)에 불과한가?
어떤 신학자는 우리 민간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예, 홍길동전)가 하나님의 원계시(原啓示)이고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자료가 성경이라고 주장한다.
그에게는 성경이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이 결코 아니다.
성경은 독자가 성령의 감동을 받아 읽으면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가?
어떤 신학자는 성경이 본래 다른 책과 별로 다를 바 없으나
성령의 감동을 받아 성도가 읽으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져서 신적 권위를 갖게 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신학자에게는 성경이 그 자체로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은 무슨 책인가?
어떻게 기록되었으며,
성경이 기록되어야 했던 이유나 목적은 무엇인가?
성경에는 무엇이 중점적으로 다루어져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이 성경을 어떻게 대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제1절 하나님의 특별계시
성경은 역사적으로 베스트셀러 중에 베스트셀러요, 교양서적 중에 교양서적이다. 그러나, 그 이상의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 자신과 하나님이 하시는 일들을 알게 하는 바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요,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바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의 신앙과 생활을 위한 절대무오하고 유일한 규칙이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장 2항).
성경은 여호와 하나님의 책이기 때문에(사 34:16) 성경의 참된 원저자는 오직 하나님뿐이다. 성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세우시고 그들의 입에 자기의 말씀을 주되(신 18:18-20) 여러 세대에 여러 가지 방식으로 주셨던 것이다(히 1:1). 그리고, 때가 차매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을 온전하게 계시해주셨고(히 1:2, 마 11:27, 요 8:26-28), 마침내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가 계시하신 대로 가르치시는 것이다(요 14:26, 16:13).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이 주신 하나님의 책이요, 하나님의 특별계시의 말씀인 것이다.
하나님의 특별계시는 하나님 한 분이 주신 것이기 때문에 여러 세대에 여러 모양으로 여러 사람들을 통해서 주셨지만, 계시의 내용상 질적으로 동일하고, 서로 유기적으로 통일되어 있으며, 역사적으로 점점 더 분명하게 밝히 드러나 있다. 또한, 성경책으로 기록됨으로써 혼란을 예방하고 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특별계시에는 다음과 같은 성질이 있다.
1. 계시의 동질성
아브라함이나 모세 때에 하나님이 주신 계시나, 다윗 때에 주신 계시나, 신약의 사도들에게 주신 계시가 내용에 있어서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예를 들면, 하나님의 이름이나 메시야에 대한 약속과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 구원의 교리에 관한 계시가 신구약을 막론하고 동일하다. 그래서, 성경을 해석할 때 구약을 배경으로 신약을 읽는 것이 효과적인 것이다.
2. 계시의 유기적 통일성
구약의 첫 권인 창세기와 신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은 수 천년의 시간적 간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질적으로 동일할 뿐 아니라, 서로 유기적으로 통일을 이루고 있다. 예를 들면, 새로운 시작과 질서(창 1:1, 계 21;5), 생명나무(창 2:9, 계 22:2,4), 강(창 2:10, 계 22:1), 낙원(창 2:8, 계 21:10), 에덴 동산의 폐쇄(창 3:23)와 낙원의 개방(계 21:25), 죽음의 시작(창 3;16-18)과 죽음의 종결(계 21:4), 사단의 일시적 승리(창 3:13)와 그리스도의 궁극적 승리(계 22:3) 등 여러 가지 점에서 서로 통일되어 있다. 그래서, 신약을 렌즈로 삼아 구약을 해석하면 좋다. 또한, 성경만이 성경의 무오하고 확실한 해석의 척도인 것이다.
3. 계시의 역사적 점진성
하나님의 특별계시는 역사적으로 점진적이다. 아담에게 하나님이 주신 계시보다는 아브라함의 경우에 더욱 밝히 드러나고, 아브라함보다는 다윗이나 이사야의 경우가 더욱 밝으며, 예수님과 사도들의 경우는 더욱 더 뚜렷하게 계시가 드러나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메시야에 관한 예언을 보면, 아담의 경우는 여자의 씨이지만(창 3:15), 아브라함의 경우는 이삭에게 날 자이다(창 17:21, 롬 9:7-9).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유다의 씨(창 49:10), 다윗의 자손(사 11:1, 행 13:23), 임마누엘(사 7:14), 그리고 수난의 종(사 53장) 등으로 점점 더 밝히 계시되어 있다. 그래서, 성경을 해석할 때는 좀더 분명한 구절을 가지고 난해한 구절을 해석하되, 역사적 문법적으로 해석해야 하는 것이다.
4. 계시의 경제성
하나님의 계시는 수 천년을 두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의 내용으로 주어졌기 때문에, 그 계시를 다 기록해 두었다고 하면 그 분량이 너무나 방대했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지금의 성경책 안에 자기의 계시를 압축해 놓으셨다. 또한, 성경이 정경으로 완성된 이후로는 새로운 내용의 계시를 더 이상 주시지 아니한다(참고, 계 22:18,19).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꼭 필요한 만큼의 계시를 성경에 담아 놓으시고, 그것만으로도 하나님과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충분히 알 수 있게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인 성경 밖으로 넘어갈 필요가 없으며(고전 4:6), 새로운 계시를 하나님께 구할 필요도 없고, 누군가에게서 새로운 내용의 계시를 기대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어떤 새로운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할지라도 그것이 이미 성경에 있는 것이거나, 아니면 헛된 것일 뿐이다. 하나님이 이처럼 자기의 계시를 성경에 압축해 놓으시고, 더 이상의 새로운 계시를 주시지 아니하기 때문에 교회 안에는 계시의 홍수사태나 혼란이 있지 않게 되었다.
이상에서 본대로, 이 같은 계시의 본질 때문에, 우리가 성경을 해석할 때는 구약을 배경으로 하여 신약을 읽고, 신약을 통해서 구약을 보며, 좀더 분명한 구절을 통해서 난해한 구절을 해석하고 오직 성경만으로 신앙과 생활의 유일무이한 규칙으로 삼아 순종해야 한다.
제2절 하나님의 영감된 말씀
하나님께서는 성경의 예언의 말씀을 주심에 있어서 선지자들과 사도들을 성령으로 감동시켜 기록하게 하셨다(벧후 1:20,21). 그래서, 성경의 말씀은 기록한 자들의 사사로운 생각에서 만들어진 것이 결코 아니다. 따라서, 성경은 사람의 개인적인 생각을 가지고 해석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한편,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기록하는 자들을 성령으로 감동시켰을 뿐 아니라, 모든 성경 자체도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게 하셨다(딤후 3:16). 이 점에서,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靈感, ‘성령의 감동’의 준말임) 된 계시의 말씀이요, 그것의 원저자는 성령 하나님이시다(참고, 고전 2:10-14).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까닭에 다음과 같은 특성들이 있다.
1. 절대 필요성
성경이 없어도 사람들은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알고 구원에 이르는 지식을 가질 수 있는가? 법 없어도 양심만으로 살 수 있어 보이는 사람들은 성경 없이도 구원받는다고 볼 수 있는가? 본성의 빛과 창조와 섭리사역 가운데 하나님을 알만한 지식 곧 신지식(神知識, knowledge of God) 또는 신의식(神意識, sence of God)이 있기 때문에 그것으로도 구원을 얻는데 충분한가?
성경을 알지 못하여 기독교 종교를 신봉하지 않는 사람들은 (예, 기독교 복음이 전래되기 이전에 살았던 우리의 조상들, 또는 기독교를 믿지 않으나 선하게 사는 친지들 등) 어떤 방법으로도 구원을 받을 수 가 없고, 그들의 본성의 빛과 그들이 신봉하는 종교의 계율에 따라서 자기들의 생활을 열심히 꾸려 간다고 할지라도 구원을 받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참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0장 4항).
시편 기자의 경우를 보면, 그는 시적 영감이 풍부하여 자연 가운데서 하나님의 지혜와 신성과 능력과 솜씨를 노래한 바 있으나(시 19:1-6), 그의 영혼을 소생시키고 눈을 밝게 하며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고 그의 허물을 깨닫는 가운데 구속주 하나님을 묵상하는 것은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인 율법을 통해서였다(시 19:7-14). 다니엘의 경우도,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많은 꿈과 환상을 보았고 총명하기 이를 데 없었으나 이스라엘 백성들의 바벨론 포로 기간에 대해서는 예레미야의 예언의 서책을 읽고서야(참고, 렘 25:12),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그런가 하면, 천문학과 점성술에 밝았던 동방박사들의 경우, 그들은 별의 움직임을 보고서 유대인의 큰 왕의 탄생을 예견하고서 예루살렘까지 왔으나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물어 선지자 미가의 예언의 책(미 5:2)에서 대답을 얻고서야 확신할 수 있었다.
이로 보건대. 성경이 없이는 어떤 사람이라도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알 수 없으며, 따라서 구원에 이르는 지식을 얻을 수가 없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본성의 빛과 창조와 섭리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역들이 하나님과 그의 뜻을 아는 지식을 주는데 있어서 부족하여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줄 수가 없기 때문이다(자연계시의 불충분성,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장 1항). 사단 마귀의 시험과 유혹을 받아 우리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여 죄를 범하게 됨으로써 죄와 사망이 이 세상에 들어와 우리의 본성이 부패해지고 자연도 크게 오염됨으로 말미암아 본성의 빛과 창조와 섭리사역에 나타나 있는 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크게 훼손되고 왜곡되어 버렸다. 이로써 생득적(生得的, innate)인 하나님의 지식으로는 하나님을 온전히 알 수 없고, 따라서 하나님과 깊은 영적 교제를 나눌 수도 없고 구원을 얻을 수도 없다.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는 성경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알고 영생을 얻을 수 가 있는 것이다(요 5:39).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직접 선포하기를 기뻐하시고 자기의 진리를 더 잘 보존하고 전파하기 위해서 성경을 기록케 하셨다(성경이 기록된 적극적 이유). 하나님은 성경을 기록해 주심으로써 인내와 소망 가운데서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게 했다(롬 15:4-6). 또한, 하나님은 육신의 부패와 사단과 세상의 악에 대비하여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 왜곡되거나 은폐되지 않도록 자기의 특별계시의 말씀을 온전히 기록하게 하셨다(성경이 기록된 소극적 이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장 1항).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 말씀을 매일 묵상하므로 믿음을 튼튼하게 해야 하고(행 17:11,12),복음의 말씀을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써 전파해야 하며(딤후 4:1), 사사로운 생각을 가지고 해석해서는 안되고(벧후 1:20), 옳게 분변하도록 힘써야 하는 것이다(딤후 2:15).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해야 한다(고전 4:2).
2. 영감성과 무오성
구약의 39권과 신약의 27권으로 되어있는 성경의 모든 책들은 하나님의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진 까닭에 그것의 내용 뿐 아니라 문자와 사상까지 전체적으로 무오(無誤, inerrant)하고 무위(無僞, infallible)하여 어떤 오류나 거짓이 없다.
그런데, 성경이 무오하고 무위한 것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하나님의 특별계시를 기록할 때 기계적으로 받아서 옮겨 쓴 까닭이 아니다. 기록자들의 문화적 배경이나 하나님에 대한 영적 체험을 하나님이 사용하시되, 이미 쓰여져 있는 많은 기록들을 목적과 관점에 따라 취사선택하게 하여 성령의 감동아래 기록자들로 기록케 한 까닭이다(참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장 2항).
사도 요한의 경우를 보면, 예수의 행하신 일과 가르치신 말씀을 다 기록하자면 그 기록된 책의 분량이 온 지면을 덮고도 남을 것이라(요 21:25) 했고, 그의 복음서에 기록되지 아니하고 빠뜨려진 것도 많다 했으며(요 20:30), 그가 복음서를 기록한 목적은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며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요 20:31). 그리고, 누가의 경우를 보면, 어떤 기존의 자료들을 자세히 연구하여 역사적 순서 등을 감안하여 기록하였다(눅 1:1-3).
이와 같이, 영감의 방식과 관련하여, 성령께서 기록자들의 영적 배경과 지성적 통찰력을 배제하지 않으면서도 주권적으로 감독하여 기록케 하였다고 보는 성경적인 견해를 유기적 영감론(theory of organic inspiration)이라고 한다.
이에 비하여, 성도들이 보편적으로 경험하는 영적 깨달음보다 조금 더 차원이 높은 감동을 받아 기록자들이 성경을 기록한 것으로 보는 견해를 역동적 영감론(theory of dynamic inspiration)이라고 한다. 그리고, 기록자들로 하여금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의 계시를 기계적으로 받아쓰게 한 것으로 보는 견해를 기계적 영감론(theory of mechanical inspiration)이라고 한다. 역동적 영감론은 성경의 무오성(無誤性, inerrancy)가 무위성(無僞性, infallibility)을 부정하는가 하면, 기계적 영감론은 기록자들의 영적, 지성적 능력과 활동을 부정하기 때문에 성경적으로 옳지 아니하다.
그리고, 성령의 감동, 즉 영감의 범위와 관련해서는 내용면에서 사상적 가르침에 해당하는 부분들만 영감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으나, 성경의 모든 부분에 전체적으로 그리고 성경에 사용되어 있는 단어와 어휘들에 이르기까지 역사적이든 지리적이든 사상적이든 막론하고 영감된 것으로 보는 것이 성경적인 견해이다. 이것이 소위 완전축자영감론(完全逐子靈感論, theory of plenary verbal inspiration)이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에 나오는 연대나 계수 또는 자연현상에 대한 표현들이 부정확하거나 상당한 오류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하나, 성경의 기록은 어떤 경우 일반적인 관례를 따르고 있으므로 지나친 정확성을 요구해서는 안된다. 예컨대, 솔로몬의 성전 건축에 소요된 시일이 7년이 다소 넘었다고 해도 성경에는 7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참조, 왕상 6:37,38). 그리고, 성경에는 복사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할 수도 있으나(예, 행 7:14의 ‘75명’이라는 숫자는 출 1:5의 ‘70명’에 대한 실수임) 그것은 축자영감론과는 무관한다.
개혁신학이 성경의 유기적 완전축자영감교리를 강조하는 이유는 성경의 무오성(inerrancy)과 무위성(infallibility) 때문이다. 모든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까닭에 내용이나 문자면에서 오류나 거짓이 없고 정확하고 진실한 것이다(삼하 7:28, 시 12:6, 19:7,8, 119:160, 요 17:17). 그래서, 성경은 절대로 신임할 수가 있다.
3. 신적 귄위
성경에는 권위가 있다. 그 권위 때문에 우리는 성경을 믿고 순종해야 하는 것이다. 성경의 권위는 어떤 사람이나 교회의 증거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의 저자이시요 진리 자체이신 하나님께 전적으로 달려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장 4항). |
성경에 신적 권위가 있는 것은 사람이나 교회의 증거 때문이 아니요, 성경의 저자가 진리 자체이신 하나님이시요, 성령으로 감동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신적 권위는 로마 카톨릭교회가 주장하는 것처럼 교회의 권위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고, 어떤 신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사도들의 권위에 근거하는 것도 아니다. 이는 교회나 사도들은 진리자체가 아니요 약점과 흠이 있기 때문이다.
성경의 신적 권위에는 역사적 객관적 권위와 사역적 권위와 규범적 권위가 있다. 성경은 그 자체가 진리이기 때문에 본래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객관적으로 권위가 있다. 아무도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부인할 수가 없다(시 119:138,142). 그리고, 성경은 살아있고 운동력에 있어서 사람을 거듭나게 하고 변화시키는 권위가 있다(벧전 1:23, 히 4:12). 또한, 성경은 신앙과 생활의 규칙이요 규범으로서 권위가 있다(시 119:105).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 그것의 신적 권위에 순복하여 우리의 신앙생활 뿐 아니라, 일상생활의 모든 분야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찾아 기쁨으로 순종해야 한다. 즉, 성경을 통하여 신앙과 삶을 연결지어야 한다.
4. 독자적 신빙성(self-authentification)
성경이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인 것을 어떻게 알게 되는가? 처음에는 일반적으로 교회를 통해서 사람들이 알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목사의 설교를 듣고서 알게 되고, 어떤 다른 사람들은 교회에서 그룹으로 성경을 공부하는 중에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성경 자체가 가지고 있는 신령한 내용이나 문체의 웅장함과 화려함 그리고 인간의 구원을 위한 유일한 길을 밝혀주는 충분한 내용전개와 전체적인 완전성 등이 스스로 증거하고 있다. 예컨대,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의 산상설교에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확신하게 되고, 어떤 사람들은 욥기와 시편과 아가서의 문장의 화려함과 이사야서의 웅장함 등을 통해서, 그리고 또 어떤 사람들은 창세기와 요한복음과 로마서 등이 보여주고 충분한 내용 전개와 전체적인 완전성을 통해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성경이 하나님이 무오한 진리요, 신적 진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충분하게 납득하고 확신하게 되는 것은, 우리의 심령 속에서 말씀에 의하여 말씀을 가지고 증거하시는 성령의 내적 사역에 의해서이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장 5항, 참고, 대요리 4문답).
5. 충분성
예수님이나 사도들의 시대와 비교해 보면 너무나도 현격하게 달라져 있는 오늘의 시대에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성경만으로도 충분한가?
성경에는 하나님 자신의 영광과 인간의 구원, 신앙과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에 관하여 하나님이 가지고 계시는 모든 계획이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성경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기에 진리로서의 보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모든 세대에 모든 사람의 모든 삶에 원리적으로 또는 구체적이고도 실제적으로 적용되기에 충분한 것이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장 6항).
성경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그에게 순종하는데 필요한 모든 가르침을 충분하게 계시해 놓았다. 즉, 성경은 우리의 신앙과 생활의 규칙으로서 그리고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얻는데 있어서 충분하다. 따라서, 성경에 말씀되어진 대로만 믿고 순종하면 영생과 구원을 넉넉히 얻으며, 성도로서 성결케 되고 영적으로 온전하게 성숙하여 하나님의 뜻에 순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과 신앙생활을 위해서 성경 밖으로 넘어가 하나님의 뜻을 구하려 할 필요가 없으며(참고, 고전 4:6), 새로운 계시를 얻으려 하거나, 교회가 새로운 결의를 하거나 색다른 교훈을 추구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우리의 구원과 신앙과 생활을 위해서는 성경만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성경을 구원론적으로 이해하는데는 성령의 내적 조명(밝혀줌)이 필요하고, 예배나 교회정치와 관련해서는 통상적인 관례나 자연법을 따라야 할 경우도 있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장 6항).
6. 자명성(自明性)
성경에 있는 모든 것들은 그 자체가 한결같이 명백하거나 모든 사람에게 한결같이 분명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구원을 얻기 위해서 알아야 하고 믿고 지켜야 할 필요가 있는 것들은 성경 안에 여러 곳에 아주 분명하게 제시되어 있고 밝혀져 있다. 그래서 유식한 사람뿐만 아니라 무식한 사람일지라도 통상적인 방법을 적당하게 사용하기만 하면 그것들을 충분하게 이해할 수 있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장 7항). |
성경에는 베드로가 지적한 대로 바울의 서신의 경우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많이 있으나(벧후 3:15,16), 구원에 이르는 지식이 요한복음 3:16에서처럼 아주 명료하게 제시되어(so clearly propounded and opened) 있기 때문에, 보통의 성도라도 그 지식을 쉽게 그리고 충분하게 얻을 수 있으며, 지혜롭게 여호와를 경외할 수 있게 한다(시 19:7,8). 그래서, 성도이면 성경을 읽고 연구해야 하고, 부모된 자들은 자녀들에게 읽어주고 가르쳐야 할 의무가 있다(신 6:6,7).
그러나, 성경을 읽는 자가 성령의 도움을 받지 못하여 믿음이 없거나 마음이 굳어져 있으면 읽어도 깨닫지 못한다(눅 24:25). 이는 성령님이 성경에 빛을 비추어 성경으로 밝히 말씀하게 하시고, 성경이 살아있고 운동력 있게 하여 우리의 마음의 눈을 열어 주시기 때문이다(시 119:105, 엡 1:17,18). 이 점에서, 성경은 지금도 살아서 우리로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깨닫게 하고 하나님을 기뻐하며 즐거워하게 한다.
7. 최종성
최고의 재판관은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성령 외에는 다른 아무도 될 수 없다. 이 재판관에 의하여 종교에 관한 모든 논쟁들이 결정되어야 하고, 교회회의와 모든 신조들과 고대 교부들의 학설들과 사람들의 교훈들과 거짓 영들이 검토되어야 하며, 그의 판결에 우리는 순복해야 한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장 10항). |
종교적 또는 신학적 논쟁이나 교리를 확정하는데 있어서 최종적 권위는 성경 말씀으로 말씀하시는 성령님이시다. 그러기에, 모든 종교적 신학적 논쟁에 있어서 교회는 최종적으로 성경에 의존해야 하는 것이다(참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장 8항). 로마 카톨릭 교회의 교황이나 주교회의 또는 여타의 교회의 회의가 결코 최고의 재판관이 아니다.
예컨대, 로마 카톨릭 교회가 주장하는 교황무오설이나 사제의 독신주의 등은 성경에 의하여 판단 받아야 한다. 그리고, 세속 정부의 위정자들에게 교회회의를 소집하고 교리를 확정하는데 깊이 관여할 수 있게 규정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조항들(20장 4항, 23장 3항, 그리고 31장 1,2항)도 성경에 비추어 바로 잡아야 했다. 그래서, 미국의 장로교회는 1788년 총회에서 개정하여 세속정부의 위정자들의 종교적 권한을 제한시켜 현재의 조항대로 바로 잡았던 것이다.
제3절 성경의 목적
성령의 감동을 입은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자신들의 개인적인 생각이나 해석에 의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로부터 받아서 기록한 성경(벧후 1:20,21)은 항상 살아서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사람을 거듭나게 하고 사람의 깊은 곳까지라도 찔러 변화를 시킨다(벧전 1:23, 히 4:12).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경을 주신 목적을 이렇게 요약하였다.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 3:15-17). |
이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이 성경을 기록하여 주신 데는 다음과 같은 목적들이 있다.
1.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위해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어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얻게 하려는데 있다. 성경은 능히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한다(딤후 3:15상). 성령의 주요한 사역이 생명을 새롭게 하고 풍성케 하는 것인 바(참고, 요 7:37-39), 성령은 성경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함으로 성도들을 생명으로 인도하고 풍성하게 누리게 하는 지혜를 얻게 한다.
이에 대하여, 사도 요한은 말하기를,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라.”(요 20:31)고 하였다. “사람이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기”(롬 10:10) 위해서는 먼저 성경에서 복음을 들어야 하며, 복음의 말씀을 들음으로 믿음을 얻어야 하는 것이다(롬 10:17).
2. 믿음생활의 교훈을 위해
믿음 생활의 교훈을 바르게 제공하기 위함이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딤후 3:16). 성경은 우리가 무엇을 믿고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하여 바른 교훈과 규범과 원리를 제공한다. 우리의 신앙과 생활을 위한 절대 무오한 규칙인 것이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장 2항).
3. 하나님의 사람의 성숙을 위해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람을 온전케 하고 성숙케 하는데 있다(딤후 3:17 상).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성경을 주신 목적은 신앙과 생활의 바른 교훈과 규범을 가지고 훈련하여 하나님의 사람의 인격이 성숙하여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자라나게”하고(엡 4:13-16), 이로써 하늘나라의 온전한 시민이 되게 하려는 것이다(엡 2:19). 또한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성전이 되게 하려고 하나님이 성경을 주셨다(엡 2:21,22).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숙하기 위해서는 기독교적 세계관을 성경을 통해서 확립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나는 누구인가?’ ‘나는 여기에 지금 왜 살고 있는가?’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내 삶의 문제점은 무엇이며, 그 문제점에 대한 해결책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믿으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 같은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성경에서 찾을 때 하나님 나라의 성숙한 시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4. 선한 일을 위해 구비토록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여금 선한 일을 행할 수 있도록 구비하려는데 있다(딤후 3:17 하).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선물로 받아 누리고, 성경의 교훈을 통하여 성령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성전이자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된 자는 하나님이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게 하신 목적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행하는데 있음을 알고서(엡 2:8-10) 빛의 열매인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으로 행해야 한다(엡 5:8).
이렇듯,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경을 주신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 없는 믿음 등에서 나오는 바 사랑을 행하는데 있다(딤전 1:5). 온 율법이 “네 이웃을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갈 5:14)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바 살아있는 믿음을 갖게 하는데(갈 5:6) 성경을 주신 목적이 있는 것이다.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고(미 6:8) 환난 중에 있는 고아와 과부를 돌아보며 살게 하려고(약 1:27) 하나님이 자기의 특별계시인 성경을 주셨다. 이로써, 공동체적 삶을 풍성하게 살게 한다.
5. 기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교제를 위해.
기도는 믿음의 으뜸가는 훈련(또는, 연습) (the chief exercise of faith)이요, 살아있는 믿음의 자연스런 표현이다. 또한, 성령을 들이마시고 죄악을 뱉어내는 호흡이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확신케 하는 사랑의 안전띠(safety belt) 또는 생명의 띠(life belt)이며, 하나님의 신령한 복의 창고를 여는 만능열쇠(master key)이다. 이 기도를 위한 지침으로 성경을 하나님이 기록하여 주셨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대요리 186문답). 우리가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눔으로 믿음이 튼튼해지고 성령으로 충만해지며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하심과 함께 하심을 체험하고, 하늘의 신령한 복을 풍성하게 누리도록 하려고 성경을 주신 것이다.
우리의 믿음은 복음의 말씀을 들음으로 생겨나고 그 말씀의 약속들을 경청함으로써 더욱 생명력이 있게 된다. 이 믿음을 통해서 기도의 문이 열리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자기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그를 붙잡을 수 있도록 자신을 우리에게 계시하신다. 하나님이 자기의 계시의 말씀을 통하여 이렇게 하여주시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총을 담대하게 구하고 하나님을 찾으며 그의 존전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참고, 시 27:8).
이처럼, 하나님은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인격적으로 은혜롭게 접근해 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말씀의 약속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두려움 없이 담대하게 하나님의 존전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신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자기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믿음을 심으시고 우리의 기도의 문을 활짝 열어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 위에 우리의 기도가 기초하게 될 때 우리는 참으로 순수한 믿음을 가지고 담대하게 그리고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릴 수가 있게 된다.
제4절 성경의 중심주제
성경은 사람이 하나님에 대하여 무엇을 믿을 것인가와, 하나님이 사람에게 어떻게 살 것을 원하시는가를 가르치고 있으며, 이로써 영생 곧 구원을 누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를 즐거워하는 삶을 보여준다. 그러기에, 성경은 본질적으로 구원의 책이다. 철학이나 과학 또는 역사를 다룬 책이 결코 아니다.
성경이 구원의 책이요, 구원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요 화목제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에, 성경의 중심주제는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이다. 예수님 자신이 친히 말씀하신 대로 모든 성경은 예수님을 증거하고(요 5:39), 그를 가리켜 기록되었으며(눅 24:44), 하나님은 그에 관하여 선지자들을 통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셨다(롬 1:2).
구약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예표적(豫表的)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눈으로 직접 보거나 귀로 듣지 못했다(마 13:16,17, 요 20:29). 구약의 성도들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 것들을 통해서 하나님을 믿고 섬겼다(히 8:5, 9:9,10).
구약에 비하여, 신약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져 본 그리스도 예수(요일 1:1)를 실체적(實體的)으로 보여주고 있다. 의심 많은 도마까지도 부활하신 예수를 눈으로 보고서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다”(요 20:28)라고 고백한 것이 좋은 증거이다.
한편,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권과 관련하여 생각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중심적 주제이고,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언약(言約, covenant)이 또한 성경의 중심적 주제이기도 하다.
세례 요한과 예수께서 복음을 전할 때 첫마디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 3:2; 4:17)고 하셨던 것과,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 6:33)고 말씀하신 것, 그리고 그가 가르친 천국 비유(마 13장)와 종말에 관한 말씀(마 24장) 등으로 보아서도 알 수 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예수에게 있고(마 28:18), 그가 세세토록 살아서 사망과 음부의 권세를 가지고(계 1:18)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하시리로다”(계 11:15),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계 19:6).
이와 같이 구약 성경에도 하나님의 왕권과 통치권이 밝히 드러나 있다. “주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니 주의 통치는 대대에 이르리이다”(시 145:13), “여호와 네 하나님은 영원히 대대에 통치하시리로다”(시 146:10),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라. 모든 권세 있는 자가 다 그를 섬겨 복종하리라”(단 7:27), “천하 만국 중에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숭배하려 예루살렘에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비를 내리지 아니하실 것인즉”(슥 14:17) 등의 말씀이 하나님의 나라를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또한, 그리스도가 온 세상을 심판하며(사 11:3-5), 땅 끝까지 이르러 모든 민족들의 통치자가 되고(창 49:10; 미 5:4; 슥 9:9,10), 온 세상에 평화를 실현하리라(사11:6-9)는 예언의 말씀도 성경이 하나님의 나라를 중심적 주제로 삼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맺은 언약도 성경의 중심주제이다.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너의 우거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일경으로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창 17:8)고 말씀하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이 언약을 기억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종노릇하던 때에 그들을 돌아보셨다(출 6:4,5). 자기의 언약의 백성인 이스라엘 사람들을 애굽에서 해방시킨 그 하나님이 다윗과 언약을 맺으셨고(삼하 7:6) 그 언약이 그리스도를 통하여(눅 22:20) 신약의 성도들과 오늘의 교회에서 이루어졌다(고후 6:16).
선지자 에스겔은 예수 그리스도의 왕권 곧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이 성경의 중심 주제인 것을 이렇게 예언하였다.
“내 종 다윗이 그들의 왕이 되리니, 그들에게 다 한 목자가 있을 것이라. 그들이 내 규례를 준행하고 내 율례를 지켜 행하며, 내가 내 종 야곱에게 준 땅 곧 그 열조가 거하던 땅에 그들이 거하되 그들과 그 자자손손이 영원히 거기 거할 것이요, 내 종 다윗이 영원히 그 왕이 되리라. 내가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세워서 영원한 언약이 되게 하고, 또 그들을 견고하고 번성케 하며 내 성소를 그 가운데 세워서 영원히 이르게 하리니, 내 처소가 그들 가운데 있을 것이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내 성소가 영원토록 그들의 가운데 있으리니 열국이 나를 이스라엘을 거룩케 하는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다 하라”(겔 37:24-28).
신구약 성경의 중심 주제를 놓고 볼 때 신구약 성경의 가르침의 첫째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자녀된 자들이 삶의 가치와 목적을 알고서 하나님의 임재와 교제 가운데서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살게 하는 것이다. 이 생명은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했기에 가능하다. 나라가 있으므로 백성이 자유와 행복과 권리와 생명을 누릴 수 있다. 특별히, 통치권자가 왕직, 선지자직, 대제사장직 등 삼중직을 다 함께 가지고 있고, 온유와 겸손, 권세와 덕과 사랑으로 행하시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 나라는 통치권자의 언약에 기초하여 세워졌다. 언약은 통치권자가 자기 백성에 대하여 책임을 지겠다는 자원적(自願的) 약속으로서 피 흘림을 방편으로 하여 맺으셨다. 이 언약을 통해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자유, 행복, 권리와 생명을 누리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를 즐거워하며 만족하는 가운데 살기를 원하신다.
요약하자면, 신구약 성경의 중심적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와 언약으로서, 이 셋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의 나라 안에서 언약을 방편으로 영생과 구원을 누리며 살 것을 성경에서 중심적으로 다루고 계신다.
제5절 구약과 신약의 관계
39권의 구약과 27권의 신약으로 구성되어 있는 성경은 사실상 한 분의 저자가 쓴 한 권의 책이다. 1500여 년의 오랜 세월에 걸쳐서 여러 선지자들과 사도들을 통하여 성령 하나님이 자기의 계시를 기록한 것이다. 따라서 성경은 시대적으로 표현상 다소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그것의 중심 주제가 동일하고 유기적으로 통일되어 있다.
1. 신약에서 본 구약
첫째, 하나님의 영감된 말씀이다.
신약에 의하면, 구약은 하나님의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벧후 1:21) 기록했고, 그들이 기록한 글 자체도 하나님의 성령의 감동으로 되었다(딤후 3:16). 다시 말해서, 구약을 기록한 선지자들뿐만 아니라 그들이 기록한 글 자체도 성령의 감동을 받은 것이다. 예컨대, 다윗이 시편을 쓸 때(마 22:43, 행 1:16, 4:25), 또는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할 때(행 28:25-27)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했다.
둘째, 신적 권위가 있는 말씀이다.
구약이 하나님의 성령의 감동으로 된 것임을 믿기 때문에, 신약은 구약을 신적 권위가 있는 책으로 인정한다. 그래서, 예수님의 경우를 보면, 사단의 시험을 받을 때 구약을 신적 권위가 있는 말씀으로 인용하여 사단을 물리쳤고(마 4;4,7,10), 사도들도 구약을 인용하여 신적 권위를 인정하였다(행 2:16-19, 15:15-18, 딤후 2:19).
예수님께서 율법과 선지자 곧 구약을 이루려 오셨다고 밝히 말씀하신 것(마 5:17,18)과, 그가 적극적으로 구약의 말씀을 순종하신 것(요 19:28-30) 등은 그가 구약의 신적 권위를 인정하였음을 의미한다. 또한, 신약이 구약의 인물들이나 사건들을 아무 의심 없이 역사적인 것으로 인용한 경우들도(마 19:4; 24:37,38, 눅 17:28-30, 요 3:14, 히 7:1-9, 고전 10:1 등) 구약의 신적 권위를 증거하고 있다.
셋째, 메시야에 대한 예언의 책이다.
구약이 메시야인 예수를 처음부터 예언하고 있음을 신약은 인정하고 있다. 예컨대, 창세기 3:15의 ‘여자의 후손’과 창세기 17장 7, 8절의 ‘아브라함의 씨’를 메시야에 대한 예언으로 신약이 인용하고 있는 것이다(갈 3:16, 4:4). 마태는 그의 복음서에서 구약이 예수의 생애에서 성취된 사실에 초점을 맞추어,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마 1:22),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로 말씀하신 바…함이 이루어졌느니라”(마 2:17,18) 등과 같이 표현하였다. 그리고, 예수님 자신도 구약의 예언들이 자기에 대한 것임을 말씀하셨다(눅 24:27, 44-47, 요 5:45-47).
2. 구약의 완성으로서 신약
사도 바울이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 6:2)라고 한 말은 이사야의 예언, “은혜의 때에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도다”(사 49:8)라는 말씀의 성취이다. 예수님이 귀신들린 자들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를 고쳐주신 것은 이사야의 예언인,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함을 이루려함이었다(마 8:16,17). 그리고, 예수님께서 옥중에 있는 세례 요한의 제자들에게 하신,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마 11:4,5)는 말씀은 메시야의 오심과 하나님 나라의 도래에 대한 이사야의 예언(사 35:5,6)을 그가 성취하고 계심을 두고 한 것이다.
이는 곧 신약이 하나님의 구속 계획의 완성이요, 절정으로서 은혜의 시대임을 의미한다. 구약에서 준비되고 예언된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시작된 시대에서 실현되고 완성되었다.
죄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의 계시는 마치 땅에 뿌려진 씨앗과도 같이 성장한다. 신약은 성숙한 구속의 나무이다(the full-grown plant of redemption). 이로써,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계시가 신약에서 완성되고 절정에 이르렀다(참고, 히 1:1,2). 하나님의 최종적 계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주어진 것이다(요 1:17).
3. 구약과 신약의 유사점
첫째, 구약(옛 언약)과 신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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