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노트 (81-90)
81. [예화] 오 헨리의 ‘강도와 신경통’ <내가 죽음의 골짜기를 다닐 찌라도>
82. [예화] 소록도 병원장에 자원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를 보내십시오>
83. [예화] 신앙의 사람 ‘무디의 생애’ <만일 누가 너희에게 무슨 말을 하거든>
84. [예화] CNN방송 설립자 ‘테드 터너’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은 얻었지만>
85. [예화] 나무 심는 ‘엘제아르 부피에’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건지려고>
86. [예화] 음식에 소금을 쳐라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그 맛을 잃으면>
87. [예화] 뱀 잡이수리 이야기 <예수께서, 너희의 믿음이 어디 있느냐>
88. [예화] 치악산은 모월산(母月山)이다 <부모님의 가르침을 배척하지 마라>
89. [예화] 이율곡 선생의 청빈생활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90. [예화] 알베르 까뮈의 ‘오해’ <행위대로 보응을 받을 것이오>
81. [예화] 오 헨리의 ‘강도와 신경통’ (성자/연합)
‘오 헨리’의 단편 중에 ‘강도와 신경통’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만물이 고요하게 잠든 깊은 밤에 얼굴에 복면을 하고서 권총을 든 한 강도가
어느 집에 들어갔습니다. 여기 저기 값나가는 물건이 있는 곳을 뒤져봐도 별
신통한 물건이 안 나오자, 깊이 잠든 주인을 깨워서 손을 들라고 하고 소리쳤습니다.
집 주인이 깜짝 놀라서 벌벌 떨면서 왼손만 들었습니다. 그러자 강도가 “오른손도 마저 들어” 위협을 했습니다. 그러나 주인은 오른손을 들 생각도 안 하면서 기왕에 들었던 왼손을 더 높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강도가 “오른손도 올려” 재차 육박
질렀습니다.
집주인은 “오른손은 신경통 때문에 손을 들 수가 없네요.”
“뭐, 신경통, 제기랄 나도 신경통 때문에 이 짓을 하는데” 강도와 주인 사이에
신경통에 대한 이야기가 매우 진지하게 오고 갔습니다. 신경통에는 무슨 약이 좋다느니, 어떤 치료법이 효과가 있다느니, 밤이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새벽녘에 헤어졌습니다.
‘동병상련’이라는 말 같이, 같은 병을 앓는 사람들끼리 이웃이 된다는
말입니다. 권총을 들이대고 돈을 요구하던 강도와 총구 앞에서 벌벌 떨던 주인이
다정한 친구 사이가 되었던 것은 신경통이라는 병을 앓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같은 입장을 동질성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같은 목표로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웃과 내가 같은
마음으로 예수님을 섬기며 살아갑니다. 예수님 때문에 내가 강해질 수 있습니다.
[시23:4] 내가 음산한 죽음의 골짜기를 지나가게 된다 하더라도,
나는 겁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막대기와 지팡이가 나를 든든하게 보호해 줍니다.
[말씀으로 초청합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가 똑똑하기 때문에, 뛰어나기 때문에,
착하기 때문에, 여기에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자를 부르시고 있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선택 받은 자로서의 사명의식에 투철하고,
우리로 하여금 도구로서의 기능을 다하고,
우리로 하여금 종으로서의 충성이 넘칠 때 함께 하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같은 목표를 가지고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신자들은 주님과 함께하는 생각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
82. [예화] 소록도 병원장에 자원 (헌신/사명)
전남 고흥반도 끝자락에 위치한 작은 사슴 같은 형상의 아름다운 섬.
그러나 한센인들의 애환이 서려있는 소록도는 절경의 상징이 아니라,
고립과 차별의 상징입니다.
1916년 소록도에 한센인들을 위한 병원으로 자혜원이 개원된 이래,
1949년 중앙나요양소,
1957년 소록도갱생원, 1960년 국립병원으로 승격했고,
한센인 642명이 사랑과 희망을 가꾸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 8개월 동안 한센병에 대한 편견과 열악한 환경 탓에,
보건복지부는 의사 면허를 가진 자 중에 병원장을 공모했으나 지원자가 없다가,
8개월 공백 끝에 마침내 28대 ‘소록도 병원장’이 탄생했습니다.
2007년 10월 16일 취임식을 가진 ‘박형철(46)’ 원장입니다.
“소록도를 편견과 소외의 땅에서 복지와 화합의 공동체로 만드는데
힘을 쏟겠습니다. 의사가 필요한 곳이니 당연히 가야지요.” 라고 밝혔습니다.
박 원장은 소록도 행보는 의대 2학년시절,
수련의 때문에 두 차례나 이곳에 의료 봉사를 한 경험이 있었고,
그 경험이 이곳을 지원하게 되었다고 말하지만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한센인들의 꿈대로 소록도가 하늘의 땅, 하늘의 축복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헌신하는 자의 아름다운 열매를 기대합니다. 받은 축복에 감사하면서 더욱
믿음의 싸움에 행진합시다. 주님께서 보내실 때 어디든지 갈 수 있어야 합니다.
“제가 여기 있나이다.”
[사6:8] 그 때에 내가 주님의 목소리를 들었다. 주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누구를 보낼까? 누가 우리를 위해 갈까?” 내가 말했다.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를 보내십시오.”
[말씀으로 초청합니다]
구약시대 이사야 선지자의 말을 연상시킵니다.
그는 역사의 부름이 있었을 때, “제가 여기에 있나이다. 저를 보내십시오.”라고
말하며 선지자의 사명을 지원했습니다.
이기주의가 팽배한 세상, 모두가 이런 사명으로 산다면 세상은 달라질 것입니다.
한센인들의 꿈대로 소록도가 하늘의 땅, 하늘의 축복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헌신하는 자의 아름다운 열매를 기대합니다.
받은 축복에 감사하면서 더욱 믿음의 싸움에 행진합시다.
주님께서 보내실 때 어디든지 갈 수 있어야 합니다.
“제가 여기 있나이다.”
------------------@@@@@--------------------
83. [예화] 신앙의 사람 ‘무디의 생애’ (선교/헌신)
‘드와일 엘 무디’(1837.2.5-1899.12.22)는 위대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위대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는 아버지 ‘에드먼드’와 어머니 ‘벨시’ 사이에서 출생하였고, 일생 동안 100만 마일의 긴 전도여행을 했고, 1억 명 넘는 사람들에게 설교 했고, 75만 명을 하나님께 인도한 전도자로 활약하여 그를 ‘지구에서 천국까지 가장 많은 사람을 끌어다 놓은 사람’ 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무디의 10대 조상을 살펴보면 위대한 신앙의 사람들이었습니다.
10대는 영국 국왕 헨리8세로부터 작위 벼슬을 받은 귀족출신입니다.
10대부터 살펴보면, 10대 ‘에드워드’ 9대 ‘이사야’ 8대 ‘노아’ 7대 ‘요셉’
6대 ‘에벤에셀’ 5대 ‘사무엘’ 4대 ‘존’ 3대 ‘조지’ 2대‘ 리챠드’ 아버지 ‘에드먼드
무디’ 본인은 ‘드와일 무디’ 그리고 아들은 ‘윌리엄 무디’ 입니다.
그의 위대한 업적 중에는 시카고에 ‘무디 바이블 칼리지’가 있습니다.
이 학교에서는 성경공부를 열심히 가르치는 것이 목적이며, 세계 최대의 채널을
가진 방송국과, 그리고 국내 난 지역에 선교사를 파송하기 위한 ‘항공학교’까지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는 운명을 앞두고 가족들에게 아래와 같이 유언을 했습니다.
“나는 평생 욕망의 사람이었다. 이제 가족들에게 나누어 줄 재산은 없다.
다만, 하나님을 위한 사업계획을 물려주겠노라.”
그리고 그의 좌우명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원한다.” 입니다.
아들과 사위, 가까운 친척들에게 일일이 사업계획을 설명하고 계승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부인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나의 좋은 동반자였소”
[마태복음 21장 3절]
만일 누가 너희에게 무슨 말을 하거든, ‘주님이 필요하시답니다’ 라고 하여라.
그러면 즉시 내어 줄 것이다.
[말씀으로 초청합니다]
대부분의 신자들이 기도할 때 빼놓지 않는 내용은,
이 세상에서 빛이 되고, 소금이 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 동네를 전부 빛으로 만들 수는 없지만, 빛을 비추어야 합니다.
그 동네를 전부 소금으로 만들 수 없지만,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뜻을 완성하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
제자들에게 어린 나귀를 끌고 오라 하셨습니다.
주님이 필요하실 때, 즉시 내어줄 수 있어야 합니다.
헌신하는 나귀처럼,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가 필요합니다.
‘무디’는 하나님을 위한 사업계획을 자녀들에게 물러주었습니다.
--------------------@@@@@----------------------
84. [예화] CNN방송 설립자 ‘테드 터너’ (봉사/나눔)
1980년 세계 최초로 24시간 뉴스채널 CNN방송 설립자가 있습니다.
설립자 ‘테드 터너’는 부모를 일찍 여의고 가난과 싸워야 했지만, 끈기 하나로
CNN을 세계 최고의 뉴스채널로 키워 냈습니다. 현재는 언론사, 영화사, 스포츠
팀을 가진 ‘타임워너’를 이끌고 있습니다. 또한 핵 감축을 주장하고, 여성 권리를
인정하라고 외쳤습니다.
그는 엄청난 부와 명예를 가졌지만 인생관은 의외로 소박하였습니다.
“나야말로 최고의 행운아 입니다. 마음먹은 것은 무엇이든지 다 성취합니다.
이제 남은 생애는 세상을 위해 살겠습니다. 나는 가난했을 때, 팝콘으로 배를
채울 수는 있었지만 만족을 채울 수는 없었습니다. 만족을 얻기 위해 남을 배려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집안에서는 ‘짠돌이’ 지만, 1998년 재산의 3분의 1을 UN에 내놓았습니다.
처음 100달러를 기부하려고 마음먹었는데, 막상 수표 책에 서명하려니 손이 떨렸다고 말했습니다. 첫 번째 서명이 몹시 힘들었으나, 두 번째, 세 번째, 그 다음은 쉬웠다고 말했습니다.
“남을 배려하기가 처음은 어렵지만, 나누고 또 나누면 쉬워집니다. 나눔에도 연습이 필요합니다. 연습을 통해 큰 것도 나눌 수 있습니다.”
마치 수증기가 올라가야 소나기가 내려오듯, 내가 먼저 남에게 베풀어야 먼 훗날
나에게, 그리고 우리들에게 다시 돌아온다는 이치가 있습니다.
[요한일서 3장 17절]
어떤 한 믿는 사람이 자기가 필요로 하는 것은 다 가질 수 있을 만큼 부자라고
합시다. 만약 그가 가난하고 필요한 것들을 갖지 못한 형제를 보고도 그 형제를
돕지 않는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는 마음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없는 사람일
것입니다.
[말씀으로 초청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으로 구원은 얻었지만, 그 믿음에는 행함이 뒤따라야 합니다. 참된 믿음은 생산적이어야 하고, 행함으로 열매를 맺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해야 합니다.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백성을 많이 구제한 고넬료는 베드로의 설교를 통해 성령을
체험합니다. 영적 체험은 장거리 여행을 위한 준비요,
험난한 길을 오르기 위한 장비가 됩니다.
사막의 목마른 자들을 위해 내 물병에 생수를 채우는 것과 같습니다.
---------------------@@@@@-----------------------
85. [예화] 나무 심는 ‘엘제아르 부피에’ (나눔/사명)
프랑스 ‘프로방스’ 지역은 해발 1,300미터 되는 산악지대입니다.
황폐하고 말라버린 그 땅에 ‘엘제아르 부피에’ 라는 양치기가 있었습니다.
부피에는 그 산속에서 허름한 오두막이 아니라, 제대로 된 집을 짓고 살면서,
자신감에, 자부심이 대단했었고, 그는 매일 도토리 200개를 심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10만개를 심으면 그 중에서 2만 그루의 나무가 나오고, 들쥐나
산토끼들 때문에 겨우 1만 그루의 떡갈나무가 자랐습니다.
1910년부터 이곳에 홀로 나무를 심기를 시작하여,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전쟁 중에도 나무심기를 포기하지 않았고,
1920년, 10년이 지나자 떡갈나무들은 높이 자랐고, 가장 넓은 나무 숲은 그 폭이 11 Km나 되었습니다. 그가 포기하지 않고 심은 나무 때문에 하늘에서 내린 빗물이 개울이 되었고, 냇가에는 버드나무 갈대까지 자라게 됐습니다.
1933년 산림감시원이 이곳에 왔다가 엄청나게 울창한 천연 숲을 보고,
자연적으로 조성된 것으로 여기고 ‘엘제아르 부피에’ 에게 특별히 불조심 할 것을
당부한적도 있습니다. 이 때 ‘엘제아르 부피에’는 나이는 75세였습니다.
1939년 세계대전이 또 일어나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나무를 심고 관리했습니다.
외롭게 혼자 살던 이곳에 이웃이 살기 시작하여 예쁜 집들이 들어섰습니다.
1947년 그가 ‘바농 요양원’에서 눈을 감을 무렵에는 1만 명의 사람이 살게 되었으니 이곳 프로방스는 밝은 웃음과 희망이 넘치는 마을이 되었습니다.
한 사람이 포기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수고한 결과였습니다.
한 사람이 포기하지 않고 희망을 가꾼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마태복음 16장 25절]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건지려고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은 사람은 얻을 것이다.
[말씀으로 초청합니다]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건지려고 하는 사람은 잃을 것입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은 사람은 얻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나를 위하여’는 주를 위하여 목숨을 거는 것입니다.
우주를 위하여,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걸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쓰시고자 하는 사람은 역경에서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엘제아르 부피에’는 나라를 위하여, 황폐한 땅을 위하여 목숨을 걸었습니다.
우리들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국가를 위하여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나무심기 나눔 운동이 주는 귀한 교훈입니다.
--------------------@@@@------------------------
86. [예화] 음식에 소금을 쳐라 (회복/사명)
‘불경’에 나오는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사람이 친구 집에 저녁식사를 초대받고 갔습니다. 차려 나온 음식을
먹으려니 전혀 맛이 없는 식탁이었습니다. 친구에게 솔직히 맛이 없다고 했더니,
친구가 그 사람에게 하는 말이었습니다.
“음식에 소금을 쳐라, 이제 맛이 제대로 돌아올 것이야.” 알고 보니 초대한 친구가, 일부러 소금을 치지 않은 것입니다. 소금이 제 맛을 내듯, 사람다운 사람으로
회복되어야 합니다.
영국은 CCTV의 천국으로 불리어집니다.
인권침해 논란에도 불구하고 범죄와 테러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면서 CCTV가 이미 420만대를 넘어 인구 14명당 1대 꼴이고, 10년 뒤에 런던에는 인구 5명당 1개 꼴이라는 예측도 있습니다.
영국에서는 ‘꾸짖는 CCTV’가 출현했다는데, 이것은 모니터 담당자가 CCTV에 달린 스피커를 통해 법규 위반자에게 경고방송을 합니다.
우리나라도 민간이나 공공기관의 CCTV 설치가 일반화되었습니다. CCTV가 산업용, 의료용, 방재용, 사내 화상정보 전달용 등으로 사용되는 장점도 있지만
‘감시한다’는 부정적 인식 때문에 사생활 침해, 인권침해 시비를 낳는 것도
사실입니다.
최근에 CCTV가 좋은 이미지로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경기도 양주시 초등학교들 앞 건널목에 설치된 CCTV에는 모니터 담당교사가
친근한 목소리로 등교, 하굣길에 학생들의 이름을 불러 건널목을 안전하게 건너도록 지도를 하므로, 안전사고나 학교폭력이 한 건도 발생하지 않는 효과를 거두었다고 합니다.
영국은 ‘꾸짖는 CCTV’이였으나, 양주시는 ‘친절한 CCTV’로 바꿔졌습니다.
주님은 오늘도 ‘꾸짖지 아니하시고 오라 쉼을 주리라’ 하십니다. [마5:13]
[마태복음 5장 13절]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다시 짠맛을 가질 수 있겠느냐,
아무 쓸모가 없게 되어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밟힐 뿐이다.
[말씀으로 초청합니다]
이스라엘의 지혜자 ‘벤시라(Ben Sira)’는,
‘인간생활에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물과 불과 철과 소금이라’ 했습니다.
그리하여 랍비들은 토라(율법)를 소금에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소금’이라는 말은 곧 ‘세상의 구원’으로 연결됩니다.
세상에서 박해 받는 예수의 제자들이 세상의 구원이란 것입니다.
소금은 ‘맛’이 생명입니다. 맛을 잃으면 생명을 잃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죄를 고백하고, 의의 생수를 마시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목적은 죄에서 용서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원한 생명의 부활에 참여하는 회복이 있어야 합니다.
---------------------@@@@@--------------------
87. [예화] 뱀 잡이수리 이야기 (무지/믿음)
아프리카에 산다는 ‘뱀 잡이수리’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뱀 잡이수리를 다른 이름으로 ‘비서 새’(Secretary Bird)라고도 불리는데,
이 새는 귀 뒤에 펜을 꽂고 있는 것 같아서 붙어진 이름으로 여겨집니다.
이 새는 독수리의 일종이며 육식성으로 그 눈매가 무섭고 매우 사납다고 합니다.
뱀 잡이수리는 공중을 높이 날아다니다가 두더지나 뱀 같은 것을 발견하면 쏜살같이 내려가 낚아챕니다.
평상시에는 여느 독수리와 마찬가지로 민첩하게 날아다닌다고 합니다.
그런데 땅에 내려와서 먹이를 먹고 있는 도중에 맹수의 습격을 받게 되면,
날아갈 생각을 하지 않고 땅 위에서만 혼신의 힘을 다해 달아난다고 합니다.
너무 당황한 나머지 자기가 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날 짐승이
뛰어봐야 얼마나 빨리 뛰겠는가, 결국 얼마 못 가서 맹수에게 잡아 먹히고 맙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께서 믿음의 날개를 달아주셨는데,
세상일에 너무 집착하다 보니 우리가 믿음을 잊은 체 살아가고 있습니다.
믿음을 현실 문제로 적용하지 못하는 사람은 뱀 잡이수리와 다를 바 없습니다.
평상시에는 우리가 보기에 무척 믿음 있는 사람으로 알려졌는데, 다급한 일이
생기면 땅바닥에서 기어 다니고 휘청거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뱀 잡이수리와 같이 세상욕심에 정신을 쏟다가 믿음의 날개를 잊어서는 안됩니다. 세상욕심은 휴식이 없습니다. 무지에서 오는 비극입니다. 사랑에서 야망으로
가기 쉽습니다.
[누가복음 8장 25절]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의 믿음이 어디 있느냐,”
제자들은 모두 놀라서 도대체 이분은 누구 시길래 바람과 물에게
호령하시고 바람과 물이 이분에게 순종하는가? 라고 서로 말하였습니다.
[말씀으로 초청합니다]
요즘은 누구나 너무 바쁜 생활을 합니다.
바쁜 것과 수입, 바쁜 것과 명성, 바쁜 것과 현대감각, 이런 것은
어느 정도 비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바쁘다 보니, 믿음을 소홀히
할 때가 많습니다.
믿는다고 하면서, 성령께서 하실 일을 내가 하고,
또 성령께서 하실 때를 못 기다리고 내가 먼저 낙심하고,
또 성령께서 해결해 주신다고 약속하신 문제들을 계속 내가 붙들고 놓지 않는
모습이 가련합니다. 회개만이 믿음을 가르쳐 줍니다. 무지에서 오는 비극입니다.
------------------@@@@@---------------------
88. [예화] 치악산은 모월산(母月山)이다 (인간/효도)
강원도 원주시 소초면에 소재한 치악산(雉岳山)은 ‘모월산’(母月山) 입니다.
1984년에 국립공원을 승격, 태백산맥의 오대산에서 서남향으로 매화산(1,084m), 천지봉(1,086,5m)이, 인접한 비로봉(1,288m)은 치악산국립공원 최고봉으로 향로봉(1,042,9m), 남대봉(1,181,5m)까지 해발 1,000m이상의 준봉으로 연결된
대표적인 경관지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한편 치악산을 악산으로만 보지 않고,
모월산(母月山)이라 해서, 어머니 같이 자녀를 품고 있는 모습으로 보기도 합니다.
“만일 당신이 남성이면 여성으로 태어나라, 만일 그대가 여성이면 그냥 여성으로
만족하라.” 요가의 대가 ‘스와미 웨다’의 말입니다. 어머니는 모세를 낳았고,
세례 요한을 낳았고, 예수님을 낳았습니다. 지칠 줄 모르는 위대한 인물을 낳아준
어머니 앞에 머리를 숙여야 합니다. 위대한 인물들은 모두가 어머니의 자식이며
‘그 젖을 먹고’ 자랐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미국의 ‘워싱턴 부크’는 늘 어머니를 자랑하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길거리에서 몸을 파는 여자였고, 아버지는 소금공장 직공에서 나중에 광산에서 일하는 광부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머니를 늘 자랑합니다. 워싱턴 부크는 어릴 때 주일학교를 다니면서 신앙을 배웠고 장성해서, 미국의 최고의 교육가,
교육계의 별, 교육계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그가 유명한 대학교 총장 시절, 하루는 검소한 복장으로 산책을 하는데, 어느 백작부인이 초라해 보이는 부크에게 앞 마당을 청소하면 1불, 뒷마당을 청소하면 1불을
주겠노라고 제안을 했습니다. 부크는 신분을 밝히지 않고 매일 청소를 했습니다.
어느 날 백작부인의 딸이 집에 들어왔습니다.
“총장님 웬일이세요, 어떻게 우리 집에서 청소를 하고 계셔요.” 그 인연으로
백작부인은 전 재산을 학교에 기부하게 되었습니다.
[잠언서 1장 8절]
내 아들아, 네 아버지의 교훈을 듣고, 네 어머니의 가르침을 배척하지 마라.
[말씀으로 초청합니다]
부모님을 보이는 하나님처럼 공경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명령이며 하나님의 약속이십니다.
자식으로서 부모님을 모시는 경우, 부모님의 마음을 보살펴 드리는 것이
가장 잘 모시는 방법입니다.
그 다음은 부모님의 몸을 보살펴 드려야 합니다.
가장 나쁜 것은 몸만 보살펴 드리고, 마음을 보살펴 드리지 못하는 것이며,
더욱 나쁜 것은 부모님의 몸도 보살피지 않는 것입니다.
------------------------@@@@@-------------------
89. [예화] 이율곡 선생의 청빈생활 (청빈/청결)
조선시대 대유학자 ‘이율곡(李栗谷)’을 모르는 한국인은 없습니다.
이율곡은 대사상가, 대교육자로 자신의 지식이 지식의 영역에만 머물러서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직접 행정에도 참가하는 대 정치가였습니다.
청주목사, 황해감사, 대사헌, 호조판서, 대제학, 이조판서, 우찬성 등 고위관직을
두루 역임했고, 그는 학문으로 대성한 학자로서 학문을 직접 정치에 반영하기 위해 관직을 두루 가졌던 것입니다. 이러한 화려한 관직을 갖고도 율곡처럼 청렴하게
산 사람은 없었습니다.
자신이 받는 녹봉 외 쌀 한 톨도 남의 것을 받지 않았을 뿐 아니라,
자신보다 재정적으로 못한 친척을 보면 언제나 도와가며 살았습니다.
42세 때 해주 석담에 집 한 채를 겨우 마련했으나 가난한 친척들이 살도록 배려했고, 자신은 양식이 떨어져 굶을 때도 허다했다 합니다. 이것으로 보아서,
이율곡은 이같이 벼슬은 화려했으나 청빈하기로 유명했습니다.
‘이퇴계’ 역시 같은 시대에 살았던 청빈했던 대학자로 알려졌습니다.
어느 날 영천 군수 허시(許時)의 방문 중, 두 사람의 담소하는 내용에 보면,
“이처럼 좁고 누추한 곳에서 어떻게 지내시는가” 하고 물으니
“오랜 습관이 되면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오랜 습관이 되면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 이 말이 조선시대 유행되었던
이퇴계의 말입니다. 조선시대 이율곡, 이퇴계 선생의 청빈생활을 높이 평가합니다. 우리들도 물질에 청빈해야 하고 심령이 더 깨끗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5장 2~3절]
예수님께서 입을 열어 사람들을 가르치셨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말씀으로 초청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 임이요.
심령이 가난한 자는 그리스도인에게 요구되는 기본적인 성품입니다.
자신의 무능을 철저히 느끼고, 하나님의 전적인 도움을 의뢰하는 자,
하나님 앞에서 ‘영적인 빈곤한 자(Spiritual beggar)’가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부자라 해서 천국에 다 못 들어가는 것도 아닙니다.
또한 가난하다 해서 천국에 다 들어가는 것도 아닙니다.
가난하거나, 부하거나 이것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들은 예수님 앞에서 심령이 가난해야 합니다.
--------------------@@@@@---------------------
90. [예화] 알베르 까뮈의 ‘오해’ (무지/최후심판)
불란서 작가 ‘알베르 까뮈’의 희곡 <오해>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외딴 산골에 여인숙이 한 채 있었고, 어머니와 아들 ‘쟝’과 딸 ‘마르타’가 살고 있었습니다. 아들 쟝은 가난을 참지 못하여 집을 멀리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쟝은 크게 성공해서 아내와 함께 어머니가 있는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쟝은 어머니와 누이 마르타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였습니다. 그래서 아내와 의논한 후, 쟝은 혼자서 신분을 밝히지 않은 채,
그 여인숙에 투숙했습니다.
여인숙은 너무나 낡았고, 조명은 너무나 희미한 터라,
그 새로운 손님이 어릴 때 집을 나간, 아들 쟝이라는 것을 꿈에도 모르고,
모녀는 그를 친절하게 방으로 안내했습니다. 쟝은 어머니와 누이를 깜짝 놀라게
하려는 마음에서 자신의 신분을 숨겼습니다.
그날 밤, 모녀는 손님으로 가장한 쟝의 가방에 눈길이 갔습니다.
“저 가방에 든 것이 돈일 거야, 저 돈이면 이제 고생을 면하겠지”
그래서 그에게 마취제를 먹이고, 돈을 빼앗고, 시체를 강물에 던졌습니다.
이튿날 남편을 찾아나선 쟝의 아내를 통해서 모든 사실을 알게 됩니다.
오늘날 ‘오해’가 불러오는 비극을 말하고 있습니다.
최후의 심판은 다가오고 있습니다. 심판 날이 없다고 오해하지 마십시오.
그날에 아무것도 숨길 수 없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0절]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합니다.
각 사람은 몸을 입고 사는 동안, 행한 선한 일이나
자기가 행한 행위대로 거기에 알맞은 보응을 받게 될 것입니다.
[말씀으로 초청합니다]
돈만 가지면 행복하리라는 오해를 버리십시오.
이 땅 위에 사는 모든 이들이여, 심판이 없다고 오해하지 마십시오.
우리 모두는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됩니다(롬14:10).
하나님은 공의로, 행위대로, 공개적으로, 그리스도를 통해 심판합니다.
하나님의 판단은 어떤 경우에도 선과 악에 대하여 오차가 없습니다(창2:17).
하나님의 판단은 어떤 경우에도 의롭습니다(시33:5).
심판이 없다는 잘못된 생각을 버리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