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정직에 대하여

하나님아들 2022. 12. 9. 12:47

 

 

 

     거짓말에 대하여

 

 베네주엘라에 있는 어느 성당에서 미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갑자기 “불이야”하는 고함소리가 울려 퍼지자, 성당 안에 모였던 6,000여 명의 신자들이 공포에 질려 일어나 밀고 밀치며 소란이 벌어지게 되었다. 그 소란으로 46명의 사상자까지 나게 되었다. 그런데 뒤늦게 밝혀진 바로는 “불이야”라는 소리는 거짓말이었다는 것이다.

 

 경찰 조사에 의하면 소매치기들이 작업을 벌이기 좋은 여건을 만들기 위해 저지른 술책이었다고 한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우리 주변에는 거짓 경보기가 너무나 자주 울리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늑대야 , 늑대야” 소리쳐도 이젠 문도 열어 보려고 하지 않는다. 이것을 가리켜 '불신풍조'라고들 말하고 있다. 거짓 종교의 탈을 뒤집어쓴 무리들이 비상벨을 울리고 있다. 양심 없는 사람들이 양심을 외치고 있다. 가장 윤리적이어야 할 사람들이 윤리성을 파괴하고 있다.

 

“신학자의 가슴 속에 신이 없고 윤리학자의 생활 속에 윤리가 없다”는 비판의 소리도 들린다. 우리 시대는 사이비의 농도가 너무 짙다. 심지어 가짜 박사, 가짜 목사까지도 양산이 되고 있다니 이 일을 어떻게 해야 되겠는가? 진실성의 회복은 우리 시대의 큰 숙제이며 건전한 사회 건설의 과제이기도 하다.

 

 도산 선생은 “죽어도 거짓말을 말자”고 강조했다. 신뢰성의 회복, 정직성의 회복, 화합성의 회복이 필요하다. 성경은 거짓말을 적극적으로 경계한다. 거짓말하는 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계시록 22:15에서 밝히고 있다. 내 뼈 속에 스며 있는 허위의 잔재를 뽑아내야 하겠다.

 

 

 

 

 

 

 

 

 

     거짓은 은폐될 수 없다

 

 십대 소년 네 명이 주일 날 어디엔가 놀러갔다가 월요일까지 계속 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우리가 학생시절에 종종 받았던 유혹 가운데 하나입니다. 네 소년은 의견을 모았습니다. 그들은 여행을 갔다 오는데 타이어가 고장이 났고, 고칠 수 있는 길이 없어서 월요일에 학교를 결석할 수밖에 없었다고 선생님께 거짓말을 하기로 결의했습니다. 그래서 월요일에는 학교를 안 가고 화요일 날 학교에 나갔습니다.

 

“선생님, 우리가 여행을 갔다 오다가 차가 고장이 났는데 고칠 길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월요일에 결석을 했습니다.” 지혜로운 선생님은 빙그레 웃으면서 네 명의 학생들을 불러놓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너희들 말을 알겠구나. 그런데 어제 우리 반 전체가 시험을 보았기 때문에 너희들도 한 가지 시험만은 꼭 치러야 한단다. 문제는 하나이다.” 그러면서 조그마한 종이 한 장을 각각 주면서 고장 난 타이어가 어느 쪽 바퀴였는가를 쓰라고 했답니다.

 

 아브라함 링컨은 이런 유명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거짓은 잠깐은 통할 수 있지만 영원히 통할 수는 없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거짓이 영원히 통할 수 있다고 착각하면서 여전히 주 앞에서 거짓된 행동과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거짓은 결코 은폐될 수 없습니다.

 

 

 

 

 

 

 

 

 

     거짓을 이겨내는 용기

 

 하나님께서 만드신 작품 가운데 가장 으뜸이 되는 것은 ‘정직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들 마음속에는 언제나 정직과 거짓이 함께 있습니다. 따라서 정직하게 살려면 용기가 필요합니다. 거짓을 쫓아내는 용기가 정직을 낳습니다.

 

 우리들이 잘 아는 안중근 의사의 어렸을 때 이야기입니다. 안중근은 아버지께서 아끼시는 귀한 벼루를 몰래 사용하다가 그만 깨뜨렸습니다. 그 벼루는 당시 우리나라에서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귀한 벼루였습니다. 이것을 본 하인은 어린 안중근이 아버지께 매 맞을 것을 염려하여 자기가 깨뜨렸다고 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어린 안중근은 거짓말은 싫다고 했습니다.

 

 그날 저녁. 어린 안중근은 아버지로부터 사정없이 종아리를 맞았습니다. 종아리에서 피가 흘러 내렸습니다. “그러게 뭐라고 했습니까. 제가 대신 매를 맞겠다고 하였잖았습니까.”하며 하인이 위로를 했습니다.

 

 어린 안중근은 “거짓말은 비겁한 짓이야. 비록 종아리가 아프긴 하지만 마음은 편안해”라고 하면서. 걱정해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도 잊지 않았습니다. 어린 안중근의 어른스런 태도에 하인은 감탄했습니다. 이처럼 어려서부터 정직했던 안중근은 훗날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하였습니다.

 

 잘못을 저질렀을 때도 정직하게 말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어려서부터 정직한 사람이 커서 큰일을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자기의 잘못을 거짓말로 모면한 일은 없습니까.

 

 

 

 

 

 

 

 

 

     그럴듯한 거짓말

 

 보스톤에서 목회를 하는 한 목사가 어느 날 길 잃은 강아지를 가운데 두고 빙 둘러서 있는 소년들을 보게 되었다.

 

"너희들 여기서 뭣하고 있느냐?"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소년 가운데 한명이 대답했다.

 

"우리들 중에서 가장 그럴듯한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저 강아지를 갖기로 했거든요."

 

"그래, 내가 너희들 나이였을 때는 말이다." 목사는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절대로 거짓말 같은 것은 생각하지도 못했단다."

 

소년들은 서로서로를 쳐다보다가 고개를 푹 떨어뜨렸다. 드디어 한 소년이 어깨를 들썩거리며 입을 열었다.

 

"저 사람이 강아지를 가져야 할 것 같군."

 

 

 

 

 

 

 

 

 

     꽃씨

 

 옛날 어느 왕이 한 마을 사람들의 정직성을 시험해 보려고 볶은 꽃씨를 나누어 주면서 얼마 후 이 마을에 다시 올 때 화분에 이 꽃씨를 심어 잘 기른 사람에게는 상을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그 꽃씨를 화분에 심고 열심히 길렀지만 웬일인지 싹이 나지 않아 똑같은 꽃씨를 구하여 다시 심어 아름다운 꽃들을 피웠습니다.

 

 드디어 왕이 오던 날 거리는 그들이 정성껏 가꾼 꽃들로 화려하게 수놓아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틈에 싹이 나지 않은 흙덩이만 들어있는 빈 화분을 안고 울고 있는 어린아이 하나가 있었습니다. 왕은 그 아이에게 다가가서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 아이는 더 서럽게 울면서 "내 꽃씨는 웬일인지 싹이 나질 않아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왕은 그에게만 상금을 주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정직성을 알아보려고 볶은 꽃씨를 주었기 때문입니다.

 

 

 

 

 

 

 

 

 

     누워서 침 뱉기

 

 영국의 어느 제과업자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빵을 만들어 마을 사람들에게 공급합니다. 그 제과업 자에게는 매일 아침 버터를 만들어 공급해주는 가난한 농부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납품되는 버터를 보니까 정량보다 조금 모자라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며칠을 두고 납품된 버터를 저울로 일일이 달아보았습니다. 예측한 대로 정량에 미달되었습니다. 화가 난 이 업자는 버터 납품하는 농부를 꾸짖고, 변상할 것을 요구하며 법정에 고발했습니다.

 

 농부는 체포되어 재판을 받았습니다. 심판을 하던 재판관은 농부의 진술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가난한 농부의 집에는 소가 몇 마리 있었지만 저울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버터를 만들어 무엇에 맞추어 자르느냐 하면 그 제과업자가 만들어놓은 1파운드짜리 빵의 규격에 맞추어서, 그 빵의 무게에 맞추어서 버터를 자르고 포장해서 납품을 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 제과업자가 이익을 더 남기기 위해서 그 1파운드짜리 빵의 규격을 조금 줄이고 양을 줄였던 것입니다. 그것도 모르고 이 농부는 줄여서 만들어진 빵에 맞추어서 버터를 만들고 납품을 한 것입니다.

 

누구의 잘못입니까. 제과업자가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빵을 줄인 결과, 그 후유증이 자기에게 오고야 만 것입니다.

 

 우리의 속담에 '누워서 침 뱉기'란 말이 있습니다. 누워서 침을 뱉으면 결국 그 침은 자기의 얼굴에 떨어집니다. 우리가 남을 비난하고 헐뜯고 거짓말을 하게 되면. 그 비난과 헐뜯음과 미움과 증오. 거짓은 결국 자기에게 돌아오는 것입니다.

 

 에스겔 18장에서는 “우리의 의도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 돌아온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선한 일을 하면 그 선한 결과가 자기에게로 되돌아옵니다. 악한 일을 하면 악의 결과가 자기에게로 되돌아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가르칩니다.“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가 먼저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6:31

 

 

 

 

 

 

 

 

 

     또 다른 한 가지 신의

 

 말에 대한 약속을 지키는 것과 아주 평범하고 일상적인 의무들에 대해서도 성실성을 지니는 것은 귀중한 가치가 있다. 버나드 레빈은 일간 신문 타임스에 연재되는 그의 칼럼난에 실제로 있었던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를 썼다.

 

 한번은 미국인 경찰이 그가 정기적으로 다니는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가 그곳에 가기 시작한 지 얼마가 지나서 그곳의 여종업원들 가운데 한 사람과 친하게 되었다. 점심 식사를 하면서 그는 그 지역에서 실시하는 복권의 서식에 숫자들을 기입하면서 어떤 숫자들을 쓸 것인가 생각했다. 그는 그 여종업원을 불러서 즉석에서 아무 숫자나 부르라고 했다. 그는 그녀가 부르는 숫자를 가지고 그 복권에 적었다. 그는 식당을 떠나면서 그녀에게 만일 복권이 어떤 상에라도 당첨이 되면 그녀에게 절반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복권이 일등에 당첨되어 육백만 달러를 타게 되었다. 그 다음날 그는 돈을 받아 가지고 식당으로 가서 그녀에게 정확하게 그 돈의 절반을 주었다. 그러한 터무니없는 관대함에 대해 비난을 들었을지라도 약속은 지켜야 했고 우정은 돈보다 더 중요하다고 그는 말했다.

 

이 이야기에 대한 버나드 레빈의 해설이 또한 흥미가 있다.

 

“그 경찰관은 친구인 여종업원에 대한 신의를 지켰습니다. 그러나 그는 또 다른 한 가지 신의를 지켰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에 대한 신의였습니다.”

 

 

 

 

 

 

 

 

 

     링컨의 생활신조

 

 링컨 대통령은 어려서[정직한 에이브]란 별명을 들었다.

 

거짓말 안했고 한번 약속한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지켰다.

 

젊어서 한 때 가게를 경영했는데 고객과 약속한 물건을 구 했을 때 약속한 날짜를 지키기 위하여 겨울날 20마일을 마차로 타고 배달했다.

 

이런 정직한 생활을 링컨은 죽는 순간까지 자기의 최상의 신조로 삼았다.

 

우리는 너무나 타성이 된 부조리 사회에 오래 살면서 정직 이란 말을 비현실적인 잠꼬대 정도로 듣는 습성이 생겼다.

 

정직한 사람이라면 무능하거나 조금 모자라는 인간으로 취급한다.

 

 

 

 

 

 

 

 

 

      벌레 빠진 주스

 

 미국의 어느 부자 가정에서는 세 아들에게 거저 용돈을 주는 일이 없었다. 다만 100원이라도 무슨 일이든 한 후에야 주는 것이었다. 가령 집안 청소, 잔디 깎기, 유리창 닦기, 쓰레기 버리기, 아버지 구두닦기 등,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이런 일을 한 가지라도 하지 않으면 아들들은 용돈을 탈 수가 없었다.

 

 몹시도 더운 여름 어느 날, 아들 하나가 시원한 오렌지 주스를 만들어 가지고는 길가에 내다 놓고 팔고 있었다. 똑같은 크기의 컵에다가 담아서 죽 늘어놓고 파는데 그 중 하나는 주스 값이 적게 매겨져 있었다.

 

길 가던 사람이 그 까닭을 물어 보았다.

 

"거기에는 하루살이 한 마리가 빠졌었기 때문이죠."

 

"아무도 본 사람이 없지 않냐?"

 

"제가 알고 있잖아요!"

 

"....!"

 

 

 

 

 

 

 

     사명

 

 서양 어느 교회에 그 재정을 전담하다시피 하는 주조장을 경영하는 장로 하나가 있었다. 그 교회에 새로 부임한 목사 한 분이 그 꼴을 보고 힘써 기도하는 중 마침내 "나는 한 주일 이 지나 쫓겨 갈지라도 바른 말을 해서 내 사명을 다하리라."고 굳게 결심했다.

 

 어느 주일인가 예배시간 헌금할 때에 그 장로가 연보 주머니에 막 손을 넣으려는 찰라에 강단에서 이것을 보고 있던 목사는 소리를 질러 "형제여 거기에 손을 넣지 마시오. 하나님께서는 술장사해서 얻은 돈을 받으시길 원히 아니하십니다." 하니 이것은 실로 청천벽력이었다.

 

그 장로는 크게 노하여 "고약하군. 조용히 불러서 권면할 것이지 공중 앞에서 망신을 시킨담. 너 어디 보자." 하고 퇴장하고 그 후부터 교회출석을 안 했다. 교회의 여러 직원들은 걱정을 하며 목사더러 찾아가서 감정을 풀어주라고 했다.

 

 목사는 "자기가 회개하고 나오기 전에는 내가 찾아갈 까닭이 없다. 하며 가보지 아니하였더니 얼마 후에 그 장로는 목사를 찾아와서 눈물로 하는 말이 고맙습니다. 목사님이야 말로 내 은인이요. 우리 교회에 목사가 여러 사람 다녀갔지만 다 자기 지위가 위태할 까봐 나를 책망한 분이 없었는데 목사님만이 나를 정면 공격을 하셨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대단히 섭섭했으나 집에서 기도하는 중 목사님의 책망을 하나님의 책망인줄 깨달았습니다. 제가 만일 목사님의 책망을 바로 받지 아니하면 영원히 멸망하는 사람이 되겠는 고로 이제 자복하옵고 양조업을 그만 두겠습니다." 하고 그때부터 다른 영업을 하여 전보다 흥성하여 교회를 위해 더 많이 바쳤다고 한다.

 

 

 

 

 

 

 

 

     솔직함

 

 대학1학년 때 난 대학교 주변에 있던 어느 선교단체 아파트에서 몇몇 형제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형제가 내게 말하기를 자기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난 후에까지 버리지 못하고 있었던 옛 습관 중의 하나가 수음이었는데 오랫동안 고민하다가 얼마 전부터 여기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실은 나도 성욕의 문제 때문에 고심하고 있었으면서 한편으로 그 형제의 솔직함이 좀 지나쳤다고까지 생각했지만 오늘날까지 그 일이 매우 인상 깊게 머릿속에 남아 있다. 수년이 지나 영적 성장에 관해 관심을 갖게 되면서 나 자신이 주위 사람들에게 솔직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며 또한 그것은 성장한 자의 특징임을 깨닫게 되었다. 나이와 영적 연륜에 관계없이 자신이 영적으로 갈급하고 황폐한 상태에 있을 때 이를 다른 형제들에게 고백한다는 것은 영적으로 어려운 형제를 도와주는 것만큼이나 중요하고 중요한 일임을 깨닫는다.

 

 사탄은 우리의 약점과 허물에 대해 하나님과 다른 사람과 나 자신 앞에서 솔직해지려는 마음이 생길 때마다 우리 귀에 속삭이기를 “얘! 그런 말했다간 이제까지 경건한 척하던 너의 모든 행위가 위선이었음이 드러날 텐데 두렵지 않느냐?”라고 한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솔직함은 우리의 허물과 약함을 개선하는 첩경이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허물을 고칠 수 있는 마음과 능력을 준다.

 

 또한 솔직함은 까다로운 사람이라도 쉽게 마음을 열고 교제케 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이다.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으면서 들어있는 척 하려는 자아라는 우상을 날마다 내동댕이치고 말씀에 비춰진 솔직한 나의 모양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사탄이 가장 싫어하는 일인 반면에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다(요일 1:9).

 

 

 

 

 

 

 

 

 

      여공의 믿음

 

 어떤 믿음 좋은 처녀가 큰 양말 공장에서 양말을 묶어 포장하는 일에 종사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공장 사장은 신앙이 없는 탓인지, 돈 버는 데만 눈이 어두워가지고, 공원들에게 가당찮은 일을 마구 시키기도 하는 것이었다. "양말을 스무 켤레씩 한 타스로 묶을 때, 한 켤레 쯤은 불량품을 섞으란 말이야!"

 

 이렇게 하는 것이 불의한 일인 줄은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도 쫓겨날 것을 두려워하는 까닭에 공장에선 누구 하나 사장의 지시를 거역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이럴 즈음에 그 믿음 좋은 처녀가 총대를 메기로 작심을 하였다. 곧 바로 사장을 만나서, 그런 지시는 절대로 따를 수 없다고 하였다. 처녀는 곧 해고되었으나, 마음은 편했다. 믿음으로 의로운 일을 했기 때문이다. 얼마 못가 그 회사는 문을 닫고야 말았다.

 

 

 

 

 

 

 

 

 

     용기

 

 마음이 비뚤어진 잡화상 주인이 없었더라면 J.C. 페니는 일개 잡화상 주인이 되었을 뿐 식료품 연쇄점 주인이자 국내 제일의 상인이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짐은 십대의 청년이었을 때 미조리 주 해밀톤에 있는 한 잡화상에서 일을 도왔다. 그는 그 일을 좋아했고. 그 방면에 경력을 쌓고자했다.

 

 어느 날 밤. 그는 집으로 돌아와 가족들에게 그 여우같은 주인에 대해 신나게 험담을 늘어놓았다. 이 상점 주인은 고가의 품질 좋은 커피에 값 싼 커피를 섞어 수입을 올리고 있었다. 그는 저녁 식탁 앞에서 이 이야기를 하면서 마구 웃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이런 교활한 짓에 대해 조금도 재미있어 하지 않으셨다.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에게 묻겠는데. 만일 누군가가 저급 상품을 그에게 최상품의 가격으로 속여서 팔아 넘겼고 그 사실을 그 고객이 알게 된다면. 속여 판 이들을 단지 여우같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넘어가겠니." 짐은 아버지가 자기에 대해 실망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대답했다.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되지는 않겠지요." 짐의 아버지는 짐에게 이야기했다.

 

"내일 아침 상점에 가서 네가 일한 만큼의 돈을 받은 후. 상점 주인에게 더 이상 그를 위해 일하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해라." 해밀톤에서는 일자리가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러나 페니 씨는 그의 아들이 차라리 실직이 될지언정 마음이 비뚤어진 사업가와 함께 일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우연한 방문객의 고백

 

 내 친구는 수년 간 고용주를 위해 기도하며 전도하려고 애써왔다. 얼마 전 그 친구의 고용주에게 예전의 한 직원이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

 

"기억하지 못하시겠지만 저는 오래 전에 이곳에서 일한 적이 있습니다. 하루는 기름을 한 통 훔쳤습니다. 당신이 알지 못하리라고 생각하고 아무 거리낌 없이 훔쳤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 후로 저는 하나님 앞에서 당신에게 그것을 갚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기 기름 값이 있습니다.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짓을 하지 않겠습니다."

 

 이 우연한 방문객은 그리스도를 믿지 않던 고용주에게 성경 공부나 예배나 전도를 위한 말씀이 줄 수 없는 훨씬 큰 영향을 주었다. 당신이 그 무엇이라도 직장에서 슬쩍한 적이 있다면 지금 당장 주인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깨끗이 갚도록 하라.

 

 그 유명한 세리 삭개오는 그리스도를 영접하자마자 곧바로 예전에 잘못했던 사람들을 찾아가 다 갚아주었다. 그는 정말 자신이 저질렀던 나쁜 짓을 다 고치고 주님께 영광 돌리기를 간절히 바라며 이렇게 말했다.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눅 19:8).

 

 무슨 일이든 부정직한 일을 한 적이 있다면 다 갚으라. 정직함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삶 가운데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가장 감동 깊게 이야기해줄 것이다.

 

 

 

 

 

 

 

 

 

     유대인의 자녀 교육

 

 어떤 유대인 부인이 백화점에서 코트를 하나 샀는데 집에 돌아와 보니 코트 주머니 속에 다이아 반지 하나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 반지는 코트 가게 주인이 코트를 정리하다가 실수하여 코트 주머니에 들어간 것이었습니다. 코트를 산 유대인 부인은 다이아 반지를 주인에게 돌려주기 위하여 백화점으로 갑니다. 그때 그는 자기의 아이를 데리고 가 아이가 보는 앞에서 주인에게 그 반지를 돌려줍니다. 주인이 고마워하고 감사해 하면서 부인에게 묻습니다.

 

“어쩌면 당신은 그토록 정직하실 수가 있습니까?” 그러자 부인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나는 유대인입니다. 나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 말을 하고 부인은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이 짧은 행동 속에서 부인은 다이아몬드 반지와는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일들을 몇 가지를 하였습니다. 첫째, 자기 아이에게 정직을 가르쳤습니다. 품위 있고 아름다운 삶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유대인이 섬기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자기 아이에게 유대인과 하나님에 대한 긍지를 갖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정직의 열매

 

 잭슨과 루이스는 언제나 같이 다니며 모조품을 진품이라고 속여 팔아 이익을 많이 남겼습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사람들이 잘 속아주더니 차츰 신용을 잃게 되자 그들의 물건은 도무지 팔리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그들은 공원 벤치에 모여서 더 이상 속지 않는 사람들을 원망하며 신세타령을 하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멋진 속임수를 생각해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말을 믿기까지 한 10년 동안만 절대로 속이지 말고 정직하게 하다가 결국 모두 믿게 되면 그때 크게 한탕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날부터 잭슨과 루이스는 정직한 장사꾼이 되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10년이 되자 그들은 공원 벤치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모습은 10년 전과 전혀 달랐습니다. '정직한 잭슨', '고지식한 장사꾼 루이스'라는 별명까지 얻었습니다.

 

 “이제 나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사람들을 속일 수 있다네.” 잭슨이 말하자 루이스도, “그래, 드디어 크게 한탕 할 때가온 거야. 오늘을 위해 우리는 10년을 참아 견디며 정직한 장사꾼 행세를 한 거야.” 그러나 그들은 서로 장사가 잘 된다는 이야기에 이르자 갑자기 입을 다물었습니다.

 

 이번에도 서로 같은 생각을 한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10년 동안 정직한 체하며 신용을 쌓았다가 나중에 크게 한번 사기를 치려고 했던 거 아냐? 그런데 정직하게 장사를 했더니 오히려 장사가 잘되더라구. 그렇다면 우리 이대로 계속 밀고 나가는 것이 어때?”

 

 이제 그들에게는 더 이상 남을 속일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정직이 뉴스거리인 세대

 

 벤터빌트 대학에 경건한 그리스도인 수학 교수인 매디슨 쎄럿이라는 분이 계셨다고 합니다. 이 매디슨 박사는 학생들에게 시험지를 내줄 때마다 항상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여러분. 나는 오늘 여러분들에게 두 가지 시험을 내는 것입니다. 하나는 수학시험이고 또 하나는 정직이라는 시험입니다. 여러분이 수학시험에 통과하는 것은 여러분에게 일시적 성공을 약속합니다. 그러나 이 정직의 시험에 통과하지 못하면 여러분은 삶에서 진정한 성공을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 수학시험에 실패하고도 훌륭하게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정직의 시험에 실패한다면 보람 있는 삶을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훌륭한 한 그리스도인의 증언이라고 생각됩니다. 최근에 미국 시카고의 신문에 이런 기사가 보도된 적이 있었습니다. 일리노이 주의 어글스비라는 마을에서 세탁소를 경영하는 사람이 고객의 옷을 정리하다가 주머니에서 2만 달러가량의 돈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주인이 옷을 찾으러오지 않자 이 세탁소의 경영주는 그 돈을 경찰에 신고한 것입니다. 신문은 이 사건을 크게 보도했는데 기자는 이 기사의 마지막 줄에 이렇게 썼습니다.

 

“이제는 정직이 뉴스거리가 되어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그것은 그 주인에게 돌려주는 일이 아주 마땅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정직한 것이 오히려 뉴스거리가 되어야 하는 그런 세상에 오늘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만큼 세상이 부정직하게 변했다는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엡.3:25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사람이 된 자의 특성 가운데 하나로 그의 참된 언어생활을 강조합니다.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지켜보시는 하나님

 

 맨하탄 중앙 우체국에서 일하시는 이 집사님이란 분이 계십니다. 어느 날 우편 분류기에서 나온 우편물을 분류하던 중 갑자기 앞쪽에서 함께 일하던 흑인 동료가 경찰의 수갑에 채워져 잡혀갔다고 합니다. 궁금했지만 근무 중이라 물어볼 수도 없었고 그저 지켜만 보았다고 합니다.

 

 며칠 후 우체국장이 이 집사님을 부르시더니 그분에게 모범 직원상을 수여하겠다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상을 받는 기쁨보다는 왜 함께 일하던 동료가 근무 중에 체포를 당해야 했는지를 물어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그 국장은 비디오테이프에 담긴 그 동료의 절도 행위와 성실히 일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곳곳에 많은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는 줄을 몰랐던 그 흑인 동료는 근무 중 그만 돈에 욕심이 난 나머지 자신의 안주머니에 돈 봉투를 숨겼던 것입니다.

 

 이렇듯 안보리라고 믿고 했던 그의 행동, 그러한 행동을 한낱 사람도 지켜보고 있는데 하물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어떠하시겠습니까? 항상 정직하고 남의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마음이 바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평소 하나님 섬기기에 열심을 다했던 이 집사님을 하나님께서는 험한 미국 땅에서 뜻하지 않은 일로 높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려울 때 도와주시고 필요할 때 채워주시는 멋진 하나님을 더 닮고 싶었고, 아직 하나님을 알지 못해 그러한 실수를 한 그 영혼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진실과 정직

 

 독일의 위대한 철학자인 임마누엘 칸트의 아버지 이야기입니다. 한번은 칸트의 아버지가 자기의 고향인 폴란드의 실레시아를 향하여 말을 타고 여행길을 떠났습니다. 깊은 숲길을 통과해 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강도들을 만나 값진 것들을 다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강도들은“네가 가진 것이 이것뿐이냐?”라고 물었습니다. 칸트의 아버지가 “그게 전부요”라고 대답하자 비로소 강도들은 그를 가도록 허락했습니다. 말도 빼앗기고 겁도 나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가다보니 옷깃에서 묵직한 것이 손에 닿았습니다. 그것은 옷 속에다 안전하게 꿰매어 보관한 금덩이였습니다. 칸트의 아버지는 즉시 되돌아 강도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금덩이를 손에 들고 강도들에게 말을 했습니다.

 

“여보시요들! 내가 아까 말한 것은 진실이 아니었소. 내가 무서움에 질려서 미처 생각을 못했던 것이오. 자 여기 내 옷 속에 감추었던 금덩이를 받으시오.”

 

이 말을 들은 강도들은 아무도 그 금덩이를 받으려고 하지를 않았습니다. 오히려 한 강도는 빼앗은 지갑을 다시 내어 놓았습니다.

 

 물론 요사이에도 이런 사람이 있을까 생각해보지만, 하여튼 진실과 정직 앞에서 강도들도 감격하고 회개한 것을 볼 때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뜻 깊은 이야기라고 여겨집니다.

 

 

 

 

 

 

 

 

 

      청렴결백

 

 미국의 16대 대통령이었던 링컨이 대통령으로 당선되기 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 주 의회 의원에 출마한 링컨에게 소속 당으로부터 선거 운동비로 쓰라고 200불을 보내왔다. 그리 큰돈은 아니었지만 지극히 가난했던 링컨에게는 큰돈이었다.

 

 그 후 선거는 끝났고 링컨은 주 의회 의원으로 당선이 되었다. 그런데 링컨은 그가 받았던 200불의 선거 운동비 중에서 199불 25센트를 당본부로 되돌려 보냈다. 당 본부에서는 놀랐다. 그러나 돈과 함께 온 링컨의 편지 내용 앞에서 모두들 숙연해졌다는 것이다.

 

 그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선거 연설 회장 비용은 내가 갚았고 또 여러 유세장을 돌아다니는 데는 말을 탔기 때문에 비용이 들지 않았소. 다만 유지 가운데 한 사람이 목이 마르다는 분이 있어서 사이다를 한잔 사준 것이 75센트 들었어. 그 다음은 아무 비용도 들지 않고 무난히 당선되었소"라는 편지였다.

 

 소크라테스가 죽기 전에 그의 제자인 플라톤에게 한말이 기억난다. "나는 이제 죽음을 향하여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그러나 에스크래피아스에게 닭 한 마리를 빌리고 갚지 못하였구나. 빚을 남기고 가니 부디 잊지 말고 갚아주기 바란다." 깨끗한 가치관과 사화 풍토가 조성되어야 한다.

 

 뒤를 파보아도 떳떳하고 옆을 파보아도 깨끗한, 그래서 링컨처럼 75센트의 명세서를 내놓을 수 있어야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게 되는 것이다.

 

 

 

 

 

 

 

 

 

 

 

     체하는 인간

 

 부한 체하면 오래 가난하게 된다. 없는 사람이 부자인 체하자니 분에 넘치게 입어야 하고 그렇게 먹어야 하고 그렇게 살아야 한다. 그러자니 찾아오는 유행은 꼭 따라야 하고 그러다 보면 낡지 않은 헌 옷이 밀리고 신지 않은 새 신발이 쌓이게 된다. 필요 이상으로 살림을 사들어야 한다. 그러므로 필요 이상으로 지출하여 결국 가정 경제는 성장할 기회를 갖지 못한다. 그러니 부한 체하다가 오랫동안 가난하게 살게 된다. 아는 체하면 오래 무식하게 된다. 아는 것 이상으로 아는 체하자니 바빠서 공부할 시간이 없어진다. 아는 체 해버렸으니 무식한 사람처럼 공부할 체면도 없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가짜 박사 학위는 많은 사람들의 공부할 의욕을 막아버렸다. 500달러 안팎으로 손쉽게 거래되는 학위를 얻은 다음에는. 돌아가서 중단했던 대학 과정이나 고등학교 과정이나 심지어는 중학교 과정을 이수할 수 없다. 그런 사람은 가짜 박사 학위 밑에서 평생 무식하게 살아간다. 모르고도 아는 체하는 것은 남 보기에 가련하고 자신에게는 괴로운 일이다. 믿는 체하면 신앙이 자라지 못한다. 부한 체하는 것이나 아는 체하는 것은 당신의 자유이니 굳이 막을 생각은 없다. 그러나 믿음 없는 사람이 믿는 체하는 것은 영원을 향하여 너무 위험한 일이다. 믿는 체하는 사람에게는 구원이 없다. 주 예수를 믿으라.

 

 감리교의 창시자 요한웨슬리는 성직자가 된 지 11년 후에 바로 믿었다. 당신이 참 믿음에 있는지 자신을 살피라.

 

 

 

 

 

 

 

 

 

     초 안 바른 대리석

 

 옛 로마에서는 대리석 상인들이 손님들의 눈을 속이기 위해 흠이 많은 대리석에 초를 녹여 칠하여 시장에 내놓는 버릇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흠이 없는 대리석은 '초를 바르지 않은 것(sine cera)' 이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이것이 서구 사람들이 편지 끝에 자주 쓰는 sincerely(성심으로)라고 하는 말의 어원이라고 한다.

 

 고금을 막론하고 사람이 이웃을 속이고 거짓을 말하는 죄악은 어디서든지 찾아볼 수 있다고 하지만 오늘날과 같이 사기와 거짓이 빈번한 때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우리 사회의 불신사조야말로 이 사회의 안정과 발전에 암적 존재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문제 해결에서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거짓을 말하는 사람이 먼저 자신의 과오를 인정해야 할 것이다. 오늘의 인간이 문제가 되는 것은 잘못을 많이 범한다는 것보다는 자신이 잘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과오를 알았더라면 그 과오를 고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거짓을 따르는 사람들을 그리스도께서는 '회칠한 무덤'이라고까지 엄격히 단죄하셨다.

 

 

 

 

 

 

 

 

 

     코딜리아의 말

 

 세계적인 심리학자 기너트 박사의 저서 「부모의 자녀」에서 이런 말을 읽은 기억이 난다.

 

"어린이들은 때로 진실을 말하는 경우에도 인정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다시 말해서 진실을 말하면 꾸중을 듣고 반대로 거짓말을 하면 귀여움을 받거나 하는 결론을 갖게 되었을 때 거짓말을 한다."

 

 리어왕의 두 딸은 그녀들의 아버지인 리어 왕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말로는 그 내용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버지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막대한 재산을 분배받는다. 그러나 막내딸 코딜리아는 이렇게 말한다.

 

“저는 아버지의 딸 된 도리에 의해서 사랑할 뿐이지 그보다 더 많이 사랑하지도 않고 그보다 적게도 사랑하지 않습니다. 만약 제가 결혼하게 된다면 아마 저의 사랑의 맹세를 손수 받으실 저의 주인이 될 그분은 저의 사랑과 걱정. 저의 책임의 반을 가져갈 것입니다.”

 

결국 코딜리아는 부드럽고 겉을 꾸미는 기술이 부족하여 리어 왕의 노여움을 사고 쫓겨나게 된다. 그러나 아첨하는 혀를 좋아하던 리어 왕이 두 딸에게 버림받고 미쳐버렸을 때 아버지를 구하려 왔다가 죽음을 당하는 딸은 다름 아닌 코딜리아였다.

 

 거짓을 즐기고 거짓을 가르치던 리어 왕의 비극이 우리들의 가정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면 우리가 자녀 앞에서 이렇게 우리의 입을 다스려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리어 왕의 셋째 딸처럼 어떠한 조건에서도 진실을 말하는 좀 모자란 듯이 보이는 사람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진실이 사랑받는 사회에서만 진실이 자랄 수 있기 때문이다.

 

 

 

 

 

 

 

 

 

     패배속의 승자

 

 1982년 1월 뉴욕 메디슨 스퀘어 가든 에서 벌어진 프로 테니스 토너먼트, 비타스 게룰라이티스와 엘리오트 텔쳐가 준결승전에서 만났다. 승리를 가름하는 제3세트의 8번째 게임에서 게룰라이티스가 매치포인트를 따냈다.

 

 두 강호가 서로 공을 격렬하게 주고받던 중, 게룰라이티스가 친 볼이 네트상단을 건드리며 텔쳐 쪽 코트로 툭 떨어졌다. 그것으로 경기는 끝나는 성 싶었다. 그러나 다음순간 나는 듯이 달려온 텔쳐가 기적적으로 공을 되 받아쳐 게룰라이티스의 머리위로 높이 올렸다. 깜짝 놀란 게룰라이티스가 뒷걸음질 치며 라켓을 휘둘러보았으나 이미 때가 늦었다. 관중들은 열광했다.

 

 텔쳐가 매치포인트에서 위기를 넘긴 것이었다. 그러나 환호 소리가 가라앉은 다음 텔쳐는 방금 공을 넘기는 순간 자기가 네트를 건드렸다고 지적했다.

 

 심판이 보지 못했고 거액의 상금이 걸려 있었지만 텔쳐에겐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경기 규칙을 준수하는 일이었고 그런 신사도야 말로 선수 인격의 기본 이었다. 텔쳐는 게룰라이티스와 악수를 나눈 다음 관중들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곤 바깥으로 걸어 나갔다. 패배 속에서 탄생한 진정한 승자의 모습을 뒤에 남기고 ......

 

 

 

 

 

 

 

 

 

      회색지대

 

 텍사스 주의 휴스톤에서 자라던 어린 시절의 일이었다. 손목시계를 꼭 하나 갖고 싶었다. 실은 이미 동네 상점에 진열되어 있는 잉거솔 상표의 시계를 꼽아놓고 있던 참이었다. 일 달러짜리 시계였는데 가진 돈은 없고 돈을 쉽게 벌 전망도 없을 것 같아서 나는 상점 주인에게 시계를 먼저 가져가고 돈은 조금씩 할부로 갚아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상점 주인은 승낙을 해주었다.

 

 그런데 다음 날 나의 어머니가 우연히 그 상점에 들르게 되었을 때 상점 주인은 무심코 그와 내가 약속한 것을 어머니에게 말해버렸다. 어머니는 그런 걸 용납할 분이 아니었다. 그분은 빈틈없이 정직한 성격의 소유자였고 그러한 그분은 내가 다른 사람의 믿음을 이용한 것이라고 생각하셨다. 그분은 상점 주인에게 시계 값을 지불하고 나를 만나려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오셨다.

 

“네 의도는 정직했다 할지라도 시계 살 돈을 어떻게 구해야 할지 넌 아직 모르잖니. 딱히 부정직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넌 지금 내기를 하고 있는 거야. 월터야. 그런 건 위험한 회색 지대 중의 하나란다. 회색을 주의해라. 회색은 곧 검은색으로 변하기 십상이니까. 알겠니. 월터야.”

 

 그러고 나서 어머니는 내가 시계를 되찾을 만큼 돈을 벌 때 까지 그것을 당신이 보관하셨다. 세상 사람들이 대부분은 정직하고. 또 정직해지기를 원하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러나 정직성은 다른 모든 미덕들처럼 늘 경각심을 지니고 있어야 얻어질 수 있다. 나의 어머니는 이러한 속성을 알고 계셨다. 나를 애매모호함으로부터 멀어지게 도와줬을 당시 나의 어머니는 이런 점에 유념하고 있었다. 더러워졌는지를 알 수 없는 회색지대의 애매모호함에 대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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