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마지막 생애 7일
예수님의 마지막 생애 7일은 예수님의 탄생후 7일간의 여정만큼이나 힘겨운 여정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태어나실 때에도 위험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헤롯대왕이 유대인 가운데 두살 미만의 모든 남자 아기들을 죽여라는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었습니다 마굿간에서 태어난 예수님은 동방박사들의 환영을 받았지만 애굽으로 도피하며 탄생후의 시간은 결코 순탄치 않았습니다 유년기를 벗어나 세례요한으로 부터 세례를 받은 후로 예수께서는 고난과 역경의 연속이었습니다 40일 금식기도기간 중에도 예수님께서는 사탄으로 부터 3가지의 도전과 시련을 이겨내야 했습니다 그 후로도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로 구성된 유대인들의 음모와 계략은 끊임없는 도발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정당성 없는 계략에 의해 예수님의 마지막 생애 7일도 결코 환영받지 못하는 힘든 여정이 계속되었습니다
(1) 주일(고난주간의 시작점, 예루살렘 입성)
① 예루살렘 입성(마태복음21:1~11,마가복음11:1~11,누가복음19:28~44,요한복음12:12~19)
② 예수님을 찾아온 헬라인(요한복음12:20~36)
③ 베다니로 돌아오신 예수님(마가복음11:11,요한복음12:36)
④ 고통속에서 눈물을 흘리시는 예수님(누가복음19:41~44)
종려주일 또는 고난주일이라고 불리우는 주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였습니다(마태복음21:1~11,마가복음11:1~11)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맞은 편 마을에 있는 나귀새끼를 가져오라고 명하셨습니다 이 나귀새끼는 매여 있어서 자유롭게 다닐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아직 아무도 타지 않은 어린 짐승이었습니다 어린양으로 대비되는 어린 나귀는 예수님의 남은 여정이 결코 순탄치 않음을 나타내는 징표이기도 한 것이었습니다 어린 나귀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으나 예수님께서는 주인이 제자들에게 혹여 "왜 남의 나귀를 훔쳐 가느냐"고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고 전하라 하셨고 그리하면 그 주인이 아무 조건없이 즉시 가져가라고 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나귀의 주인과 예수님과의 관계속에는 이러한 신뢰와 소통이 이미 이루어진 것 처럼 보여지는 장면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어린 나귀를 타시고 사람들은 종려나무가지와 자기들의 겉옷을 카페트처럼 길에 깔아 놓으며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환영하였습니다 스가랴9장 9절에는 "시온의 딸은 크게 기뻐하고 예루살렘의 딸은 즐거이 부를 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고 예언하였습니다 이와같이 예루살렘 거민들은 "호산나"(구원하소서), "다윗의 자손"(메시아)을 외치며 예수님의 입성을 환영했지만 그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십자가의 길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바래새인과 사두개인들과의 정면 충돌을 피하며 언제나 우회하였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산헤드린공회의 심장부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예루살렘에는 대 소요가 일어났습니다 이 소요는 로마인과 헤롯당원, 그리고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당황하게 한 예수님의 돌발적인 등장으로 인한 것이었으며, 예수님을 죽이기 위한 비밀회의가 그들의 수뇌부에서 급속하게 진행되었습니다
(2) 월요일(무화과나무에 대한 저주,성전정화)
①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신 예수님(마태복음21:18~19,마가복음11:12~14)
② 성전을 정화하신 예수님(마태복음21:12~13,마가복음11:15~18,누가복음19:45~48)
③ 많은 무리들을 치료하신 예수님(마태복음21:14~16)
④ 베다니로 돌아오신 예수님(마태복음21:17,마가복음11:19)
예수님과 제자들이 이른 아침에 베다니에서 입성할 무렵 배가 많이 고픈 상태였습니다 길 가에 심겨진 무화과 나무를 보던 예수께서 무화과 열매로 시장기를 채우려 할 때, 때 마침 무화과나무에는 잎사귀만 무성할 뿐 아무런 열매가 없었습니다 이에 예수께서는 가지는 무성할 뿐 열매가 없는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잎만 무성한 무화과 나무를 통하여 열매없는 성도들의 나태함과 게으름을 꾸짖으셨습니다 나무가 뿌리를 내려 아무리 무성한 가지를 낼 지라도 열매와 과실이 없는 것은 무용지물이라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성도들의 생애를 통하여 세상적으로는 화려한 이력을 가졌을지라도 주님의 나라를 위하여 아무런 행위와 삶이 없다면 그의 인생 또한 무가치한 것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 가셨을때 성전안에는 매매하는 자들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들은 유대화폐를 환전하거나 비둘기와 희생제물, 그리고 향유와 물품을 매매하는 자들로 원거리에서 오는 성도들의 편리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러한 사람들의 편의주의에 대하여 이해를 하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크게 진노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진열대를 엎으시고 그들을 향하여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 자들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마태복음21:12~13) 예수께서는 성전에 대하여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정의하였습니다 만민이 와서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하는 집이어야 할 성전이 시장통으로 변해버린 것에 대하여 크게 실망하고 분노하셨던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진노는 성전의 머리되시는 대제사장으로서 말씀하신 것이었고, 또한 성전의 전적인 주인이 되시는 소유주로서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성전 정화는 성전이 어떤 곳이어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줌으로서 앞으로의 교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였습니다 즉, 대제사장이시며 성전의 소유주되시는 예수님께서 예배의 회복과 기도의 대각성을 통하여 교회가 진정으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 나갈 것을 명확하게 요구한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성전에서 나오는 맹인과 장애인들을 보시고 지나치지 않으시며, 그들 모두를 치료하여 주셨습니다 또한 성전에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를 외치는 어린아이들을 심하게 꾸짖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을 향하여 어린아이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하게 하신것을 구약에서 읽어본 일이 없는지를 되물어 보았습니다(마태복음21:14~17) 즉, 성전에서 물건을 파는 자들의 악한 상행위 소리는 들리지 않고, 아이들의 지극히 아름다운 찬양소리는 그들의 귓전에서 소음으로 들린다면 그것이 정상적인 신앙인인가 하는 것을 지적한 것이었습니다
(3) 화요일(예루살렘성전의 멸망예언, 가룟유다의 반역, 과부의 두렙돈)
① 무화과 나무의 마름(마태복음21:18~22,마가복음11:20~26)
② 예수의 권위에 대한 도전(마태복음21:23~27,마가복음11:23~27,누가복음20:1~8)
③ 예루살렘 성전 멸망에 대한 예언(마태복음24:1~2,마가복음13:1~2,누가복음21:5~6)
④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표적(마태복음24:3~42,마가복음13:3~33,누가복음21:7~36)
⑤ 유대인들의 공모(마태복음26:1~5,마가복음14:1~2,누가복음22:1~2)
⑥ 가룟 유다의 반역(마태복음26:14~16,마가복음14:10~11,누가복음22:3~6)
⑦ 과부의 두렙돈 헌금(마가복음12:41~44,누가복음12:1~4)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는 말라 시들어 죽고,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는 예수님의 말씀과 권위에 대한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의 도전은 그 수위를 높여 갔습니다 또한 예루살렘 성전의 멸망에 대한 예언과 성취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은 제자들을 비롯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전혀 이해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표적이 곳곳에서 일어나는 가운데 예수를 생포하려는 유대인들의 공모와 가룟유다의 어리석은 반역은 은밀하게 추진되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예수께서는 성도들이 헌금함에 헌금을 하는 것을 목격하였습니다(마가복음12:41~44) 예수께서는 여러 부자들이 헌금함에 많은 헌금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 행렬 가운데 한 과부가 두 렙돈, 즉 한 고드란트를 헌금함에 넣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헌금하는 성도들을 목격한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불러모으고 헌금에 관하여 말씀을 하였습니다 "여러 부자들은 그들의 풍족한 중에서 일부를 헌금하였지만 한 과부가 낸 것 보다 훨씬 더 많은 금액이었다 그러나 한 과부가 드린 두 렙돈은 그 과부가 가진 모든 소유이자 생활비 전부를 헌금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넣은 헌금이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은 것이다"라고 말씀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물질관은 세상이 보고 정하는 기준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세상에서는 바친 헌금액 그 자체로 판단하지만 예수께서는 그가 소유한 것 중에서 얼마를 바친 것인가 하는 마음 중심을 보는 것으로 정한 것이었습니다 즉, 금액 기준으로는 부자들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것을 바쳤지만 마음과 중심으로는 과부가 가장 많은 것을 드렸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는 금액과 정성을 두가지로 분리하여 각각 정한 것이 아니라 오직 마음중심을 기준으로만 정하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수학계산법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재정을 맡고 있었던 가룟 유다는 대제사장들을 만나고 있었습니다 이미 사탄이 들어간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제자의 삶을 중단한 상태였습니다 그가 왜 예수님을 대제사장들에게 팔아 버렸는지 이해 할 수 없는 대목이지만 가룟 유다는 은 30세겔에 그의 스승이자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대제사장과 장로들에게 넘겨 주기로 약정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음모와 계략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지만, 이 일로 인하여 그들과 그들의 후손들의 삶의 결과가 얼마나 참혹한 것인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대재앙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말세의 현상에 대하여 제자들에게 말씀하였습니다 많은 거짓 선지자들의 미혹과 지진과 기근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빈번하게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 하였습니다 민족과 민족은 서로를 향하여 칼을 겨누고, 나라와 나라는 서로에게 활을 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며 이것은 재난의 시작일 뿐이라고 하였습니다 환난속에서 제자들은 죽임을 당하고 믿는자들의 고난은 지리한 장마처럼 이어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가운데 많은 믿음의 형제들이 실족을 당하고 서로를 고발하여 인내는 벽에 부딪히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며 믿음을 잃지 않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약속하였습니다 거짓 그리스도가 나타나 여기 저기 있다고 선동할 지라도 미혹되지 말것을 명령하였습니다 낮과 밤, 무화과 나무와 여름과 겨울을 통하여 마지막 세대를 준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때와 그 시는 정확하게 아는 자가 없으니 오직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만 아신다고 하시며 제자들에게 반드시 승리할 것을 주장하였습니다 이것은 앞으로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겪게 되는 복음의 전투를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같은 말씀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 이후 베드로와 사도바울, 그리고 제자들의 생애를 통하여 가슴깊이 되새기는 승리의 말씀이 되었을 것입니다(마태복음24:1~51)
(4) 수요일(마리아의 향유옥합, 마가복음14:3~9)
4복음서에는 예수님의 수요일 행적에 관하여 정확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수요일이라고 알려진 마리아의 향유옥합을 깨뜨린 사건 또한 그 시기가 불분명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일부의 학자들은 수요일, 마리아가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께 드린 것이 아닌가 하는 견해를 밝히고 있습니다 그것은 목요일의 최후 성찬과 금요일의 십자가가 하나의 카테고리처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의 향유옥합 사건은 이와같이 예수님의 장사를 준비하는 중요한 시작점으로 예수께서는 한 여인의 행적을 성경에 기록하여 대대에 기념하도록 하였습니다
유월절과 무교절을 앞두고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를 생포할 계획으로 고민의 날들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로 인하여 민란이 일어날 것을 두려워 한 나머지 그 시기를 조율하고 있었습니다 이와 때를 같이 하여 예수께서는 베다니지역에 위치한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제자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나사로와 마르다의 친동생인 마리아가 예수님을 찾아 시몬의 집으로 들어 왔습니다 마리아의 손에는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이 쥐어져 있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식사를 하다가 마리아의 등장에 멈칫 하는 그 순간, 마리아는 향유 옥합을 바로 깨뜨리며 예수님의 머리에 모든 것을 쏟아 부어 버렸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마리아의 옥합을 보았을때에는 마리아가 시집을 가려고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당시 유대에는 여자가 시집을 갈 때 매우 값비싼 향유를 준비하여 예물로 가져가는 관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이 없게도 마리아는 그 비싼 향유옥합 전부를 예수님께 부어 버린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자신의 머리로 예수님의 발을 씻어 드렸던 것입니다 마리아의 이와같은 행위는 고대 근동지역에서 종이나 노예가 주인에게 행하며 모든 것을 드리는 의식의 절차와 유사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즉, 마리아는 예수님을 향하여 자신이 주님의 전적인 종이라는 사실을 고백하는 신앙을 선포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영적인 신부로서 그가 오래도록 준비한 향유옥합을 한방울의 남김없이 헌신한 순결한 신부의 모범을 그대로 보여준 중요한 기준이 되었습니다(마가복음14:1~9)
흥미로운 것은 마리아의 향유옥합을 바라보는 두개의 시선입니다 예수께서는 마리아의 행위에 대하여 복음이 전파되는 모든 곳에서 마리아의 행위를 함께 선포하라는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인 가룟유다는 마리아의 향유옥합을 300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을 도왔어야 했다고 오히려 그녀를 책망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칭찬과 가룟유다의 책망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신부로서 신랑되신 예수님의 장사를 준비하는 소중한 역할을 맡게 되었고, 가룟유다는 그와 반대편에 서서 스승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사람들의 중심에 서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5) 목요일(최후의 성만찬, 겟세마네동산의 기도)
① 최후의 성만찬(마태복음26:20~29,마가복음14:17~25,누가복음22:14~23,요한복음13:1~38)
②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는 세족식(누가복음22:24~27,요한복음13:2~17)
③ 베드로의 부인(不認)을 예언하심(마태복음2631~35,마가복음14:27~31,누가복음22:28~34,요한복음13:36~38)
④ 중보기도(요한복음17:1~26)
⑤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마태복음26:36~46,마가복음14:32~42,누가복음22:39~46,요한복음18:1)
목요일에는 많은 일들이 한꺼번에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최후의 성만찬은 2,000년이 지난 지금에도 많은 사람들의 화제로 남아 있는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무교절의 첫날, 유월절 어린양을 잡는 날에 제자들이 음식을 준비할 장소를 찾고 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 가운데 베드로와 요한을 성내로 보내며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 그 집 주인에게 주께서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음식을 먹을 객실을 찾으면 큰 다락방을 보여 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예루살렘 성내로 들어갔을때 모든 일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대로 이루어 졌고, 최후의 만찬준비는 성대하게 진행되었지만 제자들 가운데 그 어느 누구도 예수님의 마지막 행로를 알지 못하였습니다
다락방에는 예수님을 중심으로 좌우측에 12명의 제자가 다 함께 모여 저녁만찬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만찬이 무르익을 무렵 예수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더니 대야에 물을 담아 베드로 부터 차례차례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수건으로 발을 깨끗하게 닦아 주셨습니다 베드로가 송구한 나머지 어쩔줄 몰라하며 발을 내밀기를 주저하자 예수께서는 "내가 너를 씻어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다"고 하시며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자신의 발 뿐만이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달라고 하자 예수께서는 이미 목욕한 자는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다며 매일매일 회개의 삶을 살 것을 명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예수님 자신이 발을 씻어 준 것과 마찬가지로 앞으로는 서로의 발을 씻어 줄 것을 명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이어서 떡과 포도주를 축사하고 제자들에게 주시며, 떡은 내 몸이고 포도주는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라고 하였지만 제자들은 여전히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한채 성찬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세족식과 성찬식을 마친 예수께서는 "내 떡을 먹는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고 전하는 시편 41편9절의 말씀을 인용하시며 성경의 예언대로 성취될 것을 말씀하셨지만 제자들은 한결같이 깨닫지 못하는 우(愚)를 범하고 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만찬의 끝무렵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자신을 팔 것이라는 경고의 말씀하시고 그 사람이 나의 떡 한조각을 받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떡은 재정책임자인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에게로 돌아 갔습니다 떡 조각을 받음과 동시에 가룟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갔고 이를 본 예수께서는 가룟 유다에게 "네가 하고자 하는 일을 속히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와같은 급변한 상황이 제자들의 눈 앞에서 일어났슴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여전히 예수께서 가룟유다에게 명절에 쓸 물건을 사고 남은 돈을 구제하라는 뜻으로 이해를 할 정도로 무지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자들은 예수님의 섬김에 대한 비유를 잘못 해석하여 서로 자기가 예수님의 일등 제자라고 순위를 다투는 경쟁을 하는 어리석음을 반복하였습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꾸짖으시며 서로를 향하여 섬기며 자기를 낮추는 것이 큰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의 이치와 다른 해석을 하시는 예수님의 높고 낮음의 기준은 부와 권력, 학력과 인맥이 아니라 "존경과 섬김"이라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존경하고 진심으로 섬기는 가운데 주님의 평화와 정의가 실현되고 그것이 하늘나라에서 큰 자가 되는 기준점이 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깨우치고 있지만 제자들은 여전히 그들이 답습한 순위경쟁의 논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중요한 메시지 가운데 예수께서는 수제자인 베드로가 오늘 밤 닭 울기전에 세번씩 자기를 부인할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청천벽력같은 말씀을 들은 베드로는 자기 자신은 절대로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장담하며 순교까지 할 각오가 되어 있슴을 고백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조차 하지 못한 베드로는 다혈질의 성향을 가진 어부였습니다 그의 지난 3년간의 동행을 바라보았을때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한다는 것은 사실상 믿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호언장담에도 불구하고 불과 몇시간 후 베드로는 저주까지 하며 예수님을 부인하는 우(愚)를 또다시 범하게 됩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다락방을 나와 습관처럼 감람산으로 올라 갔습니다 기드론 시내 건너편 겟세마네 동산에서 홀로 기도하시던 예수님은 핏방울 같은 땀을 흘리며 힘겨운 기도와 씨름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늘에서 천사가 예수님의 기도를 도울 만큼 십자가 희생의 길은 예수님에게도 모질고 어려운 선택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기도가 피땀으로 얼룩져 있을때 제자들은 중보의 기도를 하고 있었을까요?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하루의 고단한 일정을 견뎌내지 못한 채 잠이 들어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세번씩이나 그들을 꾸짖으며 깨어 기도하라 하였지만 그들은 여전히 잠에 취해 있었고 예수님의 위급한 상황도 전혀 알지 못하였습니다(마태복음26:36~46)
예수님의 간절한 기도가 끝나고 제자들도 잠에서 깨어난 시간, 그 때 예수님이 주신 떡을 가지고 도망쳐 나왔던 가룟유다가 대제사장 일행과 함께 예수를 생포하기 위해 나타났습니다 예수님 한 분을 잡기 위하여 대제사장들은 물론 성전의 경비대장들과 장로들까지 동원되는 그야말로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이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마지막으로 스승이신 예수께 입을 맞추었고, 때를 기다리던 일당들은 일제히 예수님을 포박하였습니다 이에 당황한 베드로가 칼을 꺼내어 대제사장의 종의 오른쪽 귀를 자르며 예수님을 호위하려 하였지만 오히려 예수께서는 베드로를 꾸짖으며 상처난 귀를 만져 치료까지 해 주었습니다 베드로가 한 행위는 예수님을 호위하는 차원에서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자신이 가야할 길을 방해한다며 베드로를 매우 꾸짖으셨습니다 제자들과 베드로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이같은 예수님의 행동은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 만큼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반복적으로 예고하신 말씀을 전혀 깨닫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영적 암흑기를 보내고 있었으며, 이로 인하여 모두가 뿔뿔히 흩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었습니다
두려움에 떨던 제자들이 뿔뿔히 흩어져 버렸을때 베드로는 끌려가는 예수님의 뒤를 멀리서 따르며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뜰 가운데 불을 피우고 함께 앉았을때 베드로도 그들의 무리 가운데 서서 사태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때마침 함께 불을 쬐던 한 여종이 베드로를 보고 "이 사람도 예수와 함께 있던자"라고 지목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두려움에 떨던 베드로는 엉겁결에 "이 여자가 정신이 나갔는가 어디 생사람을 잡으려는가" 하며 적극적으로 부인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일이 무마되는가 싶더니 또 다른 사람이 베드로를 보고 "이 사람은 분명히 그 도당"이라며 다시 지목을 하는 일이 재차 발생하였습니다 베드로가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며 "방금 아니라고 분명히 말했는데 왜 생사람을 잡느냐"고 반문하며 위기를 모면하였습니다 그렇게 한시간쯤 지났을까 또 다른 한 사람이 또 다시 베드로를 지목하여 이르기를 "분명히 이 사람은 갈릴리 사람으로 예수와 함께 지내던 자라"고 확신에 찬 어조로 강경하게 말하자 베드로는 다소 격앙된 어조로 예수님을 저주까지 하며 부인하는 것이었습니다 베드로의 말이 다 끝을 맺기도 전에 어디선가 울리는 닭 울음소리, 그제서야 예수님의 예언을 기억한 베드로는 자리를 떠나 성밖으로 나가서 심히 통곡하며 자신의 비겁함을 크게 뉘우치고 있었습니다
성만찬이 있었던 목요일, 베드로와 제자들에게는 많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제자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발을 씻겨주며 서로를 잘 섬기라는 덕담을 주고 받았습니다 그리고 함께하던 가룟 유다의 예상치 못한 배신과 예수님의 포박이 아주 짧은 순간에 번개와 같이 일어났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예언대로 세번씩이나 부인을 하였고 제자들은 뿔뿔히 흩어졌으며, 잡혀가신 예수님은 로마병정들로 부터 희롱과 채찍과 욕설 등 온갖 수모를 겪어야 했습니다 모든 일은 일사천리로 이어졌고 예수님이 십자가형을 받기까지 불과 24시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6) 금요일(빌라도재판, 골고다언덕, 십자가처형)
① 예수님의 체포(마태복음26:47~56,마가복음14:43~52,누가복음22:47~53,요한복음18:2~12)
② 베드로의 부인(마태복음26:58~75,마가복음14:54~72,누가복음22:54~62,요한복음18:15~27)
③ 가룟 유다의 자살(마태복음27:3~10)
④ 로마병정의 희롱(마태복음27:27~30,마가복음15:16~19)
⑤ 골고다 언덕길(마태복음27:31~34,마가복음15:20~23,누가복음23:26~32)
⑥ 십자가 처형(마태복음27:35~50,마가복음15:24~37,누가복음23:33~46,요한복음19:17~30)
⑦ 백부장의 고백(마태복음27:51~56,마가복음15:38~41,누가복음23:47~49)
⑧ 예수님의 장사(마태복음27:57~61,마가복음15:42~47,누가복음23:50~56,요한복음19:38~42)
가룟 유다와 대제사장에 편승한 성전 경비대장들의 음모에 의해 긴급 체포된 예수 그리스도는 대제사장 가야바의 장인 안나스에게로 인도되었고, 안나스는 다시 가야바 대제사장에게로 예수를 끌고 갔습니다 가야바 대제사장은 예수에 대하여 적대적 감정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 메시아를 자칭하는 그를 반드시 죽여야 한다는 강경한 입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신속한 처리를 요구했던 가야바 대제사장은 지체없이 예수를 로마병정들에게 넘겨주며 빌라도 총독에게 향하였습니다(요한복음18:12~14) 로마 병정들에게 인계된 예수께서는 희롱과 채찍과 욕설 등 온갖 수모를 겪는 고통이 밤새도록 계속되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성만찬을 통하여 제자들에게 많은 것을 나타내어 주셨습니다 자신의 몸과 피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죄는 용서함을 얻고 새생명을 받게 될 것이라는 중요한 선언이었습니다 당시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였지만 예수님의 부활 후 이러한 메세지들은 중요한 기독교의 교리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예언처럼 베드로는 예수님의 주위에서 방황하며 세번씩이나 부인하고 저주까지 하는 아픈 상처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은 30을 받고 대제사장에게 예수님을 판 가룟 유다는 고독한 최후를 맞이하였습니다 그와 협력자였던 대제사장들과 성전 경비대장들도 배신자를 친구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가 3년동안 동거동락했던 제자들의 곁으로도 그는 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 그 어느 곳에서도 그를 반겨 맞아주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빌라도총독의 재판장에 서게 되었을때 가룟 유다는 모든 것이 잘 못 되어 가고 있슴을 직감하였습니다 가룟 유다는 은 30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의 성소에 던져주며 모든 것을 되돌리고 싶었지만 모든 것은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너무 멀리 진행되어 버렸습니다 가룟 유다는 스승의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다는 죄책감에 짓눌리며 그렇게 자살을 결심하였습니다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가룟 유다의 삶은 그가 죽은 뒤에도 언제나 회자되는 이름이 되었습니다(마태복음26:24) 그가 되돌려 준 은 30은 이단들의 성전고에도 입금되지 못하였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의 예언대로 은 30은 토기장이의 밭 값 즉, 피밭을 사는데 소요되었고 나그네들의 묘지처가 되었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성전 경비대장에 의해 포박된 예수께서는 새벽 미명에 빌라도 총독에게 넘겨졌습니다 이미 로마병정들에 의해 많은 채찍에 시달린 예수께서는 몸과 마음이 매우 지쳐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빌라도 총독앞에서 심문 받을때 총독은 예수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고 질문하였습니다 유대를 관장하는 빌라도 총독의 첫번째 질문은 가이사 왕이 유대왕인가? 아니면 예수가 유대왕인가 하는 양자 선택의 질문임과 동시에 정답이 이미 정해져 있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빌라도 총독의 질문에 예수께서는 "내가 유대왕이다"라고 선언한 것이었습니다 이에 격분한 것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었습니다 구약성경을 믿는 유대인들은 스스로를 메시아라고 자칭하는 예수를 그냥 내버려 둘수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빌라도 총독의 아내는 예수를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빌라도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무죄를 변호하며 석방해 줄 것을 요청하였습니다(마태복음27:19) 빌라도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예수를 석방하기엔 너무나 많은 소요가 예고되었고, 일촉즉발의 상황이 유대 전체를 감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처음부터 이같은 상황을 직감한 빌라도는 재판을 거부하고 유대인들 스스로 처리할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러나 피를 묻히고 싶지 않았던 대제사장은 우리에게는 사형을 선고할 권리가 없다는 핑계로 빌라도를 압박한 것이었습니다(요한복음18:31)
빌라도 총독은 예수가 갈릴리 사람이라는 이유를 들어 헤롯에게 보냈습니다 때마침 헤롯대왕은 예루살렘에 거하며 집무를 보고 있었습니다 예수의 소문을 일찍부터 들어온 헤롯대왕은 재판보다 이적과 기사를 행하는 예수 자체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와 대면하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러나 헤롯이 예수를 만났을 때, 예수는 묵묵무답으로 일관하였고 아무런 기적이나 치유를 행하지 않았습니다 헤롯에게 있어서 예수는 소문만 무성할 뿐 그저 초라하기 그지없는 노숙자처럼 보였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를 업신여기며 희롱하고 빛난 옷을 입혀 빌라도에게 다시 보내버렸습니다(누가복음23:6~11) 헤롯은 자신의 눈 앞에 있는 예수가 언젠가 자신이 반드시 죽이려 했던 동방의 별이 머문 자라는 것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였습니다 그렇게 두려워 했던 유대의 왕과 대면하면서도 눈에 보이는 초라한 것에만 집착한 헤롯대왕의 눈빛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전혀 몰랐던 제자들의 무지한 눈빛과도 다를 바 없었습니다
지극히 짧은 순간, 예수를 죽이려는 대제사장들의 계략과 로마 당국자간의 핑퐁게임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습니다 다시 빌라도 총독에게 돌아온 예수 그리스도는 잠간의 휴식도 없이 재판을 받아야 했습니다 헤롯대왕은 물론 예수 그리스도로 부터 아무런 죄도 발견하지 못한 빌라도의 고민은 점점 더 깊어져 갔습니다 빌라도는 태형으로 성난 민중들을 달래 보려고 노력하였지만 극에 달한 그들을 더 자극하는 빌미밖에 되지 않았습니다(누가복음23:15~19) 빌라도는 예수에게 다시 같은 질문을 반복하였습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빌라도의 질문에 예수님의 대답은 한결같았습니다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니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요한복음18:33~38)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던 빌라도 총독은 진리와 경전에 관한 유대의 종교문제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로마법으로는 정죄할 수 없는 그들의 문제에 까지 간섭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빌라도 총독은 예수를 무죄석방하고자 하였습니다(요한복음18:38~39) 유대인들의 민란을 염려한 빌라도 총독은 유대민족 유월절 특사를 활용하여 타협점을 찾고자 하였습니다 유월절을 기념하여 범죄자 가운데 한사람을 사면하는 관례가 있어서 빌라도는 이 기회를 통하여 예수를 석방하는 절차를 밟고자 했습니다 그 대상자는 두사람이었습니다 한사람은 예루살렘의 유력한 빈민운동가이자 살인강도인 바라바였으며, 유대지도자들과도 매우 불편한 관계에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유대인들의 선택은 어이없게도 예수그리스도가 아닌 살인강도인 바라바였습니다 빌라도의 입지는 약화되었고 예수를 구제할 방법은 갈수록 묘연해졌습니다 로마군인들이 예수에게 가시나무로 관을 엮어 머리에 씌우고 자색옷을 입혀 조롱하며 폭력을 가하였습니다 머리는 가시관으로 인하여 피가 넘쳐 흘렀습니다 예수님의 고통은 갈수록 심해져 갔고 몸과 마음은 움직이기 조차 어려울 정도로 초췌해 있었습니다
빌라도는 두번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무죄를 증명하였습니다 가시관을 쓴 예수를 유대인들에게 보여주며 이 정도 선에서 마무리할 것을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소요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의 선동에 의해 유대 군중들은 더욱 더 격앙된 목소리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빌라도 총독은 유대인들에게 예수를 넘겨 줄 것이니 너희가 너희 법정에 세워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요구하며 그의 무죄를 계속해서 주장하였습니다(요한복음19:4~6) 빌라도는 군중들의 거센 저항에 부딪혀 더이상 공평한 재판을 수행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를 관정에 데려다가 타협점을 찾을 것을 요구하였으나 예수님은 나를 네게 넘겨준 자의 죄는 더 크고, 나를 해할 권한은 위에서 주시는 것이지 네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타협을 거부하였습니다(요한복음19:7~11)
빌라도는 예수를 석방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며 군중을 진정시키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군중들이 머뭇거리며 주저하는 빌라도 총독을 협박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가이사 황제가 있슴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왕이라고 주장하는 자를 석방하면 빌라도 총독 또한 죄를 면키 어렵다고 급박한 것이었습니다 더이상 버티기 어렵다고 생각한 빌라도 총독은 관정에서 손을 씻고 나왔습니다 자신의 무죄함을 증명하고 이 재판의 불법성을 선포함으로서 모든 일에서 면죄부를 얻고자 하는 자가당착이었습니다 결국, 빌라도 총독은 유대인들의 급박에 굴복하며 가바다 재판정에 앉아 유월절 특사로는 바라바를 석방하고,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 처형을 선고하였습니다(요한복음19:12~16)
당시 십자가형은 범죄자의 처벌에 관한 가장 무거운 형벌로서 살인죄, 국가범죄 등 그 사안이 중대한 경우에 시행하던 법규정이었습니다 십자가형의 시행과정은 먼저 죄수를 채찍질하여 빈사 상태에 이르게 한 후 자신이 매달리게 될 십자가를 스스로 지고 형장까지 운반을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형장에 이르면 죄수의 옷을 강제로 벗기고 죄명을 기록한 죄패를 머리위에 부착을 한 다음 십자가에 매달아 집행을 함으로서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본보기가 되게 하고 동일한 죄를 반복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와같은 잔인한 처벌규정은 중대한 범죄에 대한 재발을 방지하고 제국의 통치를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작용하였습니다
빌라도 총독에 의해 십자가형을 선고받은 예수 그리스도는 로마병정과 유대군중들에 의해 골고다 언덕길로 향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의 격한 감정에 고조된 총독의 군병들은 예수를 관정안으로 끌고 들어가 그의 옷을 벗긴 후 홍포를 입혔습니다 그리고 가시관을 머리에 눌러 씌우고, 갈대를 오른손에 쥐어 주며 예수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며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 지어다"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의 얼굴에 침을 뱉고 갈대를 다시 빼앗아 그의 머리를 내리 쳤습니다 도를 넘은 로마병정들은 그의 홍포를 다시 벗기고 그의 옷을 입힌 후 골고다 언덕길로 끌고 나아갔습니다
유대군중들은 격한 감정으로 온갖 욕설을 하며 십자가를 지고가는 예수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로마 병정들은 유리채찍으로 예수의 살점을 뜯어내며 골고다 언덕으로 발길을 재촉하였습니다 예수를 따르는 무리 가운데에는 그의 모친인 마리아와 이모,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 야고보와 요셉의 모친 마리아와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들, 그리고 살로매와 갈릴리에 거주하던 여성도들이 눈물로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상할대로 상해 있었고 지칠대로 지쳐 있어서 십자가를 지고 가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한걸음 한걸음 기울어져 있는 언덕을 오르는 예수님의 발걸음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였습니다 눌러 쓴 가시관으로 인하여 머리와 얼굴은 피범벅이 되어 있고 온 몸에도 채찍에 맞아 피가 흐르고 있어서 이대로 가다간 십자가 형틀에도 오르기 전에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결국 로마병정들은 구경꾼처럼 왔다가 머뭇거리던 구레네 사람 시몬이라는 사람에게 예수님의 십자가를 강제로 지고가게 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고 십자가를 지고 가면서 많은 불평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우연한 기회에 지게 되었던 하나의 십자가로 인해 그의 일생이 바뀌는 전환기를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1,000미터도 채 되지 않는 골고다 언덕은 예수님의 일생에서 가장 긴 거리가 되었습니다 그는 수시로 넘어지며 피를 흘려야만 했습니다 갈증은 그의 목과 입술을 메마르게 하였습니다 중동의 태양은 예수님의 몸을 더욱 더 지치게 하며 힘든 고통을 이어가게 하였습니다 빌라도마져 무죄하다고 말한 예수 그리스도, 오직 죄인들의 구원을 위해 이 땅에 오신 성자 예수님이며 메시아는, 그를 기다리던 유대인들에 의해 목숨을 잃어야 하는 안타까운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가장 신뢰하였던 가룟 유다에 의해 포박을 당하고 자신의 수제자였던 베드로로 부터 저주까지 받아야 하는 깊은 상처를 안고 그렇게 골고다 언덕길을 올라 가야만 했습니다
해골이라고 불리는 골고다 언덕, 로마 병정들은 쓸개를 탄 포도주를 예수께 강제로 먹이려 하였으나 예수께서 마시지 아니하였습니다 로마병정들은 예수님의 옷을 벗기고 십자가에 못을 박은 후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어 가지는 일탈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머리위에는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패가 붙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린 골고다 언덕위에는 예수님 외에도 두 명의 범죄자가 함께 매달려 있었습니다 그들 또한 예수처럼 무죄한 자가 아니라 범법행위가 참으로 중대한 범죄자들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한 편 강도는 예수를 바라보며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며 조롱하고 욕설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편에 매달린 한 강도는 그 사람을 꾸짖으며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간절히 부르짖었습니다 이름모를 한 강도의 마지막 간증을 들은 예수께서는 그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약속하며 마지막까지 구원의 사명을 잃지 않았습니다(누가복음23:39~43)
우편에 서 있던 한 강도는 누구일까요? 그가 누구 이길래 이같이 십자가에 매달릴 만큼 대죄를 지었으며, 또한 누구 이길래 예수께서 죄 없으신 것과 천국이 있는 것과 천국의 주인이 되시며 유대의 왕이라는 사실을 믿고 고백하게 되었다는 것인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으며 예수와 함께 골고다 언덕을 올라온 죄수였습니다(누가복음23:32) 그리고 자기와 마찬가지로 함께 매달려 있는 동일한 죄수로서 예수를 바라볼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만왕의 왕으로 보았고, 뿐만 아니라 천국의 왕으로도 보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을 전파하는 예수님의 영향력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았고, 마지막 한 사람에게 까지 구원의 손길을 뻗어 결국은 살려내시는 놀라운 기적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한 강도로 인하여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께서는 일곱번의 기도를 올려 드렸습니다 흔히 십자가의 가상칠언이라는 것입니다 ① "아버지여 저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누가복음23:33) 십자가 밑에 서서 자신을 조롱하며 욕설을 일삼는 로마군인과 군중들을 향하여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마지막 모습은 사랑과 진리, 그 자체였습니다 ②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누가복음23:42~43) 인생의 마지막 끝에 서 있는 죄인의 고백까지도 용서하시는 은혜와 사랑은 이제 새로운 희망과 비전으로 이어져 갔습니다 ③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보라 네 어머니라"(요한복음19:26~27) 아들로서의 마지막 모습에서 슬픔과 고통에 빠져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어머니를 위로하는 사랑을 바라봅니다 또한 서로의 어머니를 자기의 어머니로 돌보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희생을 가슴깊이 되새기게 합니다 ④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마태복음27:45~46) 완전하신 인간, 예수님으로서의 마지막 절규이자 구원과 영생을 취하신 성자의 거룩한 음성입니다 군중 가운데 어떤 사람은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엘리야가 와서 그를 구원하는가 보자하며 그 의미조차도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⑤ "내가 목마르다"(요한복음19:28) 모든 것을 희생하시고 마지막 남은 피 한방울까지 다 쏟아내신 예수님의 마지막 순간입니다 ⑥ "다 이루었다"(요한복음19:30)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인 죄인에 대한 구원의 사역을 완성하신 예수님의 승리의 표현이었습니다 ⑦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누가복음23:46) 성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성경을 이루었고, 그 결과로 모든 구원의 사역은 완전하게 성취하셨습니다 이제 성자 하나님으로서 안식에 들어가며 재림의 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성 금요일 제 6시경, 해는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 9시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이 때를 같이 하여 예루살렘 성소의 휘장 중앙이 양쪽으로 찢어지며 갈라지는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또한, 땅이 진동하여 바위가 깨어지며 무덤문이 열리는 기상이변은 한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운명하셨습니다 그의 운명과 기상이변은 구약의 예언과 같이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모든 현상들이 구약성경에 나타난 바와 같이 드러났슴에도 불구하고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유대인들은 전혀 깨닫거나 알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무지함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였는지 그들 가운데 깨닫고 애통해 하는자가 있었다면 그들의 후손의 삶은 크게 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어떤 회개와 조치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마져도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제 9시가 지난 후, 정상적으로 날이 저물었을 무렵 산헤드린공회원 중 한사람이었던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라는 사람이 빌라도 총독을 찾았습니다 그는 본래 존경받는 공회원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이며, 예수님의 많은 제자들 가운데 한사람이었지만 로마와 유대군중들의 강경한 어조에 짓눌려 자신의 신앙을 숨기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요셉은 빌라도 총독에게 예수님의 시체를 누군가는 치워야 하니 그 시체를 자기에게 맡겨달라고 요청하였고, 빌라도 총독은 산헤드린 공회원인 요셉이 가장 중립적인 위치에 있다고 판단하고 백부장에게 예수님의 생사를 확인한 후 그에게 시체를 내어 주었습니다 요셉이 빌라도로 부터 예수님의 시체를 인계받았을 때, 니고데모가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리트라 정도 가지고 요셉에게로 왔습니다 유대인의 장례 절차대로 니고데모가 가져온 향품과 함께 깨끗한 세마포로 싸서 바위속에 판 자기 자신을 위한 새 무덤에 예수님을 안치하고 큰 바위를 굴려 무덤앞을 막아 놓았습니다(마태복음27:57~60,요한복음19:38~40) 예수님을 안치한 요셉 소유의 무덤은 십자가에 못박힌 동산에 위치하며, 사람을 전혀 장사한 일이 없는 새로운 무덤이었습니다 이것을 지켜본 막달라 마리아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갈리리에서 예수님과 함께 동행한 여자들이 무덤을 향하여 앉아 예수님의 무덤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누가복음23:55)
(7) 토요일(아리마대 사람 요셉의 무덤에 묻히신 예수님, 마태복음27:62~66)
예수님이 죽은 후,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함께 빌라도 총독관저를 찾아가 무덤과 무덤 주변에 로마군인들의 경비를 세우고 경계를 강화할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생전에 내가 죽은 후 사흘만에 부활할 것이라고 하신 말씀을 듣고 혹여 제자들이 시체를 훔쳐가 부활하였다고 거짓선전할 것이라는 추측 때문이었습니다 빌라도가 그들의 요구에 부응하여 경비병을 세울것을 지시하였고, 대제사장들은 지체없이 무덤가에 경비를 강화하고 바위를 인봉하여 무덤을 굳게 지키게 하였습니다(마태복음27:62~66)
때를 같이하여 갈릴리 여성도들이 무덤과 시체를 어떻게 두었는지 확인을 하고 돌아가 향품과 향유를 준비하였습니다(누가복음23:54~56) 막달라 마리아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는 슬픔에 잠겨 무덤을 떠나지 못하고, 무덤가에 앉아 무덤입구를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습니다 신앙의 여인들이 예수님의 주변에서 떠나지 못하고 있을때 예수님의 제자들은 괴로움과 낙심속에 뿔뿔히 흩어져 자기의 생활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8) 주일(예수님의 부활,마태복음28:1~20,마가복음16:1~17,누가복음24:1~53)
주일 새벽 첫시간에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와 살로메와 요안나가 무덤을 보려고 갔을때 무덤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큰 지진이 일어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 부터 내려와 인봉된 무덤가의 돌을 굴려내고 그 위에 앉아 있는데 그 형상이 번개와 같고 그 옷은 눈과 같이 희거늘 무덤을 지키던 모든 자들이 죽은자와 같이 떨고 있었습니다(마태복음28:1~5,마가복음16:1~5) 여자들은 자신들이 준비한 향품과 향유를 가지고 무덤을 찾았던 것이었습니다 여자들이 찾아간 예수님의 무덤과 그 주변의 상황은 불과 몇시간만에 완전히 달라져 있었습니다 무덤문을 봉인하던 바위는 어디론가 굴러가 옮겨져 있고, 무덤안에 있어야 할 예수님의 시신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여자들이 근심과 염려로 매우 당황하고 있을때 두 천사가 나타나 예수님의 부활소식을 전하였습니다 천사들이 전한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 생전에 갈릴리에서 늘 전하던 복음이었지만 여자들은 그것을 실감하지 못했고 또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와 갈릴리의 여성도들은 무덤에서 돌아가던 길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기적중에 기적과 같은 이 모든 되어진 일들을 열한 사도와 다른 모든 이들에게 전하였습니다 예수께서 자신들에게 평안을 기원하며 제자들을 만나 갈릴리로 가라고 명하셨다는 첫번째 소식을 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도들은 여자들의 말을 허탄한 것으로 여기고 믿으려 하지 않았고,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으로 달려가 세마포를 확인하고 매우 놀란 표정으로 집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무덤을 지키던 경비병들도 놀란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경비병 가운데 몇명이 성으로 들어가 되어진 기이한 일들을 대제사장들에게 전하였습니다 그러나 대제사장들은 경비병들의 말을 신뢰하기 보다 이들을 금전으로 매수하여 입단속을 시키고, 더 나아가 제자들이 밤에 몰래와서 예수의 시체를 도적질해 갔다고 거짓증언할 것을 지시하였습니다 이렇게 되어진 거짓말은 유대인들 가운데 널리 퍼지며 세월이 흘러도 진실이 규명되지 않는 패망으로 치달아 갔습니다(마태복음28:11~15)
열한 제자들이 여자들이 전한 말에 대한 의구심을 가진채 갈릴리로 나아가 예수께서 지시하신 산에 이르렀을때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하고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지금까지 전혀 경험하지 못한 죽은자의 부활에 대하여 믿지 못하는 제자들도 일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모두 믿게 되었고, 예수님이 지시하는 지상명령을 수행하는 제자의 삶으로 복귀하였습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치고 지키게 하라고 명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약속하시며 제자들을 축복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약속대로 부활하셨고 그것을 성취하셨습니다 구약의 성소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모든 것이 완성되었고 이제 새로운 평화와 영생의 길이 주어졌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 영원히 죽을 수 밖에 없는 결과를 초래하였지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의 길이 주어졌고 그것은 우리의 죄를 대신한 십자가의 길이었습니다 십자가 대속으로 모든 것이 종료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부활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우리의 모든 죄에 대하여 사하심이었으며,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 모든 생명에 대한 구원이자 영생의 길이었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복음입니다 예수님의 부활도 복음입니다 오직 구원의 복음을 위하여 예수님은 기꺼이 낮아지셨고 기꺼이 죽으셨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끝없는 사랑이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않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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