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렌 켈러 3중 고통, 앤 설리번
?생애
헬렌 켈러(Helen Keller, 1880.6.27~1968.6. 1)
헬런 애덤스 켈러(Helen Adams Keller, 1880년 6월 27일 ~ 1968년 6월 1일)
켈러는 1880 년 6 월 27 일 앨라배마 주 투스 쿰 비아에서 태어났습니다. 생후 19 개월이 되었을 때 알 수 없는 질병으로 청력과 시력을 잃었습니다. 켈러 가족은 남북 전쟁 동안 부의 일부를 잃어 기 때문에 상당히 겸손하게 살았습니다 (헬렌의 아버지 아서 H. 켈러는 남부 군에서 복무했습니다).
켈러가 6 살이었을 때, 그녀의 부모는 메릴랜드 대학교의 눈과 귀 질환 교수인 Julian John Chisolm에게 데려갔습니다. 유명한 의사는 켈러에게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Alexander Graham Bell)을 추천했습니다. Bell의 아내는 청각 장애인이었기 때문에 발명가는 청각 장애인을 위한 학교 (그리고 그들의 교사)를 설립하고 청각 장애인을 가르치는 일에 참여했습니다. Bell의 제안에 따라 Keller의 부모는 그녀를 Perkins Institution for the Blind에 등록하고 이를 통해 그녀의 선생님인 Anne Sullivan을 만났습니다. Alexander Graham Bell은 Sullivan을 멘토 했으며 1922 년 사망할 때까지 그녀와 Keller 모두와 친구였습니다.
Helen Keller and Alexander Graham Bell
눈이 보이지 않고, 귀도 들리지 않고, 말도 하지 못하는 3중의 고통을 지게 된 헬렌. 그녀의 부모는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의 권유로 보스턴에 있는 퍼킨스 맹아학교에서 앤 설리번을 헬렌의 가정교사로 모셔온다.
설리번 선생님의 노력으로 헬렌은 하버드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게까지 되었다.
전 생애 맹, 농아를 위해서 헌신, 희망과 복음을 전해 주었다. 눈은 보이지 않고 귀도 들리지 않고 말도 하지 못하는 삼중의 고통을 극복하고, 사회 복지를 위해서 생애를 바친 헬렌 켈러. 그녀는 그 때문에 '기적의 사람'이라고 불린다. 헬렌 켈러는 생후 1년 반 동안은 발육이 좋은 아이였다. 그러나 생후 19개월 때 중병에 걸려서 시력, 청력과 언어 발색력을 상실해 버린 것이다.
설리번(Johanna Mansfield Sullivan Macy) 또한 불행한 과거를 지니고 있는 여성이었다. 10살 때 남동생과 함께 고아원에 보내져서 거기서 학대와 고통의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성장했던 것이다. 불결하고 빈약한 환경 가운데서 남동생은 죽어갔다. 그녀 또한 눈병에 걸려 실명 직전까지 간 적도 있었다. 그 후 파킨슨 맹학교에 교사를 하고 있던 무렵에 헬렌 켈러의 가정교사 이야기가 있었던 것이다. 아직 겨우 20세가 된 설리번은 인내심이 강하고 애정이 깊고 그리고 신앙심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처음으로 본 헬렌 켈러는 이미 6세가 되었는데도 아무런 교육이 되어 있지 않았고 손으로 음식을 먹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닥치는 대로 주위의 물건을 집어던지는 야수 그 자체였다.
그날부터 설리번과 삼중고의 소녀와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얼굴을 씻는 것도, 머리카락을 빗는 것도, 나이프와 포크로 식사를 하는 것도 헬렌과 격투를 하면서 가르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단지 울어대는 것과 소리를 지르는 것으로 의사를 표현해왔던 헬렌은 엄격한 교육에 전신으로 반항했다. 설리번은 신중하고 끈기 있게 단 하나 남아있는 인식의 창구인 촉각을 통해서 암흑에 갇힌 영혼을 향해서 자극을 준 것이다. 그때까지 갇혀있던 헬렌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열리기 시작한 것은 지화법에 의해서 '인형' 이란 말을 헬렌이 알게 된 때였다.
헬렌의 기억력과 상상력은 다행스럽게도 무척 강했다. 처음에는 신기한 것 같았지만 반복해서 가르치는 중에 '인형'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자, 마치 둑이 터진 것처럼 헬렌의 지식욕은 넘쳐 났던 것이다. 아는 기쁨, 그것이 암흑의 세계로부터 세상 속으로 끌어내었던 것이다.
헬렌의 잠자고 있던 마음은 눈뜨기 시작하고 폭발적인 격렬함으로 언어를 흡수했던 것이다.
모든 사물에 이름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헬렌의 놀람은 그녀를 육체적으로 쇠약하게 할 정도였다고 한다. 1900년 20세가 된 헬렌은 하버드 대학교
(Harvard University) 래드클리프 칼리지(Radcliffe College)에 입학했다. 그때에 그녀는 "나는 이제 벙어리가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지화법이나 점자, 발성을 배워 정상인 이상의 지식을 얻어서 대학에 입학한 그녀의 그것이 제일 첫마디였다. 그리고 4년 후 세계 최초의 대학 교육을 받은 맹, 농아로서 그녀는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한 것이다. 이 기적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경탄과 찬사를 받았다. 그 해 센트 힐 박람회에서 헬렌 켈러의 날이 제정되어 헬렌은 처음으로 강연을 했다. 그 후 그녀는 미국 본토는 물론 해외에서도 강연 여행에 나서 맹인 및 신체장애자에 대한 세상의 이해와 협력을 구하고 사람들에게 커다란 희망과 복음을 심어주었다.
?업적
'빛의 천사' 헬렌 켈러는 장님, 벙어리, 귀머거리의 3중 장애자이면서도 결코 절망하지도, 삶을 포기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왕성한 의욕과 꿋꿋한 의지로 새로운 삶의 길을 찾아 계속 노력하였다. 그녀는 대학 교육을 받고 인문학 및 법학박사의 칭호를 받았다. 또, 평생을 맹인 복지사업에 헌신해, 가는 곳마다 신체장애자들로부터 '파랑새의 방문'이라고 크게 환영을 받았으며, 모든 사람들로부터 '세 가지의 고통을 이긴 성녀'로 존경을 받았다.
☆ 장애인에 대한 사랑의 실천 ☆
* 신문이나 잡지에 투고하여 모금한 기금을 학교나 도서관 건립에 기부함.
* 장애인 시설 건립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자신의 일생을 다룬 영화 '구제'에 출연함
* 활발한 저술활동과 순회강연을 통해 모금한 돈으로 장애인을 위한 도서관과 병원을 건립함.
?일화
Helen Keller and Johanna Mansfield Sullivan Macy
말하지도,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엄청난 장애를 딛고 일어선 위대한 여성 헬렌 켈러가 희망의 빛을 어떻게 발견했는지에 대한 일화가 있습니다. 어느 날 헬렌은 정원에서 꽃 한 송이를 꺾어서 설리번 선생에게 드렸습니다. 그때 설리번은 헬렌의 손바닥에 글을 썼습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I love you.) 헬렌은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사랑이란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다른 일화
놀라운 자신의 변화의 과정을 그려낸 실제 이여 야기는 1903년 헬렌 켈러의 자서전인"나의 인생 이야기"(The Story of My Life)
그녀는 생후 19개월에 원인 모를 고열을 앓고 난 후 귀가 완전히 먹고 눈이 보이지 않게 된 이야기로 시작이 되는데 그녀는 그 당시 자신의 모습을 존재하지 않는 세계 속에 사는 유령이라는 말로 표현을 했다고 해요.
듣지도, 보지도, 말하지도 못했던 그녀는 자신의 의사를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싶어 아주 초보적인 수준의 수화법을 생각해냈지만
어느 것 하나도 효과가 없어서 큰 좌절감을 느꼈고, 그로 인해 난폭한 아이가 되었다고 해요.
부모가 그 난폭함을 그대로 감당해야 했는데 결국 통제가 되지 않는 헬렌을 위해서
도움의 손길을 찾아 나서게 되었다고 합니다.
1886년 헬렌 켈러의 아버지는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 박사를 만나기 위해 워싱턴에 방문했는데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Alexander Graham Bell)의 아내는 청각 장애인이었기 태문에 청각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해 전화를 발명하게 된 장본인이었다고 해요.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Alexander Graham Bell)의 제안에 따라서 켈러 부부는 보스턴의 퍼킨스 재단에 딸을 가르칠 선생님을 구해달라는 편지를 보내게 되었다고 하네요. 얼마 후 앤 설리번이 앨라배마 주 퍼스컴 비아에 있는 헬렌의 집 현관에 나타났을 때 켈러는 설리번에게 달려들어 비명을 지르면서 주먹을 휘둘렀다 하는데요. 하지만 설리번 선생님은 당황하지 않고 재빨리 아이를 품에 안아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위층으로 올라가 첫 수업을 시작했다고 해요.
설리번의 따뜻한 태도와 인내심 덕분에 일곱 살이었던 그녀는 단 몇 주 만에 안정감을 찾아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설리번 선생은 그녀에게 수화 문자를 가르쳐 주었고 손가락 신호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해 주었으며 모든 사물에는 이름이 있다는 것도 알려주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것들을 이해하기 시작하자 헬렌은 놀라운 속도로 나아지기 시작했다고 하는데요.
3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녀는 수화로 의사소통을 하는 방법과 점자 법을 읽고 특수 타자기를 사용하는 방법을 배웠다고 합니다. 거기에 호레이스 만 청각장애인 학교에서 상대방의 혀와 입술 위치를 손가락의 느낌으로 배우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말하는 법을 배운 헬렌 켈러는 설리번에게 선생님이라고 의사 표현을 할 수 있었으며 나는 이제 바보가 아니에요라는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되는 등 그녀의 발전은 끝을 예측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하네요.
11살의 나이에 다른 장애 어린이를 위한 교육기금을 마련하기 시작하였고 십 대 후반에는 불어와 독일어, 라틴어, 그리고 그리스어까지 완벽하게 읽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스무 살이 되면서 우아한 자태에 자신감이 넘치는 숙녀로 성장한 그녀는 래드클리프 대학에 입학을 하였고, 그녀가 존경하는 친구 마크 트웨인이 조직한 기금에서 수업료를 지원받을 수 있었다고 해요.
설리번 선생은 수업 내내 그녀 옆을 지키며 수화를 통해 수업내용을 전달해 주었다고 하네요. 1904년 그녀는 우등생으로 학교를 졸업했으며, 곧 세계적인 유명 인사이면서 세계 곳곳에 있는 장애인들을 위한 역할 모델이 되어
이때부터 그녀는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노동자들의 주장에 관심이 많던 존 메이시와 결혼했다 합니다.
그녀는 미국 맹인 협회를 위한 기금 모금에 주력을 했고, 청각장애인을 정신병원에 수용하는 혐오스러운 관례를 철폐하는 일에 앞장섰으며 1936년 사랑했던 선생님인 설리번이 세상을 떠나게 되자 헬렌 켈러는 친구 폴리 톰슨과 같이 장애인에 대한 무시와 학대를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을 계속했다고 하네요.
?아름다운 삶을 산 헬렌 켈러의 명언
독재는 신념의 힘을 꺾지 못한다.
안전이란 대개 미신이다. 그것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인생은 과감한 모험이던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다.
지식은 사랑이요, 빛이며, 통찰력이다.
교육이 거둘 수 있는 최고의 성과는 관용이다.
희망은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만져질 수 없는 것을 느끼고, 불가능한 것을 이룬다.
내가 가진 감각들이 아니라, 그것으로 하는 무엇인가가 나의 세계다.
당신의 약점들을 직면하고 인정하라. 하지만 그것이 당신을 지배하게 하지 말라. 그것으로 하여금 당신에게 참을성, 상냥함, 통찰력을 가르치도록 하라.
절대로 고개를 떨구지 말라. 고개를 치켜들고 세상을 똑바로 바라보라.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하지만, 그것을 극복하는 사람들로도 가득하다.
자기 연민은 최악의 적이다. 만약 우리가 그것에 굴복하면, 이 세상에서 선한 일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낙관주의는 성공으로 인도하는 믿음이다. 희망과 자신감이 없으면 아무것도 이루어질 수 없다.
눈이 먼 것보다 더 안 좋은 게 있을까? 있다. 볼 수는 있지만 비전이 없는 사람.
얼굴이 계속 햇빛을 향하도록 하라. 그러면 당신의 그림자를 볼 수 없다.
인성은 쉽고 조용하게 계발될 수 없다. 시련과 고통의 경험을 통해서만 영혼은 강해지고, 야망이 고무되고, 성공이 이뤄질 수 있다.
나는 온 세상을 나의 조국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모든 전쟁은 나에게 가족 불화의 공포를 준다.
과학이 거의 모든 악의 치료 약을 찾아내긴 했지만, 그중 최악에 대한 약은 찾지 못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무관심.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들은 보이거나 만져질 수 없다. 단지 가슴으로만 느낄 수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때, 우리 혹은 타인의 삶에 어떤 기적이 나타나는지 아무도 모른다.
나는 한 인간에 불과하지만, 오롯한 인간이다. 나는 모든 것을 할 수는 없지만, 무엇인가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기꺼이 하겠다.
행복의 한쪽 문이 닫힐 때, 다른 한쪽 문은 열린다. 하지만 우리는 그 닫힌 문만 오래 바라보느라 우리에게 열린 다른 문은 못 보곤 한다.
세상은 영웅들의 거대한 추진력에 의해서 만이 아니라, 성실한 일꾼들의 조그만 추진력이 합쳐져서도 움직인다.
어떤 비관론자도 별의 비밀을 발견하거나, 미지의 섬으로 항해하거나, 인간 정신의 새로운 낙원을 연 적이 없다.
이 세상에 기쁜 일만 있다면 용기도 인내도 배울 수 없을 것이다.
?앤 설리번(Anne Sullivan) 켈러의 선생
Johanna Mansfield Sullivan Macy, 1866년 4월 14일 ~ 1936년 10월 20Johanna Mansfield Sullivan Macy, 1866년 4월 14일 ~ 1936년 10월 20일)
조앤 나 맨스필드 설리번 메이시 (Johanna Mansfield Sullivan Macy, 1866~1936)
헬렌 켈러는 좋은 선생님 앤 설리번을 만나 감동적인 인생을 살았고, 앤 설리번은 좋은 제자 헬렌 켈러를 만나 위대한 교육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보스턴의 한 정신병원에서 회복 불가능의 환자로 분류되어, 특별 관리를 받던 한 소녀가 한 나이 많은 간호사 로라(Laura)의 지속적이며 극진한 사랑으로 마음의 문을 열고 정신질환에서 해방되었습니다. 헬렌 켈러의 스승 앤 설리번의 어린 시절 이야기입니다.
앤 설리번의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였고 어머니는 여덟 살 되는 해 결핵으로 죽습니다. 앤 설리번은 5살 때 트라코마에 감염되어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점차 시력을 상실합니다. 어머니 사후 그녀는 친척에게 맡겨지고 이내 몸이 약한 그녀는 매사추세츠 주립 병원에 버려집니다.
앤 설리번은 1880년 퍼킨스 시각장애인 학교에 입학하여 공부합니다. 그 후 신문사의 도움으로 수술을 받아 시력을 회복합니다. 1887년 퍼킨스 시각장애 학원의 교장 선생님은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사람을 돌볼 사람을 구함”이라는 구인 광고를 보고 앤 설리번을 헬렌 켈러의 교사로 소개합니다.
나이 든 간호사의 보이지 않는 희생적 사랑이 실명까지 한 소녀를 눈 뜨게 하였고, 이 소녀에 의하여 3중고(三重苦; 시각, 청각, 언어)에 시달리던 한 소녀가 20세기 최대 기적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당시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말했지만, 그때마다 앤 설리번이 외친 말은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해요-”
(I'm sure of God's love-) 이었습니다.
[출처] 헬렌 켈러 3중 고통, 앤 설리번|작성자 Jacob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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