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선의 구약신학과 주경신학
김회권 교수(숭실대 인문대 기독교학과)
이 글은 박윤선의 구약신학과 주경신학, 그리고 그의 구약 전체에 대한 주석을 분석하고 평가하는 논문이다. 그동안 한국교회사에 차지하는 박윤선 신학의 의의를 논한 글이나 그의 성경주석학과 변증학적 노력을 아주 개괄적으로 그리고 대부분 아주 긍정적으로 평가한 글들은 없지 않았다. 박용규, 유영기, 김명혁, 신복윤, 박영희, 권성수, 박헌호 등의 연구는 박윤선 신학과 삶의 한국교회사적 의의나 그의 성경주석 사역을 위한 준비나 그 주석의 의의 등을 다루었지만 대개 찬양 일색이었다. 그것들은 다소간 일방적일 정도로 정암을 숭모하는 경건주의적 문학이라고 할 수 있는 글이다. 그런 글들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 그러나 오늘날 발전하고 있는 한국성경(구약)신학의 맥락에서 다시금 정암의 구약신학과 주경신학을 찬찬히 검토해보는 것도 적지 않은 의의를 가질 것이다. 정암의 구약신학이나 주경신학이 당대에 큰 의의를 가지고 영향을 미쳤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오늘날까지 유효한 자산으로 수용되기 위해서는 오늘날의 변화된 성경신학적 주경신학적 조망점에서 정암의 구약신학과 주경신학을 재검토해 보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정암은 어느 한 방향에서 그 전모를 다 파악하기 힘든 거대한 유산을 남긴 학자다. 그는 설교자, 목회자, 교수, 주석가, 그리고 변증학자로서 당대 최고의 학식과 경건성을 대표하는 학자였기에 섣불리 이런 저런 단편적인 평가를 내리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그의 학문은 이제 한국교회에 남겨진 공적 자산으로 평가와 재음미, 그리고 계승과 비평의 대상이 됨을 면할 길이 없다.
우리가 박윤선의 구약신학과 주경신학을 연구하려고 하면 그가 남긴 모든 구약신학적 업적을 망라하여 다루어야 한다. 구약신학에 대한 박윤선의 학문적 업적은 크게 네 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먼저, 구약성경의 권위와 해석 방법 등에 대한 짧은 글들이다. 박윤선이 이런 글을 쓰던 시대(1930-1950년대)에는 각주를 자세히 붙인 그런 학술적인 논문의 시대가 아니라 자신의 견해를 간결하게 정리하고 요점을 천명하던 시대였다. 그래서 박윤선은 단문 형식의 글들을 통해 자신의 신학적 입장을 발표하였다. 둘째, 박윤선의 구약 본문 설교들이다. 그의 주석서 전체에 고루 퍼져있는 설교 외에도 그는 여러 차례 목회를 하면서 남긴 많은 구약설교를 남겼다. 그의 설교가 박윤선의 구약신학과 주경신학의 합류점이라고 볼 수도 있다. 셋째. 그가 교과서 형식을 빌어 쓴 변증적 구약신학과 그와 유사한 학문적 저술이다. 마지막으로, 모두 12권으로 완간된 구약 39권에 대한 주석 자체가 연구되어야 한다.
이 논문은 지면상 첫째 범주에 포함된 박윤선의 엄청나게 많은 짧은 에세이들과 단문들과 박윤선의 구약설교에 대한 자세한 분석과 평가를 포함하지 못하고 있다. 셋째, 넷째 범주에 포함된 저작물들을 중심으로 박윤선의 구약신학과 주경신학에 대한 분석과 평가를 시도한다. 첫째, 둘째 범주의 글들에 언표된 박윤선의 사상들과 주장들은 그의 주석서(12권의 구약주석서들은 약 1,000 편 이상의 설교 포함)나 단행본으로 출간된 구약신학 저작물에 다시 반영되어 있으므로 박윤선의 단문들과 에세이들, 설교들에 대한 논의도 어느 정도는 이 논문 안에 포함될 것이다.
이 논문의 서론은 박윤선의 신학적 전기를 다루고 본론은 박윤선의 구약신학과 그의 구약 주석 전권에 대한 개략적 분석과 평가를 다룬다. 결론에서는 박윤선 구약신학의 공헌과 시대사적 한계, 그리고 오늘날 한국 구약학계에 던지는 교훈 등을 다룰 것이다.
I. 간략한 박윤선의 신학전기
박윤선은 한국이 낳은 대표적인 경건한 설교자이며 성경 주경학자다. 그는 1979년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를 마지막으로 30여 년(1949년 요한계시록-1979년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에 걸쳐 신구약성경 전권에 대한 주석을 마쳤다. 그의 구약신학과 주경신학은 숭실전문학교, 평양신학교와 두 차례에 걸친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유학, 그리고 화란 유학 등을 통해 구축된 탄탄한 학문과 경건 훈련의 산물이었다. 그의 신학적 자서전에서 밝히고 있듯이, 박윤선은 아홉 살 때(1913년)부터 서당에서 한학을 배우기 시작하여 사서오경을 다 마쳤고, 예기와 주역 외에 사서삼경(四書三經)은 암송할 정도로 통달하였으며, 논어와 맹자는 그 주해(註解)까지 다 외웠다고 술회한다. 즉 17세까지 서당에서 동양고전을 섭렵했다.
18세 때인 1922년 봄에 신학문을 배우기 위해 32km(80리)를 걸어서 선천군 군산면 장공동에 있는 선천 대동소학교를 찾아가 6학년에 편입하여 이듬해 졸업하였다. 대동소학교를 마치고 평북 정주에 있는 오산중학교 2학년에 편입하였다. 거기서 한 학기를 공부했는데 학기말쯤에 이구하 교장을 배척하는 데모로 인해 휴교 조치가 내려졌다. 하는 수 없이 고향으로 돌아왔다가 선천 신성중학교에서 실시하는 3학년 보결시험에 응시하여 합격해서 이 학교를 고학하면서 다니게 되었다(1923-1927). 그 뒤 신성중학교에서는 기독교신앙에 대한 개략적인 입문을 경험하고, 22세경에 성경을 통한 하나님의 계시에 개안하는 경험을 한다. 22세 어느 날 학교 가까이 수청고개 밑에 있는 시냇가를 산책하고 있었는데,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는 그의 마음에 한 줄기 계시적 깨달음이 찾아온다.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을 수 있겠는가?’라는 질문에 몰입되어 있던 그 시간에 그의 마음 깊은 곳에서 “네 손에 들고 있는 성경이 하나님이 계신 증거니라”라는 세미한 음성이 들려왔다는 것이다. 이 경험 이후 박윤선은 신성중학교의 김선두 교장 선생님의 추천으로 숭실전문학교 영문과에 진학하여 장차 학자가 될 학문적 소양을 닦았다(1927-1931).
박윤선은 숭전을 졸업하고 1931년 4월에 평양 장로회신학교에 입학하였다. 1934년 3월에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신학을 더 연구하기 미국 웨스터민스터 신학교로 유학을 떠났다.
1936년 5월에 졸업을 하고 신학석사(Master of Theology) 학위를 수여받았다. 그해 8월에 귀국하여 고향에 계시는 모친을 문안한 후 가족과 함께 평양에 거주하면서 평양 장로회신학교에서 성경원어를 강의했으며 편집부장 박형룡 박사의 천거로 총회 표준 성경주석 편집부에서 근무하였다(1936.8-1938.7).
그러던 중 신사참배 결정으로 한국교회가 엄청난 어려움에 처해 있던 1938년 8월에 다시 도미하여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1년간 머물면서 반틸(C. van Til)교수의 지도로 “전제주의” 변증학 및 성경 원어를 더 연구하였다(1938.9-1939.10). 1939년 10월에 한국으로 오지 않고 당시 일본에 망명 중이던 동경의 박형룡에게 가서 표준 성경주석부의 일을 계속하면서 데살로니가전후서, 골로새서를 주석하다가 1940년 3월에 귀국하였다.
</ins>
귀국하자 얼마 후 바로 만주 봉천(현 瀋陽)에 있는 우지황교회에서 청빙이 있어 가족과 함께 만주로 가서 목회하였다(1940.4-1941.3). 그 다음해에 봉천 북능(北凌)지역에서 개교한 만주신학교(교장: 정상인 목사)에서 교수생활을 하였다 (1941.4-1943.7). 거기서 박윤선은 성경원어(히브리어, 헬라어), 신약학을 가르쳤다. 신사참배 문제로 교계가 어려울 때 그는 계속 주석서를 저술했다. 그도 한번 신사참배를 한 적이 있어 이를 회개하는 심령으로 저술에 집념하였다. 해방 후 귀국하여 가족과 함께 6개월 고향에 거주하였다. 북이 공산화 되어가기에 월남할 뜻을 정하고 1946년 2월에 가족과 함께 월남(越南)하여 3월 1일에 서울에 도착하였다. 그의 소원은 신학교육과 주석 집필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었다. 이태원에서 두어 달 지내고 5월에 한상동 목사의 초청으로 신학교 설립을 위해 부산을 경유하여 진해로 내려갔다.
1946년 9월 20일부터 개교한 부산 고려신학교(설립자: 주남선목사, 한상동목사)에 교장서리로 약 한 달간 봉직했다. 본래는 박형룡 박사가 초대교장으로 내정되었는데 귀국이 늦어짐에 따라 서리로 박윤선이 취임한 것이다. 학교의 신학 노선은 칼빈주의였다. 여기서 박윤선은 주경신학, 조직신학, 성경신학, 성경 원어를 가르쳤다. 한부선(韓富善, B. F. Hunt) 선교사, 마두원(馬斗元, D. R. Malsbary) 선교사, 최의손(崔義遜, W. H. Chisholm) 선교사, 함일돈(咸日頓, F. F. Hamilton) 선교사가 신사참배문제로 본국으로 추방되었다가 모두 돌아와서 신학교에서 가르쳤다. 그 다음해 봄 학기에 박형룡은 서울에 신학교를 설립할 뜻을 두고 고신을 사임하고 상경하여 남산에 장로회신학교를 세웠다. 스승인 박형룡을 따라 서울로 갈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박윤선은 1947년 10월에 고신 교수로 취임했고, 1948년 5월에는 교장으로 취임하여 봉사하였다. 6.25가 터지기 전에 고신에 큰 회개운동이 일어났는데 박윤선이 인도한 경건회 예배가 한 시발점이 되었다. 6.25 때 많은 피난민들이 부산에 모일 때 초량교회 한상동 목사의 주관으로 전국 피난교역자 부흥회가 열려 민족과 교계의 죄를 통회, 자복하는 기도운동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이 때 박윤선은 박형룡 박사, 김치선 목사, 한부선 선교사 등과 함께 강사로 활동하였다. 특히 이 기간 동안 한부선 선교사의 신사참배 반대에 얽힌 간증은 신사참배에 참여한 죄에 대한 철저한 회개운동을 촉발시키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서도 칼빈주의에 입각한 박윤선의 성경 주석 작업은 계속되었다.
신학을 더 연구할 목적으로 1953년 10월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자유대학에 가서 6개월간 신약학을 연구하였다. 유학 중 박윤선은 54년 3월에 아내의 교통사고 사망 소식을 듣고 즉시 귀국했다. 당시 49세였던 박윤선은 미성년 자녀 5명을 남기고 별세한 첫 아내를 대신해 줄 새로운 배필을 구하다가 그해 10월 이화주(李和主)와 재혼을 하였다. 이런 가운데서 항상 마음은 성경에 머물렀고 신구약 주석 집필을 쉬지 않았다. 1954년 9월에 미국 필라델피아 Faith Theological Seminary에서 명예박사(D.D.)를 받았다. 1960년에 성수주일에 대한 의견차이로 말미암아 고려신학교를 사임하였다.
고신에서 14년간 재직하면서 탈고한 성경주석은 25권이었다. 잠시 부산에 더 머물면서 사도행전을 탈고하고 서울로 와서 동산교회(서대문)에서 목회를 하였다(1961.2-1964). 이 기간 중 1963년 3월 10일 서울 총회신학교(사당동, 현 총신대 신대원) 교수에 취임하였으며, 이듬해 7대 교장(윤번제)으로 취임하였다. 동산교회에서 목회하면서 탈고한 성경주석은 15권이었다. 또 총신 부산분교에서 교수 생활 및 부산 성산교회(좌천동)에서 목회를 하였다(1965.3-1967.2). 이때 시편 주석 증보(增補)작업을 마쳤다. 67년 3월에 다시 서울로 와서 서울 총신대학 신학원에서 교수생활을 하였다(1967.3-1974.11). 이 기간 중 서울 한성교회(노량진)를 개척하여 목회를 하였다(1968.6-1973). 1974년 11월에 서울 총신대학 신학원 교수를 사임하였다(70세 은퇴). 총신 교수 11년 동안 탈고한 성경주석은 13권이었다.
그 후 박윤선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건너가서 4년 동안 요양하며 성경주석 저술에 전념하였다. 여기서 탈고한 주석은 12권이었다. 에스더서를 마지막으로 성경 66권을 완필하기까지 인생 여정 74년을 붙잡아 주신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를 돌렸다(1974.12-1979.1). 1977년 여름에 일시 귀국하여 총신대 신대원에서 한 학기 교수하고, 다시 로스앤젤레스에서 머물다가 1979년 3월에 서울 총신대학 대학원장으로 취임하였으며 같은 해 9월 3일 성경주석 완간 감사예배를 총신대학 대강당에서 가졌다. 그의 성경주석의 기본은 항상 칼빈주의와 성경의 정확 무오설이었다. 박윤선은 그의 생애 내내 성경을 사랑하고, 확신하고, 묵상하고, 주석하고, 설교하고, 가르치는 일에 최선을 다하였고 성경 연구에서 난관에 부닥칠 때마다 기도로 영감을 얻었고,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을 실천에 옮겼다.
II. 박윤선의 <구약신학>
박윤선의 성경신학 1부는 성경신학 서론이며, 2부가 구약성경 신학을 구성하며, 3부가 신약성경 신학을 구성하는 셈이다. 박윤선은 자신의 구약신학은 게르할더스 보스의 <성경신학>의 편제를 거의 그대로 따랐으며 신약성경 신학은 헤르만 리델보스(Herman N. Riderbos)의 <바울과 예수>, <천국의 도래>, <예수의 자기은닉과 자기계시>를 길게 인용했기 때문에 이 책이 편저의 성격을 띤 책이라고 평가한다. 이 책의 서론은 성경을 바로 아는 성경신학의 기본 원리(1장)와 성경을 오해하는 신학운동에 대한 비판(2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은 웨스터민스터 신학교의 스승인 코르넬리우스 반틸의 변증학에 영향을 받아 신학함의 기본토대를 닦는다. 그는 인간이성의 자율주의적 사고방식을 비판하고 계시의존적 사색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자기계시에 달려있다는 성경적 인식론을 강조한다. 그는 이어 예수님, 사도, 정통교회의 성경관을 만전적 영감론(성경 전체가 영감된 책임을 주장)이라고 명하며 성경의 영감성과 신언성 계시성을 옹호한다. 특히 그는 벤자민 워필드, 헤르만 바빙크, 아브라함 카이퍼의 성경관을 대표적인 칼빈주의 성경관이라고 평가한다. 서론 2장은 아돌프 하르낙과 빌헬름 헤르만의 구자유주의 신학의 성경관과 불트만과 디벨리우스 등 양식사학파의 성경관, 그리고 요나서와 욥기 등의 역사성을 부정하는 신정통주의자 밀러 버로우즈의 성경관과 성경과 계시를 구분하는 바르트의 성경관을 비판한다. 이어 정암은 모세오경,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서, 열왕기, 에스더서, 욥기서, 소예언서에 대한 고등비평적(자료비평과 편집사비평, 역사성 의심 및 부정 견해들) 견해들을 아주 간략하게 비판한다(28-56쪽).
제 2부 구약 성경신학은 모두 아홉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것의 구성원리는 모든 구약성경이 그리스도에 대하여 증거한다고 하는 누가복음 24:27, 44의 원리다. 목차가 잘 보여주듯이 2부는 전체적으로 메시야 왕국의 도래를 향하여 자라가는 하나님의 구원계시의 발전사를 점진적 유기적 계시사의 관점에서 파악하고 있으나 중간 중간에 구약성경의 중심주제에 대한 간략한 논의를 삽입시킨다(4장 계시론, 7장 성령론, 8장 사후 생명사상). 1장 기원론(61-67쪽), 2장 원시시대의 계시(68-80쪽), 그리고 3장 홍수 이전 계시와 노아시대의 계시(81-89쪽) 부분은 창세기의 구원계시사를 다룬다. 4장 선민국가의 기본계시(90-96쪽)는 계시론을 다루고, 5장 선민국가의 조직과 관련된 계시(97-111쪽)는 출애굽기와 레위기를 다룬다. 6장 예언시대의 계시(112-117쪽)는 예언자들의 계시수납에 대한 벨하우젠주의자들의 학설에 대한 비판과 예언자들의 성경친저성을 옹호한다. 7장 구약에 나타나신 하나님의 영(118-120쪽)은 하나님의 영(성령)의 역사에 대한 공시적 관찰을 시도하고, 8장 사후 생명 불멸에 대한 구약의 사상(121-129쪽)은 창세기와 출애굽기 및 다른 구약성경의 사후생명사상을 고찰한 후 그릇된 현대주의자들의 천국관을 비판하고 성경적 천국관을 피력한다. 그에 따르면 천국은 이 세상 역사에 대하여 초월의 관계를 갖지만 초절(超絶)의 관계에 놓여있지는 않다. 9장 메시야에 대한 예언(130-136쪽)은 창세기부터 이어지는 메시야 예언들을 찾고 성경적 메시야의 초상을 천착한다. 이처럼 박윤선의 구약성경 신학은 구원계시의 발전사관에 입각해 있으므로 창조부터 메시야 도래로 이어지는 하나님의 구원의지를 부각시키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것은 모두 합하여 70여쪽 정도의 논의에 그치고 있기에 나머지 구약성경의 많은 부분들이 그의 구약성경 신학의 구조 안에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적 구원의지가 강조되는 경우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인간 응답 및 책임의 중요성이 부각되어야 할 만큼 강조되지 못했다. 즉 이 세상에서의 신자들의 바른 삶과 역사상 준동하는 악과 직면한 인간의 윤리적 신앙적 책무가 거의 논의되지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의 구원사에 대한 인간의 응답, 의심, 책임적 투신 등을 피력하는 성문서가 거의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그의 구약신학의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살펴봄으로써 당대적 신학쟁점들에 대해서 예민한 문제의식과 응답을 보여주고 있는 박윤선의 구약신학이 오늘날에도 재음미될 수 있는 여지가 무엇인지를 숙고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먼저 그의 성경신학 중 2부 구약성경 신학을 간략하게 요약함으로써 그의 중심관심사와 방법론을 파악해 보고자한다.
1장 기원론은 이 책을 저작하던 60-70년대의 한국성경신학의 문제의식을 반영하는 일곱 가지 쟁점들을 논한다. 창조의 순서 문제(고등비평가들의 문서가설 비판), 만물 창조의 목적(하나님 영광을 발현, 사 43:7), 창조냐 복구냐?(창 1:2에 대한 화란의 구약신학자 사이러스 스코필드의 해석 비판. 에드워드 영 등을 인증하여 천사에 의해 타락된 첫 창조 전제를 비판),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하신 의의(말씀창조설을 통해 진화론과 유출설 비판), 창조기사에 대한 위기신학자들(창조교리의 비자명성을 강조하는 바르트 등을 바빙크의 창조계시론으로 비판)의 평가, 창조에 대한 이해(히 11:3 믿음의 인식론적 우선성 강조), 창조 신앙과 종교생활과의 관계(겸손과 소망의 근거: 욥 1:21, 시 121:1-2 )가 바로 그가 다루는 쟁점들인데 워낙 소략한 부정적 혹은 비판적 논평들이 주를 이루고 있기에 정작 박윤선 자신의 창조신학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체계적인 진술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2장 원시시대의 계시는 구속운동 이전 계시와 최초의 구속 계시로 나눠져 논의된다. 구속 운동 이전 계시, 즉 원시시대의 계시는 주로 상징이나 예표로 되어 있는데 여기 네 가지 상징 계시가 있다. 생명의 원리는 생명나무로 나타났고, 시련의 원리는 선악과나무로, 시험의 원리는 뱀으로, 영적 사망의 원리는 육신의 사망으로 각각 상징되어 나타났다. 여기서 박윤선은 대부분 게르할더스 보스의 입장을 취하나 종교개혁자들의 입장을 참조하며 자신의 의견을 설정하기도 한다(생명나무에 대한 아담의 접근권에 대한 캘빈과 루터, 그리고 보스의 차이점). 최초의 구속계시는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허락하신 행위계약(창 2:17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계명)을 아담이 어겼을 때 주어졌다. 창 3:9~24에 보면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 중에는 은혜도 내포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는데 ① 하나님께서 아담을 먼저 찾아오신 은혜의 행위와 ② 하와가 해산의 고통을 받으면서도 자식을 낳도록 된 것이 은혜이며 ③ 비록 에덴동산에서는 쫓겨났으나 그들이 땅에서 문화를 건설하게 되었으니 이것 또한 은혜이다. 그러면 아담과 하와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언약에서 그의 은혜는 어떤 내용으로 나타났는가? 그것은 그가 사람에게 마귀를 이기는 축복을 약속하심인데 곧 마귀를 이기는 것이 바로 구원임이 암시된다(요 12:31, 롬 16:20). 그러므로 마귀를 이기는 자에 대한 최초의 약속인 여자의 후손에 대한 창세기 3:15이 메시야에 대한 최초의 예언으로 간주된다.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으로 서로 적대 행위를 계속하게 하심은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마귀를 따르는 마귀의 자식들이 있다는 것이다. 택한 백성의 승리는 그 백성이 마귀의 머리를 상하게 함으로 성립되게 되는 것으로 인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으로는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마귀를 이기게 된다는 표현으로 족하며 그 약속은 실질적으로 신약의 구원관과 같다(계 17:14; 참조. 요 16:33, 롬8:37, 고전15:57, 엡 6:11, 골2:15).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박윤선의 구약주석은 거의 철저하게 신약의 그리스도적 대속사역의 광채 아래서 진행된다. 구약 각 책과 각 역사적 단계에 주신 하나님의 말씀과 계시의 당대적 중요성에 대한 주석적 관찰이 현저하게 소략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윤선에게 구약 대부분은 거의 같은 메시지(메시야 대망적, 메시야 예고적)를 갖고 있다. 여자의 후손 그리스도에 의한 구원 중심의 구약주석이 이뤄진 것이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구약신학이 너무 구원론적으로 치우쳤다는 인상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3장 홍수 이전 계시와 노아시대의 계시는 가인 계통에서 실현된 죄악의 신속한 발달, 셋의 자손의 발달, 가인의 자손들과 셋의 자손들의 통혼으로 인한 죄악 팽창, 홍수심판을 다룬다. 첫째 계시는 인종 번성에 대한 계시로 장차 계시될 구속 운동의 준비라는 것과 두 번째 계시는 은혜의 역사가 죄악의 팽창으로 인해 크게 단축될 것에 대한 것이다. 가인 계통이 주도하는 물질문명의 발달은 그 자체 자연은총에 속하였지만 인류사를 죄악팽창사로 만들어버렸다(창 4:1-24). 은총계열이자 하나님의 아들을 대표하는 셋 자손들은 구속운동을 간신히 이어갔으나 가인계열의 물질창발과 문명주도에 비하여 주변화된 역할만 수행한다는 것이다. 급기야는 가인계열의 물질문명의 쇄도를 막아내지 못한 셋 계열은 가인의 자손과 의 통혼으로 이제 전 인류역사를 되돌이킬 수 없는 속도와 범위의 죄악 팽창사 죄악 폭발사로 전락해 버린다(창 6:1-2). 여기서 박윤선은 에릭 사우어(<세계 구속의 여명>) 등 모든 경건주의 계열의 학자들처럼 하나님의 아들들이란 경건한 셋의 자손들을 가리킨다고 본다. 그는 신화적 해석(타락한 천사와 인간 통혼설을 가정)을 배격한다. 왜냐하면 창세기 6장은 천사타락사가 아니라 인간 타락사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가인 계열과 셋 계열의 통혼으로 인류는 미증유의 대홍수 심판을 초래하였다. 이 이야기는 홍수 심판을 통한 전 인류 및 기식있는 모든 피조물 멸절을 집행한 하나님의 공의와 홍수를 너머 인류와 피조물을 보존해주시겠다는 하나님의 노아언약(무지개 언약)을 통해 드러난 하나님 자비를 병치시키고 있다. 노아를 통해 허락된 자연언약은 은혜언약과 밀접한 관련성을 갖는다. ① 자연언약의 진실성은 은혜언약의 진실성을 보장한다. ② 자연언약에 의해 은혜 언약의 대상이 준비된다(참조. 딤전 2:4, 계 7:9~10, 창 1:28).③ 은혜언약이 완성된 뒤에 자연언약도 완성되어 만물도 새로워진다(참조. 롬 8:19~23, 벧후 3:13, 계 21:5). ④ 특별히 성경은 이스라엘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을 자연언약 모형으로 말하고 있다(참조. 사 54:9, 렘 33:25~26). 여기서 박윤선은 보스처럼 하나님의 언약의 신학적 의미를 잘 천착하고 있다. 하나님의 언약의 필요성을 논하며 그는 세 가지를 강조한다. 첫째, 하나님의 주도권이다.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관계는 믿음으로 성립되는데 이 믿음은 하나님의 진실성에 근거하여 생긴다. 둘째, 하나님은 인류를 취급하심에 있어서 한 시대의 한 사람을 상대하신 것이 아니고 모든 시대의 모든 사람들을 상대하시므로 먼 장래와 관계된 일들도 약속하시며 그 언약하신 일들은 그가 정하신 때에 이르러서만 성취 여부가 알려진다(롬 5:6, 딤전 6:15). 셋째, 하나님의 언약은 인간을 상대로 요구 조건이 있는 법으로 언약에 대한 인간의 순종(행위계약에서는 율법 순종, 은혜 언약에서는 믿음으로 순종) 여부는 장구한 시일을 두고 검증될 것이다. 하나님의 계약 성격을 논의하면서 박윤선은 두 가지 사실을 강조한다. 무엇보다도 계약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는 무죄시대보다 타락하고 거짓된 사회에 대하여 더욱 부각된 신학개념이다. 하나님 주도적 언약은 구원의 방편이라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인간을 상대로 계약하심에 있어서는 상대자의 의지를 알아보지 않고 스스로 결정하여 독자적인 주권으로 임하셨는데 그 자신은 계약 성취의 책임에 절대로 매이신다는 점이다.
4장 선민국가의 기본계시는 계시방법과 내용을 다룬다. 여기서 먼저 박윤선은 아브라함의 역사성에 대한 예수님과 사도들의 권위있는 인증이나 인용과 윌리암 올브라이트의 고고학 성과에 입각(누지 토판이나 마리 문서)하여 아브라함의 역사성을 옹호한다. 선민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계시방법은 환상을 통한 계시(출 4장, 6장, 32:7, 사 6장, 렘 1장, 겔 4~9장), 하나님의 직접적인 현현을 통한 계시(창 16:7, 22:11~12,15, 31:11), 그리고 꿈 계시가 그것이다. 박윤선은 꿈 계시에 대한 성경의 양가적 입장(부정적 입장: 렘 23:28, 29:8, 슥 10:2; 긍정적 입장 민 12:6) 둘 다를 언급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선민에게 주신 계시 내용은 창세기 12:1-3에 증언된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3중적 약속이다. 첫째, 큰 민족을 이루리라는 예언은 신정국가로서의 이스라엘을 의미하며 궁극적으로는 메시야를 중심한 영적 왕국에 대한 예언이다. 둘째, 아브라함에게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하리라는 말씀(창 17:5)은 많은 민족 중에서 택함을 받은 자들이 메시야 왕국에 참여할 것을 가리킨다. 마지막으로 그 왕국에서 사람들이 받을 축복은 영적 성격을 지닌 것으로 창 12:2~3에 “복”이란 말이 다섯 번 나오는데 그것은 속죄로 말미암는 구원의 축복을 가리킨다.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땅이 저주를 받았는데(창 3:17) 이제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은 땅의 모든 족속이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인하여 복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5장 선민국가의 조직과 관련된 계시는, 출애굽운동의 의의, 출애굽운동과 관련된 하나님의 이름, 신정국(神政國), 의식적 법규를 다룬다. 박윤선은 출애굽 운동을 영해한다. 그것은 원칙상으로 하나님께서 그의 택하신 백성을 죄에서 구속하심을 예표하는 사건이라는 것이다. 즉 신약 시대에 성취될 그리스도의 구속 역사의 예표적 의의를 가진다. 출애굽과 관련된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는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으로서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을 의미한다(출 6:2~3). 말라기 4:5을 근거로 그는 바로 이 여호와가 예수 그리스도, 즉 구약의 여호와가 곧 바로 메시야 자신이라고 본다. 적어도 이 경우에서는 박윤선은 양태론적 군주신론으로 기울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박윤선은 출애굽 때부터 이스라엘이 이룬 정치체제는 하나님을 임금으로 모신 신정국이었는데 이 신정국은 종교와 정치가 통합되는 천국의 예표다. 종교와 정치를 통합한 이스라엘의 정체성은 “제사장이자 거룩한 백성”(출 19:6)이라는 말이 잘 포착하고 있다. 끝으로 박윤선은 이스라엘 구속사에 입각하여 신정국의 율법은 은혜에 속한 것이 아니고 순전히 보상주의적 율법이라고 보는 유대주의자들을 비판한다. 이스라엘의 출애굽 구원사건은 율법을 받기 전에 된 일임을 강조함으로써 은혜가 율법준수에 우선함을 보여준다. 이스라엘과 하나님을 결속시키고 교제하게 만드는 이런 은혜의 방편으로 의식적 법규가 주어졌다. 성막에서 드려지는 희생제물,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가 바로 하나님의 은혜로운 율법의 대표적 구현물이다.
6장 예언시대의 계시는, 예언시대 계시의 특색, 예언 제도의 신적 유래(神的 由來), 예언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방법, 예언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방법에 대한 그릇된 학설에 대한 비판, 예언자들의 성경 저작 가능성을 다룬다. 예언 시대 계시의 특색은 사사 시대 이후 새롭게 등장한 인간 왕의 전횡과 독재를 막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자신을 대신하여 왕을 견제하는 예언자라는 언약중보자를 세우셨다는 점이다. 박윤선은 신명기 18:15에 입각하여 이스라엘 예언 제도의 신적 유래를 옹호한다. 예언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방법을 논하며 박윤선은 다섯 가지 요점을 강조한다. 첫째, 주님으로부터 특수한 시점에 부르심을 받았고 그들은 자기의 뜻대로 교훈할 수 없는 처지였다는 점이다. 둘째, 그들은 무의식중에 계시를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밝히 분변하는 마음으로 계시를 받아서 전하였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것은 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셋째, 그들은 계시를 받은 장소와 시간까지 명백히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탈혼 상태의 예언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넷째,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자기들의 사상을 명백히 분변하여 의식하였다. 마지막으로 참 예언자는 자기의 심사를 말하는 자가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며 그가 받은 말씀은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들을 위한 것으로 말씀을 숨길 권리도 없고 자유도 없었다는 점이다.
다음으로 박윤선은 예언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방법을 그릇되게 설명하는 학설을 비판한다. 예언자들이 자신들의 말을 하
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한 것은 민중들을 설득하기 위해 예언자들이 경건한 사기를 치기 위함이었다고 보는 고등비평가들(아브라함 퀴에넨)을 비판하며 동시에 예언자들의 계시 수납현상을 입신경험이라고 보는 구스타브 횔셔의 견해를 비판한다. 아울러 박윤선은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여러 가지 계시방법을 이교도적 미신적 영매행위와 등치시키려는 고등비평가들을 사탄의 조종을 받는 사람이라고 강하게 단죄한다. 마지막으로 박윤선은 예언자들이 성경 저작자들이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받은 계시의 말씀이 먼 후대까지 전해져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하나님께 받은 계시를 문서로서 기록해 남겨 놓았다는 것이다.
7장 구약에 나타나신 하나님의 영은 하나님 영의 우주적인 역사, 신정국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영의 역사, 개인을 상대로 한 하나님 영의 역사를 다룬다. 박윤선에 따르면 “하나님의 신”이란 말은 구약 성경의 39권 중에서 16권에는 나타나 있지 않은 말로서 “성령”이란 말과 내용을 같이 한다. 당연히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을 인도하신 이가 신약시대의 성령님이었다(행 7:51). 신약시대 성도에게 믿음을 주신 분이 구약시대 성도에게도 그러셨다(고후 4:13). 동일하신 성령님께서 이스라엘의 의식적 제사를 제정하셨다(히 9:8). 동일하신 성령임께서 모든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셨다. 창 1:2에 묘사된 수면 위에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신”은 하나님의 천지 창조와 관련된 성령님의 내재적 역사를 가리킨다. 이것이 하나님 영의 우주적 역사다. 신정국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영의 역사는 적어도 네 가지 통로를 통해 나타났다. 첫째, 성막과 제사장의 옷을 만드는 자들에게 지혜의 신으로 임하셨다.(출28:3, 31:3, 35:31). 둘째, 70인의 장로들에게 임하셨다(민 11:17, 25). 셋째, 여호수아에게 지혜의 신으로 임하셨다(신 34:9). 마지막으로 사사들과 사울, 다윗에게 임하셨고(삼상 11:6, 16:13) 선지자들이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예언의 은사를 받았다.
또한 구약에는 개인을 상대로 임하신 하나님 영의 역사에 대한 증언도 발견된다. 성령님께서는 개인 개인을 거듭나게 하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는 역사를 이루신다. 성령님께서는 구약에서도 사람의 심령에 대한 영적 또는 윤리적으로 성결을 이루는 역사를 하셨으며(창 6:3, 느 9:20, 시 51:11) 이 점에 있어서 선지자들은 신약시대에 그런 역사가 풍성할 것을 내다보았다(욜 2:28-32). 예수님과 세례 요한은 그것의 성취를 가리켜 “성령의 세례”라는 말로 바꾸어 표현하셨는데(막 1:8, 요 1:33, 행 1:5) “성령의 세례”란 신약 시대에 있을 성령님의 보편적 역사를 의미한다.
8장 사후 생명 불멸에 대한 구약의 사상에서 저자는 무엇보다도 누가복음 16:19-31과 출 3:6을 인증하여 사후 생명의 불멸성을 옹호한다. 신자의 사후 생명에 대한 구약의 교훈을 창세기 5:21-24의 에녹 승천 사건, 출애굽기의 호렙산에 나타난 하나님의 자기 소개(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출 3:1-6; 마 22:32), 구약 다른 부분의 계시(욥 19:26, 시 17:15, 전 12:7), 그리고 “몸은 죽여도 영혼을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마 10:28)는 말씀을 하신 예수님을 인증하여 사후 생명의 불멸성을 옹호한다.
박윤선은 천국과 현세와의 경계선을 논하며 이 쟁점에 대한 중세의 천국 사상, 헤겔의 견해, 키에르케고르의 견해, 그리고 칼 바르트의 견해를 비판한다. 대신 그는 성경이 말하는 천국을 제시한다. 그에 따르면 성경이 말하는 천국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이니(히 11:10) 그것은 피조성을 지니고 있지만 동시에 그것은 또한 하나님을 중심한 곳이고 하나님께서 경영하시므로 영원성을 지니고 있다. 하나님께서 가치 있게 여기시는 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두 다 천국에 들어가게 되며 천국이 이 세상은 아니지만 이 세상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서 천국 운동이 전개 되고 있는데 그것은 그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믿도록 하시는 성령님의 역사이다.
9장 메시야에 대한 예언은 메시야 개인을 가리킨 예언과 간접적으로 메시야와 관련된 예언을 구분하여 찾는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메시야의 중요한 성격과 칭호들을 자세히 살핀다.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구약에 모두 456 차례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과 약속이 나옴을 주목하고 메시야 탄생은 구약 예언 성취로서 절대로 믿을 만하다고 강조한다. 메시야의 중요한 성격을 예언하는 성경구절들로는 창 3:15(“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칠 것이다”), 단 2:34~35(“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뜨인 돌”), 단 7:13~14(인자의 영원한 나라) 등이 있다(신32:2, 사 65:1, 호 2:23). 여기서 잠시 박윤선은 유대적 메시야와 수난당하는 메시야에 대한 논의를 통해 메시야의 유대인적 뿌리(창 12:3, 22:18; 창 9:26~27)와 희생적 죽음(단 9:26, 사53:8)을 통한 세계보편적 메시야되심을 동시에 강조한다. 다음으로 박윤선은 메시야의 으뜸성(사 40:3~5, 9~10, 52:7)과 세계통치권을 강조하고 메시야에 대한 간접예언들을 길게 나열한다. 메시야에 관한 간접적 예언들은 다음과 같다: 이방인들이 복음을 믿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됨(사 19:18~25), 하나님의 백성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중생하게 됨(렘 31:32~34, 겔 11:19~20, 36:26~27),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됨(겔 16:53~55), 신약 시대의 교회(겔 40~48장, 단 2:31~45, 7:13~14, 9:24~27), 메시야의 백성이 셀 수 없이 많아지게 됨(호 1:10~11), 성약을 더욱 확고히 하심(호 2:14~23), 신약 시대에 유대인들에게 영적 축복이 임함(호 3:4~5), 신약시대(메시야 시대)에 성령을 주심(욜 2:28:32),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세계 대전이 있음(암 3:1~15), 신약 시대에 있을 영적 천국 운동(복음 운동)(사 2:1~3, 암 9:7~8, 미 4:1~13), 교회의 최후적 승리(옵 1:17~21),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모형(욘 1:17~18).
박윤선이 발견한 메시야 개인을 가리키는 예언들은 다음과 같다: 여자의 자손(창 3:15), 이새의 줄기(사 11:1), 의로운 가지(렘 23:5), 아브라함 자손(창 15:5, 12:2~3, 창 22:17~18), 영원한 반석(사 26:4), 우리의 의(렘 23:6), 유다 지파 자손(창 49:8~10), 빛난 이슬(사 26:19), 다윗(렘 30:9, 겔 34:23~24, 34, 37:24~25), 별, 홀(민 24:7), 돌(사 28:16), 내 종(겔 34:23~24, 37:24~25, 슥3:8), 선지자(신 18:15), 구원의 기쁨(사 35장), 다스리는 자(미 5:2), 기름부음 받은 자(시 2:2), 하나님(사 40:9), 만국의 보배(학 2:7), 왕(시2:6, 45:6~7, 렘30:9, 겔 34:24, 37:24~25, 단 7:13~14, 슥 14:16), 목자(사 40:11, 겔 34:23, 37:24, 슥 13:7),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슥 13:1), 하나님의 아들(시 2:6~9, 22:1), 하나님의 종(사 42:1, 49:6, 52:13~53:12, 슥 3:8), 언약의 사자(말 3:1), 주의 거룩한 자(시 16:10), 하나님의 택한 사람(사 42:1), 의로운 해(말 4:2), 모퉁이의 머릿돌(시 118:22~23, 사 28:16), 이방의 빛(사 42:6, 49:6), 여호와의 싹(순)(사4:2, 슥 3:8, 6:12), 질고를 아는 자(사 53:3), 임마누엘(사 9:2), 증거(사 55:4), 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사 9:6), 구속자(사 59:20)
이런 박윤선의 구약신학은 그가 표방하고 주창한 칼빈주의 개혁신학의 틀안에서 구성된 신학이었다. 박윤선 박사는 자신의 신학적 자서전인 『성경과 나의 생애』에서 자신의 신학 곧 개혁주의 신학을 다음 다섯 가지로 요약하고 있다. 하나님의 주권, 개혁주의 성경관, 개혁주의 인생관, 개혁주의 과학관, 개혁주의 일반은총론이 바로 그것이다.
박윤선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주권이란 신자가 어디서나 무엇에서나 하나님의 경륜과 섭리와 의지 활동을 발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현상의 배후에 계신 하나님을 보며 모든 일어나는 일에 하나님께서 통치하고 계시며 관할하고 계심을 믿는 사상이다. 이런 하나님의 주권 사상은 성경을 진리인식과 실천의 최고 기준으로 삼았던 칼빈주의의 핵심 사상이다. 박윤선이 붙든 개혁주의 성경관은 성경을 하나님이 주신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으며 성경해석에는 성령의 감화가 필요하다고 믿는 사상이다. 이런 점에서 개혁주의 성경관은 성경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생(重生)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본다. 한편 그것은 성경이 하나님의 계시를 기계적으로 받아 적은 글이라고 보지 않고 인간 저자들을 통해 기록하셨다고 믿는다는 점에서 유기적 영감설을 믿는다. 이 유기적 영감설을 예해하기 위하여 개혁주의는 성경의 네 가지 속성들을 믿고 강조한다.
① 성경의 자증(自證) 혹은 자기충족적 신임성: 성경은 그 자체 안에 독자적 권위를 가지고 있다. 교회나 어떤 사람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은 그 이전에 이미 독자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권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개혁주의는 성경이 있기 전에 교회가 있었다고 주장하는 가톨릭교회의 주장을 반대한다. 개혁주의는 교회도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존재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② 성경의 필요성: 개혁주의는 인간의 구원과 생활을 위해 성경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믿으며 성경은 우리의 구원과 생활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유일한 기준이라고 믿는다.
③ 성경의 명료성: 개혁주의 교회는 성경은 구원과 생활 문제에 있어서 모든 신자들이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명료하게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셨다고 믿는다. 그래서 개혁주의는 평신도들의 성경 공부나 해석을 금지하지 않고 오히려 격려한다. 성경은 가톨릭이 주장하는 성직자들의 성경해석권 독점을 반대하고 원칙적으로 하나님의 성령의 감동 아래 사는 모든 성도들이 성경 진리를 분별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았다고 믿는다.
④ 성경의 자기충족성: 가톨릭교회는 성경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하여 성경 외에 전통(傳統)을 진리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았다. 그러나 개혁주의 교회는 그러한 전통의 권위를 부인하고, 성경만으로 충분하며 오직 성경만을 진리의 유일한 표준으로 삼았다.
박윤선이 신봉한 개혁주의 인생관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그리스도 외에 어떤 다른 중보자도 용납하지 않는다. 개혁주의는 하나님의 주권을 높이고, 인간은 본래 그 앞에 멸망받아 마땅한 죄인임을 생각하기에 인간을 영웅시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의 응당한 책임을 추궁하는 신학이다. 박윤선의 개혁주의 과학관은 창세기 1:28의 문화명령(창조질서 관리 및 정복)에 입각하여 과학을 무시하지 않고 과학발달을 촉진하고 장려한다. 마지막으로 개혁주의 일반은총론도 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개혁주의는 하나님의 사랑을 특수은총에서만 발견하지 않고 일반은총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고 믿는다. 특수은총은 구원의 은총이며, 일반은총은 신자와 불신자가 함께 누리는 은총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개혁주의는 역사참여적 공공신학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큰 신학이다. 개혁주의 신학은 1920년대 미국교회의 신학논쟁에서 분명하게 석명된 신학으로서 문화와 사회에 대한 분리주의적, 반지성주의적 성격이 있고, 문화에 대한 책임을 경시하는 근본주의 신학과 다르다. 뿐만 아니라 개혁주의 신학은 하나님의 주권과 선택, 하나님의 영광을 신자의 삶의 목표로 여기기 때문에 개혁주의자들은 삶의 전 영역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문화적 사명을 중시한다. “이 신학이 한국교회 초기 선교사들의 사상에서 연원하지만 이 신학을 보다 분명히 해설하고 한국교회 현실에서 체계화한 이는 박윤선(朴允善, 1905∼1988) 박사였다고 볼 수 있다”고 보는 이상규의 판단은 옳다. 이상규에 따르면 박윤선은 40여년 간의 교육활동과 저술, 성경주석의 집필, 목회활동을 통해 개혁주의 신학을 소개하고, 석명하였을 뿐만 아니라 개혁주의적 삶의 모본을 보였다(“개혁주의신학을 석명한 박윤선”). 간하배(Harvie Conn) 또한 박윤선은 단순한 근본주의 차원을 넘어서길 원했다고 함으로써 그는 진정한 의미에서 개혁주의 신학자였음을 지적했다. 간하배는 박윤선이 옛 평양신학교가 너무나 제한된 분야에만 집중한 나머지 일반은총의 여러 분야들을 인식하지 못한 교회가 세워질 것을 염려했다고 평가한다. 그가 보기에 박윤선은 한국교회가 칼빈주의라는 보다 원시적(遠視的)인 안목(the larger perspectives of Calvin)에서 바라보고, 또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길 원했다고 평가한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이런 박윤선의 개혁주의적 구약신학의 맥락 안에서 그의 구약주석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려고 한다.
III. 박윤선의 성경 전권 주석과 구약 주석
박윤선의 구약전권 주석은 그의 구약신학의 골격 안에서 이뤄졌다. 그는 대체로 신약성서 주석을 초기에 마치고, 후기에 갈수록 구약주석에 몰입하였다. 모두 20권으로 발간된 박윤선의 20권 전권 성서주석의 출간연도별 일람표는 아래와 같다.
1. 창세기ㆍ출애굽기 주석 (68.10.20)
2. 레위기ㆍ민수기ㆍ신명기 주석(71.5.10)
3. 여호수아서ㆍ사사기ㆍ룻기 주석(76.4.30)
4. 사무엘서ㆍ열왕기ㆍ역대기상하 주석(78.7.15)
5. 에스라서ㆍ느헤미야서ㆍ에스더서 주석(79. 9.20-최종 집필 주석)
6. 욥기ㆍ전도서ㆍ아가서 주석(74.12.21)
7. 시편 주석(57.3.20; 66.11.5)
8. 잠언 주석(72.12.7)
9. 이사야서 주석(64.6.30)
10. 예레미야서ㆍ예레미야 애가 주석(65.9.25)
11. 에스겔서ㆍ다니엘서 주석(67.7.20)
12. 소선지서 주석(62.12.15)
13. 공관복음 주석(53.12.25; 64.3.2)(가장 많이 보급)
14. 요한복음 주석(58.9.12; 70.5.10)
15. 사도행전 주석(61.7.15; 77.3.31)
16. 로마서 주석(54.6.17; 62.3.6; 69.6.25)
17. 고린도 전ㆍ후서 주석(62.3.31)
18. 바울서신 주석(55.9.20; 64.9.25; 85.8.15)(가장 많이 보급)
19. 히브리서ㆍ공동서신 주석(56.9.20; 65.6.25; 87.4.20)
20. 요한계시록 주석(49.4.1 비매품; 55.4.15; 65.1.30)(최초의 주석)
박윤선의 전질 성경주석은 주석의 불모지에 피어난 한송이 꽃과 같다. 그가 주석을 착상하고 집필을 시작할 즈음에는 한국어로 된 주석이 거의 없었다. 1934년에 감리교단이 번역한 자유주의적 아빙돈 단권주석, 장로교단의 총회표준성경주석(1937-1964),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선교7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주석(한국학자 저술 주석). 1960년부터 출간된 이상근 신약주석, 성결교의 김응조 성서강해 등이 박윤선이 주석을 발간하기 시작했을 당시 한국어로 된 주석들이었다. 웨스터민스터 유학 후 박윤선이 처음으로 맡은 공식적 직임은 고등비평적 학설에 입각한 아빙돈 단권 번역주석에 대한 장로교단의 응답으로 기획되고 착수된 총회표준성경주석 실무자직이었다. 그는 위원장직을 맡던 박형룡 박사의 조력자로 임명되었다. 이 총회표준성경주석은 계시의 역사를 종교진화론적인 선입관으로 폄하하고 이적(출 10:21-23, 14:21-23)을 부인하는 아빙돈 단권번역주석에 대한 반작용으로 기획되었던 것이다. 박윤선의 성경주석은 이런 총회표준 성경주석의 정신(“학구적,” “비판적,” “통일적,” “실용적,” “정통적”)을 이어받았다. 아래 도표는 박윤선의 39권에 대한 구약 주석(12권으로 출간)의 개괄적 특징을 정리한 것이다.
박윤선 구약 각권 주석의 구조와 특이점
각 권의 주석서 머리말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 주석은 칼빈주의 해석원리를 일률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칼빈주의 해석원리란 문법적 역사적 해석에 치중하는 주석으로서 주제적으로 하나님의 절대주권, 인간의 죄성에 대한 강조, 성경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원리 등을 의미한다. 박윤선은 비록 대부분 자신의 견해를 뒷받침하기 위하여 칼빈주의 주석가들을 인용하거나 인증하나 때로는 자신의 의견과 다른 의견을 가진 학자들도 인용하거나 인증한다. 그들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공고히 하려 할 때나 그들의 입장을 비판할 때 다른 노선의 학자들을 인용하거나 인증한다. 정통적인 신학노선을 취하지 않더라도 가끔씩은 신학노선의 적시 없이 인용하거나 인증한다는 말이다. 이런 경우 그는 화란어 독일어 영어 등을 자유자재로 직접인용(번역 첨부)하여 자신의 입장이 어디에 서 있는가를 분명히 밝힌다. 박윤선 주석이 목회적이면서도 학문적인 성격을 띠게 된 것은 정암의 탁월한 어학실력과 주석가적인 은사와 감수성, 당대의 최고 최신 학문 조류에 대한 정암 자신의 정통한 이해가 구비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암의 주석에는 편집상의 아쉬운 점이 있다. 첫째, 정암의 주석서를 읽을 때, 부분적 단위 주석에서 엿보이는 정암의 진지성과 치열성과 감수성이 전체로 읽었을 때 그대로 잘 종합되지 못하는 면이 느껴진다. 대부분의 주석에는 장 구분만 있을 뿐 장에 제목이 붙어있지 않아 각 절 단위 주석이 전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지 잘 읽혀지지 않는다. 또한 각 장을 구분하는 중간제목을 가진 소단락으로 구분되어 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용분해 시에만 사용되고 실제 주석을 할 때 그 중간제목을 부각시키는 그런 의미의 서사체적(유기적 흐름) 주석은 이뤄지지 않는다. 유기적 응집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또한 문학적 흐름과 기승전결 구조 혹은 교차대조 구조 등에 대한 주목없이 각 절이 혹은 각 절들의 소단락이 병렬적으로 주석되기 때문에, 즉 서사적 연결구조가 주목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각 책이 발출하는 문학적 감동의 점층효과가 반감된다. 분절된 문장이나 절을 해석할 뿐 그 앞절과 뒷절 사이의 연속성, 혹은 앞 장과 전후 장의 연결성, 각 장안에서 각 소단락의 의미있는 연결구조 등에 대한 논의가 거의 이뤄지지 않아 숲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성서본문의 문학적 깊이와 신학적 울림을 동시에 맛보는데 도움이 될 성서본문의 웅장한 서사구조나 시적인 점층 구조 등에 대한 언급은 참 인색하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문학적 혹은 문예적 읽기, 혹은 서사적 읽기 등의 주석기법이나 자세히 읽기 등의 방법론으로 읽을 때 오는 감동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박윤선의 주석에는 해석 중간에 설교가 끼여들어 해석의 건조화를 완화시켜주는 면이 있으나 동시에 교훈적 훈도적 관심이 두드러진 설교들이 성경본문의 서사적 완결성과 문학적 역동성과 전진감을 향유하는 데 방해를 줄 때도 있어 보인다.
다음은 박윤선의 구약주석이 어떤 점에서 개혁주의적 주경신학으로 분류될 수 있을 것인가를 염두에 두면서 각 주석에서 현저하게 문제가 되는 쟁점들이나 특이점들을 지적하고자 한다. 비판의 여지가 있거나 이론의 여지가 있는 쟁점들을 선별해보고자 한다.
창세기, 출애굽기 주석
창세기 출애굽기 주석 서론은 구약의 사본학(70인역, 아쿨라, 심마쿠스, 테오도션 역, 오리겐의 6중경, 타르굼역, 수리아 페쉬타 역)과 구약본문의 역사의 다룬다. 그 다음 박윤선은 구약정경론을 전개하는데 그는 아울러 정경형성에 대한 그릇된 이론을 논파한다. 다음으로 그는 구약정경의 결정논리(하나님을 섬기고 복종하기로 한 계약논리의 유무, 구약성경의 자증성), 정경의 권위를 논한다. 다음으로는 모세오경의 모세저작설을 옹호하고 모세저작설을 반대하는 고등비평의 오류들을 지적한다. 문서가설의 5가지 기둥가설들(신명의 차이, 이종 문서를 적발하고 동종문서를 연접시켜도 말이 통한다는 주장, 문체, 어휘의 차이, 병행 중복구문의 존재, 유사한 사건들은 동일 사건에 대한 여러 다른 저자의 저작물을 혼합했다는 주장)에 대하여 자세히 비판한다(28-31쪽). 또한 그는 모세오경의 단편가설, 그리고 오경에 대한 여타 고등비평가들의 비판들을 다시 역으로 비판한다. 이스라엘의 초기 종교가 서물숭배의 형식을 띠고 있었다(32쪽)고 주장하고 족장들의 종교와 예언자들의 종교가 다르다고 주장한 고등비평가들을 비판한다. 다음으로는 전기 예언서(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 후기 예언서(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성문서(시편, 잠언, 욥기,전도서, 예레미야 애가, 다니엘, 룻기, 에스더, 에스라, 느헤미야, 역대기상하), 구약가경(외경)(제 1,2 에스드라서, 토빗, 유딧, 에스더 잔부, 솔로몬의 지혜, 시락 아들의 지혜문, 바룩, 세 성도의 노래, 수잔나의 역사, 벨과 용, 므낫세의 기도, 마카베오 1, 2서)와 외경이 정경에 들지 못한 이유를 다룬다. 전기예언서 논의는 저작자, 저작시기에 대한 논의에 초점을 모은다. 박윤선은 전통적인 견해(탈무드가 전한 견해)를 지지하며 대체로 고등비평가들의 주장에는 일단 반대한다. 후기 예언서 중 이사야에 대한 고등비평가들(되덜라인, J.G.Eichhorn, 버나드 듐, 궁켈과 휴고 그레스만의 구전학파의 구전 우선가설)의 견해를 박윤선은 에드워드 영(Edward Young) 박사의 의견을 따라 비판한다. 신약성경 기자들의 빈번한 “이사야”서 인용에 비추어 볼 때 이사야의 단일저작을 믿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박윤선은 또한 문체상의 차이, 신학상의 차이 등을 들어 예레미야서의 복합 저작가설을 주장하는 고등비평가들을 비판하며 그것의 순전성(단일저작)과 통일성을 옹호한다(43-46쪽). 또 에스겔서의 복합저작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을 거명하며 비판하고 그것의 통일성을 옹호한다. 박윤선은 소선지서들의 내용은 대선지서의 내용과 동일함을 주장하며 이것들을 통일하는 여섯 가지 주제를 말한다(열국 통한 이스라엘/유다 징계, 열국 가운데 분산되는 이스라엘, 열국 패망, 이스라엘 남은 자 위로와 구원, 메시야의 도래로 남은 자 구원, 세계 모든 열방과 민족이 야웨께 돌아옴). 마지막으로 박윤선은 성문서(聖錄, Hagiographa)(시편, 잠언, 아가, 욥기, 룻기, 예레미야애가, 전도서, 에스더서, 다니엘서, 에스라, 느헤미야서, 역대기서)의 저작문제, 진정성과 통일성, 그리고 정경성과 역사성 등의 문제를 각각 간략하게 논한다. 시편의 대부분(심지어 ‘다윗에게’[to David]라는 표제어가 붙은 시편들)을 다윗의 저작으로 돌린다. 심지어 캘빈 등의 주장에 터하여 아삽/고라 자손의 시편들과 제목이 붙어 있지 않은 시편들이라고 표제가 붙은 시편들마저 다윗의 저작이라고 보려고 한다. 고라 자손과 아삽 자손은 다윗이 지은 시편을 보관한 집단이었기에 이런 표제를 갖게 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51쪽). 박윤선은 잠언서의 솔로몬 저작설을 옹호하며 잠언서의 일부(30잠언, 22:17-23:12)가 애굽의 아메네몹의 지혜와 유사하다고 잠언서의 정경성과 영감성, 신언성 을 훼손하는 아이스펠트의 주장을 반박한다. 애굽의 다신교 사상과 성경의 유일신 사상의 차이만큼이나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그의 주석서 내내 종교사학파적 구약연구에 대한 정암의 반박은 자신의 엄밀한 학문적 연구나 숙고에 따른 결론이라기보다는 기존 학자들의 연구에 터한 판단일 때가 대부분이다. 최근 웨스터민스터의 구약학자 피터 엔즈의 <성육신의 관점에서 본 성서영감론: 최신 구약학이 복음주의 성경관에 주는 도전과 복음주의적 대답>(김구원역;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6)이라는 저서는 고대 근동자료와 성경 자료의 유사성을 인정하면서도 성경의 영감성을 여전히 주장하는 한 가지 방법을 예수님의 성육신 유비에서 찾는다. 고대 근동자료와 성경자료의 유사성이 성경의 영감성과 신언성과 계시성을 반드시 훼손하는 것이 아님을 효과적으로 논증하고 있다.
박윤선은 욥기를 솔로몬 시대의 저작물이라고 판단하며 그것을 모세의 저작으로 돌리는 탈무드(Baba Bartha 14b의) 증언을 인용한다. 아가서의 저자를 히스기야와 그의 동료들이라고 주장하는 탈무드의 의견을 바탕으로 하여 그것의 솔로몬 저작설을 옹호한다. 히스기야와 그의 동료들은 솔로몬의 원본 아가서를 편집했을 것이라고 믿는다. 히스기야와 그의 동료들이 전도서를 썼다는 탈무드의 증언을 의심하고 그것의 솔로몬 저작설을 믿는다. 에드워드 영은 두 가지 이유로 솔로몬 저작설을 반대한다. 첫째, 전도서 저자가 폭군 아래 살고 있다고 말한다. 둘째 전도서의 아람어투가 후대 문투라는 것이다. 이번에는 박윤선이 에드워드 영을 따르지 않고 전도서 1:1에 의거하여 솔로몬 저작설을 옹호한다. 예레미야 애가의 저자를 예레미야라고 보는 탈무드의 입장을 받아들여 예레미야와 애가 사이의 언어적 사상적 신학적 공통점을 나열하는 한편 박윤선은 양자의 차이와 긴장을 논하는 다른 비평학설을 논박한다. 룻기가 사무엘의 저작이라고 믿는 탈무드의 입장을 따르며 그것 안에 나오는 아람어 문투/문체 때문에 포로기 이후 저작물이라고 보는 비평학설을 반박한다. 또한 박윤선은 룻기의 역사성을 옹호한다(마 1:5; 눅 3:32의 족보가 룻을 실제 인물로 말함). 에스더의 저자에 대해서는 불가지론을 취한다. 선지자 혹은 선지자급 인물에 의한 저작이라고 말한다. 그것의 저자를 대회당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탈무드와 모르드개가 에스더서를 썼다고 주장하는 요세푸스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다니엘서의 다니엘 저작설을 믿으며 그것을 대회당 사람들이 썼다고 보는 탈무드의 견해를 약간 수정해서 해석한다. 여기서 대회당 사람들이 “섰다”는 표현은 원래 다니엘이 썼던 원본 다니엘서를 “편집했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59쪽). 예수님이나 신약기자들이 인용하거나 인증하는 경우(마 24:15=단 9:27, 12:11) 그것은 다니엘서의 진정성을 증거한다고 본다. 박윤선은 대부분 보수적 입장을 취하는 학자들처럼 예수님과 사도들(신약 저자들)이 언급하거나 암시한 책들은 전통적인 저작설을 옹호하는 증거의 하나가 된다고 본다. 박윤선은 에스라서의 저자를 에스라라고 믿는 탈무드와 올브라이트의 입장에 동의를 표하며, 1인칭 단수의 저자 회고록처럼 읽히는 느헤미야서는 당연히 주인공 느헤미야의 저작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마지막으로 박윤선은 구약 외경들이 정경에 들지 않는 열 가지 이유를 나열한다: 이것들을 정경에 포함시킨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과거의 전통); 신약 저자들에 의해 인용된 적이 없다(반역하는 사단의 무리에 관하여 언급하는 유다서의 에녹서 인용; 히브리서 7장의 멜기세덱에 관한 자세한 강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유대인 사가 요세푸스도 이것들을 정경에 포함시킨 것이 없다; 1세기 철학자 필로도 이것들을 정경에 포함시킨 적이 없다; 제롬도 이것들을 배격했다; 외경 저작자 중 한 사람도 자신의 글이 신령한 감동의 산물이라고 주장한 적이 없다. 외경 중 일부에는 자살, 거짓말, 암살행위가 정당화되고 공로구원설, 구제자비에 의한 구원설이 등장한다; 외경의 영적 도덕적 수준이 정경에 비하여 한참 뒤떨어진다; 정경보다 훨씬 후대에 기록되었다; 신약은 구약 39권만을 정경으로 인정한다). 이런 이유 들 중 일부는 논란의 여지가 많으나(둘째 이유에 대한 위의 반문-이 질문에 대한 박윤선의 대답은 시편 주석 30쪽에 실려 있는 특별참고 “예수님과 그의 사도들의 정경구약관”에 들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박윤선 자신이 고안한 열 가지 이유가 아니라 통용되는 이유들을 인증한 것으로 보여진다. 비평적 학설을 비판하고 전통적 모세단일 저작설을 옹호한 정암의 구약총서론과 평주들은 윌리암 그린(W. H. Green)의 <창세기의 단일성>(The Unity of the Book of Genesis)에드워드 영의 <구약서론>(Introduction to the Old Testament)을 대부분 발췌하고 의종(依從)했다.
창세기 주석에서 정암은 여러 편의 평주 외에 다섯 편의 참고를 덧붙였다(진화론에 대한 비판, 이방의 만물 기원론을 비판함, 가인의 족보와 셋의 족보와의 대조, 노아 때의 홍수와 관련된 몇 가지 난제, 노아 때의 홍수 연대). 출애굽기 25장 끝에 성막 그림을 추가해 두었다.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주석
이 주석서의 서론에서 박윤선은 전통적 모세오경 저작설을 부정하는 벨하우젠 학파의 고등비평(자료비평)(S. R. Driver, G. von Rad, Martin)을 낱낱이 비판하고(다수의 평주 참조) 전통적 모세오경 저작설을 옹호한다. 히브리서 3:2-6에 입각하여 모세를 그리스도의 예표자라고 파악하는 저자는 신명기 18:15이 모세가 그리스도를 예언한 것이라고 본다(10-11쪽). 한 걸음 더 나아가 박윤선은 “고등비평 학설의 무너짐”이라는 표제 아래 고등비평을 구사하는 자들이 문제삼고 있는 구약성경의 여러 책들의 정경성과 계시성을 옹호한다. 이 경우 고등비평은 주로 자료비평적 가설을 의미하였는데 박윤선은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서의 복합저자 가설을 비판한다(14-19쪽). 그는 이어 열왕기서를 요시아 종교개혁 전후에 편집되었다고 보는 학자들의 학설을 비판한다(19-20절). 또 에스더의 역사성을 부정하는 입장을 비판하고 욥기의 복합저작 가설을 비판한다. 또한 소선지서 중 호세아서의 복합적 구성을 주장하는 입장을 비판하고, 요엘서의 포로기 이후 저작설을 비판하고, 아모스의 편집가설(후대 첨가)을 비판한다. 박윤선은 오바댜의 연대를 아주 이른 시기로 보며, 요나서의 역사성을 의심하는 학자들을 비판한다. 미가서의 복합저작 가설을 비판하고 나훔의 후대 삽입구절에 대한 가설을 비판한다. 하박국의 저작연대를 주전 4-3세기로 잡는 학설들을 비판하고 그것의 연대를 주전 7세기 초(주전 609년)로 추정한다. 스바냐를 후대 편집적 삽입물이 가득 찬 복합저작물이라고 보는 아이스펠트를 비판하고 그것의 저작연대를 요시야 이전 시기로 설정한다(주전 640-608년). 학개서의 학개 친저성을 의심하는 입장을 비판하고 스가랴서의 복합저작가설(9-14장을 후대 삽입물이라고 보는 입장)을 비판한다.
신명기 주석에서 박윤선은 해석상의 쟁점들에 대하여 폰라드 등 여러 학자들의 견해를 간략하게 소개하고 비판하는 평주를 배치했다(신명기 10장 주석, 415쪽; 신명기 12:5에 대한 평주에서 그는 요시야 종교개혁과 신명기 12장의 관련성을 주장하는 견해 비판; 13장의 선지자로 인한 종교적 타락은 왕정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다고 하여 신명기의 모세 친저성을 부정하는 폰라드 비판, 437쪽). 또 어떤 때는 해석을 끝낸 후 특별참고라는 란을 빌어 고등비평가들의 견해를 비판한다. 예를 들어 요시야의 예배처소 단일화 조치를 근거로 예배처소의 단일화를 명령하는 신명기 12장을 모세보다 훨씬 후대(즉 요시야 시대)의 저작이라고 보려는 고등비평가들을 비판한다(431쪽). 신명기 18장 20절의 소위 이방인들의 예언에 대한 특별참고에서 박윤선은 마리문서나 애굽의 신탁문서(이푸웰 예언)에서 증시되는 예언과 성경의 예언 사이에 있는 질적 차이를 논급한다(461-462쪽). 신명기 26:4과 10절 사이에 있는 문제(4절 초두에 첫 열매를 드리는 자가 벌써 제사장에게 그것을 넘겨주었는데 10절에 의하면 나중에 넘겨줄 것으로 묘사된 것을 모순이라고 지적한 폰라드의 견해를 카일 델리취의 주석에 도움을 받아 논파하고 있다(496-497쪽). 28장 주석에서 28장에서 재앙부분이 압도적으로 긴 이유를 재앙 부분이 후대 보삽물(일종의 사후 예언)이라고 주장한 폰라드를 비판한다. 박윤선은 포로기 상황에 대한 28장의 예언을 모세의 미래 예견능력과 은사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따라서 박윤선은 바벨론 포로생활에 대한 모세의 예언을 불신하는 이런 주장은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믿지 않아서 나왔다고 평가한다. 박윤선은 모세가 장래일을 예언할 수 없다는 폰라드식의 자연주의를 비판한다. “기독교는 초자연주의를 중심으로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507쪽). 또한 신명기 30:1-10을 포로기 저자의 저작으로 돌리는 폰라드의 입장을 비판한다(516-517쪽).
신명기 31-34장을 창세기부터 왕정시대의 여러 가지 물건들(JEP)의 종합이라고 본 새뮤엘 롤즈 드라이버(S. R. Driver)를 비판하며 신명기 33장 모세의 축복이 창세기 49장보다 더 후대적인 색채를 보여주고 있으며 그것은 주전 9세기나 8세기에 저작되었을 것이라고 보는 폰라드를 비판한다. 신명기 33장을 모세의 저작이 아니라고 보는 드라이버를 비판한다(540-541쪽). 박윤선은 신명기 34장은 모세의 사후에 기록된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박윤선은 34장 저자가 신명기 다른 부분도 저작했다는 것은 오류라고 본다(549쪽).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머리말(7쪽)에서 정암은 이 세 책이 제기하는 해석상의 난제 때문에 붓을 멈추고 사색에 잠기거나 해외 각지로부터 유용한 참고자료를 구하기 위하여 애썼음을 회고한다. 특히 여호수아 12-19장에 나오는 지명들에 대하여 주석하기 위하여 각종 책들과 씨름하며 하나님께 기도로 매달렸음을 고백한다. 경건과 학문이 잘 조화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이어 그는 성경권위의 확증에 그의 주석작업이 얼마나 투신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은 고백을 한다. “오늘날 세계교회의 병통은 성경의 권위를 오해한데서 생긴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권위를 올바로 깨닫고 그대로 믿으며 증거하는 운동은 우리의 시급하고도 중대한 사명이다. 이 주석 끝에 부록으로 ‘성경의 권위’란 논문을 실었는데 이것은 나의 성경신학 서론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서론에서 정암은 일부를 제외하고는(이 일부는 여호수아서의 사건을 목도한 다른 영감받은 분) 여호수아가 여호수아서의 저자라고 단언한다(5:6, 24:26). 또한 그는 고등비평적 학자들의 여호수아서의 복합저작가설을 논박한 후 여호수아서의 목적(오경에 제시된 약속을 지키시는 여호와의 신실성 과시, 신약의 사도행전 위치)을 진술한다(책의 목적 진술은 희귀, 13-17쪽). 사사기 저자에 대한 탈무드의 주장을 존중하는 선에서 영감받은 선지자급 인물이 사사기의 저자라고 판단한다. 이후 로날드 해리슨을 의종하여 정암은 사사기에 대한 고등비평 학설(사사기의 포로기 이후 편집완성 가설)을 논박하고 삿 1:21(삼하 5:6-8)에 의지하여 왕정초기에 저작되었다고 주장한다(178쪽). 룻기의 저자를 탈무드의 증언에 입각하여 사무엘이라고 판단하며 아람어체 히브리어 문장에 의거하여 룻기를 포로기 이후 저작이라고 보는 입장을 간단히 부정한다. 다음으로 룻기의 목적에 대한 여러 학자들의 견해를 논평없이 소개한다(문학적 감동을 위한 문학서적, 위대한 인물을 닮도독 돕는 신앙위인전, 신학적 문서, 다윗의 족보를 가르치는 계보학). 마 1:5, 눅 3:32, 룻 1:1 등에 의거하여 마지막으로 룻기의 역사성을 논증한다.
그리고 이 책의 뒷부분에는 독립적인 페이지 수로 시작하는 부록이 있는데 모두 2부로 구성된 네 편의 글이 있다. 1부 성경에 대한 정통적 변증은 계시의존 사색, 성경의 만전적 영감에 대한 믿음 고백을 다루고, 2부 성경을 오해하는 신학운동은 일반자유주의 신학 및 바르트 신학과 고등비평을 논박한다. 이미 앞의 <성경신학>과 창세기 출애굽기 주석의 총서론에 소개되었으므로 여기서는 생략한다.
사무엘서, 열왕기, 역대기서 주석
박윤선은 이 주석에서 역사적 해석과 신학적 해석을 교직하는데 각 책의 독립성을 무시하고 자신이 설정한 역사적 연대기 순서에 따라 주석한다. 사무엘서, 열왕기, 역대기를 이스라엘과 유다의 통사(通史)를 재구하는 데 서로 보완적인 자료로 보고 이 셋을 하나의 역사 속에 묶어 버린다. 역대기 자료를 사무엘서 주석과 열왕기 주석에 분산 배치하여 주석하는데 겹치는 부분의 주석분량은 다소 많다. 그러나 물론 여기에는 신명기 역사서의 신학이나 역대기서의 신학적 긴장이나 차이, 혹은 병립에 대한 어떤 고려도 없다. 왜 각각 세 권의 책이 정경의 일부가 되어 우리에게 남겨졌는지를 논구하는 데 열의를 보여주지 않는다.
이 세 책들은 가나안 땅에서 펼쳐진 이스라엘 통사, 즉 왕국정립사, 분단사, 멸망과 회복사를 재구하는 데 도움을 주는 특색없는 보완자료일 뿐이다. 자신이 설정한 역사적 기점을 중심으로 각각의 책을 분절하여 주석한다. 따라서 사무엘서나 열왕기서나 역대기는 서로 뒤죽박죽이 되어 주석되고 있다. 이 각각의 책이 갖는 신학적 메시지나 아젠다는 이런 평탄화작업의 희생물이 되어 버린다. 이 주석서의 마지막 부분은 바벨론에서 돌아온 자들 및 사울의 족보를 다루는 역대상 9:1-43에 대한 주석이다(616-679쪽). 역사적 사건을 다루지 않는 관계로 이 족보가 주석서의 마지막에 편집된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이 족보를 처음에 배치했던 역대기 저자의 신학적 의도는 충분히 살리지 못했다.
이 세 책의 총서론에서 박윤선은 저작자에 대한 고등비평적 학설(자료비평적 가설, 복합자료가설)을 비판한다(17-21쪽). 그는 각 책의 특징을 주목하는데 지극히 상식적인 선에서 그친다. “사무엘서와 열왕기서는 정치적이고 역대기는 종교적이다”(21쪽). 그는 역대기서가 단지 창세기, 사무엘, 열왕기를 어지럽게 섞어 놓은 책이 아니라는 점을 인정했으나 역대기서의 신학적 고유가치를 천착하는 데 전혀 관심이 없다. 그는 이 세 책을 역사실증주의적 혹은 범역사주의적 관점에서 주석하고 있다. 이 세 책을 관통하는 역사는 메시야의 도래를 향하여 전진하는 역사일 뿐이다. 당대의 역사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역사를 창조하고 향도하는지에 대한 주석적 관심이 다소 결여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사야 주석
정암은 이사야를 주전 800년대 예언자라고 말함으로써 약간의 연대착오를 보인다(아래 6:1 주석 논평 참조할 것). 그는 신약시대의 영광을 예언하는 이사야 35장과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예언하는 53장을 이사야서의 중심이라고 본다(머릿말, 7쪽). 이사야 주석 서론에서 정암은 구약예언의 성격을 논하면서 아브라함 퀴에넨 등의 종교사학파적 입장을 논박하고 구약예언의 독특성, 즉 이스라엘 예언자의 독특성과 그들의 예언계시의 수납방법, 예언 수납 경험의 본질 등의 독특성을 옹호한다(15-16쪽). 다음으로 그는 에드워드 영 박사의 견해를 바탕삼아 이사야서 저작설과 복합저작가설, 복합적 구성 등에 대한 고등비평 계열 학자들(로버트 로우트: 이사야의 진정성 예언을 운문에서만 찾음; 18세기 말[1789년] 아이혼과 되덜라인은 40-66장을 1-39장과 구분하여 다른 저자의 작품이라고 주장; 1892년 버나드 둠은 이사야 3분설 주장; 1917년 헤르만 궁켈은 이사야 예언의 전승과정에서의 긴 구전단계 상정)의 견해를 논박한다. 그는 1-39장과 40-66장에서 발견되는 본문들간의 관련성(28:5=62:3; 29:23=60:21; 29:18=42:17; 30:26=60:19; 11:6=65:25)을 토대로 1-66장 전체가 이사야의 단일저작물이라고 판단한다. 그 외에도 정암은 이사야를 한 저자의 책으로 상정하고 인용하는 20여곳의 신약인증을 이사야 단일저작설의 간접적 증거로 제시한다(17-19쪽).
머리말에서는 이사야를 주전 800년 경의 예언자라고 말한 정암이 6:1 주석에서는 주전 758년 경, 즉 웃시야가 죽은 해 이사야가 예언자로 부름받았다고 말한다. 이것은 사실의 오류인가? 아니면 “주전 800년”은 어림잡아 말한 숫자인가? 놀라운 것은 정암이 이사야가 본 그 높이 들린 보좌 위에 앉아계신 야웨가 바로 그리스도라고 본다(요 12:41 근거)는 것이다(74-75쪽). 이런 입장은 양태론적인 군주신론 같이 들린다. 정암은 여러 곳에서 이사야서를 주전 8세기 당대의 역사 빛 아래서 먼저 해석하지 않고 바로 그리스도의 구속역사에 대한 예언이라는 맥락에서 읽으려고 한다. 이런 입장은 자칫 기독론적인 과잉해석을 유발시켜 가현설적인 예언이해로 흐를 가능성이 있다. 7:14의 임마누엘의 탄생에 대한 정암의 주석은 이런 사례로 보여준다. 그는 임마누엘 예언을 메시야 예언으로 읽지 이사야 당대에, 즉 아하스와 다윗 궁중에 이 예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전혀 해명하지도 않고 관심도 보이지 않는다. 이런 가현설적인 기독론적 해석은 이사야 당대가 갖는 고유한 계시사적 의미를 박탈하거나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91-93쪽). 똑같은 비판이 이사야 9장(106-109쪽)과 11장 주석(124-138쪽) 부분에도 해당된다. 정암에 따르면 이사야는 성령의 감동을 받아 당대의 청중에게는 암호처럼 들리는 예언을, 즉 메시야 시대에 일어날 일을 말한 것에 불과하다(111쪽). 아예 정암은 40장부터는 모든 예언을 교회에 대한 예언으로 해석해 버린다(375-377쪽). 42, 49, 50, 53장은 메시야에 대한 예언으로 해석하고 그것들의 당대적 의미(주전 8세기 혹은 포로기)는 전혀 석명하려고 하지 않는다(502-515쪽). 55장 주석에서 그는 언약신학의 대요를 설교형식으로 잘 정리한다. 정암은 콕세이우스 등 칼빈주의 계열의 언약신학자들의 입장을 긍정한다(528-537쪽). 그는 “하나님께서 인류를 사용하시는 방편이 언약이다... 기독교의 구원은 하나님의 계약성취다”라고 말한다. 내용 분해를 위해 정암은 반즈(Barnes)의 구약론(On the Old Testament)과 조셉 어디슨 알렉산더의 이사야 주석(Commentary on Isaiah)을 따른다. 대체로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정암의 2차 자료 사용시 제공하는 자료정보 서지정보 등은 다소 불충분하다.
예레미야, 예레미야 애가 주석
예레미야 주석 서론은 예레미야의 생애 개관(주전 628년 선지자 취임), 예레미야 저작설 옹호, 본서의 문학적 신학적 통일성(복합구성 가설 비판)에 대한 논의, 예레미야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의 연표를 포함한다. 예레미야서는 고등비평가들이 제기한 쟁점이 비교적 적어 평주가 하나도 달리지 않았다. 다만 설교재료 및 설교(50여편의 설교)를 비교적 많이 첨부한다. 이 주석서의 마지막 부분(애가 주석 바로 뒤)에 구약예언의 성격을 논하는 부록이 첨부되어 있다(595-600쪽). 성경 예언자들의 계시수납 방법의 독특성과 성경 예언의 독특성을 논하는 한편, 이방 예언자들과의 유사성이라는 맥락에서 이스라엘 예언자를 바라보는 아브라함 퀴에넨 등을 비판한다(595쪽). 그 다음 구약정경의 결정원리(저자들의 영감성 바탕)를 논하고 구약성경이 영감된 사실을 증거하는 성경 내증을 제시한다. 여기서 그는 예언자들의 말씀/계시 수납은 이교도적인 탈혼 상태에서 이뤄지지 않았음을 한층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구약 외경을 나열하고 그것들이 정경으로 수용되지 못한 이유를 말한다. 그 중에서 “외경은 신약에서 인용된 적이 없다”는 논평(599쪽)은 나중에 다른 주석서에서 약간 수정된다. 정암은 히브리서나 유다서 등이 외경 각각 마카베오 하와 에녹서를 인용한 점을 의식하고, 신약이 일부 외경 구절을 인용하거나 인증했다고 해서 그것이 외경 전체를 정경으로 간주했다는 증거일 수 없다고 말한다.
예레미야서는 예언서이면서도 예언자의 프로파일과 활동단계가 어느 정도 포착되는 전기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 어느 정도 서사적 구조를 존중하며 주석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정암의 주석은 예레미야서의 서사적 문학적 전진(literary movement)과 구조를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절 단위의 분절적 주석, 말씀의 교훈화, 윤리-도덕화를 지향하는 설교들은 예레미야서에 바탕하지 않고도 작성할 수 있는 설교다. 모든 성경의 저자를 하나님이라고 보는 관점이 지나치게 우세하여 인간 저자의 고뇌와 영적 분투와 탄식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개혁주의는 하나님의 아가페와 인간의 종교적 상승감정이자 열정인 에로스를 동시에 주목하는 균형의 신학전통인데 정암의 주석은 대체로 인간보다 하나님께 중심초점이 옮겨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면 정암은 예레미야 29장에 대한 주석 과정에서 기도, 소망, 순종이라는 설교주제를 착안해 낸다(310-313쪽), 35장의 여호야김의 예레미야 말씀 두루마리 분서 사건을 중심으로 구성한 설교재료 부분에서도 정암은 예레미야가 당한 고뇌에 별다른 주목을 하지 않고, 대신 성경을 불사른 자의 죄, 성경기록의 목적(성경기록의 목적은 역사적 사건으로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를 후세에 전하기 위한 것이며 그것은 역사적 제한을 경유하여 전파되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주장, 417쪽)을 논한다(416-417쪽). 오히려 여기서는 배척받은 예언자의 탄식 등에 대한 설교자료를 뽑아내는 것이 개혁주의적인 균형감각이 아닐까?
예레미야 애가 주석 서론에서 정암은 예레미야서와의 문체상, 어휘상, 신학상의 연속성을 들어 예레미야 저작설을 옹호한다. 고대의 전승과 역본들 모두 예레미야 저작설을 인정한다는 점을 들어 바벨론에 대한 두 책의 다른 태도(예레미야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유다를 징벌하는 자 바벨론, 애가에서는 하나님께 징벌을 받는 자 바벨론) 때문에 두 책의 저자가 다르다고 부인하는 비평학자들을 논박한다. 여기서도 다수의 정암 설교가 구체적 역사성과 맥락성이 사상(捨象)된 채 보편적인 인간에게 외쳐지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재해석되고 있다(3:19-41에 대한 주석 후 설교, “하나님께로 돌아가자,” 579-580쪽). 애가 당대의 청중들의 입장에서 들려진 설교로 재구성된 후에야, 이차적으로 보편적인 인간을 하나님의 회개외침으로 재해석되어야 하지 않을까?
에스겔, 다니엘 주석
이 책의 서론(15-22쪽)에서 정암은 종교사학파적 종교진화론의 관점에서 구약종교를 이해하지 않고 오히려 구약계시의 점진적 전진성을 옹호하고 종교사학파적 이스라엘 종교이해(이스라엘 종교의 이방기원, 고대 근동 문화적 종교적 조우의 산물, 제사제도의 이방기원, 예언제도의 고대 근동 맥락성)를 비판한다. 아울러 그는 예레미야서 주석 서론에서처럼 구약성경 예언제도의 독특성과 신적 기원을 옹호한다(신 18:9-22; 민 12:1-8). 더 나아가 하나님의 정통계시가 어떻게 고대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에게 전달되고 계승되었는가를 논하며 참된 예언자(모세를 통해 주신 계시의 계승자들)들이 성경의 저작자였다고 주장한다(게르할더스 보스의 <성경신학> 의종). 또한 예언자들의 계시수납 상황, 계시 수납경험과 이방 종교의 탈혼적 영매자들의 경험의 차이를 논한다. 결국 이스라엘 예언자들의 계시수납과 기록은 전혀 독특하다고 주장한다. 또한 19세기 구약학자인 구스타브 횔셔 등의 심리학적 예언이해를 논박한다. 마지막으로 에스겔서의 복합저작가설을 비판하고 탈무드의 증언(대회당 총회 사람들이 에스겔서와 소예언지서를 기록했다고 증언)을 창의적으로 해석하여 에스겔서의 에스겔 저작설을 실체적으로 옹호한다. 원저자 에스겔이 쓴 원본 에스겔서를 총회가 편집했다고 보는 수정된 에스겔 저작설인 셈이다.
다니엘서 주석 서론에서 정암은 탈무드의 증언(총회사람들이 다니엘을 썼다)을 바탕으로 다니엘의 실체적 저작 가능성을 옹호한다(333-334쪽). 다음으로 그는 다니엘서의 난제들을 골라 그것들을 둘러싼 고등비평가들의 주장들을 소개하고 그것들을 논박하고 있다. 그것들은, 시락의 아들이 저작한 지혜서는 왜 다니엘서의 존재에 대하여 침묵하는가? 왜 다니엘서가 이른 시기부터 정경화되었다면 다른 문헌에 인용되지 않았을까? 주전 2세기 전후에 등장한 묵시문학과 다니엘서가 너무 유사한 것은 다니엘이 그 시대에 저작된 책임을 시사하는 것이 아닌가? 등이다. 다니엘의 미래 예언은 정통예언자들의 예언(근접 미래 예언)과 다르고 오히려 묵시문학의 미래예언과 유사하고, 또 11장 등의 상황이 주전 2세기 마카베오 항쟁시기와 부합하는 점 때문에 그것을 주전 2세기에 저작된 책이라고 보는 비평적 학자들의 견해를 두 가지 이유로 논박한다. 첫째, 후대의 역사를 너무 정확하게 묘사하는 것은 성령으로 예언할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다니엘의 묵시문학과 다른 위경의 묵시문학(희년서, 바룩서, 12족장 유언 등)과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정암은 다니엘이 예수님이 인정한 예언자임을 들어(마 24:15) 다니엘의 예언자됨과 다니엘서의 역사성을 둘 다 옹호한다(335-336쪽). 이 역사성 옹호를 위하여 정암은 1-6장과 11장의 경우 내용분해 앞에 ‘역사성’에 대한 논의를 배치하여 다니엘서의 상황을 바벨론-페르시야 제국 초기맥락에 넣는다. 특히 11장의 주석에서 이 장이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 시대를 너무 정확하게 묘사한다는 이유로 주전 2세기 저작이라고 보려는 입장을 비판한다. 정암은 누가 위조된 문서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겠는가?( 즉 2세기에 위조된 문서를 주전 6세기 예언자 다니엘의 예언집으로 받아들이겠는가?)라고 반문하며 정암은 하나님의 성령이 지배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미래예언을 정확하게 생생하게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511-512쪽).
그러나 7-12장의 묵시부분에 대해서는 그가 역사적 맥락에 논의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다니엘서를 예언서로 보는 자신의 주장이 좀 더 설득력을 갖기 위해서는 정암이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장르구분에서 다니엘이 예언서가 아니라 성문서에 포함되는지에 대하여 적절한 설명을 제시했어야 한다(정암 또한 다니엘서를 성문서에 포함). 다니엘서는 정암에게 오로지 메시야 예언집으로 의미있게 풀리는 것처럼 보인다.
소예언서 주석
오늘날 학계의 입장에서 보면 정암의 소예언서 저작연대 혹은 소예언자들의 활동연대는 약간 100년 정도 이른 시기로 설정되어 있다. 오바댜, 요엘은 주전 9세기 예언자로, 요나와 아모스는 주전 9세기-8세기 말에 걸쳐 활동한 예언자로 추정한다(여로보암 2세의 연대 추정이 아예 오류). 호세아, 미가는 주전 8세기 말 예언자로 나훔, 하박국, 스바냐를 주전 8-7세기 예언자로 추정한다. 학개, 스가랴와 말라기의 연대만 주류 의견과 유사하다. 전체 서론은 예언자들의 계시수납, 예언의 신적 기원을 옹호하는 단문이 실려 있다. 12소예언의 공통사상을 주목한다(열국 통한 이스라엘 징계, 이스라엘 민족 열국 분산, 열국 멸망, 이스라엘 남은 자 위로와 회복, 메시야 오심으로 남은 자 구원, 열방이 야웨께로 돌아옴)(9-11쪽).
호세아서를 완전한 비유로 보고 호세아의 행위를 상징적 의미를 가진 계시라고 본다. 가상생활에 관한 명령이라고 본다(호 1:2)(16-18쪽). 요엘서에 대한 포로기 이후 저작설을 반박하고, 오바댜서에 대한 풍유적 해석, 문자적 해석 둘 다 거부하고 전형식 예언으로 해석한다. "메뚜기" 재앙은 예언자 당시에는 사실이었으며 미래에 다가올 군화(전쟁 화)의 전형으로 보는 관점이다(101-103쪽). 요엘서 주석은 각 장 앞에 각 장의 중심사건 혹은 상황을 개관하고 설명하는 대의(大意)가 먼저 나온 후 내용분해-해석으로 진행된다. 요엘서 주석에만 중간제목이 해석 한 가운데 붙여져 있고, 그 중간제목에 초점을 맞춘 주석이 이뤄진다.
아모스서 주석은 기독론적인 주석이 아니라 역사적 문법적 주석에 가장 이상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아모스서를 당대의 역사적 정치적 맥락에서 해석하려고 한다. 박윤선은 카일과 델리취를 따라 오바댜서의 연대를 예레미야보다 훨씬 이른 시기로 추정한다. 갈대아인들의 침략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이전에 있었던 블레셋과 아라비아의 침략을 무대로 예언한 것이라고 본다. 요나서의 역사성을 옹호하는 데서부터 요나서 주석을 시작한다. 박윤선은 다른 곳에서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역사-비평적 방법론을 극복하기 위하여 레오폴트 폰 랑케(what really happened?)식의 역사실증주의에 과도하게 호소한다. 요나서의 경우 인구 12만명이 살던 니느웨는 산헤립 이후(BC 704-681년)에 “큰 성”(수도)이 되었는데, 어떻게 주전 750-745(정암의 연대추정으로는 824-783 BC)년에 활동했던 요나(왕하 14:25)가 니느웨에 갈 수 있단 말인가?(BC 883[앗수르나지팔 II세]-612년의 행정수도는 Calah[Nimrud]---->BC 722-705년에는 Dur Sharrukin이 수도--->BC 704년 산헤립이 수도 니느웨로 천도[BC 704-681. 당시의 인구 15-10만명) 50년 이후에 올 이방 청중을 50여년 후에 수도가 될 도성 사람들을 향하여 마치 당대의 청중에게 말하듯이 말할 수 있는가? 성경의 영감성과 신언성과 계시성은 역사성보다 더 큰 개념이 아닌가? 랑게 주석을 따라 저자는 미가의 활동연대를 주전 8세기 후반으로 추정한다.
전반적으로 미가서 주석도 역사적 문법적 방법을 취한다. 박윤선은 나훔서의 주제가 BC 612년의 니느웨 멸망에 관한 예언임을 인정하고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나훔 예언자의 활동연대를 BC 710-699년으로 추정한다. 하박국서를 주전 7세기 중엽(BC 650-628년)으로 설정하는 저자는 당대의 역사적 맥락에서 해석하고 있다. 스바냐서도 거의 비슷한 시기의 예언자로 추정한다. 학개, 스가랴(BC 519년 경), 말라기(BC 433-424년)의 연대 추정은 지배적 학설과 유사하다.
욥기, 전도서, 아가서 주석
박윤선은 먼저 욥기의 저자와 그것의 복합저작가설(서문 산문부와 운문의 이질적 기원과 유래설)에 대한 고등비평설을 논박한다. 욥기의 저자를 모세라고 보는 탈무드의 견해를 취하기보다는 인간 저자 미상설과 성령저자설을 주장한 네들란드의 W. B. 렌케마(바빙크)의 입장을 취한다. 욥기 주석에는 두 개의 특별참고가 추가되어 있다. 하나님의 형체 문제를 다루는 특주(64쪽, 교부들의 견해와 종교개혁자들의 견해 취합)와 역사와 계시를 다루는 긴 특별참고(346-359쪽)가 그것이다. 욥기 38-41장 주석 안에 배치되어 있는 이 둘째 특별참고는 박윤선의 역사실재주의(실증주의)적 입장을 대변하는 글이다. 자연계시, 그리스도를 통한 계시, 그리고 성경을 통한 계시를 다룬다. 여기서 정암은 역사를 통한 하나님의 계시를 부인하는 바르트를 비판한다. 바빙크를 의거하여 자연계시를 강조하면서 “일반계시나 특수계시는 자명적으로 하나님을 보여주므로 사람은 자신의 반대를 물리치고 그 증거를 받아야 한다”는 바빙크의 말을 인용한다(357쪽). 그리스도를 통한 계시에 대한 논의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이 보통 역사에서 일어나지 않고 참 역사(Geschite)에서만 일어났다고 주장하는 바르트를 비판한다. 정암은 하나님의 계시가 보통 역사 속에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지상 역사에 그냥 나타나셨듯이 하나님의 계시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욥의 거친 절규를 진리를 알기 원하는 성도의 분투 정도로 이해한다(9쪽 머리말). 이 정암의 입장은 욥기의 정경성을 살리는 설득력있는 논평이라고 본다. 9:17에 대한 주석에서 우찌무라 간조의 주석을 비판적으로 인용한다(108-109쪽). 10:18-22 주석에서 창조계시를 강조하는 바빙크의 견해를 우호적으로 인용한다(123-124쪽). 28:12-14 주석에서 정암은 신인식에 있어서 폐단이 되는 인본주의적 자율주의를 비판한다.
전도서 서론에서 저자는 전도서의 원본은 솔로몬이 저작하고 그것을 히스기야와 그의 동료들이 편집했을 것이라고 본다. 전통적 솔로몬 저작설과 탈무드의 히스기야 저작설을 절충하는 입장이다(389-91쪽). 1장 1절을 주석하면서 “예루살렘 왕 전도자”를 아예 처음부터 솔로몬이라고 단정한다(아가의 경우 솔로몬의 아가라고 아예 책 안에 명시). 이것은 주석가로서의 엄밀성을 어느 정도 훼손시킨다. 솔로몬이라는 이름을 쓰지 못할 원저자의 의도를 헤아리지 못하고 저자를 솔로몬이라고 예단함으로써 주석적 지평을 협소화하는 결과를 초래한다(395쪽). 1:12-13 주석 뒤에 배치된 특별참고(“불교의 허무사상”)에서 정암은 전도서의 허무주의가 신학적 허무주의로서 일종의 방법론적인 허무주의인데 비하여 다른 세상 철학과 종교의 허무주의와 다르다고 변증한다(399-403쪽). 먼저 저자는 불교의 존재론적인 염세주의적 허무주의를 윤회설, 열반설과 관련하여 비판한다. 그 다음 불경(금강경)의 지식론적 허무주의를 비평하고 기독교와 불교의 차이를 논한다. 기독교가 불교와 다른 부분은 창조주와 구속주를 믿고 고백하는 것이다. 불교의 목적은 자아발견이라고 본다. 기독교는 어디까지나 인간의 죄성을 믿고 타율주의적 은혜로만 구원받는다고 믿는다. 기독교에 대한 불교의 오해(“기독교의 구원론은 영적 제국주의에 불과하다”)(403쪽)에 응답하면서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을 받는다는 주장이 기독교의 핵심임을 밝힌다. 곧 인간 자력으로 구원을 이루려는 불교를 비판한다.
5:3-7(서원을 지킬 것 강조) 주석 뒤에 나오는 “목사의 칠대 선서”라는 설교(430-433쪽)는 목사직의 위엄과 무거운 책무를 상기시킨다. 본문의 의미를 성직자에게 적용한 셈이다. 많은 경우 정암의 주석집에 실린 설교들은 비교적 평이한, 교훈적, 훈계적인 설교다. 설교의 논리가 깊거나 정교하지는 않으나 삶의 현장과 말씀을 연결하려는 개혁주의적 관심은 그의 설교 모두에 잘 드러나고 있다.
아가서 서론은 아가서의 저자를 솔로몬이라고 말하며 그것의 정경성을 옹호한다. 정암은 아가서를 연애시로 읽는 자유주의자들을 일갈하고 어디까지나 솔로몬의 연애시 형식을 빈 하나님의 사랑 찬양시라고 읽어야 할 것을 강조한다(486-487쪽). 다음으로 정암은 아가서에 대한 유대교 해석사(아가서를 유대 나라 역사에 맞춤으로써 하나님의 유대민족 사랑사로 정리)와 기독교해석사(교부, 중세 해석가들, 종교개혁자들, 현대해석가들: 하나님의 교회사랑 역사의 시적 표현. 역사상의 교회를 어떻게 사랑하시는가?를 노래했다고 본다)를 일별하고 모형적 해석을 주창한다(487-493쪽). 그래서 아가서의 내용 분해 시 모든 중간제목에 그리스도와 교회를 연애시의 두 주인공으로 삼는다. 이 모형적 해석은 아가서가 메시야에 대한 교회의 사랑과 교회에 대한 메시야의 사랑을 표현한 시라고 읽는다. 술람미 여인과 솔로몬의 결혼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영적 연합을 모형적으로 보여준다고 본다(고후 11:2; 엡 5:31-32). 이런 입장에서 시도된 정암의 아가서 주석은 감동적인 사랑의 시라기보다는 일종의 교리문처럼 흐르고 있다. 그는 이 주석에서 왜 아가서를 연애시로 읽으면 안되는 이유를 밝히지 못한다. 개혁주의 주석 원리 중 하나인 문자적 읽기가 정암의 아가서 주석에서는 박해받고 있다. 남녀간의 넘치는 사랑의 절창인 아가서를 일단 문자적으로 읽고 음미한 후에야 정암의 모형적 해석의 길도 열리지 않을까? 남녀간의 강력한 사랑의 이끌림과 매혹적 연합 경험이 뒷받침되지 않고 어떻게 그리스도와 교회의 연합에 대한 시적 신학적 상상이 발생할 수 있을까?
남녀간의 자연스러운 사랑의 절창과 매혹적인 견인을 노래하는데 구사된 많은 관능적이고 육감적인 언어를 정암은 몽땅 매우 힘들게 풍유적으로 주석하고 있다(예. 평주, 1:2 “내게 입맞추기를 원하니”에 대한 해석과 1:4 “왕이 나를 침궁으로 인도하여 이끌어 들이시니,” 507-508쪽). 아가서 7:13에 대한 평주(568-5570쪽)에서 정암은 7:1-5(“배꼽은 둥근 잔 같고...”)에서 술람미 여인의 지체에 대한 관능적 묘사에 치중하고 육체적 미를 숭상하는 방향으로 흐르는 자유주의자들(칼 부데나 힛키지)을 비판한다. 그는 슬람미 여인이 구현하는 미는 이 세상 사람들이 숭상하는 관능미가 아니라 윤리적이고 도덕적이고 영적인 아름다움이라고 말한다. 잠언 31:31과 5:19이 말하는 아름다움을 갖고 아가서를 해석한 것이다. 정암은 “우리는 슬람미 여인의 몸의 지체들의 실제적인 모습이 어떠함에 대하여서는 그다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 다만 우리는 그 지체들에 대한 비유적 진술을 주목하고 그 영적 의미를 취하는 데 치중해야 한다”고 말한다(569쪽). 육체성, 남녀간의 사랑과 연애는 삶의 모든 영역에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를 관철하려는 개혁주의 신학의 중요주제인데 정암은 이 주제를 가볍게 여기는 것처럼 보인다. 다만 마지막 평주(8장 주석 뒤에 배치, 577-578쪽)에서 정암은 남녀사랑과 결혼의 중요성을 시인한다. “경건한 결혼생활과 남녀의 사랑은 순결하다. 그 순결한 사랑은 하나님이 지으신 것이며(창 2:24, 말 2:15) 또한 하나님은 그것으로 예수님과 그 백성의 관계를 비유로 가르치신다(렘 2:12). 그 뿐 아니라 신약의 말씀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부부의 관계로 비유하면서 아가서의 사상을 변형시킨다(고후 11:2; 엡 5:31-32; 계 19:7-8).”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혼남녀가 결혼 전에 아가서를 읽다가 만일 정암의 아가서 주석을 읽는다면 아마도 그들은 각각 다른 책을 읽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도 모른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보기에는 아가서를 일단 남녀간의 사랑노래로 읽어도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는 책이다. 마침내는 아가서를 그리스도와 교회의 사랑노래로 승화시켜 읽더라도 먼저 그 전단계에서 그것을 남녀간의 사랑 절창으로 읽을 수 있는 길을 원천적으로 막을 필요가 있을까? 아가서에 대한 일방적이고 다소 경직된 해석 때문인지 정암은 여기서 설교재료나 설교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시편 주석
시편 주석(제3판 수정증보판, 1966년)은 구성상 다른 주석과 약간 다른 점이 있는데 그것은 내용 분해 앞에 “강요”를 배치한 점이다. 강요는 각 시편 메시지의 진수를 요약한 글로서 그 안에는 설교주제를 뽑아낼 압축적인 논지가 실려있다. 이 주석에는 근대 종교사학파 입장의 시편주석가들에 대한 광범위한 비판이 실려있다. 서론에 “예수님과 그의 사도들의 정경 구약관”이라는 표제의 특별참고가 실려있다. 박윤선은 예수님과 사도들은 구약 39권을 정경으로 받아들이면서도 외경 일부를 관설했다고 보여지는 구절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외경 일부를 인용하거나 인증했다고 해서 그 책 전체의 정경성을 인정한다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사도들이나 예수님이 구전으로 내려오는 사료로서의 어떤 사실(외경에 자세히 기록된 그 사실)을 성령님의 감동으로 발설하거나 정경 기록시 사용했다고 해도 영감원리에 위반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예> 히 11:35 하반절이 마카베오 2서 6:18-7:42 언급; 유다서 14, 15절은 에녹서 2장 인증)(30쪽). 이어 구약성경을 기독교 정경으로 받아들인 초기교부들과 교회들의 수용과정을 논하며 구약성경의 정경성을 옹호한다.
시편의 저작자에 대한 논의에서 박윤선은 대부분을 다윗의 작품이라고 본다. 특히 고라 자손의 시편들은 그들이 직접 저작했다기보다는 다윗이 저작한 시편을 보관하였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아삽의 시”라는 표제가 붙은 시는 아삽에게 돌린다. 그가 다윗 시대의 선견자라는 사실이 뚜렷이 밝혀지고 있기 때문이다(31-32쪽). 박윤선은 시편의 최종결집 시기를 에스라 시대로 보는데 이점에서는 에드워드 영의 입장을 따르는 셈이다.
아울러 박윤선은 시편의 기원에 관한 궁켈(시편의 포로기 이후 기원설, 시편의 개인기도 기원가설)과 모빙켈의 학설(야웨의 신년 왕위 등극 축제시로 사용되었을 법한 제왕시편들[시 24, 29, 47, 48, 93, 95-·100, 114, 149]의 기원에 대한 학설)에 대한 자세한 반론을 한다(33-39쪽). 이처럼 박윤선은 시편들에 대한 양식사학파적인 가설의 부당성을 반박하는데 특히 바벨론 신년축제 제의(혼돈과 싸우는 마르둑 신화)와 관련하여 제왕시편(특히 96편, 97편)을 해석하려는 입장을 강하게 비판한다. 박윤선이 보기에 야웨의 신년 즉위에 대한 언급이 구약 어디에도 없다는 점이 모빙켈의 논지에 가장 중대한 손상을 끼친다. 모빙켈이 야웨의 신년 즉위식 때 불려졌을 시편이라고 분류한 시편들은 실상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법궤를 운반할 때 불려진 노래들이거나 솔로몬의 성전봉헌식 때 불려졌을 것이라고 본다(37쪽).
성경 안에 내장되어 있는 신화적 요소들을 바탕으로 고대 근동의 신화와의 비교를 통해 시편을 해석해 보려는 모빙켈의 종교사학파적 입장을 반박하는 박윤선은 성경에는 “신화”가 전혀 없다고 단언한다(36쪽). 다신론에서 배태된 바벨론 창조설화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지 않았고 성경 종교는 역사적 사건과 사실에 토대를 둔 사건종교라고 주장한다(36쪽). “기독교는 자초지종, 사실주의에 입각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사적 사건을 중심으로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는 성취의 종교다. 다시 말하면, 구약은 그리스도 사건에 대하여 예언하고 신약은 그 예언의 성취를 그리스도에게서 보고 증거한다. 요컨대 우리는 기독교가 계시의존주의를 가지면서 인간의 사상을 도외시하고 또한 어디까지나 사실주의로 일관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36-37쪽). “기독교는 신화를 용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신화를 파괴하는 계시종교다. 신화는 오직 하나님의 계시만이 파괴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인간의 사상은 그 어떤 고차원적이라 할지라도 결국 부패한 사람의 사상으로써 진리 아닌 것을 진리로 만들어낸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근대의 진보된 모든 철학체계도 신화에 불과하다. 칸트의 실체도 신화요 실존주의자의 실존도 신화에 불과하다. 그것들은 다 정제된 신화이다. 아무리 정제되었어도 신화는 신화다”(37쪽). 성경의 모든 기록을 사실 역사로 환원하려는 과도한 역사실증주의는 1950-1960년대 미국 성서신학 운동의 등장과 쇠락과 함께 퇴조한 학풍이다. 브레바드 차일즈, 제임스 바, 랭돈 길키 등의 가열찬 공격에 의하여 역사와 신화의 이분법으로 성경의 역사계시와 이방의 신화 종교를 대비시킨 입장은 그 이후 거센 도전을 받아오고 있다. 프랭크 무어 크로스의 <Canaanite Myth and Hebrew Epic>이라는 저작은 이 점에 대한 종합적인 응답이 될 것이다. 시편 중 제의적 성격이 강한 예언적 시편의 기원을 성전 제의라는 삶의 자리에서 찾으려는 모빙켈의 입장에 대해 박윤선은 에드워드 영(<My Servants. The Prophets>)과 함께 비판적 입장을 취한다(37-38쪽).
시편 주석의 특징은 모두 150여편의 설교가 첨부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 외에도 몇 편의 특별참고가 첨부되어 있는데 이런 글은 특별한 신학 및 신앙사조에 대한 분석과 평가 그리고 그것을 통한 바른 신앙 장려에 초점을 두고 있다(예. 시편 51편 주석 중간에 실린 특별참고 “불건전한 신비주의,” 482-484쪽).
시편 1편 2절의 “묵상하다”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하가”에 대한 주석은 부정확하다. 이 단어는 끙끙대다, 불평하다, 조용히 읊조리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연구적 태도로 조용히 묵상하다”라는 의미로 해석한다(45-46쪽). 박윤선의 시편 주석은 시편이 문예물임을 주목하지 못하고 바른 교리, 바른 가르침, 바른 삶에 대한 교훈을 이끌어내려는 열심히 지나쳐 문학적 영적 감동을 충분히 살려내는 데는 다소 미약하다는 인상을 준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인지 150편의 설교가 중간중간에 배치되어 있는데, 그것은 전체 시편 메시지의 적용을 돕는 차원에서는 유익하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오히려 독자들은 본문의 신학적 문학적 풍요를 향유하는 데는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시편의 신학적 풍성함, 높낮이, 신학적 역설 등에 대한 천착은 그것의 문학적 깊이와 차원에 대한 보다 더 깊은 이해를 요청한다(B. W. Anderson, Out of the Depths). 여러 학자들이 지적하듯이 전권 주석의 위엄에 가려진 주석의 깊이, 넓이, 정확성의 문제는 후학들이 계승해야 하는 짐일 것이다.
잠언서 주석
잠언 일부와 애굽의 아멘-엠-오페 지혜와의 유사성을 강조하는 폰라드를 비판한다. 유일하게 동양고전을 능숙하게 인증하여 잠언서의 신언성과 계시성을 옹호한다(16-18쪽). 표면적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잠언과 사서삼경 등 동양고전은 너무 다르다. 전자는 신본주의, 후자는 인본주의를 대신한다(18-27쪽). 17세까지 공부했던 동양철학이 유일하게 변증의 대상으로 등장하는 곳은 전도서 일부와 잠언서다(사서삼경, 불경, 명심보감 등 인용/인증). 해석학적 지평융합이 강조되는 오늘날에 비하여 성경은 성경을 가지고 해석하고 풀어야한다는 엄격한 칼빈주의적 원칙이 정암으로 하여금 그의 학문적 온축인 사서삼경 등 동양고전에 대한 활용을 억제하였을 것이다. 정암은 잠언서와 전도서 일부에 대해서도 지극히 변증적인 동기에서만 동양철학을 인용하고 있다. 박윤선은 일찍이 자신이 소년 시대에 공부한 한학이 자기 영혼의 구원에 하등의 도움이 되지 못했으며 그것으로 영적으로 영향받은 것이 전혀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성경은 오직 성령의 인도와 감화에서만 깨달을 수 있다.” 그는 성령의 인도와 감화마저도 고상한 동양학적 세계와의 통섭(統攝)을 통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연구적 자세, 경험, 순종, 고난, 기도, 다른 사람에게서 배움을 통해 일어난다고 술회한다.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주석
이 주석은 1979년 9월에 탈고된 성경 66권 전체 주석의 마지막 주석저작물로서 그 뒷부분에 박윤선 개혁주의 신학교안물(변증학, 비교종교학, 복음비평사, 사도비평사)이 첨부되어 있다. 동양철학은 해석학적 지평 융합의 동반자가 아니라 변증의 대상이며, 어떤 신언성과 영감성과 계시성도 갖추지 못한, 그리하여 주로 타기와 배척의 대상으로 평가된다.
아마도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주석서가 저작 연대 및 저작설에 관하여 고등비평학자들과 정암과의 이견이 덜 두드러진 부분일 것이다. 에스더의 역사성 문제는 물론 양측 사이에 쟁점이 된다. 이 주석서의 서론에서는 이 세 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하여 메디아-페르샤 역사와 역대 왕들의 연보를 제시한다(13-24쪽).
IV. 박윤선 구약주석의 의의와 특징
박윤선 구약주석은 성경의 절대적 권위를 높이며 하나님의 주권을 높이며 철저하게 인본주의 자율주의를 배격하고 창조자 유지자 섭리적 보존자 하나님을 밝히 드러낸다. 그는 고등비평은 시도하지 않으나 필요한 경우에 70인역과 기타 역본들을 자주 인용하거나 인증하여 본문비평은 자주 시도한다. 그는 문법적 역사적 해석을 인정하면서도 신학적 종합을 하려고 시도한다. 하지만 이것은 구약 각권 각 장의 신학적 특성을 흐리게 만드는 일종의 평탄작업으로서 신학적 교훈화 작업으로 보일 때가 많다. 결국 훈도적 훈계적 설교적 관심이 그의 신학적 평탄작업을 추동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박윤선은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동시에 성경의 권위 특히 성경의 독자적 신임성을 강조하고 있다. 성경은 성경으로만 해석할 수 있다는 성경의 자기해명성, 자증성을 그는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성경의 저자는 단일 저자인 성령의 말씀으로 각 책의 각 문구는 서로 동일한 기맥을 유지하며 그 일부분을 다른 부분이 밝힐 수 없다. 성경은 초자연적인 사리를 가르치고 있으며 성경의 초자연적인 사리는 초자연적 기록에서만 밝혀진다. 성경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사상과 행위는 인간사상을 초월한 초월주의로서만 기능하고 다른 책으로는 성경을 설명할 수 없으며 성경은 성경으로만 해석되어야 한다.
박윤선은 개혁주의 성경해석방법을 신중하게 따랐는데 그것은 곧 성경의 자증성, 자기충족적 신임성, 충족성, 명백성을 포함하는, 성경의 계시성에 대한 신봉을 의미한다. 그는 한국장로교회가 칼빈주의를 표방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성경해석에 있어서 “성경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윤리를 만족히 실행하지 못하였다”고 진단한다. 이에 비하여 박윤선의 주석은 역사적 문법적 역사해석에 일관된 투신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역사적 문법적 해석이 온전치 못하면 문구들의 표면적 의미만 가지고 서로 다르다고 주장할 수도 있고, 서로 같다고 할 수도 있음을 주목한다. 그는 동시에 표면적으로 다르게 보이는 구절들(성경내재적 주석)이 이면에서 있어서는 서로 같을 수도 있음을 주지시켰다.
이런 균형감각 외에 박윤선은 적어도 원리적으로는 성경주석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인간의 문자로 기록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그는 개혁주의 성경해석을 충실하게 견지하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권의 특징이 혹은 각 개별저자의 특징이 실제주석과정에서 잘 드러나지 못했다. 그의 주석의 특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대부분 박윤선의 주석은 성경의 권위와 정경성을 옹호하며 내증과 외증을 통해 성경본문의 권위를 입증하려고 노력한다. 대부분 그의 주석은 성경주해부분과 설교부분으로 나눠져 있어서 설교부분이 해석부분을 많이 보충해주고 있다(때로는 평탄화하여 본문의 특색을 무색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초보자를 위하여 헬라어와 히브리어를 절제있게 사용하고 있다. 물론 어휘나 단어 설명에 치중하고 있으며 복잡한 구문설명에는 이르지 못한다(구약의 경우 특히). 주석상의 필요를 위해서 언어적 문법적 해석을 시도하는데 이것은 칼빈주의 주석전통의 답습이다. 간하배는 박윤선의 초기 주로 신약주석이 신학적이고 긍정적인 접근을 많이 시도한 반면에 후기 주석(주로 구약주석)에서는 칼빈의 조화적 방법을 더 빈번히 적용한 것같다고 평가한다. 주석 집필과정에서 그는 철저하게 칼빈주의 계열 학자들을 대부분 긍정적으로 우호적으로 인용하거나 인증하였다. 칼빈, 헤르만 바빙크, 벤자민 워필드, 찰스 핫지, 메이첸, 리델보스, 게르할더스 보스, 흐로쉐이드, 스킬더, 흐레이다너스, 랑게, 매튜 헨리, 코르넬리우스 밴틸, 벵엘을 자주 인용하고 인증한다. 확실히 정암의 성경 전권 주석은 그의 “경건과 학문의 결정체로서(이근삼의 조사, 기독신문, 1989년 11월 4일) 성서주석학사의 위대한 업적이면서 동시에 칼빈주의 신학의 효과적인 보급기지였다.
V. 박윤선 주석의 한계와 우리 시대의 개혁주의 주석의 과제
이제 마지막으로 우리는 결론을 대신해서 정암 성경주석의 한계를 살펴보고 우리 시대 개혁주의 주석의 과제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박윤선의 주석의 가장 현저한 한계는 그것이 교회론적 조망과 기독교인들의 관심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이 살고 있던 시대의 교회에 대한 응답이었지 하나님 나라 운동에 대한 포괄적인 관심사에 대한 응답이 아니었다. 개혁주의 신학의 장엄함과 포괄성, 차안적 차원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정암의 주석은 주로 시야와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삶, 성경의 절대적 권위 옹호, 호전적이고 공세적인 고등비평 반박에 치우쳐 있다. 일제시대, 독재치하, 분단체제, 민주화 투쟁기를 거쳐 완성된 그의 주석에는 정통 개혁주의 주석가들이 마땅히 보여야 할 하나님 나라의 대의명분에 대한 관심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부분적으로 언급하나 하나의 포괄적이고 뚜렷한 메시지로 드러나지 않는다. 모세오경과 예언서 등을 주석하면서도 국제정의, 인권, 민주주의와 독재타파 등에 대한 관심이 그의 성경주석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부각되지 않는다. 개혁주의의 전형적 특징인 세상관여적이고 변혁적인 기상이 결여되어 보인다. 정치는 정치가들에 맡겨버린 듯한 정적주의적 무관심이 놀랍다. 예언서 주석에도 공의와 정의를 앞세워 세계를 통치하시는 만유의 주 하나님의 혼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의 주석이 어느 시대, 어떤 질의 역사를 경유한 사람의 주석인지 분명치 않다. 분단체제 하 독재치하를 산 학자의 글인지 식민지 시대의 아픔과 역사단절의 고통에 몸서리치던 신앙의 고뇌가 배어나오기 보다는 아직 한국교회의 주류적 쟁점이 되기 이전의 서구신학의 쟁점들(이성 중시, 자유주의, 종교사학파 논쟁)에 지나치게 몰입한 듯한 느낌을 준다. 이런 점에서 우리 시대의 대표적 개혁주의 신학자 헤셀링크의 지적은 경철할만하다.
개혁주의 전통은 따뜻한 개인적 경건과 격조높은 교회생활을 경제적, 정치적 영역과 아울러 사회적 문화적 영역을 포함한 세상에 대한 총체적인 관심과 결합시켜 양자 모두를 추구한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의 총체성을 진지하게 받아들였고 구약선지자들이 그렇게도 강력히 강조한(물론 주님에 의해서도 결코 간과되지 않았던) 사회정의에 대한 관심을 간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개혁적이 된다는 것은 전 세계에 대한 온전한 복음을 전파할 것을 촉구한다(107)...... 종말론적인 입장에서 볼 때 교회는 결코 하나님 나라와 동일시될 수 없고 단지 하나님 나라를 가리키는 이정표일 뿐이다(108)
둘째, 인간의 역사가 하나님의 영에 의하여 사상되거나 주변화되어 있다. 인간 저자들의 시대와 고뇌와 분투가 부각되지 않아 개혁주의적 균형감각이 다소 결여되어 있다. 칼빈주의 즉 개혁주의를 표방한다고 하면서도 충분히 표방하지 못했다. 성경 저자들과 그들 역사 사이의 대화도 진지하게 이뤄지지 않았고 주석자 자신과 자신의 당대 역사와의 대화가 누락되어 있다. 정암은 역사실증주의적인 성경역사성 옹호에 앞장섰지만 그가 살아낸 당대의 역사에 대한 신학적 비판, 초월적 해석 준거를 제시하지는 않는다. 분단체제, 독재정권과 민주화 투쟁, 식민지 시대의 신사참배는 성경적 주석가에게는 엄청난 쟁점이자 주석적 돌파대상이 된 사건들이 아니었던가? 박윤선의 경우 칼빈주의의 기둥인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대한 강조가 섭리론적인 정적주의를 가져오고 그것이 일제의 신사참배나 독재체제 등에 대한 저항의지를 약화시켰지 않았을까?라는 질문이 생긴다. 그가 그토록 강조한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적이 인본주의의 극치인 일제의 광기어린 식민통치와 군부독재체제에 신학적 저항을 하지 못했을까? 한상동과 주기철 등은 인본주의의 우상인 신사참배에 죽음으로 맞서는 참 보수신앙을 보여주었는데 왜 정암은 역사에 넘치는 악의 세력들에 대해서 무관심 혹은 순응주의적 입장처럼 보이는 소극성을 보였을까? 그가 말하는 칼빈주의 주석원리가 16세기 로마 가톨릭 교황권력체제에 맞선 프로테스탄트의 후예들이 남긴 그 칼빈주의에 얼마나 충실한가? 프랑스 레지스탕스 운동의 뿌리가 16세기 프랑스 개혁교회 개신교도인 위그노의 신앙운동이라는 점은 인상적이다(앨리스터 맥그라스, <종교개혁 시대 영성>). 물론 정암은 그의 주석 여러 곳에서 자기비판적 성찰과 사죄를 위한 고백을 보이고 있다. 다만 철저한 칼빈주의를 관철시키려고 할 때 정암의 주석이 보여주는 전망이나 시야가 다소 불충분하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셋째, 자연계시와 특별계시를 둘 다 강조하는 개혁주의 전통을 살리지 못한 채 동양사상과 철학 등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하였다. 그는 9년 이상 동양사상과 교양을 습득한 인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성경해석에 이것들의 영향을 철저히 배제한다(잠언서와 전도서 일부 인증. 그것도 변증적 반박 차원). 그는 동양철학과 기타 서구 철학 등도 아주 간략하고 일의적인 규정을 통해 기각하고 폐기해 버린다. 어떤 점에서 교조적인 확신이 학자적 엄밀성을 앞지르는 것처럼 보인다. 종교사학파의 방법론이나 역사비평의 학문적 효용에 대한 엄밀한 분석 이후에 내린 판단이 아니고 아예 처음부터 반박하려는 변증적 태도가 앞선다. 그의 주석에서는 유럽 신학사조와 동양철학적 사유의 결합이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 지평 융합이란 개념이 아직 유포되기 전인 데다가 성경은 성경으로만 해석해야 한다는 순결주의 때문에 동양철학 사상을 빌어 성경을 해석해보려는 해석학적 시도는 하지 않았던 것같다.
넷째, 그의 주석은 성서신학과 교의학의 경계선을 그었던 요한 필립 가블러의 성서신학 독립선언에 좀 더 충실했어야 했다. 구약신학은 조직신학(교리)으로부터 독립되어 온 성서신학의 한 분야로서 구약성경의 독특한 신학적 자산(資産)을 발굴하고 기독교신앙에 상관시키는 학문이다. 1787년 3월 30일 요한 필립 가블러(Johann P. Gabler)가 독일 알트도르프(Altdorf) 대학 교수 취임식에서 가블러는 “성서신학과 교의신학의 바른 구분과 각각의 특수한 목적들에 관하여”라는 제목으로 강의하였는데, 역사적 방법으로 연구되어야 할 성서학과 교훈적인 목적으로 연구되어야 할 교의학을 구분하였다. 그런데 정암의 주석에는 교훈을 찾아내려는 의도가 그의 구약신학이 주창한 구원계시의 발전과정을 추적하려는 의도보다 더 부각될 때가 많았다. 다시 말해 그가 말한 구약신학이 그의 주석작업에서 충분히 관철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몇 가지 한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정암의 주경신학을 피해 갈 수 없고 그것을 창조적으로 계승할 위치에 있다. 여러 학자들이 다같이 인정하듯이 한국 기독교 토착 주석이 거의 전무하던 시대에 박윤선이 선구적인 주석사역을 감당한 것은 아무리 칭찬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정암의 후학들이 안고 활동하는 현재 한국사회와 교회는 좀 더 자세하고 포괄적이고 깊은 성서주석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런 점에서 박윤선의 주경사역에 대한 권성수의 평가를 참조하여 정암의 주석이 남겨준 과제를 착안해 보고자 한다.
첫째, 우리는 정암이 제시한 해석원리들을 더 깊이 연구하고 학문적으로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역사적 문법적 신학적 해석을 강조하는 전통주의 칼빈주의 주석 전통 내에서 발전된 새로운 주석적 성취를 수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문예적, 수사학적 읽기, 유대교적 자세히 읽기). 그러나 한 걸음 더 나아가 후학들은 이 칼빈주의적 개혁주의의 주석원리를 교조화하기보다는 더 다양한 입장의 주석전통과의 대화를 통해 풍성해지고 충실해 질 수 있는 길을 찾아보아야 한다. 고등비평으로 일컫어지는 역사비평을 활용하면 경건에 손상이 오고 하나님 말씀의 신언성이나 영감성 계시성이 약화된다는 일의적 생각에 매몰되지 말아야 한다. 역사성과 문학성을 대비시켜 반드시 역사적으로 입증된 사건만이 계시적 사건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성경에 엄청난 부담을 안길 수 있다. 요나서의 경우 신학적 문서로 일단 받아들여도 된다. 요나서와 아가서, 에스더서의 경우 그것들의 역사성을 너무 옹호할 수 있다는 자신보다는 역사적 개연성을 제시하는 정도에 그쳐도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권성수도 이성과 경험을 중시하는 역사비평학자들의 자율주의와 성경 자체의 내용 비판을 배격하되 역사비평의 긍정적 효능과 성취를 수용하는 해석원리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다.
또한 우리는 정암의 개혁주의적 주석전통을 협애화하지 말고 그것의 원래 의미를 잘 살리는 주석전통을 확립할 필요가 있다. 권성수는 성경의 지평과 현대 해석자의 지평융합의 필요성을 지적한다. 개혁교회는 개혁되어야 한다는 개혁교회의 원리를 준거삼아 신앙이 돈독한 일반학자들과 협력하여 성경으로 현대를 변혁하는 일에 더욱 투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의 생명의 책이므로 우리는 정암의 주석전통의 교조화와 고착화에 치중하기보다는 하나님의 말씀과의 생명적 만남을 심화시킬 길을 찾아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포괄적인 관심에 눈뜰 때에만, 그리고 하나님께 부단한 순종을 드리고 신앙실천을 축적해 갈 때 우리는 만남과의 더 풍성한 생명적 만남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정암이 성경 전권을 주석함으로써 놓친 깊이의 결여를 어떻게 보충할 것인가를 고민하여야 한다. 각권 주석에 대한 깊이 있는 주석사역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많은 경우 정암의 주석은 원문에 대한 사역(私譯)이나 본문비평을 거치지 않고 이차자료의 판단에 의존할 때가 많다. 사역이나 본문비평에서 비약적 역량을 쌓을 때 우리 후학 공동체는 정암의 유산을 창조적으로 계승하여 정암의 선구자적 주경사역을 더욱 값진 유산이었음을 증시(證示)할 수 있을 것이다. *
[출처] 박윤선의 구약신학과 주경신학|작성자 청산
'신앙 인물! 신앙 간증 동영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헬렌 켈러 3중 고통, 앤 설리번 (0) | 2021.11.27 |
---|---|
김동수 세브란스 어린이병원 병원장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 월간리치 승인 2013 (0) | 2021.11.21 |
김홍전 목사의 설교세계 (0) | 2021.11.09 |
죠지 뮬러가하나님의 뜻을 알고 행했던 방법 (0) | 2021.09.14 |
어거스틴(아우구스티누스)의 생애 (0) | 2021.09.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