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 두 뿌리
거룩한 삶을 살고,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고, 주님의 뜻대로 살고, 주님으로 살기위해서는 죄의 큰 두 뿌리를 뽑아버려야 한다.
이것을 뽑지 않으면 계속해서 죄를 짓게 되고 반복적인 죄를 짓게 되고 죄가 끊어지지 않는다.
이 두 뿌리가 무엇인지 살펴보고 십자가 복음의 말씀으로 완전히 뽑아버리고 ‘자아 충만’이 아니라 ‘주님 충만’으로 살자.
죄의 두 뿌리는 무엇인가?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사탄마귀가 천국에서 쫓겨나기 전에 어떤 마음을 가졌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12)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13)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14)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사14:12-14)
(17)네가 아름다우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며 네가 영화로우므로 네 지혜를 더럽혔음이여 내가 너를 땅에 던져 왕들 앞에 두어 그들의 구경 거리가 되게 하였도다
(겔28:17)
사14:12-15절까지와 겔28:14-18절까지는 사탄마귀의 기원을 말씀하고 있다.
타락한 천사장인 사탄마귀는 천사장으로 있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뛰어나게 만든 천사였다. 한마디로 천사장 중에 천사장이었다.
이 천사장이 너무나 완벽하게 만들어진 자신을 보고 교만한 마음이 생겼다.
자기가 하나님이 되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이다. 하나님의 보좌가 탐이 났다.
자기가 하나님 되고픈 마음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루시퍼가 수많은 천사들을 꾀어서 천상에서 구테타를 일으켰다.
하나님의 보좌를 찬탈하려다가 천국에서 우주로 쫓겨나버렸다.
이 천사가 바로 사탄(마귀)이 된 것이다.
사탄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되려는 두 가지 큰 죄가 있었던 것이다.
바로 ‘교만’과 ‘욕심’이다.
하나님이 되려는 교만한 마음이 생겼고 보좌에 앉고 싶은 욕심(탐심)이 생겼던 것이다.
이것이 죄의 두 큰 흐름이다.
이것을 사탄마귀는 에덴동산에 살고 있는 아담과 하와에게 심은 것이다.
에덴동산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던 하와에게 접근해서 선악과를 따먹도록 유혹을 했던 것이다.
사탄의 유혹을 받은 하와는 선악과를 보자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워 보였다고 했다.
사탄이 하와에게 선악과를 따먹으면 하나님같이 된다고 하니까 평소에 평범한 과일로 보이던 선악과가 특별한 과일로 보인 것이다.
선악과를 따먹으면 하나님같이 될 것 같은 마음이 생긴 것이다.
하와는 사탄의 말을 듣고 선악과를 따 먹는 순간 마음속에 죄가 들어온 것이다.
이것을 아담에게 주자 아담도 선악과를 먹고 아담에게도 죄가 들어왔다.
결국 아담과 하와에게 들어온 죄의 큰 흐름은 ‘교만’과 ‘욕심’이다.
교만은 하나님이 되고 싶은 마음이요
욕심도 자기도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서 선과 악을 판단하고 싶은 마음이다.
교만과 욕심은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이 되어 있다.
마귀가 하나님이 되려고 했던 교만을 하와에게 심어주었다.
이것을 교만이라고 부르지 않고, 교만 대신에 자칭 하나님 “자아”라는 표현으로 바꾸겠다.
욕심은 그냥 “욕심”으로 쓰겠다.
결국 인간에게 흐르는 죄의 두 큰 흐름은 자칭 하나님 “자아”와 “욕심”(탐심)이다.
이것을 하나님도 인정했다.
(22)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창3:22)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하와에게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의 의미는 아담과 하와가 자기가 중심이 되어서 선악을 판단하는 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자기가 하나님이 되어서 이것은 ‘선’이고 이것은 ‘악’이다고 인간이 하나님이 되어서 판단을 한다는 것이다.
선악을 판단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인데 아담과 하와도 하나님의 위치에서 선악을 판단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 이후에 나오는 모든 인류는 전부다가 자칭 하나님이 되어서 세상에 나오는 것이다.
이 자칭 하나님이 바로 “자아”이다. 쉽게 표현하면 “자존심”이다.
“자아”는 내가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자아(자존심)를 건드리면 난리가 나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인데 당신이 뭔데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느냐고 화를 내는 것이다.
또 하나의 흐름은 “욕심”이다.
(6)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창3:6)
선악과를 보자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탐스럽게 보였다.
한마디로 욕심(탐심)이다.
이 욕심(탐심) 때문에 우상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래서 신약성경에서 탐심을 우상숭배라고 했다.
자칭 하나님 ‘자아’도 내가 하나님이 되었기 때문에 내가 우상이요 또한 욕심(탐심)도 우상숭배이다.
“자아”(자존심)와 “욕심”(탐심) 모두 우상이요 우상숭배이다.
결국은 자아와 욕심을 죽여야 우상을 숭배하지 않게 되고 하나님만을 섬길 수 있는 것이다.
이 죄의 두 큰 흐름을 깨닫지 못하면 아무리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도 도루묵이 되는 것이다. 자아와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면 할수록 오히려 자아가 점점 강해지고 두꺼워지고 커지게 된다. 점점 욕심이 커져서 장로 권사 안수 집사 되려고 한다. 예수 믿고 기도 많이 하고 헌금 많이 하고 금식 많이 해서 물질 축복을 받자고 한다.
수많은 영적 지도자들은 교회를 성장시키고 전도를 독촉하고 예배당을 크고 화려하게 지으려고 한다. 수양관을 멋지게 지으려고 한다.
자아와 욕심이 십자가에서 죽은 성도나 지도자는 이러한 것에 관심이 없다.
주님과 친밀함속으로 들어가서 주님과 사랑의 교제를 나누고 주님의 뜻을 알고 주님의 뜻대로 살려고 한다.
주님과 온전히 연합하여 하나 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이렇게 할 때에 모든 교회의 사역은 주님이 기뻐하는 사역이 되고 주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고 난 다음에 안수집사 권사 장로가 되어야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
이렇게 되고 난 다음에 교회가 성장해도 선교해도 무엇을 해도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다.
이 “자아”와 “욕심”을 처리하는 것이 가장 우선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목적이 바로 이것이다.
(6)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롬6:6)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고 새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 옛 사람의 모습이 자아와 욕심이다.
(20)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24)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5:24)
옛 사람 안에 두 개의 기둥이 자아(자존심)와 욕심(탐심)이다.
내 눈에 들보가 자아와 욕심이다. 이것을 빼고 형제의 눈의 티를 빼야하는 것이다.
십자가는 단순히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죄를 없애려고 오셨다.
인간의 죄를 십자가에 완전히 못 박아 버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완전히 회복시키려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4년 동안 십자가 복음을 전했는데 십자가 복음이 제일 잘 안 되는 사람이 자아(자존심)가 강한 사람과 욕심(탐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특히 잘 안되는 사람은 자아(자존심)가 무척 강한 사람이었다.
가장 무서운 우상, 가장 무서운 죄가 ‘자아’라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자아가 얼마나 강한지 깨달아야한다.
나의 자칭 하나님 자아가 얼마나 강한지 다시 한번 진단을 해보시기 바란다.
자아(자존심)의 특징이 있다. 몇 가지 특징을 살펴보겠다.
▸자아가 강한 사람은 남의 충고를 듣는 것을 싫어한다.
▸자아가 강한 사람은 자기의 약점을 이야기하면 마음이 상해서 못 견딘다.
▸자아가 강한 사람은 자기의 잘못된 생각이나 주장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끝까지 변명한다.
▸자아가 강한 사람은 자기에 대해서 안 좋은 쪽으로 이야기를 하면 민감하게
받아들인다. 예를 들어 잠을 못 잔다.
▸자아가 강한 사람은 자기의 생각을 끝까지 관철 시키려고 한다.
▸자아가 강한 사람은 사소한 이야기에도 웃어넘기지 않고 흥분해서 대든다.
▸자아가 강한 사람은 주로 혈기와 분노를 잘 낸다.
▸자아가 강한 사람은 순종을 잘 하지 않는다.
▸자아가 강한 사람은 책망 설교할 때에 말씀을 거부한다. 마음 문을 닫는다.
▸자아가 강한 사람은 이상하리만치 자기 자신을 모른다.
▸자아가 강한 사람은 명령하는 것을 제일 싫어한다.
▸자아가 강한 사람은 자기 생각, 자기 신앙관이 절대로 옳다고 생각한다.
▸자아가 강한 사람은 자기의 생각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울타리 안에 자 기 생각이 옳다고 고집한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자아가 강한 사람은 아주 이기적이고 인본주의 생각이 가득하다.
▸자아가 강한 사람은 비판과 판단 능력이 강하다.
이것을 보고 자신을 진단해보시기 바란다.
자아가 강하면 날마다 이렇게 묵상하고 선포하면서 십자가의 복음으로 죽이시기 바란다.
“나의 자칭 하나님, 내 자아는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완전히 못 박혀 죽었다! 아
멘”
삶 속에서, 생활 속에서, 인간관계 속에서 자아가 드러나면 그 순간 십자가에 자아를 못 박으시기 바란다.
이렇게 마음으로 하라. “아버지~~ 내 자아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자아가 죽을 때까지 계속해서 마음속으로 하면 자아가 죽어지고 사람과 부딪치지 않게 된다.
십자가 복음은 자칭 하나님 자아를 죽이는 것이고 욕심을 죽이는 것이다.
이것이 되면 주님이 내 안에 왕으로 사시는 것이다.
이것이 성령 충만이요, 이것이 예수 충만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형상이 온전히 회복되는 것이요, 이것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는 것이다.
이렇게 된 성도가 주님과 친밀한성도요 주님과 동행하는 성도요 주님으로 사는 성도요 신부단장 성도가 되는 것이다.
이런 성도는 사탄 마귀가 가장 무서워하는 성도요 건드릴 수 없는 성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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