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에서의 죄의 개념 12가지
신약성경에는 죄를 묘사하는 단어가 최소한 12개가 있습니다. 하나씩 살펴볼까요?
1. 카코스(Kakos)
'나쁜 것(bad)'을 의미하는 단어로, 이 단어의 부사형은 때때로 '육체적으로 나쁜 것(physical badness)' 즉 질병(disease)을 의미하기도 하지만(막 1:32), 이 단어의 형용사형은 보통 '도덕적으로 나쁜 것(moral badness)'을 지칭합니다(마 21:41; 24:48; 막 7:21; 행 9:13; 롬 12:17; 13:3-4, 10; 16:19; 딤전 6:10).
2. 포네로스(Poneros)
이 단어는 '악한 것(evil)'에 대한 기본적인 용어로, 거의 대부분 '도덕적 죄악(moral evil)'을 지칭하는 단어로 사용되고(마 7:11; 12:39; 15:19; 행 17:5; 롬 12:9; 살전 5:22; 히 3:12; 요이 11), 악한 영이라 불리는 귀신을 지칭할 때에도 이 단어가 사용됩니다(눅 11:26; 행 19:12).
3. 아세베스(Asebes)
'경건치 않은 것(godless)'이라는 뜻을 가진 이 단어는 거의 대부분 베드로후서와 유다서에서 경건치 않는 배교자라는 표현으로 나타납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경건치 아니한 자라고 지칭됩니다(롬 4:5; 5:6).
4. 에노코스(Enochos)
이 단어는 '죄책(guilt)'을 의미하는 단어로 대개 자신의 범죄가 죽기에 마땅한 경우를 지칭할 때 이 단어가 사용됩니다(마 5:21-22; 막 14:64; 고전 11:27; 약 2:10).
5. 하말티아(Hamartia)
이 단어는 죄에 대해 가장 흔히 사용되는 단어로서 신약성경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약 227번 등장하는 단어입니다. 어떤 작가가 죄에 대해 한가지 용어만을 꼭 사용해야 한다면 그는 이 단어를 사용했을 것입니다. 이 단어가 은유하고 있는 원래 뜻은 '표적을 빗나가는 것(missiong the mark)'입니다. 그러나 구약 성경에서의 챠타(chata)처럼, 이 단어는 부정형의 개념뿐만 아니라 '그릇된 표적을 맞추는 것(hitting some wrong mark)'이라는 긍정형의 개념도 포함하고 있는 단어입니다. 복음서에서 이 단어가 사용될 때, 이 단어는 거의 대부분 용서 혹은 구원을 언급하는 문맥에서 발견됩니다(마 1:21; 요 1:29). 이 단어와 관련된 다른 몇 개의 중요한 참고구절로는 사도행전 2:38; 로마서 5:12; 고린도전서 15:3; 고린도후서 5:21; 야고보서 1:15; 베드로전서 2:22; 요한일서 1:7; 2:2; 요한계시록 1:5이 있습니다.
6. 아디키아(Adikia)
이 단어는 넓은 의미로 '의롭지 못한 어떤 행동(any unrighteousness conduct)'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과 관련해서(롬 1:18), 돈과 관련해서(눅 16:9), 인간 육신의 지체와 관련해서(롬 6:13; 약 3:6), 행위와 관련해서(살전 2:10)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7. 아노모스(Anomos)
'불법(iniquity)'이라고 번역되는 이 단어는 '법과 질서가 없는 것(lawless)'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넓은 의미로 법을 어기는 것과 관련되어 사용됩니다(마 13:41; 24:12; 딤전 1:9). 종말론적 사상과 관련하여 이 단어는 불법의 사람, 즉 적 그리스도를 언급할 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살후 2:8).
8. 파라바테스(Parabates)
범죄자(transgressor)'를 의미하는 이 단어는 보통 특별히 '법을 위반하는 것'과 관련해서 사용되는 단어입니다(롬 2:23; 5:14; 갈 3:19; 히 9:15).
9. 아그노에인(Agnoein)
이 단어는 참된 하나님 이외의 다른 신에 대한 '무지한 우상숭배(ignorant worship)'를 언급할 때 사용되는 단어인데(행 17:23; 롬 2:4), 그러한 무지는 사람을 죄인의 상태로 만듭니다(히 9:7).
10. 플라나오(Planao)
'비난받아 마땅하기까지 길을 잃는 것(to go astray in a culpable sense)'이 바로 이 단어가 의미하는 것입니다(벧전 2:25).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속일 수 있습니다(그들을 길을 잃게 하는 것)(마 24:5-6); 사람들은 그들 자신을 속일 수 있습니다(요일 1:8); 그리고 사단은 만국을 미혹으로 이끕니다(계 12:9; 20:3, 8).
11. 파라프토마(Paraptoma)
이 단어가 가지고 있는 개념은 '타락해 나가는 것(falling away)'으로서, 대부분의 경우에 의도적인 타락에 대해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단어를 로마서 5:15-20에서 6번 사용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6:14; 18:35; 고린도후서 5:19; 갈라디아서 6:1; 에베소서 2:1; 그리고 야고보서 5:16을 보십시오.
12. 히포크리시스(Hypocrisis)
이 단어는 세 가지 개념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1) 어떤 사람이 계시를 그릇되게 해석하는 것(to interpret falsely as an oracle might do); (2) 어떤 사람이 거짓된 행동을 꾸미는 것(to pretend as an actor does); (3) 그릇된 것으로 알려진 해석을 따르는 것(to follow an interpretation known to be false). 종말의 때에 거짓 선생들은 거짓된 해석을 할 것이고, 거짓된 행동을 꾸밀 것이며,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가르침을 좇게 될 것입니다(딤전 4:1-2). 외식하는 자들은 처음에 그들 자신이 미혹되어서 그릇된 것을 옳게 만들고, 나중에는 다른 사람까지 미혹하게 됩니다. 이것이 이 죄의 치명적인 속성입니다.
신약성경의 단어 연구로부터 몇 가지 결론이 도출될 수 있습니다.
(1) 죄는 '존재하는 어떤 뚜렷한 기준'을 어기는 것입니다.
(2) 궁극적으로 모든 죄는 하나님에 대해 의도적으로 반역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표준을 어기는 것입니다.
(3) 죄악은 여러 가지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4) 인간의 책무는 분명하며 모든 인간들은 그 책무를 뚜렷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책무를 다하지 않는 것도 큰 의미에서 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죄의 가장 중요한 성격은 '하나님과 반대방향을 지향하는 것(that it is directed against God)'입니다. 우리는 죄에 관한 단어연구를 통해 거룩하신 하나님의 보시기에 죄가 얼마나 치명적인 것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하박국은 다음과 같이 언급했습니다.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참아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참아 보지 못하신다"(합 1:13). 그리고 죄는 너무 치명적인 것이어서 오직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으로만 그 죄를 떠나가게 할 수 있습니다(요 1:29).
ⓒ 촬스 라이리
구약성경에서의 죄의 개념 8가지
죄에 대한 성경적 개념은 신구약 성경에서 죄에 대해 사용된 단어들에 관한 연구를 통해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은혜(grace)'를 나타내는 단어에 비해서 죄에 대한 용어는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은혜'를 표현하기 위해서 오직 세 가지의 단어가 사용됩니다(구약성경에 있는 첸(chen)과 체세드(chesed), 그리고 신약성경에 있는 카리스(charis)이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구약성경에는 죄를 나타내는 최소한 8개의 기본 단어가 있습니다. 그 모든 단어들이 죄에 대한 교리에 있어 기본적인 개념의 틀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1. 챠타(Chata)
죄에 대한 모든 형태의 단어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이 단어는 구약 성경에 522회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단어의 기본적인 뜻은 '표적을 벗어난 것(to miss the mark)'으로 헬라어 하말타노(hamartano)와 같은 의미를 가진 단어입니다. 그러나 '표적을 벗어난 것'은 '다른 표적을 쏜 것'이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람이 올바른 표적을 맞히지 못해서 죄를 짓는 것은 잘못된 표적을 맞힌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즉 이 단어는 '수동적인 벗어남의 개념(a passive one of missing)' 뿐만 아니라 '능동적인 쏨의 개념(an active one of hitting)'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도덕적인 죄악, 우상숭배, 의식적인 죄를 지칭할 때 사용됩니다.
2. 라(Ra)
구약성경에서 444번 나오는 이 단어는 헬라어 카코스(kakos) 및 포네로스(poneros)에 상응하는 단어로, '파멸시킴(breaking up)' 혹은 '폐허로 만듦(ruin)'이라는 기본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때때로 재난(calamities)을 의미하기도 하고 많은 경우에 '사악한 것(wicked)'이라고 번역됩니다. 이 단어는 또한 '도덕적으로 그릇된 것(something morally wrong)'은 물론 '손상을 입히는 것(something injurious)'도 의미합니다(창 3:5; 38:7; 삿 11:27). 이사야 45:7에서는 하나님이 빛과 어둠, 평안(well-being)과 라(ra, 환난)도 창조하신 분으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 구절에 나오는 단어가 재난 및 다른 사악한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이해합니다. 이러한 이해가 사실이라면, 이것은 비록 죄를 짓는 것에 대한 책임은 창조주가 아닌 피조물에게 있을지라도 사악한 것을 포함한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 안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3. 파샤(Pasha)
이 단어가 보통 '배반(transgression)'이라는 단어로 번역되고 있을지라도 이 단어가 가지고 있는 기본 개념은 '반역하는 것(to rebel)'입니다. 열왕기상 12:19, 열왕기하 3:5, 잠언 28:21, 이사야 1:2을 보라.
4. 아원(Awon)
이 단어는 히브리 사상에서 서로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는 부정(inquity, 죄악)과 죄책(guilt, 저주)이라는 개념(삼상 3:13)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가 '고난 당하는 종(사 53:6, the Suffering Servant)' 및 '훼방하는 죄(a defiant sin)'와 관련하여 사용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십시오.
5. 샤가그(Shagag)
이 단어는 '잘못한 것(to err)'이나 양 혹은 술 취한 사람이 보여주는 모습과 같은 '길을 잃어버린 것(to go astray)'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사 28:7). 이 단어는 실수를 언급하는 단어인데, 그 실수를 범하는 사람은 그 실수에 대해 책임을 져야 했습니다. 율법에서 이 단어는 길을 잃은 사람이 율법에서 어떤 명령을 했는지 알아야 할 책무가 있었다는 것을 암시하는 단어입니다.
6. 아샴(Asham)
이 단어는 거의 대부분 레위기, 민수기 및 에스겔서에 나와 있는 성막 및 성전의 의식과 관련하여 사용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죄책감이 이 단어가 가지고 있는 중요한 개념입니다. 이 단어는 속죄제와 속건제를 지칭할 때 사용되는 단어로서 '고의적인 죄와 고의가 아닌 죄에 대한 죄책(intentional and unintentional guilt)'을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됩니다.
7. 라샤(Rasha)
이 단어는 출애굽 전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고, 시편, 에스겔, 그리고 지혜서(the Wisdom literature)에 주로 나타나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의 뜻은 '의로운 것'의 반대되는 개념으로 '사악한 것(wicked)'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출 2:13; 시 9:16; 잠 15:9; 겔 18:23).
8. 타흐(Taah)
이 단어는 '이리저리 방황하는 것(to wander away)' '길을 잃는 것(to go astray)'을 의미하는 단어로, 비록 사람이 그 자신의 죄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깨닫지 못하고 있을지라도 우연히 벌어진 죄라기보다는 계획적인 죄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민수기 15:22; 시편 58:3; 119:21; 이사야 53:6; 에스겔 44:10, 15을 살펴보십시오.
이러한 단어 연구를 통해서는 우리는 구약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죄에 대한 개념의 3가지 결론을 도출해낼 수 있습니다.
(1) 죄는 많은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죄에 대해 사용된 단어의 다양성으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의 죄가 특별히 어떤 죄의 형태인지를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2) 죄는 율법과 반대되는 입장에 서 있는 것으로, 궁극적으로 죄는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3) 불순종에는 긍정의 개념과 부정의 개념이 모두 포함되어 있는데, 그 개념은 부정의 개념에서 '좋은 일을 하지 못한 것(omission)' 뿐만 아니라 긍정의 개념에서 '그릇된 일을 한 것(commission of wrong)'도 강조하는 개념입니다. 죄는 '표적을 벗어난 것' 뿐만 아니라 '그릇된 표적을 쏜 것'을 의미했습니다.
성경적 죄의 개념
기독교의 출발은 원죄 론입니다. 원죄가 존재하기에 회개가 있고, 회개가 있기에 거듭남이 있으며, 거듭남이 있기에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으며, 재림이 있기에 최후의 심판이 있습니다. 바른 길을 가려 하는 자에게는 제일 먼저 '죄'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필요합니다. 성서에서 말씀하시는 '죄'란 단 하나뿐입니다. 즉 '하나님께로 향하지 않는 마음' 바로 이것입니다. 살펴봅니다.
'죄'란 무엇인가요? 구약에서 '죄'라고 번역된 단어 'chattaah, chattath / h2403'은 동사 'chata / h2398'에서 파생되었습니다. 의미로는 '~을 놓치다'입니다. 그리고 신약에서 헬라어로 표현된 '죄'라는 단어는 'hamartano / g264'로써, 그 의미는 '목표를 벗어남 (그래서 상을 받지 못함)'입니다. 죄에 관한 너무나도 정확한 표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인간의 삶은, 적어도 '율법(사회적 법률, 도덕률 등의 가치기준을 총칭하는 개념으로)' 아래 살고 있는 인생들은 원래부터 '목표를 벗어나서(죄 아래서)' 살게끔 예정되어 있는 존재입니다. 원래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이것은 아담의 잘못도 아니고, 하나님의 실수도 아닙니다. 원래 그럴 수밖에 없는 것, 하나님의 공의차원에서 이해하여야 합니다.
한편, 이렇게 '목표를 벗어나서' 살게 되어 있는 우리 인생들에게 '바른 길'을 보여 주시고자 하는 것이 성경의 요체이며, 하나님의 사역입니다. (바른 길 = 그리스도: 나는 길이요 생명이니) 그 그리스도를 걷는 인생, 그리스도라는 길을 가는 인생은 비로소 바른 길로 들어 선 인생이요,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인생은 계속해서 목표를 벗어난 길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원래 악해서 그리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칙이 그러합니다. 그런데 기독교 교리에서는 그런 하나님의 법칙, 하나님의 공의를 '원죄'라 일컫습니다. 기독교 교리의 논리에 따른 '원죄'란 참 편리합니다. 핑계와 구실을 주기 때문입니다. 내 안의 모든 악한 것을 '원죄'로 돌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원죄를 갖고 태어난 인간이니까...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 봐야 죄 된 인간이지... 내가 뭘 어쩌겠어...다만 노력할 뿐이지..(성화)”
그런데 그거 아시는지요? 위의 논리야말로 사단이 너무나 좋아하는 논리라는 거? 사단이 어디에 있나요? 적그리스도가 어디에 있나요? 대적자가 어디에 있는지요? 그리스도인을 핍박하는 이방인인가요? 교회에서 잘못된 가르침을 전하는 목사인가요? 아닙니다. 사단은 바로 우리의 마음속에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좌정'하여 있는 그 사단이 매일 아침 우리가 눈을 뜨자마자 일깨워 주는 것이 있습니다. “너는 나약하고, 어리석은 죄인일 뿐이다. 회개하라. 기도하라.” 그리고는 그의 목소리에 따라 눈물의 회개기도를 하고 있는 우리를 보며 입을 가리고 웃고 있겠죠. 그리고 그러한 행위를 하고 있는 우리가 바로 사단인 것입니다.
한편, 사단이 제일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입니다. 자기보다 우월한 대적 자니까요. 그래서 사단은 우리로 하여금, 진정한 크리스천이 되는 것을 꿈도 못 꾸게 매일매일 '원죄'를 리 마인드 시키는 것입니다. 자기편에 꽁꽁 묶어두고 싶어 하기 때문이지요.
진정한 의미의 회개가 무엇인지 아시나요? 회개 (metanoeo/g3340)란, 다름 아닌 ‘다시 인식하다, 다시 알게 되다’라는 뜻 입니다. 무엇을 다시 알게 되었나요? 세례요한은 우리에게 무엇을 다시 인식시켜주기 위해 물로 세례를 주겠노라고 외쳤던가요? 그러므로 물로 세례를 받았다 함은 “이전 것은 지나고 새로운 것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라는 의미입니다.
이렇듯, 사단의 속삭임에 놀아나는 우리들은 진정한 회개가 무엇인지 그 의미를 알려고도 하지 않고, (왜냐하면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저 그가 시키는 대로 열심히 눈물로 ‘회개’라는 헛된 행위를 합니다. 그리고는 스스로 자족해 합니다. 나의 죄가 깨끗이 씻겼다는 안도감에 감사의 찬양을 합니다. 하지만 또 당연하게도, 그들의 정의에 의한 ‘죄’를 그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짓게 될 것이며, 집으로 돌아와서는 또 다시 회개의 눈물을 절절히 흘리게 되겠죠. 사단의 소망하는 바가 완벽하게 이루어졌습니다.
기독교 교리상의 원죄 론에서 해방될 때에 비로소 여러분들은 여러분들 자신을 똑바로 보실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죄’에 대한 개념을 바로 세울 수 있을 때 비로소 ‘죄’에서 해방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죄’가 무엇인지 알게 되면 ‘그리스도’가 왜 ‘바른 길’인지 비로소 밝히 몸으로 알게 될 것입니다.
기독교 신학에서 말하는 원죄라는 것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있을 때, 성경은 비로소 여러분에게 그 말씀을 주시기 시작하실 것입니다. 회개가 무엇인지, 거듭남이 무엇인지, 십자가의 죽음이 무엇인지, 부활이 무엇인지, 재림이 무엇인지, 그 때에는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닌, 여러분 스스로 삶으로 밝히 경험하며 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말씀으로 두루 걷는 것’, 즉 성경적 의미의 ‘사랑함’입니다. ‘원수사랑’(원수란 사단이었던 바로 ‘나’입니다)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말씀으로 걷게 된 자만이 타인을 향하여 말씀을 줄 수 있습니다. 즉 성경적 의미의 사랑을 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권능(듀나미스)’입니다. 손을 펴서 말씀을 주는 것입니다. 안수입니다.
성경적인 ‘죄’의 개념에 대하여 여러분 스스로가 오늘 심각하게 고민해 보시기 원합니다. 이것이야말로 그리스도를 향한 첫 출발입니다. 이것이 돌파되지 않으면, 여러분 인생에 있어 그리스도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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