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역사와 신학의 관계
1) 역사 속의 신학 개념
① 신학(theolgy)은 글자 그대로 “신(theos)에 관한 말(logos)” 이다. 원래 신학(θεολογια)이라는 용어의 기원은 헬라철학과 이방 종교적 유래를 가지고 있다. 신학이라는 말을 최초로 쓴 플라톤 등의 철학자들은 그들의 형이상학을 의미하는 개념으로 신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초기 교부시대에 기독교 신앙의 특정 측면을 언급하기 위해 종종 사용되었던 것이 현대신학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② 2세기 후반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 of Alexandria)는 신학을 “하나님에 관한 기독교도의 진리 청원”으로 정의했다. 이후로 신학자들은 기독교의 신학을 데올로기아(theologia)로 이방종교의 신학을 뮈톨로기아(mytholgia)로 구별하게 되었다. 신학에 대한 이해가 오늘날과 같은 관념으로 정립되기까지는 오랜 갈등의 역사를 겪은 후인 13세기경부터였다.
③ 이처럼 초기의 기독교 신학자(혹은 문학가)들의 과제 중 하나는 이방신들과 기독교의 신을 구별하는 것이었다. 이런 흐름이 전 유럽으로 퍼진 중세 초기에는 신은 오직 하나인데, 이 신이 기독교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이 자명한 것으로 간주되고 보편화 되었다(=Catholic).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기독교 신학이란 유일신이신 하나님의 자기 계시로서의 그분의 존재와 속성과 사역을 조직적으로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정리하는 학문으로 이해되는 것이다.
④ 중세의 신학은 대성당(Cathedral)과 수도원에 부설된 학교(scholar)에서 이루어졌다. 당시의 신학은 이론적 주제보다는 기도와 영성 등에 관한 실천적 주제들의 과제로 간주되었다. 이런 흐름 가운데 13세기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summa Theolgiae)은 신학이라는 용어를 일반화하는데 기여했다고 인정된다. 이후로 종교개혁 시대에 마틴 루터는 신학의 실천적인 측면을 재발견하려 했으며, 1559년 칼빈이 설립한 제네바 아카데미와 이 실천적 운동을 목회에 연관시키는 개신교의 전통은 수많은 신학교와 대학 안에서 지속되었다.
⑤ 18세기 계몽시대의 발흥으로 특히 독일에서는 대학 내의 신학의 위상에 의문이 제기되었다. 계몽주의자들은 학술적 논구는 그 어떤 “외부적 권위”의 사슬에서 자유로워야 할 것을 주장했다. 이런 주장이 보편화 됨으로 신학은 점차 시대에 뒤떨어진 학문으로 간주되었으며, 실용적 세속주의(인본주의)를 강하게 채택한 국가들에서는 신학이 사실상 대학 정규과정에서 축출되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최종적으로는 1789년 프랑스 혁명으로 모든 단계의 공공교육에서 신학을 제거하는 일련의 조치들이 취해졌다.
⑥ 그래도 신학은 전통적 교육의 일부로서 그 명맥을 유지했지만, 전체적으로는 종교 연구의 한 측면 곧 종교학의 한 분야로서만 취급되었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근현대의 신학교와 목회현장에서 신학을 다원주의적 과제로 접근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교회 안에 성경적 신앙을 무너뜨리는 상대주의적 신앙의 유입을 가져왔고, 휴머니즘이라는 미명 아래 오직 예수라는 교리와 믿음이 교회 안에서도 무색해지는 결과를 낳았다. 따라서 신학을 공부하는 자는 역사가 제시하는 비 성경적이고 비 신앙적인 문제들에 대해서 성경을 근거로 하여 신학적으로 응답해야 하는 책임이 있는 것이다.
2) 역사는 신학의 소재
① 신학의 절대적 소재는 성경이다. 성경은 역사적인 기록으로서 이스라엘 역사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십자가와 부활) 안에 있는 기독교의 역사적 토대를 증거한다. 그러나 기독교의 신앙이란 경문(經文-성경)에 대한 신앙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이며 그분의 역사를 믿는 것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신자들은 성경(신약)에서 배우는 지식 이외에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주어진 역사(섭리역사)에 관한 전문적 지식은 전무(全無)한 실정이라고 할 수 있다.
② 따라서 신학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 섭리에 관한 신자의 지식적 요구에 의해서 자연스럽게 교회 안에서 일어난 학문이기에 역사는 신학의 소재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역사신학은 교회사의 사건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관찰하고 연구하게 되는 것이다.
③ 이러한 역사신학의 관찰과 연구에서 볼 때, 종교개혁 이전까지의 신학과 성경해석에는 일군(一群)의 오류들이 있음이 밝혀졌다. 따라서 16세기의 종교개혁은 인간들이 오해한 신학을 성경과 바르게 일치시키기 위한 역사신학적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중세까지의 신학이 성경의 진리와 주목할 만한 편차를 보였기에 이 오류를 성경적으로 바로 잡으려는 노력의 표현이 곧 종교개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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