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유다

[스크랩] [2-1]이스라엘역사(아브라함,이삭,야곱,요셉,출애굽,광야,모세,성막,사사시대,여리고성,사울,다윗,솔로몬,팔레스타인,마늘이야기

하나님아들 2018. 10. 29. 20:31

[3-1] 이스라엘 (BC2000-BC444)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사이는 멀지 않아서 서로 왕래가 많았다.
이 사이에 초승달 모양의 비옥한 땅이 있다.
이 땅의 끝부분이 지금의 팔레스틴(불레셋)지역이다.
이를 가나안 땅이라고 부르고 이스라엘 민족이 거주한 땅이다.
이 지역은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중 세력이 강한 쪽에서 지배하였다.
양쪽 문명이 들어오게 되어 일찍 문명이 싹트게 되었다.
가. 족장시대(BC 2000- BC 1670 경)
아브라함 이전의 역사 즉 ‘천지창조’는 1장에 있으며, 에덴동산과 노아홍수는 2장에 있는 것을 참조하시기
바라고, 연대는 할레이 저서의 최신 성서 핸드북을 참고로 하였고 추정 연대는 학자마다 다르다.
[우리나라 역사는 BC 2333년에 단군이 평양성(왕검성)을 서울로 삼고 고조선(단군 왕검)을 세웠다.]


BC 2000 경에 메소포타미아의 우르 지방에 아브라함이 살고 있었다. [4대문명지도]
하나님이 그를 불러내어 3가지 약속을 하였다. [우르위치지도(오스만투르크)]
1) 가나안 땅에서 살게 하겠다. 2) 위대한 민족이 되게 하겠다. 3) 모든 민족의 복의 근원이 되게 하겠다.
이 약속은 이삭에게 또 야곱에게 반복되었다.
아브라함이 조카 롯과 함께 우르지방을 떠나 하란을 지나 가나안 땅 세겜으로 그 다음은 벧엘에서
그 다음은 헤브론에서 거주했다.
 1 대 아브라함(BC 2000- BC 1825 경)
아버지 데라의 나이 130세에 출생하였고, 75세 때 가나안에 갔으며, 80세에 롯을 구하고 멜기세덱을 만났다.
86세에 이스마엘을 낳았고, 99세에 소돔이 멸망하였으며, 100세에 이삭을 낳았다.
137세에 사라가 죽었고, 160세에 손자 야곱과 에서가 태어 났다.
175세에 죽어 헤브론 막벨라 동굴에 장사된지 115년 후에 야곱이 애굽으로 이주한다.
애급의 여종 하갈이 낳은 이스마엘은 아라비아민족의 조상이 되어 지금까지 대립의 원인이 된다.
사라가 죽은 후 아브라함은 그두라와 38년 살면서 6명의 자녀 중에 미디안은 미디안족의 조상이 되었고,
미디안족과 모세는 인연이 깊다.
아브라함은 위대한 믿음의 조상으로 하나님의 친구가 되었으며, 관대하고 고귀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아브라함은 유대인, 회교도, 기독인이 가장 존경한다.
아브라함이 죽은지 500년 후에 역사적인 출애굽을 하게 된다.
 소돔과 고모라
죄악의 대명사인 두 도시는 멜기세덱이 사는 예루살렘과 아브라함이 살던 헤브론과 몇 km되지 않는
지금의 사해라고 하는 곳이 소돔과 고모라 땅이라고 전한다.
사해의 서남쪽 끝에 '우스돔(소돔)'산이 있으며, 지금도 사해 한쪽에 유황 냄새가 나며, '롯의 처'라는
이름의 소금기둥이 여러 개 있다.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은 음탕, 잔인, 추악, 범죄 등의 악취가 하늘에
닿았는데 영어로는 소도미(sodomy)는 남색(男色)으로 표현하는데 소돔성에서 유래하였다.
하나님의 진노는 두 성읍에 '불과 유황을 내리셨다.' 이것은 예수님 재림시 모형이다.
지금도 그때와 같으니 세계적으로 회개의 운동이 일어나지 않으면 운명의 날도 멀지 않을 것이다.

<하갈과 이스마엘을 쫓아내는
아브라함>

 두 족속
롯은 처가 죽고 후손이 없자 두 딸의 계략으로 큰딸에게서 모압을 낳아 모압족의 조상이 되었고,
작은 딸에게서 암몬을 낳아 암몬족의 조상이 되었으며, 암몬은 벤암미라고도 한다.
 사해 [사해지도(이스라엘)]
사해를 초등학교 책에 소개한 사진은 물위에서 양산 쓰고 독서하는 사진이었다.
어릴 때 대단히 신기하게 보았기 때문에 꼭 확인하고 싶어 사해에 들어가 보았다.
바다물 속에 몸이 잠기지 않아서 물속에 빠져 죽는 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보였다.
헤엄 못치는 사람은 부럽겠지만 헤엄치기가 오히려 불편하였고, 눈에 조금이라도 들어가면 고통이
심하였다. 검은 진흙의 머드팩은 얼마든지 공짜라 여자들이 무지하게 가보고 싶을 것이다.
주위는 소금 때문에 눈이 온 것처럼 하얗다.
사해는 이름처럼 생명체가 살지 못하는 이유는 물이 흘러 들어만 오고 흘러나가는 곳이 없기 때문인데
받기만하고 베풀 줄 모르면 세상은 사해처럼 될 것이라는 교훈도 주고 있다.
지금은 사해가 엄청난 보고라고 하며, 만약 세계 최후의 전쟁이라는 '아마겟돈' 전쟁이 일어난다면
사해의 보물 때문일 것이라고 한다.
지금도 이곳의 화장품은 세계적이며, 많은 사람들이 건강 때문에 사해를 찾아오고 있다.
사해는 해면보다 395(참고서 따라 392-399)m 낮아, 지구상에서는 가장 낮은 곳으로 버스를 타고
바다 밑을 가는 것과 같다.
대 지구대 철새들의 통로로 철새들이 공기 저항을 적게 받기 때문에 이곳을 지나간다고 한다.
 2대 이삭(BC 1900- BC 1720 경)
2대 이삭은 아버지가 물려준 재산과 터전 위에 기록할만한 사건이 없는 유복한 삶을 살았다.
이삭은 아브라함이 100 세, 사라가 90 세에 탄생하여 37 세에 어머니 사라가 돌아가시고,
40세에 하란에 살고 있는 6촌 되는 미인 '리브가'와 결혼하였다.
60세에 야곱과 에서를 낳고, 75세에 아브라함이 죽었고, 137세에 야곱이 하란의 외삼촌 집으로 도망간 것
같으며, 158세 때에 돌아온 것 같고, 167세에 손자 요셉이 애굽에 팔렸다.
180세에 죽어 막벨라 동굴에 장사되었고, 그 해에 요셉은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었다.
 3 대 야곱 (BC 1840- BC 1693 경)
1) 형 '에서'에게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의 상속권을 샀다.
2) 하나님과 겨루어 이겨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었는데 이스라엘의 라엘(laer)은 하나님을 뜻하며,
이스(f.yI)는 '올바르게 증명하다.'라는 뜻으로 이것이 나라의 이름이 되었다.
3) 결혼을 두 번하였고, 첩을 두 명 두었다.
아브라함과 이삭의 아들은 선택하여 분리했으나 야곱의 아들들은 모두 선택되었다.
4) 야곱은 애굽 땅에서 죽었고, 약430 년 후에 모세에 의하여 자손이 가나안 땅을 향해 가게 된다.
15세에 아브라함이 죽었고, 77세에 하란으로 도망가다가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나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얻었으며, 84세에 언니 레아하고 결혼하였고, 뒤이어 7일 후에 라헬과도 결혼하였다.
90세에 요셉을 낳았고, 98세에 가나안 땅 *헤브론으로 돌아왔으며, 그해에 요셉이 애급으로 팔렸다.
120세에 이삭이 죽었고, 130세에 애굽으로 갔다가 147세에 애굽에서 죽었으며, 장사는 헤브론의
마므레 앞 막벨라 밭에 있는 굴에 하였다.
형님 '에서'는 에돔족의 조상이 되었고, '에서'의 아들 '엘리바스'는 첩 '딤나'에서 아말렉을 낳아
아말렉의 조상이 되었다.


<신기하게 가만히 있어도
뜨는 사해 >

 *헤브론(Hebron) [이스라엘 고대 지도]
이 지방은 네게브 사막이 있어 메마르고 짐승을 기르는 유목을 주로 하였으며, 신앙을 잘 지켰다.
이곳에 아브라함이 헷 족속 에브론에게 밭과 함께 사서 소유 매장지를 삼은 마므레 앞 막벨라
동굴(洞窟)이 있었고, 여기에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부인들이 매장되었다.
예루살렘 남쪽 30Km 지점이며, 다윗이 이곳에 7년 동안 수도로 정하였다.
[히브리(Hebrews), 이스라엘(Israel), 유다(Judas), 유대(猶大, Judea)]
히브리는 ‘건너오다’라는 뜻으로 아브라함이 메소포타미아에서 유브라테 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왔다하여
아브라함을 히브리인이라 불렀으며, 이후로 아브라함의 자손도 ‘히브리인’이라 불렀다.
(창 14:13, 39:14,17, 40:15. 출1:19, 2:7)
또 그들이 사용한 언어를 ‘히브리어’라고 하였고, '아람‘ 방언과 병용하여 사용하였으며,
BC 722년 북 이스라엘 사람들을 앗수르로 끌려 간 후 쇠퇴하다가 예수님 탄생 전에 완전히 사라졌으나
구약성서는 히브리어로 쓰여졌다. (행 21:40, 왕하 18:26-28)
신약성경의 히브리 방언이라고 한 것은 ‘아람’어를 말하며, 문자는 페니키아(베니게)문자와 같고,
현재 이스라엘 공용어이다.
‘히브리인’이라고 하면 순전히 유대풍속을 지키는 유대인을 말한다.(요 19:13,17,20, 행 6:1)
그리고 히브리인의 사상인 유일인격신(唯一人格神)의 역사적 계시와 이에 대한 신앙을 토대로 하는
헤브라이즘과 인간을 영육일체(靈肉一體)로서 파악하는 헬라이즘이 합하여 유럽문명의 사상이 된다.
히브리는 국명으로는 사용되지 못하였고, 야곱의 새 이름인 ‘이스라엘’이 처음 땅의 이름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으며, 바벨론에서 귀환한 후부터는 유대라고 불러 이스라엘과 유대는 국호로 사용되었고,
남북으로 분열되었을 때는 북쪽 왕국은 이스라엘 남쪽 왕국은 유대라고 하였다.(스 4:12, 느 4:1,2)
유다는 이름이나 지파를 부를 때 사용하며, 유대는 땅이나 나라를 부를 때 사용하는데 그렇게 부르게
원인은 가나안 정복 후 유다가 분배 받은 지역 유다를 한문 음을 따라 유대(猶大)라고 번역하였기 때문이다.
유다는 야곱의 넷째 아들 이름이자 12지파의 이름으로 유다지파가 가장 자손수도 많아 세력도 가장
강력하여 광야에서나 가나안 정복 때에도 늘 선봉이 되었다.
그리고 분배 받은 땅에는 예루살렘은 다윗에서 시드기야까지 약 400년 동안 수도이자 성지로 시온산, 성전,
왕궁 등이 있었으며, 예수님도 이 혈통에서 탄생하시게 되어 이스라엘과 함께 또 하나의 대명사가 되었다.
 12 아들과 12지파
[야곱의부인에서 낳은 12 아들]
1. 레아 -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 잇사갈, 스불론, 2. 라헬 - 요셉, 베냐민
3. 실바(레아의 하녀) - 갓, 아셀, 4. 빌하(라헬의 하녀) - 단, 납달리
[12 지파]
1)르우벤 2)시므온 3)유다 4)잇사갈, 5)스불론 6) 베냐민 7)갓 8)아셀 9) 단 10)납달리 11)므낫세 12)에브라임 레위는 제사장계보라 들어가지 않았고, 요셉대신 아들 둘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들어간다.
예수님의 계보는 유다(유대)이다.
 4 대 요셉 (BC 1780 - BC 1670 경)
1. 야곱의 나이 90세에 12아들 중 11번째의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의 편애를 받았다.
2. 편애와 꿈의 사건으로 인하여 형의 미움을 받아 17세에 애굽에 팔려가 13년 동안 보디발과 감옥에
있으면서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지켰다.
3. 바로왕의 꿈을 해몽하여 30세에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었고, 기근이 들어 찾아온 형님들을 만나게
되는데 이 장면은 모든 문학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의 하나라고 한다.
4. 70세에 야곱의 집사람 70명이 애굽으로 이주하여 당시로는 가장 앞선 문명국이며,
기름진 고센 땅에서 큰 민족을 이루게 된다.
5. 110세에 사망하였고, 유언에 따라 400년 후에 출애굽 할 때에 요셉의 유해를 가지고 갔다.(출 13:19)
요셉은 진실, 순종, 인내, 사랑 등 이상적 덕목을 갖춘 명재상으로서, 이국에서 이름을 날렸으며,
이스라엘 역사에서도 각광받는 인물이다.


<12지파의 흉패를 가슴에
달고 있는 대제사장>
나. 출애굽과 광야 생활 (BC 1275 - BC 1235 경) [출 애굽지도]
야곱의 식구 70명은 약 BC 1710년에 애굽으로 이주하여 살다가 약 BC 1275년에 출애굽까지
약 435년 동안 애굽 땅에 거주하면서 장정만 약60만 명이 되었으며, 여자와 아이를 포함하면 약 300만
명으로 추정되는 큰 민족인데 이 숫자는 25년을 1 세대로 하여 430년이면 가능한 하다고 한다.
출애굽 때의 애굽의 왕은 아멘호텝(쿠푸)2세(BC1450- 1420)와 메르넵타(BC1235-1220)를 주장하는
학자가 있는데 두 가지다 근거가 있으나 메르넵타가 더 가깝다.
아멘호텝(쿠푸)2세는 비돔의 요새를 건설할 때에 이스라엘 사람들을 노예로 삼았다.
출애굽 한 후 한 달이 지나자 식량은 떨어지고, 광야생활의 어려움이 닥쳐왔으나 하나님은 그들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을 것으로 주셨고, 하나님의 은혜로 그들의 옷과 신발은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광야에서 4가지 죄를 범하였다.
1)하나님 원망죄 2) 우상숭배죄 3) 간음죄 4) 하나님을 시험한 죄이다.
 모세(BC 1355-1235 경) [출 애굽 지도]
모세의 이름은 물에서 '태어났다'라는 뜻으로 요셉이 죽고 약 315년 후에 태어났다.
요셉이 죽은 후 오랜 세월이 지나 요셉을 모르는 왕들이 유대인을 노예와 함께 성(비돔, 람세스)을
쌓고 운하를 파고 신전짓는 일에 동원해 유대인은 강제노역에 시달리게 되었다.
이들의 고통을 들으시고 하나님은 40년을 궁중에서 자랐으며, 교육도 받았은 모세를 택하였다.
모세는 싸우는 동족에 끼어들게 되어 한명을 살해하고 미디안 광야로 도망가 미디안족과 40년을 살면서
하나님의 섭리로 훈련되었으며, 미디안족 이드로의 딸 십보라와 결혼하였다.
미디안 시내산의 불타는 떨기나무(산 딸기) 속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유대인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라는 명령을 받게 된다.
모세는 유대인의 해방을 허락 얻기 위하여 바로왕에게 10가지 재앙을 가하였다.
1.피 재앙 2.개구리 재앙 3.이의 재앙 4.파리의 재앙 5.역병(가축전염병)의 재앙 6.피부병 재앙(종기)
7.우박 재앙 8. 메뚜기 재앙 9. 어둠의 재앙 10.장자의 죽음(유월절의 기원이 됨)이다.
이 모든 재앙이 이스라엘 사람은 피해가 없었다.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바로의 허락을 받아 유대민족을 이끌고 역사적인 출애굽을 하여
다시 미디안 광야로 와서 40년을 살아 약 80 년을 미디안 족과 같이 살게되었다.
이것을 Exodus(엑스더스='탈출 이집트')라 하며, 한자로 출애굽(出埃及)이라 한다.
지금도 시나이 반도'카드린' 수도원 자리의 산을 아랍인들이 '제벨 무사(Jabal Musa)'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모세의 산'이라는 뜻이다.

애굽은 축복의 근원인 유대인이 살고 있을 때에는 부유하였으나 떠난 뒤에는 쇠약해졌다.
가나안땅과 이집트의 거리는 약 640Km으로 자동차로 8시간 도보로는 보름길(15-20일)이라고 한다.
그들이 이 보름길을 약 40년만에 가나안땅에 들어간 이유는 하나님을 불신하였기 때문이다.
가나안을 정복할 수 있는지를 알기 위하여 정탐꾼을 한지파마다 한사람씩 뽑아 12명을 보냈다.
이중에 유다지파 갈렙과 에브라임지파 여호수아만 신앙적으로 보았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보았고,
나머지는 인간적으로 보았기 때문에 부정적으로 보았다.
부정적으로 본 10명에 4년을 곱하여 40년간 광야에서 재훈련에 들어갔다.

<모세가 홍해를 가르고 무사히
유대인을 건너게 했다.>
유대인들은 40년(BC 1275 - BC 1235 경)간 사막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만 먹고 유랑하면서
하나님의 선택된 민족으로 성장하게 된 뒤에 가나안에 들어 갈 수 있었다.
광야 생활을 마치고 가나안 땅으로 유대민족을 인도한 사람은 여호수아이다.
모세는 가나안땅을 바라보고 느보산에서 죽었고, 애굽을 떠난 사람 중에 갈렙과 여호수아만 들어 갔다.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율법으로는 천국에 갈 수 없다는 징표라고 한다.
이 과정은 성경 출애굽기, 신명기, 민수기, 여호수아에 기록되어 있다.
모세는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의 저자라고 한다.
이 5 권의 성경을 특별히 율법서(토라)라고 하고 매년 절기 때 낭독하였다.
구약성서에서 가장 중요한 성경은 레위기라고 하며, 내용은 레위기지파가 하나님에게 제사를 드리는
방법과 율법의 조직을 기록하고 있다. 율법으로는 하나님에게 대한 것과 생활에 대한 율법이 있다.
안식일, 안식년, 희년의 제정과 신명기 28장에 다시 기록된 하나님께 복종함과 불복종에 대한 경고가
귀중한 자료이다. 모세는 시내산에서 40일간 금식 기도후에 '십계명(20장)'을 받는다.
출애굽기의 중요한 내용은 출애굽의 사건과 시내산에서 40일간 금식 기도후에 '십계명(20장)'을
받은 일과 *성막(35-40장)을 만든 일이다.
  마늘이야기
전설에 모세는 이집트에서 최초로 사과(라암세스에서 경작)와 마늘을 심었다고 전한다.
피라미드 벽면에 마늘 그림이 나온다. 축조하는 인부들에게 힘을 내게 하고자 마늘을 먹였다고한다.
원산지는 남 시베리아로 중앙아시아→ 지중해→ 이스라엘→ 이집트로 전하고 옛날부터 양념으로 쓰였다.
유대인은 광야 생활 때에 애굽의 풍성한 마늘을 그리며 애굽으로 돌아갈 것을 갈망했다고 한다.
마늘은 스태미너 음식이기 때문에 성직자는 금하였는데 인도 성직자도 마찬가지였으나,
일반 대중은 애용하였다. 동남아의 불교국가들에서 마늘은 금단의 식품이다.
로마는 힘과 용기를 준다고 믿어 군대에서 마늘을 많이 먹었지만 냄새 때문에 마늘을 먹고는 원로원에
들어가지 못하였다. 또 남을 불편하게 하는 인격장애증세를 '마늘 애호가(Love of garlic)'라고 한다.
이유는 마늘을 먹은 사람은 자기 입에서 나는 냄새를 느끼지 못하지만 주변 사람은 악취로 고통받기
때문이며, 또 방균 효과도 있는데 '사랑하며 배우며'이라는 책을 쓴 이탈리아 작가가 어릴 때는 목에 걸고
다녀 감기나 병을 막는 방편으로 사용하였다'라고 기록하였다. [마늘참조]
유럽에서는 마귀가 가장 싫어한다고 믿어 마귀를 대적할 때 마늘을 사용하였는데, '드라큘라' 영화에
이 장면이 나온다.
시베리아에서 첫날밤 문전에 마늘을 걸어두는 풍습이 있는데 호사를 시샘하는 악귀가 들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항암 식품으로 각광을 받고, 특히 한국인은 스태미너 식품으로 즐겨먹으며, 냄새 때문에 외국인에게 경계의 식품인데 외국 식당(특히 이스라엘)에서는 호텔 지배인은 김치를 먹는지 감시하는 곳이 있는데 우리도
이제는 당당하게 먹어야 한다.
열등의식과 언어불편 때문에 기죽어 감추었지만, 이제는 자랑해야 할 우리의 음식문화이며,
김치는 사스에 걸리지 않는 식품이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새로이 각광 받는 식품이 되었다.

 


<시나이반도 오아시스 '마라'
뒤에 파란 바다가 수에즈
앞의 홍해이다>

 *성막(聖幕:Tabernacle) 출애굽기 25-31장, 35-40장
성막은 하나님이 직접 주신 것으로 인간이 그리스도의 신앙을 위하여 많은 교훈을 예시(豫示)하신 것으로
매우 중요하다.
또 솔로몬 성전은 성막을 2배의 크기로 만들었으며, 솔로몬 성전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간단하게 다루어 보려고 한다.
성막의 길이는 13.5m이며, 폭은 4.5m으로 서쪽 4.5m은 지성소, 동쪽 9m은 성소로 지성소와 성소는
휘장을 처서 구분하여 놓았다.
 
1. 지성소(The Most Holy Place)
'하늘의 그림자'(히 9: 24)로 성막 서쪽에 있으며, 길이4.5m, 폭4.5m이다.
이곳에는 법궤만 있으며, 대제사장이 일년에 한 번 들어갔다.
(1) 법궤(Ark)
길이112cm, 폭67cm, 높이 67cm인 궤이며, 싯딤 나무의 조각목으로 만들었다.
그 안에는 십계명 석판 2장, 만나 항아리, 아론의 지팡이가 들어 있다.
계시록 11:19절에 요한이 법궤을 본 것은 환상으로 하늘에는 성전이 없기 때문이다.
법궤는 바벨론 포로시절에 잃어버린 것으로 추정한다.
(2) 속죄소
율법과 자비의 장소로 '그리스도의 그림자'로 법궤 위에 있으며, 순금으로 만들었다.
(3) 아기천사
법궤 양쪽 끝에는 아기천사가 날개를 펴고 마주 대하고 있다.
하나님이 인간의 속죄에 관심을 나타낸 것으로 벧전 1: 12절의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
이라고 말했을 때에 베드로는 이 아기천사를 생각하였을 것이다.

2. 성소(Holy Place)

성막 동쪽에 있으며 길이는 9m, 폭은 4.5m이다.
이곳에는 북쪽에는 떡상, 남쪽에는 촛대, 서쪽 휘장 앞에는 제단이 있다.
(1) 휘장(Veil)
하나님이 계시는 방과 인간이 대기하는 방으로 구분해 놓았다.
마 27: 51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라고 기록되었다.
이는 하나님의 문이 인간에게 열린 것을 의미한다.
 
<법궤와 아기천사>
(2) 촛대(Candlestick)
'하나님 말씀의 그림자'로 또는 '교회의 그림자'(계1: 12, 20)를 나타냈다.
순금으로 만들었으며, 가운데 기둥이 있고, 양옆에는 3개의 가지가 있다.
기름은 감람유(올리브)를 사용하고 매일 닦아내고 불을 부쳤다.
솔로몬 성전의 촛대는 이것을 모방했으며,
바벨론에서 가지고 있었던 보물을 포로귀환 때에 가지고 왔다. (스 1: 7)
이 촛대는 AD70년 로마황제 티투스(디도)에 의해 로마로 운반되는 모습이 티투스 개선문에 조각되어 있다.
AD553년에 예루살렘 교회에 안치되었다는 기록을 끝으로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지 모른다.
(3) 떡상(Table of Shewbread)

길이 90cm, 폭은 45cm, 높이 67cm이며, 조각목으로 만들었고 순금으로 입혔다.
12개의 떡을 매 안식일마다 바꾸었다.
이것은 일용할 양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상징이다.(눅11: 3)
(4) 제단 또는 향단(altar of Incense)
길이와 폭은 45cm의 정사각형으로 높이 90cm이며, 조각목으로 만들었고, 순금을 입혔으며,
제사장이 아침, 저녁으로 그 위에 분향하였다.
이것은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을 의미했다.
3. 안뜰(Court)
성막 주위의 뜰로 길이 45m, 폭 22,5m 이며 남쪽을 향하여 있으며, 2.2m 간격에 2.2m 높이의 구리기둥을
세우고 가늘게 짠 아마를 구리고리에 은 걸쇠로 연결하여 둘러쳤다.
정문은 동쪽 끝에 있으며, 폭은 9m이며, 안뜰에는 물 두멍과 번제단이 있다.
안뜰에는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외에는 절대로 출입하지 못하였다.
(1)물 두멍(Laver)
죄에서 정결하여 지는 것을 의미하며, '세례의 그림자'이다.
출 38: 8 '그가 놋으로 물 두멍을 만들고 그 받침도 놋으로 하였으니 곧 회막 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의
거울로 만들었더라'라고 기록되어 거울도 사용하였다.
제사장들이 성막에 들어가기 전에 손과 발을 씻기 위한 곳으로 물을 담긴 큰 구리 대야가 있다.
(2) 번제단( Altar of Burnt Offering)
'그리스도의 죽음의 그림자'로 동쪽 정문 가까이 있었다.
동물의 제물을 드리는 큰 제단으로 2.3m의 정 4각형으로 높이는 1.3m이며,
조각목으로 만들어 구리를 입혔다.
가운데는 파고 흙으로 채웠으며, 단 주위에는 제사장이 올라설 수 있는 받침대가 있었다.
이 단의 불은 기적적으로 붙여져 꺼지지 않았다.(레9: 24, 6: 9)
이곳에서 드리는 제물의 종류와 드리는 방법은 레위기 1장-7장에 기록되었다.
[제물의 종류와 드리는 방법을 간략하게 소개한다.]
1. 번제(Burnt-Offerings)
황소, 수양, 염소, 비둘기를 완전히 태웠으며, 이는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함을 의미했다.
2. 소제(Meal-Offerings)
곡물의 가루, 누룩이 없는 빵을 한 줌만 태우고, 나머지는 제사장에게 드렸다.
3. 화목제(Peace-Offerings)
소, 수양, 염소의 기름만 태우고, 나머지는 제사장에게 드리는 사람이 나누어 먹었다.
4. 속죄제(Sin-Offerings)
죄에 따라 제물이 다르며, 기름만 태우고, 나머지는 제사장이 먹었다. 어떤 때는 밖에서 태웠다.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쳤을 때는 1/5을 보태어 배상한 후에 제물을 드렸다.
이 밖에도 관제(Drink-Offerings), 요제(Wave-Offerings), 거제(Heave-Offerings) 등이 있다.
 
<'티투스의 개선문'에
조각 된 촛대 >
 다. 가나안 침입과 사사시대 (BC 1235 - BC 1050 경)
이 시대의 사건들은 구약성경 여호수아, 사사기에 기록되었다.
BC1235-1200 경에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을 정복하여 12지파에게
나누어주었다. 가나안 정복할 때에 중요한 사건은 *여리고성의 함락과 그리고 아이성의 패전이다.
패전은 아간의 죄로 인한 것이라고는 하나 이 정복 전쟁의 의미는 하나님이 하시는 성전(聖戰)이라는
것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다.
기브온성의 전쟁으로 하나님은 태양을 하루종일 머물게 하여 초자연적인 이적을 행하여 전쟁에
승리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정복 전쟁 때에 무자비한 살육을 하였다.
하나님이 그토록 잔인할 수 있을까? 이것을 이해하려면 아래의 바알신에서 설명하기로 한다.
BC1200-1050 경에 사사는 선지자와 왕의 역할을 하며, 군사적 영웅을 말한다.
옷니엘, 드보라, 기드온, 입다, 에훗, 삼손 등 12명 정도이며 마지막 사사는 사무엘이다.
사사시대 이후는 하나님 중심의 신권 정치가 인권 정치로 넘어 가게된다.
사사시대는 궁전도 세금도 없었으며, 이 시대에 철기가 들어왔다.
[사사시대의 압박자와 활동한 사사와 기간을 중요한 것만 간추려 보았다.]
압박자 압박기간(년) 활동한 사사(지파 평화기간(년)
메소포타미아 8 옷니엘(유다) 40
모압, 암몬, 아멀렉 18 에흣(베냐민) 80
불레셋, 가나안 20 드보라(에브라임) 40
미디안, 아말렉 7 기드온(므낫세) 40
암몬 18 입다(므낫세) 31
불레셋 40 삼손(단) 20
*여리고성
(여리고성의 성경역사)

여리고 성은 성경에 많이 언급되고 있는데 간단히 열거하면
민 13장에 모세가 정탐으로 12명을 보냄. 수2:1에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2명의 정탐으로 보냄.
수 6:15-17절에 '제 칠일 새벽에 그들이 일찌기 일어나서 여전한 방식으로 성을 일곱 번 도니 ...
일곱 번째에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외치라...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소리를 듣는 동시에 크게 소리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수 6:12-25에 여호수아의 나팔로 성이 무너졌으며, 기생 라합 만이 구조되었다.
수 6:26에 여호수아의 저주로 사람이 살지 않았고 개축하는 자도 저주를 받으리라는 예언함
왕상 16: 34에 이 예언은 5백년 후(BC 9세기)에 히엘이 개축하였다가 저주받았다.
왕하 25: 5-6에 이 성에 선지학교가 있어 엘리야와 엘리사가 방문하였고,
갈대아(바벨론)군대가 시드기야 왕을 잡아 바벨론으로 데려갔다.
느 3:2에 스룹바벨과 느헤미아가 데려온 유대인이 이곳에서 성을 쌓았다.
마20:29에 예수님이 두 소경의 고치셨다.
눅19:1-10에 삭개오가 뽕나무 위에서 예수님의 방문을 받았다.
눅20:25-37에 예수님이 예화로 여리고로 가다가 강도를 만난 '선한 사마리아 사람' 이야기를 하셨다.
이상이 성경에 나타난 여리고 성에 대한 내용이다.

<삼손과 들릴라>
(여리고성의 역사)
여리고(제리코-예리코)의 현재의 지명은 예리코이며 아랍인들은 '아리하'라고 한다.
예루살렘 북동쪽 36km, 요르단강과 사해가 합류하는 북서쪽 15km 지점에 있으며,
지중해 해면보다 250m 낮으며 사해는 해저 392m이다.
각종 과실수가 많은데 그중 종려나무가 많아 종려나무성이라 불렀다.
옛 여리고는 20세기초에 발굴되어 BC 5000년경의 집터의 유적을 볼 수 있다.
고대의 여리고 도시는 BC 9000년경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가운데
하나이다. BC 4000년대 팔레스타인의 다른 지역과 같이 여리고도 도시문화가 나타나 성곽도시가
되었으며, 성벽은 여러 차례 개축되었다.
BC 1900년경에 거주한 집단은 가나안족으로 지중해 연안에서 발견되는 문화를 지니고 있었고,
집과 가구는 유적 발굴작업을 통해 드러났다.
BC 13세기경 무너진 여리고성은 신약시대에는 구약시대보다 남쪽 6km쯤에 있는 아브엘 알라이크라고
부르는 폐허이다.
이 곳은 헤로데스왕의 겨울궁전이 있던 곳이며 현재의 여리고는 비잔틴 시대의 터 위에 재건되었다.
현재의 여리고는 웨스트 뱅크에 속한 도시로 1949년 요르단이 점령하여 지금의 도시로 만들었으며,
관개 수로를 통하여 비옥한 저지대로 만들었어 열대과일이 많이 생산된다.
영국고고학연구소 소장 케니온이 발굴한 옛 여리고 성에서 섬기던 제단을 발굴하였다.
이 지역은 주위 보다 21m 정도 높고, 그 아래에 엘리사 우물이 있는데 이것을 '탈앗술탄(수량이 풍부한
앗술탄 샘)'의 수원이 있어 어느 곳에서도 보기 드문 맑은 물이 수로를 통하여 흐르고 있다.
요르단 영토로 있다가 1967년 6일 전쟁 때 이스라엘군이 점령한 후 줄곧 이스라엘이 관장하였다.
현재는 PLO의 자치지구로 되어있다.
(여리고성이 무너진 역사적 사실)
19세기부터 여리고성의 고고학적 발견을 시도하였고, 고고학자 가스텡과 여러 학자들은 여리고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방법으로 정복되었다는 증거들을 찾아냈다.
고대의 전쟁은 오랫동안 성을 에워싸고 전쟁을 하기 때문에 식량이 바닥나게 되면 그때 항복을 하고
전쟁이 끝나게 된다.
그런데 발굴된 여리고성 내에는 많은 식량들이 남아있었다는 것은 단기간에 전쟁이 끝났다는 것을 말한다.
또한 대영박물관의 탐사팀에 의해 여리고성은 여호수아시대에 강도 6.0의 강력한 지진이 발생하여
파괴되었음을 보여주는 지질구조가 발굴되었다.
이런 여러 가지 정황을 볼 때 여리고 성의 성경적 함락이 매우 신빙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지리학자는 탄소동위원소법에 의하여 추정 연대 BC 14세기에 침식 작용으로 사라졌다고 한다.
이것은 여호수아가 가나안 침입이 BC(14-13)세기로 추정됨으로 비슷한 시기가 되는데 여리고 성 침입 할
때에 갑자기 침식작용이 잃어나 성이 파괴된 것으로 생각하면 성경과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룻기는 다윗의 계보를 알리기 위한 것으로 이것은 예수의 계보를 알리는 일이기도 하다.
여리고 성을 함락할 때에 두 정탐꾼을 도왔던 라합은 갈렙의 아들 살몬과 결혼하여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자기 밭에서 만난 룻과 결혼하여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위대한 다윗(다비드=David)
을 낳으니 룻은 다윗의 증조모이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베들레헴이 생각되어 지는데, 이유는 이곳에서 아기 예수가 태어났기 때문이다.
160Km나 떨어진 나사렛에서 살고 있던 요셉이 이곳까지 온 연유는 로마황제 아구스도(옥타바누스)가
호적을 하라는 명령 때문이다.
명령에 의하여 예수의 아버지 요셉은 1100년 전에 조상 보아스와 룻이 살았던 다윗이 고향 베들레헴으로
임신한 마리아를 데리고 갔기 때문이다. 목자 뜰은 1.1Km 떨어진 곳에 있다.

<여리고성 가장 가까운 흰 집이 엘리사의 우물>

 라. 통일 왕국시대 (BC 1050 - BC 922 경)
(우리나라는 BC 11세기 때 중국 주나라 호왕이 '기자'라는 사람을 보내어 단군을 몰아내고
'기자조선'을 세우고 단군은 황해도 산속에 숨어 1908세에 산신이 되었다는 설화 역사이다.
설화 이야기로는 단군이 솔로몬보다 오래 살았다. 헬라는 신화와 호머의 역사시대이다.)
신정정치가 무너지기 때문에 하나님은 왕의 제도를 반대하였다.
 1대 사울 (BC 1050 - BC 1002 경)
이스라엘 초대 왕으로 4가지 잘못을 하였다.
1) 교만으로 제사장만이 드릴 수 있는 제사를 지냈고, 2) 군대식량을 삭감하였으며,
3) 장군 요나단 사형하였고, 4) 고의로 하나님께 불복종하였다.
사울은 하나님에게 버림받아 말년은 불행하였다.
2대 다윗(BC 1002 - BC 962 경)
우리에게 너무 잘 알려진 왕으로 아브라함의 14대손이다.
골리앗과 싸워 이겼으며, 골리앗은 거인이라 큰 것은 이 이름이 사용되며, 예로 '골리앗 크레인'이 있다.
또 잘 생긴 것 때문에 미술시간에 다비드 석고상을 대상으로 데생을 하였고,
미켈란젤로의 다윗(다비드)상은 상품 선전용으로 돈 안주고 옷 벗는 전용모델이기도하다.
그는 당대에 가장 강력한 왕이며, 신권정치와 인권정치를 도입했다.
지금도 유대인은 '메시아'하면 이 왕을 생각하며, 메시아가 다윗 왕국을 재건하여 줄 것을 갈망하고 있다.
다윗은 하나님 마음에 드는 자였고, 성가대를 창설하였으며, 법궤를 운반했다.
예루살렘을 정복하였고, 예루살렘을 새 종교중심지로 만들었다.(삼하 5:7)
성전 지을 준비를 하였으며, 전쟁에 처음 말을 사용하였다.
그도 단점은 있어 우리아 아내를 취하기 위하여 우리아를 전방에 보내어 죽게 하였고,
그의 아내 밧세바를 취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되었다.
그의 죄로 딸이 죽었으며,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다윗은 도망 다니며, 망신을 당하였다.
다윗은 압살롬의 죽음으로 그 죄값을 치렀고, 밧세바에게서 아들을 얻으니 그가 솔로몬이다.
다윗의 아내이며, 사울 왕의 딸인 미갈이라는 여인이 있는데 남편의 나체를 흉보다 불임의 저주를 받았으며,
그는 정당하게 살아있는 두 남편을 섬긴 성경에 유일한 사람으로 두 번째 남편 밭디엘은 미갈을 다윗이
데려 갈 때 울며 따라 갔다고 한다.
다윗은 왕이 될 때에 불레셋의 도움을 받았지만 불레셋은 사사시대부터 지금까지 이스라엘을 괴롭히고
대결의 상태로 있으며, 현재도 불레셋(팔레스타인)은 뉴스에 자주 등장하니 조금 다루어 본다.

<플로렌스 미켈란젤로 동산에 서 있는 다비드상>

 팔레스타인(philistine-그리스어로 '팔라이스티나') [고대 중동지도]

불레셋은 히브리어 '플레셰'어원인 '필리스티아'는 AD135년 하드리안 황제는 반란을

진압하고 다시는 반란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선민사상을 없애기 위해 유대지역의

이름을 없애고 '팔레스타아'로 바꾸어 오늘날까지 사용하게 되었다.

불레셋은 함의 자손이나 어디서 왔는지 잘 알 수 없지만 2 가지로 추측할 수 있다.

하나는 이집트를 공격하다 패하여온 이방인으로 페니키아(베니게)같이 바다를 무대로

삼아 활동하든 민족으로 생각한다.

또 하나는 에게 해 섬에 살던 사람으로 그리스 본토인들이 섬을 점령하자 키프로스로

간 사람들과 이집트 북동쪽 작은 연안지역에 정착한 사람들로 생각한다.

팔레스타인은 '펠리시테인의 땅의 뜻'은 동일어로 민족과 지역(땅)의 개념으로 같이

쓰였으나 현제의 주민은 다윗과 싸우던 불레셋 민족은 아니다.

BC 586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가나안을 파괴하고, 남 이스라엘 왕국 마지막 왕

시드기야를 바벨론으로 끌고(왕하 25: 1-7) 갈 때 불레셋 민족도 함께 끌려갔다.

이것을 제 2회 '바벨론 유수'이라고 하는데 유대민족은 되돌아 왔으나 불레셋 민족은

돌아오지 않아 가나안에서 땅에서 사라졌다.

불레셋은 가나안 정복시 철기를 가지고 있어 여호수아가 점령하지 못한 곳이며, 가나안

정복 때 위험을 느끼고 유대인을 공격한 민족이다.
불레셋이 유대인의 법궤을 빼앗아 7개월 동안 가지고 있을 때 큰 재앙이 내려 재빨리 돌려주었다.
삼손이 불레셋 사람 들릴라에 속아 두 눈이 빠진 후에 하나님께 간구하여 이스라엘을 구하였다.
다윗이 싸워 이긴 골리앗도 불레셋 사람이다.
불레셋이 철기를 먼저 다루었고, 이스라엘에 전하여 준 것 같다. [팔레스타인 참조]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되면서 지명들이 되살아났으며, 이 지역을 유대인들은 '에레츠

이스라엘(이스라엘의 땅)'이라고 부르게 됐다.

'팔레스타인 사람'은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의 자치지구에 사는 사람과 이 지역 사는

난민을 지칭하며, 이스라엘의 지배하는 지역에 사는 사람은 이스라엘 아랍인이라 따로

구별하여 부른다.
넓게는 현재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이 사는 전지역을 팔레스타인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팔레스틴 사람만 사는 지역을 말하기도 하는데, 현재의 지역을 나누기는 무척 복잡한다.
건물을 나누거나, 도시를 나누기도 하고, 지역을 나누기도 한다.
이스라엘이란 바다 안에 팔레스타인란 섬나라가 있다고 생각하면 쉽다.

[이 지역에 살던 가나안 7족]
1) 가나안(시돈) 2) 아모리 3) 브리스 4) 여브스 5) 히윗 6)헷(힛타이트) 7) 기르가스(길갈)이다.
이들은 정복되었거나 동화되어 유대인과 한민족으로 운명을 같이하였은나
불레셋 만은 따로남아 지금까지 대립하고 있다.
 3대 솔로몬(BC 962 - BC922 경)
우리는 그를 지혜의 왕으로 잘 알고 있다.
아기의 어머니가 둘이어서 아기를 둘로 나누어 주라고 하자 아기의 죽음을 원하지 않는 친어머니가
포기함으로 누가 친어머니인가를 알아 낸 것과 생화와 조화를 가려내는 방법으로 나비가 찾아오는
원리로 알아낸 것 등이다.
지혜를 배우기 위하여 멀리 에티오피아 여왕 시바(스바)가 찾아 왔다.[메넬리크 2세참조] [아라비아참조]
솔로몬은 여왕과 내기를 하였는데 솔로몬의 허락 없이는 어느 것도 취하면 게임에 지는 것이었다.
그녀에게 짠 음식을 대접하였고, 그녀는 허락 없이 물을 먹었다가 게임에 지고 말았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그의 지혜를 담은 책이 잠언서이다.
다윗(군인)과 솔로몬(건설자)시대는 이스라엘은 세계최강국이었으며, 그때 애굽, 앗수르, 바벨론은 약했다.
그는 성전과 궁전을 건축하였고, 무역(각 나라와 페니키아=베니게 등), 금속, 건축에 뛰어난 왕이다.
예루살렘은 가장 화려한 성읍이며, 성전은 가장 장엄한 건물이었다.
그러나 그도 잘못이 많았는데 늙어 첩들이 가지고 온 신들의 신당을 건축하였고,
정치에 잡신을 도입한 것은 성서의 슬픈 장면이다.
강제노동과 중과세는 북부 반란의 원인이 되어 죽은 후 나라가 분열하게된다.
그는 성경 잠언, 전도서, 아가를 썼다.

 



<솔로몬과 시바여왕>

출처 : 세계 역사속으로
글쓴이 : 인스토리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