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회복과 430년의 기간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 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니 이는 땅에 큰 환난과 이 백성에게 진노가 있겠음이로다 저희가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눅 21:23-24)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리이까하니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아니요(행1:6-7)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그 간바 열국에서 취하며 그 사면에서 모아서 그 고토로 돌아오게 하고...그들이 다시는 두 민족이 되지 아니하며 두 나라로 나누이지 아니할찌라(겔 37:21,24)
여러 날 후 곧 말년에 네가 명령을 받고 그 땅 곧 오래 황무하였던 이스라엘 산에 이르리니 그 땅 백성은 칼을 벗어나서 열국에서부터 나와서 다 평안히 거하는 중이라(겔 38:8)
이스라엘의 회복에 관한 성서적 근거
예수 그리스도는 공관복음서에서 마지막 때에 있을 징조들을 언급하면서, 우선 1차적으로는 예루살렘에 대한 멸망을 예언하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누가복음 21 : 23, 24절 말씀에서 각각 <이 백성>, <예루살렘>을 언급함으로써 <유대인>들로 그 범위를 국한시키고 있다. 그리고 에스겔서 37:38절에서 말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회복>은 38:8절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 처럼 <말년-a long time, in the distant future>에 있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한편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누가복음 21:20-24절 까지의 말씀의 적용은 반드시 A.D 70년과 A.D135년의 시점에 맞춰져야 한다는 것이다. 누가복음 21:23절에서 사용하고 있는 ‘진노(Wrath)’라고 하는 단어는 원어상의 의미인 ‘호르게’로써, 즉 <분노>, <분개>와 동일한 의미인데, 이는 누가복음 13:34-35절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 처럼<이스라엘을 향한 예수님의 탄식>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이와는 반대로 에스겔, 이사야, 스가랴, 학개, 그리고 스바냐 등 <바벨로 포로 이후>시대에 주로 활동했고 예언 했던 선지자들의 책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은, <마지막 때>에 있게 될 <이스라엘의 회복>에 관한 것이며, 이 예언서에서 가리키는 ‘시점’은 <종말의 때>에 맞춰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구약에서 말하는 바벨론 포로와 그 이후 이스라엘 귀환의 멧세지의 중심은 <마지막 때>에 성취될 <이스라엘의 귀환과 회복>을 동시에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선지서들에서 보여주고 있는 최후에 있을 하나님의 심판(겔38:17-23)은, 이스라엘에 대한 <저주>와 <분노>의 성격이 아닌, 하나님 그 자신의 <의>를 전 세계에 선포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누가복음 21:24절의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라는 말씀은 실제로 A.D 135년 조국 이스라엘에서 추방당한 유대인(디아스포라)들이 1917년 벨포어 선언(이스라엘 건국)과, 그 뒤에 이은 1947년 UN의 합의 결의안이 있기까지 약 1900여년 동안의 <흩어진 디아스포라 기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누가복음 21:24절에서 에스겔서 37:21절의 말씀이 성취되기까지의 공백기간은 약 1900여년이 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회복과 숫자의 상관성
성서에서는 고유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몇 가지의 중요한 <숫자>가 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12, 7, 6, 4, 3 과 같은 숫자가 그 대표적이다. 그 중에서 ‘4’ 라고 하는 숫자가 지니고 있는 고유한 의미는 <고난>이며 '3은' <완전함>이다. 한편 <4>와 <3>이라는 숫자는 자주 <40일, 40년, 혹은 400년>, 그리고 3은 <30년>의<기간>을 나타낼 때 쓰이곤 한다. 그러면 성서에서의 기간, 즉 400년과 30년을 더한 430년이라는 기간이 <이스라엘의 회복>과 관련해 어떠한 연관성이 있는 지 살펴보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고 흥미로운 일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성서에서 가장 대표적인 두 사건, 즉 모세의 <출애굽 사건>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회복>이라는 관점에서 한 가지의 독특한 공통점을 이끌어 낼 수 가 있다. 그것은 <430년>이라는 기간이다.
1.성서 속에서의 이스라엘의 회복
430년과 이스라엘의 출애굽 사건, 그리고 다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
먼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데리고 애굽을 탈출할 때,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기간이 바로 <430>년이 정확하게 차던 해라고 말을 한다. 물론 이 기간과 관련해서 학자들 간에 몇 가지의 상이한 견해가 존재한다. 그러나 성서에서는 분명히 <400>년 혹은 <430>을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백 삼십년이 마치는 그 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땅에서 나왔은즉(출 12:41)
모세는 430년간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데리고,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 출애굽을 한다. 먼저 그는 왕의 아들(애굽의 왕자)의 신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버리고 미디안 광야에 들어가 40년간 양들을 돌보는 목자로서의 삶을 살아간다. 목자로서의 40년이라는 기간은 하나님이 모세를 준비시키기 위한 특별한 준비기간임을 잘 알 수가 있다. 그리고 후에 그는 호렙산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부름을 받고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가 된다. 그래서 그 백성들을 이끌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 가나안으로 향하게 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 자신의 죄로 말미암아 40년간의 광야생활을 마친 후에야 비로소 후계자인 여호수아에 의해 가나안 땅으로 진입하게 된다.
그리고 이어 신약으로 넘어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만난다. 앞서 언급했던 출애굽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의 예표임을 잘 알고 있다. 구약의 <출애굽 사건>이 애굽에서의 430년간에 걸친 종살이로부터 해방시켜준 사건이라면, 신약의 <십자가 사건>역시 430년간의 <신구약 중간기의 암흑>을 뚫고 참 구원과 회복을 가져다 준 사건이다.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B.C 4)까지의 기간을 약 400년간으로 본다. 선지자 말라기의 활동연대는 정확히 언제인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일반적인 견해는 400년이다. 한편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시기는 B.C 4년경이라는 것은 이미 일반화 된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이는 헤롯왕의 죽음(B.C 4)을 기점으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이 거의 같은 시점에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 400년의 기간동안 선지자의 활동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흔히 이 400년의 기간을 <암흑시기>라고 말을 하기도 한다.
암흑시기인 400년간 이스라엘은 제국국가들의 속국으로 있었는데, 즉 바사(이란), 헬라(셀류쿠스제국-시리아), 로마제국의 속박 아래에 놓이게 된다. 특히 셀류쿠스 왕조 안티오쿠스 4세가 유대인들에게 저지른 끔찍하고도 잔혹한 행위는 유명하다. 그는 예루살렘에 밀어닥쳐 성전에 들어가 보물을 빼앗고 시리아 군대를 주둔(B.C169-168)시킨다. 그리고 유대율법에 순종하는 일을 금지시키고 성전에 제우스신(바알신에서 유래되었으며, 로마제국 당시엔 주피터신)을 세우고 토라를 불태운다.(B.C167-164) 이렇듯 중간시대에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끔찍한 일들이 벌어진 기간이었다. 게다가 이어서 출현한 로마제국의 폭군 헤롯대왕(B.C37-4)는 가장 잔인한 인간 중의 하나였는데, 그의 잔인함은 그의 아내와 두 아들, 그리고 심지어 자신의 어머니도 살해할 정도였다.
바로 이러한 암흑시기에 예수 그리스도는 탄생하게 된다. 그리고 종국적으론 구속사역을 완성하시고 십자가에서 운명(A.D 30)하게 된다. 정확히 말라기 선지자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까지는 430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바로 구약의 출애굽 사건의 실제를 의미하며, 이로 말미암아 진정한 구원과 회복을 안겨준다.(고전10:11)
2.역사 속에서의 이스라엘의 회복
430년과 UN <이스라엘 재건국>합의 결의안 (1517-1947)
그렇다면 출애굽 사건과 십자가 사건은 현재 이스라엘의 회복과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다음의 논의는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해석일뿐이다. 그러나 이것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서 성서의 관점으로 재조명하려 한 시도임을 밝혀두고자 한다. 적어도 성서의 가장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두 사건을 통해 언급되는 <430년>이라는 기간, 이 기간을 이스라엘의 회복이라는 관점에서 현재의 <이스라엘의 회복>과 연관짓고자 한다. 또한 이 시점에 맞춰 일어나는 몇 가지의 중요한 사건들을 같은 맥락에서 분석해 보고자 한다.
A.D 70년의 이스라엘의 멸망에 이어서 A.D 135년에 유대인들은 전 세계에 흩어지게 된다. 아니 사실은 쫓겨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세계각처에 흩어져서 살아가는 유대인들을 디아스포라라고 부르게 된다. 앞의 글에서도 언급한 것 처럼 이미 예수 그리스도는 예루살렘의 멸망과 아울러 유대인들의 디아스포라의 운명을 예견하고 있으셨다. 아니 그것은 이미 창세기에 등장하는 장자 가인이라는 인물을 통해서(창4:10-26) 애초부터 예견되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1947년 11월 UN의 이스라엘 / 팔레스타인 분할 결의안이 합의 될 때 까지, 다시말해 이스라엘의 재건국이 공식적으로 인정되기까지 1900여년이 걸렸다. 이 기간동안 이스라엘은 신.구약 중간암흑시기 때에 겪었던 것 처럼, 많은 제국국가들의 지배 아래에 놓이게 된다. 그리고 예루살렘은 세계의 3대 종교의 성지로 자리잡게 되는데, 즉 유대교, 기독교(가톨릭,정교회,개신교), 이슬람교가 그것이다. 게다가 예루살렘엔 저 유명한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가 옛 성전터 위에 세워지게 되며, 기독교도의 십자군(1096)을 시작으로 7번에 걸친 전쟁으로말미암아 수많은 유대인들이 대량 학살 되게 된다. 1096년에 시작된 유대인 대학살은 20세기 나치의 유대인 전멸 정책까지 유럽에서 계속 되었으며, 기독교도에 의해 주로 자행되었다는 사실은 그저 아이러니할 뿐이다.
430년간의 애굽종살이에서 출애굽사건의 시작, 그리고 430년간의 중간암흑시기에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다시 마지막 때에 성취될 '이스라엘의 회복'(겔37:21)으로 연결된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1517년 팔레스틴에 대한 오스만왕조의 지배와 마틴루터의 종교개혁이 같은 해에 시작된다는 점이다. 마틴루터의 종교개혁은 1917년 '발포어 선언'이 있기까지 <이스라엘의 재건국>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며 강력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종교개혁은 <가톨릭>으로부터 <개신교>를 분리해낸 사건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궁극적으로는 <이스라엘의 회복>의 시작을 알리는 위대한 성격을 띤 사건이기도 하다.
A.<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한 하나님의 준비기간 400년, 그리고 30년의 역사
1. 400년간의 역사의 재조명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지배와 멸망까지의 400년(1517-1917)
이스라엘에 대한 오스만 제국(터어키)의 지배는 정확히 400년간 지속된다. 이 기간동안 이스라엘은 오스만제국의 지배 아래 놓이며, 터어키가 회교 군주국이었으므로 이스라엘은 십자군 시대 200년간을 제외하곤 1천여년간을 거의 이슬람 교도에 의해서 지배를 받아온 셈이다. 그리고 비로서 1917년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에 영국군이 들어오게 되는데, 십자군 이래 처음으로 비이슬람 군대가 주둔하게 된다. 이 때 유대인의 부대도 함께 입성 하는데 육군 상병 데이빗 벤 구리온(David Ben-Gurion)이라는 지도자도 함께 들어왔다. 400년간에 걸친 이스라엘에 대한 오스만 제국의 지배는 이로써 종말을 고하게 된다.
종교개혁의 시작과 발포어 선언까지의 400년(1517-1917)
이스라엘의 회복에 서광이 비치기 시작한 것은 루터의 종교개혁 후 인문주의의 발달로 인간성 회복의 운동에서 부터이다. 이는 동시에 본격적으로 유대인 해방운동도 시작되는 계기가 되었다. 유대인 출신의 최고 학자들이 계몽주의에 편승해서 유대인 자유화 운동이 시작된 것이다. 이 영향으로 서유럽을 위시하여 유대인 해방운동은 빠른 속도로 번져나가게 되며, 이에 반해 동유럽에서는 그보다 후에 본격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 이 영향으로 1657년 오란다에서 최초로 유대인들에게 시민권이 부여되었으며, 영국에서는 18세기 이래 유대인들에게 법적평등을 인정하게 된다. 그리고 1830년 이후부터는 유대인도 공직에 진출할 수 있는 문이 열리게 된다.
전세계에서 시작된 유대인의 법적 평등 및 권리의 부여, 그리고 그로 인한 유대인의 해방은 다음과 같은 역사를 따르게 된다.
미국(1776) / 프랑스(1789) / 이탈리아및 독일(유대인 거주지역인 '게토지역' 해방) / 프랑스(1846) / 영국(1858) / 이탈리아(1871) / 스위스(1874)
그리고 이러한 움직임들은 결국 1897년 8월 29일 204인의 유대인 대표들이 모여서 최초로 개최한 <시온주의>를 탄생시키는 밑거름이 된다. 이는 또한 전세계 시온주의 기구설립을 채택하게 되고, 전세계적인 운동으로 발전시켜나가는 촉매역할을 하게 된다. 그 결과 동유럽과 러시아(거주지 제한 정책의 철폐로 인해 가능하게 됨-1917.3월 시행)에서 불모의 땅 팔레스타인으로 모여들기 시작했으며, 당시 팔레스타인 땅은 굶주림과 고통이 따르는 황무지에 불과했다. 그리고 초기 정착민 중 많은 사람들은 질병과 굶주림으로 죽어가기도 했는데, 결국 유대인 민족의 저력은 지금의 키부츠(집단 공동체 농장)를 탄생시킨다. 한편 이것을 가능하게 한 중요한 요인중의 하나는 유대출신이면서 대부호들인 재벌 및 금융가들의 아낌없는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하게 되었다. 특히 미국에 있는 유대인 부호들의 역할이 결정적인 작용을 하였다. 그리고 드디어 1917년의 발포어 선언, 1947년의 UN의 분할 합의안, 그리고 최종적으로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 공화국이 탄생하게 된다. 실로 이것은 1,900여년을 뛰어넘어, 2,600여년 만에 완전한 독립국가의 모습으로 재탄생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2. 30년간 역사의 재조명
발포어 선언과 UN 합의안까지의 30년(1917-1947)
1917년 발포어 선언으로부터 이스라엘의 재건국을 승인한 1947년 UN 합의안이 있기까지의 30년의 기간은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독립할 수 밖에 없는 <시대적 요청>을 잘 반영하고 있는 기간이다. 특히 세계전쟁의 발발로 인해(1914-1945 1,2차 세계대전)더욱 가속화 될 수 있는 결정적 계기를 맞게 된다.
또한 특이할만한 사실은 1917년 발포어 선언이 있었던 같은 해에, 러시아에서는 정말 중대한 역사적 사건이 발생하게 되는데, 그것은 '러시아 혁명'이다. 러시아 혁명은 세계 최초의 공산주의를 탄생시켰으며, 이로 인해 세계는 극단적인 두 세계로 양극화 되기에 이른다. 즉 이 사건은 정치적으로, 또 군사적으로 이념의 대립의 결과로 냉전, 전쟁, 그리고 그로 인해 수반되는 수많은 희생의 결과를 낳게 된다. 다시말해 비극의 시대를 알리는 첫 신호탄이 된 것이다. 그러다가 후에 결국 공산주의는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최근 다시 <러시아의 부활>이 급속도로 가속화 되면서, 정치적으로, 또 군사적으로 대치 상황이 재현되고 있다. 이는 에스겔서를 비롯한 예언서에서 <이스라엘의 회복>과 함께 마지막 때의 예언을 이루는 하나의 확실한 징조를 보여주는 예이다.
정치적으로, 군사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대격동기를 경험하게 되는 이 시기에 역시 종교적으로도 하나의 큰 사건을 목격하게 된다. 같은 해 1917년 포루투칼의 파티마 지역에서 일어난 <성모마리아의 출현 및 예언>사건이 그것이다. 이 파티마 사건은 가톨릭의 교황에 의해 극비로 취급될 만큼 대단히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 된다. 현재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최근 서거한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그 비밀의 전모가 알려졌으며, 그 비밀의 내용에 대한 해석을 교리적으로 체계화하고 정립한 사람이 바로 당시 교리성 장관으로 있었던 라칭거 추기경(현 베네딕트 16세 교황)이었다. 대략 말한다면 그 비밀의 내용이란 <세계전쟁과 최후 심판>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 예언이다. 물론 전쟁에 관한 예언은 이미 제 1,2차 세계전쟁으로 성취된 것으로 본다. (이것에 관하여 관심있는 분들이라면 '파티마' 예언에 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1917년과 1947년 사이에 일어났던 20세기 초의 사건들은 이상과 같이 인류 역사에서 가장 혹독한 시련기를 경험하는 시간이었다. 히틀러에 의해 자행되어진 유대인 대량학살 사건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사실 홀로코스트는 유럽의 전체국가들에 의해 암묵적으로 합의되었던 사건으로 보는 것이 옳을 수도 있지만, 아무튼 이 당시 대량학살로 인해 수백만명의 유대인들이 참혹한 죽음을 당하게 된다. (최대 600만이라는 통계도 있지만 상이한 견해가 존재함). 그러나 결국 이러한 핍박과 협박으로 인해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오는 결정적 계기가 마련 된다. 또한 1917년 러시아의 <거주지 제한 정책>이 해제 되면서 그곳에 디아스포라로 살았던 수많은 유대인들은 그 어떤 나라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보다 많은 수가 이스라엘로 귀환하게 된다.
제1차적으로는 유대인들에게, 또 2차적으로는 세계인류에게 혹독한 시련과 고통을 안겨다준 사건들이 30년 동안 발생하게 되는데, 놀라운 것은 이 시점이 바로 <이스라엘이 재건국>하는 시점과 일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이스라엘은 수천년간의 침묵의 기간을 깨고, 그리고 마치 해산하는 여인처럼 고통과 아픔을 딛고 잉태의 순간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에르쯔 이스라엘, 즉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의 땅>에 돌아와 독립국가를 세우게 되는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게 되며, 그 중심에는 이 세계의 역사를 주관하시고 움직이시는 하나님의 신실한 개입이 있으셨음을 부인 할 수 없다.
한편 구약성서에서는 바벨론 포로와 이후에 성취될 이스라엘의 재건 사건이, 출애굽 사건과 아울러서 가장 중요하고도 의미 있는 사건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이는 이스라엘의 회복은 열국에 대한 하나님의 최후 심판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게 됨을 언급하고 있다. 또 그것은 가장 확실한 마지막 때의 징조로써 묘사되고 있다.
B.<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한 하나님의 과정기간 60년(1947-2007)
1. 30년간의 역사의 재조명
UN 분할합의안에서 이스라엘/이집트 평화협정 제안까지 (1947-1977)
1947년 11월 UN 총회에서 유대국가와 아랍국가에 대한 동시 분할안이 결정되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 국가는 다시 재건되었다. 독립이 선포된 후 13명의 초대내각을 구성했으며 초대 대통령으로는 30년간 시온이즘 운동을 지도해 온 와이즈만 박사를 초대하였다. 이렇게 해서 이스라엘 국가가 재건되면서 미국을 비롯한 다수 국가들이 속속 승인에 동참하게 된다. 그러나 아랍국은 이스라엘 국가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특히 이집트(애굽), 시리아(헬라-셀류쿠스 제국 ), 요르단(에돔,암몬,모압), 레바논(페니키아) 등은 강경하게 대항하기에 이른다. 결국 이스라엘은 주변국가의 단호한 반대에 부딪혀야만 했고, 1973년 욥키푸루 전쟁까지 모두 4차례에 걸쳐 중동전쟁을 치뤄야만 했다. 한편 이스라엘은 2차대전 당시, 줄곧 나치의 박해를 피해 팔레스틴으로 계속 모여들었다. 그래서 1947년 이후엔 많은 수의 유대인들이 정착하게 된다.
제 1차 중동전쟁(1948.5)
1948년 이스라엘의 독립과 동시에 7개국으로 구성된 아랍 연합군이 이스라엘 영토를 침입했다. 절대적 약세 놓여있던 이스라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전쟁을 통해 UN 분할안에 명시된 영토보다 훨씬 넓은 영토를 장악했다.
제 2차 중동전쟁(1956. 7)
1956년 소련으로부터 막대한 군사원조를 얻어 압도적인 군사력을 가진 이집트는 '이스라엘 국가의 전멸'을 다짐하고 이스라엘과 전쟁을 벌인다. 그러나 영국과 프랑스는 이집트의 '수에즈 운하 국유화 정책'에 반대하면서, 급기야 연합군을 결성해 시나이 반도를 급습한다. 하지만 정치적인 이유로 인하여 미국 소련의 압력을 받게 되자 연합군과 이스라엘은 철수하게 된다. 한편 가자의 이집트군 기지를 철저하게 파괴시킨다. 2차 중동전쟁에서도 이집트는 대패했다. 3만여명의 군사가 갈증으로 죽어갔으며, 이중 5,000여명 정도가 포로로 잡힌다. 그러나 이에반해 이스라엘은 172명의 전사자와 80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하게 된다.
제 3차 중동전쟁(1967.6)
1967년 대아랍 전쟁은 전쟁 역사상 가장 짧은 시일안에 가장 많은 영토를 점령한 전쟁으로 기록된다. 이 전쟁은 6일 안에 끝이 났으며 이집트로써는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되며 복구에 상당한 시일이 소요되게 된다. 이스라엘은 이집트에 선제 공격을 가함으로써 제공권을 장악, 출격 4시간만에 적기 4백여대와 군사 요충지 25개소를 격파하는 전과를 올렸다. 이집트는 소련에서 지원받은 20억불의 군사장비 중 대부분을 6일 전쟁에서 소모하게 된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19대의 비행기 손실을 입는데 그쳤다.
제 3차 중동전쟁은 다음 몇 가지의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첫째, 동예루살렘(이스라엘의 성지)을 점령하게 된다.
둘째, 북쪽의 시리아 골란고원(헤르몬산) 지대를 모조리 점령하게 된다.
셋째, 요단강 서안 일대를 점령하게 된다.
위에서 언급한 세 곳이 지니는 성서적, 그리고 역사적 중요성을 반드시 이해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제 4차 중동전쟁(1973.10)
3차 전쟁에 걸쳐 굴욕적인 패배를 맛본 아랍국가들, 특히 이집트는 주도면밀한 계획을 세우고 다시 전쟁준비에 돌입한다. 남쪽 시나이반도는 이집트, 그리고 북쪽 골란고원을 시리아가 동시에 공격하게 된다. 개전 초기 이스라엘은 골란고원에서 패전하게 되는데, 정말 놀라운 것은 전멸 위기에 처해진 이스라엘 군을 포기하고 시리아 군대는 작전상 후퇴함으로써 믿을수 없는 실수를 범하게 되며, 그로인해 전쟁은 한 순간에 반전이 되어버린다. 다시 이스라엘은 전열을 정비한 후 수에즈운하를 이집트군으로 가장해 도강한 후 이집트 영토에 몰래 침입한다. 이집트 영토를 직접 침입하기는 이스라엘 역사상 최초의 일이다. 그리고 <마긴 다비드-다윗의 별표>를 이집트 영토 안에 게양한 후 수많은 이집트군을 포위, 전멸의 위기에 몰아넣게 된다. 다급해진 이집트 왕 사다트는 미국에 중재를 요청하며 미국무장관 키신저의 중재로 휴전이 성립하게 된다. 그러나 1978년 캠프 데이비드 평화 협정 이후 이집트 사다트 대통령은 군대에 의해서 암살을 당하고 만다.
1977년 11월 19일 이집트의 사다트 대통령이 역사상 최초로 예루살렘을 방문하여 이스라엘이 시나이 반도 점령지역에서 철수한다면 평화협정을 맺을 수 있다고 선언하게 된다. 그래서 1978년 9월 17일 미국의 카터 대통령과 사다트 대통령 및 메나헴 베긴 이스라엘 수상이 평화의 원칙에 합의한 후 역사적인 캠프 데이비드 협정에 서명하게 된다.
2. 30년간의 역사의 재조명
이집트 평화협정 제안에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정까지(1977-2007)
1973년 중동 4차 전쟁까지 아랍권은, 특히 이집트를 중심으로한 연합세력은 공산권(구소련-에스겔서에서는 <곡>이라고 언급된 국가 - 겔38:16) 의 막강한 군사원조를 바탕으로 이스라엘을 공격했지만 모두 패배했다. 이집트의 피해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막대한 것이었다. 지난 4차에 걸쳐 치러진 중동전쟁의 성서적 의미는, 예언서에서 알수 있듯이 이스라엘을 압제하고 괴롭혔던 열국들을 하나님이 직접 이스라엘의 손을 들어 심판하고 계신 다는 것이며,(슥1:16-21) 이스라엘의 회복을 통하여 하나님은 <자신의 의>를 온 열국 가운데에 보여주고 계시다는 사실이다.(겔38:16)
한편 1977년 평화협정의 제안에 이어 1978년 공식적으로 평화협정에 서명한 이후, 중동은 비교적 평화로운 상황을 맞게된다. 물론 주변국가들과의 몇차례 산발적인 충돌이 있긴 했었지만 4차에 걸친 중동 전쟁 만큼이나 큰 규모의 전쟁은 없었다. 그리고 최근 핵문제와 관련하여 이란 및 시리아와의 정치, 군사적 마찰이 일게 되었고, 그 와중에 다시 미국의 중재로 평화협정의 제안을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1977년 이집트의 평화협정제안 이후 정확히 30년이 되는 해인 2007년에 미국의 중재로 2008년까지 평화협정을 완료할 예정인데, 여기에서 특이할 만한 사실은 다음과 같이 일정한 기간을 두고 이스라엘 역사가 전개된다는 사실이다.
1947년-UN 분할 합의안 > 1948년-이스라엘 독립국가 재건
1977년-이집트의 평화협정 제의>1978년-캠프 데이비드 평화협정 체결(미국중재)
2007년-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정 제의> 2008년-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정 완료 예정(미국중재)
1517년에서 1917년까지의 400년, 그리고 1947년 UN 분할 합의안까지 30년, 이후 정확히 30년간의 일정한 기간을 두고 평화협정이 제의되고 체결된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성서적인 언어로 말한다면 <때가 차매>라는 말이 이럴때 쓰는 것이 아닐까 한다. 또한 한 가지 주목 해야할 것은 1967년 3차 중동전쟁을 통해 차지한 동예루살렘 및 골란고원, 그리고 서안지역의 반환문제가 중동의 평화에 핵심적인 사안이 된다는 것이다. 1967년 이후 정확히 40년이 되는 해, 즉 작년부터 미국의 중재로 다시 한번 본격적으로 가시화 된다. 그리고 현재 부시 대통령의 중재로 본격적인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동예루살렘의 성서적 의미와 가치는 대단히 중요하다. 그리고 요단강 서안지구 및 역시 골란고원(헤르몬산 부근-시리아와의 분쟁)은 또 얼마나 중요한가...지금 평화협정의 중심에 서있는 문제가 바로 이것에 대해 양보 하느냐, 안하느냐의 문제이다. 이것과 관련한 성서적 근거와 그 의미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차후에 논의할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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