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의 길 20 성령님의 은사와 열매
성경 : 베드로전서4:10=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아멘.
갈5:22-23=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아멘
성령님으로 충만한 삶을 지속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성령의 은사와 성령의 열매로 충만해야 합니다. 또 성령 충만함을 지속적으로 구하여 성령 안에서 살아갈 때 우리에게 성령의 은사와 열매가 맺어집니다. 은사가 성령으로 외적 충만한(성령님의 외적 사역) 것이라면, 열매는 성령님의 내적 충만한(성령님의 내적 사역) 상태입니다. 성령의 은사가 성령님이 우리에게 부여하시는 외적인 삶의 능력이라고 한다면, 성령의 열매는 내주하시는 성령님으로 인해 우리 안에 만들어지는 거룩한 성품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성령의 은사운동을 중요시 여기며 양적 부흥을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성령의 능력이 내적인 성품 변화에까지 도달하지는 못하여 많은 부작용도 낳게 되었습니다. 성령의 은사를 강조하여 양적 부흥은 이루었지만, 성령의 열매에 대해서는 소홀히 여겨 질적 부흥을 이루는 일에는 부족하였습니다. 이것은 기독교가 사회적인 지탄을 받는 하나의 요인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결과가 나타나게 된 이유는 주로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에 열심을 내지 못한 것에 있지만, 성령의 은사마저 성경의 정신에 맞게 올바로 사용하지 못한 것에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은사를 바로 이해하여 교회의 덕을 세우고, 성령의 능력을 스펀지처럼 우리의 내면 깊숙이 흡수하여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를 맺어가야 합니다.
Q 오늘날 기독교가 사회적인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은사란 인간의 공로나 욕구에 따라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교회를 섬기기 위해 성도에게 주어지는 성령님의 선물입니다. 은사는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 하나님께서 임의로 나누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신 성령의 은사가 무엇인지 발견하고 개발하여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사용해야 합니다.
만약에 우리가 어떠한 은사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 자신의 신앙의 유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속한 공동체를 위해서 그 은사를 더욱 가꾸고 개발하여서 잘 사용해야 할 책임과 의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 아니하고 은사를 방치해 버리고 만다면 우리는 마치 한 달란트를 받고 땅에 묻어 둔 사람처럼 하나님으로부터 책망과 심판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은사의 목적은 성도를 온전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덕을 세우는 것에 있습니다.(엡4:12-13) 성령의 은사는 그것을 받은 개인의 사사로운 유익을 위한 것이거나 자랑을 위하여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은사를 받은 사람은 마땅히 이웃을 섬기고 사랑으로 봉사하며, 자신의 수고나 공로를 드러내지 않고 겸손히 교회를 섬기며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바울서신에는 여러 곳에서 성령의 다른 은사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고전12:1-14, 14:1-40; 롬12:3-8; 엡4:11-13) 성경에 언급된 다양한 은사들을 분류하자면 이적적인 은사(믿음, 예언, 영분별, 능력 행함, 병 고침, 방언, 방언 통역)와 비이적적인 은사로 분류할 수 있는데, 비이적적인 은사는 또 말씀과 관계된 은사(사도직, 선지자직, 교사직, 목사직,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복음 전하는 것, 가르치는 것)와 생활과 관계된 은사(섬기는 것, 구제하는 것, 다스리는 것, 위로하는 것, 긍휼을 베푸는 것, 서로 돕는 것)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각각의 은사마다 고유의 기능이 있기 때문에 어느 특정한 은사를 무시하거나 또 어느 하나만을 중요시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어느 한 은사에 치우치지 말고, 균형적인 가치를 유지해야 하며(고전14:5-19), 덕을 세워야 하며(고전14:12-13), 지혜를 가져야 하며(고전14:20), 자제할 수 있어야 하며(고전14:32), 질서를 유지해야 하며(고전14:40), 가르침을 따라야 하고(고전14:36-37), 사랑의 원리로 해야 합니다.(고전13:) 우리 모두는 하나님이 각자 에게 주신 은사와 재능을 따라서, 또 맡겨진 직분을 따라서 충성해야 합니다. 우리 몸에 눈, 코, 손, 발 등 여러 지체가 있어서 각 역할을 맡아서 하듯이, 사람마다 각기 다른 직분과 은사를 가지고 각기 다른 모습으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겨야 합니다. 우리는 나와 다른 은사와 재능을 가진 사람들을 존중하고 협력하여 교회 공동체를 든든하게 세워가야 합니다. 나와 다른 은사를 지닌 이들과 마음을 합하여 함께 선한 청지기같이 그리스도의 몸을 섬겨야 합니다.
Q 당신이 받은 은사는 무엇입니까? 그 은사를 어떻게 개발하고 있습니까? |
성령을 받으면 은사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내적인 열매로서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성령 충만의 가장 중요한 결과는 성품의 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5:22-23에 언급된 아홉 가지 성령의 열매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이며, 그리스도인의 성화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했음에도 육체의 일에 빠져 우상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 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에 빠져있는 것을 경고하면서(갈5:19-21),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성별된 삶을 살아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갈5:24) 성도는 그리스도의 거룩한 피의 값으로 죄로부터 자유함을 입었습니다. 따라서 이제는 죄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성령 충만함을 받은 성도들은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아름다운 성품의 열매를 맺기 위하여 각자의 마음을 다스리고 육체의 소욕으로부터 벗어나 마지막 때에 거룩한 몸으로 영화롭게 될 때까지 성화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 첫 번째는 ‘사랑’입니다. 사랑은 아홉가지 성품 중에 가장 중요한 성품입니다. 다른 모든 성품들도 실상은 다 사랑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에서 배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사랑의 세 가지 태도는 1)사랑은 상대방에게 나를 낮추는 것이며 2)사랑은 희생할 줄 아는 것이며 3)사랑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기인한 것인데, 하나님의 사랑은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시는 존재론적인 사랑이며, 조건을 따지 않는 무조건적인 사랑이며, 끈까지 변치 않는 영원한 사랑입니다. 먼저 우리를 사랑해 주신 선행적 사랑입니다.
두 번째는 ‘희락’입니다. 우리가 성령 안에 거할 때에 우리 안에는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기쁨이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기쁨은 감정적인 차원의 기쁨이 아니라 삶의 태도로서의 기쁨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주 안에서” 기뻐하라고 권면하였습니다.(빌4:4) 그래서 때때로 어려운 상황 속에라도 주님 안에서 기뻐하는 삶의 태도를 가지면 우리는 희락이 가득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세 번째는 ‘화평’입니다. 화평, 평강, 평화는 그 내적 기원이 평안인데, 평안은 상황을 초월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절대 평정의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평안할 때 다른 사람과도 좋은 관계를 맺어서 참된 화평을 이룰 수 잇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내적인 평안이 바깥으로 향하는 것이 화평입니다.
화평은 세 가지 삶의 태도로 만들어지는데, 1)친절이며 2)배려이고 3)존중입니다. 우리가 친절과 배려와 존중으로 다른 사람을 대하여 관계의 화평을 이루면 이것이 또 우리 안에 내적 평안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므로 평안하면 화평할 수 있고, 화평하면 평안할 수 있습니다.
네 번째는 ‘오래 참음’입니다. 인내는 한 마디로 참고, 견디고, 기다리는 내적인 힘을 말합니다. 참는다는 것은 감정적인 차원으로서 특히 분노하고 화를 내는 것을 참을 줄 아는 것을 말합니다. 견디는 것은 어떤 고난 중에서도 그것을 이겨낼 줄 아는 것을 말합니다. 기다린다는 것은 시간적인 차원으로,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하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을 말합니다.
다섯 번째는 ‘자비’입니다. 자비는 한 마디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말하는 것인데, 이 마음은 그 첫 출발점이 바로 ‘공감’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실 때에도 우리와 철저하게 공감해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구원은 하나님의 공감의 결과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공감이야말로 자비의 첫 출발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공감의 마음을 가지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여섯 번째는 ‘양선’입니다. 양선은 ‘어질 양(良)’ 자에, ‘착할 선(善)’ 자를 사용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한데 묶어 살펴보면, 양선은 곧 ‘어질고 착한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과 더불어 살아가고 그분과 교제하면, 우리 안에는 거칠고 악한 성품은 서서히 줄어들고, 내면은 점점 변하여서 참으로 어질고 착한 성품으로 가득 채워지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양선입니다. 양선은 내 안의 착하고 어진 성품뿐만 아니라 나아가서 구체적으로 불쌍한 이웃들에게 선행을 베풀며 살아가는 것까지를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일곱 번째는 ‘충성’입니다. 충성이라는 말은 세 가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1)충성은 ‘믿을 만한 것’인데, 이것은 마음껏 맡길 수 있는 신실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2)충성은 ‘열정적인 것’인데, 이것은 최선을 다하여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성실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3)충성은 ‘변덕스럽지 않은 것’을 말하는데, 이것은 처음과 나중이 일치하는 일관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덟 번째는 ‘온유’입니다. 온유는 한 마디로 부드럽고 온화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온유의 성품에 대해서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온유는 단순히 성격 자체의 유순함이나 부드러움 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온유는 자기 마음을 하나님께 고정하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의탁하는 가운데서 생기는 온화함과 관대함, 친절함입니다.
아홉 번째는 ‘절제’입니다. 절제는 삼가는 것입니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않는 힘입니다.
히브리적 의미로 절제는 조심하고 경계하는 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혹은 삼가 심사숙고하는 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절제는 너무 과하지 않게, 너무 지나치지 않게, 가장 적당한 모습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반응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절제는 자기 자신을 쳐서 복종하게 하는 극기의 힘을 말하는 것입니다.
Q 성령의 열매 가운데 내가 가장 잘 맺고 있는 열매와 내가 가장 맺지 못하고 있는 열매에 대하여 생각해 봅시다. |
우리는 주님의 몸 된 교회와 주님의 사역을 위하여 필요한 성령의 은사를 간절히 사모해야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성령의 은사를 선물로 받아 능력있는 삶을 살아도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하면 공허한 울림에 불과한 것이며, 나아가 교회의 유익을 구하지 않으면 성령의 은사를 받은 일꾼으로써의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는 성령의 은사를 사모하여 그 받은 은사를 통해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성령 충만의 가장 중요한 결과는 성품의 변화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성령의 열매를 온전히 맺어 가도록 더욱 힘써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성령의 열매’(갈5:22-23)를 언급할 때에 그 반대의 의미로 ‘육체의 일’(갈5:19)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바울은 ‘성령의 열매’와 대조되는 말을 ‘육체의 열매’라 하지 않고, ‘육체의 일’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열매는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맺을 수 있는 것이고, 일은 한 순간에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육신의 일은 한 순간의 실수로 잘못된 길로 빠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므로 우리는 한 시도 방심하지 말고 육체의 일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또한 성령의 열매는 우리 안에서 오래 시간 동안의 훈련을 통해 깨어지고 다듬어져 맺어지는 것임을 알려주는 것이므로 성령의 열매를 맺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가장 큰 성령의 은사는 사랑의 은사입니다. 가장 큰 성령의 열매도 사랑입니다. 오직 사랑의 사람이 되어 성령의 은사와 열매가 충만한 삶을 살아갑시다.
Q 내가 속한 공동체 안에서 사랑의 은사와 사랑의 열매를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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