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의 길 19 성령님으로 충만한 삶
성경 : 엡5:18=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아멘
미국의 신앙 부흥기에 몇몇 목사님들이 어떤 도시에서 있을 전도대회를 위한 계획을 세우기 위하여 함께 모여 있었습니다. 이 가운데 어떤 한 목사님이 널리 알려진 전도자 무디 선생을 강사로 고려해 줄 것을 제안했습니다. 대부분의 목사님들이 이 제안에 찬성했지만, 그 가운데 무디 선생을 초청하는 것을 반대하는 한 젊은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그 목사님이 일어나서 다음과 같이 비꼬는 말을 했습니다. “여러분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으니, 마치 무디 선생이 성령님을 혼자 독점한 같습니다.” 회중은 잠시 조용해졌습니다. 그 때 다른 한 목사님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닙니다. 제 생각에는 무디 선생님이 성령님을 독점한 것이 아니고, 성령님께서 그를 독점하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성령님이 전적으로 무디의 삶 전체를 주장하시고 사용하셨습니다. 우리도 성령님이 독점하시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과 능력에 우리 자신을 내어놓고, 주님께서 계획하시는 일들이 우리를 통하여 이루어질 수 있도록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아무도 성령님을 독차지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이렇게 자신을 내어 드리는 사람들을 온전히 독점하셔서 하나님의 큰 일을 이루십니다. 초대교회로부터 지금까지 우리 기독교의 역사는 성령님의 독점하시는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져 왔습니다.
Q 당신은 성령님이 독점하는 사람이 되기 원하십니까? 그렇게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
우리는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고백하고 믿어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더 성령님의 은혜는 필요 없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거룩한 삶으로 날마다 변화받기 위해서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후에도 우리 안에는 타락한 본성에서 나오는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이 동시에 존재합니다. 이 둘은 서로 적대 관계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갈등을 경험하게 됩니다.(롬7:22-25, 갈5:17) 우리는 육체의 소욕을 죽이기 위해서 날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살아야만 합니다.(롬8:13-14)
그래서 ‘성령의 사람’으로 불리는 토레이(R. A. Torrey) 목사님도 죄악에 넘어지지 않기 위해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성령 충만을 위해서 기도하였다고 합니다. 우리는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령’으로 충만하지 못하면 ‘세상의 영’으로 충만할 수밖에 없고, ‘의(義)’로 충만하지 못하면 ‘죄(罪)’로 충만할 수밖에 없으며, ‘성령의 소욕’으로 충만하지 못하면 ‘육신의 소욕’으로 충만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죄악이 충만한 시대에 우리는 반드시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죄악이 충만한 세상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성령 충만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성령 충만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함으 받으라”는 단어는 현재 명령형 동사입니다. 이 동사는 성령 충만이 인간의 선택이 아닌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성령 충만은 하나님의 명령이기에 우리는 반드시 성령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헬라어에서 현재 명령법은 계속 또는 반복되는 동작을 명령을 나타낼 때 사용됩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은 중행 체험처럼 1회적인 경험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반복적으로 계속 경험해야 하는 것임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령을 받으라.”든지, 또 “성령 충만”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이 성령님이 우리 안에 어떤 물질 같은 것으로 채워지는 것을 연상하게 됩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무슨 질량이나 부피가 있어서 어떤 그릇에 채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영이시며, 인격이십니다. 성령 충만은 바로 이러한 인격이신 성령 하나님이 내 마음 깊숙이 자리 잡으셔서 지속적으로 그분의 뜻대로 모든 삶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령님으로 충만하다는 것은 성령님이 우리 안에 계셔서 우리를 온전히 지배하시고 우리를 그의 강력한 영향 안에 두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영적인 사람으로 살아가려고 하면 반드시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사랑에 빠지게 되면 사랑하는 사람이 내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게 되고, 내 마음은 사랑하는 사람의 생각으로 가득차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 속에 들어가면 온통 우리의 삶과 의식과 무의식을 성령님이 지배하시게 됩니다. 이것이 성령 충만입니다. 사람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영적인 지배를 받습니다. 사람은 그가 온 종일 생각하는 그 자체에 지배를 받습니다. 온 종일 돈만 생각하면 돈의 영이 지배하는 것이고, 온 종일 쾌락만을 생각하면 쾌락의 영이 지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온 종일 하나님을 생각하는 사람은 성령의 지배를 받고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이 됩니다.
이 성령 충만은 곧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한 것입니다. 성령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영(靈)이시기 때문입니다.(요16:13)
또 성령 충만은 말씀으로 충만한 것입니다. 에베소서5:18-19의 말씀과 골로새서3:16의 말씀을 비교해 보면, 성령 충만과 그리스도의 말씀 충만이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그 삶을 지배하는 것이 곧 성령 충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성경 충만이 성령 충만입니다.
Q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기 위하여 바로 지금 내가 구체적으로 결단해야 할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하시는 예수님의 명령을 따랐을 때에 그들이 모여 있던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님이 임하셨습니다. 갑자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온 방 안에 가득하였고, 그 뒤로 마치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각 사람의 머리 위에 임하였습니다. 그 이후 성령 충만으로 초대교회의 신앙 공동체가 새롭게 형성되었습니다. 그들이 성령 충만으로 변화된 모습이 사도행전 2장에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겁이 많고, 두려워하고, 무기력하던 공동체가 오순절 성령 충만 사건으로 용기 있고, 활기가 넘치고, 힘과 능력이 있는 신앙공동체로 변하였습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첫째로, 성령 충만한 초대교회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믿는 사람들이 모두 함께 한 마음과 한 뜻으로 살아가는 독특한 형태의 ‘생활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그들은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진정한 친교를 나누었고, 날마다 성전에 모여 기도하기를 전(專)혀 힘썼으며, 기사와 표적을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눠 주며 하나님을 찬미하는 삶을 살았습니다.(행2:42-47) 이렇게 성령 충만한 초대교회 공동체는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게 되었고, 이로 인하여 구원받는 사람의 수가 더욱더 늘어나게 되었습니다.(행2:47)
둘째로, 성령 충만한 초대교회는 사람이 이끄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이끌어 가시는 공동체가 되었습니다.(행2:4) 사도행전은 성령행전이라고도 말하는데, 이것은 성령께서 교회 공동체를 온전히 이끄셨다는 사실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교회도 성령께서 이끄시는 교회가 될 때 가장 본질적인 교회의 모습을 회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성령으로 충만한 초대교회는 ‘하나님의 큰 일’을 선포하게 되었습니다.(행2:11) 각 지방에서 온 경건한 유대인들은 제자들이 성령 충만하여 각기 각 나라 방언으로 말함을 듣고 깜짝 놀라며 “우리가 다 우리의 각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그 ‘하나님의 큰 일’은 사도행전 2장 전체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 초점이 맞추어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부인하고 도망쳤던 베드로는 성령 충만함을 받은 후에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행하신 여러 가지 일,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수난, 죽으심과 다시 살아나심, 하늘에 올리우심 등을 담대히 증거하였습니다.(행2:14-40) 예수 그리스도에 관련된 이 모든 것들이 곧 ‘하나님의 큰 일’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의 큰 일’을 전파하는 것이 바로 성령 충만한 공동체의 가장 본질적인 사명입니다. 바로 이 일을 성령님이 우리를 통하여 이루시기 위하여 우리를 성령 충만하게 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성령 충만함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순절에 다락방에서 어떻게 성령님의 충만한 역사가 임하였습니까?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약속하신 대로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님이 임하실 때 제자 공동체는 한 곳에 모여 주님이 약속하신 것을 간절히 사모하며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하여 그냥 우두커니 앉아서 가만히 기다린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사도행전 1장은 그들이 성령을 받기 위하여 어떤 모습으로 기다렸는지를 잘 알려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그들은 간절히 기도하며 기다렸습니다.(행1:14) 그들은 성령을 받기 위하여 참으로 열심히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님을 사모하며 기도로 간절히 구하여야 합니다. 성령 충만의 필요성을 느끼고 가난한 심령으로 간절히 구하여야 합니다.
둘째로, 그들은 열심히 성경말씀을 공부했습니다. 그들은 열심히 성경을 읽으며 지금 우리 안에 일어나고 있는 이 모든 일들이 다 이미 구약에서 예언된 하나님의 말씀들이 이루어진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행1:16) 우리가 말씀을 열심히 읽을 때 성령 충만할 수 있습니다. 말씀 충만이 성령 충만이기 때문입니다.(엡5:18-19, 골3:16)
셋째로, 그들은 열심히 찬양했습니다. 그들은 시편을 애송했습니다.(행1:20) 시편은 예배 중에 불렀던 찬송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그들이 열심히 찬양하였다는 것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에베소서5:18-19에 보면 성령 충만과 찬양을 드리는 것이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초대교회 공동체는 뜨거운 찬양 중에 성령을 체험한 것입니다.
Q 성령 충만한 초대교회의 모습은 오늘날의 교회들에게 어떤 도전을 줍니까? |
우리는 성령님의 다스림을 받을 때 참 기쁨과 평안, 위로와 확신 가운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자기의 삶에 있어서 독립선언을 하는 존재가 아니라 종속선언을 하는 존재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내 뜻과 의지와 내 힘과 경험으로 자신을 스스로 세우는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라 오직 종속선언을 하여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랑가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함도 중요하지만, 이미 주어진 충만을 지키는 은혜가 더욱더 중요합니다. 충만은 항상 현재적이어야 합니다. 어제의 충만도 내 것이 아니고, 내일의 충만도 내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매일 매일 충만해야 합니다. 어제의 충만함으로 오늘의 문제와 죄를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성령 충만할 수 있도록 우리는 날마다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님의 충만함을 받기 위하여, 그리고 계속 성령 충만을 유지하기 위하여 우리는 기도와 말씀과 찬양으로 날마다 성령 충만을 간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알데이(Aldey)라는 신학자는 ‘교회가 성령을 환영하면 황금시대가 온다’고 말하였습니다. 우리가 성령을 환영하면 우리는 분명히 황금 같은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이, 우리 교회가, 그리고 우리나라 대한민국이 성령을 환영하면 분명히 황금시대가 도래할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바람이 우리 가정과 교회와 나라에 불어와서 곳곳에서 성령의 불꽃들이 일어나는 아름다운 비전을 이루기 위해 간절히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Q 우리는 삶 속에서 지속적으로 성령의 충만함을 경험하기 위하여 이제부터 내 삶을 어떻게 새롭게 디자인하시겠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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