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결혼의 비밀
본문: 엡 5: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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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 5:22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엡 5:23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엡 5:24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엡 5: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엡 5: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엡 5: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엡 5:28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엡 5:29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
엡 5:30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니라
엡 5:31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엡 5:32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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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 성경 해석을 위한 관점의 중요성
- 언약적 관점에서의 성경해석 방법과 - 그 간략한 내용 설명
- 구속사적 관점에서의 성경해석 방법과 - 그 간략한 내용 설명
- 예표적 관점에서의 성경해석 방법과 - 그 간략한 내용 설명
본론
• 관계적 관점에서의 성경해석 방법과 - 그 내용 설명
• 구약성경에서의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과의 관계
- 창조주와 피조물(대리자)
- 왕과 백성의 관계
- 왕과 군대의 관계
- 주인과 종의 관계
- 부모와 자녀의 관계 (호세아 선지자를 통한 예언의 말씀)
• 신약성경에서의 예수님과 믿음의 성도들과의 관계
- 목자와 양의 관계
- 친구 관계
- 스승과 제자의 관계
- 가족 관계
-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 (최종관계)
•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방법
- 예수님을 주인으로 영접
- 독생자 예수와 결혼시키기
• 우리를 자녀 삼으시기 위하여 취하신 방법은?
- 독생자 예수와 결혼시키기
- 예수님과 교회는 : 신랑과 신부의 관계
• 결혼의 비밀
- 문제제기
① “다 이루었다”고 하셨음에도, 승천하셨다가 다시 오시기까지 그 기간이 왜
필요한 것인지
② 주님이 오실 때는 왜 아무도 모르게 도적같이 오셔야 하는지
③ 재림하실 때에는 무엇을 하시기 위해 오시는 것인지
④ 우리 성도들은 그 때를 어떻게 준비하며 살아야 하는 것인지?
⑤ 이 한 몸을 이루는 결혼의 비밀 속에 하나님의 어떠한 뜻과 구원의 원리가 있는
것인지
- 이스라엘의 혼인 풍습
① 혼처를 부모가 정함
② 때가 되어 약혼식을 위해 지참금을 들려 아들을 신부의 집으로 보냄
③ 신부의 몸값을 그 부모에게 줌
④ 신랑이 신부에게 하는 프러포즈
⑤ 신부의 동의
⑥ 신부의 소유권이 신랑에게 있음
⑦ 신부와 함께 할 처소를 예비하러 돌아감
⑧ 신랑은 신부가 늘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정표를 주고 떠남
⑨ 약혼 기간은 최소 1년 이상 (신부의 순결을 확인)
⑩ 신부를 데리러 오는 날짜는 신랑의 아버지가 정함
⑪ 신부는 신랑이 오면 언제든 따라갈 준비가 되어야 합니다
⑫ 신부를 데리러 오는 시간은 한 밤중이 되고, 도착할 즈음에 신랑이 왔음을
알리는 나팔을 붐
⑬ 신부의 들러리들은 등불과 기름을 준비합니다
⑭ 속죄일
- 유대인의 결혼 풍습과 예수님과 성도들의 결혼과의 대조
① 혼처를 부모가 정함
② 때가 되어 약혼식을 위해 지참금을 들려 아들을 신부의 집으로 보냄
③ 신부의 몸값을 그 부모에게 줌
④ 신랑이 신부에게 하는 프러포즈
⑤ 신부의 동의
⑥ 신부의 소유권이 신랑에게 있음
⑦ 신부와 함께 할 처소를 예비하러 돌아감
⑧ 신랑은 신부가 늘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정표를 주고 떠남
⑨ 약혼 기간은 최소 1년 이상 (신부의 순결을 확인)
⑩ 신부를 데리러 오는 날짜는 신랑의 아버지가 정함
⑪ 신부는 신랑이 오면 언제든 따라갈 준비가 되어야 합니다
⑫ 신부를 데리러 오는 시간은 한 밤중이 되고, 도착할 즈음에 신랑이 왔음을
알리는 나팔을 붐
⑬ 신부의 들러리들은 등불과 기름을 준비합니다
⑭ 속죄일
- 관계적 관점을 통하여 바라본 하나님의 섭리 (문제 제기의 결론)
① “다 이루었다”고 하셨음에도, 승천하셨다가 다시 오시기까지 그 기간이 왜
필요한 것인지
② 주님이 오실 때는 왜 아무도 모르게 도적같이 오셔야 하는지
③ 재림하실 때에는 무엇을 하시기 위해 오시는 것인지
④ 우리 성도인 신부들은 그 때를 어떻게 준비하며 살아야 하는 것인가
⑤ 이 한 몸을 이루는 결혼의 비밀 속에 하나님의 어떠한 뜻과 구원의 원리가 있는
것인지
• 정결과 거룩 그리고 순결의 차이
- 우리는 결코 순결한 처녀가 될 수 없다
- 우리를 죄인 그대로 부르셨습니다
- 우리는 결코 순결한 처녀가 될 수 없음에 대한 반론
- 우리는 모태로부터 새롭게 태어난 자가 아님
- 우리 안에 심겨진 성령의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 감
• 중생(거듭남)은 천국 시민권을 받은 것
- 성령님이 행하시는 의무교육
- 죄를 지어도 되는가?
• 주님만 생각하고, 죄를 버리도록 하시는 방법
- 다윗 왕권 언약을 우리에게 적용하심
① 다윗은 예수님과 성도들의 예표, 사울은 사단의 예표
② 다윗의 왕권언약
- 육체의 고난을 통하여 죄가 끊어짐
- 정결과 거룩은 오직 피와 관유(기름)으로 됨
• 우리의 죄를 대속해 주심
- 법궤 안의 물건들은 인간의 죄악상
- 인간의 죄악을 제물의 피로 덮어줌
- 어린양이신 예수님의 피의 영원한 효력
• 여러 관점들의 통시적 해석의 중요성
결론 (나가는 말)
• 우리의 구할 것은 주님의 자비와 긍휼
• 이미와 아직
• 예수님과 교회를 위하여 결혼제도를 만드심
• 결혼의 완성
• 주님의 거룩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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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계시해주신 말씀이 성경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밝히셨지만, 성경을 통하여 그 계시하신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자가 많지 않고, 또 그 뜻을 깨닫기가 어려운 것은, 성경에 계시하고 드러난 것이 전부가 아니고, 감춰지고 깊이가 있는 영적인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신학자들이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정녕 무엇인지를 바르게 바라보기 위해서 많은 연구들을 합니다.
• 성경 해석을 위한 관점의 중요성
우리가 숲속으로 들어가 나무들만을 보면, 그 나무들 마다 마다의 특성과 효과와 그 기능은 알 수 있지만, 그 숲 전체의 모양이나 그 숲이 가지고 있는 기능이나 구성은 물론이고 그 숲을 통과하는 방법(길)도 찾기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것들을 알고자 한다면, 숲 전체를 관망할 수 있는 높은 곳으로 시야를 옮겨야 하듯이,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신 성경 말씀도, 그 맥과 뜻을 바로 보고자 한다면, 시각 곧 관점을 통해서 바라볼 때만이 창세기로부터 시작하여 계시록까지 66권의 말씀의 맥을 잡을 수 있으며, 그로 하나님의 진정한 뜻에 가깝게 접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살아왔다고 자부하던 이스라엘 백성들,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이 또 말씀 맡은 자라는 제사장들이, 그 성경 말씀 중심에 있는 하나님의 진정한 뜻을 알지 못하여 망한 데는 어떤 이유가 있을까요?
그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는
마 22:29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문자적 말씀만 붙들었지, 그 말씀을 통한 하나님의 진정한 뜻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지금 이 시대에도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그래서 같은 말씀을 가지고도 그 견해와 해석들이 천차만별이고, 그로인해 수없이 많은 사조와 교리와 교단이 생겨난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하나님의 진정한 뜻을 알기 위해서,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려는 시도로써, 성경의 맥을 잡아 통으로 보려는 다양한 관점들이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피조세계를 창조하셨으며, 그 마지막은 어떠한 결말을 내려고 하시는지, 그 뜻을 바르게 알고자 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시도된 관점들을 통하여 계시하신 뜻을 알고 나면, 이해하기 어려웠던 난해한 말씀까지도 그 안에서 풀리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라보는 이러한 관점들은 아주 다양합니다. 문제는 그 다양한 관점들 중에 한 가지만 고집하여 취할 때, 우리는 큰 오류를 범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에게 모든 진리를 다 주시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연구된 그 모든 관점들이 다 진리를 내포하고 있어 거미줄처럼 엮기고, 맞물릴 때 비로써 하나님의 영적인 말씀을 조금이나마 더 바르게 알게 될 것이라 봅니다.
우리가 많이 들어왔던 성경을 보는 관점에는 ‘구속사적 관점’, ‘언약적 관점’, ‘예표적 관점’, ‘삼위일체적 관점’, ‘피조적 관점’, ‘종말론적 관점’ 등 이 외에도 여러 많은 관점 등이 있습니다. / 제시한 위에 관점들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 언약적 관점에서의 성경해석 방법과 - 그 간략한 내용 설명
언약적 관점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언약을 주시고, 그 언약을 성취해 가시는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그 언약의 수혜자가 바로 ‘나’ 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에 합당하고 분명한 거취를 정하고자 하는데 있습니다.
이제 말세를 사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미성취된 남은 언약을 어떻게 이루어 가실 하나님의 뜻을 또한 바라보며 그 뜻에 부흥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크게 나누면 옛 언약인 구약과 새 언약 신약으로 구분되어있지만 세부적으로는 그 언약들은 다음과 같이 전개되어 갑니다.
통치권언약(창 1:28), 선악과 언약(창 2:17), 여자의 후손언약(창 3:15), 무지개언약(창 9:11-13), 횃불언약(창 15:18-21), 할례언약(창 17:9-13), 사닥다리언약(창 28:12-15), 시내산 율법(피)언약(출 24:6-8), 소금언약(민 18:19), 모압평지언약(신 29:1, 5), 동행동사언약(수 1:9), 다윗왕권언약(삼하7:13-16), 화평의 언약(겔 34:23-25), 새(마음)언약(겔 36:26-27; 렘 31:31-34) , 막대기언약(겔 37:19), 새(피) 언약(마 26:28), 보혜사언약(요 14:16), 재림언약(요 14:2-3)이 있습니다.
이 중에 재림언약을 제외한 모든 언약이 나를 위해 성취되었습니다. 이제 남은 언약은 재림언약 뿐입니다. 그 남은 언약이 나를 위해 성취 될 것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우리의 분명한 거취를 정하는데 언약적 관점의 그 의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 구속사적 관점에서의 성경해석 방법과 - 그 간략한 내용 설명
구속사적 관점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으로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하신 십자가의 구원계획을 이미 창세전에 계획하시고, 역사의 중심에 배치하시며,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그 십자가의 보혈로 대속하셔서 구속역사를 성취해 가시는 관점에서 해석하는 방법입니다. 이 해석 방법에는 예정론적 관점을 포용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나를 향하신 전적인 은혜와 사랑을 십자가로 완성해 가시는 그분의 뜻을 바라보며, 그 사역에 감격하고 믿음으로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구속의 은혜에 감사하고 동시에 세상을 향하여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그 구속에로의 참여로 주님과 동행하며, 전적인 은혜와 사랑을 베푸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데 그 의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 예표적 관점에서의 성경해석 방법과 - 그 간략한 내용 설명
예표적 관점을 통하여서는, 하나님께서 좋은 것의 실체(참)인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기까지 구약의 그 모형(예표)을 통하여 메시야를 어떠한 그림자로 계시하셨는지를 깨달아서 실체를 바르게 이해하도록 하는데 있습니다.
히 10:1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
구약시대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그림자를 통하여 오실 메시야 참 실체를 바라보도록 하시고, 신약시대의 성도들에게는 그림자(예표)와 실체를 통해서, 오신(초림) 메시야를 그리고 앞으로 다시 오실(재림) 예수님을 올바르게 바라보게 하는데 그 의의가 있다하겠습니다.
또한 성도들의 예표인 이스라엘을 통하여 우리의 위치와 나아갈 바를 분명하게 알도록 하는데 의의가 있다하겠습니다.
이 외에도 ‘삼위일체적 관점’, ‘피조적 관점’, ‘종말론적 관점’과 하나님의 뜻에 더욱 근접하려는 수많은 관점들이 있습니다. 이 모든 관점들이 근본적으로 좀 더 주님의 뜻에 근접하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본론
• 관계적 관점에서의 성경해석 방법과 - 그 내용 설명
그런데 오늘 저희가 은혜를 나누려는 성경의 접근 방법은 ‘관계적 관점’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과 어떤 관계를 취하셨으며, 교회시대인 신약시대에는 어떤 관계를 취하셨는지 그리고 앞으로 재림하신 이후 최종적인 하나님과 성도와의 관계는 어떠한 관계로 마무리 하려 하시는 지를 바라보면서, 그 관계 속에서 진정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우리가 취하여야 할 확고한 우리의 거취와 정체성을 갖고자 하는데 그 의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과연 어떠한 강력한 은혜를 베풀고 계신지를 깨달으시는 귀한 은혜의 시간이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 구약성경에서의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과의 관계
- 창조주와 피조물(대리자)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 된 우리와의 관계에 대해서 성경은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창조의 주인이시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피조물로써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입니다.
또한 하나님으로부터 통치권을 부여받아 하나님의 지으신 피조세계를 다스리고 지키고(창 2:15) 누릴 수 있는 권세를 위임받은 하나님의 대리자적 관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단의 미혹으로 선악과를 먹음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이 되었고, 영원한 생명에서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마귀에게 순종함으로 단절된 우리와의 관계를 회복시키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구속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 왕과 백성의 관계
구약성경에서는 하나님과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어떻게 표현 하고 있을까요? 여러 표현들이 있습니다만, 그 중에 가장 대표할 만한 것들을 보고자 합니다.
레 26:12 나는 너희 중에 행하여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니라
하나님은 왕(통치자)이시고, 이스라엘은 그에 백성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관계적 표현으로는
- 왕과 군대의 관계
출 7:4 바로가 너희를 듣지 아니할 터인즉 내가 내 손을 애굽에 더하여 여러 큰 재앙을
내리고 내 군대,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지라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군대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을 왕(대장)으로 하는 하나님의 군대가 되는 것입니다.
또 다른 표현으로는
- 주인과 종의 관계
민 12:7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나의 온 집에 충성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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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89:20 내가 내 종 다윗을 찾아 나의 거룩한 기름으로 부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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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20:3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종 이사야가 삼년 동안 벗은 몸과 벗은 발로 행하여
애굽과 구스에 대하여 예표와 기적이 되게 되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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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41:8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나의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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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26:5 내가 너희에게 보내고 부지런히 보낸 나의 종 선지자들의 말을 이미 듣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가 만일 다시 듣지 아니하면
이와 같이 친히 주인과 종의 관계를 말씀하시기도 하십니다.
물론 더러는 우리를 자녀나, 아내, 또는 벗이라는 표현을 구약시대에도 쓰시긴 하지만, 구약 전체적으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군대요, 하나님의 종이라는 표현이 대체적입니다.
- 부모와 자녀의 관계 (호세아 선지자를 통한 예언의 말씀)
그리고 신약성경으로 넘어가기 전에 호세아 선지자를 통하여 이방나라에 복음이 전파되는 새 시대인 신약시대를 예언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호 1:10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되어서 측량할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을 것이며 전에 저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곳에서
저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사신 하나님의 자녀라 할 것이라
이 말씀은 초림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구속 사역을 이루신 후에 이방에도 복음이 전파되고 내 백성이 아니라 한 이방나라에서도 예수님을 믿고 영적 이스라엘로 편입되는 수효가 많아져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될 것을 이르시는 말씀입니다.
이는 구원의 복음이 세계 만 방에 퍼질 신약시대로, 하나님의 백성이 셀 수 없을 만큼 많아질 것을 호세아 선지자를 통하여 미리 예언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씀하시는 자녀의 관계는, 구약의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셨지만, 구약에서의 상호 관계를 말씀하심이 아니요, 신약 때에 이루실 관계를 말씀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 신약성경에서의 예수님과 믿음의 성도들과의 관계
이제 신약으로 넘어와서 복음으로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그리스도와 영적 이스라엘이 된 우리 믿는 자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표현하고 계십니까?
- 목자와 양의 관계
요 10: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예수님은 우리를 목숨을 걸고 지키시는 목자요. 우리는 그의 양이라 하십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믿는 성도들을 양이라 표현하셨는데, 양의 어떤 특성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양의 일반적 개념처럼, 죄 없는 착하고 순한 양을 빗대어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한번 보겠습니다.
사 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하나님의 시각에선 우리가 착하고 순한 양이 아니라,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그릇 행하는 양이라 표현하시는 것입니다. 양은 시력이 심각한 근시라 먼 곳을 못 본답니다. 그래서 항상 무리지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동할 때는 선두로 앞에 가는 양만 바짝 따라가는데 그 양이 낭떠러지로 떨어지면 뒤에 따라 오던 양들도 다 떨어진다고 합니다.
그러니 우두머리 양이라 할지라도 바른 길로 가지 못하고 그릇 행하여 가는 양이므로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여 둘 다 구덩이에 바지는 것과 같은 형국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우리의 그릇된 길을 바른 길로 인도하시고, 또 늑대나 적으로부터 목숨을 버리시기까지 보호하시는 예수님은 선한 목자라 하십니다. 그런 목자와 양의 관계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구약 때의 관계보다 상당히 진척된 관계를 보여주고 계십니다.
또 무슨 관계라 하십니까?
- 친구 관계
요 15: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
친구 관계란 허물이 없고, 숨김이 없고, 스스럼없는 관계를 말합니다. 부모에게도 하지 못하는 이야기도 서로 나눌 수 있는, 그런 숨기거나 감출게 없는 사이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무슨 뜻입니까?
우리가 알다시피 구약성경은 감추어 있는 말씀입니다. 구약성경은 온통 오실 메시야이신 예수님에 관한 말씀이었지만, 얼마나 구약 성경에 철저하게 감추어져 기록되었던지 그 성경을 통달하고 있다는 바리새인, 제사장, 사두개인들 조차도 예수님이 메시아 인줄 알아보지 못하고 도리어 십자가에 매달아 죽였던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실체가 아닌 그림자이며, 실체를 바라보게 하는 예표로만 말씀하시고 보여주셨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주인과 종의 관계였기에 주인의 뜻을 다 알도록 허락 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보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 하시니, 목적지를 알고 떠난 것이 아니라,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났다 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명하신 할례를 왜 해야 했으며, 할례의 의미가 뭔지, 더 이상 생산치 못하는 죽은 것 같은 사라의 몸이었을 때에, 왜 그 때서야 약속의 자녀 이삭을 주셨는지, 왜 또 그렇게 자식을 주셔놓고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번제로 죽이라하신 뜻과 의미가 무엇인지 아무것도 모른체 하라하니 행했을 뿐입니다.
요셉도 왜 자기가 형들에 의해 애굽에 노예로 팔려가게 되었는지, 열한개의 볏단이 자신의 볏단에 왜 절을 했는지, 자신을 어찌 애굽의 총리로 높여 주셨는지 몰랐습니다. 끝에 가서야 깨달았다고 생각하고는 다음과 같은 고백을 하지요.
창 45:5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 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요셉은 지나온 삶을 뒤돌아 볼 때, 철저하게 하나님께서 개입하셨다는 사실을 고백하지만, 요셉이 깨달은 이것이 요셉의 인생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고자 한 전부가 아님을 우리는 배움을 통하여 다 알고 있지 않습니까? 요셉 그의 인생이 만백성의 구원자 예수님의 예표요, 곧 예수님께서 당하실 고난과 행하실 구원사역을 그의 인생 여정 속에 예표로 감쳐 놓으셨다는 것을 정작 그는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또 요셉 그의 강권함으로 인하여 그의 아비 야곱과 열한 형제들이 가나안 땅을 등지고 애굽에 모두 이주하여 가뭄을 나게 되지만, 그로인해 야곱의 후손들이 400년간 애굽의 종살이로 혹독한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사실도 알지 못했고, 종살이에서 탈출하게 되어 과거에 떠나왔던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입성하게 되는 하나님의 구원사역인 출애굽 사건이, 지금 이 시대에 성도들의 인생 여정을 그려낸 구속사를 예표하게 될 것이라는 것도 그는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과 대면하였다는 모세도, 말도 할 줄 모르는 자기가 왜 히브리민족을 구원해내야 하는지, 광야에서 40년간 내려 먹게 하셨던 만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시내산에서 주셨던 돌 판과 법궤며 또 성막은 무엇을 상징하는지, 또 가나안은 무엇을 미리 보여주는 것인지, 왜 자신은 그토록 들어가고 싶었던 가나안 땅을 느보산에서 보는 것만 허락되었는지 전혀 알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모든 선지자들도 하나님께서 하라하신 행위나, 전하라 하신 말씀의 그 숨겨진 참 의미를 알지 못한 채, 행하고, 대언하고, 기록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제 예표나 그림자가 아닌 참이요 실체인 예수님이 오신 신약시대는 감추는 것이 없이 모든 것을 다 알려 주시는 그런 친구 관계라 합니다.
- 스승과 제자의 관계
그 외에도 나의 제자가 되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 하셨듯이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스승이요. 믿는 우리 성도들은 그를 따르는 제자라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제는 구약 때의 종의 관계를 벗어나 이처럼 우리는 예수님의 양이요, 또 친구요, 형제요, 자매요, 제자의 관계임이 확실 합니다. 그러나 이 관계성도 비유로 보여주신 관계이며, 언제까지만 유효하냐면, 예수님의 재림이 있기 전까지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재림 때에 이 모든 관계가 하나의 관계로 정립이 됩니다.
- 가족 관계
그리고 또 다른 표현으로는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라 하십니다.
막 3:35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는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함께 동거동락 하는 가족 관계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항상 함께 하시는 그런 가족과 같은 관계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 (최종관계)
눅 20:36 저희는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니라
이제 예수님과 같이 생명의 부활의 자녀로서 온전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 것입니까?
•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방법
- 예수님을 주인으로 영접
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예수님을 내 안에 나의 주인으로 모셔야 합니다. 바로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을 우리 안에 모셔 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면
롬 8:16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롬 8:17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성령께서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 하신다고 합니다. 그로인해 우리는 하늘나라를 받을 수 있는 후사가 되는데, 여기서 배재시킬 수 없는 가장 중요한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했을 때만이 하나님의 후사가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빼고서는 아무것도 아님이 핵심입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가 온전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것이, 어떤 방법과 원리에서 일까요?
롬 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양자의 영을 받았다고 하는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양자로 입양하시는 방법을 쓰신 것일까요? 어떠한 방법을 사용하셨기에 온전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것일까요? 왜 그 방법을 구약 때에는 사용하지 않으셨을까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하시는 방법으로 무슨 일을 진행 하신 것일까요?
• 우리를 자녀 삼으시기 위하여 취하신 방법은?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과 어떤 관계가 됨으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후사가 될 수 있는 것일까요? 이 모든 관계가 이 하나의 관계로 정립이 됩니다.
계 19장을 보겠습니다.
- 독생자 예수와 결혼시키기
계 19:7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세상 끝에 가서 어린양이신 예수님의 결혼식이 진행이 되는데, 그 아내가 예비 되었다고 합니다. 누구입니까? 계 21장을 보겠습니다.
21장은 계시록 중에서도 거의 끝입니다. 이 계시록을 기록한 사도요한에게 환상으로 앞으로 될 일을 미리 보여주신 것입니다.
계 21: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계 21: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사도요한이 보니, 처음 창조 된 땅과 하늘은 다 없어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인 신천신지가 눈 앞에 펼쳐지는데, 거기에 새 예루살렘 성이 하늘에서 내려오고 있는 모습을 보니, 요한이 느끼기에 그 성의 모습이 꼭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천사가 이번에는 바로 그 신부를 보여준다고 합니다.
계 21:9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계 21:10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신부를 보여준다 하더니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도요한도 예루살렘 성의 단장한 것이 꼭 결혼하는 신부 같더라고 생각했는데 말입니다. 그 새 예루살렘 성이 바로 어린양의 신부라고 합니다.
그럼 예루살렘 성은 무엇을 뜻합니까?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처소이며 성전입니다. 동시에 믿는 성도들의 회, 곧 교회를 뜻합니다. 정말 그런가 예루살렘 성을 묘사하는 다음 구절들을 보겠습니다.
계 21:12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 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 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 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계 21:13 동편에 세 문, 북편에 세 문, 남편에 세 문, 서편에 세 문이니
계 21:14 그 성에 성곽은 열 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 어린 양의 십 이 사도의 열 두
이름이 있더라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졌던 자들 곧 목숨을 바쳐 주님을 따랐던 구약 교회와 신약 교회의 믿는 성도들의 공동체인 교회가 바로 어린양의 신부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 부분을 더러 영적인 해석(알레고리)을 하시는 분들은 구약의 열두지파는 육신적 구원을 의미하며, 신약의 열두 사도는 영혼구원을 의미하여 영과 혼과 육의 전인적 구원을 의미한다고 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어떻게 해석하든 예루살렘성은 구원받은 성도들로 인해 지어진 진정한 교회를 의미합니다.
바울이 에베소서에서 교회를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를 보겠습니다.
엡 2: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엡 2: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엡 2: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하나님께서 거하실 건물은 누구를 지칭하는 것입니까? 바로 우리 믿는 성도들입니다. 믿는 성도들이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새 예루살렘 성전, 곧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로 지어져 가는 것입니다.
- 예수님과 교회는 : 신랑과 신부의 관계
이처럼 성경의 마지막인 계시록에서는 주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신랑과 신부의 관계로 결론을 짓고 있습니다. 믿는 성도들인 우리가 바로 어린양이신 예수님의 신부가 되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공동체인, 교회가 예수님의 신부가 되는 것입니다. 구원의 완성이 예수님과의 혼인잔치로 완성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보면, 사도바울이 남편과 아내인, 부부사이에 가져야할 마음가짐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부부의 깊은 관계성이 주님과 교회가 한 몸을 이뤄 나가는 동일한 개념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교회의 머리이시며 성도는 몸의 각 지체로서, 예수님과 성도가 합하여 한 몸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남녀가 결혼을 해서 한 몸을 이루듯이 주님과 우리교회는 그렇게 한 몸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신적인 부부사이에도 그 관계성을 따라, 주님과 교회가 서로 아끼고 사랑하고 희생하는 것처럼 서로 행하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 결혼의 비밀
그러면서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가, 바로 결혼한 부부사이의 관계성과 동일함을 빗대어 말씀하면서 그 비밀이 크다고 합니다.
신랑과 신부가 결혼이란 예식을 통하여 한 몸을 이루어 나가는 그 과정 속에 예수님과 교회에 관한 큰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떤 것일까요?
- 문제제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실 때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성취하시고 마귀의 권세마저도 빼앗아 버렸는데, 그럼 다 끝난 것 아닙니까?
다 이루셨다 했는데,
① “다 이루었다”고 하셨음에도, 승천하셨다가 다시 오시기까지 그 기간이 왜
필요한 것인지
② 주님이 오실 때는 왜 아무도 모르게 도적같이 오셔야 하는지
③ 재림하실 때에는 무엇을 하시기 위해 오시는 것인지?
④ 우리 성도들은 마지막 때를 어떻게 준비하며 살아야 하는 것인지?
⑤ 이 한 몸을 이루는 결혼의 비밀 속에 하나님의 어떠한 뜻과 구원의 원리가 있는 것인지,
남녀가 한 몸을 이루어 가는 결혼 예식을 통하여 그 비밀을 풀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이스라엘의 혼인, 결혼 풍습을 알아보고자 합니다.
- 이스라엘의 혼인 풍습
유대사회에서의 혼인은 약혼(정혼)식과 결혼식으로 이루어집니다. 물론 거의 모든 나라가 비슷하다 할 수 있습니다. 요즘에 간소화 하다 보니 약혼식을 생략하고 바로 결혼식을 하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 말입니다.
우리나라 조선시대 사대부 양반가에서도 부모들에 의한 정약 결혼이 대세였습니다. 양가 부모들의 약조로 인하여 어린 나이에 조혼을 시키는 경우도 허다했습니다. 연애 결혼하는 경우는 양반가에서는 보기 드문 일이었습니다. 지금도 재벌가나 주류 상류층에서는 부모가 정해놓은 혼사대로 치루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① 혼처를 부모가 정함
당시 유대사회에서도 부모가 정해준대로 결혼을 해야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들인 이삭의 신부 감을 정하듯이 말입니다.
아브라함이 그의 충실한 종에게 아들이삭을 위하여 고향으로 가서 신붓감을 택하여 데려오라고 합니다. 이처럼 부모가 심사숙고해서 아들의 혼처를 정하는 것이 유대사회 풍습이었습니다.
② 때가 되어 약혼식을 위해 지참금을 들려 아들을 신부의 집으로 보냄
그리고 적당한 때가 되면, 아버지는 약혼식을 위해서 아들을 결혼할 여자 집으로 보냅니다. 물론 지참금을 들려서 말입니다. 직접 상면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신랑이 신부 집에 도착해서는 남녀가 상호대면을 하고는 그 아내 될 사람의 부모에게 지참금을 건넵니다. 딸을 아내로 맞이하겠으니 허락해 달라는 의사표현입니다.
③ 신부의 몸값을 그 부모에게 줌
당시 이스라엘이나 중동 지역에서는 여자를 신부로 데려오기 위하여 그에 상응하는 상당한 금액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소나 양과 같이 가축을 여럿 주기도 하고요. 여러 가지 값나가는 귀한 물건을 주기도 하였습니다. 이것은 데려올 아내의 몸값을 지불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아들이삭의 신부를 위하여 약대 열 필과 좋은 것들을 보냈다 했습니다.
여기서 여자 쪽 부모가 신랑감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지참금을 받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자의 부모가 신랑이 가져온 지참금을 받으면, 딸을 신랑에게 넘겨준다는 의미이며, 그 딸에 대한 소유권을 넘겨주는 것입니다.
④ 신랑이 신부에게 하는 프러포즈
그런 후 약혼예식 중에서 가장 중요한 예식은 다름 아닌 바로 신부의 의사를 묻는 예식입니다. 여자의 부모가 허락을 했다고 해서 그 여자를 아내로 맞이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신부가 싫다고 하면 허사입니다.
신랑 될 사람은 신부될 사람에게 포도주를 따라주면서 프러포즈를 해야 합니다. “나는 당신을 나의 아내로 맞고 싶습니다. 이 포도주는 당신을 위해 나의 생명까지도 바칠 것을 다짐하는 잔입니다. 나의 아내가 되어주기를 바랍니다.” 라고 프러포즈를 합니다. 포도주는 생명 된 피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 때 여자가 받아 마시지 않으므로 그 남자를 거절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정혼은 무산되고, 남자는 가지고 왔던 지참금을 도로 가지고 돌아가야 합니다. 남자에게 큰 하자나 문제가 없는 한 거절당하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물론 여자가 다른 남자와 사귀고 있는 상황이라면 여자는 당연히 잔을 거부할 것입니다.
⑤ 신부의 동의
남자가 따라준 포도주를 여자가 마시면 최종적으로 남자의 프러포즈를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 남자의 피를 상징하는 포도주를 받아 마신다는 의미는, 신부도 동일하게 신랑을 위하여 죽기까지 사랑하겠노라는 의미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로서 둘 사이는 서로 죽기까지 사랑할 것을 맹세한 사이가 되는 것입니다.
⑥ 신부의 소유권이 신랑에게 있음
이렇게 약혼식이 이루어지면 이제 신랑 외에 그 누구도 신부에 대하여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게 됩니다. 하물며 여자의 부모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지참금으로 신부의 몸값을 모두 지불했기 때문입니다. 그 여자는 그 순간부터 신랑의 소유가 되는 것입니다. 여자가 포도주 잔을 받아 마심으로 이로서 정혼(약혼)이 성립된 것입니다.
⑦ 신부와 함께 할 처소를 예비하러 돌아감
이때부터 신랑은 신부와 같이 살 집을 준비하게 됩니다. 다 준비가 되면 다시 신부를 데리러 오겠다는 약속을 하고는 신부를 뒤로하고 신랑 혼자만 자기 집으로 돌아가게 되는데, 이때 ~
⑧ 신랑은 신부가 늘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정표를 주고 떠남
여자에게 헤어져 있는 동안에 나만을 생각하고 기억해 달라고 하는 의미에서 신랑을 상징하고 대신할 만한 정표를 줍니다.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겼던 것을 여자에게 선물(정표)로 주고 갑니다. 자신이 늘 지니고 다니던 반지나 목걸이 같을 주게 되죠. 이 정표는 신부가 늘 지니고 있으면서, 언제든 신랑이 보고 싶으면 꺼내 보면서 오실 자기님을 생각하기도 합니다.
⑨ 약혼 기간은 최소 1년 이상 (신부의 순결을 확인)
아버지 집으로 돌아간 신랑은 이때부터 신부를 데리고 올 준비를 하게 되는데, 이러한 준비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신부와 함께 지낼 거처, 집을 짓는 것입니다. 정혼(약혼) 기간은 보통 잛으면 1년에서 길면 3년 정도였는데, 이 약혼기간을 최소한 1년 이상의 기간을 둔 것은, 함께할 거처를 준비하는 문제도 있지만, 약혼녀의 성적인 순결을 확인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고 합니다.
약혼 후부터 결혼식 전까지 이 기간에 각자 자기 집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새로운 가정을 꾸밀 준비를 하느라 들뜬 마음에 여념이 없는 것입니다. 또한 여자는 남자가 주고 간 정표를 보면서, 신랑만을 생각하며, 고대하면서 그 신랑이 올 날만을 기다리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정혼(약혼)을 했다고 다 결혼까지 꼴인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약혼이 깨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정혼(약혼)기간 중에 다른 사람과 간음을 하면 파혼 당하게 됩니다.
이 약혼기간 동안 신부될 여자가 만약 누구 아이인지 모를 애를 임신했다면, 능히 파혼 사유가 되는데, 그냥 파혼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신랑 될 사람에게 간음한 여자의 생사여탈권이 있기 때문에 유대인의 율법대로 돌로 쳐 죽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정혼(약혼)한 상태에서 누구 아이인지 모르는 아기를 임신해서 파혼 당할 뻔 한 사건이 있습니다. 어떤 인물이 기억 나십니까?
바로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입니다. 마리아는 요셉과 정혼(약혼) 상태에서 누구 아이인지 모를 애를 잉태를 했으니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마리아를 그냥 가만히 끊고자 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정혼(약혼)은 모든 면에서 결혼과 똑같은 효력이 있었지만, 아직은 미완성된 혼인이었기 때문에 결혼식 전까지 특히 신부는 처신을 바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음란한 행실로 인하여 파혼 당하거나 죽임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리아처럼 임신의 문제가 있었다 하더라도 파혼은 남자 쪽에서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내 될 사람의 몸값을 다 치렀기에 소유권이 남자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설혹 여자가 음행하였어도 남자가 데리고 살겠다고 하면, 데리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혼식 전 이지만 두 사람은 정신적으로는 이미 하나가 되었고, 함께 하고 있는 것과 진배없으므로 특히 여자는 순결을 위해 간음을 피해야 하는 것입니다. 결혼 전까지 서로가 정결하게 지내야 하는 것입니다.
⑩ 신부를 데리러 오는 날짜는 신랑의 아버지가 정함
이제 결혼 준비가 끝나면 신랑은 신부를 데리러 신부 집으로 가게 되는데, 그 날짜는 신랑이 정하는 것이 아니고, 신랑의 아버지의 권한에 있습니다.
아버지는 모든 것이 다 준비된 것을 확인한 다음에 결혼식 날짜를 집안에 대소사와 겹치지 않도록 아버지가 때를 맞추어 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잔치에 초대할 사람에게도 연락도 취해야 하고, 또 잔치도 철저히 준비 하면서, 아버지는 신부를 데려오라고 최종적으로 아들을 신부 집으로 다시 보내게 됩니다.
그 때가 언제인지는 신랑도 모르고, 아버지의 집에서 일하는 하인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그 때를 알고 있습니다.
⑪ 신부는 신랑이 오면 언제든 따라갈 준비가 되어야 합니다
신부는 다만 신랑이 자기와 함께 할 거처가 다 준비가 되면, 자기를 데리러 올 것이라는 것만 믿고, 이제나 저제나 그 때만을 기다립니다. 신부는 신랑이 오기만 하면 언제든지 즉시로 따라갈 수 있도록 늘 만반의 준비를 다 갖추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⑫ 신부를 데리러 오는 시간은 한 밤중이 되고, 도착할 즈음에 신랑이 왔음을
알리는 나팔을 붐
신랑이 오는 시간은 팔레스틴이나 중동지역에서는 한 밤중이 됩니다. 팔레스타인 중동지역에서는 날씨가 너무 더워서, 낮에는 혼인 잔치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신랑이 밤에 신부의 집에 거의 도착하는 경점에, 함께 온 신랑의 들러리들이 요벨 쇼파르는 짐승의 뿔로 된 나팔을 불어대며 신랑이 도착했다는 것을 알립니다.
⑬ 신부의 들러리들은 등불과 기름을 준비합니다
신부와 신부 측 들러리들과 함께, 다시 신랑 집으로 돌아 간 후 본격적인 혼인 잔치를 하게 됩니다. 이 때 신부의 들러리들은 신랑 집으로 가는 동안, 밤에 이동해야하기 때문에 등불을 들고 행렬을 이루어 신랑의 집으로 가게 됩니다.
오랜 시간 등불을 사용하려면 많은 기름이 필요하게 되는데, 등불을 준비하고 신랑을 기다리는 열 처녀의 비유가 이때를 비유한 것입니다. 미련한 다섯 처녀는 충분한 기름을 준비하지 않아 낭패를 당하지 않습니까?
⑭ 속죄일
신랑 신부는 결혼하는 날 하나님께 속죄를 받기 위하여 결혼식을 올릴 때까지 하루를 금식을 하게 되는데, 이것은 과거의 모든 죄를 다 사함 받고 새로운 삶의 출발을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 뜻에서 이 날을 ‘개인적인 대속죄일 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그런 후 둘이 합하여 한 몸이 되었다고 알려주면, 정식으로 그날부터 7일간 잔치가 벌어집니다. 그 7일 동안에 신부는 신부 방에서 나오질 않고, 7일 후 신부가 나오면 신랑이 신부의 얼굴의 베일을 벗겨 주고, 잔치에 초대 된 하객에게 인사를 시켰다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기본적인 예식 절차를 거치면 결혼식은 모두 끝이 납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결혼 풍습입니다.
자~ 여기까지 말씀을 드리면, 아하~ 하고 깨달으신 분이 있으실 것입니다.
- 유대인의 결혼 풍습과 예수님과 성도들의 결혼과의 대조
아 ~ 그렇구나!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의 그 결혼 예식 순서대로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과 우리 믿는 자들과의 결혼식을 진행하고 계시는 중이구나 하는 것을요.
본문에서 바울이 말씀한, 한 몸을 이루는 결혼예식에 감춰져 있는 비밀은 이것입니다. 유대인의 결혼 풍습의 순서와 예수님과 믿는 성도들의 결혼식을 대조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 혼처를 부모가 정함
아들의 혼처를 그의 아버지가 정하듯이, 성부 하나님께서는 아들 예수님의 배우자를 택하십니다. 그 예수님의 배우자가 바로 택한 백성 이스라엘입니다.
② 때가 되어 약혼식을 위해 지참금을 들려 아들을 신부의 집으로 보냄
그리고 약혼의 때가 되어 신랑 예수님을 신부가 있는 이 땅에 약혼식을 하러 보내셨습니다. /
갈 4: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③ 신부의 몸값을 그 부모에게 줌
그리고 마귀의 자식이었던 우리를, 신부로 맞이하려 우리의 몸값을 지불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몸값으로 지불하신 지참금이 무엇이었습니까? 죄로 말미암아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신 것, 예수님의 생명과 피로 우리의 몸값을 지불하셨습니다.
여기서 어떤 분들은 이런 질문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럼 과거 우리의 부모였던 마귀가 우리의 몸값을 받았다는 것을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마귀가 지참금을 받지 않았다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마귀가 우리의 몸값을 어떻게 받았다고 할 수 있는지 보겠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는 누구입니까? 사두게인, 바리새인, 제사장무리였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셔도 틀린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의 배후에서 예수님을 못 박아 죽이도록 미혹하고 조정한 자가 누구입니까? 바로 사단 마귀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인 자들은 다름 아닌 배후세력인 사단 마귀입니다. / 그들이 예수님을 죽인 것이요. / 곧 예수님의 생명과 피를 값으로 받은 것입니다. / 그들이 죽였기에 그 생명 된 피를 값으로 받은 것입니다. / 보겠습니다.
마 21:38 농부들이 그 아들을 보고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고 그의 유업을
차지하자 하고
마 21:39 이에 잡아 포도원 밖에 내어 쫓아 죽였느니라
여기서 농부는 누구의 비유입니까? 바리세인, 또는 사두개인이나 제사장입니까? 아닙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몰랐던 자들입니다. 알았다면 결코 죽이지 않았을 자들입니다. 몰랐기 때문에 인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한다고, 참람하다며 죽였던 것입니다.
그러니 여기서 농부의 비유는 사두개인, 바리새인이나 제사장이 아닌 그 배후세력이자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이미 알고 있던 사단마귀를 두고 농부라 비유하신 말씀입니다.
사단 마귀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죽이면, 모든 권세와 유업이 자기 것이 될 것이라 생각하고 그 값(유업)을 받기 위해 죽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명을 값으로 받은 것입니다. 물론 사단의 판단 착오이지만 말입니다.
그러므로 마귀는 예수님의 피로 우리의 몸값인 지참금을 받았고, 주님은 자신의 보혈로 우리의 몸값을 온전히 다 치루셨기에 예수님은 우리를,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를 피값을 주고 사신 것입니다. 이로서 우리는 완전한 주님의 소유입니다.
행 20:28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이로써 지참금을 받은 부모(사단)는 딸의 소유권을 주장 못하듯이 마귀는 예수님에게서 우리를 빼앗아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주인이시며, 우리의 소유주는 오직 우리의 신랑 되시는 예수님이 되는 것입니다. 관건은 내가 예수님을 나의 신랑으로 받아 들였느냐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이스라엘 결혼 풍습에 신부의 부모에게 딸의 몸값인 지참금을 준 후에, 신랑이 신부에게 행하는 의식이 있었는데, 기억나십니까? 신랑이 신부에게 포도주를 따라 주면서 프러포즈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④ 신랑이 신부에게 하는 프러포즈
나의 신부가 되어주오 당신을 위해서 나의 생명까지도 바치겠소 라는 고백입니다. 이 때 신부가 그 잔을 받아 마시면 약혼이 성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신랑이신 예수님께서 이 프러포즈를 우리에게 언제 하셨습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에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가지시면서 제자들에게 포도주를 주시며 나의 신부가 되어달라는 프러포즈를 하셨습니다.
마 26:26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마 26:27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마 26: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포도주를 주시면서 청혼을 하셨습니다. 이 떡은 내 살이요, 이 잔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하시며 주셨습니다. 이것은 신부인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겠노라는 신랑의 사랑고백이요, / 신부가 되어달라는 프러포즈였던 것입니다.
⑤ 신부의 동의
그럼 우리가 해야 할 일만 남았습니다. 예수님의 프러포즈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주시는 그 포도주를 받아 마심으로 주님을 신랑으로 맞이하는데 동의한 것이고, 우리도 또한 주님을 우리의 주인이요 신랑으로 영접하고 성만찬을 통하여 주님의 피된 포도주를 받아 마심으로 예수님을 신랑으로 받아들이고, 예수님만을 죽기까지 사랑하겠노라고 주님과의 약혼에 동의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신부를 위해 목숨을 주시겠다던 포도주의 이 프러포즈의 약속을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의 프러포즈를 받고, 예수님의 피의 포도주를 받아 마신 제자들은 말 그대로 예수님을 나의 주인이요, 신랑으로 영접한 것이며, 혼인을 승낙한 것입니다.
그로서 우리는 지금 어떤 상태입니까? 예수님과 약혼(정혼)한 상태인 것입니다.
⑥ 신부의 소유권이 신랑에게 있음
이렇게 되면 우리의 소유자는 아비 마귀가 아닌 예수님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외에는 그 누구도 우리의 대하여 소유권을 주장하지 못합니다. 비록 지금 과거 우리의 아비였던 마귀의 세상에 살고는 있지만, 예수님께서 이미 우리의 몸값인 지참금을 모두 지불했기 때문입니다.
아비는 딸의 소유권을 주장하지 못합니다. (요일 5:18) 마귀는 우리를 만지지도 못한다 했습니다.
요일 5:18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이 의미는 결단코 소유권을 주장하지 못하며, 주님과 약혼한 우리를 절대로 지옥으로 데려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경륜이십니다.
⑦ 신부와 함께 할 처소를 예비하러 돌아감
또 유대인의 결혼예식에서처럼 신랑 되신 예수님께서는 신부된 우리와 함께 할 처소를 예비하러 전에 계셨던 아버지 집인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처소가 예비 되면 우리를 데리러 다시 오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요 14: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요 14:3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요 14:4 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
요 14:5 도마가 가로되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오셨던 곳 하늘로 돌아가셨다가 신부와 함께 할 처소를 예비하고 다시 오셔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유대인들의 풍습인 약혼예식을 유대인 제자들이 모를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4절에 “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자신들이 남자라는 사실 때문에, 예수님과 자기들이 혼인예식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기에 5절과 같은 도마의 대답이 나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마도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지금은 깨닫지 못하더라도 후에 그 의미를 성령을 통하여 깨닫게 될 것을 아시지 않았겠습니까?
⑧ 신랑은 신부가 늘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정표를 주고 떠남
그리고 유대인의 혼인 예식에서처럼 서로 헤어져 있는 동안 신랑만을 생각하게 하는 가장 귀한 것으로 신랑이 정표를 주고 가듯이 예수님께서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시면서 신부인 우리에게 항상 예수님만을 기억하고 생각하도록 보혜사 성령을 우리에게 정표로 주셨습니다. 그렇게 성령님과 함께하는 신부인 우리는 누구만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까?
요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몸은 떨어져 있지만 신랑 신부가 정표로 마음이 하나된 것처럼, 우리에게 주신 정표인 성령께서 우리와 예수님과 영으로 하나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로 다른 것들을 생각하지 않고, 오직 주님을 향한 마음으로 주님 오실 때까지 정결케 하시고 거룩케 하시는 것입니다.
신랑이 주고 간 정표를 신부는 늘 지니고 다녔듯이, 정표이신 성령은 늘 우리와 임마누엘 하십니다.
사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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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 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임마누엘의 이름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또한 그 이름대로 친히 끝 날까지 항상 함께하신다는 약속을 하십니다. 그 약속을 지키시기 위해, 정표로 항상 함께하시는 성령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정표인 성령은 예수님의 영으로 바로 예수님 자신인 것입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마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또한 예수님은 아담이 사단에게 빼앗겼던 다스림의 권세, 곧 통치권을, 죽음의 사망권세를 이기시면서 되 찾아오셨습니다. 아담이 하나님께 받은 통치(다스림) 권세를 뱀의 미혹에 빠져 마귀에게 넘겨주었던 것입니다.
눅 4:5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보이며
눅 4:6 가로되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준 것이므로
나의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눅 4:7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아담이 마귀에게 넘겨준 것을 다시 예수님께서 되찾아 오셨습니다. 그렇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으신 분의 영이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를 지키십니다. 또한 그 권능을 하나님의 나라 확장에 우리로 사용토록 허락하셨습니다.
마 28:18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마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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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16: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막 16:18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막 16:19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리우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예수님은 지금 하늘 보좌 우편에 계시지만, 또한 분명한 사실은 우리와 항상 함께 하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결코 변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⑨ 약혼 기간은 최소 1년 이상 (신부의 순결을 확인)
그래서 우리는 신랑이신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죄와의 간음을 끊어가며, 세속적인 것을 즐겨하지 말고, 세상적 쾌락들을 끊어내고, 또 나를 사로잡고 있는 세상적 욕심이나 근심들을 다 끊어내며 오직 주님만 바라보며 거처를 예비하고 다시 오시겠다하신 예수님의 거룩한 신부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⑩ 신부를 데리러 오는 날짜는 신랑의 아버지가 정함
유대예식에서처럼 신랑이신 예수님이 우리를 데리러 오시는 그날은 누가 정한다고 했습니까? 신랑의 아버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지막 때에 관하여
마 24:36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⑪ 신부는 신랑이 오면 언제든 따라갈 준비가 되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마지막 때에 대하여 이런 말씀을 합니다.
살전 5:1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살전 5:2 주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살전 5:3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살전 5:4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이 4절의 말씀은 신앙생활 잘하고, 믿음이 좋은 사람에게, 또는 예언에 은사 받은 사람에게 그 날을 알려 주시겠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무슨 뜻입니까? 곧 깨어 있음에, 빛 가운데 있음에, 늘 성령님과 동행함에 다시 말씀드려서, 항상 주님을 학수고대하고 기다리고 있음에 그렇게 늘 언제든 따라갈 준비를 하며 기다리고 있는 신부에게는 신랑이 오는 그 날이 도적같이 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⑫ 신부를 데리러 오는 시간은 한 밤중이 되고, 도착할 즈음에 신랑이 왔음을
알리는 나팔을 붐
예수님께서 신부들을 데리러 재림하실 때를 묘사한 구절들입니다.
마 25:6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물론 주님의 재림은 어느 한 지점에서만 밤이 될 것을 말씀하심입니다. 지구는 둥글기에 전 세계가 동시에 밤일 수가 없습니다. 가령 팔레스타인 지역이 밤이면, 어떤 곳은 저녁이고, 어떤 곳은 새벽이기도 할 것입니다.
막 13:35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엘는지, 밤중엘는지,
닭 울 때엘는지, 새벽엘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막 13:36 그가 홀연히 와서 너희의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
막 13:37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이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하시니라
또한 밤중이란 의미가 문자 그대로 어두운 밤을 말씀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어둠의 왕인 마귀가 최후의 발악을 하는, 극성을 부리는 때를 의미하는 영적인 의미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언제인지 모른다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항상 준비하고 깨어있는 신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신랑이신 예수님께서 거의 다 도착해서 천사들이 나팔을 불게 될 것입니다. 그 때에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주의 신부들을 모으실 것입니다.
마 24:31 저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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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15: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고전 15: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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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전 4: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⑬ 신부의 들러리들은 등불과 기름을 준비합니다
신랑을 기다리는 열 처녀 중 기름을 항상 넉넉히 준비한 다섯 처녀는 혼인잔치에 들어갔고 항상 넉넉히 준비하지 않은 미련한 다섯 처녀는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신랑이 왔다는 뿔 나팔 소리가 준비하지 않은 이 미련한 다섯 처녀에게는 끔찍한 심판의 소리로 들릴 것입니다.
⑭ 속죄일
그러므로 마지막 결혼식을 앞둔 신랑 신부가 금식을 하며, 개인 속죄일을 가졌던 것처럼, 금식을 하며 속죄한다는 의미는 죽음을 무릅쓰고 돌이켜 회개하는 일입니다. 이는 주님을 기다리는 신부로서 거룩하고 정결케 하는 예식입니다.
예수님과 결혼을 앞둔 신부는 늘 죄와 싸워야하고, 죄 지은 것에 대하여 늘 죽음을 각오하고 회개하여야 하며, 우리를 대속하신 어린양의 십자가 보혈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도록 우리에게 입혀주신 성의를 빨아 희고, 거룩하고, 성결케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부가 하여야 할 의무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레 16:32 그 기름 부음을 받고 위임되어 그 아비를 대신하여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는
제사장은 속죄하되 세마포 옷 곧 성의를 입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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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7:14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헬: 스톨레)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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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22:14 그 두루마기(헬: 스톨레)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 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
이것은 개인 종말을 맞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의 생이 언제 마감할지 모릅니다. 갑작스런 죽음이 어떻게 찾아올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기다리는 재림신앙은 비록 내 시대에 주님이 오시지 않는다 할지라도 각자의 개인종말을 온전히 준비케 하는데 큰 유익이 있습니다. 재림신앙은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가 가져야할 마땅한 신앙입니다.
재림신앙은 이단들이나 갖는거야! 이렇게 생각하면 큰 코 다칩니다. 2,000년 전 초대교회 성도들이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믿음으로 순교 할 수 있었던 것은 재림신앙으로 인해 가능했던 것입니다. 재림 신앙을 갖고 있는 자만이 죽음을 무릎 쓴 선교가 가능한 것입니다.
- 관계적 관점을 통하여 바라본 하나님의 섭리 (문제 제기의 결론)
오늘 본문인 엡 5:22-32의 말씀에 남녀가 한 몸을 이루는 혼인예식의 규례를 통하여 그 속에 감춰둔 예수님과 성도들의 결혼의 비밀을 알아봄으로 왜 주님께서 십자가 사건으로 다 이루셨음에도, 한 번에 모든 것을 끝내지 않으시고, 다시 오시는 재림을 남겨 두셔야만 했는지, 왜 아무도 모르게 도적같이 오셔야 하는지 재림하실 때에는 무엇을 하시기 위해 오시는 것인지?
또 우리 성도들은 그 때를 어떻게 준비하며 살아야 하는 것인지? 이 안에 하나님의 어떠한 뜻과 구원의 원리가 있는 것인지, 관계적 관점을 통해서 성경을 바라보았을 때, 더욱 깊은 통찰을 할 수 있게 되며, 진리를 바르게 정립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① “다 이루었다”고 하셨음에도, 승천하셨다가 다시 오시기까지 그 기간이 왜
필요한 것인지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요 14: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처소를 예비하기 위해서 하늘로 가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기간은 예수님께서 신부와 함께할 처소, 곧 새 예루살렘 성을 지어가는 기간입니다. 바로 예수님을 바라는 신부들과 더불어 건물(성도들 또는 예수님의 신부들)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최종 완성하여 함께할 처소, 곧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를 만들어 가시는 기간입니다.
엡 2: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엡 2: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엡 2: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이 기간에 구원할 많은 신부들과 약혼식을 더하여 가시며,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기를 바라시는 기간입니다. 이를 하나님의 종인, 목회자로써 사도바울은 자신의 사명을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표명하고 있습니다.
고후 11:2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목회자의 사명은 이 기간에 택한 자들을 예수님께로 중매하는 중매쟁이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예수님과 약혼한 신부들로 하여금 데리러 오실 때까지 정결한 신부가 되어가게 하시며, 하늘에 소망을 갖게 하시고, 예수님만 생각하며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게 하시는 기간입니다.
벧후 3: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② 주님이 오실 때는 왜 아무도 모르게 도적같이 오셔야 하는지
선한 자는 계속 선하게, 악한 자는 계속 악하게 (그대로 보존하기 위해서),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은 추수하는 날입니다. 알곡과 가라지를 구별하시어 알곡은 곳간에 가라지는 불에 태우시기 위해서 오시는 날입니다.
계 22:11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
계 22: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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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후 3:7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벧후 3: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가지를 잊지 말라
벧후 3:9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벧후 3: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 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도적같이 오시는 이유는 만반에 준비를 다하고 신랑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자, 곧 주님만을 사모하는 자와 여전히 오실 때가 멀었다고 생각하고 준비하지 않은 자를 구별하시기 위해서 입니다. 지혜로운 다섯 처녀와 미련한 다섯 처녀를 구별하기 위해서입니다. 오실 날을 알고도 준비하지 않을 자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오시는 날을 알려주지 않는 것입니다.
③ 재림하실 때에는 무엇을 하시기 위해 오시는 것인지
주님을 바라고 기다리는 자들에게 구원을 베푸시기 위해서, 곧 신랑을 바라고 기다리는 자들을 데려가시려고 오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신랑으로 영접한 자들을, 재림 때에는 예수님께서 그 신부들을 처소로 영접해 주십니다.
요 14:3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는 죄와 상관없이 예수님을 바라는 신부들을 데려가시려 오신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히 9:28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시리라
④ 우리 성도인 신부들은 그 때를 어떻게 준비하며 살아야 하는 것인가
사도 베드로는 마땅한 것을 행하라는 것입니다. / 거룩과 경건한 행실로 주님이 오시기를 바라고 사모하라는 것입니다.
벧후 3: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 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벧후 3: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벧후 3: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⑤ 이 한 몸을 이루는 결혼의 비밀 속에 하나님의 어떠한 뜻과 구원의 원리가 있는 것인지
하나님은 이처럼 우리를 마귀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하여, 또한 우리로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하시려고, 그리고 우리를 온전한 자녀 삼으시기 위한 방법으로, 둘이 한 몸을 이루는 혼인의 방법을 사용하십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하나 밖에 없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는 혼인식을 작정하셨던 것입니다.
그것만이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에게 유업으로 주실 수 있는 유일하고 온전한 방법이며, 우리를 다시는 마귀에게 빼앗기지 않고 온전한 자녀 삼으시기 위한 가장 최상의 방법인 것을 그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 엄청난 비밀을요.
롬 7:2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났느니라
우리의 신랑이신 예수님은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셔서 영원토록 살아계신 우리의 신랑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에게 영원토록 매인바 된 것입니다. 우리를 신랑이신 예수님에게서 빼앗아 갈 자 아무도 없는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주님이 우리를 버리시지 않는 이상 말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거룩한 신부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럼 거룩한 신부가 되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 정결과 거룩 그리고 순결의 차이
여기서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것, 꼭 집고 넘어가야할 것이 있습니다. 정결한 신부요, 거룩한 신부가 되는 방법이 우리가 어떻게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까?
우리의 처녀성인 순결을 지키는 것입니까? /
이 시간 이후에는 정결과 거룩 그리고 순결을 정확히 분별하셔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바르게 아시는 은혜가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 우리는 결코 순결한 처녀, 순결한 신부는 될 수 없다
우리가 착각하는 부분이 이것입니다. 예수님과 약혼하기 전에 우리는 순결한 처녀이었고, 그래서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우리는 그 순결함을 유지하기 위해 결코 죄를 짓지 말아야 하는 자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를 지으면 결코 주님의 신부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우리는 처음부터 음탕한 창녀요, 죄인이었습니다. 과거 죄의 자녀로, 마귀의 자녀로 있을 때에 이미 고멜과 같이 더렵혀질 대로 더럽혀져 있었던 자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처음부터 죄인인 창녀 같은, 그런 나를 신부 삼기 위해 주님은 이 땅에 오신 것이지, 깨끗하고 순결한 처녀를 신부 삼고자 오신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마 9:12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마 9: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주님은 처음부터 의인인 순결한 신부가 아니요, 죄인 된 창녀 같은 나를 부르러 오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처음부터 죄인이요 창녀이기에, 우리에겐 바로 창녀라 할지라도 신부 삼아주시는 예수님이 꼭, 절실히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만나기 전부터 순결과는 거리가 먼 음란한 죄인이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과 약혼 후에도 우리의 순결을 지켜야 되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 그동안 죄를 죄라 생각하지 않고, 생활 속에서 습관처럼 행해왔던 그 음란과 죄들을 이제부터 하나하나 버려가며 끊어나가야 하는 정결케 되어야 하는 자들임을 분명하게 인식하셔야 합니다.
더러울 때로 더러운 우리는 약혼 후 과거의 구습을 버려나가고, 옛사람을 죽여 나가야 하는 그런 존재인 것입니다.
이런 표현을 사용해서 죄송합니다만, 적절한 비유를 들려고 하니 어쩔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과거 음란했던 여자가, 음란을 버리기로 결단을 하고 이제부터 남자와의 관계를 끊는다고 해서 그 여자가 처녀로 돌아갈 수 있습니까?
한번 잃었던 처녀의 상징인 처녀막이 다시 생깁니까?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그 처녀의 상징을 주셨는데, 왜 주셨다고 생각하십니까? 오직 사람만이 처녀성을 따집니다. 짐승들은 그 처녀막이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인간에게도 그 처녀성이 처음부터 주어지지 않았다면, 우리도 순결이 무엇인지 그 의미조차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유는 우리에게 그 순결의 의미를 분명하게 심어주시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순결의 사전적 의미는 ‘이성과의 육체관계가 아직 없음’입니다. 한 번도 더럽혀진 적이 없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통하여서도 처녀성의 의미를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신 22:13 누구든지 아내를 취하여 그와 동침한 후에 그를 미워하여
신 22:14 비방거리를 만들어 그에게 누명을 씌워 가로되 내가 이 여자를 취하였더니
그와 동침할 때에 그의 처녀인 표적을 보지 못하였노라 하면
…………………
…………………
신 22:20 그 일이 참되어 그 처녀에게 처녀인 표적이 없거든
신 22:21 처녀를 그 아비 집 문에서 끌어내고 그 성읍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 죽일지니
이는 그가 그 아비 집에서 창기의 행동을 하여 이스라엘 중에서 악을 행하였음이라
너는 이와 같이하여 너의 중에 악을 제할지니라
하나님께서도 처녀성이 없는 처녀를 창기 짓을 한 악한 여자라 단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처녀성은 단 한 번의 간음으로 파괴되는 것이므로, 이 의미는 이는 단 한번 죄를 지었어도 순결과는 거리가 먼 것을 보여주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으신 것입니다.
또한 예로, 살인자가 감옥에서 죄 값을 다 치렀다고 해서, 살인한 것이 없어지는 것입니까? 죽임 당한 사람이 다시 살아납니까?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 값을 다 대속해 주셨다고 해서, 아예 살인이 없었던 것이나, 죄지은 적이 없는 순전한 상태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시간을 거슬러 죄를 범하기 전으로 돌아가지 않는 이상 말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속하셨다는 것은, 우리를 무죄 판결 해 주신 것이 아니라, 누군가 나 대신 죄 값을 대신 치러주신 것입니다. 제사법에 의해 죄에 대한 대속의 제도를 주신 것처럼, 우리가 받아야 할 진노와 저주와 심판을 예수님께서 대신 받아 주신 것입니다.
- 우리를 죄인 그대로 부르셨습니다
우리를 그냥 이 모습 이대로 신부로 맞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을 죄인으로서 그 대속의 은혜와 사랑을 생각할 때, 그 한량없는 은혜가 우리 가슴이 저미도록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처음에 하나님께서 의롭다하시고 죄인과 섞이지 않도록 하신, 순결한 이스라엘 백성을 독생자 예수님의 신부를 삼고자 하셨습니다. 순결을 지킬 것이라 생각했던 이스라엘이 순결을 지키지 못하고 우상과 간음하며 배역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분열왕국 이후 배역한 북 이스라엘은 버리고, 남유다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런데 그토록 믿었던 그 남유다 마저 우상과 간음하고 하나님을 버리는 패역한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후 하나님은 순결한 자를 찾아 볼 수 없음을 아셨고, 간음했더라도 좋다. 나에게 돌아만 와다오, 나에게 돌아오라고 부르고 계십니다. 세상에는 순결한 처녀가 없음을 아셨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음을 아셨습니다. 간음한 신부라 할지라도 돌아오라 내가 너희의 남편이 되어 줄게 라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신 외침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렘 3:8 내게 배역한 이스라엘이 간음을 행하였으므로 내가 그를 내어쫓고 이혼서까지
주었으되 그 패역한 자매 유다가 두려워 아니하고 자기도 가서 행음함을 내가 보았노라
렘 3:9 그가 돌과 나무로 더불어 행음함을 가볍게 여기고 행음하여 이 땅을 더럽혔거늘
렘 3:10 이 모든 일이 있어도 그 패역한 자매 유다가 진심으로 내게 돌아오지 아니하고
거짓으로 할뿐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렘 3:11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배역한 이스라엘은 패역한 유다보다 오히려 의로움이
나타났나니
렘 3:12 너는 가서 북을 향하여 이 말을 선포하여 이르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배역한 이스라엘아 돌아오라 나의 노한 얼굴을 너희에게로 향하지 아니하리라
나는 긍휼이 있는 자라 노를 한 없이 품지 아니하느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렘 3:13 너는 오직 네 죄를 자복하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를 배반하고 네 길로 달려 모든
푸른 나무 아래서 이방 신에게 절하고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렘 3:14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나는 너희 남편임이니라 내가
너희를 성읍에서 하나와 족속 중에서 둘을 택하여 시온으로 데려오겠고
렘 3:15 내가 또 내 마음에 합하는 목자를 너희에게 주리니 그들이 지식과 명철로 너희를
양육하리라
이처럼 우리는 순결하지 않았던 자들입니다. 이미 순결을 잃은 자들입니다. 그것은 단 한 번의 죄로 족합니다. 아담이 단 한번 선악과를 먹음으로 죽게 되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순결을 유지해야 하는 자들이 아니고, 그동안 습관적으로 행하던 죄인 임에도 불구하고 신부 삼아주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죄를 하나하나 버려나가고, 끊어나가고, 나의 옛 사람을 죽여가는 그렇게 정결해져가야 하는 자들입니다.
죄와 계속해서 싸워야 하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수도 없이 반복해도 모자랍니다.
우리에게 그 많은 죄들이 단번에 끊어지면 좋겠지만, 그것이 안 되면 하나하나씩이라도 말입니다. 이 말씀은 곧 예수님 안에서 거듭나 새롭게 자라 나가는 정결한 자요, 거룩한 자들이 되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 우리는 결코 순결한 처녀가 될 수 없음에 대한 반론
여기에 이런 반론이 있을 수 있습니다. /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 우리가 ‘중생’했다, ‘거듭났다’라고 하기 때문에 / 우리는 예수님을 영접하면서 새로 태어난 사람입니다. / 그러므로 처녀막을 새롭게 갖고 태어났다고 할 수 있지 않습니까? / 순결도 거듭나면서 새롭게 받았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죠? / 그러니 그 새롭게 받은 순결을 지켜나가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해도 되지 않을까요?
좋습니다. 그럼 우리는 예수님을 영접하면서 새롭게 처녀성도 가지고 거듭났다고 해 보는 겁니다. / 물론 각각 영접한 시기는 다를 것입니다. / 하여간 거듭난 그 때부터 지금까지 얼마의 세월이 흘렀는지는 모르지만, / 한 번도 죄를 짓지 않고 지금까지 새롭게 받은 순결을 지켜 오신 분 있으십니까? / 그런 분이 있다면, 그분은 앞으로도 계속 순결을 지키셔야 할 것입니다. / 단 한 번의 죄로 순결을 잃는 순간, 신랑으로부터 버려질 테니까요. / 그분에게는 그 순결이 신부가 될 수 있는 조건이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분은 하나님도 거짓말 하는 자로 만드신 것이며, 성령이 그 안에 계시지 않으신 것입니다.
요일 1:10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육신의 장막을 입고 있으면서 죄를 전혀 짓지 않을 수 있는 온전한 의인인 분은 우리에게 그 의를 덧입혀 주신 오직 예수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듭나신 후 지금까지 단 한번이라도 죄를 지으셨다면, 이미 우리는 순결하지 못한 자들입니다. 아니 다시 순결한 상태로 돌아갈 수 없는 자입니다. 처녀의 상징을 사람에게 만들어 주신 의미는 너희 중에 순결한 자가 하나도 없음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주신 것입니다.
롬 3:9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롬 3:10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롬 3: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롬 3:12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 우리는 모태로부터 새롭게 태어난 자가 아님
왜 우리가 중생, 거듭나고도 과거처럼 계속해서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까? 왜냐하면 어머니 모태로 들어갔다가 완전하게 새롭게 태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구습과 욕정으로 뒤범벅 된, 혼과 육체는 그대로인데, 우리의 속사람(영)이 주님의 영이신 생명의 씨, 곧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영) 밭에 심겨짐으로 말미암아, 거듭난 우리의 속사람(영)이, 혼과 육체의 욕정을 능히 제어해야 하는데, 아직 그 만큼 자라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시기에 바울의 탄식을 보십시오.
롬 7:17 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롬 7:18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롬 7:19 내가 원하는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바 악은 행하는도다
롬 7:20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롬 7: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롬 7:22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롬 7: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롬 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22절 이후를 해석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롬 7:22 내 속 사람(하나님의 말씀이 뿌려진 나의 영)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롬 7:23 내 지체 속(혼과 육체)에서 한 다른 법(죄가 습관화되어 몸에 배어버린 생활)이
내 마음의 법(새롭게 거듭난 나의 영)과 싸워 내 지체 속(혼과 육체)에 있는
죄의 법(죄가 습관화되어 몸에 배어버린 생활)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 우리 안에 심겨진 성령의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 감
그러나 우리 영 안에 심겨진 성령 곧 말씀의 씨가 뿌리를 내리고 자라 갈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 밭에서 풍성한 열매를 맺어 갈 것이며 자라 갈 것입니다.
엡 3:16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엡 3: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엡 3: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엡 3:19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엡 3:20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그 생명인 말씀의 씨가 싹을 틔우고 자라나고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심으로 우리에게 충만하게 하셔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넘치도록 우리를 만드시고 이끌어 가실 것입니다.
성령의 누룩이 우리 마음 자루에 들어와 온 자루를 부풀게 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 기간이 온전한 천국 백성이 되어가게 성령께서 이끄시는 기간인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한 가지는 우리 안에서 하나님 나라의 씨가 심겨져 싹을 틔었기 때문에 주님을 영접(약혼)한 자들은 천국 시민으로 다시 거듭 태어난 자들입니다. 아직 성령의 열매를 맺을 만큼 단지 자라지 못했을 뿐입니다.
• 중생(거듭남)은 천국 시민권을 받은 것
예수님을 영접하고 거듭난 자인 우리는 천국 시민권을 받은 자로서 그곳에 가기 전에 천국 시민으로써 살아가기 위한 삶의 룰을 배워나가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비유로 말씀 드리면,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혼자 살아갈 수 없고, 누군가에 보호를 받아야 하는 유아기를 거쳐, 대한민국 국민으로써 살아갈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학습과 배움의 교육을 모두 거친 후, 장성하여 사회의 한 일원이 되어 살아가듯이 말입니다.
태어나면서 한 나라의 국민이 되지만, 어린아이일 때나 청소년기 때 관습이나 문화 또는 예절이나 법규와 윤리와 도덕을 알지 못해 그릇 행하기도하고 죄를 범하기도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또는 그런 것을 더러는 배우고 안다 할지라도, 청소년 때에는 현실 감각을 담당하는 뇌의 전두엽 발달이 미약하여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거나 충동에 대한 절제나 자제력이 부족하여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어린 아이들이나 청소년의 범죄는 처벌하지 않고 사회봉사로 대신하거나 징계나 훈계 정도로 마무리하는 것과 같습니다. 막 천국 백성으로 거듭난 우리는, 갓난아이나 어린이나, 청소년기와 같은 상태이기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에도 온전하게 죄를 자제하지 못하고 죄를 범하게 되는 것을 이 비유로 말씀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비록 어린 아이와 같이 잘못을 범한다 할지라도, 분명한 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주님을 영접하여 거듭나는 순간 우리는 확실한 천국 백성인 것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처럼 비록 천국 백성다운 삶을 살지 못한다 할지라도, 또 성경을 잘 모른다 할지라도, 우리 안에 하나님 나라(성령)가 임하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 나라 백성인 것입니다.
빌 3:20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빌 3:21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바울사도는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고 단정하고 있습니다. 하늘나라의 구원은 죽어봐야 아는 것이 아니고, 살아있을 때 확보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보증이 성령님이 십니다.
고후 1:21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견고케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고후 1:22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
- 성령님이 행하시는 의무교육
예수님을 영접하고 거듭난 이후에 하나님 나라에 대한 교리 학습과 설교 말씀과 성령의 동행하심을 통하여 성도(신부)의 믿음이 견고해지고 예수님의 장성한 믿음의 분량에 이르러 가는 것입니다.
국가에 한 아이가 적정시기에 따라서 그 나이에 맞는 국가에서 하는 의무교육의 혜택을 받게 되는 것처럼, 성령께서 친히 우리의 선생이 되셔서, 교회에서 들은 설교 말씀과 읽은 말씀과 교육받은 것을 토대로 해서, 우리의 믿음을 견고케 하시고 또 진리의 교육을 시켜주십니다.
요 16:13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렇게 교육을 받으며 장성하여 가다가, 나이가 차 주민등록증이 발급이 되고, 책임을 지는 성인이 되는 것처럼, 하나님 나라의 기본적 자질을 이 세상에서 교육받고 익혔을 때, 우리는 죽음과 생명의 부활을 통하여 온전한 하나님 나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더 들면, 우리가 다른 나라로 이민 가서, 그 나라의 시민권을 받기까지 그 나라에서 규정하는 기간만큼 거주해야 하면서, 시민권을 받기위한 최종 인터뷰를 준비하는 과정과도 비슷합니다. 우리가 완벽하게 그 나라 풍습과 법규를 다 알아야 시민권을 받는 것이 아니고, 정해진 규정과 기본적인 커트라인을 통과하면 시민권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 천국백성의 커트라인은 믿음으로 예수님을 남편(주인)으로 영접(약혼)하고 주님을 기다리는 신부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관계적 관점을 통하여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순결성이 주님의 신부가 되는 조건이 아님을 분명하게 아셨을 것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우리는 이미 어떠한 경우도 순결할 수 없는 자들임을 아셨다면, 우리는 오직 주님의 은혜요 자비하심만을 구해야 하는 자들임을 아실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우리가 완전히 죄를 끊어내야만 천국 시민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죄인인 우리를 신부 삼아 주셨고, 정결한 신부가 되도록, 거룩한 신부가 되도록, 우리에게 정표로 오신 성령님께서 세상 끝날 까지 함께 하시며, 우리를 천국 백성답게 가르치시고 만들어 가시는 것입니다.
죄를 조금이라도 지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은 거짓 복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과도 부합됩니다. 하나님의 말씀 곧 율법을 지켜 순종하여 구원받을 자가 한 사람도 없기에 주님이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짓지 않았기로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순종의 의를 덧입고, 오직 예수님의 피로 정결케 되어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정결이 자기 의로, 자기 결단으로 죄를 짓지 않음으로 된다고 생각하시는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은혜 받지 못하게 되는 교만으로서 무서운 거짓 복음이 되는 것입니다.
- 죄를 지어도 되는가?
이렇게 말씀드리면, 또 꼭 이렇게 걸구 넘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럼 죄를 만판으로 지어도 되느냐 라고” 합니다. 구원파 아니냐? 이러한 것은 초대교회 당시와 똑 같은 논쟁이요 질문입니다. 이런 질문은 성경의 맥을 보지 못한 것이고, 숲 전체를 보지 못하고 나무 하나만을 보고 씨름하는 것과 같습니다.
조금 앞에서도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우리는 구원을 받기 위해 죄를 끊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 받은 것에 감사해서 죄를 끊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두에 말씀을 드렸던 것입니다. 각각의 나무도 중요하지만 숲을 보지 못하면 그 숲에 있는 각각의 나무의 기능도 알지 못하게 되는데 있다고 말입니다. 이렇게 말의 꼬투리를 물려는 사람에게, 바울이 오죽 답답했으면 로마서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롬 6:1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롬 6:2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롬 6: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롬 6: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
………
롬 6: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
롬 6:12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 노릇 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롬 6: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롬 6:14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롬 6:15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바울의 심정을 느껴보십시오.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을 깨닫지 못하고 자꾸 믿음으로만 구원 받았다 하시니, 그럼 죄를 지어도 되느냐? 이 한 가지만 가지고 시비를 걸어오는 사람들에 대해서 답변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바울 왈 “내가 죄를 지어도 된다고 한 것이 아니지 않느냐?” 라고 항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죄를 가지고 논하는 것은 율법을 가지고 논하는 것입니다. 죄의 기준이 율법이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통해서만이 내가 죄인인 것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죄를 지으면 결코 천국에 갈 수 없다고 하는 말이 곧 율법을 어기면 천국에 갈 수 없다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죄를 짓지 말아야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말은, 곧 율법대로 살아야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말과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이 로마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롬 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롬 5:13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므로, 죄를 논하는 것은 율법을 논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의 말씀은 우리를 구원하지 못하는 그 율법에 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죽으심으로 해방시켜 놓았더니, 굳이 율법으로 돌아가려 하는 것은 뭐냐는 것입니다. 이 말에 그들은 여지없이 또 “그럼 죄를 지어도 되느냐?” “율법을 어겨도 되느냐?” 라는 질문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구원을 죄(율법)와 결부시켜 논하는 자들을 향하여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갈 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죄를 짓지 않는)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죄를 짓지 않는)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갈 2:17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나타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갈 2:18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
갈 2:19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 함이니라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 2:21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죄를 짓지
않는 것)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갈 3:1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갈 3:2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갈 3:3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율법)로 마치겠느냐
이 말씀 속에서 바울의 답답해 하는 심정이 읽혀지지 않습니까? 구약 성경을 꿰뚫고 있었던 바울이 성경의 맥을 뚫어보고 그것을 교리적으로 설명하고자 애쓰는 모습에 공감이 가시지 않습니까? 그럼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신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이시냐는 것입니다.
갈 5: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율법에서의 해방)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하여 세상적인 것을 즐기려는 것)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오직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우리는 예수님의 신부요, 예수님의 증인이요, 그 사랑에 종(일꾼)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전적으로 그분이 우리를 그렇게 인도하시고 만들어 가실 것입니다. 구원이 죄로 말미암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죄는 지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구원은 신랑이신 예수님께서 정표로 주신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오시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예수님의 프러포즈를 우리가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나의 신랑으로 맞이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정표이신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오시기 때문입니다. 그 때부터 성령님께서는 우리에게 임마누엘 하셔서 오직 주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자들이 되도록, 죄를 범하지 않는 자들이 되도록, 온전한 천국 백성이 되도록 성취해 나가십니다.
그래서 복음은 여기까지만 증거 하면 조금 부족한 복음이 되고 마는 것이요, 은혜가 복음의 전부가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 주님만 생각하고, 죄를 버리도록 하시는 방법
그럼 성령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무슨 방법으로 온전한 신부로 만들어 가시며, 어떻게 우리로 주님만을 생각하게 하고, 또 어떻게 죄를 끊어 나가도록 하신다는 것입니까?
요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성령님이 우리 안에 오시면, 새록새록 주님께서 주신 모든 말씀들이 생각나서, 우리의 잘못 된 행위를 질책하는 가책의 마음을 주십니다. 우리에게 생각나게 하시는 주님의 말씀들은 어떤 말씀들입니까?
렘 31:3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렘 31:3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
렘 31:33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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겔 36:25 맑은 물로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케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을 섬김에서 너희를 정결케 할 것이며
겔 36: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겔 36:27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겔 36:28 내가 너희 열조에게 준 땅에 너희가 거하여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이는 성령이 우리에게 임마누엘하실 것을, 예레미야와 에스겔 선지자를 통하여 미리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알 수 있는 것은 성령이 우리 마음에 들어오시는 것은 곧, 하나님의 율법과 언약의 말씀이 우리 마음에 새겨지는 것이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령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요, 율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돌비에 새겼을 때와는 달리 우리 마음에 새겨진 율법은 우리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율례와 규례들을 지켜 행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새겨질 하나님의 말씀을 단순한 글자처럼 생각하시면, 하나님의 말씀을 크게 오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호흡에서 나오며, 호흡은 곧 하나님의 생기요 영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오직 말씀만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권능의 말씀입니다. 또한 모든 언약들을 반드시 이루어 가실 능력의 말씀입니다. 또한 살았고 운동력이 있는 예리한 검과 같은 말씀입니다. 말씀은 곧 하나님이십니다. 성령은 곧 말씀이요, 능력이요, 생명이요, 기름부음이십니다.
히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히 4:13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
이렇게 살아 운동력이 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이제 강제성을 띤 돌비(돌판)에 새겨진 말씀이 아니요, 자발성을 갖도록 우리의 심비(마음판)에 새겨짐으로 그 말씀이 친히 나를 정결하고 거룩하도록 이끌어 가실 것입니다.
주님만을 생각하라고 정표로 주신,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들어오셨습니다. 이것은 생명의 말씀의 씨가 마음 밭에 심겨져, 싹이 나고 자라는 중생이요 거듭남이라 했습니다. 천국 백성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성령이 임하셔서 죄들을 단 번에 끊게 하시는 것이 아니고, 자발적으로 스스로 끊어가도록 하신다는 것입니다.
율법을 몰라 죄를 죄라 여기지 않았던 습관이 몸에 베어, 예수님과 약혼한 후에도 습관화된 과거의 구습을 좇아 여전히 음란을 행하는 우리에게, 우리 마음에 오신 성령(율법)께서는 죄를 죄로 인식하게 하셔서, 죄에 대해 스스로 거리낌을 갖게 하시고, 신랑 되신 예수님께 대하여 죄스런 마음을 갖도록 하십니다.
- 다윗 왕권 언약을 우리에게 적용하심
그래도 계속 죄를 범할 경우 다윗의 왕권언약으로 약속하셨던 말씀대로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셔서 우리로 세상 것을 좇지 않고, 죄로부터 멀어지고 점점 주님께만 시선을 향하게 하시겠다는 언약의 말씀입니다.
삼하 7:14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삼하 7:15 내가 네 앞에서 폐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같이 그에게서는 빼앗지
아니하리라
위 말씀은 여호와께서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다윗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사울이 범죄 했을 때, 그에게 주었던 은총을 거두고 빼앗은 것 같이, 다윗은 범죄하더라도 다윗에게는 은총을 거두거나 빼앗지 아니하시겠다는 언약이십니다. 그 대신 사람을 시켜 치게하고, / 질고와 환난과 고난을 주어서라도 회개시켜가며 끝까지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그렇게 인도해 가신다는 언약의 말씀입니다.
① 다윗은 예수님과 성도들의 예표, 사울은 사단의 예표
다윗에게 약속하신 이 언약의 말씀은, 동일하게 우리 믿는 성도들에게 주신 언약의 말씀입니다. 사울은 예표적 관점에서 우리 믿음의 성도들의 표상이 아닙니다. 사울은 사단의 예표로서, 사울이 자기의 왕위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다윗을 죽이려고 했던 것은, 세상 임금인 마귀가 왕권을 회복하기 위하여 오시는 예수님을 죽이려 하는 것을 예표 하는 것입니다.
사단은 한때 하나님께 은총을 받아 하나님을 찬양하던 천사였으나 하나님과 비기겠다는 반역의 마음을 품음으로,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셨던 모든 은총을 거두셨습니다. 사울에게 주셨던 은총을 거두신 것처럼 말입니다.
간혹 사울에게 임하였던 하나님의 신이 떠나가고 악신이 들었던 것처럼, 지금 우리에게도 성령이 임하셨다가 떠나가실 수 있는 것처럼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사울은 한 때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 하나님을 찬양했던 사단을 표상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주셨던 은총을 다시 거둔 루시퍼(사단)를 보여주는 예표입니다.
다윗은 예수님의 예표요 또한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는 모든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의 예표라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다윗에게 한 언약의 말씀은, 곧 우리 믿는 성도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언약의 말씀입니다.
또한 아브라함에게, 야곱에게, 구약의 모든 선진들과 이스라엘에게 하신 모든 언약의 말씀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에게 동일하게 하시는 언약의 말씀으로 붙드는 것이 언약적 관점으로 말씀을 접할 때 깨닫게 되는 결론입니다.
다윗에게는 사울과 같이 아니하시겠다는 은혜의 왕권 언약이 주어졌습니다. 다윗에게는 주어진 은총, 여호와의 신, 곧 성령을 거두어 가지 아니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사울과 같이 범죄 하더라도 그에게는 거두지 아니하시고, 그냥 때려서라도 끝까지 그 위(왕권)를 견고케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다윗의 왕권언약은 왕 중 왕으로 오신 예수님의 왕권의 영원성을 예표하는 말씀인 것은 다 아시는 바입니다. 이는 또한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에 위(왕권)를 끝까지 견고케 하시겠다는, 믿는 자녀들에게 적용되는 언약의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는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유업을 얻을 자들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왕 노릇 할 자, 곧 우리가 왕권을 받은 자들임을 분명하게 아신다면, 다윗의 왕권 언약이 우리에게까지 연계되고 있는 것을 아실 것이고,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또 동시에 우리에게 주신 언약을 믿는다면, 결코 흔들림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다윗에게 주셨던 왕권언약의 말씀들을 보겠습니다.
② 다윗의 왕권언약
삼하 7:13 저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
삼하 7:14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삼하 7:15 내가 네 앞에서 폐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같이 그에게서는 빼앗지
아니하리라
삼하 7:16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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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 9:5 내가 네 아비 다윗에게 허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 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한 대로 너의 이스라엘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려니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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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17:12 저는 나를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대상 17:13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되리니 나의 자비를 그에게서 빼앗지
아니하기를 내가 네 전에 있던 자에게서 빼앗음과 같이 하지 않을 것이며
대상 17:14 내가 영영히 그를 내 집과 내 나라에 세우리니 그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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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22:10 저가 내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할지라 저는 내 아들이 되고 나는 저의 아비가
되어 그 나라 위를 이스라엘 위에 굳게 세워 영원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셨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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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89:4 내가 네 자손을 영원히 견고히 하며 네 위를 대대에 세우리라 하였다 하셨나이다(셀라)
시 132:12 네 자손이 내 언약과 저희에게 교훈하는 내 증거를 지킬진대 저희 후손도 영원히
네 위에 앉으리라 하셨도다
언약의 말씀의 요지가 무엇입니까? / 너희는 나의 거할 성전을 건축할 자라는 것이요, 너의 후손들도 너의 그 위(왕권)에 앉을 것이요, 너희는 내 아들이 되고 나는 너희의 아비가 되어 그 나라 위를 이스라엘 위(왕권)를 굳게 세워 영원까지 이르게 하리라 입니다.
우리가 바로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자입니다. 우리 몸이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이기 때문입니다(고전 3:16). / 우리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로 이스라엘로 편입된 영적 이스라엘입니다. 바로 다윗에게 주셨던 언약이 바로 우리에게 주어진 언약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표적 관점과 언약적 관점을 통시적으로 볼 때, 비로서 사울이 루시퍼의 예표이며, 다윗은 바로 예수님과 하나님의 자녀 된 자들의 예표임을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작금에 우리에게 주셨던 은총과 성령을 범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서 거두어 가실 수 있다고 본다는 것은, 다윗에게 주어진 언약을 믿지 않는 것이요, 또한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언약을 믿지 않는 것이요, 동시에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주어진 다윗의 왕권 언약을 믿지 않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는 스스로를 다윗의 후손이 아님을 시인하는 것이며, 역으로 보면 주셨던 은총을 거둠으로 폐위 된 사울의 예표를 붙드는 것이 되니, 이는 사단에게 속한 자임을 고백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것이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바라볼 때, 범하게 되는 오류인 것입니다.
성령님께서는 결코 떠나지 아니하시고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을 사용하시어 범죄 함을 회개케 하시고, 천국 백성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끄시는 것입니다.
- 육체의 고난을 통하여 죄가 끊어짐
인간은 너무도 연약한 존재이기에 은혜나 칭찬, 깨달음만 가지고는 죄를 끊어내는 절제, 또는 인내의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오직 인간은 육체의 고난을 통하여 죄를 끊게 되는 것입니다.
시 119:67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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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전 4:1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이니
다윗 왕이 밧세바를 얻고자 그의 남편인 우리아를 죽입니다. 그로 밧세바는 다윗의 여덟 번째 부인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단 선지자를 통해 비유를 들어 그를 나무랍니다. 그 때 다윗은 회개합니다. 이 때 나단이 여호와의 말씀을 대변하여 말하기를
삼하 12:13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대답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나단을 통한 하나님의 징계의 말씀에 다윗은 죄를 고백하고 회개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다윗의 죄를 사해 주었지만, 죄의 대가는 받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밧세바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는 죽게 될 것이라 하셨고, 그러고도 하나님의 뜻대로 모든 징계를 받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고난을 받고서야 다윗은 육체의 정욕을 그쳤습니다. 지금 우리에게도 다윗에게와 같이 동일하게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을 적용하고 계심을 아시기 바랍니다.
고전 11:31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고전 11:32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죄 정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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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12: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히 12:7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히 12: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히 12:9 또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 하지 않겠느냐
히 12:10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느니라
히 12:11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사랑하시기에 징계를 하시고, 아들과 같이 여기시기에 징계를 하셔서,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게 하시고,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는 것입니다.
고난을 통하여 죄를 끊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고난이 오면, 고난의 경위를 깨달아 회개할 것은 회개하고, 돌이킬 것은 돌이키고, 깨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비로써 하나님의 성령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우리를 죄에서 떠나도록 이끌고 계심을 알게 되며, 주시는 고난 까지도 우리를 회복케 하시는 주님의 은총임을 깨닫게 되고, 그러므로 우리로 모든 일에 감사하지 아니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 정결과 거룩은 오직 피와 관유(기름)으로 됨
정결케 하는 것, 거룩케 하는 것은 무엇을 통해서만 되는 것입니까? 오직 제물의 피로 정결케 되고, 관유 기름으로 거룩케 되는 것임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물의 피와 감람유를 발라 성막의 모든 기구들을 거룩케 하셨습니다. 이는 또한 예수님의 피(고난)와 성령(기름, 말씀)으로 거룩케 되어 가는 것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레 14:14 제사장은 그 속건제 희생의 피를 취하여 정결함을 받을 자의 우편 귓부리와
우편 손 엄지가락과 우편 발 엄지가락에 바를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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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 14:25 속건제의 어린 양을 잡아서 제사장은 그 속건제 희생의 피를 취하여 정결함을
받을 자의 우편 귓부리와 우편 손 엄지가락과 우편 발 엄지가락에 바를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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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9:13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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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9:22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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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13:12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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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전 1: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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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후 2:13 주의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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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30:30 너는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기름을 발라 그들을 거룩하게 하고 그들로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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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7:1 모세가 장막 세우기를 필하고 그것에 기름을 발라 거룩히 구별하고 또 그 모든
기구와 단과 그 모든 기구에 기름을 발라 거룩히 구별한 날에
예표적 관점에서 대속의 개념이 어떠한 것인지를 또한 분명하게 알고 가야 합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우리의 죄 된 모습을 예수님의 피로 덮어주어 죄를 가려 줄 뿐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죄악을 어린 양이신 예수님의 피의 공로, 곧 순종의 의(예수님의 의)를 덧입힘으로 우리의 죄를 가려주시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 여겨주시는 것입니다.
• 우리의 죄를 대속해 주심
구약의 성막 제사를 통하여 그 개념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계십니다. 우리는 지성소에 법궤를 하나님의 임재의 모형이요 하늘 것의 그림자로만 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법궤를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으로 여겼습니다. 당연한 것이 법궤 안에 세 가지 내용물이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상징하는 것으로 채워졌기 때문입니다. 십계명 돌판, 아론의 싹 난 지팡이, 만나 항아리가 그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상반되는 다른 상징으로 드러내시기도 합니다. / 법궤 안에 있는 내용물은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의 상징인 동시에, 인간의 간악한 죄악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 법궤 안의 물건들은 인간의 죄악상
십계명 돌 판 입니다.
우리는 아론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었을 때 모세가 분을 참지 못하고, 그 돌 판을 산 아래로 던져 깨뜨려 버렸던 것을 기억합니다. 두 번째 다시 하나님께 받은 십계명 돌 판에도 처음 것과 같은 십계명이 기록 되어 있었는데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이 행한 죄악을 지적하셔서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며,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여기지 말며, 어떠한 우상도 만들지 말라고 인간의 죄악상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하와가 선악과를 보고 탐스럽게 여긴 탐욕과 같으며, 죄의 근원 세 가지 중 요일 2:16절에 이생의 자랑거리에 속한 것입니다. 우상을 섬기는 것은 오직 목적이 물질의 복과 형통함입니다.
만나가 담긴 항아리입니다.
이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홍해를 마른 땅같이 건너게 하신 출애굽한 후에 그들에게 먹을 것이 떨어지자, 광야에서 우리를 죽게 하려느냐 하며 원망이 빗발쳤을 때 주시기 시작한 하늘 양식입니다. 이 또한 육욕을 참지 못하는 데서 오는 인간의 죄악상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도 또한 하와가 선악과를 보고 먹음직스럽게 여긴 정욕과 같으며, 죄의 근원 세 가지 중 요일 2:16절에 육신의 정욕에 속한 것입니다.
아론의 싹난 지팡이입니다.
이 또한 아론에게 주어진 권세에 도전하여, 각 지파의 두령들의 질투가 발하자 하나님께서 아론을 세우셨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는데, 이 또한 명예욕으로 인간의 죄악상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 또한 하와가 선악과를 보고 보암직스럽게 여긴 명예나 권세욕과 같으며, 죄의 근원 세 가지 중 요일 2:16절에 안목의 정욕에 속한 것입니다.
이는 각기 이생의 자랑과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죄악의 산물들입니다. 이 죄악의 산물들을 담은 법궤 위에 뚜껑을 덮고 그 뚜껑에 연하여 붙여 조각한 두 천사가 법궤를 내려다보는 형상으로 만들어진 법궤의 뚜껑인 속죄소가 있습니다.
대 제사장이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죄를 속죄받기 위해서 일 년에 한차례 제물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 그 속죄소 뚜껑위에 피를 붓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사해 주십니다.
- 인간의 죄악을 제물의 피로 덮어줌
이는 인간의 죄악상이 담긴 법궤를 늘 바라보고 있는 천사가 속죄소(법궤의 뚜껑)에 부어진 제물의 피로 인하여 법궤 안의 있는 인간의 죄악이 가려져 천사가 인간의 죄를 바라보지 못하게 됨을 뜻합니다.
피가 인간의 죄악상을 가려주는 것입니다. 물론 짐승의 피라 그 효력이 1년 밖에 유지되지 못하였지만 말입니다. 아마도 뚜껑(속죄소)에 뿌려졌던 피가 1년 후면 바짝 말라 다시 죄악상이 보이게 되었나 봅니다.
- 어린양이신 예수님의 피의 영원한 효력
그러나 어린양의 예수님의 피는 짐승의 피와 같지 않아 영원한 속죄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예표적 관점에서 뚜껑(속죄소)에 뿌려진 피가 죄를 가려주었던 의미로 볼 때, 이와 동일한 개념으로, 우리는 영원하신 예수님의 피에 의해 우리의 죄악이 영원히 가려졌을 뿐이지, 죄가 처음부터 없는 것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창녀가 처녀가 되지 못하는 것과 살해된 사람이 다시 살아나지 못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처럼 성경을 바르게 이해되기 위해서는, 한 가지 관점만으로 성경이 보여 지는 것이 아님을 아셔야 합니다. 모든 관점을 서로 거미줄처럼 엮어갈 때, 하나님의 분명하신 뜻을 조금이나마 발견하여 깨달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피로인해 죄가 가려졌을 뿐이지, 예수님의 피에 의해 과거에 죄를 지어보지도 않은 순결한 자로, 또한, 앞으로는 다시는 죄를 범하지 않게 되는 거룩한 자로 순간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한다면, 죄를 지으면 하나님의 신부로서의 자격을 상실한다느니, 죄를 지으면 천국에 못 들어간다느니 하는 말들이 얼마나 비 성경적인 말인가를 알게 됩니다.
그렇다고 제가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죄를 조장하거나, 죄를 지어도 된다는 말 또한 분명히 아님을 위에서 말씀드렸습니다. 또한 죄는 하나님께서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끊어나가게 하실 것입니다.
죄를 짓지 않는 것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면, 예수님께서 헛되이 죽으신 것이 되지요. 죄가 죄인 것을 알게 하는 것은 율법으로 말미암음이니 죄를 짓지 않으려면 율법을 다 지켜야 하며, 그 중에 하나라도 어기면 안 되는 것을 다 아실 것입니다.
약 2:10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약 2:11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 여러 관점들의 통시적 해석의 중요성
이러한 하나님의 뜻과 진리의 사실들을 여러 관점들을 통하여 통시적으로 보면, 그나마 어렴풋이 하나님의 뜻이 보일 것입니다. 그래서 한 가지 관점으로는 하나님을 이해 할 수도, 그분의 뜻을 알 수도 없습니다. 모든 관점을 관통해야 주님의 진정한 뜻에 접근하는데 무리가 없습니다. 한 가지 관점만을 고집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해석에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잠 19:2 지식 없는 소원은 선치 못하고 발이 급한 사람은 그릇하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아가는 지식을, 하나님께 더욱 구하고 연구하고 더욱 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스 7:10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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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전 1:10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벧전 1:11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하여 어느 시,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결론 (나가는 말)
그럼 이제 우리는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로써, 이미 최고의 복(결혼식)을 약속 받은 자로써, 우리의 마음과 행동의 처신은 어떠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이미 약혼하고도 약혼 기간 중 세상과 간음하여, 세상의 쾌락을 즐기고, 또 물질의 욕망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이미 순결을 잃어버린 우리를 돌로 치실 것인지, 아니면 긍휼을 베푸시고 데리고 살 것인지 하는 것은, 우리의 소유권을 가지고 계신 오직 신랑이신 주님의 권한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님과 약혼식을 치룬 이후에도 죄와 사귀어 간음한, 그래서 욕심을 잉태하기까지 한, 창녀와 다름없는 자들입니다. 아니 어쩌면 잉태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죄를 낳아버린 자들인지도 모릅니다.
약 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우리는 우리의 모습으로는 결코 주님의 신부될 자격이 없는 자들입니다. 이미 주님을 영접한 이후 온갖 간음을 다 저질러 놓고, 지금은 잠시잠깐 은혜로운 삶을 산다고 해서 자신을 거룩하다 착각하지 마십시오. 앞으로의 남은 삶을 털끝만한 죄도 짓지 않고 살 수 있다고 자만하지도 마십시오. 그 교만으로 당신은 처음부터 선택되지 않은 사람일 수 있습니다.
• 우리의 구할 것은 주님의 자비와 긍휼
우리는 이미 간음한 신부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주님의 처신만이 남아있습니다. 우리를 돌로 치실 것인가, 아니면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셔서 신부로 데려가 주실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해, 오직 주님의 처분만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더욱 우리가 구할 것은 오직 주님의 자비하심과 긍휼하심입니다. 이 주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기를 간절함으로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 주님께서는 순결을 지키지 못하고 이미 간음한 우리를 어떻게 대하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까? 주님의 크신 사랑과 긍휼하심을 주님께서는 신, 구약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미리 보여주고 계십니다.
요셉은 의인이라 누구 아이인지 모를 아이를 잉태한 마리아를 가만히 끊고자 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완전한 의는 그런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고 하십니다.
요셉은 재림 예수님의 예표이기도 합니다. 이는 우리 창녀와 같이 죄를 잉태한 자들도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신부 삼으실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께서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온 여인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주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그 행위대로 갚으시는 분이 아님을 언약하고 계십니다. 주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행하시겠다고 언약하십니다.
시 23: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시 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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겔 20:44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의 악한 길과 더러운 행위대로 하지 아니하고
내 이름을 위하여 행한 후에야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
또한 구약의 호세아 선지자에게는 음란한 창녀 같은 고멜을 끝까지 버리지 말 것을 호세아에게 말씀하십니다.
또한 앞에서 언급한바 있는 말씀입니다만, 하나님께서 이혼 증서를 써 준 북 이스라엘에게도, 믿었던 남유다의 패역을 보시고는 북 이스라엘에게 긍휼이 베풀어졌던 것은, 하나님께서 믿었던 유대인의 넘어짐으로 이방인에게 긍휼이 베풀어짐에 예표로, 하나님의 모든 구원은 긍휼하심을 통한 은혜로 시작하심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다시 돌아오기만 하면 너희 남편이 되어 주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취할 처신이요 자세입니다.
렘 3:8 내게 배역한 이스라엘이 간음을 행하였으므로 내가 그를 내어쫓고 이혼서까지
주었으되 그 패역한 자매 유다가 두려워 아니하고 자기도 가서 행음함을 내가 보았노라
렘 3:9 그가 돌과 나무로 더불어 행음함을 가볍게 여기고 행음하여 이 땅을 더럽혔거늘
렘 3:10 이 모든 일이 있어도 그 패역한 자매 유다가 진심으로 내게 돌아오지 아니하고
거짓으로 할뿐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렘 3:11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배역한 이스라엘은 패역한 유다보다 오히려 의로움이
나타났나니
렘 3:12 너는 가서 북을 향하여 이 말을 선포하여 이르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배역한
이스라엘아 돌아오라 나의 노한 얼굴을 너희에게로 향하지 아니하리라 나는
긍휼이 있는 자라 노를 한 없이 품지 아니하느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렘 3:13 너는 오직 네 죄를 자복하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를 배반하고 네 길로 달려 모든
푸른 나무 아래서 이방 신에게 절하고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렘 3:14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나는 너희 남편임이니라 내가
너희를 성읍에서 하나와 족속 중에서 둘을 택하여 시온으로 데려오겠고
렘 3:15 내가 또 내 마음에 합하는 목자를 너희에게 주리니 그들이 지식과 명철로 너희를
양육하리라
우리는 어느 때든지 자복하고 주님께로 돌아가야 할 자들입니다. 주는 자비하셔서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나는 너희 남편임이니라 라고 이혼서를 주신 이후에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항상 언제까지나 주님은 우리에게 긍휼을 쏟아 붙고 계시는 남편이심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 확고부동한 신부로서의 정체성을 견고히 붙잡는 것이, 바로 우리가 가져야할 처신이며, 그래서 항상 준비하고 깨어있는 지혜로운 다섯 처녀의 자세가 우리가 취할 행위인 것입니다.
• 이미와 아직
우리는 주님과 약혼은 이미 했지만 결혼은 아직 안 했습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이미’와 ‘아직’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데리러 재림하셔서 함께 하늘로 가서 혼인 잔치가 시작되어야 주님의 온전한 신부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온전한 신부가 되기 위해 다시 오실 주님의 재림을 늘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사는 동안에 신랑이신 주님이 오실 것이라는 그 마음가짐으로 말입니다. 이것이 결혼을 앞둔 신부의 진정한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예수님께서 곧 오시리라고 한 후, 그렇게 2,000년이 흘러왔고, 오시겠다는 주님은 아직 오지 않으시고, 지금까지는 세상 종말보다, 개개인의 종말이 먼저 왔다 할지라도, 그래도 우리는 어느 때가 되었든지 곧 오시리라는 신랑을 고대하는 마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 오실 날이 아직 멀었다 생각하면, 내 개인적의 종말을 맞이할 때 진정한 신부의 모습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결혼을 앞둔 신부가 신랑을 고대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처신이기 입니다. 도리어 기다리지 않는 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 예수님과 교회를 위하여 결혼제도를 만드심
오늘 본문에 사도바울이 에베소서에 보내는 편지에서 부부지간에 있어야할 ‘부부의 예’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부부의 관계가 바로 예수님과 교회 이 둘 사이의 관계와 같으므로 부부지간에 서로 대할 때, 주님을 대하듯이 그렇게 교회를 대하듯이 서로 대하라는 것입니다.
부부 사이의 관계를 예수님과 교회의 관계와 대입이되고, 또한 예수님과 교회의 관계가 부부 사이의 관계와 대입이 된다는 것입니다. 남녀사이 부부관계와 예수님과 교회의 관계, 과연 어느 관계가 먼저이겠습니까?
예수님과 교회와의 한 몸을 이루는 결혼식, 이를 위해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 결혼제도를 만드신 것이고, 아담에게 돕는 배필로 하와를 주신 것입니다. 아담은 둘째 아담이신 예수님의 표상이요, 하와는 교회의 표상인 것은 이미 다 아시는 것입니다.
창 2:20 아담이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창 2: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창 2: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창 2:23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창 2: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아담을 잠들게 하시고 그의 갈비뼈로 그의 돕는 배필 하와를 만드시고, 아담이 깨어나자 그에게 하와를 주셨습니다. 하와를 보고 아담은 고백합니다.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였습니다.
아담은 예수님을 예표하고, 하와는 교회를 예표 합니다. 아담의 고백을 예표적으로 해석해 보면,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을 잠드는 것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의 묘비에는 ‘000가 여기 잠들다’라고 씁니다. 또한 신약성경에서는 믿는 자의 죽음을 잠잔다고 표현하고 있는 구절이 많습니다.
요 11:11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가라사대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고전 11:30 이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고전 15:6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 있고
어떤 이는 잠들었으며
고전 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잠들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또한 사도바울도 잠자는 자라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사도바울이 예수님께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것을 고전 15:20에서 어떻게 표현하고 있습니까?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고 표현합니다.
아담이 잠자는 사이에 하나님께서 그의 갈비뼈로 돕는 배필 하와를 만들어 주신 것은, 예표적 관점에서 풀어보면 아담(예수님)이 잠자는(죽은) 사이에 하나님께서 그의 갈비뼈(옆구리를 찔려 흘리신 피)로 돕는 배필 하와(교회)를 만들어 주신 것은 예표 하는 것입니다. 또 아담이 깨어난 것은 예수님의 부활을 예표 하는 것입니다.
또, 아담이 깨어난 후 고백은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의 의미는
교회는 예수님의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며, 이것을 (남자)그리스도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그리스도인, 또는 그리스도의 회 곧 교회라 명명한 것을 예표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교회의 한 몸을 이루는 결혼식은 창조 때부터 예정하셨고, 그 작정하신대로 계시록에서 완성하실 것이며, 예수님과 교회의 연합(결혼)을 위하여, 세상에 결혼제도를 주신 것입니다.
• 결혼의 완성
남녀가 한 몸을 이루는 결혼 속에 숨겨둔 비밀이 이렇게 엄청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님과 교회인 우리를 신랑과 신부로 결혼시키시려는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분명하게 알았다면, 이제는 우리가 주님을 기다리는 신부라는 분명한 정체성과 그에 걸 맞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으시는 귀한 은혜가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엡 5: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엡 5: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물은 예수님의 피를 상징합니다. 또한 말씀은 성령(기름)을 상징합니다. 거룩케 하는 것은 피와 관유로 밖에는 할 수 없음을 엡 5:26-27절은 우리에게 다시 한 번 상기 시키고 있습니다. 그렇게 피와 성령(기름)으로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흠이 없는 거룩함을 주려 하심이라 합니다. 우리에게 임마누엘 하신 성령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이끄시고 거룩하고 흠이 없게 이루시고 성취하실 것입니다.
• 주님의 거룩한 신부
우리는 코앞에 결혼식을 앞 둔, 그래서 영원히 함께할 신랑이신, 주님을 기다리는 신부입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신 혼인 예식은 이미 시작되었고 진행 중입니다. 이 결혼식은 하나님의 주권 하에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완성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오실 때까지 혹 개인의 종말이 먼저 온다할지라도, 주님 앞에 가는 그 날까지 분명한 신부로써의 정체성을 가지고, 땅에 것을 생각하지 말고, 신랑이신 예수님과 영원히 살게 될 하늘에 것만 바라보며, 오직 주님만을 사랑하며, 매일같이 더러워진 세마포를 주님의 피로 빠는 것, 늘 성령의 도우심으로 죄와 싸워 이겨가는 주님이 기뻐 맞이하시는 주님의 거룩한 신부들이 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마라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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