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nglish Bible ------------------------------ The Almighty God 전능자 하나님
Job 34:10-12 10"So listen to me, you men of understanding. Far be it from God to do evil, from the Almighty to do wrong. 11He repays a man for what he has done; he brings upon him what his conduct deserves. 12It is unthinkable that God would do wrong, that the Almighty would pervert justice.
listen vi. 경청하다, 듣다(to) repay vt,vi. (돈을)갚다, 보답하다, 은혜를 갚다 bring vt. 가지고오다, 데리고오다 conduct vt,n. 행위, 품행, 행동(처신)하다, 지휘하다 deserve vt. ~할 가치가 있다, ~을 할만하다 unthinkable a. 생각할 수 없는, 있은성 싶지도 않은 pervert vt,n. 벗어나게 하다, 곡해하다, 악용하다 justice n. 정의, 공정, 재판 dwell vi. 살다, 거주하다, 곰곰이 생각하다,길게 논하다, 천천히 발음하다
Psalm 91:1-4 1He who dwells in the shelter of the Most High will rest in the shadow of the Almighty. 2I will say of the LORD, "He is my refuge and my fortress, my God, in whom I trust." 3Surely he will save you from the fowler's snare and from the deadly pestilence. 4He will cover you with his feathers, and under his wings you will find refuge; his faithfulness will be your shield and rampart.
shelter n. 은신처, 방공호, 보호물, 방공호 shadow n. 그림자, 영상, 명목뿐인 것 refuge n. 피난, 도피처, 보호, 의지, 위안자 fortress n,vt. 요새, 안전지대, 요새로 방어하다 snare n,vt. 유혹하다, 덫(에 걸리게 하다), 향현 fortress n,vt. 요새, 안전지대, 요새로 방어하다 pestilence n. 악성 유행병, 페스트, 치명적인, 평화를 파괴하는, 성가신 feather n,vt,vi. 깃털, 깃으로 장식하다, 깃털이 나다 shield n,vt. 방패, 보호물(자), (방패 모양의)무늬, 수호(보호)하다 rampart n,vt. 성벽, 방어, 성벽(누벽)을 두르다(으로 견고히 하다), 방어하다, 방비하다
Revelation 1:8 "I am the Alpha and the Omega," says the Lord God, "who is, and who was, and who is to come, the Almighty."
alpha n. 그리스 알파벳의 첫째 글자 omega n. 그리스 알파벳의 끝 글자, 최후
----------------------------------------------------------------- RELATED TEXTS Genesis 17:1 27:3 35:11 34:14 48:3 49:25 Exodus 6:2-4 Revelation 21:22-27 -----------------------------------------------------------------
Job 34:10-12 10그러므로 너희 총명한 자들아 내 말을 들으라 하나님은 단정코 악을 행치 아니하시며 전능자는 단정코 불의를 행치 아니하시고 11사람의 일을 따라 보응하사 각각 그 행위대로 얻게 하시나니 12진실로 하나님은 악을 행치 아니하시며 전능자는 공의를 굽히지 아니하시느니라 Psalm 91:1-4 1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2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3이는 저가 너를 새 사냥군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4저가 너를 그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 날개 아래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나니 Revelation 1:8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NIV 독해를 위한 2560 단어 정복 366일 과정 (54/366일차 = 372-378 개째 단어)
listen vi. 경청하다, 듣다(to) snare n,vt. 유혹하다, 덫(에 걸리게 하다), 향현 conduct vt,n. 행위, 품행, 행동(처신)하다, 지휘하다 deserve vt. ~할 가치가 있다, ~을 할만하다 pervert vt,n. 벗어나게 하다, 곡해하다, 악용하다 shelter n. 은신처, 방공호, 보호물, 방공호 rampart n,vt. 성벽, 방어, 성벽(누벽)을 두르다(으로 견고히 하다), 방어하다, 방비하다
알파와 오메가 ------------------ 계 1:8
교회는 집합적으로는 나라이며, 개인적으로는 하나님께 대한 제사장들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온 우주에 걸쳐 유일하신 왕이신 그리스도의 주권적 지위를 계승하였으므로 세상 임들들 위에서 왕노릇하는 그 권세에 참여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희생적 죽음의 결과에 근거하여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으로서의 영광을 누립니다. 교회가 누리는 이 영광은 보편성을 가져서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함으로써 '선지자적 기능'도 담당하게 되는데, 이렇게 함으로써 교회는 '이방인을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장 나라'로서의 역할도 수행해 내게 되는 것입니다.
1. 전능한 하나님이신 알파와 오메가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자라 하시더라"(1:8). 본문 말씀은 앞에서 언급된 '주님의 재림의 확실성'(7절)을 보장하기 위한 의도로 등장한 말씀입니다. 여기서 '알파'( )와 '오메가'( )는 헬라어 첫 단어와 끝 단어를 가리킵니다. 즉 하나님의 영원성이 선포되고 있습니다. 이사야에 의하면 하나님의 영원성이 이런 식의 표현을 통하여 잘 선포되고 있습니다(사 41:4 44:6 48:12). 이로 보건대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자신이 '시작'과 '끝'이심을 선언하시는 가운데 앞의 말씀을 보증하고 계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6에서는 '처음과 나중'이라는 표현이 첨가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라는 말씀도 같은 의미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말씀은 위에서 언급된 '알파와 오메가'라는 말씀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모든 역사를 주관하십니다. 세상을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친히 그 창조하신 세상을 다스리십니다.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께 대한 지배적인 개념들 중의 하나는 하나님께서는 왕이 되신다는 사실에 대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야훼는 단순히 창조자이신 것이 아니라, 통치자이셨습니다. 구약에서 전개된 이 신앙은 신약에 이르러 '하나님의 나라' 개념을 통하여 연속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개념에서 강조점은 나라에 대한 하나님의 소유격에 있습니다. 나라가 하나님의 것으로서 하나님의 나라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성격은 '하나님의 통치'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러 오신 분이십니다. 죄 아래 갇힌 인생들을 구원하신 가운데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된 증거는 저희가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다는 데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은 이것을 가능케 하신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영원하신 하나님은 동시에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하나님은 단순히 영원히 계신다고 하는 사실에 한정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동시에 그분은 전능자(全能者)이십니다. 전능자는 '모든 능력을 가진 자'라는 뜻을 가집니다. 신약에서 이 표현은 모두 열 번 사용되는데, 오직 바울에게서만 한번 사용되었고(고후 6:18), 나머지 아홉번은 여기 요한계시록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1:8 4:8 11:17 15:3 16:7,14 19:6,15 21:22). 이 말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기 위해서는 70인역(70LXX)의 아모서 4:13에 나타난 '만군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히브리어의 '만군의 하나님'이란 표현이 70인역에서 '전능한 하나님'이란 표현으로 대응되고 있는 것입니다. 70인역은 이를 '전쟁의 여호와'라고 의미 있게 번역합니다.
2.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
다윗은 골리앗과 싸울 때 바로 이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아갔습니다(삼상 17:45). 만군의 여호와는 천상적 군대를 가지신 분이신고로 지상적 군대가 실패할 때에는 이스라엘을 향해서라도 당신의 만군을 돌이키실 수 있는 분이시라는 데서 이 이름의 의미는 한층 잘 드러납니다(사 31:4). 이 이름은 다윗 시대에는 이스라엘 종교의 전체 경향이 이방의 압제를 벗어버리는데 있었던 사실과 관련하여, 그 인상이 군사적인 자원과 관계를 맺습니다. 삼상 17:26,36에서 '사시는 하나님'이라는 말이 사용된 것은 이런 의미 때문인 것입니다. 만군의 하나님 혹은 만군의 여호와로서의 전능한 자에 대한 충분한 이해의 실례를 시편 84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시인이 주 여호와를 호칭함에 있어서 특별히 '나의 왕'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이 여호와여!" 여기서 여호와는 특별히 시인의 왕이십니다. 왕은 자기 백성을 보호하는 권세를 발휘합니다. 여호와는 바로 이 왕이시며, 특별히 절대적인 왕이십니다. 그래서 '만군의 여호와'이십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만군의 여호와'라고 부르는 표현이 모두 네 번이나 나옵니다(1,3,8,12). 이것은 절대적으로 여호와의 전능성과 관계되는 표현입니다. 동양적 사고방식에 있어서 왕의 권능은 그 수행원들의 수에 의해서 측정되었는데, 여호와는 천상적 군대를 가지신 전능한 분이십니다. 그러나 후대에 이르러 이 이름은 이런 개념을 월등히 초월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높으심과 전능하심을 지칭하는 명칭이 됩니다. 그래서 이후 선지자들의 시대에 있어서 이 이름은 저들의 부패한 신앙이 초래한 반종교적이고, 반신정적인 의식구조를 파괴하는 측면과 관련하여 보다 특징적으로 계시됩니다. 그리하여 강조점이 단순히 인간적인 도움에 놓여지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구속사를 이적적으로 성취시키시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게 됩니다(사 23:9 24:23 슥 3:10). 이런 식으로 이 만군의 여호와 혹은 전능한 하나님은 그의 왕적 권세를 계시하는 칭호인 것입니다(시 103:19-22 사 6:5 24:23 렘 46:18 48:15 51:57). 그래서 이 왕으로서의 여호와 개념은, 계속해서 9절에서 '우리 방패이신 하나님', 11절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는 등등의 표현을 통해서 그 이미지를 더욱 강화시켜 나갑니다. 그리고 끝내는 이 시의 마지막 결론을 장식하는 12절에서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라고 고백됨으로써 클라이막스를 장식합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 전능자의 권세로 말미암아 당신의 구속 사역이 호리만큼도 방해 받지 않으십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전능한 분'이시라는 이 사실은 성도들에게 있어서 구원의 큰 확증이 됩니다. 전능하신 자의 사역은 구원과 심판으로 전개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구주 하나님이십니다(눅 1:47 딤전 1:1 딛 3:4). 그런데 이 구원 개념은 상대적으로 심판 개념을 수반합니다. 즉 구원을 위한 심판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구원을 위한 심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 심판과 구원을 복합적으로 성취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엄위와 인자를 동시에 계시하고 있으며(롬 11:22),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최종적인 심판의 필연성을 보증하는 증거이기도 합니다(행 17:30).
3.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가 누리는 왕 노릇
요한계시록 5:9-10에 나타나는 새 노래의 가사에 보면,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고 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여기서 중요한 개념은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다'는 데 있고, 그 결과 '땅에서 왕노릇하리로다'라고 합니다. 이 사상을 이해할 수 있으려면 잠시 과거 이스라엘이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맺어진 '언약 관계'로 돌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언약 순종을 조건으로 저희를 하나님의 소유로 삼으셔서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출 19:5-6). 여기 출애굽기 말씀이 의미하는 바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사실에 있습니다. 첫째,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서의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 사건을 기점으로 하나님의 나라로써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저들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약속 안에서 이미 탄생 전부터 하나님의 나라로 선택된 민족이었으며, 이제 시내산에서 맺으신 언약에 의거하여 거룩하신 하나님의 선한 통치 하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자기의 땅인 가나안 땅에로 인도해 들이시는 가운데 주변국들을 철저히 정복케 하심으로 저희로 하여금 진정한 안식을 누리게 하십니다. 이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나라로서의 왕적 권세에 참여케 되었습니다. 둘째, 이제부터 이 나라는 더 이상 인간 나라가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나라가 되어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 나라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구속 경륜의 언약 안에서 이들 이스라엘은 그 삶의 방식에 있어서나 혹은 그 삶의 가치관과 목표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세상 나라와 구별되게 되었습니다. 저희는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나라로서의 제사장 나라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제사장 나라로서의 이스라엘의 이러한 기능은 다른 열방들로 하여금 저희의 우상숭배의 괴악한 행위를 벗어버리고 오직 사시는 참된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섬기게끔 하는 중보자적 기능도 수행하여야 했습니다. 세째, 바로 여기에서 이스라엘 나라는 열국들을 대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선지자적 나라로서의 기능도 수행하게끔 되었습니다. 이상 살펴본 세 가지 사실과 관련하여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소유인 것이요 동시에 하나님의 나라이며 또한 거룩한 백성인 것입니다. 세계가 다 하나님께 속해 있으나 그중에 특별히 이스라엘 나라만이 이 영광에 참여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거듭되는 불순종으로 일관합니다. 광야 여행길에서부터 시작된 이 불순종의 패괴한 행위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까지 반복됨으로 인하여 과연 저희가 신정국가(神政國家)의 기틀을 잡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의 불안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저희를 긍휼로써 상대하셔서 급기야 신정국가를 출현시키십니다. 그렇지만 솔로몬의 때에 이르러 이 나라는 결정적인 붕괴의 위기로 치달리게 되었습니다. 온갖 불순종이 보편화되었고, 심지어 공개적인 우상숭배가 국가적으로 장려되기까지 하였습니다. 아합 왕가와 므낫세 왕가는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따라서 언약 조건이 시행되어 이방 세력의 침략이 허용되게 되며 이에 따라 저희는 숱한 고난에 처해지게 됩니다. 그리고는 급기야 국운을 상실하는 비극에까지 치달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약속으로서의 언약의 핵심은 사실상 저희로 하여금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려는 데 있는 것이었기 때문에, 저희의 회복에 대한 소망은 필연적인 것이기까지 하였습니다. 따라서 저희의 타락에도 불구하고 여러 경로를 통하여 장차 하나님의 나라의 회복이 도래할 것을 대망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미래의 회복을 예언하는 가운데, 장차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제사장이라 일컬음을 얻을 것이라'(사 61:6)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하나님의 나라의 회복에 대한 소망은 메시야의 도래를 대망하는 것과 연결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이 메시야의 도래로 말미암아 비로소 하나님의 나라가 회복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장차 메시야가 오십니다. 저는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시키시는 분이십니다. 이제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상기한 하나님의 나라의 출현이 이루어진 사실을 보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베드로는 이 일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한 교회의 출현 속에서 실제적인 성취로 나타나게 된 사실을 전파합니다.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벧전 2:5).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룩한 제사장 나라'의 신분과 기능은 이제 더 이상 문자적 이스라엘에 적용되지 않습니다. 오직 교회가 이 영광스러운 신분을 수여받았고 동시에 그 기능을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교회가 부여받은 이 영광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생명을 대가로 지불하시는 것을 통하여 얻어진 것이었습니다. 베드로는 계속해서 9절에서 이 사실을 다시금 확대합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니라"(벧전 2:9). 여기서 베드로는 교회가 이렇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여기 '택하신 족속', '왕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그의 소유된 백성' 등등의 표현은 그야말로 출애굽기 19:5-6을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에게 수여되었던 말씀을 배경으로 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더 이상 문자적 이스라엘에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교회가 수여받은 이 영광은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로 묘사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으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 사역을 가리켜 '아름다운 덕'이라고 표현합니다. 은혜를 받았던 구약의 이스라엘이 자기들을 애굽에서 구출해주신 여호와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여야 했듯이, 이제는 교회가 이 사명을 잇게 되었습니다. 요한이 그의 묵시록 도처에서 초점을 맞추고 있는 어린 양의 승리는, 적극적인 의미에서 그의 자녀들을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되게 하시려는 데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구약과 신약을 연결하는 중요한 원리는 '나라'라는 사상입니다. 요한과 베드로의 진술들을 종합하면 이 '나라'라는 개념이 크게 강조되고 있습니다(벧전 2:9 계 1:6 5:11). 요한과 베드로는 예수님의 사역의 의의가 이에 있음을 간파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사역을 통하여 자신이 오신 의의가 하나님의 나라의 회복에 있다는 사실을 중점적으로 가르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나라 개념에 대한 구속사적 관찰은 여기 밧모섬의 사도 요한에 의해 그려지고 있는 동일한 사상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게 되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한 교회의 설립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궁극적인 성취를 보았습니다. 밧모섬의 사도 요한이 바라보았던 환상적 계시는 이상 살펴보았던 원리의 최종적인 완성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는 앞서 1:6에서 이 사실을 언급한 바 있습니다.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1:6). 교회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하고 있습니다(20:6). 이제 신약시대에는 교회를 구성하는 성도들이 바로 '하나님께 봉사하는 제사장들의 나라'인 것입니다. 교회는 집합적으로는 나라이며, 개인적으로는 하나님께 대한 제사장들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온 우주에 걸쳐 유일하신 왕이신 그리스도의 주권적 지위를 계승하였으므로 세상 임들들 위에서 왕노릇하는 그 권세에 참여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희생적 죽음의 결과에 근거하여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으로서의 영광을 누립니다. 교회가 누리는 이 영광은 보편성을 가져서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함으로써 '선지자적 기능'도 담당하게 되는데, 이렇게 함으로써 교회는 '이방인을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장 나라'로서의 역할도 수행해 내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교회가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다는 데 대한 영광된 증거가 있게 되고, 자기 백성을 보호하시는 전능자 하나님의 왕적 권세에 참여함의 축복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영광의 배경에는 역시 예수 그리스도께서 감당하신 속죄 사역이라고 하는 위대한 역사가 놓여져 있습니다. 이것이 '일찍 죽임을 당하사'(5:9)라고 서술된 짧막한 표현을 통하여 매우 핵심적으로 묘사되었습니다. 교회가 얻는 모든 영광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가져다 준 은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한 마리 어린 양이 되셨습니다. 아버지의 모든 권세를 받으심으로 전능한 하나님이시요, 만군의 여호와이시며, 알파와 오메가가 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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