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들 설교 모음

[스크랩] 장수민 목사 구속사 성경연구- 하나님의 사랑은 복음의 원천

하나님아들 2018. 9. 28. 23:13

The English Bi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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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lasting God, King Eternal
영원하신 하나님, 영존하신 왕

 

 

John 3:16-21      16"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e and only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all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17For God did not send his Son into the world to condemn the world, but to save the world through him. 18Whoever believes in him is not condemned, but whoever does not believe stands condemned(has been judged) already because he has not believed in the name of God's one and only Son. 19This is the verdict: Light has come into the world, but men loved darkness instead of light(rather than the light) because their deeds were evil. 20Everyone who does evil hates the light, and will not come into the light for fear that his deeds will be exposed(should be exposed). 21But whoever lives by the truth comes into the light, so that it may be seen plainly that what he has done has been done through God."

everlasting a,n. 영원한, 영구한, 영원
eternal  a.  영원한, 영구한, 불멸의, 끝없는
condemn  vt. 심판하다, 비난하다, 책망하다
verdict  n. 정죄(定罪), (배심원의) 답신, 평결
in stead of I.  ~의 대신으로<=instead of>
expose  vt. 드러나다, 노출하다, 폭로하다


1 Timothy 1:15-17      15Here is a trustworthy saying that deserves full acceptance(This is a faithful saying, and worthy of all acceptation): Christ Jesus came into the world to save sinners--of whom I am the worst. 16But for that very reason I was shown mercy so that in me, the worst of sinners, Christ Jesus might display his unlimited patience(perfect patience) as an example for those who would believe on him and receive eternal life. 17Now to the King eternal, immortal, invisible, the only God, be honor and glory for ever and ever. Amen.

trustworthy a. 신뢰할 수 있는, 확실한 *
deserve  vt. ~할 가치가 있다, ~을  할만하다
acceptance n. 수령, 어음의 인수
worst  a. 가장 나쁜
mercy  n. 긍휼(矜恤), 자비, 연민, 고마움, 행운
display  vt. 보이다(demonstrate), 나타내다
unlimited  a. 끝없는, 무한한, 무제한의, 부정의
immortal  a. 썩지아니하는, 불사의, 불멸의
invisible  a,n. 보이지 아니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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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 TEXTS
Deuteronomy 33:27  Psalm  90:1-2  Romans 16:25-27   Hebrews 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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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3:16-21      16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7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하려 하심이라 18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19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20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21진리를 좇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Timothy 1:15-17   15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16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17만세의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세세토록 있어지이다 아멘

 

 

NIV 독해를 위한 2560 단어 정복 366일 과정
(58/366일차 = 400-406 개째 단어)


acceptance n. 수령, 어음의 인수
expose  vt. 드러나다, 노출하다, 폭로하다
immortal  a. 썩지아니하는, 불사의, 불멸의
invisible  a,n. 보이지 아니하는
trustworthy a. 신뢰할 수 있는, 확실한 *
unlimited  a. 끝없는, 무한한, 무제한의, 부정의
verdict  n. 정죄(定罪), (배심원의) 답신, 평결

 


하나님의 사랑은 복음의 원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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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3:16-2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진행해 나오신 이 두 주도적인 경향은, 인간이 빠져드는 모든 고통의 원인이 죄인 사실을 밝혀주었고, 따라서 진정한 구원자는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도래할 것이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드러내었습니다. 그래서 구원자에 대한 최종적인 이상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마 1:21)로 굳어졌습니다. 죄를 해결하는 사역을 수행하게 될 그가 바로 이스라엘의 진정한 구원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선지자들은 이런 일이 하나님의 은혜 역사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에 선물로 제공되어질 것이라고 예언해 나왔습니다. 그래서 이 소망의 날은 '기쁜 소식', 곧 복음(福音)의 도래를 가리켰습니다.

1. 하나님의 사랑은 복음의 원천

   요한복음 3:16-21 부분은 예수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인지 혹은 사도 요한의 신학적 논평인지의 여부를 판단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전자의 경우로 보는 것이 많은 지지를 받는 경향이 있으나 후자를 택해도 해석상에 있어서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본문의 구조를 본석해 보자면, 16-17절은 동일한 사상을 이중적으로 강조하여, 곧 17절은 16절을 재 진술하고 있고, 18-21절은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에 대해 갖는 세상의 이중적인 반응과 그 결과를 기술하고 있습니다.
   첫번째 부분에서 강조되고 있는 관점은 '사랑'이 하나님의 본성으로 제시되고 있는 사실에 대한 것입니다. 요한은 말하기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라고 했습니다. 신약성경 기자들 중에서 특별히 사도 요한은 하나님이 사랑이신 사실을 두드러지게 강조하였습니다. 그는 다른 곳에서 말하기를,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 4:8)고 했습니다. 계속해서 하나님의 이 사랑은 세상에 독생자를 보내신 데서 절정에 이르렀다고 했습니다(요일 4:9-10). 이와 똑같은 문장 구조가 이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복음의 역사를 집행하신 데에는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그 동기로 작용하고 있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성도들이 하나님께 대해 가지는 대표적인 관점은,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신 사실을 깨닫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만일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냐?"라고 묻는 일이 있게 된다면,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사랑의 하나님이시다"라고 하는 것이 대표적인 대답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실용적인 측면에서 나오는 것이지, 실제로 하나님의 존재가 이 사랑의 속성에 의해서만 대표되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 부분을 보다 정확하게 점검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신학적인 논의를 할 때에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연구하게 됩니다. 이때 계시에 입각하여 두 가지 방향을 취하게 되는데, 하나는 하나님께서 스스로를 칭하신 인격적 명칭에 입각하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연구합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속성 계시(屬性啓示)를 연구하는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의 속성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서 생각하는 데, 하나는 비공유적 속성에 대한 것이고, 다음으로 공유적 속성에 대한 것입니다. 비공유적 속성에는 하나님의 독립성(자존성), 불변성, 무한성, 완전성., 영원성, 무변성, 단순성 등등이 있고, 공유적 속성에는 하나님의 지식, 지혜, 선, 사랑, 거룩, 의, 진실, 주권 등등이 있습니다. 이런 분류는 우리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이해하기 위해서 나름대로 시도해보는 접근 방법론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사랑의 속성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의라고 하는 측면을 떠나서 생각하게 되면, 그 참된 의미를 알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것은, 진공 가운데서 되어진 일이 아니고, 죄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의의 속성과 결합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그냥 단순하게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니고, 그 받아야 할 형벌과 심판의 당위성과 관련하여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의 사랑으로서의 구원 행위를 말할 때에, 죄를 엄중히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엄위성을 동시에 부각시켰습니다(롬 11:22). 지금 사도 요한 역시 하나님의 사랑을 말함에 있어서 단순하게 그 사실만을 진술하는 것이 아니고, 심판(審判)이라고 하는 주제와 관련하여 그렇게 말하였던 것입니다. 그는 '멸망', '심판', '정죄' 등의 용어를 동일한 비례로 사용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감적인 측면에서 볼 때 이 사랑의 속성이 하나님의 존재를 인간에게 가장 두드러지게 전달해주는 요소로 나타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현상은 하나님의 속성들이 피차 우월과 비교의 관계를 가지는 데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순전히 우리 성도들에게 있는 연약성으로부터 초래되는 것일 뿐입니다.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처해 있는 그 상태와 관련하여 이 부분을 선호하는 데서 그와 같은 편견을 가지게 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순전히 현실적인 측면과 관련하여, 또한 실용적인 측면에서 이 사랑의 속성은, 성도들이 하나님 본성을 이해하는 일과 관련하여 가장 두드러지게 대두된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하나님이 사랑이신 사실을 제대로 알게 되는 것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계시의 모든 것이 되시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특별히 사랑이신 하나님의 본성이 이 세상 역사 속에서 실제화된 사건이 되어 성도들에게 전달되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정작 여기에서 중요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는 구속사를 통하여 사랑으로 계시되어져 나온 하나님의 계시를 완성하는 분이 되신다는 사실에 대한 것입니다. 요한의 표현법대로 말해보자면, 하나님은 당신이 사랑이신 사실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확증하신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본문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역시 이 사실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생각하게 될 때에 우선 떠오르는 인상과 관련하여서는 사랑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복음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사랑이신 사실을 선포하게 됩니다.

2. 복음의 구속사적인 성격

   이제 둘째 관점을 살펴봅니다. '독생자를 주셨으니'라는 말씀은, 복음 사역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주권 행위를 상기시켜주고 있습니다. 즉 복음의 구속사적인 성격이 확실하게 나타납니다. 우리가 구속사라는 표현을 사용할 때 두 가지 사실을 주목하게 됩니다. 하나는 복음의 내용이 갖는 구원사적인 성격이고, 다음은 이것을 주권적으로 주관해 나오신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여기서 '독생자를 주셨으니'라는 말씀은 이 두 가지 사실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의 복음 선포는 하나님의 이 주권적인 구속사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독생자를 주신 분'(16절)이시고, 곧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분'(17절)이십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 곧 역사 속으로 들어오시는 하나님의 개입은, 구약 당시 이스라엘에 있어서 구원을 의미하는 것이었기에 유일한 소망이었습니다. 구원은 인간들 속에 개입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입니다.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나타난 크고 작은 구원 역사들은 장차 이 일이 어떻게 최종적으로 나타날 것인가를 계시해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사와 왕들을 세우신 가운데 이스라엘을 침략국들의 약탈로부터 구원하신 것은, 구원 사역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주권 사역을 계시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안에 도입된 각종 제사법들은 하나님의 이 주권 사역이 어떻게 메시아의 사역을 통하여 완성될 것인가를 보여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진행해 나오신 이 두 주도적인 경향은, 인간이 빠져드는 모든 고통의 원인이 죄인 사실을 밝혀주었고, 따라서 진정한 구원자는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도래할 것이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드러내었습니다. 그래서 구원자에 대한 최종적인 이상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마 1:21)로 굳어졌습니다. 죄를 해결하는 사역을 수행하게 될 그가 바로 이스라엘의 진정한 구원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선지자들은 이런 일이 하나님의 은혜 역사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에 선물로 제공되어질 것이라고 예언해 나왔습니다. 그래서 이 소망의 날은 '기쁜 소식', 곧 복음(福音)의 도래를 가리켰습니다. 예를 들어, 다른 선지자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사야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있던 이스라엘이 장차 귀환할 것을 예고하는 가운데, 이 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우주적 주권이 드러날 것임을 말했습니다(사 40:9 41:27 61:1-3).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사52:7).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다고 해석하는 것은 신약 성경 모든 기자들의 의무였습니다. 이스라엘의 회복을 약속하는 모든 '기쁜 소식'의 예언들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전하는 것은 '실현된 기쁜 소식', 곧 복음을 선포하는 의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구속사를 통하여 복음과 관련한 이런 모든 내용이 계시되어져 나왔고, 또한 구속사를 통하여 이렇게 독생자가 세상에 들어오신 사실 안에서 복음은 최종적으로 성취되기에 이르른 것입니다.
   이러한 구속사를 가리켜 베드로는 오순절 날의 설교를 통하여 '하나님의 큰 일'로 묘사합니다(행 2:11). 이때 하나님의 큰 일로서의 구속사의 결론적인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초대 교회에 있어서 복음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 죽음, 부활 그리고 승천에 대한 것이었는데, 이때 이 복음은 구약 성경 예언들이 성취된 것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고 설명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복음과 그리스도는 동일한 것으로 해석되어졌습니다.

3. 복음의 핵심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사랑 개념 속에 나타난 복음의 구속사적인 성격에 대해서는 이쯤 살펴보기로 하고, 예수 그리스도는 복음의 핵심이 되신다는 사실과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에 대한 두 번째 주제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합니다.

   ⑴ 복음의 원천이신 예수 그리스도
   첫째, 예수 그리스도는 복음의 핵심이 되십니다. 이 사실을 강조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복음의 내용을 바르게 살펴보자는 의도인 것입니다. 비록 일부의 생각이긴 하지만 - 물론 이 일부는 대다수 군중일 수도 있는데 - 오늘날 복음은 그 내용이 많이 변질된 경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변질된 경향으로 말미암아 복음은 그 절대적인 성격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복음이 진정한 복음이기 위해서는 그 내용 혹은 성격에 있어서 구원(救援)이어야 합니다. 이것의 좀더 사실적인 의미는 죄로부터의 구원입니다. 복음의 완성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들어오셔서 행하신 일은 새로운 종교나 어떤 독특한 철학체계를 창시하신 일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도래시키셨습니다. 현존하는 세상에 새로운 질서의 세계를 가져오신 것입니다. 이 새로운 질서의 세계는 죽음과 사망으로 대표되는 이 세상의 질서 세계에 속한 사람들을 구원하여 영생에 이르게 하는데, 이를 위하여 죽음과 사망의 원인이었던 죄의 문제를 일거에 해소시켜버립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가져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은, 비록 이것이 세부적인 모습에 있어서는 어떤 다양성을 띠고 있을지라도, 종합적으로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는 속죄의 사역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져오신 하나님의 나라적인 구원은 성도를 죄의 결과로부터 해방시킵니다. 성경에서 죄의 결과는 저주와 심판(17절 막 16:16 요12:47 롬 5:21), 죽음(롬 1:32 6:23 고후 7:10 약 5:2)과 진노(롬 2:5 5:9 살전 5:9 엡 2:3)등으로 설명되는데, 예수 그리스도는 이러한 죄의 결과들로부터 성도를 해방시키는 것입니다. 성도는 더 이상 하나님의 원수가 아니며(롬 5:10), 오직 용서받은 자들입니다(행 2:38 10:43). 이 일은 장차 성도가 죽은 이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의 역사 속에서 이루어진 완성의 일입니다.

   ⑵ 구원의 성격은 죄로부터의 해방
   하나님의 나라적인 구원의 두번째 측면은 '죄의 권세로부터의 해방'입니다. 이는 앞의 첫번째 사실로부터 나오는 것이요, 동시에 그것을 보증하는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성도가 죄의 권세로부터 해방된 사실은 그들의 생명이 새 생명의 성격으로 나타나는 것을 통하여 일상 생활 속에서 경험되어집니다(롬 6:5).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도들의 모든 옛 생명을 지고 무덤에 장사지내셨기 때문에 그들은 모든 악한 행실을 벗어버린 자들이 되었습니다. 동시에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신 바 되었기 때문에 이제 새 사람으로서의 그리스도를 옷 입고 사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를 옷 입고 살아가는 이 삶의 특성은, 성도들이 현 세상 속에서 죄의 권세를 이기며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을 통하여 역사적 경험이요, 역사적 실제가 되어지게 됩니다.
   이러한 원리를 따라, 복음은 성도들의 삶이 특별한 양식으로 나타날 수 있게 합니다. 이 특별한 양식의 삶이 무엇이냐 하면, 이는 하나님의 나라 백성다운 삶을 가리키는 것인데, 한 마디로 말하여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인 것입니다(마 6:33). 구원의 보증의 영이 되시어 친히 성도들의 인격 안에 내재하시는 성령께서 그들의 삶이 이런 양식으로 전개되어 나가도록 부단히 그들 속에서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성령을 쫓아 행하라는 권면을 듣게 되고(갈 5:16-17), 또한 새 사람으로 옷 입으라는 요구(엡 4:22-24),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고(엡 4:30), 소멸치 말라는 명령(살전 5:19)을 받는 것입니다.
   이처럼 복음이 진정으로 복음이기 위해서는 이것의 성격이 절대적으로 구원 개념을 가져야 하고, 이 중요한 사실을 떠나게 되면 어느 누구도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라고 말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성경 계시대로 믿는 사람이라면, 이 사람은 다른 무엇에 앞서 그 신분이 하나님의 백성의 자리에 있게 된 사람임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사람은 하나님과의 교제에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더 이상 하나님은 무서운 심판주가 되시지 않습니다. 친근한 하늘 아버지이신 것이요, 자녀의 필요를 친히 채우시는 자애로운 아버지가 되십니다. 지금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이 영생(永生)을 말씀하셨다는 사실을 주목하여야 합니다. 그냥 단순히 "독생자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천당가고, 거기에서 영원히 산다"는 정도로 이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닙니다. 복음에 이런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예수님께서 여기에서 하신 말씀은 그 의미가 좀더 구체적이고 적극적입니다.    

출처 : 주님의 뜰-행원소구
글쓴이 : bloomy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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