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들 설교 모음

[스크랩] 장수민 목사 구속사 성경연구-삼상2:1-10-한나의 구속사적 신앙

하나님아들 2018. 9. 28. 23:11

The English Bi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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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of God : Rock
반석이신 하나님

 

 

Deuteronomy 32:1-4      1Listen, O heavens, and I will speak; hear, O earth, the words of my mouth. 2Let my teaching fall like rain and my words descend like dew, like showers on new grass, like abundant rain on tender plants. 3I will proclaim the name of the LORD. Oh, praise the greatness of our God! 4He is the Rock, his works are perfect, and all his ways are just. A faithful God who does no wrong, upright and just is he.

descend  vi. 맺히다, 내리다, 내려가다
dew  n,vi,vt. 이슬방울, 이슬이 내리다(적시다)
tender  n. 감시인, 돌보는 사람, 간호인, 부속선


1 Samuel 2:1-3      1Then Hannah prayed said: "My heart rejoices in the Lord; in the Lord my horn is lifted high. My mouth boasts over my enemies, for I delight in your deliverance. 2There is no one holy like the Lord; there is no one besides you; there is no Rock like our God. 3Do not keep talking so proudly or let your mouth speak such arrogance, for the Lord is a God who knows, and by him deeds are weighed.

delight  n. 기쁨
boast  vi. 자랑하다
beside  prep. -외에, -밖에 *
proud  a.  교만한, 거만한
weigh  vt. 무게를 달다


Psalm 18:2-3      2The LORD is my rock, my fortress and my deliverer; my God is my rock, in whom I take refuge. He is my shield and the horn of my salvation, my stronghold 3I call to the LORD, who is worthy of praise, and I am saved from my enemies.

deliverer  n. 건지는 자, 구조자, 석방자
refuge  n. 피난, 도피, 보호, 피난처, 도피처
shield  n. 방패, 보호물(자), (방패 모양의)무늬
horn  n.  뿔
stronghold n. 산성, 요새, 본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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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 TEXTS
Deuteronomy 32  2 Samuel 22  Psalm 62 
Romans 9:30-33  I Corinthians 10:1-4  1 Peter 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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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uteronomy 32:1-4   1하늘이여 귀를 기울이라 내가 말하리라 땅은 내 입의 말을 들을지어다 2나의 교훈은 내리는 비요 나의 말은 맺히는 이슬이요 연한 풀 위에 가는 비요 채소 위에 단 비로다 3내가 여호와의 이름을 전파하리니 너희는 위엄을 우리 하나님께 돌릴지어다 4그는 반석이시니 그 공덕이 완전하고 그 모든 길이 공평하며 진실무망하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정직하시도다      1 Samuel 2:1-3   1한나가 기도하여 가로되 내 마음이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를 인하여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을 인하여 기뻐함이니이다 2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니 이는 주밖에 다른 이가 없고 우리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으심이니이다 3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말 것이며 오만한 말을 너희 입에서 내지 말지어다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보시느니라      Psalm 18:2-3   2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3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

 

 

 

NIV 독해를 위한 2560 단어 정복 366일 과정
(64/366일차 = 442-448 개째 단어)


beside  prep. -외에, -밖에 *
boast  vi. 자랑하다
deliverance n. 구원, 해방 **
deliverer  n. 건지는 자, 구조자, 석방자
horn  n.  뿔
proud  a.  교만한, 거만한
weigh  vt. 무게를 달다


한나의 구속사관적인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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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상 2:1-10

 

   대적 브닌나로부터 격동을 받아 큰 번민에 빠져야 했던 한나는 이제 그녀로부터 벗어남으로 구원을 받아야 했습니다. 물론 구원은 오직 여호와께로 말미암습니다. 또한 여호와께로부터 임하는 구원이 아니고서는 궁극적인 해결이 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에 있어서 구원자는 오직 여호와이십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주심으로 브닌나의 경멸을 벗어나게 하셨을 때, 한나는 이것을 구원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여호와께서 당신의 백성 한나를 구원하셨습니다. 여호와는 지식(知識)의 하나님으로(2:3), 자기 백성의 모든 처지를 아시며, 심지어 그 속에 품은 마음의 생각까지도 능히 파악하는 분이십니다(렘 17:9-10). 이 무한한 지혜와 권세로써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며, 이를 위하여 부지런히 자기 백성들의 상태를 성찰하십니다. 죽이고 살리는 권한이 오직 여호와께 있는 법이고, 이러한 여호와께서 한나에게 구원을 베푸실 때에 잉태치 못하던 자로 일곱까지 낳게 하는 분이십니다(2:5). 당시 한나의 신인식(神認識)이 이러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한나는 여호와께 매달리게 되었고, 자기를 끝까지 의뢰하는 자를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을 간절히 소망하였습니다. 아이를 얻음으로, 브닌나의 압박으로부터 구원을 받고자 갈망하는 한나의 기도는, 자기 백성의 억울함을 돌아보시겠다고 약속하신 여호와의 신실하심에 근거하여 사무엘을 얻는 기쁨으로 열매 맺어졌습니다.

1. 구속사의 신기원적인 인물 사무엘의 출생

   사무엘과 한나에 대해서 생각하려 하면, '서원 기도로 얻은 아이',라던가, 또는 '자식을 하나님께 바친 수준 높고 헌신적인 신앙' 등의 전통적인 이해가 우선 앞서게 됩니다. 그렇지만 이 사건을 이렇게 이해하게 되면 이는 성경을 크게 오해한 것입니다. 성경을 오해하게 되면 이미 그때부터 구속사를 운반하는 자라고 하는 영광스러운 자리로부터 이탈하게 될 뿐아니라, 도리어 하나님의 그 거룩한 경륜을 훼방하는 처지에로 전락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이 점을 조심스럽게 생각해야 합니다. 이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생각해 봅시다. 한나는 앞서 자신이 서원했던 바에 따라 사무엘을 여호와께 드렸는데, 이에 따라 사무엘은 어려서부터 엘리의 양육을 받으며 성막에서 자라게 됩니다(1:26-28). 여호와의 구속사에 쓰임 받는 도구가 될 것을 기대하며 한나는 어린 사무엘을 엘리 대제사장의 양육에 맡겼던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사무엘은 성막에서 양육되게 되었고, 이후 어느 날 사무엘은 여호와의 음성을 듣고 부르심을 받아 본격적으로 선지자의 직무를 시작하게 됩니다(3장).
   우선 여기서 한나가 어떻게 해서 어린 사무엘을 여호와의 전에 드릴 수 있었는지를 잠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한나에게 있었던 생각을 살펴보는 것은 이 부분을 바르게 이해하려 함에 있어서 중요한 기초가 됩니다. 한나는 평소에 구속사에 대한 탁월한 이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사실은 한나가 사무엘을 여호와께 드리던 날에 불렀던 전체 찬양의 핵심이 하나님께서 앞으로 행하실 이스라엘의 구원에 대한 것이며, 이를 위하여 구원자를 세우시게 될 것이라는 사실로 나타나고 있는 데서 확실하게 드러납니다(2:1-10).
   여기서 '이스라엘을 위한 여호와의 구원'을 내용으로 하는 이 한나의 찬양 주제가, 지금 한나가 사무엘을 여호와 앞에 드리는 일과 연결되고 있다는 데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지금 한나는 여호와께서 장차 행하실 '이스라엘의 구원역사', 이것과 사무엘이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다는 사실을 내다보고 있는 것입니다. 한나는 어떻게 해서 이러한 구체적인 구속사관을 가질 수 있었는가? 이 문제와 관련하여 한나가 아이를 얻으려고 여호와께 기도하게 되었던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한나는 아이를 가지지 못한 사실 때문에 브닌나로부터 수모를 겪어야 했습니다. 한나에게 있어서 브닌나는 사실상의 대적(對敵)이었습니다(1:6). 브닌나는 자신의 우월한 조건 때문에 교만해져서 가난한 자를 진토와 거름더미에로 더더욱 빠트리우는 것과도 같은 짓을 자행한 것입니다(2:8). 한나가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이었던 사실을 고려하면, 이와 같은 브닌나의 태도는 사실상 여호와를 대적하는 행위와 다름이 없었습니다(2:10). 이것이 한나가 브닌나를 대적으로 지칭한 이유입니다.
   대적 브닌나로부터 격동을 받아 큰 번민에 빠져야 했던 한나는 이제 그녀로부터 벗어남으로 구원을 받아야 했습니다. 물론 구원은 오직 여호와께로 말미암습니다. 또한 여호와께로부터 임하는 구원이 아니고서는 궁극적인 해결이 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에 있어서 구원자는 오직 여호와이십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주심으로 브닌나의 경멸을 벗어나게 하셨을 때, 한나는 이것을 구원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여호와께서 당신의 백성 한나를 구원하셨습니다. 여호와는 지식(知識)의 하나님으로(2:3), 자기 백성의 모든 처지를 아시며, 심지어 그 속에 품은 마음의 생각까지도 능히 파악하는 분이십니다(렘 17:9-10). 이 무한한 지혜와 권세로써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며, 이를 위하여 부지런히 자기 백성들의 상태를 성찰하십니다. 죽이고 살리는 권한이 오직 여호와께 있는 법이고, 이러한 여호와께서 한나에게 구원을 베푸실 때에 잉태치 못하던 자로 일곱까지 낳게 하는 분이십니다(2:5). 당시 한나의 신인식(神認識)이 이러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한나는 여호와께 매달리게 되었고, 자기를 끝까지 의뢰하는 자를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을 간절히 소망하였습니다. 아이를 얻음으로, 브닌나의 압박으로부터 구원을 받고자 갈망하는 한나의 기도는, 자기 백성의 억울함을 돌아보시겠다고 약속하신 여호와의 신실하심에 근거하여 사무엘을 얻는 기쁨으로 열매 맺어졌습니다.
   그런데 한나는 이 일이 자기 한 사람에게만 국한되지 아니하고, 궁극적으로 여호와의 백성 전체에게 확장되어지는 것이라고 예언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근본적으로 여호와의 언약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언약 백성이요, 하나님께서 친히 창조하신 그의 나라입니다. 이 나라가 지금 어이없게도 이방국가들에 의하여 지배받는 비극적인 상태로 떨어졌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버리신 증거가 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여호와는 언약의 하나님이시요, 그 언약을 영원히 성취하실 수 있는 전능자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는 한번 약속하시면 결코 변역치 않는 분이시기에 그처럼 여호와가 되시는 분이신 것이며, 따라서 야곱의 자손들이 소멸될 까닭이 없습니다(말 3:6).
   한나는 사실 평범한 한 사람의 이스라엘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해 있었던 상태와 상대적으로 비교해 볼 때 특별한 구속사관(救贖史觀)을 가진 가운데 여호와를 신실하게 신앙하는 여인이었다는 사실을 주목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한나가 서원한 바를 어기지 아니하고 사무엘을 여호와께 드릴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의 약속을 끝까지 소망하는 신앙의 신실성에 입각하여 되어진 일이었습니다. 이런 사실을 주의 깊게 보지 못하면, '한나가 서원 기도를 드리니까, 하나님이 응답하셨다. 그러므로 아이를 갖지 못하는 사람은 한나처럼 서원 기도를 드려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꼼짝없이(?) 응답하실 것이다'라는 식으로 잘못 해석하게 되는 것입니다.

2. 사무엘 출생 당시의 이스라엘의 형편

   이 관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뒤를 돌아보는 관점'에서, 한나가 살던 당시 이스라엘은 사사 시대로 분류할 수 있는 시점에 서 있었습니다. 이 시기는 이제 이스라엘이 신정국가로 들어가기까지의 시대를 연결하는 과도기적인 시기에 해당합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구원자로서의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 것은 여호수아의 놀라운 영적 지도력에 의해서였습니다. 율법의 지도자로 부각된 모세의 인도 하에서 이스라엘은 불순종을 반복적으로 드러냈지만, 은혜의 지도자인 여호수아의 인도 하에서는 그러한 상황조차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권능이 무조건 저희를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들이셨던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이 일을 위하여 세움을 입은 특별한 은사자였습니다. 무엇보다 여호수아는 '지혜의 영'이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민 27:18-20 신 34:9). 그리고 이 지혜는 그가 여호수아서 23-24장에서 행한 일련의 선지자적 설교를 통하여 잘 나타납니다. 이곳에서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구원 역사의 사실(事實)을 진술'하기보다는, '그 의의(意義)와 목적(目的)을 알려줌'으로 선지자적인 직무를 수행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행위로서의 구원 역사는, 이후 선지자들을 통하여 설명 계시가 주어짐으로, 앞서 수행된 하나님의 구속사의 의와 목적이 보다 분명하게 알려지게 됩니다.
   여호수아는 그 땅을 완전히 정복하지는 못한 채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가령 가나안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는 예루살렘은 여전히 정복되지 못했고 여부스 족속이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이 도시가 이스라엘의 점령 하에 속하게 된 것은 먼 훗날 다윗의 지도력에 의해서였습니다(삼하 5:6-10). 따라서 여호수아는 죽음을 앞둔 시점에서 남은 정복 사역의 완수를 위해서는 여호와를 더욱 굳게 의지하여야 할 것이라고 유언함으로 생명을 마치는 마지막 순간까지 백성에게 구속사를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물론 비록 위대한 지도자 여호수아를 잃었을지라도 처음 얼마 동안 이스라엘은 그 신앙을 견고히 유지했습니다. 여전히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유다 지파의 강한 지도력에 의존하여 가나안 족속들과의 전쟁에 용기 있게 임했습니다. 여호수아의 죽음 이후 여호와께서는 유다 지파를 사용하심으로 이스라엘 전체 민족을 인도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족속들과의 전쟁을 위하여 여호와의 지도를 구했을 때, 여호와께서 유다 지파를 지목하심으로 이 사실을 분명히 하셨습니다(삿 1:2). 유다의 승리는 사실상 이스라엘 전체를 위한 승리였고, 이는 여호와께서 저희와 함께 하셨던 데서 얻을 수 있었던 축복이었습니다(삿 1:4,19,22).
   그러나 얼마간의 시간이 흘러 지파간의 연합에 분열이 틈타기 시작하면서, 종교적 결속력에 흠이 가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가나안 족속을 몰아내지 못하는 현상이 점차적으로 많아져 갔습니다(삿 1:19,27-36). 이런 현상은 여호수아의 사후 세대들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다른 신들을 섬기기 시작하면서부터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하였습니다(삿 2:8-10). 이즈음 이스라엘은 이미 출애굽 이후 세대들로 세대 교체가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체험하지 못한 이들은 점차 신앙으로부터 멀어지게 됩니다. 심지어 배교를 서슴지 않는 단계로까지 나아갔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이러한 이스라엘의 배교를 적절히 징계하셨는데, 즉 여호와께서 저희를 보호하시는 손길을 그치신 것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가나안 족속들이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위기들이 자주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가나안 족속을 진멸할 수 있기는 고사하고 도리어 그들에 의하여 진멸당할 수도 있는 위기에 놓여지게 되었습니다. 사무엘이 태어날 당시 이스라엘의 큰 대적은 남쪽 해안 평지에서 그 세력을 뻗치고 있었던 블레셋이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법궤를 빼앗기는 수치를 안겨다 준 민족이 바로 이 블레셋이었던 것입니다(삼상 4:1-11). 당시 블레셋은 철과 관련된 산업을 독점하였고, 이는 이스라엘이 전쟁 무기는커녕 농사와 관련된 농기구들조차도 제작하지 못할 정도로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었습니다(삼상 13:19-21). 구속사의 구조 속에서 블레셋은 이스라엘의 큰 대적으로 나타납니다. 단 지파가 자기들에게 할당된 지역을 떠나 새로운 영토를 찾아 나선 것도 다 이 블레셋의 강성한 세력을 이겨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이제 다시금 구원을 받아야 하는 처지로 전락해버렸습니다.

3. 하나님의 주권적 구원 역사를 확신하는 한나

   이제 한나가 장차 이스라엘이 받게 될 구원과 사무엘의 출생을 연결시킨 사실을 '미래를 내다보는 관점'에서 점검해 봅니다. 지금 사무엘이 태어나던 때의 이스라엘은 확실하게 배교한 상태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스라엘은 여전히 여호와의 언약 백성이었습니다. 구원은 이스라엘의 신실성의 여부에 달려 있지 않고, 오직 여호와의 언약적 사랑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이 구원을 체험적으로 맛본 요나는 말하기를 '구원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나이다'(욘 2:9)라고 고백했습니다. 이 궁극적 구원의 확신은, 여호와께서 친히 세우신 자기 언약에 신실하신 데서 얻어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어떤 경우에도 언약을 파기치 않으십니다. 사사기 2:1-5의 '보김 사건'에서도 "내가 너희에게 세운 언약을 영원히 어기지 아니하리니"라는 말씀을 전제하시고, 이후에 비로소 언약적 심판을 말씀하신 사실을 보게 됩니다. 구속사에서 항상 심판은 종개념(種槪念)이고 여전히 구원이 유개념(類槪念)으로 우뚝 서 있습니다. 바로 이 여호와의 주권적 구원 역사에 대한 찬양이 한나에 의해서 선포됩니다.
   한나는 이스라엘의 구원을 소망합니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타락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구속사를 진행하십니다. 이스라엘은 타락의 깊은 수렁 속으로 들어갔지만, 그 배후에서 하나님은 여전히 일을 진행하고 계셨습니다. 사무엘의 출현은 이와 같은 여호와의 구원 역사로 말미암습니다. 이스라엘을 끝까지 구속하시는 하나님의 의로우신 행동은, 당신의 구원 역사를 수행할 자로 사무엘을 세상에 내시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지금 비록 이스라엘의 전체 지파가 타락으로 일관했을지라도, 하나님은 구속사의 절정인 메시아 예수님의 왕권으로 연결되는 '다윗 왕조'를 세우시는 역사를 여전히 주관해 나가실 것입니다. 사사시대 때 유다 지파는 이스라엘을 위한 구원의 도구였습니다. 이 일은 미래에도 계속되어집니다. 그리하여 사무엘로 하여금 유다 지파 사람인 다윗에게 기름을 붓게 하셔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심으로 본격적인 '신정국가의 시대'를 여실 것입니다. 한나의 찬양은 이 부분에서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 하늘 우뢰로 그들을 치시리로다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기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10절).
   여기서 '자기 왕'이란 다윗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위하여 다윗을 구원자로 세우십니다. 엘리 대제사장의 가문의 타락으로 대표된 이스라엘의 배교가 하나님의 언약을 취소시키지 못합니다. 사사시대 때 반복적으로 나타났던 불순종과 배교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은 여전히 당신의 일을 행하셔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섭리의 역사를 진행하고 계셨습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배교와는 상관없이 여전히 당신의 큰 일을 진행하시니, 이를 위하여 사무엘을 세우사 다윗에게 기름을 붓게 하십니다. 지금 한나는 이 사실을 찬양하였습니다. 이제 사무엘서 3장을 통하여 여호와의 신실하심이 사무엘의 등장을 통하여 어떻게 구체적으로 나타나게 되었는가를 보게 될 것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동일한 상황의 반복 속에서 이 시대의 타락한 교회들로 인하여 마음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현대적 남은 자들은 큰 위로를 받을 것입니다. 비록 대다수 교회들이 과거 이스라엘의 전철을 밟아 집단적으로 배교의 길로 달음박질하여 간다 할지라도, 자기 시대의 타락을 고통스러워하는 통증이 그 심령에 있음으로 인하여 자신의 신분이 무형 교회에 속한 자인 증거를 가진 성도들로 하여금,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고대하는 소망 속에서 자기의 길을 묵묵히 가게 하는 큰 증거와 능력이 될 것입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의 반복되는 불순종과 타락에도 불구하고, 사무엘과 다로 귀속시키신 여호와의 자기 열심은, 훗날 궁극적인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가운데 교회를 세우신 구속사를 통하여 절정에 달하였습니다. 따라서 교회는 창세 전에 예비하신 후사됨의 영광에 참여하는 축복을 받기로 선택된 백성들의 현대적 모임인 것입니다. 물론 이 교회 역시 역사의 흐름 속에서 다시금 타락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계속되고 있으며 효력이 있습니다. 따라서 제아무리 이 시대의 제도권 교회들이 다수의 논리로 합법적인 타락의 길을 갈지라도, 결코 미혹되지 않는 영성을 발휘하면서 적은 무리로서의 고통을 기꺼이 인내(忍耐)하는 자들의 신앙(信仰)에 의하여(눅 12:32 13:23), 참 교회의 모습은 그 태도(態度)를 의연히 드러내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기 백성인 교회를 구원하신 이 시대의 하나님은, 과거 사무엘의 시대에 자기 백성을 돌보신 바로 그 하나님과 동일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출처 : 주님의 뜰-행원소구
글쓴이 : bloomy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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