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nglish Bible -------------------------------------------- The fruit of Spirit : Love 성령의 열매; 사랑
Luke 6:43-45 43"No good tree bears bad fruit, nor does a bad tree bear good fruit. 44Each tree is recognized by its own fruit. People do notpick figs from thornbushes, or grapes from briers. 45The good man brings goodthings out of the good stored up in his heart, and the evil man brings evil things out of the evil stored up in his heart. For out of the overflow of his heart his mouth speaks.
recognize vt. (아나니), 인정하다, 알아보다 thornbush n. 가시 돋친 과목, 가시나무 덤불 brier n. 찔레나무, 들장미, 브라이어 나무 store up I ∼ 을 쌓다, ∼ 을 저장(축적)하다
Galatians 5:19-23 19The acts of the sinful nature are obvious: sexual immorality, impurity and debauchery; 20idolatry and witchcraft; hatred, discord, jealousy, fits of rage, selfish ambition, dissensions, factions 21and envy; drunkenness, orgies, and the like. I warn you, as I did before, that those who live like this will not inherit the kingdom of God. 22But the fruit of the Spirit is love, joy, peace, patience, kindness, goodness, faithfulness, 23gentleness and self-control. Against such things there is no law.
obvious a. 현전한, 명백한 immorality n. 부도덕, 난잡함, 음란, 외설, 부도덕 impurity n. 더럽다, 불결, 불순, 음란, 혼합물 debauchery n. 호색, 방탕, 유혹 witchcraft n. 술수, 마법, 마력, 매력 hatred n. 원수, 증오, 혐오 discord n,vi. 분쟁, 불일치, 불화하다 selfish a. 이기적인, 자기 본위의, 제멋대로의 dissension n. 분리, 의견의 차이, 충돌, 불화 faction n. 이단, 당내의 당, 도당, 당파, 파벌 patience a. 오래 참음, 인내, 헌자하는 카드 돌이 orgy n. 방탕, 진탕마시고 떠들기, 법석대기 patience a. 오래 참음, 인내, 헌자하는 카드 돌이 drunken a. 술취함, 술고래의 goodness n. 양선, 좋음, 선량함, 미덕, 친절, 신 faithful a,n. 풍성, 성실한, 신뢰할 수 있는, 정확한 gentleness n. 온유, 친절, 정다움, 온순
Ephesians 5:8-11 8For you were once darkness, but now you are light in the Lord. Live as children of light 9(for the fruit *of the light consists(of the spirit) in all goodness, righteousness and truth) 10and find out what pleases the Lord. 11Have nothing to do with the fruitless deeds of darkness, but rather expose them.
consist in I 에 있다, ∼에 존재하다 expose vt. 책망하다
----------------------------------------------------------------- RELATED TEXTS Psalm 1, 112 Isaiah 27:2-3 John 15:6 Rome 7:1-6 -----------------------------------------------------------------
Luke 6:43-45 43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44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 45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의 가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Galatians 5:19-23 19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21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22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Ephesians 5:8-11 8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9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10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11너희는 열매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NIV 독해를 위한 2560 단어 정복 366일 과정 (67/366일차 = 463-469 개째 단어)
debauchery n. 호색, 방탕, 유혹 discord n,vi. 분쟁, 불일치, 불화하다 dissension n. 분리, 의견의 차이, 충돌, 불화 immorality n. 부도덕, 난잡함, 음란, 외설, 부도덕 obvious a. 현전한, 명백한 orgy n. 방탕, 진탕마시고 떠들기, 법석대기 witchcraft n. 술수, 마법, 마력, 매력
빛으로서의 성도 ------------------- 엡 5:8-11
육체의 소욕을 다스리고 절제하는 능력이 어두움의 일에 속한 자들에게는 도무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절제의 능력은 근본적으로 성령의 사역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절제의 은사를 성령의 충만, 성령의 능력, 성령의 열매들 중에서 가장 귀하고 값지며 대표적인 사역으로 드러냅니다(행 24:25 갈 5:23). 물론 성령으로 말미암는 이 절제의 의미는 육체의 소욕을 다스리는 능력을 가리키는 것이지, 수도원 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금욕(禁慾)의 의미는 아닙니다. 양자의 차이를 좀더 명확하게 구분한다면, 전자는 인간이 가진 본성은 인정하되 그 한계를 넘어가려는 욕구를 다스린다는 의미이고, 후자는 인간에게 있는 기본적인 본성 그 자체까지도 말살할려고 하는 행위와 관련합니다.
1. 전에는 어두움, 이제는 빛
본문 전체의 핵심은 성도들이 빛으로서의 삶을 전개해 나가야 한다는 데 있습니다. 따라서 본문은 성도가 이미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선포하는 직설법에 입각하여, 그처럼 구원을 받은 자들에게만 요구되어지는 명령법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8절은 헬라어의 독특한 문장 구조인 '전에는.....이제는' 도식 형태를 보여줍니다. 주 안에 있기 전에 성도는 어두움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주 안에서 빛입니다. 여기 '빛'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 (포스)'입니다. 영어에서 'photograph'의 단축형인 'photo'는 빛, 사진'등의 의미를 가지는데, 바로 여기 헬라어 '포스'로부터 파생된 것입니다. 빛의 이미지는 매우 밝고 깨끗합니다. 순결, 희락, 진실, 소망, 사랑, 헌신, 화평, 온유, 봉사, 진리, 절제 등등의 인상을 받습니다. 반대로 어두움은 침울하고 컴컴한 인상을 주니, 곧 거짓, 술수, 사기, 교만, 지배, 착취, 아첨, 타락 등등으로 묘사됩니다. 이런 까닭에 사단은 '흑암의 권세자'로 묘사되고 있으며(골 1:13), 스스로를 빛인 체하기 위하여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려 하고 의의 일군인 척합니다(고후 11:14-15). 여기서 어두움은 성도가 구원 받기 전의 영역에서 살아가던 삶의 모든 형태를 가립니다. 그러므로 '어두움의 일'에 대한 또 다른 묘사는 '육체의 일'입니다. 이 육체의 일은 현저(顯著)하여 우리의 일상사 속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방자하게 자행되어집니다. 이런 생활 태도로는 도무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합니다(갈 5:19-21). 육체의 소욕을 다스리고 절제하는 능력이 어두움의 일에 속한 자들에게는 도무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절제의 능력은 근본적으로 성령의 사역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절제의 은사를 성령의 충만, 성령의 능력, 성령의 열매들 중에서 가장 귀하고 값지며 대표적인 사역으로 드러냅니다(행 24:25 갈 5:23). 물론 성령으로 말미암는 이 절제의 의미는 육체의 소욕을 다스리는 능력을 가리키는 것이지, 수도원 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금욕(禁慾)의 의미는 아닙니다. 양자의 차이를 좀더 명확하게 구분한다면, 전자는 인간이 가진 본성은 인정하되 그 한계를 넘어가려는 욕구를 다스린다는 의미이고, 후자는 인간에게 있는 기본적인 본성 그 자체까지도 말살할려고 하는 행위와 관련합니다. 금욕주의는 성령님의 능력과 지도를 벗어나 자의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려는 태도로 분류됩니다. 실례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느 한 부부가 있어 피차 상대방과 합하여 한 몸을 이루며 살아가는 것은 본성의 일인 것이고, 이는 하나님의 창조 원리에 참여하고 그것을 누리는 의미를 가집니다. 여기에 음욕과 탐심이 틈타 다른 상대를 생각하는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때 성령께서 이와 같은 육체의 소욕을 다스리시므로 능히 절제하게 하십니다. 이러한 때에 빛의 열매는 성립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예 혼인심 그 자체를 금욕한다고 봅시다. 이는 본성 그 자체를 말살하는 행위인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신 생육의 법칙을 거스르는 태도인 것입니다. 이런 것을 가리켜 감히 성령의 역사 운운하게 되면 하나님의 이름을 먕령되게 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금욕이 아닌 절제의 차원에서 빛의 기능을 수행합니다. 성도는 범사에 성령의 인도를 힘입어 육체의 소욕을 능히 다스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빛의 풍성한 열매를 맺는 생활 태도를 견지합니다. 그의 인생이 지나가는 행적마다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운반되어짐으로 그 도도(滔滔)한 맵시와 모양을 드러냅니다. 성도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 거기에서는 하나님께서 내신 진리가 밝히 드러남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주인(主人)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절대적으로 충성하는 신실한 종의 태도가 발견되어지며, 하나님의 나라 백성된 기본 의무에 충실키 위하여 교회의 한 지체의 자리를 이루는 일에 진지하게 참여하는 영적인 능력이 행사되어지는 것입니다.
2. 빛의 세 가지 특성
바울은 9절에서 세 가지 착한 행실을 구체적으로 제시합니다. 영어역본들은 이 부분을 공통적으로 괄호로 처리하면서 '빛의 열매.....(for the fruit of the light consists.....)'로 번역했으나, KJV의 경우 '성령의 열매.....(for the fruit of the Spirit.....)'로 번역했습니다. 사본상의 차이가 이와 같은 구별을 가져왔으나 의미를 해석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으며, 오히려 의미를 바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빛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사실 빛의 열매와 성령의 열매는 동일한 의미이고, 갈라디아서의 경우 '성령의 열매'라는 표현을 선호합니다(갈 5:22-23). 성도가 빛의 열매를 맺는 것은 성령의 인도를 받을 때에 가능한 것이며, 이는 성령의 열매와 다르지 않습니다.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제시한 성령의 열매가 아홉 가지 종류로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듯이, 여기 빛의 열매 또한 세 가지 - 착함, 의로움, 진실함 - 로만 한정되지 않을 것입니다. 바울은 성도에게 빛의 열매를 맺으라고 장려함에 있어서 대표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을 제시했을 뿐입니다. 구체적으로 살펴봅니다. 첫번째 빛의 열매는 '착함'입니다. 이 단어는 선함의 의미로 이해하면 원의(原意)에 좀더 가깝게 접근한 것이 됩니다. 그러기에 갈라디아서 5:22에서는 양선(良善)으로 좀더 정확하게 번역되었습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지 아니하는 착하고 선량한 성품을 가리킵니다. '의로움'은 두번째 빛의 열매입니다. 이 단어는 일반적으로 의, 정직, 정의, 공의 등등으로 번역됩니다. 이 단어의 의미를 분명하게 밝혀주는 좋은 실례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장차 성령께서 오셔서 행하실 세 가지 중심적인 사역을 제자들에게 들려주시면서,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 16:8)고 하셨고, 계속해서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라고 하심으로, 당신은 승천하심으로 성부께 가실 수 있을 만큼 의로운 분이시라고 풀이하셨습니다(요 16:10).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다웁게 공생애의 삶을 사신 - 사역을 완성하신 - 의로운 분이셨습니다. 바로 이 동일한 단어가 여기서 사용된 것입니다. 따라서 본문의 의로움이란, 성도가 인생길에 있어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하나님을 향하여 똑바로 나아가는 옳고 곧은 모습을 가르칩니다. 세번째로 제시된 빛의 열매는 '진실함'입니다. 이 단어는 '진리'(요 1:14), '진정'(요 4:24)등의 의미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속임, 위선, 거짓, 사기 등등의 세상적인 개념과 정반대의 자리에 놓입니다. 빛의 자녀인 성도는 무엇보다 그 신앙고백이 진실한 사람입니다. 가령 예수 그리스도가 만왕의 왕이시오 전능한 하나님이시라고 믿고 있는 바에 따라 평생에 걸쳐서 그분을 자신의 주인(主人)로 심기는 실질을 성립시켜 나갑니다. 교회로부터 분리될 경우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교회 앞에 공식적으로 고백함으로 세례를 받은 사실에 진실함으로, 일평생 교회의 품에 안겨 신앙생활을 전개합니다. 한편으로는 교회의 양육울 받고, 다른 일면 교회를 양육하여야 하는 관계에 충실합니다. 뿐만 아니라 어떤 경우에도 위선과 거짓과 술수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로지 진실과 진리를 정의로 삼으며, 이를 위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참과 거짓을 판단하는 저울로 삼는 사람입니다. 성급히 행동하고 움직이기 전에, 먼저 생각하고 판단하며 진리의 말씀에 입각하여 하나님의 나라 백성된 삶의 이치를 따져봅니다. 성도가 이상 살펴본 세 가지 중요한 원리를 세상 속에서 확연하게 구현해 나가게 되면, 그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존재케 되고, 이것이 하나님께는 큰 기쁨이 됩니다. 성도는 하나님께 이런 기쁨을 안겨드리기 위하여 항상 자신의 상태를 살펴보고 시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10절)고 했습니다. 이 '시험한다'는 단어는 '분변하다'(눅 12:56), '살피다'(고전 11:28), '증명하다'(고후 8:8), '헤아리다'(살전 5:21) 등등의 의미로 번역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고 할 때 동일한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니까 10절의 의미인즉은, 성도는 범사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겠다고 하는 생각과 의지를 확실하게 가지는 가운데, 이를 이루기 위하여 각고의 노력과 수고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이것의 빛의 아들다운 성도가 살아가는 기본 자세입니다.
3. 빛의 자녀답게 행하라
바울은 성도들이 빛의 자녀들처럼 행할 것을 권합니다.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8절하). 어두움의 일은 열매 없는 일입니다. 여기서 열매는 단순히 어떤 행위가 빚어내는 결과를 가리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어두움의 일이나 빛의 일이나 다 행위인 한에는 결과를 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여기서 열매는 하나님께서 성도의 행위를 기뻐게 받으셨다는 차원에서 기술된 것입니다. 앞서 분명히 언급했듯이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10절)고 했는데, 성도의 삶이 빛의 아들다운 태도로 나타나게 되면 하나님은 큰 기쁨을 누리시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그것은 열매가 됩니다. 하나님은 어두움의 일은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따라서 어두움의 일은 열매 없는 일입니다. 여기서 성도가 빛의 아들이 되기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 있는 사실을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성도가 빛인 것은 '주 안에 있는' 조건 에 성립되어질 때인 것입니다. 전구가 빛을 발할 수 있으려면 반드시 전원(電源)에 연결되어 있어야 하듯이, 주 안에 있는 이것이 없이는 성도는 빛의 자녀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도가 주 안에 있다면 그는 분명 빛인 것이고, 빛의 자녀답게 행할 수 있게 됩니다. 여기서 빛의 자녀답지 않은 인생을 전개하는 사람의 경우, 그가 근본적으로 주 안에 있지 않다고 볼 수 있는 반대의 의미도 성립됩니다. 왜냐하면 본문 전체의 문맥을 보건대, 이같은 요구는 중립의 자리를 허용하지 않고 절대적인 선택의 영역으로 해석되어지기 때문입니다. 중립이 가능하지 않은 상황 하에서는 빛이 아니면 어두움이고, 어두움이 아니면 빛인 것입니다. 빛과 어두움 사이에는 중립지대가 있을 수 없습니다. 물론 성도마다 누구나 정도(degree)의 차이는 있을 수 있습니다. 주님의 은혜를 더 많이 깨닫는 성도의 경우, 그마만큼 주님을 사랑하는 정도가 더 클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표면적인 성도가 근본적으로 주 안에 있지 아니하고, 이런 까닭에 도무지 빛의 열매와는 상관 없는 삶을 전개해 나간다면, 이는 정도의 문제가 아닌 본질(kind)의 문제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성도의 인생 족적을 점검해 볼 때에 이 본질의 문제가 드러납니다. 이런 까닭에 주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의 가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눅 6:43-45)고 하셨습니다. 이제 끝으로 성도가 빛의 열매를 추구하고, 선한 행실을 구현하는 삶을 전개하려 함에 있어서 반드시 명심해야 할 주의 사항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는 빛의 열매를 추구하는 삶을 하나의 종교 행위로 전락시킬 수 있는 위험성과 관련한 것입니다. 성도의 신앙이 개선되어 교회가 개혁되려면 바로 이 이단계의 벽까지 넘어설 수 있어야 합니다. 성도의 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으로 부단히 닮아 나갈 수 있어야 하는 이것은 첫번째 단계입니다. 그리하여 성도가 살아가는 삶의 영역에서는 항상 빛의 열매가 뚜렷하게 맺어내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윤리(倫理)와 도덕(道德)을 지향하는 기독교적 종교주의의 새로운 늪으로 빠져버리면 전혀 의미가 없고, 도리어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는 비극을 자초하게 될 것입니다. 복음을 받아들인 성도가 넘어야 할 이 두번째 벽은 의외로 큽니다. 처음에 이스라엘은 첫번째 늪에 빠져 허우적거렸고, 급기야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했습니다. 그러나 다시금 두번째 벽에 부딪혀 버렸습니다. 구약 종교가 '유대교'라고 하는 새로운 종교 형태로 다시금 전락해버린 것입니다. 말씀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지도를 무시하고 자의적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려는 자들이 필연적으로 빠져버릴 수밖에 없는 미묘한 함정이 이런 식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면 과연 어떻게 하여야 기독교적 종교 행위의 모순에 빠지지 않으면서 빛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을 수 있을 것인가? 이 문제는 단순히 지나가듯이 하는 몇 마디 짧은 진술로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참으로 미묘한 부분이고 반드시 성령께서 진리 가운데로 인도해 주시는 도움을 입어야만 깨달아지는 부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원칙만은 분명하게 제시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확실하게 말씀주의로 돌아가는 일입니다. 이는 자신의 삶의 모든 영역을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의 토대 위에 세워나가야 한다고 하는 의미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출발해야 하고, 진행되어야 하며, 마쳐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도의 모든 생각과 행동의 근거요 원천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어떤 다른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필요로 하는 이차적인 수단으로 삼게 되면, 기독교는 더 이상 복음이 되지 못하고 하나의 기독교적 종교 형태로 필연적으로 전락해 버리게 됩니다. 가령 예를 들어보면, 성도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다고 할 때, 이것이 거듭난 자의 본성이 목적을 누리는 것이어서 아버지이신 하나님과 교제를 누리는 일이 되지 못하고, 다른 어떤 것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전락해 버리는 것입니다. 예를 들 것이 더 많이 있으나 지면상 생략합니다. 이러한 현상이 있는 곳에 변질된 기독교, 그러니까 하나의 쾌락주의적인 종교요 실용주의를 원천으로 삼는 기독교적 종교 행위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적 덕행과 덕목들은 더 이상 수단이 되어서는 안되고, 목적 그 자체가 되어야 합니다. 가령 성도는 이미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인 것이지, 공덕을 쌓고 수련을 쌓음으로 비로소 천국에 들어갈 자격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는 이미 하나님의 나라의 목적입니다. 수단이 아닙니다. 이미 빛 그 자체인 것이지, 착함, 의로움, 진실함의 공덕을 많이 쌓아나감으로서 점차적으로 빛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두움은 이미 본성적으로 어두움이기에 열매를 내지 못하듯이, 성도는 이미 본성적으로 빛이기에 의당히 빛으로서의 열매를 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와 생명의 원천으로 삼는 데서 이것이 가능해집니다. 이상 살펴본 진리가 충분히 이해되어질 수 있도록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조명해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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