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들 설교 모음

[스크랩] 장수민 목사 구속사 성경연구-딛2:11-14-은혜의 양육으로서의 구원

하나님아들 2018. 9. 28. 23:10

The English Bi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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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of god; Savior
구세주 하나님

 

 

Psalm 42:11      11Why are you downcast, O my soul? Why so disturbed within me? Put your hope in God, for I will yet praise him, my Savior and my God.

savior  n. 구조자, 구세주(예수)
downcast a. 낙망함, 풀이 죽은, 눈을 내리뜬, 고개를 숙인, 파멸, 풀죽은 모습
disturbed  a. 교란된, (마음이)산란한, 정신장애자


Isaiah 43:10-13      10"You are my witnesses," declares the LORD, "and my servant whom I have chosen, so that you may know and believe me and understand that I am he. Before me no god was formed, nor will there be one after me. 11I, even I, am the LORD, and apart from me there is no savior. 12I have revealed and saved and proclaimed­I, and not some foreign god among you. You are my witnesses," declares the LORD, "that I am God. 13Yes, and from ancient days I am he. No one can deliver out of my hand. When I act, who can reverse it?"

witness  nvi. 증인, 목격하다, 서명하다
declare  vt,vi. 말하다, 선언하다, 언명하다, 신고하다
reveal  vt. (보이다), 드러내다, 밝히다
save  vt. 구해내다, 건지다, 절약하다
proclaim  vt. 고하다, 선언하다, 공표하다, 나타내다
deliver  vt. 넘겨주다, 배달하다, 구해내다
reverse  n,vt. 역, 반대, 뒤, 반대로 하다, 뒤집다, 바꿔놓다, 역동(역류)시키다, 역전시키다


Titus 2:11-14      11For the grace of God that brings salvation has appeared to all men. 12It teaches us to say "No" to ungodliness and worldly passions, and to live self-controlled, upright and godly lives in this present age, 13while we wait for the blessed hope--the glorious appearing of our great God and Savior, Jesus Christ, 14who gave himself for us to redeem us from all wickedness and to purify for himself a people that are his very own, eager to do what is good.

salvation  n. 구주, 구조자, 구제
appear  vi. 나타나다, 나오다, 보이다
ungodly  a. 경건치 않은 , 신앙심 없는, 죄많은
passion  n. 정욕, 격정, 열정, 감정의 폭발, 정욕
redeem  vt. 구속하다, 구원하다
purity  n. 깨끗, 청정, 청결, 결백, (언어의)순정
eager  a. 열심인, 열망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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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 TEXTS
Psalm 68:19-20  Micah 7:1-7  Habakkuk 3:16-19 
Luke 1:47-55, 2:8-20  John 4:40-42  Acts 5: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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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alm 42:11      11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Isaiah 43:10-13   10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로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 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 11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12내가 고하였으며 구원하였으며 보였고 너희 중에 다른 신이 없었나니 그러므로 너희는 나의 증인이요 나는 하나님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13과연 태초로부터 나는 그니 내 손에서 능히 건질 자가 없도다 내가 행하리니 누가 막으리요      Titus 2:11-14   11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12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13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14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NIV 독해를 위한 2560 단어 정복 366일 과정
(65/366일차 = 449-455 개째 단어)


eager  a. 열심인, 열망하여
passion  n. 격정, 열정, 감정의 폭발, 정욕
purity  n. 깨끗, 청정, 청결, 결백, (언어의)순정
revere  n. 존경하다 **
reverence n. 숭배, 존경
reverse  n,vt. 역, 반대, 뒤, 반대로 하다, 뒤집다, 바꿔놓다, 역동(역류)시키다, 역전시키다
witness  n,vt. 증인, 목격하다, 서명하다

 

 

 

은혜의 양육으로서의 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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딛 2:11-14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신 것은 다음 단계의 어떤 특별한 목적을 위하여 되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접근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이신칭의의 원리를 신앙주의로 희석시킬 수 있는 위험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게 됩니다. 구원받은 목적을 철저하게 자각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고 필연적으로 요구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하신 목적을 알기는 알되 이를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여 잘못 알거나 왜곡되이 알아서도 안됩니다. 아쉽게도 우리 주위에는 이런 식의 왜곡도 상당히 많이 있음을 봅니다 무언가에 대해서 그릇 되이 알게되면 필연적으로 그릇된 결과만을 내기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통상 자기의 아는 바대로 행하기 마련인 때문입니다.

1. 구원하시는 목적이 있음을 알아야 함

   디도서 2:11-14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베푸시는 하나님의 구원이 우리를 향하여 가지고 계시는 목적에 대해서 분명하게 선언해 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중에 값없이 구원을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는 것인데, 하나님께서는 이 은혜를 베푸시는 가운데 우리를 어떤 원하시는 방향으로 양육시켜 나가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는 '목적 있는 구원'을 일컫는 것이요, '장성해 나가는 실질'을 수반하는 구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를 구원하실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우리를 양육하십니다.
   예를 들어 로마서 8:1-4 말씀은 칭의와 성화가 불가분리성의 관계에 놓인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옛날에 거듭나기 전에는 육신의 연약함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율법에 관심도 없었고 또한 그것을 실행함에 있어서 전적으로 무능력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구원의 사실 때문에, 성령을 좇아 행한다고 하는 원리 안에서 이것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신의 성품에까지 참여하는 자가 된 사람들이고, 이는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 나가는 데서 풍성하게 발휘되게 됩니다. 왜냐하면 율법은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5:16-18 말씀은 성령을 좇아 행하는 자들에게서는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진다고 가르칩니다. 물론 이것은 결과로서의 행위의 문제가 아니고, 동기와 자세의 문제입니다. 성도가 세상에서 살아 나감에 있어서, 그 일상의 삶을 어떤 동기에 의해서 출발해 나가느냐 하는 차원의 문제인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생명의 성령의 법의 인도를 받는 것이요, 그래서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한다는 데 있습니다. 성령을 좇아 행하게 되면, 현저한 육체의 일을 벗고, 자기 안에 심기어진 새 생명의 능력을 풍성히 나타내게 되니, 곧 새 사람으로서의 인격을 드러내게 됩니다. 이런 식으로 율법의 요구는 성도들의 삶 속에서 풍성하게 이루어집니다.

   본문을 구체적으로 분석해 봅시다. 첫째,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시되'라고 했습니다. 이 문맥은 우리에게 이루어진 구원이 어떤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양육하시기 위하여 구원하셨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성도들은 그 누리는 바 구원을 이해함에 있어서 아무 생각없이 받아들여서는 안되고, 우리를 어떤 필요한 상태에로 양육시키시기 위한 뚜렷한 목적을 띄고서 그처럼 은혜가 베풀어졌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신 것은 그 어떤 목적을 수반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대다수 성도들이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만을 중요시 여길 뿐이요, 과연 무엇 때문에 그처럼 구원을 베푸셨는가에 대한 생각에로는 미처 나아가지 못하게 되는 것은, 저희가 이신칭의(以信稱義)로 말미암는 구원의 원리를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초래되어지는 것입니다. 이신칭의의 의미를 이해함에 있어서 자신의 의지를 발동하여 입술로서 '믿습니다'라고 소리를 발음해 내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신 것은 다음 단계의 어떤 특별한 목적을 위하여 되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접근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이신칭의의 원리를 신앙주의로 희석시킬 수 있는 위험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게 됩니다. 구원받은 목적을 철저하게 자각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고 필연적으로 요구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하신 목적을 알기는 알되 이를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여 잘못 알거나 왜곡되이 알아서도 안됩니다. 아쉽게도 우리 주위에는 이런 식의 왜곡도 상당히 많이 있음을 봅니다 무언가에 대해서 그릇 되이 알게되면 필연적으로 그릇된 결과만을 내기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통상 자기의 아는 바대로 행하기 마련인 때문입니다.

2. 세상 것을 버리게 하시려고 구원하심

   하나님은 '우리를 양육'하시려는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여기서 '양육'이라는 말은 '훈련시킨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참으로 우리에게 이루어진 구원은 이와 같은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에 있어서의 그 부정적인 측면부터 분석해 보도록 합시다. 12절 상반 절에 말하기를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라고 했습니다.
   첫번째로 '경건치 않은 것을 버린다'고 했습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 전에 행하던 삶의 모든 방식을 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버린다'는 말의 의미가 이와 관련하여 상당히 주목할만 합니다. 진실로 하나님의 구원을 우리로 하여금 이렇게 되도록 이끄십니다. 즉 우리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는 이제 이러한 측면으로 우리를 양육하시게 됩니다. 그래서 이 말은 하나님 경외를 방해하는 모든 것을 다 일컫는 말입니다. 이 말이 의미하는 첫번째 사상은 무엇보다도 무신론적인 삶의 모든 태도를 버리는 것을 뜻합니다. 인간은 그 창조된 원리상 마땅히 하나님을 경외할 자로서 존재하는데, 이 거룩한 의무를 떠나서 불신앙적인 삶을 산다는 것은 지독한 자기 모순인 것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이러한 현상이 초래되었으나 이제는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은혜가 나타났는고로, 마땅히 모든 '경건치 않은 것', 곧 무신론적인 삶의 방식을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롬 1:18). 계속해서 이 말은 온갖 우상숭배와 미신적인 삶을 벗어버리는 것을 가리킵니다(롬 11:26).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인생으로서의 삶의 뚜렷한 목적을 가지지 못한 가운데서 영위되었던 일체의 무익한 생활 방식을 벗어버림입니다. 그야말로 아무런 의식도 없이 망령되고 헛된 말을 했던 삶을 확연히 벗어버림입니다(딤후 2:16).
   두번째로 강조되고 있는 하나님의 양육은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린다'는 말속에서 적절히 표현되고 있습니다. 버리는 것은 '이 세상 정욕'입니다. 여기 '이 세상'과 '정욕'의 두 단어는 서로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요한은 정욕으로 말미암는 세상의 세상된 특징을 이런 식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전개해 나가는 삶의 특징은 하나님 없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매사에 하나님이 없이 생각하고, 동시에 하나님 없이 행동한다는 데 있습니다(요일 2:14-17). 확실히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 있는 사람은 이 세상 정욕을 추구하는 삶이 그쳐져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양육의 목표가 이에 있습니다(벧전 4:1-3). 버리되 조금만 버리는 것이 아니라 '다' 버립니다. 즉 온전함에로 나아가야 합니다. 구원으로 말미암아 성도는 이제 세상에 대하여 죽고, 세상은 또한 성도를 향하여 죽게 됩니다. 그래서 성도는 구원을 받게 되면 세상을 다 버립니다(딛 2:2).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 거룩한 덕행을 추구함에 있어서 기본적으로 온전함에 이르러야 할 의무를 부여받습니다. 거룩을 추구하되, 온전을 향하여 힘차게 나아갑니다(마 5:48). 바울은 이와 같은 의미를 다른 곳에서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라고 묘사했던 말로써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수준까지 올라가는 것입니다(엡 4:12). 야고보는 이런 의미를 한 단계 발전시켜 말하기를,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라고 단호하게 선언합니다(약 4:4).

3. 하나님의 백성다운 성품을 발휘하게 하시려고 구원하심

   이제 긍정적인 측면에서 우리를 양육하시는 구체적인 내용을 분석해 보도록 합시다. 12절 하반절과 13절 내용은 우리를 양육하시는 긍정적인 목적들에 대해서 진술되고 있습니다. 먼저 12절을 보면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근신함', 다른 사람들을 대해서는 '의로움', 하나님을 향해서는 '경건함'을 갖추라는 내용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첫째로 은혜의 양육의 목적은 자신을 위한 것으로 '근신함'에 이르게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이 단어는 '건전한 마음을 소유하는 중에 마음의 욕심을 제어한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따라서 본 문맥에서는 자신이 한 사람의 성도로써 그리스도를 본받겠다고 하는 뚜렷한 각성을 가진 가운데 모든 육적인 열정과 욕망을 인내하고 절제하며 다스린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여기 근신함(sensibly)으로 번역된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통틀어 14회 등장하며, 특별히 바울은 목회서신에서 이 단어를 8회나 사용합니다. 그렇지만 현대 성도들이 이 단어의 정확한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건전한 정신을 가졌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이 건전한 정신으로 말미암아 '사려 깊고, 절제하는' 상태를 유지하게 됩니다. 가령 베드로는 성도들로 하여금 종말론적 광란에 빠지지 말도록 경고하기 위하여 이 단어를 사용합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벧전 4:7). 따라서 '절제한다, 제어한다'는 의미로 이해하면 됩니다. 그래서 NIV는 '절제하며'(self-controlled)로 그 의미를 좀더 밝혀서 번역합니다.
   두번째로 은혜의 양육의 긍정적인 목적은 다른 사람들 향하여 가지게 되는 의로움(righteously)의 자세에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에 대하여 가지게 되는 행동의 정직함을 가리킵니다. 탈취하고 겁탈하며 속이고 빼앗는 개념과는 정반대의 이미지를 가집니다.
   세번째로 은혜의 양육의 긍정적인 목적은 하나님 당신께 대한 것으로 경건함(godly)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회복함이요, 그러한 삶을 사는 모든 것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김과 관련되는 일체의 성경적 가르침에 적극 순종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단어의 일차적인 용법은 윤리적이기 이전에 다분히 종교적이기 때문입니다. 즉 그리스도인의 경건은 그리스도의 사건에 근거합니다(딤전 3:16).
   네 번째로, 이제 바울은 우리가 근심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미덕에 넉넉히 올라설 수 있기 위해서는, 마땅히 우리에게 주어진 저 복된 소망에 눈을 돌리라고 말합니다. 13절에서 이 사실을 말하여,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다'라고 했습니다.

4. 하나님의 은혜를 포착하여야 함

   확실히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은, 우리의 삶을 통하여 나타나도록 계획된 분명한 변화를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 속에서 진정으로 이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실제적인 요인, 혹은 그 능력과 권능의 힘은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우리가 이미 우리에게 베풀어진 구원의 그 은혜적인 성격을 어떠함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을 때에 라야 비로소 성취될 수 있을 것입니다. 바울은 이런 의미에서 이제 14절에서 바로 이 사실을 힘주어 강조하게 됩니다.
   첫째,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죽음의 사실과 그것의 속죄적 성격을 확실하게 선언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분명히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그 죽음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대속적 죽음이었습니다(고후 5:14-15). 둘째,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셨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12절 상반절에 언급되었던 의미 -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는 것 - 와 연결되는 것입니다. 셋째,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내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12절 하반절과 13절의 말씀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성도에게 이루어진 구원은 '은혜의 양육으로서의 구원'입니, 우리를 자신의 소유로 삼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가 죄의 속박과 그로 말미암은 혹독한 저주에서 구출된 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일로서의 선한 일에 열심을 가지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에 대한 분명한 각성이 있어야 하고, 자기 속에 있는 이것이 자신의 모든 삶을 지배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아는 확신은 필연적으로 무엇 때문에 그처럼 구원하셨는가에 대한 생각에로 인도되기 마련입니다. 구원의 확증에 있어서 후자가 뒤따름이 없이 전자만을 부여잡는 것은 사실상 자기 확신과 자기 느낌만의 심리적 변화일 뿐이지, 그야말로 성령의 보증을 받는 확신이 아닌 것입니다. 광야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패가 이에서 기인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구원받은 목적을 아는 지식에 한층 깨어 있음으로써, 자신의 순종을 통하여 영광받으시기를 기뻐하시는 아버지 하나님께 합당이 행하는 삶을 권세 있게 전개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곧 '선한 일에 열심내는 친 백성'의 신분과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일인 것입니다. 이 일에 우리 모두 진보가 있기를 바랍니다.    

출처 : 주님의 뜰-행원소구
글쓴이 : bloomy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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