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관용의 사람 - 빌레몬
* 빌레몬서1:1-7(신약 351쪽) *
{마음껏 사랑하고 기쁨으로 용서하는 사람이 됩시다. 항상 좋은 소문이 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Ⅰ. 빌레몬의 인적사항
➀ 빌레몬의 뜻 : “사랑을 간직한 자”➁ 아킵보의 아버지
➂ 압비아의 남편➃ 오네시모의 주인
Ⅱ. 시대적 배경
빌레몬 당시의 사회는 고대 로마의 노예 제도가 여전히 합법적으로 공인되어 존속하고 있었으며 당시 로마 제국 전 지역에는 6천만 명이나 되는 노예가 있었다. 이 노예들은 주인의 사유 재산에 불과한 것으로, 그들의 생명을 포함한 모든 권리는 주인이 임의대로 처리할 수 있었다. 특히 도망간 노예에 대한 처벌은 잔인할 정도였다. 빌레몬은 이러한 사회적 배경 속의 인물로 그 역시 노예를 소유하고 있었던 부유한 사람이었다.
Ⅲ. 빌레몬의 특징
1. 사랑과 믿음의 아름다운 소문이 난 사람입니다.(5절)
빌레몬과 바울이 만나게 된 계기는 바울이 3차전도 여행 시 에베소에서 3년 동안 머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강론하게 됩니다. 특히 두란노 서원에서 3년 동안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강론할 때 인근 아시아에 사는 모든 자들이 와서 말씀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아마 빌레몬도 이때 에베소에서 바울에게 복음을 듣고 회심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엡19:10 두 해 동안 이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빌레몬은 당시에 매우 부유한 집안사람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자기 집을 교회로 내어놓았을 뿐만 아니라 당시에 노예를 거느린 것으로 보아 상당히 부유한 계층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도 회심한 빌레몬은 자신의 부와 권력을 가지고 자기 자신의 배를 채우는데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빌레몬은 참된 마음으로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성도들에 대한 사랑을 간직한 사람입니다. 믿음에 있어서 아주 신실한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을 베풀 때 참 마음으로 사랑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디모데와 디도를 언급할 때도 말씀드렸지만 바울이 개인에게 서신을 쓴 것은 딱 3명입니다. 디모데와 디도와 그리고 한 명이 빌레몬이었습니다. 이렇게 바울이 개인적으로 서신을 보낸 것은 그만큼 중요한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에게 특별한 애착이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금 바울은 빌레몬의 서두에 빌레몬을 칭찬하는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가 지금 너에 대한 소식을 듣고 있는데 예수님에 대한 너의 믿음과 성동에 대한 너의 사랑의 소식이다.
다시 말하면 빌레몬에 대한 소식이 아주 좋은 소식이 들린다는 것입니다. 너의 믿음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도전을 받고, 너의 사랑함으로 많은 사람들이 평안을 얻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빌레몬의 이 아름다운 모습을 칭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어떤 소문이 나는 사람인지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에게 도전이 되고 위로가 되고 평안케 하는 사람이라는 소문이 나는지 아니면 그 사람은 어디를 가나 분쟁을 일으키는 사람인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소문은 마치 냄새와 같은 것입니다. 냄새는 그 물체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성분이 공기를 통해서 번져나가는 것입니다.
예) 과일은 과일의 향이 있고, 꽃은 꽃의 향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물체가 좋은 향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것은 아주 지독한 향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배설물은 아주 독한 냄새를 풍깁니다. 사과도 썩으면 아주 독한 냄새가 납니다. 상한 음시도 마찬가지입니다. 냄새는 그 물체가 제 기능을 잘 할 때 좋은 냄새가 나는데 제 기능을 잘 하지 못하면 아주 역겨운 냄새가 납니다.
그렇습니다. 소문이라는 것이 꼭 이런 냄새와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빌레몬은 아주 좋은 소문이 난 사람입니다.즉 자신의 역할을 아주 잘 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적용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떤 냄새를 내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빌레몬이 어떤 믿음과 어떤 사랑을 행했는지 구체적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빌레몬에 대한 좋은 소문이 났다는 것입니다. 나는 좋은 소문이 나 있는 사람인지 아니면 나쁜 소문이 나 있는 사람인지 알아야 합니다. 심지어는 어떤 소문도 나 있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봉사하면 소문이 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소문이라는 것이 나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은밀한 곳에서 하는 삶이라 할지라도 좋은 것은 좋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좋은 손문이 나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믿음 안에서 교제하는 사람입니다.
빌레몬은 믿음의 교제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믿음의 교제는 어떤 교제일까요? 사실 빌레몬의 구체적인 행실에 대해서는 언급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무엇이라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빌레몬의 믿음의 교제를 통해 나타나는 결과물이 아주 좋다는 것입니다.
빌레몬의 믿음의 교제로 말미암아 그 공동체 안에 있는 선을 알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이르도록 역사한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6절 이로써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이르도록 역사하느니라.
그리스도인의 생활자체가 항상 교제입니다.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관계속에서 상처를 입기도 하고 위로를 받기도 하고 분쟁이 생기기도 하고, 원망이 생기기도 하고, 성숙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빌레몬의 교제는 공동체의 일원들 안에 있는 선을 발견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빌레몬은 사람들 안에서 분쟁을 일으키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각 사람들을 보면 그 사람들 마다 장단점이 다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보통 좋은 점을 이야기하기 보다는 좋지 않은 점을 이야기 하기를 더 좋아합니다. 인간 본성이 남이 잘되는 것을 은근히 시기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빌레몬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빌레몬은 믿음의 교제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믿음 안에서 사람들을 보고 믿음 안에서 사람들을 이해하고 믿음 안에서 좋은 점을 보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어찌 불평할 요소가 없겠습니까? 그러나 빌레몬은 불평할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장점을 찾는 사람이었습니다. 좋은 점을 부각시키는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이 믿음 안에서 교제하는 빌레몬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공동체 안에 있는 선을 알게 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 빌레몬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보기를 좋아했다는 것입니다. 누구를 보던지 간에 그 사람도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도 역시 예수님이 대속해 주신 귀한 인물이었음을 인정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빌레몬의 믿음의 교제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빌레몬의 믿음의 교제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께 이르도록 역사하는 교제였다는 것입니다.
교제의 결론은 그리스도께 이르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베푸신 사랑의 눈으로 보고, 예수님이 품었던 긍휼의 눈으로 보고, 예수님이 섬겼던 섬김의 마음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교제를 통해 자신의 의를 드러낸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기를 좋아 했다는 것입니다.
적용
그렇습니다. 우리의 교제는 어떤 결과를 낳고 있습니까? 다툼이나 불만으로 끝나는 모임인지, 아니면 서로 화목하며 사랑하며 이해하며, 용서하며, 격려하는 교제인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문제가 발생하게 되면 모든 것이 남의 탓이 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나로부터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것이 가정 불화일경우도 그렇고, 공동체의 불화일 경우도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주님의 마음으로 보고 주님의 사랑으로 보는 믿음의 교제를 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3. 스승에게 기쁨과 위로를 주는 사람입니다.
빌레몬은 스승에게 기쁨과 위로를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빌레몬은 바울의 제자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제자로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성숙한 사람이 되어 동역자가 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1-2절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 우리의 사랑을 받는 자요 동역자인 빌레몬과 자매 압비아와 우리와 함께 병사 된 아킵보와 네 집에 잇는 교회에 편지하노니
그렇습니다. 빌레몬은 이제 당당히 바울의 동역자의 대열에 설 만큼 성숙한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빌레몬이 치리하고 있는 교회에서 사랑과 믿음으로 아름다운 소문이 나 있고, 믿음의 교제를 통해서 공동체 속에 있는 선한 것을 드러내고 많은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아름다운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빌레몬 때문에 모든 공동체가 평안함을 얻었다고 하니 스승인 바울로서는 너무나 행복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빌레몬을 생각하면 큰 기쁨이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바울은 감옥에 있습니다. 로마 감옥에 갇혀있기에 육신적으로 많이 불편함이 있습니다. 때로는 영적으로 곤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꿋꿋하게 자신의 제자들이 아름다운 소문을 내고 칭찬받고, 그 공동체가 든든히 서 간다는 소식을 들으니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또한 바울에게는 큰 위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제자가 훈련받은 대로 잘 감당하면 스승은 그보다 기쁜 일이 없는 것입니다. 제자는 스승의 거울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제자는 스승의 면류관입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빌레몬 때문에 얼마나 큰 위로를 받고 보람을 느끼고 힘을 얻겠습니까? 바울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적용
우리는 어떤 사람입니까? 스승의 기쁨이 되는 사람입니까? 스승의 근심거리가 되는 사람입니까? 더 큰 의미에서 보면 우리는 주님의 기쁨이 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주님의 근심거리가 되는 사람입니까? 우리는 주님의 기쁨이 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나아가서 이 땅의 스승에게도 큰 기쁨과 위로가 되는 멋진 동역자로 성숙하기를 바랍니다.
4. 참된 용서와 관용을 베푸는 사람입니다.
빌레몬은 앞의 성품 그대로 참된 용서와 관용을 베푸는 사람이었습니다.
사실 바울이 빌레몬에게 개인적인 서신을 쓰게 된 주된 동기는 빌레몬에게 특별히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입니다.
빌레몬에게는 오네시모라는 노예가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노예제도가 합법적인 제도였기에 노예를 거느리는 것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당시에 노예는 재산으로 취급되었기에 노예의 목숨은 사람의 목숨도 아닌 시절이었습니다. 노예의 인권은 땅에 떨어져 있었던 것이지요. 이런 시기에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라는 노예가 있었는데요. 오네시모 노예가 빌레몬의 집에서 도망을 친 것입니다. 이때 오네시모는 도망만 친 것이 아니라 빌레몬의 돈을 훔쳐서 도망간 것으로 여겨집니다.
도망을 친 오네시모가 간 곳이 로마였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놀라운 것은 오네시모가 무슨 잘못을 해서 감옥에 가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오네시모가 바울이 갇혀 있는 감옥에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감옥에 들어와서 바울을 만나게 된 오네시모는 감옥에서도 변함없이 복음을 전하는 바울의 복음을 듣고 회심하게 됩니다. 오네시모는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이 된 것입니다.
10절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그리고 바울에게 자신의 내력에 대해서 다 말하게 되고, 자신은 쫓기는 사람이고, 도망노예였음을 말하게 됩니다. 바울이 보기에 오네시모가 회심한 것이 분명하고, 신실한 일군이 된 것이 분명했습니다. 바울보다 먼저 풀려나게 된 오네시모는 이제 풀려나도 수배령이 내려진 도망자의 신세이기에 그 처지가 아주 난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네시모의 주인은 빌레몬에게 펜을 들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그리고 빌레몬에게 간곡히 부탁합니다. 내가 나이가 많고 또 따져보면 나는 스승이고 너는 제자이지 않는냐? 그래서 내가 명령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랑으로써 간구한다고 정중하게 빌레몬에게 부탁을 합니다.
오네시모는 내가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이다.
전에 어땠는지 모르나 이제는 아주 유익한 존재이다. 내 심복이다. 내 심장 같은 사람이다. 그러니 이제는 오네시모를 종과 같이 여기지 말고 종 이상으로 곧 사랑받는 형제로 두라 나는 네가 순종할 줄을 확신할 뿐만 아니라 내가 말한 것보다 더 할 줄을 안다. 라고 편지를 쓴 것입니다.
참으로 어려운 부탁입니다. 그리고 참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편지입니다.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종이었습니다. 빌레몬의 재산이었습니다. 그는 범죄자였고, 도망자였습니다. 오네시모를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 않은 사람이 빌레몬입니다. 그런데 그 오네시모가 바울이 써 준 편지를 직접가지고 온 것입니다. 이런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사랑으로 대할 뿐 아니라 종으로 여기지 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네시모는 스승의 권면을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오네시모의 모든 허물을 용서하고 관용으로 대합니다. 이것이 빌레몬의 위대함입니다. 도저히 용서하기 힘든 사람을 용서해 내는 능력이 빌레몬에게 있습니다. 빌레몬은 억지로 한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용서하고 그 종을 형제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빌레몬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한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빌레몬에게 녹아서 흘러들어가고 그리고 빌레몬을 변화시킨 그 사랑이 오네시모에게 적용된 것입니다. 이것이 빌레몬의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적용
우리는 어떻습니까? 용서하면서 사는 사람입니까? 용서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용서해야 합니다. 용서는 사실 자신을 자유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용서합시다. 그리고 사랑으로 품읍시다. 빌레몬은 자신의 배반하고 도망친 종을 용서했습니다. 그리고 사랑했습니다. 위대한 동역자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우리도 사랑하고 용서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Ⅳ. 결론
1. 아름다운 소문이 나는 사람이 됩시다.
2. 믿음 안에서 교제하는 사람이 됩시다.
3. 스승에게 기쁨과 위로를 주는 사람이 됩시다.
4. 용서와 관용을 베푸는 사람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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