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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무슬림=복종하는 자’... 의문 가지면 안돼

하나님아들 2017. 12. 19. 23:05

 ‘무슬림=복종하는 자’... 의문 가지면 안돼

이만석 목사(한국이란인교회)



이란에서 무슬림 출신 기독교 개종자가 초등학교 때 경험한 일이다. 그가 수업시간에 선생님에게 질문을 했다. “알라(Allah)께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전능한 분이라는 것이 정말인가요?” 그 때 선생님은 눈을 휘둥그렇게 치켜 뜨고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반문했다. “너 어쩌려고 감히 알라를 의심하는 거냐? 큰일을 당하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냐?” 그리고 모두들 들으라는 듯이 큰 소리로 말했다.

“며칠 전에도 이웃 마을의 초등학교에서 알라를 의심한 학생이 있었는데 며칠 있다가 교통사고로 죽었다. 옆 동네에 사는 한 여학생도 알라를 의심하다가 즉시 암에 걸려서 병원에서 수술을 받다가 죽었다. 그러니 내일 아침에 성한 몸으로 일어나고 싶으면 절대 알라를 의심해서는 안 된다. 알겠나?” 그 이후에는 아무도 알라에 대해 묻는 사람이 없었다.

‘이슬람’이라는 말은 복종이라는 말이다. 계시가 내려왔다고 하면 묻지 말고 그냥 믿으라는 것이다. 질문이나 의심을 하면 이미 ‘무슬림’(복종하는 자)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집트의 독실한 무슬림 집안에서 태어나서 12살 때 이미 코란을 모두 암송했던 마크 가브리엘(가명)이라는 신동이 있었다. 그는 이슬람의 하버드 대학이라고 하는 카이로의 알 아즈하르 대학에서 이슬람의 역사와 문화를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고 그 대학 교수로 활동하며 중동 여러 나라에서 이슬람에 대해 강연하던 사람이었다.

어느 날 그는 ‘이슬람의 알라가 과연 기독교의 하나님과 같은 신인가’라는 의문을 품게 되었는데 이를 눈치 챈 대학에서는 그의 교직을 박탈하고 비밀경찰에 고발했다. 즉시 체포된 그는 이슬람에 대해 의심을 가진 대가로 일주일간을 고문당하며 취조를 받았다. 그는 그 때부터 이슬람을 떠나 성경을 읽고 기독교인이 되었으며, 여러 차례 죽음의 위협을 받다가 결국 외국으로 도망할 수밖에 없었다(마크 가브리엘, <끝나지 않은 2000년의 전쟁>, 도서출판 퉁크, 2006, p259). 이슬람에서는 의심이 이렇게 무서운 죄가 되는 것이다.

코란을 읽다가 이런 구절을 발견했다. “믿는 사람들이여 여러 가지의 일을 물어서는 안 된다 너무 분명히 알고 보면 오히려 해가 될 것도 있다 (중략) 너희들 이전에도 어떤 백성이 이런 종류의 문제에 대해 물었다 그러나 그들은 곧 믿음을 잃고 말았다”(코란 5장 101~102절, 김용선 역)

“믿는 자들이여 분명한 것은 묻지 말라 했으니 그것이 오히려 해롭게 하느니라 또한 꾸란이 계시되는 것을 묻는다면 이는 더욱 너희들에게 해악이라 그러나 알라는 지나간 것을 용서하시니 알라는 관용과 자비로 충만하심이라 너희 이전의 한 무리가 그러한 질문을 하였으니 그들은 그로 인하여 불신자들이 되었노라”(코란 5장 101~102절, 최용길 역)

“알라를 믿겠습니다고 약속하고도 알라의 일로 논쟁하는 자의 의론은 알라 앞에서는 무익하다 그러한 자에게는 알라의 노여움과 엄벌이 가해진다”(코란 42장 16절, 김용선 역)

같은 구절을 최용길 박사는 이렇게 번역했다. “그러나 알라에게 순종하겠다고 한 후 그분에 관한 그들의 논쟁은 그들 주님 앞에서 무익한 것으로 그분의 노하심이 있을 것이요 무서운 벌이 있을 것이다”(코란 42장 16절, 최용길 역)

의심하지 말고 무조건 믿으라는 것이 마치 비판 정신을 둔화시키고 충성심을 조성하는 우민정책과 비슷하다. 일반인들이 세세한 부분까지 알면 좋을 것이 없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코란을 다른 언어로 번역하지 말라고 한다. 다른 언어로 번역한 코란은 이미 코란이 아니라는 것이다. 코란을 읽는 것 자체가 커다란 선행인데, 아랍어 외에 다른 언어로 번역한 코란을 읽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이슬람식으로 하루에 다섯 번씩 하는 기도도 반드시 아랍어로 해야 한다. 이란어(Farsi)는 아랍어와 글자가 같아서 이란 사람들은 아랍어를 쉽게 읽을 수 있다. 그래서 소위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무슬림들은 코란을 읽고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그 의미를 아느냐 하면 천만의 말씀이다. 예를 들어 독일어, 불어, 이태리어 등은 모두 영문 알파벳과 같은 글자들을 쓰기 때문에 영어를 하는 사람은 글자들을 쉽게 읽을 수 있다. 하지만 뜻은 알지 못한다. 전혀 다른 언어이기 때문이다.

알라가 과연 전능한 신이라면 다른 언어도 다 알아들을 것이다. 그런데 왜 꼭 이해할 수도 없는 아랍어로 기도하고 코란을 읽어야 하는 원칙이 생겼을까? 위에 제시한 코란 5장 101절에 보면 그 해답이 나와 있다. “너무 분명히 알고 보면 오히려 해가 될 것도 있다”는 구절이다. “코란에 논리적, 역사적, 지리적으로 모순되는 구절이 있는데도 없다고 하느냐”고 묻는다면 이미 무슬림이 아니다. 코란을 의심하는 자는 이미 믿음을 버린 자이기 때문이다.

참 하나님은 그 말씀을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신명기 6장 7절),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도록 판에 명백히 새기라(하박국 2장 2절)”고 하신다.

성경 말씀은 어디에 내 놓아도 떳떳하고 오류가 없는 참 진리의 말씀이기에 모든 인류가 듣고 읽고 구원 받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가능하면 많은 언어로 번역하기를 바라신다. 그래서 모든 인류가 자신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구원을 받기를 바란다. 이 일을 위해 위클리프선교회, 성경번역선교회 등이 지금도 세계 각처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모든 사람이 읽고 확실히 알기 원하는 성경과 너무 분명히 아는 것은 오히려 해가 되는, 마치 감추고 싶은 부분이 있는 것 같은 코란 중 어느 것이 진리일까를 묻는 것은 어리석은 질문일 것이다.

출처 : 창골산 봉서방
글쓴이 : 봉서방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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