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유다

[스크랩] 이스라엘 남왕국의 멸망

하나님아들 2017. 12. 13. 12:45
 


                 이스라엘 남왕국의 멸망


     남왕국이 가졌던 또  다른 이점은 북왕국이 망하던 그 시기의 남왕국 왕

들은 하나님의 뜻을 구했던 선한 왕들이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북왕

국 멸망 당시 유다의 왕이었던 히스기야 같은 이는 자주 선지자 이사야의 자문을

구했고 광범위한 종교개혁을 단행하기도  했습니다. 또 다른 남왕국의 선한 왕으

로는 B.C. 614-610까지  통치했던 요시아가 있습니다. 요시아는 오랫동안 잊혀져

왔던 유월절 규례를 재 입법화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요시아는 성전 복구 사업을

시작했는데, 그 복구 작업 중 율법 책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성전 복구 작업은

종교 개혁으로까지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몇몇 왕들의 행실을 지켜보

신 하나님께서는 당분간 징벌의 손을 멈추셨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요시아의

후계자는 요시아의 모범을 따르지  않았는데, 그 결과 종교적, 정치적 상황은 급

속도로 악화되어 결국 파국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요시아는 애굽과의 전투에

서 치명타를 입어 사망하게  되었고, 그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왕

위를 계승했습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3 개월후 애굽은 그를 폐위시키고 그의 형

엘리야김을 왕으로 삼은 후 그의 이름을 여호야김으로 바꾸었습니다. 바로 이 여

호야김은 "그 열조의 모든  행한 일을 본받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습니다

(왕하 23:27).  그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박해하고 죽이려고까지 했습니다. B.C.

605년 당시의 세계의 강자인 앗수르를 누르고 신흥 세계 강국으로 부상한 바벧론

은 유다를  공격해 들어왔습니다. 힘없는  여호야김은 바벧론 왕인 느부갓네살의

종이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바벧론은 조공을  요구했을 뿐 아니라 여호야김을

포로로 잡아 끌고 갔습니다. 그로부터 수년 후 여호야김이 다시 반역하자 느부갓

네살은 유다 본토를 재공격했습니다. 죄수가 된 여호야김은 바벧론으로 끌려가기

전 죽고 말았습니다. 여호야김이 어떻게 죽었는가를 분명히 알 수는 없지만 그가

아주  수치스러운 모습으로 죽은 것은 분명합니다(렘22:18-19). 여호야김의 왕위

를 계승한 사람은 그의 18살 난 아들 여호야긴이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야긴 역시

그의 재위 3개월 만에 유다를 침공한 느부갓네살의 포로가 되어 바벧론으로 잡혀

가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 후 요시야 왕의 또 다른 아들 마타니야가 왕이 되었는

데 그의 이름은 시드기야로 바뀌었습니다.


1. 시드기야의 치세(왕하24:18-20)


1-1 시드기야의 치세 성격(18-19절)


  또한 이것은 유다 백성들을  보호하고 지켜줄 방어벽이 사라져 버린 것을 의미

하기도 합니다. 그의 통치 4 년째 되던 해 시드기야는 느부갓네살에 대한 자신의

충성을 재 다짐하기  위해 바벧론을 방문했습니다(렘51:59). 그러나 유다로 다시

돌아오자마자 그는  바벧론 왕을 대적하는  음모를 꾸미기 시작했습니다. 수차에

걸친 예레미야의  경고를 무시한 채 시드기야는  어리석게도 애굽과 동맹을 맺고

느부갓네살을 배반하고 말았습니다.


2. 포위된 예루살렘 성(왕하25:1-4)


2-1 포위가 시작됨(1-3절)


  우리는 유다의 반역의 시작을  알리는 정확한 사건 혹은 일련의 사건들이 무엇

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 사건이 무엇이었든지  간에 시드기야 통치 9년째 되던

해 느부갓네살은 유다에 대한  군사 행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을 공격

하기 전, 성전 앞  몇 성읍들을 점령했던 것으로 보입니다(렘34:1-7). 성을 포위

한 뒤 느부갓네살은 공격용 요새와 망대를 건축했습니다.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

성을 포위했던  당신의 상황은 예레미야서와  에스겔서에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예루살렘이 포위되었을 때 애굽은 군대를 보내 예루살렘을 구하려고 했습니다(렘

37:5,겔 17:17). 위기에 직면한  바벧론 군대가 애굽 군대와 싸우기 위해 포위를

풀자 백성들은 기뻐하지만  예레미야는 바벧론이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경고했습

니다. 아니나 다를까 곧  느부갓네살의 군대는 되돌아와서 다시 포위망을 구축했

습니다. 바벧론 군대가 성을 둘러 싼지 얼마 되지 않아 유다 백성들은 식량 고갈

로 고통 받았으며 성 안에는 전염병이 돌았습니다. 느부갓네살의 전략은 도성 사

람들을 굶겨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일년 그리고 그 후 반년이 지나자 느부갓네살

의 전략의  효력이 입증이나 하듯이 굶은  유다백성들은 기력을 잃기 시작했습니

다. 예레미야애가서는 예루살렘  성 포위 말기 당시  성 내의 백성들의 참담하고

고통받는 모습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2-2 예루살렘 성의 붕괴(4절)


  유다 군대의 방어력이  약화되자 느부갓네살은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느부갓네

살 군대는 성벽이 낮았던 북쪽성곽으로부터 공격해 들어가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

다. 느부갓네살 군대를 막기에는  역부족인 것을 깨달은 시드기야와 그의 호위병

들은 야음을 이용해서 성  남쪽 문을 통해 도성 밖으로 도망했습니다. 그러나 시

드기야는 사해 남쪽 요단 계곡을 돌아 여리고 평지로 가던 중 추격대에게 붙잡혔

습니다.


3. 시드기야의 운명(왕하25:5-7)


3-1 사로잡힌 시드기야(5절)


  왕 시드기야의 도피 노력은 허사가 되어 버렸습니다. 특히 왕을 호위하던 호위

병들이 뿔뿔히 도망쳐 버렸기 때문에 왕은 쉽게 붙잡힐 수 밖에 없었습니다.


3-2  고통받는 시드기야(6-7절)


  신중한 전략가인 느부갓네살은  직접 예루살렘에 주둔하지 않고 본부를 수리아

의 립나, 즉 리블라에  두고 거기서 지휘했습니다. 느부갓네살에 대한 맹세를 어

겼기 때문에 시드기야는 심문을  당하고 바벧론으로 포로로 잡혀갈 수 밖에 없었

습니다. 예레미야를  통해 주어졌던 하나님의  경고를 경홀히 여겼던 시드기야는

그 댓가를 받게 된 것입니다(38:17-18). 시드기야 자신은 목숨을 건졌지만 눈 앞

에서 두 아들이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보아야만 했습니다. 또한 예레비야 39장 6절

에 의하면 많은 시드기야의 신하들이 두 아들과 동시에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들

은 아마  시드기야의 반역을 부추기고 예레미야의  충언을 막았던 자들일 것입니

다. 이상의 불행한 사건이 발생했던 때는 시드기야의 나이가 고작 32세 때였는데

그 사실에 비추어볼 때 그의 두 아들은 아주 어린 아이들이었다는 것이 밝혀집니

다. 그 어린 아이들이  무참히 학살당하는 사건을 바라보면서 한 사람의 죄가 얼

마나 끔찍한 결과를 초래함과, 그 죄는 자손에게까지 피해를 입힌다는 것을 절감

하게 됩니다. 강제로 그 아들의  죽음을 목격한 뒤, 오래 전에 삼손이 그랬던 것

처럼, 눈이 뽑히고 쇠사슬에  묶힌 채 바벧론으로 끌려 갔습니다. 그리하여 바벧

론으로 끌려가되 바벧론 성을  보지는 못하리라는 그에 대한 에스겔의 예언이 성

취되었습니다(겔12:13).


4. 예루살렘의 멸망(왕하25:8-9)


  본장 8-10절은 예루살렘의  멸망 상황을 총괄적으로 언급하고 있고, 11-12절은

그 상황을 자세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4-1 바벧론군의 엄습을 당한예루살렘


  우리가 예루살렘  성의 함락과 멸망시기에 한  달이라는 간격이 있었던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아마 바벧론군 야전 사령관들은  행동을 취하기 전에 예루살렘

성에 대한 느부갓네살의 결정을 기다렸을지도 모릅니다. 아뭏든 느부갓네살 왕은

예루살렘 성을 파괴할 책임을 맡은 한 부하 장관을 보냈습니다. 본 절은 그를 시

위대장관이라고 불렀는데  이 말의 뜻은  "느부갓네살로부터 예루살렘 성에 대한

형을 집행할 임무를 부여받은  자"입니다. 그가 예루살렘에 도착했을 때 그 성의

운명은 결정되고 말았습니다.


4-2 불타버린 예루살렘(9절)


  성은 느부사라단이 오기 전에  이미 점령군에 의해 약탈당했지만 성 건물 자체

는 느부사라단에 의해 무너진 것 같습니다. 여호와의 전은 제일 먼저 느부사라단

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성전의 놋바다(예배 정결의식  때 사용되는 물이 담겨져

있는 청동대야)는 너무 커서  운반하기에 힘들었기 때문에 그들은 놋바다를 깨뜨

려 나눠들고 바벧론으로 돌아갔습니다.  예배 때 사용하는 그릇들과 기명들 역시

가져 갔으며(13-14절), 그 모든  귀한 물건들을 들어낸 다음 점령군은 전 건물에

불을 놓았습니다. 그 다음  점령군들이 향해 간 곳은 성전보다 더 크고 아름다웠

던 솔로몬의 궁전이었습니다. 궁전건축  때 백향목이 많이 사용되었기 때문에 그

궁전은 쉽게 불타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외의 집들, 특히 부자들의 집들

을 파괴시켜  버렸습니다. 10절은 성벽이 헐려졌던  사실을 알려 줍니다. 분명히

점령군들은 유다 백성들이 방어할  수 없을 정도로만 성벽을 헐었습니다. 그것은

유다백성들이 포로지에서 돌아왔을 때  어떤 성벽은 여전히 서 있었던 사실이 증

명합니다(느2:13-15).


출처 : 말씀의 공간
글쓴이 : 착한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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