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 신학(自由主義神學, liberal Theology)
자유주의 신학이란 성경을 고등비평하거나 성경의 축자영감설을 부인하거나 성경의 유오성을 주장하여 정통적인 역사적 기독교를 의심하게 만드는 신학사상이다. 이것은 계몽주의, 합리주의, 이성주의의 산물로 나타난 인간의 자유의지의 최대표현을 성경에서 실험하여 보는 신학이다.
자유주의라는 낱말 자체는 라틴어인 liber, 곧 “자유하다”는 말에서 유래하였다. 자유주의자는 자유롭게 탐구하는 사람이다. 그는 진리의 새로운 면들에 대하여 개방되어 이런 마음의 개방성은 그가 남의 신념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왔다. 자유주의의 이런 면은 다윈(Darwin)의 진화론에 대한 어떤 해석들과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었다.
자유주의라는 말의 뜻은 애매하고 다의(多義)하다. 우선 그것은 정통주의 신학의 상대 개념으로 알려져 있다. 그것은 신학의 관용주의이기도 하다. 그들은
A. 정통을 배격한다.
① 종교의 낡은 형식과 표상들은 죽었다고 한다.
② 과거와는 상관없이 그 세대의 신앙을 구축하기 시작해야 한다고 한다.
B. 도덕성을 배격한다.
① 하나님은 이제 실제적이 아니기 때문에 도덕적 기준의 권위가 없다고 한다.
② 도덕법들은 인간의 자유에 대한 장애물이다고 한다.
C. 교회를 배격한다.
① 교회의 폐지를 권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② 신학은 신학교와 교회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ꊱ 역사(History)
1) 18세기에 접어들어 새로운 역사 체험을 바탕으로 초기에 형성되었던 프로테스탄트 객관주의 신학에도 상당한 변화가 야기되었다. 레씽(G. E. Lessing)은 성경과 종교, 문자와 영, 신학과 종교감성을 구분하며 후자의 것들을 강조하였고 쉴라이에르마허에 의해 주관적인 종교 체험이 중요시되기 시작했다. 이어 리츨(A. Ritschl)의 ‘가치 판단’에 대한 주관주의 이론이 확립되면서 유럽 대륙 신학의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현대프로테스탄트 신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하르낙(A. V. Harnck)은 그리스도를 제사장과 도그마가 없는 종교 예언자로 애해하며 그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부성(父性)과 인간의 형제성(兄弟性)을 규명하려고 노력했다. 이 무렵 칼빈주의 내에서는 단순 예정론에 대한 재해석이 시도되기 시작했고 자유주의 신학이 대주되었다.
2) 19세기에 풍비했던 합리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자유주의 사상의 영향으로 형성되었으며, 크게 세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 시기는 쉴라이에르마허가 처음 그 길을 열었으며, 리츨,하르낙,벨하우젠 등 주로 독일 신학자들이 주도적 역할을 했다. 그 특징은 기독교 해석의 궁극적 권위를 성경보다 이성에 두며, 초자연적인 것을 배제하고 기독교를 현실적이고 윤리적인 것으로 파악하며, 낙관적 세계관을 가진 것 등이다. 이 사상이 미국에서는 사회복음운동으로 나타났다.
두 번째 시기는 칼 바르트와 부룬너 등의 변증법적 신학에 의해 시작되었다. 이것은 이전의 자유주의신학에 항거해 형성된 것으로 신학을 하나님 말씀 위에 세움으로써 자유주의신학의 영향력을 상실케 만들었다. 여기에 불트만의 실존주의 신학 역시 큰 몫을 담당했다. 이전의 자유주의가 기독교의 초자연적 교리와 신조들을 부정하고 인간의 본성과 인류의 미래에 대해 작관적 사상을 가진 반면에, 후자는 초자연적 신앙을 인정하되 그것을 현대인의 과학적 역사적 비판적 지식에 근거하여 재해석함으로써 현대인의 지성과 경험에 수긍이 가도록 하고 죄 속에서의 인간의 실존과 하나님의 은혜의 귀중성을 강조한 것에 근본적 차이가 있다. 따라서 전자와 비교해 후자를 ‘현대주의’혹은 ‘신(新)자유주의신학’이라고 부른다. 그 대표적 특징은 자른 학문과 깊은 연관을 갖고 역사적 비평적 방법으로 성경을 연구하는 것인데, 이런 의미에서 정통신학과는 구분된다.
세 번째 시기는 초자연적이고 절대적인 신 존재 자체를 과감히 부인하거나 기독교의 본질을 사회참여에 두는 급진힉학의 출현으로서, 이에는 ‘사신신학’, ‘세속화신학’, ‘상황윤리’, ‘해방신학’ 등이 있다. 그러면 19C의 자유주의 신학에 항거하고 일어난 이러한 진보주의적 신학을 몇몇 신학자들을 중심으로 간략하게 살표보자.
3) 19C 자유주의 신학의 낙관주의적 세계관에 항거하여 일어났던 변증법적 신학운동의 선구자인 칼 바르트(Karl Barth) 가 있다. 쉴라이에 르마허 이래 가장 위대한 현대 진보주의 신학자인 바르트는 로마서 강해서문에 당시의 자유주의 신학의 근본적인 전제에 대한 강력한 항의와 냉혹한 비판을 실어 출판함으로써 당시 세계신학계를 흔들어 놓았다.
그의 서술방법은 변증법적인 것으로서 하나님은 헤겔적인 사변적, 추상적 도식으로 인식 될 수 있은 것이 아니라 다만 인간의 옷을 입는 역사적인 예수 그리스도를 매개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밝혔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접근하는데 성서가 매우 중요시 되어 그의 신학을 ‘말씀의 신학’이라고 한다.
바르트는 1956년에 발표한 ‘하나님의 인간성’이란 작품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신성’보다 ‘하나님의 인간성’이 앞으로의 신학에서 중요한 주제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이것은 하나님의 초월성을 거절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하나님이 인간이 되어서 이 세상을 위해 오셨다는 하나님의 인간성에다 제일 의적인 역점을 두었다는 데에서 진보주의적인 신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바르트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치명적인 위험성은, 그가 기존하는 기독교의 전통적인 개념 용어들을 그대로 사용하는 듯 하지만 실상은 그러한 용어들에 자신의 신학적인 해석에 따른 새로운 개념을 담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에 숨겨져 있다. 그의 신학은 주지하는 대로 키엘케고르(S. kierkegaard)로부터 발원한 소위“실존주의 철학”에 철저히 근거하고 있다. 그의 신학은 그리스도 중심적인 듯 보이면서도 실상은 인간론 중심이며 초월적인 계시와 능력을 인정하는 듯 하면서도 결국 비역사화한 세계관에 의해 부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의 신학은 현대교회 목회자들과 평신도들에게 어느 누구의 것보다 매우 커다란 호응을 받았고, 그 결과로 온 세계교회는 이 “신정통 신학”의 검은 우산에 덮이게 되었다.
4) 다음은 불투만의 신약성서의 비신화화론이 나왔을 때 바르트와 함께 공격을 퍼부었던 부룬너(Brunner)로서 그는 1946년부터 ‘교의학’ 3권을 집필하여 철저한 변증법적 요소를 지닌 선교신학을 제창하였고 그의 교의학에서 스리스도를 중심한 계시, 신, 창조, 인간, 죄, 구원, 예정, 교회, 소망 등을 추구하였다.
그러나 조직신학을 실천신학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일반사회와 인문과학까지 다 동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이 시대인에게 이해시키려는 가운데 신 정통주의에 속하여 자유주의 신학자들로부터 반동적인 자로 지탄을 받았다.
독일의 바르트(K. Barth) 처럼 미국신학계에 파문을 일으킨 라인홀드니버(Reinhold Niebuhr)는 1920년대에 이르기까지 풍미하던 자유주의 신학의 낙관주의 인간관과 사회관에 포문을 열고 도전을 하였다. 그는 자유주의의 평탄하고 안일한 태도를 버리고 초대교회의 엄숙한 신앙으로 돌아갈 것을 요망했다. 니버는 1920년대에 이르기까지 풍미하던 자유주의 신학의 낙관주의 인간관과 사회관에 포문을 열고 도전을 하였다. 그는 자유주의의 평탄하고 안일한 태도를 버리고 초대교회의 엄숙한 신앙으로 돌아갈 것을 요망했다. 니버는 기독교적 인간이해는 모든 윤리상황을 이해하는데 불가피한 도구라고 하면서 이러한 윤리적 신학을 일반 정치학계에 적용할 것을 주장하여 진보주의적 신학자가 되었다.
틸리히(P. Tillich)의 신학은 문화와 제휴하는 측면에서 ‘종합’을 시도하면서 분열과 불안정과 생의 무의미를 해명하려다가 오늘의 실존신학을 조성하였다. 실존적 상황속에서 새로운 존재가 되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임을 제시해 주는데 이 ‘새로운 존재’는 그의 신학의 중심개념이 되었다.
한편 20세기 후반, 제3세계와 피압박 민족 신학자들에 의해 종래의 서구 중심적인 신학적 이해와 다른 신학들이 창출되는데, 남미의 해방신학, 흑인신학, 여성신학이 그러한 예이며 1970년대 후반에 형성된 한국의 민중신학도 그러한 범주에 든다고 하겠다.
6) 한국 교회에서 자유주의신학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근본주의, 정통주의, 보수주의 신학에 포함되지 않는 신학을 일컫는다. 이런 의미에서 자유주의신학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1920년대이다. 25년 자유주의 신학을 용납하는 캐나다연합교회의 한국 진출과 미국, 일본등에서 자유주의신학을 공부한 신학자들에 의해 분위기가 형성되기 시작했는데, 그 주요 사건으로는 33년 김재준교수가 ‘신학지남’에 기고한 <이사야의 임마누엘 예언>이라는 논문. 35년에 간행된 아빙돈 성경주석 사건, 47년 조선신학교 학생들의 진정서 사건 등을 들을 수 있다. 특히 김재준 교수가「정통주의 신학은 신신학보다 더 교묘하게 위장한 실제적 인본주의요 정통적 이단이다」(1946년 “새사람”11월호) 고 정통 보수신학을 향해 정면 도전한 것이다.
한국 장로교 신학사를 대단히 성실하게 연구한 미국정통장로교 선교사간 하배(Harvie Conn)교수는 한국에 자유주의 신학의 침투경과를 몇가지로 나누어 도전한 것이다.
① 카나다선교부 중심으로 스캇트(Scott) 나 프레지어(Frazier)같은 선교사들의 영향.
② 미국 북장로 교회의 좌경에서 오는 영향.
③ 일본으로 육학 간 한국의 많은 신학생들이 거기서 자유주의 신학을 배워 한국에 돌아와서 한국교회에 끼친 영향.
④ 선교사들의 교구조정으로 일부지역에 자유주의 신학에 성역(聖域)제공. 대단히 잘 본 예민한 관찰이라고 하겠다.
ꊲ 사상(Thought)
1) 자유주의 신학의 발생에 공헌한 사상은 무엇일까?
첫째로는 칸트의 합리주의, 쉴라이에르마허의 경험신학, 헤겔의 변증법, 그리고 키에르케고르의 실존주의를 들 수 있다. 계시의 진리들은 인간의 이성으로 시험되어야 한다고 하는 이 모든 합리주의적 철학이 자유주의 신학 사상에 크게 공헌한 것이다.
둘째로는 과학의 발전이 자유주의의 발생에 공헌하였다. 과학으로 자극받은 새로운 인생관(人生觀)은 신학에도 반영되어야 한다는 확신이 있었다. 자유주의자들은 과학의 기능적, 객관적, 경험적, 탐험적, 귀납적(歸納的) 특징들이 신학의 특징도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셋째로는 사회적 복음의 발생이 자유주의 발전에 영향을 끼쳤다. 비록 이 사회적 복음은 보다 일찍이 19세기에 마르크스, F.D. 모리, 리츨(Ritschl)등의 저작에 근원을 두고 있었지만, 라우셴부쉬(Walter Rauschenbusch)가 20세기 초에 이 사상의 위대한 대변자였다. 이 사상은 교회가 복음의 경제적, 정치적, 의미에 더 많은 관심을 두게 됐던 1930년대의 경제 공항으로 더 큰 자극을 받았다.
2) 자유주의 신학은 어떤 신학사조인가?
① 자유주의는 독일의 철학적 이상주의, 곧 쉴라이에르마허의 낭만주의(Roma- nticism)와 리츨의 신칸트주의(neo-Kantianism)와 비데르만(Biedermann)의 헤겔주의(Hegelianism)에 근거한 신학사조이다.
② 자유주의는 성경의 계시와 영감을 믿는 역사적인 교리들을 부인하고, 성경에 대한 비판적인 연구들을 신뢰하는 신학 사조이다.
③ 자유주의는 현대적 과학의 발달에 따라 성경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간주하는 신학사조이다.
④ 자유주의는 신학문(新學問)에 근거한 것으로서 기독교는 신학문과 조화되어야 한다고 믿는 신학하조이다.
ꊳ 방법(Method)
자유주의는 성경에 대하여 고등비평(高等批評)한다. 고등비평(highercriticsm)이란 무엇인가?
1) 고등 비평은 하등 비평과 다르다. 하등 비평은 본문 비평인 반면에, 고등 비평은 본문을 그대로 본래의 것으로 가정(假定)하고 그 본문의 저작자와 그 저작 연대와 그 글의 내용이 믿을 만한가에 대하여 문제를 붙인다. 예를 들어 베드로전후서의 저작권을 결정함에 있어서 하등비평이 그 서신 자체의 주장이나 다른 문서에 있는 외적 증거에 의존한다면, 고등비평은 그 내용에 비추어 본질적인 가능성을 평가한다. 그래서 때때로 역사적 비평과 동일시되기도 한다. 성경비평에 대한 19세기와 20세기의 논쟁은 고등비평의 정당성에 집중되어 왔다. 그것은 고등비평이 성경의 권위를 위협하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2) 고등비평은 아스트럭(Astruc)을 위시하여 벨하우젠(Graf-Wellhausen)또는 그뒤에 드라이버(Driver)로 말미암아서 발달되었다. 그러나 이 비평 운동의 많은 주장들이 실제에 있어서 근년에 고고학의 발달에 따라서 뒤집혀졌다. 예를 들면, 누지(Nuzi) 지방과 마리(Mari) 지방에서 고고학자들이 찾아낸 것은, 성경에 기록된 족장들의 가족 풍습이 역사적 사실과 일치함을 드러냈다.
고등 비평가들은 구약의 어떤 책들의 저작자 및 그 역사성에 대한 재래의 정통적 의견을 전복시키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학설은 성립될 수 없다. 그들은 모세를 오경이 저작자가 아니라고 하며 또한 오경의 순정성을 부여하고 있으니 말이다.
3) 벨하우젠(Wellhausen)은 19세기 말엽에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으니 곧, 구약의 가장 오랜 서적으로 알려졌던 것이 실상 가장 후년에 기록되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창세기 1장을 가장 후년 곧 포로 후 시대에 돌린다. 그리고 신명기는 요시야 시대에 기록되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학설은 신용할 수 없다. 이 학설에 대하여 많은 반대자들이 반대론을 저술하였다. 야후다(A. S. Yahuda)는 벨하우젠의 학설을 반박하여, 오경은 이스라엘의 광야 시대에 저작되었다고 한다. 그는 오경(특별히 오경 말부)에 애굽 어풍이 섞였다는 이유로 그렇게 주장하였다.
ꊴ 방향(Direction)
1) 칼 바르트가 이끄는 신정통주의 신학과 불트만이 진두 지휘하는 실존주의 신학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신학적 자유주의의 퇴진은 결정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칼 바르트의 신정통주의 신학이나 불트만의 실존주의 신학이 다 같이 기독교의 메시지를 현대인의 지성과 경험에 수긍이 가도록 재 해석했다는 점에서 현대주의적 성격이 신학으로 평가할 수 있다. 동시에 칼 바르트의 성경 유오 사상(聖經有誤思想)과 기독교 교리에 관한 초역사적 해석이라든가 불투만의 신약성경의 ‘비신화학’작업 등은 하나님의 초자연 계시의 서책인 성경을 인간의 이성적 사고의 판단에 내어맡긴 결과이다. 그것은 재재주의적이며 자연주의적인 재 해석을 의미함으로 그것은 19세기와 20세기 초에 성행한 신학적 자유주의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일 수 없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2)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코넬리우스 반 틸 교수(Dr. Cornelius Van Til)는 말하기를 19세기와 20세기 초에 성행한 자유주의 신학을 인본주의적 신학이었다고 한다면 바르트계 신학은 ‘고등한 인본주의적 신학’으로 평가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는 20세기 초의 자유주의 신학자들과 똑같이 불트만과 바르트가 성경의 그리스도에 근거하는 은혜의 복음에 협동해서 도전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cornelius Van Til, Christianity and Barthianism, P. 445). 오늘날 현대 신학을 가리켜 ‘실존주의 이후 신학’이라고들 한다. 바르트의 신정통주의 신학은 신학적 지평에서 서서히 그 자취를 감추고 있고 불트만의 실존주의 신학도 그 인기가 몰락했다.
3) 현대 신학계는 「사신신학」(死神神學), 「세속화 신학」, 「상황 윤리」등 초자연적 신의 존재 자체를 과감히 부인하거나 회의하는 일련의 「급진신학」(急進神學)의 출현을 목격했고 지금은 하나님의 존재와 세상의 존재를 동일시하는 판넨베르그(Wolfhart Pannenberg)와 몰트만(Jurgen Moltmann)이 이끄는 「소망의 신학」, 「역사의 신학」, 또는 「혁명의 신학」에 박수 갈채를 보내고 있는 형편이다.
4) 그러나 이 모든 현대 신학의 최근 사조들은 1924년에 메첸(J. Gresham Machen)박사가 비판의 대상으로 삼았던 신학적 자유주의의 근본적 정신과 태도를 계승한 것이기 때문에 20세기 후반기에 재활한 신학적 자유주의로 인식함이 타당한 줄 안다. 메첸박사는 말하기를 자유주의는 인간이 자력으로 죄와 악을 극복하고 진선미의 세계를 건설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모든 외부로부터의 원조를 그러니까 하나님으로부터의 원조를 원칙적으로 거부하고 있다고 했다.
5) 그런데 오늘날 현대 신학의 최근 사상은 메첸박사가 지적 비판한 바 신학적 자유주의의 모든 특징들을 그대로 지니고 있으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의 유명한 문구 “신없이 신앞에”(Vor Gott ohne Gott)의 진의(眞意)는 “신 없이는 신은 없다”(kein Gott ohne Gott)이기 때문이다. 즉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서 존재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존재하는 유일의 길이라고 하는 최근 신학의 궤변이 하나님을 떠나서 존재하는 인간은 결국 하나님을 상실한 인간이라고 하는 역사적 기독교의 위대한 진리를 결코 꺾지는 못할 것이며 그와 같은 궤변은 자유주의 사상 때문데 신을 상실한 현대신학 자체의 절망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을 뿐인 것이다. 도대체 그 향방은 어데로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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