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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강해설교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다양한 방식

하나님아들 2017. 4. 8. 14:47

강해설교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다양한 방식

설교를 어떻게 청중에게 전달하느냐 하는 방식에는 크게 네 가지가 있다. 설교자는 그 취향이나 역량에 따라 자기 스타일에 가장 적합한 방식을 사용해야 할 것이지만, 문제가 많은 방식을 사용하는 설교자는 그것을 개선하도록 노력을 많이 해야 될 것이다.

 

A. 원고 낭독형 (reading method)

이 방식은 서론에서부터 결론에 이르기까지의 설교 내용 전체를 다 기록해서 이것을 설교 시간에 청중에게 읽어주는 방법이다.

이 방식은 몇 가지 장점이 있다.

 

첫째, 이 방식은 설교자에게 안도감을 준다. 28)

해야 할 설교를 앞에 둔 설교자 치고 일말(一抹)의 불안감이 없는 설교자는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원고 낭독형의 설교를 하면 설교하기 전이나 하는 동안에 불안감은 거의 갖지 않게 된다. 아마 이런 유형의 전달 방식을 사용하는 설교자는 토요일 밤에 편안히 잠을 잘 수 있게 될 것이다.

 

둘째, 이 방식은 설교자가 전하려는 내용을 정확히 전달하게 해 준다. 29)

설교 내용 전체를 문자로 다 기록하기 때문에 설교자가 하고 싶은 말을 하나도 틀림없이 다 전할 수 있고, 설교의 길이도 미리 다 정해 놓을 수가 있다.

 

셋째, 이 방식은 설교자에게 좋은 훈련이 된다. 30)

원고를 계속 쓰는 것은 설교자로 하여금 충분히 준비하게 하고, 또 글을 씀으로써 설교자 자신에게 큰 훈련이 된다.

 

넷째, 이 방식은 설교 원고가 그대로 남아 있게 되므로 후일에 설교집을 출판할 때나 다른 데 설교를 기고할 때 특별히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는 잇점이 있다. 31)

원고 낭독형의 설교는 위에서 열거한 장점에 비해 그 단점이 너무 크기 때문에 별로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첫째, 이 방식은 설교자로 하여금 원고에 집착하게 되므로 청중에게 시선을 주기도 어렵고, 청중의 반응을 제대로 파악하기도 어렵다. 32) 이 방법에 매여 있는 설교자는 하우(Reuel Howe)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관계가 원고보다 더 중요하다. 왜냐 하면 복음 자체가 관계 문제이기 때문이다. 설교는 원고의 전달이 아니라 만남이다." 33)

원고를 보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원고를 보고 읽어 내려갈 수 있을 정도로 원고 낭독에 특별한 재능이 있는 설교자의 경우는 예외이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원고 낭독형의 설교를 하는 설교자는 어쩌다가 한 번씩 원고에서 눈을 떼 청중을 바라볼 뿐 -- 더군다나 그것도 아무 촛점도 없이 -- 설교 시간의 대부분은 원고에 매여 거기서 꼼짝하지 못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렇게 되면 설교자와 청중은 거리감을 느끼게 되고, 그렇게 되면 설교가 효과적으로 전달되기 어렵다.

 

둘째, 이 방식은 청중에게 설교자에 대한 불신감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설교자가 원고에 얽매여서 꼼짝을 못하면, 설교자가 제대로 준비도 하지 않고서 남의 설교를 베껴서 하는구나, 설교를 제대로 소화시키지도 못한 채 하는구나 하는 불신감을 청중에게 심어줄 가능성이 많다.

 

셋째, 이 방식은 전반적인 전달 효과에 있어서 다른 방식보다 덜 효과적이다.

이 방식은 엄밀히 말하면 설교라기보다는 글을 읽는 것이기 때문에 낭독에 아무리 숙달되어 있다 해도 눈의 접촉 부재, 제스처 부재, 낭독으로 인해 오는 부자연스러움, 읽을 곳을 제대로 찾지 못함으로 인해 야기되는 설교의 중단 등의 문제점을 피할 길이 없다.

넷째, 이 방식은 성령이 특별히 역사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해 버린다.

설교자가 아무리 준비를 해도 실제로 설교를 하다 보면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설교 준비시에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말하게 하실 수 있다. 그런데 원고 낭독형은 이런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해 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이 방법은 별로 권장할 만한 것이 되지 못한다. 꼭 이 방법을 사용하려거든 많은 연습을 통해 그 단점을 극복하고 난 다음에나 할 것이다.

 

B. 암기형(memorization method)

이 방법은 원고 낭독형보다는 진일보했다고 하겠다. 이 방법으로 설교하는 설교자는 먼저 원고를 완전히 준비한 다음에 그것을 암기해서 설교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첫째, 이 방법은, 원고 낭독형과 마찬가지로, 설교자가 전하려는 내용을 정확히 전달하게 해 주고, 설교자에게 좋은 훈련이 되고, 원고를 후일에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기에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이 외에도 암기형은 원고 낭독형이 갖지 못하는 장점이 있다.

 

둘째, 이 방식은 원고를 다 암기하기 때문에 원고에 얽매이지 않게 되고, 따라서 눈의 접촉이나 제스처 같은 것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34)

 

셋째, 이 방식은 청중에게 설교자의 표현이 아주 미려하고 세련되어 있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35)

그러나 이 방식은 장점을 훨씬 능가하는 단점도 있기 때문에 주의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첫째, 이 방식은 설교자의 귀중한 시간을 너무 많이 빼앗아 간다. 36) 어느 한 교회에서 목회를 하는 설교자는 일주일에도 여러 번 설교를 하는 것이 대부분인데, 설교를 일일이 다 암기한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불필요한데 허비하는 결과가 되겠는가!

 

둘째, 이 방식은 암기한 것을 잊어버리면 어떻게 하느냐 하는 염려 때문에 신경 과민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37)

 

셋째, 이 방식은 자연스럽지 못한 가능성이 많다. 38) 그냥 자연스럽게 말하는 것에 비해서 암기한 것은 아무래도 인위적이고 암기해서 전달하고 있다는 인상을 줄 가능성이 많다.

 

넷째, 이 방식은 원고 낭독형과 마찬가지로 설교하는 도중에 성령께서 특별히 역사하셔서 미리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생각나게 하실 경우 그것을 처리할 적절한 방법이 없다. 39)

이러한 심각한 단점 때문에 암기형의 설교는 별로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다. 그러나 설교 경험이 별로 없는 초보자들이 설교를 배우는 단계에서는 이 방법으로 시작해서 설교에 어느 정도 자신이 생기게 되면 보다 효과적인 방법으로 바꾸는 것도 큰 문제는 되지 않을 것이다.

필자가 미국에서 공부를 할 때 처음에는 암기형의 설교 방식을 취했다. 우리말로 설교하는 것이 아니라 영어로 해야 되기 때문에 우리말로 하는 설교같이 표현이 자유롭지 못했던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원고를 영어로 다 작성한 다음에 이것을 암기해서 여러 번 연습을 한 후 설교 시간에 그대로 했다. 이 방법이 그대로 주효(奏效)해서인지 교수와 학생들로부터 호평을 받았고, 결국은 학교내의 설교 대회에 출전해 입상했던 경험까지도 있다.

그러나 대학원에 진학한 후에는 암기하지 않고 설교 아웃라인만 가지고 하는 방식으로 바꾸었고, 지금은 영어 설교나 우리말 설교나 모두 아웃라인만 가지고 설교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C. 즉석형(impromptu method)

이 방식은 설교자가 사전에 특별한 준비도 없이 즉석해서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설교하는 방식이다.

설교자는 어떤 부득이한 경우에 사전에 준비하지도 못한 채 설교해야만 될 예외적인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그리 흔하지 않은 편이기 때문에 설교자가 평소에도 이런 방식으로 설교한다면 그는 일찌감치 설교를 그만두는 것이 자신을 위해서나 성도들을 위해서 유익할 것이다. 이러한 설교를 계속해서 한다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불충(不忠)이요, 자신과 성도들에 대한 기만이다.

사도행전 6장에 보면, 예루살렘 교회가 점점 성장해 감에 따라 열두 사도는 구제하는 일 때문에 사도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에 주력을 못하게 되자,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제쳐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6:2)라고 하면서 일곱 사람을 택해 그들에게 세상일을 맡기고 사도들은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 했다는 기록이 나타나 있다. 사도들도 세상일을 제쳐놓고 말씀 전하는 일을 최우선으로 했다면 오늘날의 설교자도 그렇게 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말씀 준비하는 일에 게을러서 준비 없이 설교하는 설교자는 설교자로서 용서받지 못할 죄를 범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D. 아웃라인형(outline method, or extemporaneous method)

이 방식은 원고 낭독형이나 암기형과 마찬가지로 사전에 충분히 준비를 하지만, 설교 내용을 완전히 다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설교하고자 하는 바를 아웃라인 형식으로 만들어서 실제 설교할 때에는 아웃라인만 가지고 설교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지금까지 논의한 어느 방식보다도 더 좋은 방식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이 방식이 갖는 많은 훌륭한 장점 때문이다.

 

첫째, 이 방식은 아웃라인만 가지고 설교하기 때문에 설교자가 하고자 하는 말을 거의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다. 지엽적인 것들은 일부 빼먹을 수도 있겠지만 설교 전체의 내용이나 흐름에 지장이 없는 한 사소한 것을 빼먹는다고 해서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없을 것이다.

 

둘째, 이 방식은 전달이 아주 자연스럽다. 40) 원고에 완전히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가끔씩 설교의 방향이 벗나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아웃라인을 쳐다보기 때문에 청중과의 눈의 접촉, 제스처 등을 아주 자연스럽게 할 수 있다.

 

셋째, 이 방식은 그 내용에 다소 융통성이 있을 수 있다. 41) 청중의 반응이나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그때 그때 일부 내용을 빼어버릴 수도 있고 설교 준비할 때 미처 준비하지 못했던 것을 추가해서 말할 수도 있다.

어떤 학자들은 아웃라인조차도 없이 하는 소위 <자유 전달형>(free delivery method)을 지지하는 경우도 있다. 42)

 

그러나 이 방법은 할 말을 잊어버릴 경우 엄청난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아무리 설교 준비를 철저히 하고 설교 내용에 익숙해 있다 하더라도 잊어버릴 가능성은 항상 있는 것이고, 이런 점에서 자유 전달형은 암기형이 갖는 단점을 모조리 다 가지고 있다고 하겠다. 아웃라인형 전달에 대한 반론도 몇 가지 있지만 별로 설득력이 없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아웃라인형의 설교는 준비를 대충해서 설교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43)

그러나 이 반대는 별로 설득력이 없다. 설교 준비를 많이 하느냐 적게 하느냐 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전달 방법과 관계 있는 것이 아니라, 설교자의 설교 철학과 관계 있는 것이기 때문에 아웃라인형의 설교는 준비를 소홀히 할 수 있다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또 어떤 사람들은 아웃라인만 가지고 하면 설교가 횡설수설(橫說竪說)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한다. 44)

이것도 전달의 형태와 관계 있는 문제는 아니다. 설교의 조직 능력이 없는 설교자는 어느 방법을 써도 횡설수설할 것이다. 필자는 지금도 아웃라인형의 전달 방식을 즐겨 쓰지만 설교가 왔다 갔다 한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어떤 사람들은 이 방식은 아웃라인을 늘 쳐다보기 때문에 설교의 맥이 끊기고 또 눈의 접촉이 좋지 못할 수 있지 않느냐고 한다. 45)

이 반대는 상당히 일리가 있다. 아웃라인형의 설교에 익숙하지 못한 설교자는 앞을 보기보다는 아래를 볼 때가 더 많다. 그렇게 하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의 설교를 숙지해서 아웃라인이 없더라도 거의 원안대로 전달할 수 있도록 해야 될 것이다. 원고에 얽매이지 않을 정도로 설교 내용을 숙지하고 있다면, 청중이 볼 때에는 설교자가 원고를 보는지 안 보는지도 모를 정도로 자연스럽게 전달할 수 있다.

어느 방법도 전혀 문제가 없을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웃라인형의 전달 방식이 가장 문제가 적고 그리고 그 문제는 조금만 노력하면 극복될 수 있으며, 또 이 방법은 많은 장점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가장 바람직한 형태라고 하겠다.

 

맺는말

설교를 한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그것도 동일한 청중을 대상으로 수 년간, 또는 수십 년간 설교한다는 것은 너무나 힘드는 일이다. 어떻게 보면 설교자는 불가능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설교를 아무리 오랫동안 해 온 설교자라도 모두 설교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잔 맥아더(John MacArthur) 같은 유명한 설교자도 어쩌다가 외부 강사가 와서 주일 설교를 쉬게 되면 뛸듯이 기쁘다고 고백하고 있지 않은가! 이것은 맥아더 뿐만 아니라 모든 설교자들이 공통적으로 느끼고 있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더구나 그렇게 힘든 설교를 효과적으로 잘한다는 것은 더 힘든 일이다. 더더구나 강해 설교를 자신 있게 한다는 것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일이다. 그것은 생득적(生得的)인 것도 아니고 저절로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많은 연구와 기도와 묵상을 통해서 나오는 결과요, 부단한 노력의 결정체이다.

필자는 필자의 졸저를 완전히 터득하면 그 순간부터 강해 설교의 대가가 된다는 식의 참람한 말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사실은 필자도 아직 그렇게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서의 내용을 완전히 터득하여 이 방식대로 일주일에 설교 하나씩 1년 동안만 끈기있게 설교하면-- 특별히 어느 한 책을 택해서 시리즈로 설교한다면-- 강해 설교에 상당히 자신감을 가지고 설교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은 주저함이 없이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독자들은 다음과 같은 영어의 격언을 명심하기를 바란다: Practice makes perfect (연습하면 안될 일이 없다!).

출처 : 영성회복훈련원
글쓴이 : 양승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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