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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에스라 개요

하나님아들 2016. 5. 31. 21:49

                              오케이에스라

 

에스라 개관

 

1. 제목과 저자

 

1) 제목

본래 히브리어 성경에는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를 한 권의 책으로 묶어서 '에즈라'로 불렀다. 그러나 에스라 2장의 내용이 느헤미아 7장에서 반복되며, 이 두 책이 나름대로의 특징을 지닌다는 것을 고려해 볼 때 이 두 책은 별개의 것으로 기록되었을 것이다. 헬라어 칠십인역에서는 본 서를 '에스라1'라고 했으며, 라틴어 벌게이트역에서는 오늘날과 같이 '에스라'로 칭하였다. 그러므로 본 서의 제목은 본 서의 저자인 동시에 중심 인물인 제사장 에스라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2) 저자

에스라서의 저자는 지금까지 학사인 에스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몇몇 학자들은 에스라서에서 저자에 관한 정확한 언급이 없고, 문장도 1인칭과 3인칭이 섞여서 나온다는 사실에 근거해서 서로 다른 몇 사람에 의해서 기록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탈무드의 기록에는 본 서의 저자를 에스라로 밝히고 있다. 또한 문장의 주어가 바뀌는 경우는 저자가 한 사람일 때도 나타나는 것으로서 고대 바벨론 문서나 다니엘서에서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에스라가 자신을 가리켜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사' (7:6)라고 부르는 것이 에스라 저작설에 대해 약간 부자연스러운 느낌을 주지만, 이러한 묘사도 역사 문헌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것으로서 오히려 에스라의 지식과 그 심오한 사상의 제시라는 측면에서 이해될 수 있다. 또한 본 서는 제사장적 관점에서 역대기와 비슷한 문체로 기록되었으며, 사건 묘사의 치밀성으로 보아서도 에스라의 저작인 것이 유력하다.

 

2. 기록 연대와 기록 목적

 

1) 기록 연대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와 역대기는 그 시대적 배경이 연속적이어서 기록 연대상 상당히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에스라서의 기록 연대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의 견해가 있다.

후기 연대설: 에스라서를 느헤미야서보다 더 늦게 기록되었다고 보는 견해로서 비평주의적 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이다. 모빙켈(Mowin-ckel)은 본 서의 기록 연대를 주전 200년경으로 잡았으며, 토레이(Torrey)는 주전 250년경으로 추정한다. 그리고 19세기와 20세기초의 비평주의자 학자들은 12:11, 22에 나오는 얏두아가 요세푸스의 책에 나오는 알렉산더 대왕의 얏두아와 동일 인물임을 내세워 주전 300년경에 기록되었다고 본다.

전기 연대설: 이 견해를 따르는 학자들은 12:11, 22에 나오는 얏두아가 요세푸스의 책에 나오는 얏두아와는 동명 이인이라고 주장하며 후기 연대설을 반대한다. 에스라서는 느헤미야의 귀국 후인 주전 444년 이후에 기록되었을 것이라고 그들은 주장한다. 결론적으로 에스라서에서는 전기 연대설을 지지하며, 에스라가 느헤미야 때의 대제사장인 여호하난의 방에 들어간 기록을(10:6) 통해 볼 때, 에스라서는 에스라 생애 말기인 주전 444년 이후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한다.

 

2) 기록 목적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거의 같은 시기의 포로귀환의 역사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비슷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에스라나 느헤미야의 기록 목적이 유사하다. 에스라서의 기록 목적은 첫째, 포로귀환 이후에 벌어진 성전 건축의 역사를 보여 주기 위함이다. 둘째, 성전 건축과 같은 하나님의 사업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백성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기 위함이다. 에스라 3장에 나오는 성전의 기초 건축을 위한 백성들의 일치 단결(1), 방해 세력에 맞서는 용기(3), 자발적인 예물 헌납(4-7), 조직적인 역할 분담(8, 9) 등에 관해 기록되어 있다. 셋째, 70년이라는 바벨론 포로 기간과 포로귀환 그리고 성전 재건을 통해서 드러난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증거하기 위해서이다. 믿지 않는 자에게는 포착될 수 없지만,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알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3. 주제 및 특징과 구성

 

1) 주제 및 특성

본 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귀환과 성전 재건이 주제를 이루고 있으며, 특징으로는 먼저 포로 후기 역사서라고 할 수 있는데, 느헤미야와 더불어 포로귀환 이후의 사건을 다루는 구약의 마지막 역사서이다. 또한 역대기와 느헤미야서와 유사하게 이스라엘 전통 종교의 회복을 염원하는 제사장직 문서라고 할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예배와 신앙의 구심점인 성전이 재건되는 과정을 보여 주는 것을 보아서도 이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에스라서에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과의 언약 관계가 강조되고 있다. 언약은 족장 시대 이래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을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으며, 포로 후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언약 백성들 보존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돋보일 뿐만 아니라 여호와 신앙의 순수성이 강조되고 있다.

 

2) 구성

예스라서는 바벨론을 멸망시킨 바사 제국의 고레스 왕의 조서로부터 시작된다.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70년의 포로 생활이 끝나고 스룹바벨의 인도하에 약 5만 명에 달하는 귀환민들이 유다 땅으로 돌아오게 되었다이런 본 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전반부(1-6)와 후반부(7-10)로 나눌 수 있다. 전반부는 에스라 이전의 사실에 관한 내용으로 주로 스룹바벨의 인도하에 일어난 제1차 귀환과 귀환자의 명단(1:1-2:70) 그리고 성전 재건의 시작과 중단, 재개와 완성(3:1-6-22)등이 기록되어 있다. 전반부의 가장 중요한 내용은 성전 재건이다. 후반부는 에스라 이후의 사실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데, 전반부와 후반부 사이에는 약58년의 공백 기간이 있었다. 이 기간 동안 이스라엘 백성은 이방 여인과 혼인하는 등 신앙의 순수성을 상실해 갔다. 이런 시점에서 에스라 인도하의 제2차 귀환(7:1-8:36)이 이루어졌고 그후 에스라의 종교개혁(9:1-10:44)이 발생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하나님과의 언약 갱신이 완성되어 갔고,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에 일대 혁신이 일어났다.

 

[연구1] 포로귀환과 성전재건(1-6)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계획과 역사를 이루신다. 그러나 때로는 믿지 않는 자들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시기도 한다. 에스라서에 나타난 바사 왕 고레스의 포로 귀환 조서는 바로 그런 것이다. 이방 민족의 왕인 고레스를 통해서 예레미야의 예언(29:10-14)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에스라 1-6장 사이에 잘 나타난다. 또한 고레스의 조서 가운데 예루살렘 성전 재건 허락에 관한 부분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잘 드러내는 증거이다. 본연구에서는 스룹바벨 인도하의 제1차 귀환과 성전 재건을 살펴보면서 거기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섭리와 신앙인의 바른 모습이 무엇인가를 조명해 보고자 한다.

 

1. 스룹바벨 인도하의 제1차 귀환(1, 2)

 

1) 포로귀환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

본 단락은 역대하의 끝부분(대하36:22, 23)에 곧바로 이어지는 내용으로서 포로귀환에 관한 하나님의 약속이 어떻게 성취되는가를 보여 준다. 약육강식이라는 힘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던 그 당시의 제국들이 정치적 분위기 속에서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은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포로귀환을 통해 비록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렸지만, 하나님의 언약은 영원토록 변함없음을 알 수 있다.

 

2) 1차 포로귀환

자신들의 본향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낙망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적과 같은 일이 눈 앞에서 일어난다. 그것은 고레스라는 한 왕이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로에서 해방시켰던 것이다. 그리고 스룹바벨을 중심으로 하여 약 5만 명의 사람들이 첫 번째 귀환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것을 통해 바로 인류 역사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이 드러나게 된다. 고레스는 이스라엘 백성과 원주민들에게 성전 기명에 대한 명령을 내렸다. 이것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나라의 확장을 위해서는 세속 국가도 도구로 사용하시며 또한 당신의 자녀들에 대한 하나님의 보호와 약속하심은 신실하게 이행하신다는 것(3:10)을 우리에게 깨닫게 해준다. 그 다음으로 귀환자들의 명단이 나오는데, 귀환자들의 주된 목표는 성전 재건이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최우선 과제도 주의 일임(고전4:2)을 깨닫게 해준다.

 

3) 세상의 주관자이신 하나님

하나님은 이 세상의 역사를 주관하시며 섭리하고 계신다. 본 서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그의 자녀 된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로 생활에서 돌아오게 하시고, 그 도구로 세상 권세도 사용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인류의 역사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경험하는 작은 일들 가운데서도 동일하게 역사하심을 우리는 얼마나 믿고 있고 느끼고 있는지 자신을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다(6:26). 또한 귀환자들의 명단에는 지도자들이 있었고 제사장과 레위 사람, 계보가 불분명한 사람 등 여러 사람들이 있었다. 또한 그들은 돌아와서 성전 재건을 위해 자신들의 물품을 헌납하였다. 혹시 오늘날 우리의 모습 속에 더 중요한 직책을 맡지 못했다고 해서 우리의 봉사와 충성이 별로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지는 않는지 살펴보고, 복음 전파와 봉사를 위하여 내 삶을 얼마나 드리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2. 성전재건(3-6)

 

1) 성전재건의 어려움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단의 건축과 함께 715일의 초막절을 준수하였다. 그리고 이 초막절 준수를 시작으로 모든 절기들은 재확립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귀환한지 2년째 되는 해의 2월 봄이 되었을 때 비로소 이스라엘 백성들은 스룹바벨의 감독하에 예루살렘 성전 재건을 시작하였다. 여기에 필요한 경비는 바사 왕 고레스에게서 받은 하사금에서 일부가 제공되었다. 그러나 성전이 재건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사마리아 사람들과 인근의 다른 족속들이 자기들도 성전 건축에 참여하겠다는 억지 주장을 한다. 그러나 그들의 이런 주장이 이스라엘인에게 거절당하자 모든 가능한 방법을 동원해서 방해하기 시작한다. 이와 같은 모든 장애물이 제거된 후 성전은 약 5년만에 완공되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성전을 봉헌하고 이어 매년 1회의 유월절을 지켜 왔다.

 

2) 성전재건이 주는 의미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최우선의 과제는 성전 재건이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언약의 회복과 하나님과의 교제 회복을 의미하며, 이는 또한 훗날 그리스도께서 값주고 사신 교회의 건설을 예표한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종교적 혼합주의자들인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들의 혼합 정책을 제안하였다. 그들의 이런 혼합주의적인 성격은 결국 거절당하게 되고, 이것은 예수님 당시까지도 이어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멸시받게 된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신앙인을 파멸로 인도하는 것은 항상 가까운 데 있는 사람이나 사물인 경우가 많으며(3:1-3), 또한 우리의 신앙에서 환난과 시련은 예외일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성전은 완성되고 봉헌식과 유월절이 지켜지는데, 이것은 예배의 회복을 통한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보여 주며, 아울러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확인하는 의미를 지닌다.

 

3) 성전재건을 통한 신앙의 순수성

성전 재건을 위해 노력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사마리아 사람들은 교묘한 혼합주의적 성격으로 그들을 돕겠다고 제안한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단호하게 거절한다. 우리는 삶 속에서 불순한 동기로 우리의 사역이나 교회 활동에 참여하고자 하는 사람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하겠다. 또한 방해 공작으로 15년간이나 중단된 성전 재건의 역사처럼 혹시 우리 가운데도 시련이나 환난으로 인해 하나님의 일을 중단하거나 그만둔 적은 없는지 되돌아보고, 오히려 그런 환난이나 시련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이방 나라인 바사 제국의 고레스 왕을 통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로에서 해방시켜 주셨다. 여기서 우리는 온 인류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엿볼 수 있으며, 당신의 선민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신실하심을 살펴볼 수 있다. 또한 스룹바벨의 인도하에 성전 재건을 시작하지만, 대적작들의 방해로 온갖 어려움과 중단되는 위기 속에서도 결국 성전을 완공하는데, 이것은 선민 이스라엘의 신앙의 승리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의 언약 회복이라는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결국 이 성전 재건은 죄로 인해 원수가 되었던 인간과 하나님 사이를 단번의 희생 제사로 회복시킨 예수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중요한 사건이다. 결국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성취되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연구2] 포로귀환과 개혁(7-10)

 

교회가 역사 앞에서 한 민족이나 국가를 도덕적으로 이끌지 못하고 주도하지 못할 때 나라와 국가는 도덕적으로 타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법과 도덕적인 신념이 없이 그대로 내버려두면 자연히 타락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되어 돌아오기는 하였지만 율법이 제대로 선포되지 못하고 율법을 제대로 알지 못함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이방인과 통혼하는 등 죄악에 빠져 지내게 되었다. 이때 에스라를 중심으로 바벨론에서의 2차 귀환과 개혁이 일어나게 되는데, 본 연구에서는 그 구체적인 귀환 정책과 개혁을 살펴보며 그것의 구속사적인 의미를 찾고자 한다.

 

1. 에스라 인도하의 제2차 귀환(7, 8)

 

6장과 7장 사이에는 최소한 58년이라는 시간 차이가 난다. 그렇다면 에스라의 예루살렘 귀환은 대략 어느 시기인가? 그리고 에스라는 어떠한 인물인가? 에스라와 함께 2차 귀환에 참여한 사람의 숫자는 얼마이며, 이들이 귀환 중에 아하와 강에 도착하여 누구를 모집했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 또한 재정관리자 10명을 세운 목적과 몇 개월만에 예루살렘에 도착하였는가?

 

1) 하나님의 인도하심

에스라의 예루살렘 귀환은 대략 주전 458년의 일이다. 에스라는 율법에 정통한 학사로서 대제사장 아론의 16대 손이다. 그는 아닥사스다 왕(B.C.464-424)이 이스라엘의 신앙 부흥을 위해 예루살렘으로 보낸 사람이다. 아닥사스다 왕은 포로귀환과 성전 예배의 회복과 율법 준행에 필요한 원조를 지원해 주겠다는 조서를 내렸다. 그리고 에스라와 함께 2차 귀환에 참여한 사람들은 약 9천 명 정도가 되는데, 에스라는 그들과 함께 9일 동안 여행한 후에 아하와 강에 도착하여 성전 제사를 감당할 레위인을 모집하였다. 이는 서기관이었던 에스라의 성전 예배에 대한 지극한 관심이 표출된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지켜 주심을 바라면서 금식을 선포하였다. 그리고 앗수르 군대의 호위를 거절하고 귀환자들로만 여행을 시작하였다. 그래서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재정 관리자 10인을 세우고 그들로 하여금 성전 기명들과 무리들이 바친 예물을 관리하도록 하였다(8:25-30). 2차 귀한에 참여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 4개월에 걸친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하나님께 감사 제사를 드렸다.

 

2) 매일 자신을 점검하는 신앙

에스라는 아닥사스다 왕의 배려로 풍성한 헌물과 함께 본토로 돌아오게 되는데 그는 감격에 차서 하나님을 송축하였다(7:27,28). 찬양은 우리의 신앙의 표현이다. 우리는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의 은총에 대해 찬양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에스라는 여호와의 율법을연구하고 준행하여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율례와 규례를 가르치기로 결심하였다(7:10). 우리도 에스라처럼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연구하고 그대로 실천하고 있는지 점검해 보아야 한다. 그럴 때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이 될 것이다.

 

2. 에스라의 종교개혁(9,10)

 

1차 귀환(B.C.537) 이후 스룹바벨이나 예수아가 죽고 난 후 이스라엘은 영적 지도자가 없이 약 58년간을 보내게 되었다. 그래서 신앙적으로 나태해진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인과 결혼하는 범죄를 저질렀다. 그 범죄함의 배경은 무엇인가? 그리고 에스라의 첫 번째 종교개혁 정책은 무엇인가? 또한 3개월간 이방인과 결혼한 사람은 모두 몇 명이었는가?

 

1) 에스라의 회개 운동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귀환한 사람들은 오랫동안 이방 지역에서 이방인의 문화, 종교에 젖어 있었기 때문에 이방인과의 결혼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그래서 이방인과의 통혼 문제는 포로귀환자들에게 첫번째로 닥친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그리하여 에스라는 저녁 제사를 드리기위해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모였을 때 중보적인 성격을 띤 회개 기도를 하였다.

이 에스라의 회개 기도는 곧 이스라엘 전체 백성들의 회개 운동으로 이어졌다. 스가냐가 먼저 이방인 아내를 내어보내고 이에 용기를 얻은 에스라가 총회를 소집하여 이방 여인을 내어버리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많은 비로 인해 야외에서 있지 못하고 결국 방백들로 하여금 통혼자들을 조사하기로 하였다. 그래서 3개월간의 통혼자 조사를 통하여 이방인과 결혼한 사람 112명의 명단을 파악하였다.

 

2) 신앙의 순수성

믿지 않는 자와의 결혼 문제는 에스라 때뿐만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중요한 문제로 취급된다. 구약 시대에는 7:1-4에 근거하여 잡혼을 엄격하게 금지하였다. 그 이유는 이방 여인들과의 결혼으로 신앙의 순수성과 혈통적 단일성이 유지되지 못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구약성경을 통해 요셉이 애굽 여인과 결혼한 것 (41:45)이나 모세가 구스 여인을 취한 사실(12:1)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방인과의 결혼을 엄격하게 금지시킨 것은 우상 숭배나 종교적 혼합주의를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오늘날에도 믿지 않는 자와의 결혼 문제는 단순히 사랑이나 윤리적인 차원이 아닌 신앙의 순수성을 지킨다는 차원에서 고려되어야 할 일이다. 이스라엘의 회개 운동은 단순히 감정적인 입술의 회개가 아니고 행동으로 이어지는 변화의 차원까지 나아갔다. 오늘날 우리의 모습에서도 수많은 회개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이스라엘의 회개 운동처럼 진정한 행동의 변화로 이어지는 참된 회개가 일어나야 할 것이다어느 시대나 교회가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지 못하고 세상 문화나 비기독교 문화와 타협하여 세상 문화를 아무런 여과 없이 수용할 때 자칫 신앙을 잃어버리고 단순한 윤리나 도덕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에스라 당시에도 선민 이스라엘 백성은 무한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서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돌아오게 되었다. 그러나 스스로 하나님 앞에 근신하며 깨어 있지 못함으로써 타락하고 말았다. 이럴 때 나타난 에스라의 종교개혁은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을 회복시키고 하나님의 언약을 회복시키는 사건이 되었다. 오늘날도 교회가 계속해서 개혁되지 못한다면 바벨론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도 다시 타락하고 약해질 가능성이 있다.

출처 : 민주법률 Academy
글쓴이 : 민주광장21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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