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수도원 교회 전경

[스크랩] 터키 ‘성 소피아성당’

하나님아들 2015. 6. 2. 17:32

 

 

 

터키 ‘성 소피아성당’을 여행하고~ (2014.9.18)

 

 

 

▲ 소피아성당을 입장하기 위해 기다리는 관광객들.

 

 

우선 성당(현재 명칭은 아야 소피아박물관)에 들어서면 아름다움과 웅장함으로 압도된다.

물론 지금은 박물관으로 변했지만~

그 옛날에 어떻게 이런 찬란한 건물을 지었을까 감탄스럽다.

그러나 지금 내부 보수공사 시설물로 전체 모습을 고스란히 한번에 보기 어려운 점이 다소 아쉽다.

 

자료에 의하면,

동방교회의 대표적 성당이었던 성 소피아(St. Sophia) 성당은 세 차례에 걸쳐 지어졌다고 한다.

첫 번째는, 콘스탄티우스 2세에 의해 360년에 건축되었으나, 어떠어떠한 사건으로 404년 소실되었고

두 번째는, 테오도시우스 2세에 의해 415년 건축되었으나, 어떠어떠한 사건으로 532년 전소되었고

지금 세 번째 현 건축물은 유스티니아누스 1세 황제 때, 532년 2월 23일에 공사를 시작하여 약 6년이 지난 537년 12월 27일 완공되었다 한다.

그러니까 현재 2014년 11월을 기준으로 하면, 약 1477년이나 되었다는 말이 된다.

1626년 성베드로대성당이 완공되기 이전까가지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 성당이었다고 한다.

 

현 ‘아야 소피아’는 순탄치 않은 역사를 겪게 된다.

로마제국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강력한 로마를 다시 세우기 위해 330년 비잔티움에 새로운 수도를 정하고 자신의 이름을 따 ‘콘스탄티노플’이라고 명명하고 새로운 역사를 만들기 시작했지만,

몇십년후 로마제국은 동ㆍ서로 나누어지는 불행한 일이 벌어지며, 이곳 동로마제국(=비잔틴제국)은 1453년 5월 29일 오스만 제국의 21살 먹은 젊은 술탄 메흐메트 2세에 의해 멸망이 되었고, 도시 이름도 콘스탄티노플에서 '이슬람의 땅' 이라는 의미의 이스탄불로 바뀌었다.

 

아야 소피아는 오스만 제국에 의해 콘스탄티노플이 정복당하기 전날인 1453년 5월 28일 자정, 콘스탄티누스 11세의 마지막 미사를 끝으로 이 아름다운 건물은 916년간 성당으로 사용된 역사를 마감한다.

 

동로마제국을 접수한 술탄 메흐메트 2세도 성 소피아성당의 아름다움에 압도되어 이 성당을 개조하여 네 개의 미나레(이슬람사원의 첨탑)을 세워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하기로 결정하였고, 그에 따라, 비잔틴 제국이 남긴 이 장엄한 성당은 이슬람 사원이 되는 운명을 맞게 되었으며,

소피아 성당의 건축양식은 이슬람 사원의 기본 모델이 되어 블루모스크와 같은 모든 이슬람사원의 건축 외형이 소피아 성당과 닮은 모습이 된 것이다.(내 추정에는 첨탑은 이집트 오벨리스크를 모방하지 않았을까 예상한다.)

 

오스만제국은 벽에 그려져 있는 아름다운 모자이크를 우상이라고 생각하고 처음에는 천으로 덮었으나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한 메흐메트 2세의 증손자인 술레이만 2세때, 남아 있는 기독교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건물 내부를 모두 회칠로 덮어버리고 그 위에 이슬람 문양을 도배했다.

 

그러나 슬픈 일이지만 이런 일도 있다.

성당내 성화의 우상숭배 문제로 동로마에서는 727년부터 843년까지 성상을 없애는 일이 발생했는데, 이때 많은 성화가 손실된 것으로 추정된다 한다.

그러므로 현재 남아있는 성화는 이때 이후 작품으로 봐야 할 것이다.

(참고; 로마가톨릭은 성상허용 입장을 취함)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1931년 미국인 학자인 토마스 휘트모아가 회덧칠에 숨겨진 성화 일부를 발견하자, 이에 세상은 두 문화의 절묘한 동거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는데,

이후, 이곳은 성지 순례하듯 교인들이 방문하여 세계적인 명소가 되었다.

이곳도 1453년 부터 1934년까지 481년 동안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되다 근래 1935년 부터는 아야 소피아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아야 소피아는 박물관임에도 불구하고 전시물은 거의 없는데,

그 이유는 건물을 구성하고 있는 벽체, 기둥, 천정, 바닥 등 건물 자체가 빼어난 전시물이기 때문이다.

 

지루한 말은 그만하고, 몇몇 장소를 구경해 보자.

모든 곳을 사진으로 자세히 보여줄 수 없는 점을 이해하여 주시고,

실내가 어둡고 사람들도 많고, 패키지여행이라 자세히 볼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어 많은 사진을 남기지 못했고, 더욱이 현재 공사중으로 과거 소피아성당의 위엄한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었던게 아쉬웠다

 

※ 현재 명칭은 ‘아야 소피아 박물관’이지만 여기서는 ‘성소피아성당’으로 통일한다

 

 

 

▲ 측면에서 본 성소피아성당의 모습

 

 

 

▲ 입구

문 위에 예수님의 성화와 실내 반원형 돔 내부에 예수님을 안고 계신 성모님의 모습이 조그맣게 보인다.

 

 

 

▲ 모자이크 성화

오른쪽 원에는 띠를 든 천사 가브리엘, 왼쪽 원에는 성모 마리아의 모습이다

예수님의 오른쪽 발 아래에는 레오 6세 황제가 회개하고 있는 모습이라 한다.

예수님이 들고 계신 책의 글귀는 그리스어로 "너에게 평화를, 나는 세상의 빛이다" 라고~.

 

 

 

▲ 아기 예수님을 안고 계신 성모님

지금도 생생하게 살아 있는 모습을 느낄 수 있다.

위 사진에서 양쪽으로 보이는 원판에는(총8개) 하트(Hat)라는 아랍식 서체로, 알라, 무함마드 등 이슬람 성인들의 이름이 쓰여진 것이라고 한다.

 

 

 

▲ 2층에서 바라본 1층 내부 모습이다.

원판이 있는 2층 부분은 황후를 위시한 여자들이 예배를 보던 곳으로, 그 중앙부분 자리가 황후의 예배 자리였다 한다.

공사 시설물로 반쪽짜리 모습이 되었고, 넓은 전체 모습을 다 볼 수 없어 아쉽다.

그러나 전체 모습을 가늠해보면 웅장한 모습을 실감할 수 있다.

 

 

 

▲ 1층 실내에서 제단쪽 모습

 

 

 

▲ 2층에 황후의 예배자리라는 곳에서 바라 본 모습

사진 중앙 하단에 자세히 보면 제단에 뭔가 세워진 것을 볼 수 있는데, 아래 사진과 같다.

 

 

 

▲ 이슬람의 성지인 메카의 방향을 표시하는 미흐랍이다.

바로, 이슬람사원으로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 천정의 모습

천정의 구조에는 많은 기술적 요소가 담긴 형태라는데 어려워서 설명은 생략.

하단 중앙 돔의 지름은 32미터가 넘는 엄청 큰 규모다. 

 

 

 

최후의 심판에서 성모마리아와 세례요한이 탄원하고 있는 장면이다.

왼쪽은 성모 마리아, 오른쪽은 세례 요한.

두 사람이 예수님에게 인간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는 장면이다.

아래 그림은 원래 그림을 추정한 그림이다.

 

이 성화는 황금으로 모자이크한 것인데, 훼손된 이유가

십자군 전쟁 때 병사들 사이에 이 벽화 조각을 몸에 지니면 무사히 귀가할 수 있다는 소문이 돌아서 뜯어갔다는 말도 있고~

여기의 금을 떼서 먹으면 병이 낫는다고 해서 이렇게 된 것이라고도 하고~

회칠한 것을 벗겨내는 과정에서 손상된 것이라고 하기도 하고~

하여튼 손상된 성화의 모습이 몹시 안타깝다.

 

 

 

▲ 그러나 나는 이 성화가 매우 맘에 들어 인화를 생각중이다.

 

 

 

▲ 예수님 좌우로, 왼쪽이 콘스탄티누스 9세, 오른쪽은 조에 황후.

 

 

 

▲ 아기예수를 안고 계신 성모님 좌우로, 왼쪽에는 비잔틴 황제 콤네노스 2세가 성당 건축기금을 상징하는 돈주머니를, 오른쪽에는 왕비 아이린이 봉납명세서를 들고 있는 모습. 꺽인 벽에는 아들 알렉시우스다.

 

 

 

▲ 성모님의 품에 안긴 아기 예수에게,

오른쪽에는 이 도시를 건설한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콘스탄티노플을, 왼쪽에는 유스티니아누스 1세 황제가 성 소피아 성당을 봉헌하는 모습이다.

 

 

 

▲ 부속건물

여기서 무슨 공의회가 열렸다고 가이드가 말해서 기념으로 찍었다.

 

 

 

▲ 보스포러스해협에서 바라본 성소피아성당 모습

이집트 오벨리스크를 닮은 첨탑 4개도 같이 보인다.

 

 

- 끝 -

 

 

 

 

출처 : 필립보 최
글쓴이 : 최필립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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