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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성령수양회 토크3. 성령님은 무슨 일을 하시는가?

하나님아들 2015. 5. 28. 23:25
 

<알파-주말수양회>

3. 성령은 무슨 일을 하시는가?

(What Does the Holy Spirit Do?)

요한복음 14:16-17



                                                            홍만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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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말


성령이 하시는 가장 중요한 일은 죄인을 거듭나게 하는 일이다. 우리가 죄인임을 책망하시고, 오직 예수님으로만 의롭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시고, 예수를 믿지 않는 자는 결국 심판받을 수밖에 없음을 경고하신다. 성령은 우리를 구원하실 뿐만 아니라 그 구원을 자라게 하사 완성시키신다.

1. 생명을 주어 하나님의 가족이 되게 하신다 (Children of God)

        1) 우리의 죄를 완전히 용서하신다 (롬 8:1, 미 7:19)

        2)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에 들어가게 하신다 (요 1:12, 롬 8:14-17)

        3) 특권, 친밀, 체험, 안전을 제공하신다 (롬 8:14-17)


2. 하나님과 친한 가족이 되게 하신다 (Relationship of God)

        1) 하나님께 나아가게 인도하신다 (엡 2:18)

        2) 우리의 기도를 도우신다 (롬 8:26)

        3)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게 하신다 (엡 1:17-18)


3. 하나님을 닮은 가족이 되게 하신다 (Family of God)

        1) 우리의 자화상을 바꾸신다 (고후 3:18)

        2)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신다 (갈 5:22-23)

        3) 예수님을 닮게 하신다 (고후 3:17-18)


4. 가족끼리 하나되게 하신다 (Unity of God)

        1) 예수님은 일치를 위해 기도하셨다 (요 17장)

        2)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하나되기를 호소했다 (엡 4:3)

        3) 모든 성도들은 한 성령을 모신 자이다 (엡 4:4-6)



5. 가족에게 은사를 주신다 (Gift of God)

        1) 성령이 주시는 다양한 은사를 받으라 (고전 12:1-11)

        2) 성령이 주신 은사를 최상으로 개발하라

        3) 개발된 은사를 목적대로 사용하라 (벧전 4:10-11)



6. 가족이 성장하게 하신다 (Growth of God)

        1) 능력을 주어 증인이 되게 하신다 (행 1:8)

        2) 소원을 주어 사역을 행하게 하신다 (빌 2:13)

        3) 또 다른 가족을 재생산하게 하신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 (롬 8:9).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은 성령을 받은 자이다. 그러나 모든 그리스도인이 성령으로 충만한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권고한 것이다 (엡 5:18-20).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있는 책이 있습니다.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라는 책입니다. 저는 거기에 나오는 짤막한 이야기 한 토막, 아주 감동을 주는 이야기를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임종이 가까운 한 노인이 있었습니다. 그가 지금 병원에 입원되어 있으면서 사경 속에서 점점 악화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바로 몇 시간 전에 있었던 심장마비와 또 이에 따르는 강한 진통제로 인해서 정신이 몽롱해진 가운데 있었습니다. 들리는 것도 보이는 것도 다 희미하게, 감각이 희미해진 그런 상태입니다.

이제 간호사가 큰 소리로 이분에게 외쳤습니다. "할아버지, 아드님이 오셨습니다." 이렇게 이야기 했지만은 간신히 눈을 돌릴 정도였습니다. 간호사는 또 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렇게 기다리던  아드님이 왔습니다." 그때 건강하게 생긴 해병대 복장을 한 청년 하나가 문에 들어섰습니다.

노인은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하는 몽롱한 상태에서 자기를 찾아온 젊은이에게 힘없는 손을 내밀었습니다. 이 청년은 그 노인의 손을 두 손으로 꼭 붙잡았습니다. 그리고 서로 주고받는 말은 없었습니다. 이렇게 한밤을 꼬박 지냈습니다. 의사와 간호사가 간간이 들어와서 상태를 체크하고 갔습니다. 간호사는 정성스럽게 앉아있는 그 청년을 보고 이렇게 너무 피곤하게 지내지 말고 잠깐 눈이라도 좀 붙이라고 말했습니다 만은 이 청년은 머리를 저으면서 아니라고 여전히 그 노인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었고, 손을 꼭 쥐고 있었습니다. 한밤을 꼬박 세웠습니다. 새벽녘이 되었을 때 이 노인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간호사가 들어와 꽂아놓았던 산소 호흡기라던가 모든 주사바늘을 다 뽑고 있을 때 이 청년은 갑자기 이렇게 묻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 노인은 누구입니까?" 간호사는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그러면 당시는 이 노인의 아들이 아니세요? 이 노인이 당신의 아버지가 아니세요?" 청년은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전혀 아닙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그 노인과 함께 밤을 세운 겁니까?" "제가 아버지가 위독하시다는 급한 전화를 받고 이 병실 문을 여는 순간 '아차' 무슨 착오가 생겼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무언가 사무착오가 되어서 동명이인이 된 내가 여기에 왔구나,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그 노인의 눈빛을 보는 순간 그의 외로움에 사로잡혔고, 도저히 내가 당신의 아들이   아닙니다, 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대로 이 자리를 지켜야했고 끝까지 임종을 보아야 했습니다. 나는 도저히 이 자리를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교우 여러분! 목이 타는 듯한 갈증을 느끼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냉수 한 그릇입니다. 오직 냉수 그 외에 아무 것도 소원이 없습니다.

이처럼 사경을 헤매며 임종이 가까운 이 노인에게는 누군가가 옆에서 손을 잡아줄 바로 그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누군가 자기 곁에서 자기와 함께 해 줄 그런 동반자와 위로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청년이 바로 그런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누군가 나와 함께 해주는 존재가 필요합니다. 늘 내 곁에 있어주는 존재가 꼭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런 놀라운 축복을 약속하고 계십니다. 나는 이제 인류의 구원사역을 다 마치고 하늘로 올라간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와 함께 하시는 다른 보호자가 오실 것이다. 그는 나와 똑같은 본질의 위로자와 동반자로 오실 것이다.

그 동안 제자들이 어디를 가든지 여전히 함께 하시며 동행하셨듯이, 앞으로도 여전히 동행하시며 함께 하시는 성령님을 소개하고 계십니다. 그 이름, 보혜사!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이라는 점을 세 번씩이나 거듭 주지시켜 줍니다.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시는 분, 우리와 함께 사시는 분, 우리 안에 머무시는 분! 다시 말씀드려서 나를 결코 떠나지 않고 곁에 계시는 분, 지금 나와 함께 하시는 분, 그리고 내 안에 계속 머무르시며 나와 동행하시는 분이 곧 성령님이십니다.

그래서 성령님의 이름을 『보혜사』라고 합니다(요 14:16,26. 15:26. 16:7). 보혜사란 말은 헬라어로 Paracletos인데, 가장 넓은 의미에서 "돕는 자, 구원자, 조력자, 원조자"라는 뜻입니다. 요즘 영어 번역에서는 "도우시는 분(Helper), 위로자(Comforter), 상담자(Counsellor)"라고 번역합니다.

보혜사, 패러클레토스, 우리를 괴롭히는 마귀를 패러오신 분이십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영원한 파트너로 오신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파트너를 잘 만나야 합니다. 파트너를 잘 만나야 시너지 효과를 누립니다.

찬양대의 파트너가 누구냐에 따라 함께 헤매이기도 하고, 자기 실력보다 훨씬 더 잘 부르기도 합니다. 운동 파트너가 누구냐에 따라 실력도 향상되고, 즐겁게 놀 수도 있습니다. 못하는 사람끼리 놀면 더 못하고, 재미도 없습니다. 신앙생활도 어떤 파트너를 만나느냐에 따라 성숙이 결정됩니다. 그런데 성령님은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시는 파트너이십니다. 할렐루야!


푸는 말


1. 돕는 자(Helper)이십니다


성령님은 무엇보다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분이십니다(롬 8:26).

그래서 스코필드는 오늘 본문 16절을 "도와주기 위해  옆에 서 계신 분"이라고 번안합니다. 어린아이의 걸음마를 도와주기 위해 옆에 서 계신 엄마와 같은 보호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능력으로 도와주시겠다고 수없이 약속하시는데(시 89:19. 행 26:22. 히 4:16), 그 약속을 실행하시는 그분이 곧 성령님이십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능력으로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에게 날마다 새 힘을 주십니다. 꿈을 주시고, 비전을 심어주십니다. 때로는 쓰러지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역동적인 힘을 주십니다. 에스겔서 37장을 보면, 마치 공동묘지의 마른 뼈와도 같이 아무런 소망도 없이 처절한 절망 중에 있는 우리를 다시 일으켜주시는 능력의 영이십니다.

오늘 우리는 오직 성령님의 도우시는 능력을 힘입어 그 어떤 절망의 자리에서도 여전히 일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분은 내 곁에 나와 함께 동해하시다가 내가 힘을 잃고 넘어지고 쓰러질 때 나를 붙잡아 일으켜주시는 분이십니다.

또 성령님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도록 도와주십니다. 내 힘으로는 도저히 이룰 수 없지만,  성령님은 창조적인 능력으로 기적을 일으켜주십니다(슥 4:6). 그래서 성령님은 우리로 하여금 자기 능력 이상의 삶을 살게 하여주십니다.

여러분, 당신은 요즘 어떤 한계상황의 벽에 부딪쳐 계신가요? 어떤 절망감을 느끼고 계신가요? 어떤 신학자는 성령님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그는 절망적인 자의 영원한 도움이시다(the everlasting help of the helpless)"

오늘도 나의 삶의 현장에서 능력으로 나를 도와주시는 보혜사 성령님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2. 교사(Teacher)이십니다


성령님은 예수님과 똑같은 활동을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다른 보혜사"라는 표현을 쓰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주된 사역 중 하나는 가르치시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구원의 길을 가르쳐주시고, 천국의 비밀을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래서 성령님께서도 우리에게 진리를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즉 복음의 비밀을 깨닫게 해주시는 것입니다(14:17. 15:26. 16:12-13). 특히 26절이나 16장 13절에서 이점을 강조합니다.

원래 깨닫는 다는 말은 "뿌리로부터 보다"라는 어원에서 나왔습니다. 즉 깨닫는다는 것은 근본을 터득한다는 뜻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내면세계 근본을 깨우쳐주시는 일을 하십니다. 내가 죄인인 것을 깨우쳐주시고, 하나님의 깊은 뜻을 헤아려 깨닫게 하십니다.

요즘 제가 Eugene Peterson의 "한 길가는 순례자"라는 책을 읽었는데, 그가 이런 말을 합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화가보다는, 안과의사가 필요하다." 무슨 말이냐 하면, 화가는 붓과 팔레트를 이용해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의 그림을 그리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안과의사는 우리로 하여금 본인의 시력을 따라 원래의 모습을 보도록 도와주는 자입니다. 성령님은 안과의사처럼 본연의 모습을 보도록 깨닫게 해주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 인간의 영은 죄로 어두워져서 잘 깨닫지 못합니다(17절). 그러기에 성령님은 우리 마음 속에   들어오셔서 우리의 영을 밝혀주시고, 진리를 깨우쳐주시는 것입니다. 혹시 우리 가운데 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더욱 더 성령님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오, 주님! 오늘도 잘 깨닫게 하옵소서!(설교 시간에 자꾸 졸리시는 분)

만일 깨달음이 더딘 사람이라면 시편 49:20을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과 같도다』

죽으러 도살장에 끌려가면서도 자신의 운명을 모르는 짐승처럼 불쌍한 존재라는 뜻입니다. 사람은 더디게 깨달을수록 헛고생을 많이 합니다. 그러므로 잘 깨닫는 사람일수록 행복합니다. 그만큼 성령님이 마음의 눈을 밝게 열어주시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미래가 불투명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잘 깨달아지는 은혜가 있기를 원합니다(엡 1:17-18). 오, 주님! 오늘도 저에게 깨달음의 영을 주옵소서!


3. 위로자(Comforter)이십니다


우리 예수님의 주된 사역은 위로하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상처받고, 슬픔을 당한 사람들을 찾아가서 위로해주셨습니다. 이제는 우리 안에 계신 보혜사 성령님께서 우리의 외로움과 아픔을 위로해주십니다. 성령님은 우리 내면세계 속에서 우리를 깊이 위로해주십니다. 따뜻하게 위로해주십니다. 특별히 환난과 핍박을 받은 초대교회 성도들은 "성령님의 위로를 힘입어 진군함으로 교회를 계속 부흥시켜 나갔습니다"(행 9:31). Com + Fortis(Fortress) = 강한 요새가 되시는 성령님

그래서 어거스틴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가장 매혹적인 위로자이시다." 이처럼 성령님은 우리의 고통과 연관된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그분은 우리에게 진정한 상담자로 찾아오셔서 모든 번민과 갈등의 문제를 풀어주십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능력으로 도우시고, 우리를 깨우쳐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 안에 계셔서 위로해주시는 너무나 좋으신 상담자이십니다. 우리의 깨어진 마음, 상한 마음, 낙심한 마음, 침체된 마음, 어두운 마음을 위로해주십니다. 특별히 성령님께서는 내 속에서 울며 간구하시는 사랑의 중보자로 활동하십니다(롬 8:26-27).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우리를 위해 변호하시는 중보자시라면(요일 2:1), 성령님은 우리 속에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 중보자이십니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입장을 대변해주시는 변호사(Advocate)로서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십니다. 그분은 나를 대신하여 기도해주시고, 또 나의 딱한 사정을 옹호해주시며, 변호해주십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육체로 우리와 함께 계시는 동안 훌륭한 상담자(Wonderful Counsellor)이셨듯이, 성령님은 영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진정한 상담자이십니다(Comfortable Counsellor).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성령님을 자신의 일을 대신하러 오신 "또 다른 보혜사"(another of the same kind)라고 소개하시는 것입니다. 동일한 위로자라는 뜻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내 속 사람을 위로하시는 성령님의 은혜를 힘입어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령님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어려움과 역경에 처할 때 힘을 주시고, 굳건하게 설 수 있도록 세워주십니다(행 4:31, 9:31).

특히 상담자 성령님은 우리에게 이런 위로를 약속해주십니다.

우리가 염려에 빠질 때(사 43:1-13. 마 6:25-34. 빌 4:4-7. 벧전 5:7) 위로하십니다.

우리가 고독에 빠질 때(시 73:23-24. 사 41:10. 49:14-16. 요 14:15-21) 위로하십니다.

우리가 지치고 약할 때(사 40:28-31. 고후 4:16-18. 빌 4:12-13) 위로하십니다

우리가 실의에 빠질 때(시 34:18. 42:5. 애 3:20-23. 롬 8:28-29) 위로하십니다.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아침마다 새 힘을 불어넣어 주십니다.

"위로의 성령님이시여, XZ, 우리 안예 계셔서 위로하세네, 위로의 성령님이시여!"

여러분, 보혜사 성령님께서는 오늘도 연약한 나를 도우시고, 또 더욱 깊은 진리로 깨우쳐주시며, 나를 진정으로 위로해주시려고 지금 어디에 계시며 활동하실까요?

오늘 본문 17절을 자세히 보면, 두 번씩이나 강조하는 점이 있습니다.

『나와 함께 계시며, 내 속에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축복인가요!


2. 성령님께서 계시는 곳


1) 성령은 하나님의 사람의 주변에서 일을 하십니다.


일상 생활 속에서 깨닫지 못하는 동안에도 성령의 보호와 인도를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를 위하여 길을 열기도 하시고 뒤편에서 적을 막아 보호하기도 하셔서 성도가 본연의 사명을 수행할수 있도록 도와 주십니다.

(성경)// 애굽인들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갔을 때에, 처음에는 장자의 장례를 치르느라고 정신이 없다가 葬禮를 치른 후에,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준 것이 後悔莫及이었습니다. 바로는 많은 奴隸들을 그냥 보낼 수가 없다는 생각에 군사를 동원하여 이스라엘의 뒤를 추격했습니다.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너야 할 시점에서야 따라 잡을수 있었습니다. 반면 이스라엘은 매우 난감한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앞에는 홍해요 뒤에는 애굽 군대입니다. 전진하여 나가면 물에 빠져 죽게되고, 그대로 지체하면 애굽군대에 목숨이 끝나는 것이요, 항복하면 더 심한 고역의 노예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 때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완벽하게 지키셨습니다.

1단계로) 애굽인과 이스라엘 사이에 불기둥으로 간격을 두셨습니다. 그래서 밤이 새도록 애굽 군대가 이스라엘을 접근할 수 없도록 만드셨습니다. 2단계는) 홍해를 말려 앞으로 건너 가수 있도록 축복의 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그 은혜는 위기에서 당황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바다 속을 육지 같이 건너 참된 자유의 땅으로 인도해 내셨습니다. 이러한 초자연적 현상을 쉽게 찾아 볼수 있습니다. 능력의 하나님게서 하시고자 하면 태평양을 가로질러 육지로 만들수도 있음을 우리는 빋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홍해가 빨리 합하지 못하도록 물을 막으셨습니다. 영이신 성령님을 육신의 제한을 지닌 인간이 뵐 수는 없지만, 힘들고 어려운 삶에서도 믿음의 순수성을 지키려는 우리의 주변에서 항상 함께 하십니다.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지키십니다. 이끌어 인도하시고 깨우쳐 감사하게 하십니다.

엘리사의 사역 중에서도 유사한 사건을 있었습니다. 아람 사람들이 엘리사를 잡아가기 위하여 동원이 된 군사들이 도단 성을 에워쌌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눈을 어둡게 하여 엘리사를 찾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있는 곳에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습니다. 그 시대 그 상황에서 절박한 불안으로 갈등하던 엘리사를 도우셨던 하나님의 천군천사들은 지금도 우리를 도우실 줄로 믿습니다.

성령님은 지금 이 자리에도 함께 하십니다. 이를 생각하시고 안심하십시오. 성령님께서는 우리의 영성회복을 위한 성령강림절 준비를 위항 각종 기도회에 함께 하셔서 도우시고 보호하실 것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러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시다.


2) 성령님은 聖殿에서 일하십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집에서 일하십니다. 성령께서 거하시므로 성전입니다. 교인들이 하나님으 성전을 거룩하게 지키야 하는 것은 성령께서 거하시며서 일하시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성전을 정결하게 단장하고 최선을 다한 인테리어로 장식하는 것은, 성령께서 역사 하시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진중의 성막에 거하셨던 하나님의 臨在를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사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성막에 거하시며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증거로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지켜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천막을 칠 때에 그 문을 중앙 성막을 향하여 내었습니다. 문만 열면 구름 기둥 또는 불 기둥이 보이도록 하여 하나님의 임재와 지키심을 보게 하였습니다.

성막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향하여 고통을 극복하는 꿈과 비젼을 영글게 하는 곳이요,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찬양의 입술이 머무는 곳’이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구름 기둥의 흐름을 제일 먼저 살폈습니다. 구름이 머물고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 오늘도 하나님께서 자신들과 함께 하신다는 감사와 감격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기쁨으로 성막을 향하여 지파별로 나누어 앉아서 깊은 감격에 겨워 눈물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희생제물을 가지고 나아와 죄 용서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 앞에서 화목제사를 드리고 서로서로 화목했습니다. 그 앞으로 감사예물을 가지고 와서 감사를 표현했습니다. 그 앞에서 찬송을 올립니다. 이렇듯, 광야의 이스라엘은 성막을 중심하여 각 지파의 위치가 결정되고 기능이 결정되었습니다. 그 성령님은 오늘날에는 교회에 거하십니다. 다 같은 건물이지만 건축과정에는 인간의 건축물이지만 봉헌하여 헌당식을 하고 나면 그곳은 성령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 됩니다.

여러분! 성전은 예배의 중심지요 만민이 기도하는 아버지의 집입니다. 거친 세상살이에 온통 상처투성이인 현대인들이 용서받고 용서를 하는 화해의 장소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소리 높혀 돌려드리는 찬양의 광장입니다. 받은 축복과 사랑을 함께 나누는 교제의 나눔터입니다. 보다 나은 내일을 향한 전진을 위하여 절망과 좌절을 딛고 일어서도록 성령의 능력을 공급받는 충전소입니다.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천하는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

성전은 오늘도 성령께서 영적 전투를 위하여 준비하는 자들에게, 그 위대하신 능력을 충전시키는 은혜의 장소입니다. 오늘 이 새벽, 성령의 역사 현장으로 달려오신 분들께 성령의 축복하심을 넘쳐서 위대한 일을 만들어 가시기를 바랍니다.


3) 성령님은 聖徒의 마음에서 일하십니다.

(25절) 출애굽 과정에서 영적지도자인 모세는 과중한 업무를 도울 사람 70인을 세우기로 계획을 세웁니다. 일꾼을 세우는 그 시간 하나님의 신이 강림하셔서 예언하게 하셨습니다. 놀라운 것은 같이 모이지 않고 집에 있었던 엘닷과 메닷에게도 하나님의 신이 강림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감격했습니다. 이 은혜의 사건을 보았던 모든 사람들이 다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이들 70인뿐만 아니라 성막을 지은 브사렐과 오호리압에게도 성령께서 강림하셨습니다. 성령에 이끄심을 받은 저들은 확신과 사명감을 뚜렷히 하고 하나님의 일을 충성되게 하였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신은 하나님의 일을 충성되게 헌신하는 사람에게 강림하십니다.

오순절의 성령 강림도 개개인 속에 오셔서 그들의 가치관과 삶을 변화시키어 복음전파에 생을 바치도록 역사하셨습니다.

성령께서 일하시는 장소는 성도의 마음 중앙입니다. 사람의 마음 속을 성령의 일터로 정하시고 들어오시는 것은 하나님의 눈이 그곳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모든 일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생각부터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잡아 돌립니다. 그래서 다윗은 다음과 같이 기도를 하였습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51:10) 성령께서 바르게 믿어 보려는 교우의 옆에서 활동하시고, 성전에서도 역사하시며, 마음을 붙드시어 위대한 일을 이루어가게 하십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성령께서 마음 속에서 가장 편안하게 활동하시도록 준비되지 않는다면 큰 은혜의 축복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그 마음에 좌정하시도록 모셔들인 교인에게는 찬송하게 됩니다. 기도합니다. 영의 눈과 귀가 열립니다. 전도하게 되고 봉사하게 됩니다. 성령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성령께서 그 마음속에서 편히 역사하시도록 할 때, 비로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의 출발점에 서게되는 것입니다. 아직도 그 출발선에 서 있지 못한 사람은 그 신앙수준이 복음서의 제자들처럼 마음 속에 성령의 역사 하심이 없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어린 아이와 같이 쉽게 넘어지고, 옛 생활로 되돌아갈 여지가 남아있는 수준입니다. 주님의 제자들도 자립적인 상태가 되어서야, 복음을 전하는 일에 하나뿐인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는 순교적 다짐을 하는 청지기, 사명자가 됩니다.

항상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할 사람에게는 임하시어 먼저 감동을 시킨후, 엄격한 과정을 수료하게 하신 다음에야 하나님의 일은 부탁하셨습니다.

구약시대에는 특정인에게만 임하셨으나, 오순절 이후에는 복음을 듣고 회개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임하셨습니다. 오순절에 모인 120명이 성령으로 충만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복음 증거자로 나섭니다. 사마리아에 복음이 전파되었다는 소식을 듣은 베드로와 요한은 예배를 드리면서 안수하고 기도할 때에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성령에 충만하였습니다. (행19:) 에베소 교회 교인 12명에게 바울이 안수할 때에 성령이 충만하였습니다. 이들도 훗날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고넬료 가정에 베드로가 부름을 받고 가서 복음을 전 할 때에 설교를 하는 도중에 성령께서 크게 역사하셨습니다. 그 가운데는 고넬료의 식구들과 종들까지 있었는데 모두가 다 성령으로 충만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에베소 교회를 중심하여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성령께서 크게 역사 하시는 장소는 사람의 마음입니다.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주님! 내 마음도 성령으로 충만히 채워 주시기를 원합니다” - 아멘-

성령을 변두리에 머무시게 하지 맙시다. 성전과 가치관의 중심에 모십시다. 성령은 지금도 청지기로 부름받고 훈련받고 다짐된 준비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중요한 하나님의 일을 함께 사역할 사람들에게 그 영성이 회복되도록 공급하실 능력의 충전소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이 초대에 응답할 수 있는 역량을 다듬어 가는 지혜로운 인생 건축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닫는 말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시는 분, 우리와 함께 사시는 분, 우리 안에 머무시는 분!

다시 말씀드려서 나를 결코 떠나지 않고 곁에 계시는 분, 지금 나와 함께 하시는 분, 그리고 내 안에 계속 머무르시며 나를 위로하시는 분, 곧 그 성령님과 동행하며 사는 역동적인 삶의 현장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찬미 638) 여러분, 요즘 당신 곁에는 누가 함께 하고 있나요?

누가 진정으로 당신의 위로자요, 동반자인가요? 여기 당신의 영원한 동반자가 계십니다. 보혜사 성령님이십니다. 그분은 당신의 한계를 능가하는 능력으로 도와주시며, 당신의 내면세계와 미래세계를 가르쳐주시며, 오늘도 당신 곁에 다가오셔서 당신을 위로해주시며, 당신의 속사정을 변호해주시고 새힘을 주시는  은혜의 성령님이십니다.

오, 위로의 성령님이시여! 더욱 더 제 안에 충만하게 계셔서, 저를 은혜로 다스려주옵소서! 때마다, 순간마다, 사건마다 위로하여 주옵소서! 날마다 새 힘을 주옵소서!


긍정적 확신을 주시는 성령님

누가복음 3: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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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매일 아침 일어나서 거울 속에 있는 자신을 드려다 볼 때 어떤 반응을 보이십니까?

당신은 거울에 비친 당신 자신을 좋아하는 편인가요? 많은 경우에 '아니오'라고 대답합니다.

이만큼 사람들은 자신에 대하여 긍정적 자아상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당신은 당신 자신에 대하여 얼마나 만족하십니까?

최근의 조사에서 고등학생들 몇 그룹에게 다음 세 가지 질문이 주어졌습니다. 즉, '당신은 다른 사람들에게 좀더 잘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당신의 외모를 어떻게 바꾸겠는가? 당신이 가지지 않은 능력 중에서 갖기를 바라는 능력은 어떤 것인가? 당신이 거부당한다고 느낀다면  왜 그렇게 느끼는가?' 라는 물음이었습니다.

이에 대한 대답의 실례(實例)들이 다음과 같습니다. - 너무 뚱뚱하다, 너무 빼빼하다, 너무 키가 크다, 너무 코가 크다, 조화되지 않은 얼굴, 휘어진 다리, 나쁜 목소리, 큰 발, 너무 가는 다리,  뚱뚱한 다리, 사팔뜨기 눈, 여드름, 큰 눈, 발끝이 안으로 향한 발가락, 흉터, 평평한 가슴, 시력이 나쁜 눈, 삐뚤어진 치아, 숱이 작은 머리, 기형 등등.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외모에 대하여 만족해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만큼 사람들은 자신에 대하여 긍정적 자아상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부정적인 자아상을 가질수록 부정적인 현상들이 병적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①움츠러듭니다

  열등감을 느끼는 사람들일수록 감정적으로 움츠러들어 침묵과 고독 속으로 빠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②잘못된 공격성을 띱니다

  어떤 사람들은 약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도전적인 공격성을 띱니다. 그래서 사소한 일에도 격렬하게     화를 내고, 성미가 급하며, 적대적입니다.

③냉소적인 농담을 합니다

  자신의 결점이나 무능력함에 대하여 자조적인 농담으로 자기를 비하시킵니다.

④현실을 모두 부정합니다

  부정적인 자아상으로 시달리는 사람일수록 알콜 중독이나 마약 중독 등, 탐닉에 빠집니다.

  인생의 어떤 압박감으로부터 도피하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⑤순응주의자로 살아갑니다

  자신의 이미지에 대하여 부정적인 사람일수록 자기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거부당할까봐 무조건    남의 의견에 순응하는 무기력한 모습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우리에게 건강하고 긍정적인 자아상을 심어주십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긍정적 확신을 심어주십니다.

무엇보다도 성령님은 우리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신시켜줍니다(고전 12:3).

특별히 로마서 8장 15-16절을 보면, 성령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는 확신을 갖게 하시며, 더 나아가서 성령님께서는 우리 영과 함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증해주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성령 충만할수록 우리는 건강한 자아상을 확립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아주 불행한 환경에서 자라난 아브라함 링컨은 이런 매력적인 말을 합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자신을 가치있다고 느끼며, 자신이 그를 창조한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신하는 동안에 그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기는 어렵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 모두 성령 충만함을 받아 건강한 자아상을 확립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라는 Positive self-image를 갖게 해주십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할수록 건강한 자아상이 이루어집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요단강에 내려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십니다. 그리고 공생애를 준비하기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그랬더니 성령님께서 그의 머리 위에 임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도 겸허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성령님께서 우리 머리 위에 임하실 줄 믿습니다.

그리고는 놀라운 확신을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예수님께 두 가지 놀라운 확신을 심어주십니다.


1. 하늘 문을 열어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 하늘이 열렸습니다(21절).

지난 40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닫혔던 하늘 문이 열린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므로 성령 충만을 받을 때 하늘이 열릴 줄 믿습니다.

야곱이 들판에서 엎드려 기도할 때 하늘 문이 열리고, 하늘에서 사닥다리가 내려왔습니다.

다니엘이 사자 굴속에 들어가서도 기도할 때 하늘이 열렸습니다.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 예수님을 만나 거듭난 후 아나니아라는 사람에게 안수기도 받을 때 눈의 비늘 같은 것이 떨어지며 새로운 영안이 밝아졌습니다(행 9:18).

사도 요한이 밧모 섬에 끌려가 그 고도의 섬에서 기도하였더니 하늘이 활짝 열렸습니다(계 1:11).


성령님은 우리의 영안을 열어주시는 분이십니다. 심령의 눈을 열어주십니다. 새 세계를 볼 수 있는 영안을 열어주십니다. 새 비전의 광경을 보게 하십니다.

날 때부터 장님인 한 어린이가 있었습니다. 이 불행한 어린이를 부모는 아주 어렵게 키웠습니다. 다행히 의술의 발달로 15세쯤 되는 해에 수술을 하여 어린이가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새롭게 눈을 뜨고 보는 이 세상은 신비롭다 못해 이상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어머니는 어느 날  이 소년을 아름다운 대자연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세상에 태어난 지 15년 만에 보는 자연의 세계는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소년은 어머니에게 원망했습니다. "왜 나에게 이렇게 아름다운 세계가 이 땅위에 있음을 말해 주지 않았느냐"고. 그때 어머니는 울먹이며, "난들 왜 말해 주고 싶지 않았겠느냐, 말해 주고 싶었지만 아무리 내가 설명을 한다 해도 네가 알아들을 수 있었겠느냐"고 대답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아름답고 신령한 세계를 우리가 아무리 설명을 잘 듣는다해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하나님을 향하여 이 소년과 같은 원망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세계가 있는 것을 왜 말씀해 주시지 않았느냐"고, 우리는 오늘도 여전히 베일 속에 싸여 삽니다. 그래도 우리는 믿음으로, 오직 성경으로, 이 성령을 통해서, 믿음으로 저 밝은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신령한 눈이 열립니다. 영안이 열려야 새 세계를 봅니다.


이처럼 성령님은 우리에게 하늘 문을 열어주셔서 인생의 미래에 대한 큰 확신을 심어주십니다.

우리가 가는 길에는 사방이 막히는 사건들이 벌어질지라도, 여전히 하늘이 열려 있음을 바라보라는 메시지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예수님께서 가셔야 했던 길이 멀고 험난하고 암담하였기 때문에 더욱 하늘 문을 열어주셔서 큰 확신을 심어주셨습니다.

오늘도 우리가 기도를 통하여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수록 하늘 문이 활짝 열릴 줄 믿습니다.

은혜의 문을 열어주십니다. 구원의 문을 열어주십니다. 능력의 문을 열어주십니다. 성공의 문을 열어주십니다. 비전의 문을 열어주십니다. 축복의 문을 열어주십니다. 승리의 문을 열어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는 하늘 문을 활짝 열어주셨습니다(히 4:16).

우리는 하늘이 열린 인생을 보장받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아침에 이 비전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니,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계 3:8)


성령님께서는 우리가 가는 길에 큰 능력과 축복의 문을 열어주십니다.

바울과 베드로가 기도할 때 감옥 문도 열어주셨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닫힌 문을 열어주셨습니다. 무슨 일을 하더라고 승리의 문을 열어주셨습니다.

바울이 기도할 때 로마까지 들어갈 수 있는 대로를 열어주셨습니다.

성령님은 오늘도 내 인생의 문을 열어주십니다. 하늘 문을 활짝 열어주십니다. 미래의 문을 열어주십니다. 막힌 길을 열어주십니다. 성공의 문을 열어주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니,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성령님께서는 하늘이 열려있음을 보게 하는 확신을 심어주십니다.



2. 하늘의 음성을 들려주십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 하늘의 음성이 세 번 들려왔습니다.

첫 번째는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22절).

두 번째는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기도하실 때 하늘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눅 9:35).

그리고 세 번째는 예수님께서 십자가 수난을 앞두고 간절히 기도할 때 하나님 아버지께서 친히 응답하시는 음성이 들려왔습니다(요 12:28).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가 엎드려 기도할 때 성령님께서는 하늘의 음성을 들려주실 줄 믿습니다.


1)너는 내가 사랑하는 자녀라


성령님은 우리에게 확신을 주시는 영이십니다. 우리 가슴속에 큰 확신을 갖게 하십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자녀니라."

다윗은 성령의 감동을 받은 후 이런 절대적 확신을 갖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시편 2편 7-8절에서 이런 확신에 찬 노래를 합니다.

"너는 내 아들이요, 내가 오늘 네 아버지가 되었도다. 내게 청하여라. 내가 열방을 유산으로 주겠다.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네 것이 되게 하겠다."

그렇습니다.

기도할수록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며, 비전과 꿈이 커집니다. 거시적 비전을 품게 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성령님은 오늘 우리에게 하늘의 음성을 들려주십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자녀라."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들입니다. 이 절대적 확신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Dick Dickenson은 고리도전서 13장을 이렇게 의역하여 우리에게 건강한 자아상의 확신을 정립시켜줍니다(Because God loves Me).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나에 대하여 오래 참으신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내 인생의 환경들을 나의 성장을 위해 건설적으로 사용하신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소유되고 조종되어야 할 대상으로 나를 대하시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리고 그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자신이 얼마나 위대하고 능력이 있는 분인지

나에게 감명을 주려고 하실 필요가 없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나 자신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시기 위해

그분의 자녀인 나를 하찮게 여기시지도 않는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지 때문에,

나를 위해 계시며

내가 그분의 사랑 가운데서 성숙하고 발전하는 모습을 보기 원하신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내가 범하는 그토록 많은 작은 실수들 위에 그분이 분노를 쏟아 붇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내 모든 죄들을 일일이 세고 계시지 않으며

기회 있을 때마다 내 머리를 때리려 하시지도 않는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내가 만일 그분이 기뻐하시는 길을 걷지 않으면 심히 슬퍼하신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내가 마땅히 해야 하는 만큼

그분을 사랑하고 신뢰하지 않는다는 증거로 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내가 포기하고 싶다고 느끼고

하나님이 왜 나를 포기하시지 않는지 알 수 없을 때조차도

인내하시며 나와 더불어 일하신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내가 나 자신을 신뢰하지 않을 때조차도 나를 신뢰해 주신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내게 희망이 없다고 결코 말씀하지 않으시며,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나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나를 사랑하시며 훈련시키신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비록 나의 많은 친구들은 나를 버릴지라도 나를 버리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내가 절망의 바닥에 떨어질 때라도 나와 함께 해 주신다.

내가 진정한 나를 보고,

그것을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아름다우심과 사랑과 비교할 때,

바로 그때 그분이 나를 사랑해 주신다는 것을 믿을 수 있게 된다.

그렇다.

선물 중에 가장 큰 선물은 하나님의 완전하신 사랑이다.



2)너는 내가 기뻐하는 자녀라


성령님은 우리에게 긍정적인 자아상을 갖게 해주십니다. 성령님은 기쁨의 영이십니다.

성령님은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너무나 황홀한 음성을  듣게 해주십니다.

"너는 내가 기뻐하는 자라."


이사야 42장 1절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내가 그 사람을 기쁘게 선택하였기에, 내가 그에게 나의 성령을 주노라."

하나님은 나를 기뻐하셔서 구원하기로 선택하셨고, 내 안에 성령을 주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사탄과 마귀는 우리 마음을 어둡고 울적하게 합니다. 의심이 생기고 회의적이 되게 합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우리 속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듯 기쁨을 넘치게 해주십니다.

그러기에 스바냐 선지자는 이스라엘 민족이 앞으로 바빌로니아에 포로로 끌려가는 처량한 신세가 될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절대적 확신을 가지라고 노래합니다(습 3:17).

"그가 너로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rejoice over you with joy),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사랑으로 속삭여주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rejoice over you with singing)."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당신이 성령으로 거듭난 자라면, 그 어떤 상황에서도 기죽지 말기를 바랍니다. 위축되지 마세요.

확신을 가지세요. 어떤 절망적 정황에서도 긍정적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성령님은 당신의 앞길에 하늘 문을 열어주십니다. 그리고 하늘의 음성을 들려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힘들고 고달픈 길에서도 "성령으로 기뻐하셨습니다."(눅 10:21)


오늘도 그 성령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큰 확신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내가 네 앞에 하늘 문을 열어 놓았노라!

네 인생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내가 네 앞길을 열어주노라!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내가 네 앞에 하늘 문을 열어 놓았노라! 할렐루야!



(기도 초청)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 충만할수록 건강한 자아상이 이루어집니다.

성령님은 오늘도 당신에게 이런 확신을 심어주십니다.

내가 너에게 하늘 문을 열어주노라.

그리고 당신의 가슴 속 깊은 곳에 이런 놀라운 하늘의 음성을 돌려주십니다.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너는 내 사랑 받는 자녀요, 너는 내가 기뻐하는 자녀라!"



출처 : 셀교회 알파코스(ALPHA)
글쓴이 : 시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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