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주말수양회>
2. 보혜사 성령님의 본질 |
사도행전 4:13-22 |
여는 말 |
성령은 비둘기 같다고 했습니다. 비둘기는 평화와 순결의 상징이며 증오심도 없고, 사납게 물지도 않습니다. 상대를 해칠만한 발톱도 없어서 교제하며 평화를 나눕니다. 교회에 성령이 계실 때 교회는 화평하고 순수합니다. 성령은 누구를 미워하거나 헐뜯지 않습니다. 성령은 우울하지 않고 쾌활합니다. 구원의 역사를 위해 쓰여지기 위해 성령이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자동차가 먼길을 떠나려면 먼저 주유소에서 에너지를 공급받아야 합니다.
전쟁 터에 나갈 군대는 무기를 지급 받습니다. 준비가 잘 되어 있다는 것은 벌써 절반은 승리한 것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시작하기까지는 그만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월동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은 겨울이 와도 걱정이 없습니다. 잠언에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현숙한 여자는 겨울이 오기 전에 가족들의 두툼한 의복을 준비하고, 밭을 사도 간품하여 사고 그 밭에 묘목을 심어 과수원을 만 드는 등 준비하는 여성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옛날 황의 정승은 세종대왕께서 언제 부르실지 몰라 퇴청하고서도 관복을 벗지 않았다고 합니다. 임금이 부르시면 즉시 달려가기 위해서 였습니다. 성령을 받으 시면 하나님의 목소리를 따라가게 됩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성경을 읽고 들을 때 그 말씀이 깨달아 지며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어떤 한 사람이 많은 돼지들을 이끌고 도살장으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여러마리의 돼지를 데리고 가는지를 알고 보니까 그 사람은 콩을 조금씩 떨어 뜨 렸다고 했습니다. 콩을 먹으며 길을 가지만 그 길은 죽음의 길이었습니다. 우리는 콩을 먹으며 사람을 따라가는 돼지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말씀을 먹으며 성령을 따라가야 삽니다. 살리는 것은 영입니다
예수님은 놀라운 축복을 약속하고 계십니다. 나는 이제 인류의 구원사역을 다 마치고 하늘로 올라간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와 함께 하시는 다른 보호자가 오실 것이다. 그는 나와 똑같은 본질의 위로자와 동반자로 오실 것이다.
그 동안 제자들이 어디를 가든지 함께 하시며 동행하셨듯이, 앞으로도 동행하시며 함께 하시는 성령님을 소개하고 계십니다. 그 이름, 보혜사! 그래서 예수님은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이라는 점을 세 번씩이나 거듭 주지시켜 줍니다.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시는 분, 우리와 함께 사시는 분, 우리 안에 머무시는 분!
나를 결코 떠나지 않고 곁에 계시는 분, 지금 나와 함께 하시는 분!
그리고 내 안에 계속 머무르시며 나와 동행하시는 분이 곧 성령님이십니다.
그래서 성령님의 이름을 ‘보혜사’라고 합니다(요14:16,26.) 보혜사란 말은 "돕는 자, 구원자, 조력자, 원조자"라는 뜻입니다. 우리를 괴롭히는 마귀를 추방하러 오신 분이십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영원한 파트너로 오신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파트너를 잘 만나야 합니다. 파트너를 잘 만나야 시너지 효과를 누립니다.
찬양대의 파트너가 누구냐에 따라 함께 헤매이기도 하고, 자기 실력보다 훨씬 더 잘 부르기도 합니다. 운동 파트너가 누구냐에 따라 실력도 향상되고, 즐겁게 놀 수도 있습니다. 못하는 사람끼리 놀면 더 못하고, 재미도 없습니다. 신앙생활도 어떤 파트너를 만나느냐에 따라 성숙이 결정됩니다. 그런데 성령님은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시는 파트너이십니다. 할렐루야!
푸는 말 |
1. 돕는 자(Helper)이십니다
성령님은 무엇보다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분이십니다(롬 8:26).
어린아이의 걸음마를 도와주기 위해 옆에 서 계신 엄마와 같은 보호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능력으로 도와주시겠다고 수없이 약속하시는데(시89:19), 그 약속을 실행하시는 그분이 곧 성령님이십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날마다 새 힘을 주십니다. 꿈을 주시고, 비전을 심어주십니다. 쓰러지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역동적인 힘을 주십니다. (겔37:) 공동묘지의 마른 뼈와도 같이 아무런 소망도 없이 처절한 절망 중에 있는 우리를 다시 일으켜주시는 능력의 영이십니다.
오늘 우리는 오직 성령님의 도우시는 능력을 힘입어 그 어떤 절망의 자리에서도 여전히 일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분은 내 곁에 나와 함께 동해하시다가 내가 힘을 잃고 넘어지고 쓰러질 때 나를 붙잡아 일으켜주시는 분이십니다.
또 성령님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도록 도와주십니다. 내 힘으로는 도저히 이룰 수 없지만, 성령님은 창조적인 능력으로 기적을 일으켜주십니다(슥 4:6). 그래서 성령님은 우리로 하여금 자기 능력 이상의 삶을 살게 하여주십니다.
여러분, 당신은 요즘 어떤 한계상황의 벽에 부딪쳐 계신가요? 어떤 절망감을 느끼고 계신가요? 어떤 신학자는 성령님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그는 절망적인 자의 영원한 도움이시다(the everlasting help of the helpless)"
오늘도 나의 삶의 현장에서 능력으로 나를 도와주시는 보혜사 성령님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2. 교사(Teacher)이십니다
성령님은 예수님과 똑같은 활동을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다른 보혜사"라는 표현을 쓰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주된 사역 중 하나는 가르치시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구원의 길을 가르쳐주시고, 천국의 비밀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성령님께서도 진리를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즉 복음의 비밀을 깨닫게 해주시는 것입니다(14:17. 15:26. 16:12-13). 특히 26절이나 16장 13절에서 이점을 강조합니다.
원래 깨닫는다는 말은 "뿌리로부터 보다"에서 나왔습니다. 깨닫는다는 것은 근본을 터득한다는 뜻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내면세계 근본을 깨우쳐주시는 일을 하십니다. 내가 죄인인 것을 깨우쳐주시고, 하나님의 깊은 뜻을 깨닫게 하십니다.
Eugene Peterson의 "한 길가는 순례자"라는 책을 읽었는데, 이런 글이 있습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화가보다는, 안과의사가 필요하다." 화가는 붓과 팔레트를 이용해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의 그림을 그리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안과의사는 우리로 하여금 본인의 시력을 따라 원래의 모습을 보도록 도와주는 자입니다. 성령님은 안과의사처럼 본연의 모습을 보도록 깨닫게 해주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 인간의 영은 죄로 어두워져서 잘 깨닫지 못합니다(17절). 그러기에 성령님은 마음 속에 들어오셔서 우리의 영을 밝혀주시고, 진리를 깨우쳐주시는 것입니다. 혹시 우리 가운데 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더욱 더 성령님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오, 주님! 오늘도 잘 깨닫게 하옵소서!
만일 깨달음이 더딘 사람이라면 (시49:20)을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과 같도다”
죽으러 도살장에 끌려가면서도 자신의 운명을 모르는 짐승처럼 불쌍한 존재라는 뜻입니다. 사람은 더디게 깨달을수록 헛고생을 많이 합니다. 그러므로 잘 깨닫는 사람일수록 행복합니다. 그만큼 성령님이 마음의 눈을 밝게 열어주시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미래가 불투명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잘 깨달아지는 은혜가 있기를 원합니다(엡1:17-18)
3. 위로자(Comforter)이십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상처받고, 슬픔을 당한 사람들을 찾아가서 위로해주셨습니다. 이제는 우리 안에 계신 보혜사 성령님께서 우리의 외로움과 아픔을 위로해주십니다. 성령님은 우리 내면세계 속에서 우리를 깊이 위로해주십니다. 따뜻하게 위로해주십니다. 특별히 환난과 핍박을 받은 초대교회 성도들은 "성령님의 위로를 힘입어 진군함으로 교회를 계속 부흥시켜 나갔습니다"(행9:31)
성령님은 우리를 능력으로 도우시고, 우리를 깨우쳐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 안에 계셔서 위로해주시는 너무나 좋으신 상담자이십니다. 우리의 깨어진 마음, 상한 마음, 낙심한 마음, 침체된 마음, 어두운 마음을 위로해주십니다. 특별히 성령님께서는 내 속에서 울며 간구하시는 사랑의 중보자로 활동하십니다(롬8:26-27).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위해 변호하시는 중보자시라면(요일2:1), 성령님은 우리 속에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 중보자이십니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입장을 대변해주시는 변호사(Advocate)로서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십니다. 그분은 나를 대신하여 기도해주시고, 또 나의 딱한 사정을 옹호해주시며, 변호해주십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육체로 우리와 함께 계시는 동안 훌륭한 상담자이셨듯이, 성령님은 영으로 함께 하시는 진정한 상담자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성령님을 자신의 일을 대신하러 오신 "또 다른 보혜사"라고 소개하시는 것입니다. 동일한 위로자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내 속 사람을 위로하시는 성령님의 은혜를 힘입어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령님은 무엇보다도 어려움과 역경에 처할 때 힘을 주시고, 굳건하게 설 수 있도록 세워주십니다(행4:31,9:31).
특히 상담자 성령님은 우리에게 이런 위로를 약속해주십니다.
염려에 빠질 때(사 43:1-13. 마 6:25-34. 빌 4:4-7. 벧전 5:7) 위로하십니다.
고독에 빠질 때(시 73:23-24. 사 41:10. 49:14-16. 요 14:15-21) 위로하십니다.
지치고 약할 때(사 40:28-31. 고후 4:16-18. 빌 4:12-13) 위로하십니다
실의에 빠질 때(시 34:18. 42:5. 애 3:20-23. 롬 8:28-29) 위로하십니다.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아침마다 새 힘을 불어넣어 주십니다.
"위로의 성령님이시여, 우리 안예 계셔서 위로하세네, 위로의 성령님이시여!"
여러분, 보혜사 성령님께서는 오늘도 연약한 나를 도우시고, 또 더욱 깊은 진리로 깨우쳐주시며, 나를 진정으로 위로해주시려고 어디에 계시며 활동하실까요?
오늘 본문 17절을 자세히 보면, 두 번씩이나 강조하는 점이 있습니다.
“나와 함께 계시며, 내 속에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축복인가요!
2. 성령님께서 일하시는 곳
1) 성령은 하나님의 사람의 주변에서 일을 하십니다.
일상 생활 속에서 깨닫지 못하는 동안에도 성령의 보호와 인도를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를 위하여 길을 열기도 하시고 뒤편에서 적을 막아 보호하기도 하셔서 성도가 본연의 사명을 수행할수 있도록 도와 주십니다.
(성경)// 애굽인들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갔을 때에, 처음에는 장자의 장례를 치르느라고 정신이 없다가 葬禮를 치른 후에,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준 것이 後悔莫及이었습니다. 바로는 많은 奴隸들을 그냥 보낼 수가 없다는 생각에 군사를 동원하여 이스라엘의 뒤를 추격했습니다.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너야 할 시점에서야 따라 잡을수 있었습니다. 반면 이스라엘은 매우 난감한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앞에는 홍해요 뒤에는 애굽 군대입니다. 전진하여 나가면 물에 빠져 죽게되고, 지체하면 애굽군대에 목숨이 끝나는 것이요, 항복하면 더 심한 고역의 노예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 때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완벽하게 지키셨습니다.
1단계로) 애굽인과 이스라엘 사이에 불기둥으로 간격을 두셨습니다. 밤이 새도록 애굽 군대가 이스라엘을 접근할 수 없도록 만드셨습니다. 2단계는) 홍해를 말려 앞으로 건너 가수 있도록 축복의 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그 은혜는 위기에서 당황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바다 속을 육지 같이 건너 참된 자유의 땅으로 인도해 내셨습니다. 이러한 초자연적 현상을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능력의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면 태평양을 가로질러 육지로 만들 수도 있음을 우리는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홍해가 빨리 합하지 못하도록 물을 막으셨습니다. 영이신 성령님을 육신의 제한을 지닌 인간이 뵐 수는 없지만, 힘들고 어려운 삶에서도 믿음의 순수성을 지키려는 우리의 주변에서 항상 함께 하십니다.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지키십니다. 이끌어 인도하시고 깨우쳐 감사하게 하십니다.
성령님은 지금 이 자리에도 함께 하십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의 영성회복을 위한 성령강림절 준비를 위항 각종 기도회에 함께 하셔서 도우시고 보호하실 것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러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시다.
2) 성령님은 聖殿에서 일하십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집에서 일하십니다. 성령께서 거하시므로 성전입니다. 교인들이 하나님의 성전을 거룩하게 지키야 하는 것은 성령께서 거하시며서 일하시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성전을 정결하게 단장하고 최선을 다한 인테리어로 장식하는 것은, 성령께서 역사 하시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진중의 성막에 거하셨던 하나님의 臨在를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사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성막에 거하시며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증거로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지켜 주셨습니다.
성막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향하여 고통을 극복하는 꿈과 비젼을 영글게 하는 곳이요,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찬양의 입술이 머무는 곳’이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구름 기둥의 흐름을 제일 먼저 살폈습니다. 구름이 머물고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 오늘도 하나님께서 자신들과 함께 하신다는 감사와 감격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기쁨으로 성막을 향하여 지파별로 나누어 앉아서 깊은 감격에 겨워 눈물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희생제물을 가지고 나아와 죄 용서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 앞에서 화목제사를 드리고 서로서로 화목했습니다. 그 앞으로 감사예물을 가지고 와서 감사를 표현했습니다. 그 앞에서 찬송을 올립니다.
여러분! 성전은 예배의 중심지요 만민이 기도하는 아버지의 집입니다. 거친 세상살이에 온통 상처투성이인 현대인들이 용서받고 용서를 하는 화해의 장소입니다. 받은 축복과 사랑을 함께 나누는 교제의 터입니다. 내일을 향한 전진을 위하여 절망과 좌절을 딛고 일어서도록 성령의 능력을 공급받는 충전소입니다.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천하는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
성전은 오늘도 성령께서 영적 전투를 위하여 준비하는 자들에게, 그 위대하신 능력을 충전시키는 은혜의 장소입니다. 오늘 이 새벽, 성령의 역사 현장으로 달려오신 분들께 성령의 축복하심을 넘쳐서 위대한 일을 만들어 가시기를 바랍니다.
3) 성령님은 聖徒의 마음에서 일하십니다.
하나님의 신은 하나님의 일을 충성되게하는 사람에게 강림하십니다.
성령께서 일하시는 장소는 성도의 마음 중앙입니다. 사람의 마음 속을 성령의 일터로 정하시고 들어오시는 것은 하나님의 눈이 그곳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모든 일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생각부터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잡아 돌립니다. 그래서 다윗은 다음과 같이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성령께서 마음 속에서 편안하게 활동하시도록 준비되지 않는다면 큰 은혜의 축복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그 마음에 좌정하시도록 모셔들인 교인에게는 찬송하게 됩니다. 기도합니다. 영의 눈과 귀가 열립니다. 전도하게 되고 봉사하게 됩니다. 성령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습니다.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할 사람에게는 임하시어 먼저 감동을 시킨후, 엄격한 과정을 수료하게 하신 다음에야 하나님의 일은 부탁하셨습니다.
성령을 변두리에 머무시게 하지 맙시다. 성전과 가치관의 중심에 모십시다. 성령은 지금도 청지기로 부름받고 훈련받고 다짐된 준비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중요한 하나님의 일을 함께 사역할 사람들에게 그 영성이 회복되도록 공급하실 능력의 충전소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이 초대에 응답할 수 있는 역량을 다듬어 가는 지혜로운 인생 건축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닫는 말 |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시는 분, 우리와 함께 사시는 분, 우리 안에 머무시는 분!
나를 결코 떠나지 않고 곁에 계시는 분, 지금 나와 함께 하시는 분, 내 안에 계속 머무르시며 나를 위로하시는 분, 곧 그 성령님과 동행하며 사는 역동적인 삶의 현장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누가 진정으로 당신의 위로자요, 동반자인가요? 여기 당신의 영원한 동반자가 계십니다. 보혜사 성령님이십니다. 그분은 당신의 한계를 능가하는 능력으로 도와주시며, 당신의 내면세계와 미래세계를 가르쳐주시며, 오늘도 다가오셔서 위로해주시며, 속사정을 변호해주시고 새힘을 주시는 은혜의 성령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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