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서신

[스크랩] 설교자를 위한 요한복음의 신학이해(권성수)

하나님아들 2015. 5. 9. 15:03

 

표적이란 손가락표처럼 무엇을 가리키는 것으로, 요한복음의

표적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이심을 가리킨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그 표적을 통해 메시아이심을 믿어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함이다.

요 한복음은 공관복음에 비해 독특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요한복음은 공관복음처럼 예수님의 탄생이나 세례요한의 탄생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천지 창조 이전의 태초로부터 시작한다(1:1). 요한복음은 또한 공관복음처럼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로고스’(말씀)로부터 시작한다.

요한복음은 공관복음처럼 사건중심이 아니라 예수님의 행위와 연결된 대화 중심으로 메시아를 증언하고 있다. 사건들을 다루지 않는 것은 아니나, 그 배후의 무엇을 가리키는 표적’(sign)으로 다루고 있다. 요한복음은 마태복음과 달리 구약의 한 구절을 인용하고 이것이 예수님의 삶과 죽음에 이러이러하게 성취되었다고 증언하는 것이 아니라(1:23//7:14; 2:6//5:2; 2:15//11:1; 2:16//31:5 ), 구약의 만나와 참 만나이신 예수님을 직결시키고(6) 구약의 구리뱀을 예수님과 직결시키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3). 땅의 떡을 말씀하시다가 구약의 만나를 말씀하시고 이것을 생명의 떡이신 자신과 연결시키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다루고 있다(6). 말하자면, 요한복음은 땅과 하늘, 구약과 예수님을 거시적으로 연결시키는 복음이다.

요 한복음은 이렇게 독특하기 때문에, 틀에 박힌 메시아 증언에 매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인습적인’(non-conformist) 복음이라는 평을 받거나 혹은 밀밭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망아지’(maverick) 같은 복음이라는 평도 받는다. 요한은 우뢰의 아들이라는 별명답게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고 천둥처럼 증언한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요한은 이렇게 틀을 깨는 방식으로 기독론을 중심한 신학을 제시하고 있다.

 

생명 기독론

 

요한의 신학이 요한복음의 구조를 통해 표현되어 있기 때문에 그 구조를 간단히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요한복음의 구조를 분석하는 열쇠는 2030~31절에서 찾을 수 있다.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이 말씀은 20장까지의 내용을 요약하는 성격을 띠고 있다. 요한은 20장까지의 내용을 표적들이라는 말로 요약했다.

표적이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손가락표처럼 무엇을 가리키는 것이다. 여기서 요한복음의 표적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이심을 가리킨다고 밝히고 있다. 표적들을 통하여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증언하는 목적이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믿어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요한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가 생명이심을 증언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분이 주시는 생명을 얻게 하려는 목적으로 기록된 책이다. 요한의 기독론은 생명 기독론이다. 요한복음이 생명의 책이라는 것은 요한복음 3장에서 성령으로 거듭나는 생명, 4장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생수, 6장에서 영원히 주리지 않고 목마르지도 않는 생명의 떡, 10장에서 선한 목자가 생명을 버림으로써 주시는 생명, 11장에서 죽어도 사는 부활생활을 다룬다는 점에서도 증명된다.

요 한복음이 증언하는 대로 예수님이 주시는 생명은 생명의 원천이신 하나님과 연결되는 하나님의 자녀의 생명이다(1:12). 그것은 또한 풍성한 생명이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10:10). 예수님이 주시는 생명은 동시에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생명이다(1:14).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현재 사망에서 옮겨져 누리는 생명이면서 동시에 마지막 부활할 미래에 얻게 될 생명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5:24)는 현재적 생명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에 비해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5:29)는 말씀은 미래적 생명에 해당한다. 요한복음이 증언하는 생명은 현재에 맛보고 미래에 만끽하는, 현재성과 미래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생명인 것이다. 요한복음은 이러한 생명을 증언하되 1장에서는 서론적으로, 2장에서 21장까지는 표적들로 증언하고 있다.

요한복음 은 예수님이 믿는 자들에게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말씀(로고스)과 행위(표적)를 통해 제시했다. 요한이 말씀과 행위로 예수님의 정체성을 밝히는 방식을 택한 것은 예수님 자신의 의도를 바로 깨달은 결과이다. 예수님도 자신의 말씀과 자신의 행위가 하나님으로부터 사람들을 구원하도록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것을 증명한다는 것을 밝히셨다.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 줄 알지 못함이로다”(8:43).

내가 진리를 말함으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느냐. 내가 진리를 말하매 어찌하여 나를 믿지 아니하느냐”(8:45~46).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아니하리라”(8:51).

유 대인들이 에워싸고 가로되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케 하려나이까. 그리스도여든 밝히 말하시오 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어늘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10:24~26).

 

말씀 기독론(1)

 

요한의 생명 기독론은 말씀(로고스) 기독론을 통해 나타나 있다. 요한은 시작이 없는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하나님으로서(1:1, 14, 18; 5:19~30; 8:24, 28, 58; 10:33~36; 18:5~6, 8; 20:28) 천지를 창조하시고 생명을 가지신 로고스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장막(구약의 성막 연상)을 치고 거하셨다고 하여 진리의 문을 열고 있다(1:14). 요한의 기독론을 로고스 기독론 혹은 지혜 기독론이라고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요한은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증언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했는데, 요한은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서론에서 증명과정 없이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그리스도 자신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충격적으로 거침없이 제시했다. 요한은 마치 천둥이 공중을 치듯 그리스도의 신성과 선재성과 창조자이심을 맨 앞에 배치하여 독자들의 마음을 강타한 것이다.

예수님은 말씀이시다(1:1~18; 3:3; 5:19~30; 6:63; 10:34~36; 12:44~50; 13:31~32; 14:6; 16:12; 17:6, 17; 19:5; 21:25). ‘말씀은 요한이 예수님을 요약하는 명칭이다. 이것은 탁월한 선택이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태초에 하나님이 자신을 표현하셨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의 자기표현(Self-expression), 하나님 자신의 말씀, 하나님과 동등하면서도 구분되는 말씀이시다.

예수님은 말씀이실 뿐 아니라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하나님의 생명 사역을 하는 메시아이심을 스스로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말씀이실 뿐 아니라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님의 자기증언(self-attestation)은 예수님께서 내가 왔다’(h\lqon)라고 하신 표현과 내가이다’(ejgwv eijmiv)라고 하신 표현에 잘 나타나 있다.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내가 왔다말씀을 통해 자기증언을 하셨다.

 

내가 나를 위하여 증거하여도 내 증거가 참되니 나는 내가 어디서 오며(왔고, h\lqon) 어디로 가는 것을 앎이어니와 너희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8:14).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9:39).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10:10).

지금 내 마음이 민망하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때에 왔나이다”(12:27).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12:47).

 

예수님은 또한 내가이다라는 말씀을 통해 자기증언을 하셨다.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4:26).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6:35, 41, 48, 51).

나는 세상의 빛이니”(8:12).

나는 양의 문이라”(10:7, 9).

나는 선한 목자라”(10:11, 14).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11:25).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14:6).

내가 참 포도나무요”(15:1, 5).

내가 곧 왕이니라”(18:37).

 

요한은 예수님이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신 말씀’(로고스)이실 뿐 아니라 위와 같은 자기증언의 말씀을 통해 자신이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밝히신 것을 제시했다.

요 한은 뒤이어 이 로고스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1:29, 36),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이’(1:33), ‘하나님의 아들’(1:34, 49), ‘메시아’(1:19~20, 29이하, 40~42; 3:1~3; 4:25~26, 28~29; 6:60~62; 7:30~32, 40~42; 9:22, 39; 10:22~30; 11:27; 12:34; 20:30~31),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 이’(1:45), ‘이스라엘의 임금’(1:49), 야곱의 꿈 중에 나타난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사다리와 같은 인자’(1:51) 등이라고 증언하고 있다.

예 수님은 특별히 하나님의 아들(메시아의 동의어이면서도 특징적인 명칭)이시다(1:14, 34, 49; 3:16~18; 5:16~30, 37~38, 43~46; 8:36이하; 10:31~39; 11:27; 14:10; 15: 22~24; 17:1이하; 19:7; 20:17, 30~31).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 아버지와 독특한 관계를 맺고 계신다.

성 자 예수님은 기능적으로 성부에게 종속되어(fun-ctionally subordinate, Carson 95), 성부께서 자신에게 말하고 행하라고 주신 것만을 하셨다. 성자 예수님은 동시에 성부께서 하시는 모든 것을 하신다. 성부께서 성자에게 자신이 하시는 모든 것을 보여 주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 동시에 사람의 아들이시다. 예수님은 인자’(‘사람의 아들’)이시다(1:51; 3:13~14; 5:27; 6:27; 53~54, 62; 8:28~29; 9:35; 12:23~34; 13:31~32). 공관복음서에서 사람의 아들은 지상사역, 비하와 죽음의 고통, 완성천국 묵시적 영광으로 강림과 관련해 사용되었으나 요한복음에서는 독특하게 사용되었다. 요한복음에서 인자는 죽음에서 들어올림을 받으시고’(lifted up), 죽음을 통해 영광을 받으시고(12:23~28), 그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게 하신다는 면에서 독특하게 사용되었다. 인자는 계시자로서 인자만 하늘에서 온 자이므로 어떤 인간도 말할 수 없는 것을 말씀하신다. 인자만이 하늘과 땅의 링크이시다(1:51; 3:11~13).

요한은 증명되고 설명되어야 할 큼지막한 주제들을 이렇게 늘어놓는 것으로 일단 생명에 관한 증언의 문을 열고 있다. 요한복음 1장에서 보더라도 메시아 증언을 위해 이미 구약의 어린양’(1:28, 29~36; 10:14~18; 11:51~52; 12:1; 15:13; 19:14), ‘이스라엘 왕’(1:49; 12:13~18; 18:33~38; 19:2~3, 12, 15, 19~22), ‘야곱의 사다리’, 성막, 율법과 선지서가 기록한 자 등으로 구약의 예표와 넓게 연결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행위 기독론(1): 외면적인 표적(2~12)

 

요 한의 생명 기독론은 말씀을 통해 드러날 뿐 아니라 행위(표적)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요한은 생명을 주시는 로고스’(말씀)를 증명 없이 일단 제시하고 난 다음, 2장부터 12장에서는 7대 표적을 통하여 로고스를 증명하고 있다. 이러한 표적은 로고스에 대한 증언이기 때문에 말씀을 연관지어 소개하는 방식으로 증명하고 있다. 요한은 표적과 말씀을 연결시켜 로고스 생명을 증명하되, 때로는 말씀이 먼저 나오고 표적이 뒤따르지만 때로는 표적이 먼저 나오고 말씀이 뒤따르도록 배열하고 있다. 표적의 위치가 말씀 앞에 있든지 아니면 뒤에 있든 중요한 것은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 즉 생명을 주시는 로고스라는 것을 예수님 자신의 말씀을 통해 증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요한은 표적과 또 그와 관련된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의 생명을 증언하되, 이미지의 각도를 달리해 풍부하게 증언하고 있다.

이것을 요악하면 다음과 같다. 아래 도표를 보면 사건의 명칭이 나오고 사건을 묘사하는 사건구가 나온 다음, 사건과 관련된 말씀구가 나온다. 그리고 그 사건이 어떤 주제를 다루는가 하는 것이 나온다. 사건 명칭(사건구//말씀구) 주제의 방식으로 제시되어 있다.

이상의 도표에서 사건과 말씀이 아주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오병이어의 표적과 생명의 떡에 관한 말씀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그러나 38년 된 중풍병자를 고치신 표적과 성부와 성자라는 말씀은 연결시키기가 어렵다. 이 경우 표적과 말씀의 연결고리는 38년 된 중풍병자를 고친 날이 안식일이라는 사실이다. 안식일에 병자를 고침으로써 안식일 법을 어겼다고 보는 유대인들의 항의에 대한 답변에서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5:17)고 말씀하심으로써 성부와 성자의 관계가 밝혀지는 말씀이 주어진 것이다.

7대 표적과 연결된 말씀을 통하여 생명이라는 주제가 전개되는 것은 분명하지만, 주제가 새로운 시작, 생수, 성부와 성자의 관계, 생명의 떡, 예수님의 임재, 세상의 빛, 부활생명 등의 다양한 이미지로 전개되며 속도가 아주 느린 것을 볼 수 있다. 요한복음은 마치 하나의 성부(聲部)가 주제를 나타내면 다른 성부가 그것을 모방하면서 대위법(對位法)에 따라 좇아가는 둔주곡(遁走曲, fugue)과 같다는 말은 바로 이 점에 착안해서 한 말이다.

 

행위 기독론(2): 내면적인 표적(13~17)

 

요 한복음 2~12장은 7대 표적을 기록하는 반면, 13~17장의 내용은 내면적인 표적을 기록하고 있다. 내면적인 표적이란 성령께서 외면적인 표적을 내면화하셔서 예수님이 생명을 주시는 로고스라는 것을 가리켜 준다는 뜻이다. 성령을 내면적인 표적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 나올 법하지만, 요한복음의 목적(20:30~31)표적으로 예수님이 생명을 주시는 로고스로서의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성령을 내면적인 표적으로 묶을 수 있는 것이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14:26).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15:26).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16:13).

 

이 런 말씀들은 모두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 내면적으로 예수님을 증언해 주시는 분이심을 밝혀준다. 그러므로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이 생명을 주시는 로고스 메시아이심을 가리키는 것이 표적의 의미라면, 성령께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밝혀주신다는 점에서 성령을 내면적인 표적이라 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13장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사건을 다루고, 바로 뒤이은 13~16장은 소위 다락방 훈화로 보혜사 성령을 다루는 내용이고, 17장은 그 후의 대제사장 기도를 싣고 있는데, 13~17장을 모두 내면적인 표적인 성령으로 묶는 데는 약간의 무리가 있음을 발견한다. 그러나 13장과 17장은 14~16장의 성령훈화와 연결된 앞과 뒷부분이라 보고 13~17장을 내면적인 표적으로서의 성령이라는 항목으로 묶으면 2030~31절의 요한복음 구조요약과 잘 연결되므로 이렇게 묶어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성령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 속에 계시는 진리의 영(14:16~17)으로 예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신다(14:26). 예수님께서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에게 보내주실 진리의 성령은 우리에게 예수님을 증거하신다(15:26). 예수님이 승천하심으로써 내려오실 성령님은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세상을 심판하시고(16:7~12),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심으로써 예수님의 영광을 드러내신다(16:12~15). 성령이 예수님의 내면적인 표적이라는 것은 이런 의미가 있다.

 

사건 명칭 사건구 // 말씀구 주제

물로 포도주 제조 2:1~11 // 3:1~21 새로운 시작

신하의 아들 치유 4:46~54 // 4:1~42 생수

중풍병자 치유 5:1~18 // 5:19~47 성부와 성자

오병이어 기적 6:1~15 // 6:22~65 생명의 떡

물위로 걸으심 6:16~21 // 7:1~52 예수님의 임재

소경의 개안 9:1~41 // 8:12~59 세상의 빛

나사로 부활 11:1~57 // 10:1~42 부활생명

 

 

행위 기독론(3): 최고의 표적(18~21)

 

2~12 장이 외부적인 7대 표적을 통하여 예수님이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증언하고 13~17장은 내면적인 표적인 성령을 통하여 예수님을 증언한 내용이라면, 18~21장은 최고의 표적(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예수님을 증언한 내용이라 할 수 있다.

오 병이어의 기적을 본 군중이 예수님에게 우리로 보고 당신을 믿게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라는 질문을 던졌다(6:30). 이것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왜냐하면 오병이어로 약 5천명이 먹고도 12바구니에 찰 정도의 음식이 남는 기적을 보았다면 예수님을 믿기에 충분할 것 같은데도 또다시 표적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이런 어처구니없는 질문을 받으시고 자신이 하늘에서 내려오신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셨다(6:35). 예수님은 생명의 떡에 대해 설명하시기를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고 하셨다(6:53). 이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실 보혈이 바로 생명의 원천이라는 것을 암시하신 말씀이다. 예수님은 표적을 보고도 표적을 구하는 군중에게 자신의 십자가를 최고의 표적으로 제시하신 것이다.

예루살렘에서 우양과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자들로부터 성전을 정화하신 예수님께서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뇨라는 질문을 받으셨을 때(2:18), 그 대답하신 말씀을 보아도 십자가가 최고의 표적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성전을 정화하신 예수님에게 대들어 질문한 유대인들은 웬만한 표적으로는 설득될 수 없는 자들이다. 이들에게 예수님은 결정적인 표적을 보이시겠다고 답변하셨는데, 그것이 바로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는 답변이었다(2:19). 이것은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임으로(5:21), 결국 십자가를 최고의 표적으로 제시한 것이다. 이렇게 2020~21절이 요한복음의 내용을 표적으로 요약한 점은 전기한 바와 같은데, 18~21장은 표적 중에 최고의 표적인 십자가와 부활 표적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체포되셨다.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 지실 것을 미리 아시고(18:4) 체포하러 온 자들에게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고 질문하신 후 그들이 나사렛 예수를 찾는다고 할 때에 내로라고 하셨다(18:6). 예수님은 자신을 체포하러 온 자들에게 자신만 체포하고 제자들을 가게 하라고 하셨는데 이것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삽나이다라는 말씀을 성취하려 하신 것이다(18:8~9). 예수님은 이렇게 체포되실 때에도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자들을 하나도 잃지 않는다는 메시아 의식을 분명하게 가지고 계셨다.

예수님은 빌라도의 심문을 받으실 때에도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라라고 하셨다(18:36~37).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세상에 속하지 않은 하나님나라의 왕이라는 자기 증언을 분명하게 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에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라고 하여 한 제자로 자신의 모친의 아들을 삼아주시고 보라 네 어머니라고 하여 자신의 모친을 그 제자의 모친으로 삼아 주셨다(19:26~27). 예수님은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다 이루셨다고 하셨다(19:30).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도 자신의 육신적인 모친의 여생에 대해서까지 자상한 관심을 표명하시고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받은 구원의 사명을 다 이루셨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지 삼일 만에 부활하셔서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셨고(20:11~18), 제자들에게도 나타나셨다(20: 19~23). 예수님은 도마에게도 나타나셨고(20:24~29), 디베랴 바다에게 다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21:1~25). 예수님은 막달라 마리에게 나타나셨을 때에도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고 하심으로써 자신이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오셔서 생명을 주시는 구원사명을 완수하시고 다시 하나님 아버지께로 올라간다는 것을 분명하게 하셨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에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고 하셨다(20:21).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 아버지의 보내심을 받은 메시아라는 것과, 메시아 신분으로 제자들에게 생명의 복음을 전파할 사명을 부여하시고 보내신다는 점을 밝히신 것이다. 예수님이 도마에게 나타나셨을 때에는 도마가 의심할 수 없는 방식으로 자신이 부활하신 메시아라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셨다. 예수님께서 다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에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고기를 많이 잡게 하시고 그렇게 잡은 생선을 그 자리에서 드심으로 자신이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에 의심의 여지가 없게 하셨다. 뿐만 아니라, 특별히 베드로에게는 주님을 사랑하는 것과 주님의 양을 먹이는 것을 직결시키는 말씀을 주심으로써 주님이 생명 주신 양들을 치는 사명을 강조하셨다.

예수님은 최고의 표적인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자신이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이 세상에 내려오셔서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대로 생명구원의 사명을 완수하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의심이나 반박의 여지가 없이 분명하게 제시하신 것이다.

 

요 한의 기독론은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의 보내심을 받아 이 세상에 오셔서 생명구원의 사명을 완수하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밝힌 생명 기독론이다. 요한의 생명 기독론은 예수님의 특징을 말씀(로고스)으로 보고 로고스를 통해 자신의 메시아 신분을 밝히신 로고스 기독론이다. 요한의 로고스 기독론은 7대 표적인 외면적인 행위를 통해 예수님이 생명의 로고스라는 것을 밝히고, 내면적인 표적인 성령을 통해서 예수님이 생명의 로고스라는 것을 밝히며, 최고의 표적인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예수님이 생명의 로고스라는 것을 밝힌 행위(표적) 기독론이다.

요한은 이와 같은 기독론을 밝힐 때에 공관복음과는 달리 구약과 신약을 연결하고, 하늘과 땅을 연결하며, 표적과 말씀을 연결하는 튀는 방식으로 밝혀주었다.

요 한복음을 제대로 정직하게 읽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고 질문하면, ‘그분처럼 말씀하시고 그분처럼 행동하신 분은 사람들 중에는 없다라고 할 것이다. 예수님은 태초부터 계신 로고스로서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면 하실 수 없는 말씀을 하셨고,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면 하실 수 없는 표적을 행하셨다.

예수님의 말씀과 행위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은 사람마다 각기 다를 것이다. 예수님을 두고 좋은 사람이라고 보거나 무리를 미혹하게하는 사람으로 보거나(7:12) 귀신들린 사람으로 보거나(7:20; 8:48; 10:20) 참람한 사람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었다(10:33).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과 행위에 정직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무리 중에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고 말하되 그리스도께서 오실지라도 그 행하신 표적이 이 사람의 행한 것보다 더 많으랴”(7:31). “하속들이 대답하되 그 사람의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때까지 없었나이다 하니”(7:46). 이렇게 말씀과 행위를 통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계시하신 예수님에게 정직한 반응을 보여 믿게 되는 자들이 하나님의 자녀로 생명을 얻게 되는 것(1:12; 20:31), 이것이 생명 기독론인 것이다.

출처 : 김광석 목사와 함께 하는 성경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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