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서신

야고보서와 유다서

하나님아들 2019. 11. 25. 23:56

야고보서와 유다서

 


 

 

신약의 주요맥락 / 야고보와 유다 (공동서신 2)

야고보와 유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형제로 알려져 있다. 특히 유다는 자신이 야고보의 형제인 것을 밝힌다 (유 1).

야고보

1. 야고보서의 구조
1. 도입 (1:1)
2. 시험상황 (1:2-18)
3. 듣기와 말하기 (1:19-27)
4. 부자와 빈자의 문제 (2:1-26) 
5. 혀에 대한 경고 (3:1-12)
6. 다툼과 화평 (3:13-4:12)
7. 계획과 부자들 (4:13-5:6)
8. 종말론적인 인내 (5:7-11)
9. 교회에 주는 여러 가지 권면 (5:12-20)

2. 야고보서의 내용

1) 다른 성경과의 관계

(1) 복음서와의 관계
  야고보서는 복음서와 비슷한 내용을 많이 가지고 있다.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않으시는 하나님에 대한 말씀 (약 1:5/마 7:7 par.), 들음과 행함에 관한 말씀 (약 1:22f./마 7:24,26 par.), 레 19:18을 인용하는 이웃사랑에 관한 말씀 (약 2:8/마 22:39 par.), 판단에 관한 말씀 (약 4:12/마 7:1), 맹세에 관한 말씀 (약 5:12/마 5:33-37) 등이다. 이것은 야고보서와 복음서가 상호 의존했거나, 공통적인 자료를 사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지 중요한 것은 예수의 말씀이 폭넓게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복음서 외에도 예수의 말씀전승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2) 베드로전서와의 관계
  또한 야고보서는 베드로전서와 비슷한 내용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마귀대적에 관한 말씀이 일치하며 (약 4:6=10은 벧전 5:5-9), 잠 10:12를 인용하는 것이 동일하다 (약 5:20/벧전 4:8 "허다한 죄를 덮는다"). 이것은 야고보서와 베드로전서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3) 구약성경과의 관계
  더 나아가서 야고보서는 구약성경가운데 지혜문서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예를 들면 잠언 (암시. 약 1:5/잠 2:3-6 지혜구함, 약 1:19/잠 15:1 말과 성냄, 약 2:6/잠 14:21 가난한 자 업신여김, 약 3:6/잠 16:27 혀는 불, 약 4:14/잠 27:1 내일 일; 인용. 약 4:6/잠 3:34 "하나님은 교만한 자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주신다", 약 5:20/잠 10:12 "허다한 죄를 덮는다"), 욥기 (약 1:11/욥 14:2/사 40:7  풀의 꽃 사라짐)를 사용한다. 그 외에도 창세기 (약 2:23/창 15:6 아브라함의 믿음), 출애굽기 (약 2:11/출 20:13; 신 5:17 살인, 간음), 레위기 (약 2:8/레 19:18 이웃사랑)가 사용되며, 예레미아서가 사용된다 (약 5:5/렘 12:3 도살의 날). 

(4) 구약인물제시
  특이한 것은 야고보서가 중요한 신학을 제시하기 위하여 구약의 인물들을 언급한다는 점이다. 
  첫째로 아브라함은 믿음과 행위의 일치를 보이기 위하여 제시되었다 (약 2:21/창 22:1ff.). 때때로 아브라함에 대한 야고보의 설명은 바울의 설명과 상반되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야고보는 바울과 다른 면에서 아브라함을 이해하고 있다는 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야고보는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다는 사실에 대하여 의심하지 않는다 (약 2:23). 단지 야고보는 아브라함의 칭의를 위하여 행위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를 먼저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약 2:21). 아브라함의 칭의에 있어서 행위와 믿음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약 2:22). 아브라함의 칭의를 위하여 믿음과 행위가 나란히 작용하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신앙은 행위하는 신앙이요, 아브라함의 행위는 신앙하는 행위이다. 
  둘째로 라합도 믿음과 행위의 일치를 보이기 위하여 제시되었다 (약 2:25/수 2:1ff.). 야고보서는 라합의 행위를 강조한다.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를 대접하여 다른 길로 나아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약 2:25). 야고보서는 히브리서와 비슷하게 라합를 묘사한다. 라합은 몸을 파는 여인이었다. 라합은 이스라엘의 사자들을 대접하였다. 여기에서 야고보서는 히브리서에 비하여 한 가지 사실을 덧붙힌다. 이스라엘의 사자들을 다른 길로 도피시켰다는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바로 이같은 행위로 말미암아 라합이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는 사실이다. 라합은 행위의 여인이다. 라합이 비록 이스라엘의 적군에 속하는 여성이며 몸을 파는 악한 일을 하는 여성이었다 할지라도 행함으로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극복하였다. 이렇게 하여 라합은 아브라함에게 비견되는 행위의 인물로 인정되었다. 야고보는 행위의 중요성을 드러내기 위하여 남자가운데서는 아브라함을 일례로 삼고, 여자가운데서는 라합을 일례로 삼았다. 이처럼 라합은 위대한 자리에 서게 되었다. 
  셋째로 인내의 모범적인 인물로 욥을 제시한다 (약 5:11). 욥의 이름은 신약성경에서 오직 야고보서에 한 번 거론된다. 야고보는 욥기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야고보서의 구조와 욥기의 구조가 비슷하기 때문이다. 야고보서는 이렇게 시작된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약 1:2). 그리고 야고보서는 이렇게 마쳐진다.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이니라" (약 5:20). 야고보서의 시작은 시험에 관한 내용을 가지고 있으며, 야고보서의 종결은 구원에 관한 내용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언뜻 욥기의 처음과 끝을 우리에게 연상시키지 않는가. 욥기는 여러 가지 시험에 관한 이야기에서 출발하여 (욥 1-2장), 여러 친구의 구원에 관한 이야기에 도착한다 (욥 42장). 야고보서는 욥기로부터 시작과 종결을 위한 구조를 따왔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야고보서가 구약의 지혜서들에 비견되는 신약의 지혜서라고 알려져 있다는 사실에 주의를 기울인다면 이러한 구조관찰은 설득력이 있다. 또한 야고보서에는 욥기의 내용을 암시하는 구절들이 많이 있다. 예를 들면 두 책은 다같이 인생의 허무함을 풀의 꽃과 같은 것으로 묘사한다 (약 1:10f./ 욥 14:2). 욕심의 잉태는 죄를 낳는다고 말한다 (약 1:15/욥 15:35). 하나님께서 가난한 자를 기억하신다고 설명한다 (약 2:5/욥 34:19). 긍휼의 위대성을 강조한다 (약 2:13/욥 22:6-11). 헐벗고 굶주린 형제자매에게 관심을 가질 것을 언급한다 (약 2:15/욥 31:19-20). 언어의 통제를 요구한다 (약 1장, 3장/욥기 전체).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받으신다고 말한다 (약 4:6/욥 22:29). 생명의 허무함을 선언한다 (약 4:14/욥 7:7). 재물과 인생은 �고 좀먹는 것임을 밝힌다 (약 5:2/욥 13:28). 욥의 인내를 성도의 인내를 위한 모범으로 소개한다 (약 5:11/욥기 전체). 
  마지막으로 야고보서와 욥기는 다같이 의인의 간구가 지니고 있는 효력을 제시한다 (약 5:16/욥 42:8). 이렇게 볼 때 야고보서는 구조에 있어서 뿐 만 아니라 내용에 있어서도 욥기에 상당히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야고보서에서 욥의 의미는 특징적이다. 야고보서는 성도들에게 인내를 가르치는 단락에서 욥을 언급한다 (약 5:7-11). 야고보서가 말하는 인내는 종말론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우선 인내의 기간으로 말하자면 주님께서 강림하실 때까지이다 (약 5:7). 또한 인내의 동력은 주님께서 강림하실 것이 임박했다는 사실에 있다 (약 5:8,9). 마지막으로 살펴보아야 할 것은 인내의 결과이다. 인내는 최후의 심판을 면하게 한다 (약 5:9). 그런데 야고보서는 종말론적인 인내를 설명하면서 이것을 위한 세 가지 예를 제시한다. 첫째로 농부의 인내이다 (약 5:7). 둘째로 선지자들의 인내이다 (약 5:10). 셋째로 욥의 인내이다 (약 5:11). 이렇게 볼때 야고보서는 욥의 인내를 농부의 인내와 선지자들의 인내에 견주어 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넷째로 기도를 위하여 엘리야를 제시한다 (약 5:17). 엘리야는 위대한 선지자였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가까이 있는 인물이다. 야고보서는 이것을 단적으로 명확하게 설명해준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다" (약 5:17). 이것은 엘리야가 죽기를 구할 정도로 낙심하고, 이세벨의 칼을 피하여 도망하고, 하나님께 송사하던 모습을 연상시킨다. 엘리야의 성정이라고 해서 우리의 것과 다른 점은 없다. 그런데 우리와 성정이 같은 엘리야는 기도함으로써 놀라운 일을 행하였다. 비오지 않기를 기도하니 비가 오지 않고, 비가 오기를 기도하니 비가 왔다. 엘리야는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엘리야는 기도하는 사람의 모범이었다. 이것은 모든 성도들에게 기도할 것을 요구하는 강력한 도전이 된다. 엘리야가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라면, 우리도 엘리야처럼 기도할 수가 있다. 기도에 있어서 엘리처럼 우리에게 가까이 있는 사람도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2) 야고보서의 신학

(1) 하나님
  가장 먼저 야고보서는 하나님을 창조자로 소개한다. 하나님은 불변적이며 무형적인 분이다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다", 약 1:17). 하지만 하나님은 만물은 하나님의 창조물이다 (약 1:18). 하나님의 창조물 가운데 압권은 인간이다. "그가 그의 조물 중에 우리를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다", 약 1:18).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셨다 (약 3:9). 또한 하나님은 아버지이시다. 하나님은 "주 아버지" (약 3:9)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 (약 1:5)이시다.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자" (약 5:11)이시다. 또한 하나님은 "빛들의 아버지" (약 1:17)이시다. 따라서 하나님은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을 위로부터 주시는 분이시다 (약 1:17).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주신다 (약 4:6). 가까이 하는 자에게 가까이 하신다 (약 4:8). 그분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자를 높이신다 (약 4:10). 하나님은 가난한 자를 택하시어 믿음에 부요케 하시고 약속하신 나라를 주시는 분이시다 (약 2:5). 나아가서 하나님은 구원자이시다. 하나님은 진정한 입법자와 재판자이시다 (약 4:12). 그러므로 하나님은 불의를 들으시는 만군의 주이시다 (약 5:4). 하나님은 "하나님의 의" (약 1:20)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신다 (약 4:12).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시험하지 아니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받지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약 1:13). 여기에서 말하는 시험은 욕심에 이끌려 미혹되는 시험이다 (약 1:14). 욕심은 죄악을 낳고 죄악은 사망을 낳는다 (약 1:15). 시험은 이 사슬에 관련된 시험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시험을 베풀지 아니하신다.

(2) 예수 그리스도
  특이하게도 야고보서에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명칭이 직접적으로 단 두 번 밖에는 나오지 않는다 (약 1:1; 2:1). 이것을 근거로 야고보서의 기독론 몇 가지를 살펴보자.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동일선상에 놓여있다 (약 1:1). 야고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 (큐리오스)라고 부른다 (약 1:1; 2:1). 야고보서에서 "주"는 모두 13번 나오는데 (1:1,7; 2:1; 3:9; 4:10,15; 5:4,7,8,10,11,14,15) 대체적으로 하나님을 가리키거나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이것은 야고보서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동일선상에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3) 교회
  야고보서는 교회를 회당으로 묘사한다 (약 2:2ff.). 이것은 아직 유대교적 공동체와 기독교적 공동체가 완전히 구별되지 않은 초기단계의 교회상을 보여준다. 야고보서의 교회는 장로가 있는 조직된 교회이다 (약 5:14). 이 교회에서 기도와 찬송은 중대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약 3:9; 5:13). 야고보서의 교회는 빈자와 부자로 구성되어있는데 상당한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불행하게도 야고보서의 교회에는 벌써 배도의 현상이 나타나고 있었다 (약 5:19-20). 이런 현상가운데서 야고보서의 교회는 말세 (약 5:1), 재림 (약 5:7), 심판 (약 5:9)와 같은 종말론적인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4) 윤리
  야고보서는 "가난과 부"의 신학을 가지고 있다. 야고보서의 교회에는 낮은 형제들과 부한 형제들이 있었다 (약 1:9-11). 야고보는 낮은 형제들에게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높아진 것을 자랑하고, 부한 형제들에게는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비천을 발견하여 낮아짐을 자랑하라고 권면한다. 부요함은 풀의 꽃과 같다. 이렇게 권면하는 까닭은 집회시에 가난한 자들이 멸시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약 2:1-13). 가난한 자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 첫째로 신앙적 근거 때문이다 (약 2:1):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외모를 취하지 않는다. 둘째로 신학적 근거 때문이다 (약 2:5). 하나님은 가난한 자를 선택하셨다. 셋째로 사회적 근거 때문이다 (약 2:6-7). 부자는 폭행을 일삼는다. 넷째로 성경적 근거 때문이다 (약 2:8). 율법은 이웃사랑을 요구한다. 이에 더하여 야고보서는 부자들에게 경고를 준다 (약 5:1-6). 부자들은 재물의 부패 가능성을 인식할 것이며 (약 5:2-3), 급료를 체불하지 말 것이며 (약 5:4), 사치와 연락에 빠지지 말 것이며 (약 5:5), 의인을 정죄하지 말 것이다 (약 5:6).

(5) 믿음과 행위
  바로 이같은 맥락에서 야고보서는 믿음과 행위의 조화 문제를 다룬다 (약 2:14-17). 때때로 야고보의 신학은 바울의 신학과 마찰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야고보는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 (약 2:21,24,25)고 말하는 반면에 바울은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 (롬 3:28; 갈 2:16; 빌 3:9)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야고보서의 신학을 야고보서의 교회상황에서 이해하면 이 문제는 쉽게 해결된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야고보서의 교회는 가난한 자를 멸시하고 있었다 (약 2:6). 헐벗고 굶주린 형제자매를 말로만 위로하였다 (약 2:15-16). 따라서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 (약 2:17)이라고 말한다. 물론 야고보는 믿음에 대한 긍정성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믿음의 간구 약 1:16;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약 2:1; 한 분 하나님에 대한 믿음 약 2:19). 야고보는 믿음과 행위의 문
제를 아브라함을 예증으로 잘 설명해준다 (약 2:21-24). 야고보서는 아브라함과 관련하여 두 가지 사건을 제시한다. 첫째는 창 22:1이하의 이삭제사이다 (약 2:21-22). 여기에서 야고보는 행함으로 의롭다하심을 얻는다고 말하면서도 (약 2:21) 믿음을 무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믿음과 행위의 상호기능을 정확하게 밝힌다. 믿음은 행함과 협동하며 (약 2:22상), 행함은 믿음을 완성한다는 것이다 (약 2:22하). 

        --협동-->
믿음○    ○행위
        <--완성--

둘째는 창 15:1이하의 상속자약속이다 (약 2:23-25). 여기에서 야고보는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얻는다고 말하면서도 (약 2:23) 행위를 무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믿음과 행위의 조합관계를 정확하게 밝힌다. 믿음과 행위 의롭다하심의 두 근거라는 것이다 (약 2:24). "믿음 뿐 아니라". 말하자면 믿음과 행위는 칭의를 위한 두 겹의 근거이다. 마치 노랑색과 파랑색의 셀로판지를 겹치면 초록색이 되는 것과 같다. 따라서 야고보는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영혼없는 몸은 죽은 것이듯이, 행함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 (약 2:26). 영과 몸을 분리할 수 없듯이 행함과 믿음을 분리할 수 없는 것이다. 

유다

1. 유다서의 구조

1. 도입 (1-2)
2. 주제 (3-4) 
1) 본래목적 (3상): 일반적인 구원에 관하여 쓰려 함
2) 현재목적 (3하): 단번에 주어진 믿음을 위한 싸움 권면
3) 변경이유 (4): 어떤 사람들이 가만히 들어옴
3. 본론 (5-23)
1) 생각나게 함 (5-16)          
(1) 실례 (5-7): 주께서 하신 일
(2) 사실 (8-16): "이와 같이", 네 번 "이들은" (8,10,14,16)
2) 기억나게 함 (17-19)         
(1) 실례 (17-18):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의 말
(2) 사실 (19): 
3) 권면 (20-23)
(1) 자신을 위하여 (20-21)
(2) 타인을 위하여 (22-23) 
4. 결론 (24-25)

2. 유다서의 내용

  유다서는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울 것을 강조하면서 (유 3), 구약을 다시 생각나게 하고 (유 5), 사도들을 기억하게 한다 (유 17).

1) 유다서의 교회
  유다서의 교회는 "사랑을 얻은 자들이다" (유 1). 이 사랑은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사랑이다. 또한 유다서의 교회는 "지키심을 입은 자들" (유 1)이다. 셋째로 유다서의 교회는 "부르심을 입은 자들" (유 1)이다. 이 모든 것은 수동태 완료형으로 되어있다. 이것은 한 편으로 사랑과 보호와 소명이 모두 인간에게 있어서 능동을 배제하는 수동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은 하나님의 일이다 (유 24). 다른 한 편으로 이것은 사랑과 보호와 소명이 불변적인 사항들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유 24).
  유다서의 교회는 모든 것을 아는 사람들이다. "너희가 범사를 알았으나" (유 5). 이것은 수신자가 잡다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특정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지식은 구약성경에 관한 지식이다. 이 사실은 유다가 바로 이어서 구약성경의 출애굽사건 등을 기억시키는 것으로부터 쉽게 알 수 있다. 
  유다서의 교회에게는 "애찬" (유 12)이 있었다. 이것은 함께 먹는 (유 12) 공동체 식사를 의미한다. 수신자들은 애찬을 통하여 상호간에 깊은 교제를 나누었다. 이때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고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일을 했을 것이다 (유 4). 또한 권위에 순종하며 영광을 찬송하는 일을 했을 것이다 (유 8). 그리고 약한 성도들을 공궤하였을 것이다 (유 12). 이때 감사의 말을 하며 칭찬하는 말을 했을 것이다 (유 16). 마지막으로 서로 연합하고 성령으로 충만했을 것이다 (유 19).

2) 유다서의 대적자들
  그러나 유다서의 교회에는 대적자들이 있었다. 이들의 정체에 대하여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대적자들에 대한 서론적인 설명이 4절에 나온다. 첫째로 이들은 교회 밖에서 가만히 들어온 자들이다 (유 4). 둘째로 이들은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들" (유 4)이다. 셋째로 이들은 불경자들이다 (유 4). 넷째로 이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린 자들이다 (유 4). 다섯째로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들이다 (유 4). 대적자들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본론에서 전반적으로 다루어진다. 유 8,10,12,16,19에 반복되는 "이들은" (     )이라는 표현에 주의해야 한다. 이들은 지금 교회의 일부이다 (유 4,12,19,22,23). 이들은 심지어 애찬에 참여한다 (유 12). 이들은 꿈꾸는 자들이다 (유 8-9). 이것은 아마도 환상가들을 의미한다. 이들은 출애굽 백성의 불신 (유 5), 처소들 떠난 천사들의 배신 (유 6), 소돔과 고모라의 간음 (유 7)을 꿈꾼다. 이들은 여러가지 별칭을 가진다 (유 12-13): 암초, 목자, 구름, 나무, 물결, 별들. 
  대적자들의 특징은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첫째로 신학적인 문제이다. 대적자들은 "경건치 아니한" (4) 자들이다. 불경은 윤리적인 차원보다는 신학적인 차원을 가리킨다. 무엇보다도 대적자들에게는 신론적인 문제가 있다. 대적자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방탕으로 바꾼다 (유 4). "하나님의 은혜"는 이신칭의를 의미한다. 이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멸시한다. 이들은 영광을 훼방한다 (유 8). 영광은 하나님의 영광을 의미한다 (유 24-25). 나아가서 대적자들에게는 기독론적인 문제가 있다. 대적자들은 유일한 주재요 주님인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한다 (유 4). 이들은 예수께서 주재이신 것과 주님이시라는 권위를 멸시한다 (유 8). 이 뿐 아니라 대적자들은 성령론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다. 이들은 육에 속한 자들로서 성령을 가지지 않은 자들이다 (유 19). 이들은 육체를 더럽힌다 (유 8). 둘째로 교회론적인 문제이다. 대적자들에게서 분당주의가 엿보인다. 그들은 애찬에서 악한 행위를 하였고 (유 12), 자기의 것들만을 목양하면서 (유 12), 당을 짓는다 (유 19). 마지막으로 대적자들에게는 윤리적인 문제가 있다. 대적자들은 이성없는 짐승과 같이 본능으로 안다 (유 10). 이들은 육체를 더럽힌다 (유 8). 이것은 소돔과 고모라처럼 간음하며 다른 육체를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 (유 7). 그들은 육체적인 타락과 쾌락에 종사한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원망하는 자들이며 (유 16), 불만을 토하는 자들이며 (유 16), 그 정욕대로 행하는 자들이며 (유 16,18), 입으로 자랑하는 말을 내는 자들이며 (유 16), 기롱하는 자들이다 (유 18). 그들은 가인의 길, 발람의 삯, 고라의 패역을 따르면서 (유 11), 이익을 위하여 아첨한다 (유 16). 
  대적자들의 결국은 분명하다. 이들은 옛적에 이 심판을 위하여 미리 기록된 자들이다 (유 4,13).

3) 유다서의 신학
  이런 상황에서 유다서는 바른 신학을 제시함으로써 교회를 보존하려고 한다. 첫째로 유다서는 하나님이 한 분이시라고 말한다 (유 25). 이 하나님은 능력자이시다. 하나님은 거침없이 보호하실 능력과 흠없이 서게 하실 능력을 가지고 있다 (유 25). 이 하나님은 "우리의 구주" (유 25)이시다. 또한 하나님은 "아버지" (유 1)이시다. 그러므로 유다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 (유 1,21)과 은혜 (유 4)와 영광 (유 25)을 말한다. 하나님의 사랑 (유 1,21)은 성도들이 자신을 지켜야할 규범이다 (유 21). 하나님의 은혜 (유 4)는 단회적인 구원의 믿음을 주시는 근원이다 (유 3). 하나님의 영광은 성도들이 바라보아야 할 궁극적인 목표이다 (유 25). 둘째로 유다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 차례 "주" (4,17,21,25)라고 부른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모든 성도의 통치자와 주인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유다를 비롯하여 모든 사도들의 주인이시기도 하다 (유 1,17). 이런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이신 주재" (유 4)이시다. 바로 이 유일성은 하나님과 동일한 것이다 (유 25). 여기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동등됨이 드러난다.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이 돌려지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유 25). "주"이며 "주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긍휼을 베푸신다 (유 25).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을 얻는다 (유 1). 셋째로 유다서는 성도와 대적자의 차이점이 성령소유에서 드러난다고 말한다. 대적자는 성령을 가지지 않은 자들이지만 (유 19), 성도는 성령을 가진 자들이다. 성도들이 성령을 가진 자라는 사실은 "성령으로 기도" (유 20)한다는 점에서 확실하게 드러난다. 성령을 가진 자는 성령으로 기도해야 한다. 성령으로 기도하는 것은 성도가 성령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한 가장 분명한 표식이다. 
  성도는 이와 같이 단번에 주신 거룩한 믿음 (유 3) 위에 자기를 건축해야 한다 (20). 성도는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보편적인 구원 (유 3), 곧 영생을 가지고 있다 (유 21). 땅에 흩어진 모든 성도는 믿음과 행위의 조화 속에서 (유 3,20,22-23) 이미 주어진 현재적인 구원을 기초로 하여 미래적인 구원으로 계속해서 자라가야 한다 (유 21).

조병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