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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삼위일체에 대하여

하나님아들 2012. 7. 25. 11:54

 

 

삼위일체에 대하여

 


교리는 신앙의 규범이다.
성경만 있으면 다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도대체 우리가 믿는 믿음의 내용이 무엇인가에 대해 초대교회부터 신앙의 내용을 요약했었다. 우리의 믿음의 내용이 무엇이고, 무엇이 표준이며, 척도인지, 하나님의 구원진리를 신앙적으로 표현한 형태로 교리가 교회의 생명의 표현이다.
왜 초대교회가 신조와 고백서를 가지려고 했는가? 교회의 생명을 구하고 우리 주님과 그의 위대한 구원사역에 관한 진리를 보존하기 위함이었다. 옳은 것, 그른 것 - 진리와 오류 사이에 분명한 구분을 지어주었다.

교리의 형성에는 시대의 정치적 배경도 상당한 역할(국가의 권세도 하나님의 권세)을 하지만, 교회의 신앙이 교리를 결정했다. 기독교는 역사적인 종교이다. 역사적 종교로서의 기독교는 그 근원을 역사적 발전과정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사역들에 귀속시킨다. 역사속에서 사람들을 통해서 친히 사역하신 역사 - 역사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과정일 뿐이다.
헤르만 바빙크는 "교리는 성령의 인도와 조명으로 확증된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므로 교리는 신앙고백의 좋은 안내자이다. 초대교회의 관심, 그리스도의 신성에 관한 것 - 이것이 기독교로 남느냐 무너지느냐의 큰 결정적 문제였다(기독교의 초석).

교리를 모르고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
다른 방식으로는 자기가 믿는 바를 알지 못한다. 모든 교리의 목적과 목표는 구세주를 인격적으로 아는데 있다.

삼위일체론은 기독교가 서 있는 유일한 기초이다(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신비).
삼위일체가 아니면 언약교리가 성립하지 않고, 구속이 성립되지 않는다. 구원은 단순히 하나님이 사랑이심을 깨닫는 문제라든지 용서함을 받는 문제가 아니다. 구원은 삼위 하나님의 특별한 활동들을 수반하고 있다. 성부, 성자, 성령의 사역... 계획, 이루심, 적용에서...

로마의 신학(터툴리안의 신학을 그들의 양태론에 수납) - 노바치안
아들의 출생을 말할 때, 출생은 신성의 일이 아니고, 위격으로서의 의지의 일(위격적인 출생)

터툴리안은 희랍철학을 기독교에 도입하는데 큰 공헌을 한 사람이다(인간론 구속론에 희랍철학을 많이 강조함). 삼위일체론에는 그래도 공헌함
한분 - 수의 개념으로 설명될 수 없는 분(모든 실재를 포괄하신다). 오직 아들을 통해서만 알려짐 - 유추해볼 뿐...

클레멘트 - 하나님은 동작의 단위가 아니고 우주의 단위이다.
우주의 아버지는 하나, 말씀도 하나, 성령도 하나(본질에서 동일) 셋을 명료하게 구분함.
클레멘트는 아들을 아버지에게 종속시켰어도 아들의 의미가 아버지보다 작다는 의미가 아니라. 동일한 존재임을 말했다.

오리겐 - 기독교 신학자 중에서 희랍철학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 희랍철학을 기독교에 도입함,
특히 삼위일체론을 말할 때 플라톤주의를 가지고 이야기 한다(물질이 영원하게 존재한다는 이원론).
시간 범주 밖의 존재로서 아버지는 영원한 행동에 의해 아들을 출생한다(그가 없었던 때가 있었다고 말할 수 없음). 신성은 파생적이고 도출적(이차적인 신)
어떤 면에서 가장 명료하게 말한다. 영적인 설명이 아니어서 육체적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영원 출생을 말한다. 그러나 신성은 아버지에게서 유래했으니까 파생적이고 이차적이다. 그래서 경배는 당연히 성부에게만 바쳐야 한다.
(오리겐의 공 - 영원부터 구분된 위격이다) - 그러나 엄격한 의미로는 피조물이다. 오리겐의 위격 - 개별적 존재들의 뜻이 아니고, 개별적 존재과정의 의미로 사용(개별적 존재방식보다 개별적 존재자) - 갑바도기아 세 신학자(삼신론으로 받음)..

이 오리겐에서 파생된 종속설이 지금까지 기독교안에 남아 있다.
삼위격으로 말하지만, 아버지만이 하나님, 아들의 신격은 파생적으로 혹은 동참형식으로 소유(하나님의 개념)그래서 부차적인 하나님, 제2의 하나님이다. 영광과 찬송은 오직 성부하나님께만 돌리고, 출생한 신에게 기도할 수 없다. 유일신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아버지에게 모든 신격을 집중시키므로 아들과 영은 종속적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성자와 성령도 다 삼위 일체의 하나님이시다. 삼위가 다 경배와 찬양을 받으신다.
성부께 기도한다는 것은 원칙적으로는 옳은 말이다. 그러나 성자께, 성령께도 기도한다. 성령께서 아들을 영화롭게 하신다.
"저는 만물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라 아멘(롬9:4~5)"

교리사를 바로해야 성경해석을 바로 할 수 있으며, 정통과 이단 시비를 바로 잡을 수 있다. 다 정통이라고 주장한다. 자기들의 주장이 다 옳다고 한다. 다 성경적이다. 어느 것이 진짜인지 분별하기 어렵다.
그것은 교리사가 이정표이다. 그런데 교회사에서 우리의 선배들이 어떻게 해석했는지를 살피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 아예 무시한다. 성령의 사역을 훼손하는 악이다.


출처 : 주사랑
글쓴이 : 항공모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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