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델피아 교회에 주신 말씀 ( 계시록 3: 7-13)
‘빌라 델피아’ 라는 뜻은 필로스(사랑)와 아델포스(형제)라는 두 단어의 합성어로 ’형제 사랑‘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도시는 사데에서 동남쪽으로 약 40km 지점에, 지리적으로 로마의 문화가 소아시아로 넘어가는 관문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곳은 직물과 피혁산업이 발달할 뿐만 아니라 큰 포도재배 단지가 있어서 술의 신인 디오니소스를 숭배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이러한 영향으로 비교적 부유한 곳이었다. 이 도시는 AD17년에 큰 지진으로 파괴 되었다가 AD 90년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에 의해 재건되었다. 현재는 AD 6세기에 건축된 빌라델비아 기념교회인 '요한 교회'가 황폐한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
빌라델피아 교회는 큰 교회가 아닙니다. 작은 교회 였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이 교회를 칭찬 하셨습니다. 소아시아에 7곱 교회 가운데 칭찬만 받은 교회는 순교자를 많이 낸 서마나 교회와, 오늘 본문의 빌라델피아 교회입니다. 이시간 빌라델피아 교회에게 주신 말씀을 통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작은 능력으로 내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 하였도다.
7절 말씀에 빌라델피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여기서 ‘열린 문’ 이란 어떤 사람들은 이 도시의 지역적 특성을 감안하여 선교의 문이라고 해석하기도 하고, 또 천국문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선교를 하든 천국의 문을 들어가든, 믿음이 신실한 자만이 할 수 있고,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천국의 문으로 해석한다면, 천국은 아무나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것이다. 주님은 빌라델피아 교회에게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기에 천국 문이 열려 있는 것입니다.
첫째는, 작은 능력을 가진 교회입니다. 빌라델피아 교회는 요즈음 한국교회에서 불 수 있는 수천 명, 수만 명이 모이는 소위 대형교회가 아닙니다.
수백억, 수천억을 들여서 건물을 지울 수 있는 그런 교회는 아닙니다. 사회 지도층 인사들로 교회의 장로를 구성하고 재력 있는 사람들이나 명망이 있거나 학식이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그런 교회가 아닙니다. 그런 교회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작은 교회입니다. 학자들에 의하면 100명 아래의 작은 교회 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교회가 아닙니다. 재정도 열악하고 인적 자원도 부실해서 교회의 행사 하나도 해나가기 어려운 교회인 것입니다. 사람으로 말하면 능력이 많지 않은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해도 별로 귀담아 듣지 않는 그런 교회인 것입니다. 뉴스로 말하면 헤드라인이 아니라 가쉽 거리 인 것입니다.
둘째는, 이런 작은 힘을 가지고 그 당시 세속문화와 맞서서 싸워서 자신의 신앙을 지켜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지역은 경제적으로 직물과 피혁산업의 발달과 포도주를 만들어 수출하고 판매함으로써 이교도들은 많은 경제적인 풍요와 이익을 가져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빌라델피아 교회 성도들은 그러한 세속적 사업에 손을 댈 수 없었기에 대부분은 가난하게 살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을 지키면서 산다고 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주일을 성수하고 성도의 사명을 다하려면 자신의 경제적인 손실을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돈 버는 것만을 목적으로 한다면,
어느 직종, 어떤 사업을 하든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하지만 성도들은 돈 버는 것은 2차적인 것입니다. 돈은 적게 벌어도 신앙을 지킬 수 있는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주일학교 아이들이 많이 안 나오는 때가 있습니다.그래서 왜 못나왔냐고 하면 학원에서 수련회 간다고 합니다. 교회는 시간이 있을 때만 나오는 걸로 생각합니다. 장사하는 것보다, 학원가는 것보다 주일 지키는 것이 우선인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물질이 神(신)입니다. 그러다 보니 그리스도인들도 신앙은 부차적인 것, 삶의 액세사리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빌라델피아 교회는 이러한 세속적이 가치관에 맞서 하나님 말씀을 지켜냈으며 순종하였기에 주님의 칭찬을 받았습니다.
셋째는,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그 당시 예수 믿는 핍박이 심했습니다. 교회 안에도 유대인의 모임이 따로 있어서 이들이 예수 믿는 신앙을 핍박했습니다. 그들은 할례를 통해서 구원 얻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치 않겠습니까? 그 당시 흉악범이나 정치범, 악랄한 살인범이나 처형당할 수 있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세상을 구원할 구세주라고 전하였으니 유대인의 핍박이 어떠하였으리라 짐작이 됩니다. 영어 성경에 보니 배반이라는 말은 부정하다. 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가 주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것이 초대교회의 메시지인데, 로마황제가 주로 고백하는 시대적인 환경에서 어떻게 그 신앙을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신앙이 부실한 사람들은 다 부정하는 것입니다. 신앙이란 형통하고 평안할 때는 그 신앙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환난을 당하고 핍박이 올 때는 그 진위가 가려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비유 중에도 알곡과 가라지 비유가 있지 않습니까? 나는 내가 서있는 장소에서 주님을 부정하지는 않습니까? 말로가 아니라 생활로써 입니다. 지난 8월 12일자 일간 신문기사에 탈렌트겸 가수인 에릭이 종교적인 문제로 자신의 팔로워 들과 설전을 벌였습니다. 에릭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자신의 팬들에게 신앙적인 상담이나 조언을 해주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일에 대하여 한 팬이 종교적인 색채를 띠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그 팬은 법정스님의 말을 인용, “‘믿지 않는다 하여 자신의 자식이라 하는 인간들을 지옥불에 던져버리는 당신네들의 신들을 난 당최 이해할 수가 없다. 차라리 난 지옥에 가서 당신네 신에게 버림받은 그 억울한 영혼들을 구제 하겠다’라는 게 있어요. 예수천국 불신지옥보단 이런 말이 더 와 닿고 타당성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이에 대해 에릭은 그러면 자신을 아무 말하지 않고 종교적 위선자로 살아가라는 말인가요? 하며 법정스님이 그렇게 얘기했다면, 그것은 기독교를 믿는 성도들의 신앙을 모독하는 것은 아니냐고 반문하면서 법정스님이 이 세상을 창조했다고 말하지 않았으니 인생을 구제할 분도 못된다고 일침을 놓았습니다. 저는 이 기사를 보면서 자신이 예수 믿는 신자인 것을 꺼리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이런 용감한 그리스도인이 있다는 것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자신이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 묘한 자세로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이 지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주님을 믿는 자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 지를 보여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주님을 숨기는자 가 아니라 당당하게 나는 그리스도인라고 밝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 말씀하시기를 마태복음 10장32-3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3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2. 인내의 말을 지켰은즉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겠다.
그 당시 빌라델피아 교회는 작은 교회로써 세속문화가 창궐하는 분위기 속에서 자신의 신앙을 지켜낸다고 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왜냐 하면
현재 터어키의 ‘알라세히르’ 라고 알려진 빌라델피아는 성벽과 아크로폴리스 극장, 신전 등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고고학자들은 이 지역에서 BC 1세기경 초기 기독교 이단인 영지주의인 '밀의교'(密儀敎)의 규정이 기록된 대리석이 출토된 것으로 보아 이교(異敎)가 성행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곳은 기독교, 이슬람이란 두개의 문화가 교차하고 대립하던 지역이다. 따라서 빌라델피아에는 다양한 이교도의 종교와 문화가 혼재 했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사회처럼 다종교적인 문화가 형성되었다고 생각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 종교의 혼합적인 종교가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상황에서 보면 원불교가 그런 것입니다. 원불교는 생긴 지가 100년 안팍인 신흥 종교입니다. 원불교는 불교적인 요소와 함께 여러 종교에서 필요한 것만을 취하여 자신만의 종교로 재구성하였습니다. 얼마 전 저희 친구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상가에 갔더니 학생 때 같이 교회생활 했던 후배들이 와 있었습니다. 몇 십 년 만에 만나게 되었는데 참으로 반가웠습니다. kt 회사에 다니는데 요즈음 회사가 어려워서 정년이 59세인데 벌써부터 압력을 받아 버티고 있노라고 얘기 하더군요. 애기 도중에 옛날 생각이 나서 교회 다니 냐고 물었더니 안다닌다고 하면서 옆에 있는 친구가 원불교에 다닌다고 하였습니다. 알고 보니 자기 부인이 원불교 교인 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나오면서 거기에는 구원이 없으니 다시 교회에 나가라고 권했더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도 다종교사회입니다. 여러 종교가 있다 보니 다양한 문화가 혼재해 있다 보니 자신의 신앙이 확고하지 않으면 얼마든지 백화점에서 물건을 고르듯이 다른 종교를 선택할 수 있는 환경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최근 10년간의 통계에 의하면 기독교를 믿다가 천주교나 불교로 개종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천주교로 간 사람이 많습니다. 왜 이렇게 자신의 신앙을 지키지 못하는 것일까요. 하나님 말씀을 지키는 것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는 주일성수를 꼭해야 합니다. 신실한 그리스도인은 십일조 생활해야 합니다. 제사를 드릴 수 없습니다. 술, 담배를 금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천주교에서는 이러한 곳에서 자유롭숩니다. 그러기에 편리한 세속적인 요소가 있는 천주교로 개종하는 것입니다. 종교는 다 같은 것이라 생각하고 편리한 종교를 믿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최근 10년 사이에 가장 크게 성장한 교회가 천주교입니다. 기독교인이 개종해서 거의 천주교로 다 넘어 갔습니다. 최근에 절간에서는 정부의 재정적 지원을 받아 전국사찰 120개에서 여름 방학이나 휴가철을 맞이해서 불교문화를 전하는 템플 스테이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프로그램에는 발우공양이라는 식사방법, 명상법, 108배, 영어 교육 및 한문교육도 곁들여서 하는 곳이 있습니다. 1박 하는데 4-5만원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곳을 찾는 사람들 가운데 기독교인이 10%이상이라는 방송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이 확고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들은 이러한 이단과 이교도와의 세속적인 싸움에서 믿음을 지켜냈다고 하는 것입니다. 신앙을 지키다가 자신의 생명과 자신의 생활이 궁핌 함에도, 핍박과 위협 속에서도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켜냈기에 주님은 빌라델피아 교회를 칭찬하였습니다. 끝가지 배반하지 않고 믿음을 지킨 자에게 주님은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해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를 시험하는 때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시험은 무엇입니까? 마지막 종말이 오기 전 7년 대환난이 있습니다. 그런데 7년 대 환난에 대해서 어떤 학자는 환난 전 휴가 가 있다고 말하는 반면, 어떤 사람은 환난을 통과한 후에 주님이 오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30: 7 슬프다 그 날이여 그와 같이 엄청난 날이 없으리라 그 날은 야곱의 환난의 때가 됨이로다. 그러나 그가 환난에서 구하여 냄을 얻으리로다. 마태복음 24: 21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마가복음 13: 19 이는 그 날들이 환난의 날이 되겠음이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시초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7년 대환난은 예수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시기 직전 이 세상에 일어날 큰 환난을 가리키는데 이 때 빌라델피아 교회 성도처럼 이단에 빠지지 않고, 배교하지 않으며, 세속화에 맞서며, 환난과 핍박 속 에서도 자신의 신앙을 지킨 사람들은 대 환난에서 구원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3.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우리가 가진 처음 신앙을 굳게 잡으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종교사회에 살다보니 모든 종교는 다 똑같다고 하는 의식이 있습니다. 그래서 모로 가도 서울만 간다는 식입니다. 예를 들면 한라산에 등산하는 길이 여럿 있듯이 천국에 가는 길도 다양하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독선적으로 한 가지 길만 강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한 가지 길만을 강조하는 기독교는 폅협 하고 옹졸하다는 논리입니다. 그러면 인간이 만든 종교에 다 진리가있고, 구원이 있다고 한다면 굳이 종교를 선택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착하게 살고 양심적으로 살고 윤리적으로 살면 되는 것 아닙니까? 이 세상에는 진짜 같은 가짜가 많습니다. 사람들이 명품을 선호하다 보니 시중에는 가짜가 많이 나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짜도 진짜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흡사하다는 것입니다. 어디 물건만 그렇습니까? 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이단을 비롯해서 종교형식을 빌려 천국과 극락을 파는 종교 사기꾼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사도행전 17장 16-31 절에서 아테네에서 그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이 격분하여 아레오바고에서 에피큐로스 학파와 스토아 철학자들과 철학적 논쟁을 통해서 복음을 전하였다. 이곳에서 바울은 너희들은 범사에 종교성이 있다고 하면서 너희들이 섬기는 신전도 보았다. 내가 그것을 알게 하겠다. 우주와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은 무엇이 부족하여서 사람의 손으로 만든 전에 계시지도 않고, 섬김을 받지도 않으신다. 그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을 주시는 이시다. 그는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셨고 거주의 경계를 정하였으며 하나님을 찾아 만날 수 있으며 그 분은 멀리 계시지 않으시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소생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새긴 우상처럼 섬길 것이 아니라,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회개하고 돌아와야 한다고 확실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내가 믿고 있는 신앙에 대해서 확신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은혜의 체험이 분명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믿는 예수에 대해서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세상적인 아름다운 것들을 놓고 우리를 유혹합니다. 예수를 믿는 것보다 세상적인 것이 더 달콤하고 재미있다고 유혹합니다. 세상적인 것이 더 화사하고 아름답게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참 기쁨이 없습니다. 참 생명이 없습니다. 마치 조화가 생화보다 더 화사하지만 향기가 없듯이 말입니다. 가수나 탈렌드등 연예인들이 무대에서 집중 조명을 받고 대중들의 화려한 박수갈채를 받을 때는 굉장한 것 같지만 무대아래에 내려 올 때 그 허전함과 공허감을 메울 길 없어서 방황하고 타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생명을 확실하게 붙잡지 않으면 세상이 더 크게 보이고 위대하게 보이고 화려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창세기 25장 27-34절에 보면 에서가 들에서 돌아와 심히 피곤할 때 야곱은 죽을 쑤었더니 에서가 시장하여 붉은 죽을 달라고 요구했을 때 야곱이 형의 장자 명분을 팔라고 요구합니다. 이 때 에서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하고 장자의 명분을 팔게 됩니다. 성경기자는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겼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장자의 명분은 아버지의 집이나 재산을 상속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영적으로 장자의 명분은 하나님나라의 상속권입니다. 하나님나라의 상속권은 지금 당장 필요치 않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지금 당장 급한 것은 현실적인 경제적인 문제요, 빵의 문제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장자의 명분을 후에 다시 찾을 수 없게 되었다고 히브리서 기자가 말합니다. 히브리서 12장 16-17절에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자가 있을 까 두려워 하라. 그가 그 후에 축복을 이어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알지 못하였느니라.
그러므로 세상적 이고 세속적인 것들로 인해 여러분의 믿음을 잃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11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가진 것을 굳게 잡아라 하는 거예요. 면류관 빼앗기지 않게 하라 하는 거예요.
면류관은 운동경기에서 승리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 생명의 면류관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사람이 최선을 다해 면류관을 쓰듯이 최선을 다해 신앙을 지키고 유혹을 이기고 세상적이고 세속적인 것과 싸워서 생명의 면류관을 빼앗기지 않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4. 이기는 자에게
환난과 핍박, 그리고 세상 적이고 세속적인 문화 속에서 자신의 신앙을 끝까지 지키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 하나님 나라에 기둥이 되게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기둥이 되기 위해서는 기둥으로써 구비조건이 있어야 합니다. 기둥은 곧아야 합니다. 기둥이 굽으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이 말은 정직하고 진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둥은 움직이면 안 됩니다. 자기 자리에 언제나 있어야 합니다. 기둥은 굵어야 합니다. 기둥이 약하면 안 됩니다. 기둥이 되게 하겠다고 한 것은 하나님나라와 세상에서 중요한 사람이 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기둥이 없으면 건물을 세울 수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있어서도 기둥 같은 인물이 있어야 합니다. 초대교회가 그렇게 부흥할 수 있었던 것은 베드로 야고보 요한 바울과 같은 기둥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 새 예루살렘에 자신의 새 이름을 기록하겠다고 하십니다. 뉴욕시에 있는 뉴욕시립대학교 안에 미국의 명예의 전당이 있다. 건물은 지붕이 있는 반원형(半圓形) 옥외복도이며, 길이 192m, 너비 약 3m이다. 화강암 기둥 사이에는 선정된 사람들의 흉상(胸像)이 놓여 있는데, 1900년의 G.워싱턴, A.링컨, T.제퍼슨, 1976년의 A.카네기를 비롯하여 102명이나 된다. 각 흉상 밑에는 성명·생년월일·사망일 및 그들이 남긴 명언(名言) 등을 새긴 청동판이 붙어 있습니다. 스포츠 명예의 전당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한국인 최초, 아시아 최초, 최연소로 골프선수 박세리가 2007년 미국 플로리다 주에 있는 미 LPGA 명예의 전당에 24번 째 이름을 올려 최대의 영광의 자리에 입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와는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 나라의 새 예루살렘 성에 새 이름을 기록하겠다고 하십니다. 이것은 세상의 명예의 전당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환희와 영광의 자리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작은 능력을 가지고도 얼마든지 신앙을 지키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으며, 세상을 이겨나갈 수 있습니다. 주님의 이름을 삶속에서 부정하지 않고 시험을 이기고 끝까지 견디는 자는 대환난의 때에 지켜 주십니다. 면류관을 빼앗기지 맙시다. 그리하여 하나님나라의 기둥이 되고 하늘나라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011년 8월 21 벧엘성결교회 정영진 목사 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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