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요한 계시록!!

[스크랩] 사데 교회

하나님아들 2014. 5. 30. 22:40
사데 교회

 



   요한 계시록 3장 1절 - 6절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사데 교회는 두아디라에서 동남방 30마일 지점에 있는 도시로 고대에는 유명한 도시였습니다.

  사도 요한이 낳기 전 500년경에 가장 번창하였던 도시이지만 바사왕 시러스에게 정복당하고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에게도 정복당하여 폐허가 되었다가 주후 17년경에 큰 지진으로 완전히 쓰레기 더미와 같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로마의 티베리어스 황제가 사데 도시를 재건하여 사데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습니다.

이 도시에는 여신 시벨리스를 섬기며 로마 황제를 신으로 모시고 열심히 섬기는 도시입니다.


1절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일곱 영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

일곱 영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영을 일곱 개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고, 완전한 수인 일곱을 강조하는 것으로

완전한 성령의 역사를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일곱 영은 일곱 교회를 인격화한 것으로 일곱 교회를 주관하시는 예수님을 말씀하고 나타내고 계신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수의 의미

1. 하나 - 하나는 존재의 독립성을 말합니다. 유일신이신 하나님을 말하고 홀로 절대적인 존재를 말합니다.

             예. - 하나님, 독생자, 성령.

2. 둘 - 둘은 확실성의 수입니다. 두 증인의 수로 쓰고 하나가 부 족 할 때에 보충하는 개념으로 사영됩니다.

           예 - 모세와 아론, 여호수아와 갈렙, 70인의 전도 여행도 둘씩 보냄, 두 감람나무, 두 촛대, 두 증인

3. 셋 - 하나님의 완전 수입니다. 전에도 계시고 지금도 계시고 장차도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예 - 성부, 성자, 성령,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고 하며 찬양을 함

4. 넷 - 세상의 수입니다. 사방, 족속 백성 나라 방언(계 5:9) 등은 세상을 말함

5. 다섯-요한 계시록에서는 별로 의미가 없습니다.

6. 여섯-불완전수입니다. 일곱에서 하나가 모자라는 수로 불 완 전, 실패를 말합니다.

            적그리스도의 수인 666.

7. 일곱-완전 수입니다. 하나님의 완전 수 3 + 세상의 수 4 = 7

            요한 계시록은 7의 수로 조직되어 있습니다.

            7 교회, 7 인 봉, 7 나팔, 7 대접, 7 금촛대, 7 별 등이요 일곱 수의 절 반이 3년 반,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42 개월, 1,260일 등 교회가 환난을 당하는 것 등은 이런 숫자를 사용하였습니다.

8. 여덟-사람이 땅과 하늘에서 받는 갑절의 축복을 나타냅니다.

9. 아홉-갑오가 아니라 마귀의 수로 하나님의 수는 아닙니다.

10. 열 -열이라는 숫자는 원만한 숫자입니다. 부족함도 없고 모자 람도 없는 수입니다.

12.열둘-택한 백성의 수입니다. 열 두 제자, 열 두 지파, 144,000명.

1,000. - 10을 100배 곱한 것으로 축복의 수입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주님은 우리의 모든 행위를 알고 계십니다. 모르시는 것이 하나도 없이 모든 것을, 마음속의 생각까지 다 아시고 계시는 주님이십니다.

이름만 있고, 형식만 남고, 인간적인 요소만 남았으며, 생명과 내용과 영적인 요소는 거의 없는 상태의 사데 교회입니다.

현대 교회를 비유하면 거룩히, 엄숙히, 정숙히 예배를 드리는데 실제의 행함은 없습니다.

교회 헌금의 99%를 자기를 위하여 쓰고, 1%도 안되는 헌금으로 성탄절 때에 구제하는 일로 사용하는 것이 오늘날 현대 교회의 솔직한 실태입니다.

정통 보수주의를 말하는 교회는 이름은 살았으니 죽은 교회가 실제로 많습니다.

과거에는 아주 번창한 교회였고, 점점 열심히 사라지고 믿음이 식어져서 옛날의 기억만이 남아 있고 지금은 텅텅 비어 있는 교회를 꾸중하신 주님이십니다.

잘 믿노라고 스스로 말하고 있지만, 따지고 보면 잘 믿는 것이 없는 성도가 많은 때입니다.

방언을 말한다, 성령을 받았다, 십일조를 한다, 전도를 열심히 한다, 기도를 한다고 말하지만, 연말에 결산하여

보니 한 사람도 전도하지 못한 열매가 없는 사람이 많은 것입니다.

이름은 살았다 하지만 주님 보시기에는 실제로 죽은 교회와 성도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2절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우리 집에 어느 장로님이 대추나무를 주어서 심었더니 잎사귀가 다 떨어지고 잎이 한 개만 달랑 남아 있어서 몸살을 심하게 하다가 죽는 구나 하는 염려 속에 있었지만, 이듬해에 날씨가 더워지고 물이 올라오니 잎새가 새로

나오고 대추 꽃이 피고 주렁주렁 대추가 달리고 있습니다.

주님도 사데 교회의 성도가 99%가 살았다고는 하나 다 죽었는데


4절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그 중에 몇 사람이 안 죽고 살아 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주님은 절대로 부정적인 것을 보지 않고 가능성을 보십니다.

모든 교인이 죽어 있어도 그 중에 몇 사람이라도 살아 있으면 그 살아 있는 성도가 굳건히, 옷을 더럽히지 않고

살고 있으면 그로 인하여 큰 부흥의 때가 되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마지막 한 잎이 되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여 다시 살려내는 역사가 나로 인하여 나타나게끔,

흰 옷 입은 성도, 옷을 더럽히지 않은 성도가 되어 교회를 살려내고, 부흥을 일으키는 작은 불꽃이 되고, 밀알과 씨앗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2 - 3 절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하나님의 컴퓨터에 내 이름을 두들겨 보니, 내 행위와 Credit이 형편이 없어서 하나님의 정하신 기준에 미치지

못함을 알고, 내가 어찌하여 이렇게 되었는가를 반성하고, 회개하고, 이제부터라도 하나님의 기준에 합격이 되는 우리의 믿음과 행동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표준에 미달하면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내가 선지자 노릇을 하고, 많은 권능을 행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주의 이름으로 무엇을 크게 하였다고 하여도,

주님의 정하신 기준에 미달하면 주님은 모른다고 하시며 천국 입국을 거절하십니다.

  마태 복음 7장 21절 - 23절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내 뜻에 좋게, 내 마음에 맞게 행동하는 것이 믿음이 아니라 주님의 정하신 표준과 기준에 맞는 믿음을 가져야 주님이 믿는 자라고 하시며 믿는 자에게 주시는 은택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사데 교회가 주님의 정하신 표준에 미달하니 이제부터라고 회개하고 받고 들을 것을 잘 지켜 주님의 정하신 표준에 맞는 교회가 되라고 권면 하십니다.

 

3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주님은 언제 도적같이 임할지 우리가 알 수 없고, 내가 주님 앞에 어느 날 갑자기 갈지 알 수가 없음으로, 우리는 회개를 지금 당장 미루지 말고 하여야 합니다.

잠자지 말고, 미루지 말고, 열심을 내어 주님의 정하신 믿음의 표준에 맞는 믿음의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4절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주님은 사데 교회에 있는 성도들 중에 아직 주님의 정하신 믿음의 기준에 맞게 살고 있는 몇몇 성도들을 칭찬하였습니다.

흰옷을 입었다는 것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형식과 의식과 제사에 치우친 교회이지만 아직도 순수한 말씀의 신앙에서 내가 구원받은 것은 내 행위가 아니요 오직 주님을 믿는 믿음이요, 주님의 은혜요, 선물입니다 하는 고백으로 주님께 감사의 믿음을 갖고 있는 성도에게 주님께서 흰옷을 입혀 주시었습니다.

주님은 제사를 하는 사람보다도 믿음으로 의롭게 살고 있는 사람, 흰옷을 입은 사람과 함께 다니시고 동행하시는 주님이십니다.

그 이유는 주님의 믿음의 표준에 합당하게 합격이 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믿음의 기준에 합격하여 주님이 합당하다 하시며 주님이 함께 동행하시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5절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이기는 성도에게는 주님이 이러한 은혜를 주십니다.

1. 흰옷을 입혀 주십니다.

천국에는 세마포 흰옷을 입은 사람들만이 살게 됩니다. 세상에서는 옷이 달아지고 때가 묻음으로 여러 벌의 옷이 필요하지만 하늘나라에서는 세마포 단벌이면 족한 것입니다.

세마포 흰옷을 입고 머리에 면류관을 쓰고 영광 속에 살 것을 눈으로 마음으로 그려보시기를 바랍니다.


2.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지지 않습니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었다 하여도 지워질 수가 있지만, 주님은 이기는 성도의 이름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것으로 기록하여 놓아 생명책의 이름이 있음으로 천국이, 구원이 보장되는 것입니다.


3. 주님이 나를 시인합니다.

마태 복음 7장 23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누가 복음 13장 25절 “집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저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너희가 어디로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저가 너희에게 일러 가로되 나는 너희가 어디로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가라 하리라”

누가 복음 6장 46절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나의 말하는 것을 행치 아니하느냐”

누가 복음 12장 8절 “내가 또한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부인함을 받으리라”

  주님의 시인이 있는 자만이 구원에 참례하는 것임을 알고 우리는 주님이 정하신 믿음의 표준에 합당하게 되어 주님의 시인함을 받는 성도가 되어 보장받은 천국의 소유자가 되어야 합니다.

 

6절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 말씀을 듣고 선택의 자유는 내가 할 것임으로, 내가 알아서 하라고 하시는 말씀으로, 우리는 성령이 지금 내게 하시는 말씀을 존중하여 이를 지켜 주님의 인정함을 받는 믿음의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예언적 적용

사데 교회는 주후 1517년 - 1750년의 종교 개혁의 교회사를 말합니다.

사데라는 말은 영어로 Escaping(도망)으로 도망쳐 나온 사람들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카톨릭 신부 옅던 마르틴 루터는 1517년에 종교 개혁을 일으켰습니다.

마르틴 루터는 많은 금식과 고행을 통하여 구원의 확신을 얻으려고 하였지만 자기 마음속에 죄사함의 확신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에 로마에 볼일이 있어서 로마에 갔다가 빌라도 계단에 올라갔습니다.

빌라도 계단은 예수님이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기 위하여 올라갔던 계단으로 고난의 계단이라 하여 계단마다 유리 가루를 뿌려 놓고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한다는 의미로 순례자들이 무릎으로 기어올라갔습니다.

이렇게 고난을 당하며 계단을 올라가면 죄사함을 받는다는 미신적인 전설이 있어서 루터도 자기의 조사함을 받기 위하여 무릎으로 유리 가루가 뿌려진 계단을 올라가다가 계단 중간에서 하나님의 선명한 계시를 받았습니다.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히 10:38, 롬 1:17)”는 말씀을 듣고 죄 사람과 구원은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말미암아 받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벌떡 그 자리에서 일어나서 걸어 내려 왔습니다.

걸어 내려 온 것은 신성모독이었지만, 이제는 죽은 자의 믿음이 아닌 산 자의 믿음으로 확신에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고향에 돌아온 루터는 96개 조항의 종교 개혁 문을 써 붙이고 수없이 많은 핍박을 받았지만, 독일의 임금과 제후들이 카톨릭의 속박에서 탈피하려고 루터를 보호하여 죽음에서 건져 주었습니다.

교황에 반발하고 정치적으로 카톨릭에서 탈출하였으나 또다시 정치적 동기가 섞여진 종교 개혁이 되어 아직도

구습과 의식과 형식에 얽매여 있어서 살았다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은 상태로 1750년까지 지속되었습니다.

종교 개혁의 초기 시대가 사데 교회 시대를 교회사가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기는 자가 되어 주님의 정함을 받는 믿음을 갖고 주님이 주시는 이기는 자에게 주시는 복을 누리는 우리 믿음의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할렐루야 !

 







출처 : 마라나타 COME BACK 2014 은혜(恩惠)
글쓴이 : jinsook55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