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주일 강단]천국과 지옥

하나님아들 2012. 8. 31. 18:35

[조용기 설교] 천국과 지옥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눅 16:19~31)

 

할렐루야~ 여러분 제 말에 한번 따라 말해 주십시오. 나는 예수님 안에서 행복합니다. 기쁩니다. 평안합니다. 잘돼갑니다.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 옆에 계신 분들에게 당신에게 기적이 일어납니다. 인사해 주십시오. 마음을 다스리는 자가 환경과 운명을 다스립니다. 항상 이처럼 마음을 말씀으로 청소하시고 다스려서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마음의 분위기가 되도록 노력을 하십시오.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천국과 지옥에 관해서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1. 부자와 나사로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16장 19절로 31절에 부자와 나사로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한 부자가 있어서 자색옷과 흰 베옷을 입고 날로 연락했다 했습니다. 자색옷이라는 것은 그 당시에 부자들만 입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주로 입었었습니다. 권력이 없는 사람은 자색옷을 입지 않아요. 그리고 흰 비단옷은 부자들이 입습니다. 그러므로 이 스토리에 나오는 사람은 권력도 있고 돈도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 권력과 돈을 가지고 흥청망청 천년 만년 잘살 것 같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대문가에는 거지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거지의 이름조차 밝혔었습니다. 나사로라는 거지가 있었는데 그는 물질적으로 거지일 뿐 아니라 몸도 병들어서 온 전신에 헌데가 나고 거동이 편하지 못했습니다. 대문가에 버려놓음을 받아서 드러누워서 종들이 던져주는 떡덩어리 음식 찌꺼기 같은 것을 받아먹고 살았습니다. 이 개들도 그를 불쌍히 여겨서 그와 함께 지내고 헌데를 핥아 주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것을 밝혀놓지 않았지만 그 거취를 볼 때 이 거지는 비록 거지였지만 마음에 신앙심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내가 볼 때는 잘 믿지 못하고 잘못 믿은 사람 같은데 그러나 잘못 믿어도 믿음은 믿음입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가니까 부자는 늙어지고 이 거지 나사로는 죽게 되었었습니다. 몸이 약한데다가 세월이 흘러가니까 감당치 못해서 죽었습니다. 그리고 죽었으면 없어져 버려야 되겠는데 성경에 보니까 천사들이 와서 그를 데리고 낙원으로 가서 아브라함의 품에 데리고 갔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 예수님께서 거짓말 할 이유도 없고 예수님께서 과장해서 말을 할 턱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정말 참된 것을 말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예수님이 부자가 죽어서 흙으로 돌아갔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죽고 난 다음에 그는 천사들에게 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갔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부자는 영원히 부자로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그도 세월이 흘러가니까 죽었습니다. 그는 살아있을 동안에 하나님 없이 살았기 때문에 저 세상에 대한 아무런 미련이 없었습니다. 죽자마자 지옥으로 떨어졌습니다. 불꽃 가운데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의미가 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천당도 없고 지옥도 없다. 어디 천당이 있고 지옥이 있냐. 가봤냐? 그런 말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들로 하늘에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에 영적인 세계의 깊은 정보는 예수님 만큼 아시는 분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온천하 만국을 다스리시고 천하만물을 지으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비유로 말한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사건을 들어서 말씀하셨는데 부자와 나사로에 대한 이야기가 있고 그들이 죽어서 나사로는 낙원에 가고 부자는 음부에 떨어졌다고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낙원도 있고 음부도 확실히 있는 것이 틀림이 없습니다. 부자면 다 죄인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여러분 부자라고 해서 다 죄인이 아닙니다. 이 부자가 죄인이 된 것은 삶의 방식이 잘못되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면서 살았으면 그가 권력이 얼마나 많던 돈이 얼마나 많든 그것은 상관할 것 없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면서 권력도 갖고 돈도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을 위해서 더 큰 일을 하고 좋은 일을 할 수 있는데 이 부자는 권력도 있고 돈도 있으면서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한 물질적인 향락만 누리는 유물론자, 무신론자인 것입니다. 부자가 나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것이 나쁜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물질로 우상을 삼고서 사는 사람은 결과적으로 지옥에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이 되어야 천당간다는 사람이 있는데 여러분 가난해야 천국간다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지옥에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야곱은 우리 믿음의 조상들인데 거부였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하나님을 잘 섬기는 분들이었는데 그들은 하나님을 잘 섬김과 동시에 거부였습니다. 보통 조무래기 부자가 아니었습니다. 다 조목사 보다는 부자였어요. 아브라함을 보면 창세기 13장 2절에 “아브람에게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하였더라” 빠듯하더라. 그렇게 말 안했습니다. 풍부하더라.

 

그리고 창세기 24장 35절에 아브람의 종이 이삭 중신하러 가서 사돈될 집안에 가서 아브람에 대한 증거를 할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야훼께서 나의 주인에게 크게 복을 주시어 창성하게 하시되 소와 양과 은금과 종들과 낙타와 나귀를 그에게 주셨고”라고 말했습니다. 창성하였다. 아브람의 아들 이삭은 창세기 26장 12절로 13절에 놀랄 만한 증거를 하고 있습니다.“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야훼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라고 말했습니다. 조무래기 부자 아닙니다. 요사이로 비교하면 삼성과 현대 정도되는 부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경이 그가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부자가 천당에 못간다면 아브라함은 큰 부자이면서 천국에 들어갔고 이삭은 거부이면서 천국에 들어갔습니다. 아브라함의 손자인 야곱은 어떻습니까? 창세기 30장 42절로 43절에 그가 짐승을 짐승을 길렀는데 “튼튼한 것은 야곱의 것이 된지라 이에 그 사람이 매우 번창하여 ” 적당하게 번창한 것도 아니고 조금 번창한 것도 아닌 것입니다. 매우 번창하여 양떼와 노비와 낙타와 나귀가 많았더라. 그래서 야곱이 창세기 32장 10절에 기도하기를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실하심을 조금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 20년 후에 고향에 돌아올 때 두떼나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난하다고 천당가고 부자라고 지옥가는 것 아닙니다. 가난해도 예수님 믿지 않으면 천국 못갑니다.

 

사도행전 2장 21절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부자도 주의 이름을 불러야 구원받고 가난한 사람도 주의 이름을 불러야 구원받는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인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부자를 위해서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도 대신해서 죄와 불의, 추악과 저주, 절망과 죽음을 대신 청산해 주었기 때문에 예수님 길을 통하지 않고는 천국에 갈 도리가 없습니다.

 

사도행전 16장 31절에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저는 이 성경말씀을 좋아하는 것은 주 예수를 믿으면 너만 구원얻는 것이 아니라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제가 50년 목회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살펴 보았지 않습니까? 한 사람이 예수 믿으면 얼마 세월이 안지나가서 온 집안이 다 예수 믿게 되는 것입니다. 희안한 일이지요? 제일 처음에는 굉장히 핍박하고 박대하다가 나중에는 다 거꾸러지거든요. 대개 부인이 먼저 예수 믿는데 남편이 부인을 차로써 태워다가 교회 앞까지 갖다 놓고 자기는 교회 안들어옵니다. 부인이 예배볼 때 차에서 코를 곯고 자다가 부인이 예배 다 보고 나오면 차에 태워서 집까지 모시고 가면 또 교회는 안나오거든. 그래도 얼마있지 아니하면 부인하고 같이 교회 와서 앉아 있어요.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내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이 하나님 말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가족이 예수 안 믿는 사람이 있으면 지금 낙심하지 마십시오. 참고 기다리면 이기게 되어 있습니다. 주님의 은혜의 역사가 단비와 같이 쏟아지므로 어찌할 도리없이 마음이 녹아지고 변화되는 것입니다. 애들이 노래 부리는 것 들으면 돈으로도 힘으로도 지식으로도 어여뻐도 마음 착해도 천국 못가고 거듭나면 가는 나라 하나님 나라 믿음으로 가는 나라 하나님 나라라고 노래를 부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어야 천국가지 부자나 가난이 천국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일제 강점기 중에 황해도 지역에 큰 부자 둘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안악 지방의 큰 부자로, 그는 자기만 위해서 돈을 쓰고 남에 대해서 무관심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꿀돼지”라는 불렀습니다. 그 자손들은 모두 아버지의 재산을 탕진하고 빈털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또 한 사람은 재령 지역의 부자로 정찬유 장로님입니다. 그는 성수주일과 십일조는 물론 교회학교 교사들과 찬양대원들을 늘 가정에 초대하여 대접했습니다. 또한 교회에 오시는 손님과 나그네들은 으레 그 장로님 댁에 머물도록 했습니다. 그는 예배당도 건축하고 자선사업에도 돈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후손들이 다 복을 받았는데, 장로님의 아들이 과거‘삼표연탄’의 사장이었습니다. 여러분 옛날에 연탄 땔 때 삼표연탄 안 땐 사람 없지요? 저도 삼표연탄 교회에 많이 가지고 와서 땠습니다. 그의 손자가 노태우 대통령 시절에 국무총리를 역임하시던 정원식 씨인 것입니다.

 

여러분 부자라고 다 죄인이고 가난한 사람이라고 모두 천국에 가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먼저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천국은 믿음으로 가는 것이지 행위로 가는 곳이 아닙니다. 돈을 열심히 벌라. 그리고 돈을 열심히 저축해라. 그 다음 모은 돈을 선한 일에 써라고 감리교의 창설자인 존 웨슬레가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뭐 죽으면 그만이지. 뭐가 있겠느냐. 한줌 흙으로 돌아가 버리면 그만이야. 그렇게 말하는데 그것은 자기가 한 말이고 우리를 지으신 우주로 만드시 주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부자와 나사로의 사후의 삶을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성경에 보면

 

2. 인간은 죽으면 그만인가?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그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눅 16:22~24)

 

환상적인 이야기가 아닌 것입니다. 지옥에 들어간 이 부자는 실제로 너무 뜨겁고 괴롭기 때문에 나사로를 보내어서 손가락에 냉수를 찍어서 물한방울만 혀를 서늘하게 해달라고 실제적으로 그렇게 괴로운 곳입니다. 그냥 지어 먹은 이야기가 아닌 것입니다. 실제적인 이야기인 것입니다. 죽는 것이 실제적인 것처럼 천국과 지옥도 실제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인간이 죽으면 그만이 아니라 천국과 지옥이 분명이 있다는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변화산에 올라갔을 때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같이 데리고 올라갔는데 구름이 예수님을 덮었습니다. 그런데 구름 가운데 제자들이 보니까 수천 년 전에 죽었던 모세와 공중에 들려 올라간 엘리야가 똑같이 살아서 변화산에 와서 예수님과 대화를 했습니다. 그래서 놀랬습니다. 벌써 죽은지 수천년 되는 모세와 죽지 않고 구름타고 공중에 올라간 엘리야가 어떻게 변화산상에 나타났습니까? 그들이 죽으면 없어진다면 살아서 나타날 리가 없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9장 30절로 32절에 보면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영광 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 베드로와 및 함께 있는 자들이 깊이 졸다가 온전히 깨어나 예수의 영광과 및 함께 선 두 사람을 보더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다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수천년 전에 죽은 사람이나 작년에 죽은 사람이나 지금 시방 죽은 사람이나 다 하나님 앞에는 그대로 분명히 살아있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성경 말씀 누가복음 20장 37절에 예수님 말씀하기를 “모세도 가시나무 떨기에 관한 글에서 주를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시라 칭하였다”

 

이것 한국말로 하니까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분명하지 않지만 영어로 말하면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분명하지 않습니까? 아브라함의 하나님, “God of Abraham, he was..” God of Abraham 하면 과거입니다. He is Abraham 하면 현재입니다. 그런데 영어 성경에 보면 분명히 현재로 썼습니다. 지금의 아브라함 하나님, 지금의 이삭의 하나님, 지금의 야곱의 하나님. 그러므로 하나님께는 아버지도 아들도 손주도 다 함께 살아 있어요. 그래서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이라.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아있는 이라고 예수님이 말씀한 것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십시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시오.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아있느라.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오늘 이 시간이라도 천국가면 먼저 간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형제, 자매 다 살아서 그대로 만날 수가 있습니다. 천당가면 몰라보겠지? 몰라보기는 왜 몰라봐요? 다 분명히 알아보지. 예수님의 제자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모세와 엘리야를 분명히 알아 보았는데 우리가 천당가서 구원받은 사람들을 몰라 볼 턱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고린도전서 15장 3절로 5절에 바울이 증거해서 말하기를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마지막에 바울에게까지 보여 주셨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직접 역사상 사람으로 오셔서 우리가 보는 앞에서 죽어서 무덤에 들어가서 사흘 만에 무덤 문을 헤치고 살아나므로 사람은 죽으면 없어진다는 것이 아니라 죽어도 살아난다는 것을 대표적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러분과 나와 같이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오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모든 삶의 상황은 여러분과 나를 대표해서 산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이 피곤하면 주무시고 배가 고프시면 잡수시고 지치면 쉬시고 똑같이 살았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주님은 죽으셨지요. 무덤에 들어갔다가 사흘만에 부활하사 승천하신 것입니다.

 

마가복음 16장 19절에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이 있고 땅 위에 살고 있지만 이 땅 저 밖에 하나님 나라가 있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 나라는 신령한 나라라 우리 육신으로써 볼 수 없지만 우리가 육신의 장막 집을 벗어 버리면 우리 영혼은 모두다 그 하늘 나라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3. 사후의 세계

우리가 죽고 난 다음에 우리가 갈 세계가 어떤 것인가를 예수님 가르침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고통 당할 때 우편에 강도 한 사람, 좌편에 강도 한 사람이 같이 못박혔는데 그중에 강도 한 사람이 예수님께 도움을 구했었습니다. 우리는 우편 강도가 주님께 주여, 주의 날에 나를 기억하소서 했다고 했는데 성경에는 우편 강도라고 말 안했습니다. 사람 생각하기에 오른쪽에 못박힌 놈은 좀 덜 죄인이고 왼쪽에 박힌 놈은 더 큰 죄인이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편 강도라고 하는데 성경에는 우편 좌편 말 안했어요. 누군지 그 중에 한 사람이 주님 주의 나라 임할 때 나를 기억하소서. 몹시 십자가에 못박혀 몸부림치고 괴로워합니다. 예수님도 괴로워하고 강도라고 해서 안괴로울까요? 괴로워하고 십자가의 고통이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그 고통 가운데 한 강도는 마음에 깨달음이 왔습니다. 비록 우리와 같이 십자가에 못박혀 고통 당하고 있지만 저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그래서 주님, 주님 나라 임하실 때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까 예수님이 뭐라고 말씀했습니까? 주의 나라가 임할 때까지 기다릴 것이 아니라 너는 오늘 나와 같이 낙원에 있으리라.

 

누가복음 23장 43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주님 나라 임하실 때까지 기다릴 필요없다. 오늘 죽으면 오늘 육신의 장막집 떠날 터이니까 오늘 너는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그러니 죽는 것 겁날 것 없어요. 오늘 죽으면 예수님과 함께 낙원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우리에게 하늘에 가서 우리 있을 곳을 예비해 놓겠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부모님들이 자식 시집, 장가 보낼 때 살림을 내줄 때 있을 곳을 예비해 주듯이 주님은 우리를 위해서 하늘에 올라가서 있을 곳을 예비했다고 말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절로 3절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믿는다는 것은 참 중요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믿을 수 있습니다. 사람은 못 믿어요. 남편도 못믿고 아내도 못믿어요. 절대 남편 믿지 마세요. 믿으면 실망합니다. 아내 믿지 마세요. 나중에 낭패를 당합니다. 이웃은 절대로 믿지 마세요. 믿는 것은 하나님만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남편이나 아내를 의지 안하면 사람은 사랑할 상대는 되어도 믿음의 상대는 안됩니다. 사랑은 해야돼요. 사랑은 불쌍히 여기고 용서하고 이해하고 동정하는 것이 사랑이거든요. 그러면 사람은 사랑을 해야지 믿으면 안됩니다. 남편도 사랑은 해요. 용서하고 동정하고 이해하고 끌어안고 덮어주고 아내도 그렇게 하고 이웃도 그렇게 해요. 그러나 믿었다가는 큰 실망을 해요. 그러나 절대로 하나님을 믿어서 실망하지 않아요. 하나님은 우리 믿은대로 약속한대로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오래전부터 늘 마음 속에 아무도 믿지 않습니다. 내가 아주 가까운 사람도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열심히 사랑하려고 애를 씁니다.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느니라. 하도 다 실수하고 흠이 많기 때문에 용서와 사랑이 절실히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기 예수님께서 말씀하기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예수님은 믿어서 절대 손해날 것이 없어요.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주님이 여러분과 나의 거처를 준비하러 가셨습니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 이미 다 거처를 예비한 사람이 있으면 주님이 데리러 오시는 것입니다. 아마 여러분 생각하기는 좀 늦게 예비하여 주십시오. 너무 빨리 데리러 오면 어떻게 합니까? 그럴는지 모르겠지만 그러나 여하간 주님은 빨리나 늦게나 우리 거처를 예비하면 우리 데리러 오는 것입니다. 빈집 둘 수가 없지 않습니까? 집 주인을 빨리 데리고 와야 되기 때문에 여러분 데리러 오시는 것입니다. 천국에 있을 곳을 주님께서 예비하겠다고 하셨으니 우리가 죽으면 반드시 천국가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전서 15장 42절로 44절에 이렇게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 함께 한번 읽어 보십시다.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여러분과 나는 지금 이전의 육의 몸으로 앉아있지만 사실은 그 속에 영의 몸이 주인으로 드러앉아 있습니다. 우리는 영과 육이 하나가 되어서 있지만 죽을 때는 영과 육이 분리되는 것입니다. 영은 영원한 천국으로 가고 육은 흙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3장 13절에 베드로는 말하기를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죽을 때 새 하늘과 새 땅을 우리가 바라본다는 것입니다.고린도후서 5장 1절에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일시적인 장막집인 우리 몸은 무너집니다. 아무리 건강 좋다고 큰소리해도 무너집니다. 그러나 하늘에 하나님이 지은 집은 영원한 집인 것입니다.

 

빌립보서 1장 23절로 24절에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바울 선생이 한 말인 것입니다. 나는 차라리 육신을 떠나서 하늘나라에 들어가서 주님과 같이 있는 것이 훨씬 좋다. 가고 싶으나 너희들 걱정이 되어서 지금 못떠나겠다. 내가 있어서 말씀으로 도와주어야 될 것이기 때문에 나는 너희들 위해서 떠나지 못하고 둘 사이에 끼어서 고민하고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요사이 많은 사람들이 제게 이메일이 오는데 저는 아침에 5시에 출근하면 그 이메일 다 읽고 거기에 답을 해주는데 그 이메일에 보면 모두다 100살에서 120살 살라고 축복을 해주세요. 그런데 그 축복 가운데 바울 선생이 말한 말이 포함되어 있을 때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지금 목사님의 설교가 필요합니다. 대개 어렵고 고통스럽고 괴로운 삶속에 하나님 말씀을 들어서 용기와 힘을 얻고 소망을 가지고 살 수 있으니 좀 더 오래 살아서 말씀을 전해 주십시오. 제가 오래 살고 싶어서 이런 말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설교를 하고자 하니까 말씀이 나오니까 그렇게 하는데 사람은 70을 살으면 아깝지 않게 산 것입니다. 80을 살면 꽤 오래 살았고 90을 살면 넘치게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75세 살았으니까 잘 살았습니다. 사람이 죽음이 겁이 안나면 사는 것도 겁이 안납니다. 죽음이 겁이 나면 사는 것도 겁이 나는 것입니다. 제일 이 세상에 우리에게 고통을 갖다주는 것이 두려움인 것입니다. 두려움만 있으면 어떠한 형태든지 마귀가 와서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병이 들어도 병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면 그 병으로 안죽습니다. 암이 걸려서 두려워하고 다른 병이 걸려서 두려워하면 두려움 때문에 죽습니다. 왜냐하면 마귀가 그 두려움을 타고 들어와 가지고서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두려움을 이기고 강하고 담대해지면 마귀도 한길로 왔다가 일곱길로 도망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음을 두려워 안할 수 있는 것은 예수 믿어야 두려워 안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죽으면 더 좋은데 가는데... 살아도 좋고 죽어도 좋고 살아도 살고 죽어도 살고 그러니 우리가 두려워하지 아니할 수 있습니다. 마음에 두려움이 전혀 안다가온다고는 바랄 수 없지만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마음에 진리를 알면 두려움을 극복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4. 육체의 부활

우리가 여러분 살아나는데 두가지 방법으로 살아납니다. 지금 육체에서 죽으면 낙원에 갑니다. 그러나 주님이 강림하실 때는 살아있는 자나 낙원에 있는 사람이나 다 새로 또 살아납니다. 그때는 부활의 몸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 영혼이 낙원에 가 있으나 주님 재림할 때는 그 영혼이 예수님과 함께 재림해서 부활의 몸을 얻는 것입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살전 4:16)

 

죽어서 천당가는 사람들 낙원에 있는 사람들이 먼저 부활의 몸을 얻고 살아남은 우리들도 다 변화되리니 살아서 아직 안죽은 사람들은 산채로 몸이 변화돼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리 죽은 사람은 주님과 함께 내려와서 변화되고 살아있는 사람은 지상에서 예수님을 영접해서 변화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5절로 18절에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

그렇기 때문에 먼저 죽는다고 해서 예수님 강림하실 때 뒤처지는 것 아닙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내려온 것입니다. 그리고 살아남은 자는 주님이 우리를 공중으로 들어 올려서 다 그 자리에서 변화된 몸을 입고 주와 함께 영원히 살게 되는 것이니 얼마나 영화롭고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2절로 49절에 보면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요 육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이니라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아담의 형상을 입고 우리는 이목구비를 가진 육신을 가지고 세상에 살았는데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님은 우리 인류의 두 번째 조상인 것입니다. 우리는 두 번째 예수 믿은 사람은 예수님의 형상을 닮아서 부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첫 조상은 아담입니다. 둘째 조상은 예수님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부활의 영생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께서는 첫 조상은 아담을 통해서 육체를 얻었으나 둘째 조상 예수님을 통해서는 영의 몸을 얻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해야 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강림하실 때 예수님 안에서 같이 강림하시고 또 살아남은 자는 변화되어서 같이 공중으로 끌려가 이번에는 낙원에 가는 것이 아니라 천국으로 가는 것입니다. 지금 올라가는 사람들은 다 낙원에 있어요. 아브라함의 품이라고도 말하는데 낙원에 있어요.

 

그러나 장차 우리가 부활해서 올라갈 곳은 천국입니다. 낙원은 천국에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천국은 정말 하나님께서 지으신 아름다운 나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낙원에만 가도 좋은데 천국에 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지금 지옥가는 사람은 지옥 아닙니다. 음부에 가 있는 것입니다. 음부에도 지금 불꽃 가운데 고통을 하는데 나중에 심판을 받아서 음부에 안가고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지옥은 음부도다 더 훨씬 고통스러운 곳입니다.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지옥갈 바에야 태어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이러므로 이 땅에 사는 동안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십자가에 못박혀 몸찢고 피흘려 구원하시려고 하신 것을 보면 지옥이 얼마나 고통스럽기에 주님이 자기 몸을 찢고 피를 흘려서까지 우리를 그곳에 안가게 하려고 희생을 하셨겠습니까? 차라리 지옥 갈바에야 안태어난 것이 훨씬 좋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감사하게도 태어났고 예수를 믿어 영생을 얻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으니 지금은 죽으면 낙원가고 예수님 강림하실 때 변화되어 천국으로 들어가서 영원히 살게 되니 얼마나 좋겠습니까?

 

고린도전서 15장 50절로 58절에“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따따따~ 하고 나팔이 불면 여러분 몸이 순식간에 변화됩니다. 어떻게 되느냐? 죽을 몸이 영원히 살 몸으로 육의 몸이 신령한 몸으로 약한 몸이 강한 몸으로 더러운 몸이 아름다운 몸으로 깜짝 놀라게 변화될 것입니다. 이 썩을 것이 받드시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천국은 믿음으로 가고 상급은 주를 위해서 수고한 사람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롭게 살고 거룩하게 살고 착하게 살았다고 해서 그 공로로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보혈의 은혜로 하나님께로부터 선물로 구원을 받지만 우리가 주를 위해서 의롭고 거룩하고 순종하고 충성스럽게 사는 만큼 상급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를 믿고 상급을 받을 수 있는 좋은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여러분은 다른 사람들보고 100살 사세요. 120살 사세요.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영원히 살 것인데 뭘 100살을 살고 120살을 살아요?

 

그 말을 월남 이상재 선생이 말했습니다. 우리 한국 기독교청년회 운동을 세웠던 선구자인데 하루는 한 청년이 그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선생님, 신문에 보니까 영국 수상 처칠은 100세를 누릴 수 있다고 장담했고, 또 어떤 사람은 120세까지 거뜬히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했는데 선생님도 건강하시니까 오래 사실 것 같은데 얼마나 사실 것 같으십니까?” 이상재 선생은 제자의 질문에 껄껄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 사람들은 사는 법이 무엇인지 몰라서 100살 산다. 120살 산다고 말했는데 나는 영원히 살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대답할 필요없다!”고 그랬어요. 여러분 여러분도 영원히 삽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나는 예수 안에서 영원히 산다. 그렇기 때문에 요사이 우리가 얼마나 살것이냐 물을 필요가 없습니다. 육체로 살든 육체 밖에 살든 사는 것은 사는 것이니까 죽은 것이 아닙니다.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저 사망은 우리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하나님이 옮겨주신 것입니다.

 

<결론>
이 땅에는 우리의 영원한 집이 없습니다. 우리 육체도 잠시 머무는 전셋집입니다. 오늘 여러분 전부 전셋집에 사는 사람만 여기와서 앉아 있어요. 영원한 집이 없이 전셋집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죽음을 통하여 모두다 이 전셋집을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와 함께 부귀영화, 공명, 지위, 명예, 돈도 다 뒤에 두고 떠나갑니다. 내가 일본에 갔을 때의 이야기인데 일본에는 혼자사는 홀아비가 병이 들어 아프면 베개 밑에 증권이나 저금통장이나 현찰이나 다 베개 밑에 넣어 놓고 잔답니다. 안빼기려고... 그런데 그 베개를 베고 있는 동안에는 아들도 딸도 와서 그렇게 잘 해준대요. 아버지에게 서비스를 잘 해주고 난 다음에 세상을 딱 뜨면 시체 치울 것 생각하지 않고 베개 서로 빼앗아 가려고... 싸움을 한다. 아무리 베개 밑에 넣어서 베고 자도 못가져가요 천당에... 그것 가져갈 줄 알고 베개 밑에 넣어서 자고 있지만 그런 어리석은 짓 할 필요 없어요. 부귀, 영화, 공명, 지위, 명예, 돈도 다 뒤에 두고 떠납니다.

 

항상 마음을 천국에 두고 이 세상 미련에 잡히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천국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미국의 유명한 복음전도자 디엘 무디 선생이 죽기 전에 자기 아들 윌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1899년 12월 22일 금요일 아침 무디는 아들을 바라보며,“윌아 이것은 꿈이 아니다. 정말 아름답다. 정말 황홀하구나. 만일 이것이 죽음이라면 무엇이 두렵겠느냐?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고 있다. 나는 가야만 한다.”

 

그리고 난 다음 혼수상태에 빠졌습니다. 그러니까 아들, 딸들이 아버지하고 막 부르짖어 울고 고함을 치니까 잠시 있다가 도로 깨어났습니다. 정신이 들어서 이렇게 말했어요. “나는 천국의 문 앞에 갔는데 그곳은 말할 수 없을 만큼 멋지고 아름다운 곳이다. 이제 나를 이 세상에 잡아둘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저기를 보아라. 나를 데리러 오기 위하여 방안에 마차가 와 있구나.”환한 미소를 띄우면서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고 천국 떠났습니다. 이 사실이 신문에 크게 기사가 났던 사실이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이 땅을 떠날 때, 우리를 위해 예비한 천국으로 들어갑니다. 죽음 너머 천국은 우리가 상상 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것입니다. 저 건너편 강남의 아름다운 땅이 있습니다. 죽음의 강을 건너면 상상을 초월하는 아름다운 땅이 있습니다.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고 황홀한 곳인데 우리는 세상 미련에 집착하지 말고 천국을 소망하며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환경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마음에 얼마나 천국은 믿음, 소망, 사랑, 의, 평강, 희락이 넘치는 곳이 아닙니까? 마음이 천국이 진짜 천국인 것입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 이런 좋은 것이 어디 이 세상에 있겠습니까? 그런 것으로 꽉 들어찬 곳이 천당이니까.. 그런 분위기 속에서 그런 환경속에서 그것을 마음에 누리며 살게 되니 얼마나 좋습니까? 이 세상에서도 여러분 우리가 사람을 만날 때 그 사람이 지위와 명예와 권세, 인물이 얼마나 좋고 나쁜 것이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마음이 얼마나 착하고 좋은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마음이 좋은 사람 만나면 참 교제도 좋고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쁘고 잘나고 능력있고 지혜 있어도 마음이 고약한 사람은 아주 고약합니다. 사람도 마음이 좋은 사람이어야 좋은 사람입니다. 마음이 고약한 사람 만나면 참 큰일납니다.

 

우리 젊었을 때는 그것도 모르고 인물 좋은 여자만 택해서 결혼하려고 했는데 바보에요. 왜 데이트를 합니까? 인물 구경하려고 데이트하지 말고 성격이 어떤지 착한 사람인지 아닌지 그것 봐야 돼요. 사람이 마음이 착하면 굉장한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밥이야 하루 세끼 먹는 것 좀 반찬 맛있게 먹을 수도 있고 안 맛있게 먹을 수도 있고 서로 인정있게 먹으면 안 맛있는 밥도 반찬이 되어서 맛있다구요. 아무리 맛있는 밥이라도 서로 미워하고 물고 찢고 먹으면 입에서 다 썩어 조금도 맛이 없다구요. 그러나 천국은 좋은 것만 있고 이런 나쁜 것이 없으니까 좋다는 것입니다. 미움도 슬픔도 원한도 고통도 염려도 근심도 질투도 이런 것이 없어요. 믿음, 소망, 사랑, 의, 평강, 희락 이런 것만 있어요. 그러니까 천국이 좋다는 것입니다.

천당은 반드시 있고 지옥도 반드시 있어요. 예수 믿으면 천당 가고 예수 안 믿으면 지옥 갑니다. 부자이기 때문에 지옥가고 가난하기 때문에 천당간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예수님 안에서 이 땅에 사는 동안에 부자가 되십시오. 하나님께 복을 받아 돈도 많이 벌어가지고 좋은 일 많이 하십시오.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넘치게 하십시오. 그러면 천당도 가고 상급도 넘치게 받게 되실 것입니다. 다 같이 고개 숙여 기도드리겠습니다.

 

<기도>
사랑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우리에게 천국을 주기 위해서 예수님을 보내 주시고 우리 위해서 십자가를 걸머지고 몸찢고 피흘려 죄악을 청산하고 천국가는 길이 되어 주심을 감사합니다. 예수님이 바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인 것입니다. 예수 천국 내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예수님을 구주로 모실 수 있게 도와주심을 감사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한 천국에 가는 우리들이 된 것을 감사합니다. 한 사람도 낙오자가 없게 도와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출처 : ╋예수가좋다오
글쓴이 : (일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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