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 파노라마
주제 : 영광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너희가 받았으니
야고보서의 자자는 누군가?
야고보라는 이름은 당시에 흔한 이름이었습니다. 신약성경에도 여러 명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여러 정황으로 볼 때에 주의 형제 야고보라는 것이 전통적인 학설입니다. 그는 주님의 공생애 기간에는 믿지 않았으나(요 7:3, 막 3:21), 부활하신 주님을 목격(고전 15:7)하고는, 오순절에 동참(행 1:14)하게 되었고, 베드로가 예루살렘을 떠난(행 12:17) 후에는, 예루살렘 종교회의를 주관(행 15:13)하는 등 주도적인 역할을 감당했던 것입니다.
야고보서의 수신자는 누군가?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1:1) 합니다. 이 “열두 지파”를 유대인으로 한정할 이유는 없습니다.
야고보서는 어떤 특정교회에 보낸 서한이 아니라 각처에 있는 모든 하나님의 교회에 회람용으로 보낸 서신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이점을 베드로전서에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있는 흩어진 나그네”(벧전 1:1)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열두 지파”라 했을까?
초대교회는 이단 취급을 당하고 있던 터라 정통성(正統性) 확립이 중요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야고보는
“우리가 하나님의 언약을 계승한 영적 이스라엘이요 열두 지파다” 하고 말씀하는 셈입니다. 이점이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1:25, 2:12)이라 말씀하는 데서도 드러납니다. 우리는 율법이 없는 사람들이 아니라
모세 율법보다 우월한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가지고 있다 하고 말씀하는 셈입니다.
야고보서의 신학적인 위치
루터가 “집 쑤시게 같은 글”이라 혹평하면서 정경성을 부정한 데서 알 수가 있듯이 야고보서는 신학적으로 논란이 많은 서신입니다.
이유는 “율법적이고 복음 적이지 않다”는데 있습니다.
그렇다면 야고보가 어찌하여 이처럼 율법적인 색채가 농후한 말씀을 기록하게 되었는가?
이점을 예표로 주신 출애굽의 여정(旅程)에서 빛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신 후에 시내산에 이르러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이는 십계명을 행함으로 구원을 얻으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십계명의 서문은,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출 20:2) 하십니다.
그들은 이미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구속하여 너희로 내 백성을 삼고”(출 6:6-7) 하신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조상 대대로 노예 신분이었던 그들이
하루아침에 하나님의 백성으로 신분(身分)이 바뀐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 십계명을 주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신분이 바뀐 것은 신약의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점을 야고보서에서도 대할 수가 있습니다.
“그(하나님)가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1:18) 하는
놀라운 말씀을 대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하나님의 자녀”임이 분명합니다. 또한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너희가 받았으니”(2:1) 합니다.
그렇다면 야고보서의 수신자들은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리스도인과,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에 상응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지를 못하고 있다는데 있습니다.
왜냐하면
태어났어도 아직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구습(舊習)을 벗어버리지를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의 내용으로 볼 때
당시의 교회는 많은 문제에 직면해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들을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1:4), 즉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기 위해서 야고보서는 주어진 것입니다.
또 야고보서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말씀이
유다서에 있는데,
유다는 기록목적을,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우리의 일반으로 얻은 구원을 들어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뜻이 간절하던 차에” 합니다.
그러니까 유다는 본래 “구원을 들어”, 즉 “복음”을 증거하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합니다.
왜냐하면,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유 1:3-4), 즉 이단이 침투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전투적인 내용으로 바꾸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야고보도 “일반으로 얻은 구원”, 즉 로마서와 같은 복음을 증거하고 싶었을 것이나 당시의 실정은 행함을 강조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박해자였던 바울을 들어서 로마서를 기록케 하신 주 성령께서는
예루살렘교회의 의장 격인 야고보를 들어서 율법적인 엄격한 명령들을 말씀하게 하셨다는 것은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것으로 너무나 합당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전체 108절 안에 54개의 명령이 들어있다고 말합니다
. 한마디로 요약을 하면
야고보서는 새 언약 하에 있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라고 주신 “자유하게 하는 율법”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교회에 모세를 통하여 십계명을 주셨듯이
신약교회에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의 수여(授與)자로 야고보를 적임자로 선택하신 셈입니다. 이것이 야고보서의 신학적인 위치입니다.
불변의 진리
그렇다고 야고보서에는 율법적인 명령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초(柱礎)와 같은 불변의 진리가 확고합니다.
㉠ 하나님은,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1:18) 말씀하고,
㉡ 예수를,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2:1)라고 고백하고 있으며,
㉢ 성령을,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4:5) 하고,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의 사역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 또한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2:5) 하셨다고 “택하심과, 약속”을 말씀합니다.
㉤ 또한, “경에 이른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고”(2:23) 하고, 복음의 핵심인 “칭의(稱義)교리”를 언급합니다.
㉥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5:7) 하고
재림(再臨)의 소망을 말씀하고,
㉦ “보라 심판자가 문밖에 서 계시니라”(5:9) 하고,
심판주(審判主)로 오실 것을 말씀합니다.
㉧ 율법적이라고 비난을 받은 야고보서는
“그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이니라”(5:20하)는 말씀으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죄를 덮어주심”,
이는 행위구원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인 “의롭다하심”입니다.
이상에 열거한 불변의 진리들은 복음의 핵심적인 요소들입니다.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
이런 불변의 기초 위에 서서 “형제들아” 하고 부르기를 14번이나 하면서 명령을 합니다. 그러므로 야고보서는 해설을 해야만 알 수 있는 교리가 아닙니다.
또한 강해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목회자는 솔선수범을 하고 성도들은 듣고 행하라고 주신 명령임을 명심해야만 합니다.
1,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1:2).
2,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3, 부한 형제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1:9-10) 합니다.
4,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1:22).
5,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면 그 경건은 헛것이라”(1:26).
6,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것이 경건이다”(1:27).
7,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2:1).
8,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2:12).
9, “긍휼을 행하지 않는 자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2:13).
10,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2:17).
11,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느니라”(2:22).
12, “선생 된 자가 더 큰 심판을 받으리니 너희는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3:1).
13,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3:2).
14,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도다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3:10).
15, “세상과 벗되는 것은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라”(4:4).
16, “하나님께 순복하라”.
17, “마귀를 대적하라”(4:7).
18,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4:9).
19,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4:10).
20,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4:11).
21,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4:17).
22, “부한 자들아, 울고 통곡하라”(5:1).
23, “너희 재물은 썩었다”(5:2).
24,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5:7).
25, “서로 원망하지 말라”(5:9).
26, “심판자가 문밖에 서 계시니라”(5:9).
27, “인내하는 자가 복되다”(5:11).
28, “맹세하지 말라”(5:12).
29,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30,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5:13)
31, “병든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5:11).
32, “미혹 당한 자를 돌이키면, 그 영혼을 구원하리라”(5:20) 합니다.
이상의 말씀들은 어느 시대보다도 현대교회가 실천해야할,
그리고 누구보다도 목회자들이 솔선수범을 해야 할 말씀들입니다.
그리하여 “구비하여 온전한 교회”(1:4)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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