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사 !!! 구원사!!!

[스크랩] 구속사의 관점에서 본 요엘서 파노라마

하나님아들 2014. 3. 8. 14:43

 요엘서 파노라마


                       주제 :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 오라


요엘서의 핵심적인 낱말은 "여호와의 날"입니다.

 이를 파악하는 것이 요엘서를 해석하는 열쇠가 됩니다.

짧은 요엘서에 모두 다섯 번(1:15, 2:1, 11, 31, 3:14)이나 등장합니다.

그렇다면 

"여호와의 날"이란 어떤 날인가?

"오호라 그 날이여 여호와의 날이 가까왔나니 곧 멸망같이 전능자에게로서 이르리로다"(1:15) 하고,

그 날은 심판의 날이요 멸망의 날임을 말씀합니다.

2:1절에서도 "시온에서 나팔을 불며 나의 성산에서 호각을 불어 이 땅 거민으로 다 떨게 할지니 이는 여호와의 날이 이르게 됨이니라 이제 임박하였으니" 합니다

.

그런데 "여호와의 날",심판의 날이 몇 겹으로 겹쳐져 있다는데 요점이 있습니다.

첫째는

 "팟종이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늣이 먹고 늣이 남긴 것을 황충이 먹었도다"(1:4) 한 메뚜기 재앙입니다.

이는 선지자 당시 직면해 있는 "여호와의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선지자란

당면한 메뚜기 재앙만을 보고 있는 근시안(近視眼)이 아니라

 그 너머로, "이는 많고 강한 백성"(2:2)으로 표현된 외적의 침략을 내다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가까운 미래에 있을 "여호와의 날"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2:13) 하고 회개를 촉구합니다.

그런데 

요엘서가 지향하고 있는 궁극적인 "여호와의 날"은,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같이 변하려니와"(2:31) 종말론적인 "여호와의 날"입니다.

이는 주님께서,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자에게 임하리라"(눅 21:35) 하신

최후심판의 날입니다.

이를 내다보았기에

 "사람이 많음이여 판결 골짜기에 사람이 많음이여 판결 골짜기에 여호와의 날이 가까움이로다"(3:14) 하고

최후심판을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엘서가 시공을 초월하여 발하는 핵심적인 경고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 오라.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2:12-13) 하는

회개의 촉구입니다.

회개의 촉구


그런데 "여호와의 날"은 두 가지 양상으로 임한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구원과, 멸망"입니다.

노아 당시에 임한 "여호와의 날", 곧 홍수심판이 불신자들에게는 멸망의 날이었으나, 노아의 여덟 식구에게는 "구원의 날"이었던 것입니다.

 이는 소돔에 임한

"여호와의 날"과, 여리고 성에 임한 "여호와의 날"에도 그러했습니다.

 이를 알았기에

바울 사도는,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18)고 말씀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호와의 날"심판의 날임과 동시에, 구원의 날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엘 선지자도 심판과 멸망만을 경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회복과, 구원과, 소망"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땅이여 두려워 말고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여호와께서 큰 일을 행하셨음이로다"(2:21) 합니다.


성경 상 하나님이 행해주신 "큰 일",

그리하여 모든 족속이 기뻐하며 즐거워할 일이 무엇인가?

 성경은 두 가지를 들고 있는데,

첫째로 행하신

"큰 일"은 자기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셔서(눅 1:49)

대속제물로 내어주신 일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는

"여호와의 전에서 샘이 흘러나올"(3:18) 것이라 말씀합니다.

이를 구속사의 맥락에서 바라본다면

이는 반석 되시는 그리스도가 치심을 당하심으로만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둘째로 행해주신

"큰 일"은,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2:28)

하신 성령강림(행 2:11)입니다.

이를 예사로 여겨서는 아니 됩니다

. 왜냐하면,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육체가 됨이니라"(창 6:3) 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이 되었던 것이

회복될 것임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구약시대에도 성령의 역사는 있었습니다.

나 특별한 사람에게, 특별한 경우로 한정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만민"에게 부어주신다고 말씀합니다.

"자녀, 늙은이, 젊은이"들이 이 은혜에 참여하게 될 것을 말씀합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줄 것이며"(2:28-29) 하시는 말씀입니다.

이는 모든 벽이 무너지고, 아무런 차별이 없음을 뜻합니다.

오직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2:32),

즉 믿기만

하면 구원 얻게 될 것을 말씀함입니다.

이는 주님께서 말씀하신 바

,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죽으심)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성령)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요 16:7) 하신

주님의 죽으심으로만이 가능하여지는 큰 일인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행하신 큰 일


요엘서를 요약하면,

1장에 묘사된 광경은 분명히 역사적으로 일어난 메뚜기 재앙입니다.

그런데, 2장에 묘사된 광경(1-11)은 계속

 메뚜기의 재앙을 다루고 있는지 아니면 외적(外敵)의 침략을 다루고 있는지 분간하기 어렵습니다.


그것은 메뚜기 떼가 엄습하는 그림과, 북방으로부터 군대가 침략하는 두 그림이 겹쳐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계시의 복합성(複合性)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궁극적으로 보여주시고자 하는 것은

메뚜기의 재앙도,

앗수르나, 바벨론의 침략이 아닙니다.

궁극적인 계시는

이 재앙과 심판 너머로 최후의 심판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3장에 묘사된 광경들은 종말에 있을 장면들입니다.

"사람이 많음이여 판결 골짜기에 사람이 많음이여 판결골짜기에 여호와의 날이 가까움이로다"(3:14)는 말씀은,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계 20:12) 하신 말씀으로 인도해줍니다.


재앙이란 

그것이 홍수이든지,

 불이든지,

 메뚜기이든지,

적군이든지 간에 궁극적으로는 최후심판에 대한 경고라는 사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계시에는 점진성(漸進性)이 있습니다.

 1장의 메뚜기 재앙이

, 2장에서는 외적의 침입으로,

 3장에서는 최후의 심판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 요엘서의 패턴입니다.

심판이란

인간이 범한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公義)의 발로입니다.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참아 보지 못하신다"(합 1:13)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구원이란

받을 가치가 없는 자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의 발로입니다.

우리가 명심해야할 점은

"여호와의 날"이란

다가오고 있는 "한 날"만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날(日)들이 모여 달(月)이 되고, 해(年)가 되듯이,

매일 매일이 여호와의 날이라는 각성이 필요합니다.

점(點)들이 모여서 선(線)이 되기 때문입니다.


메뚜기의 재앙이 전국을 휩쓸던 날도

"여호와의 날"이었습니다.

바벨론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불사르던 날도

분명 여호와의 날이었습니다.

쓰나미가 덮치던 날도

여호와의 날이요,

미국의 국제무역센터가 주저앉던 날도

여호와의 날이요,

성수대교가 붕괴되던 날도

여호와의 날이요,

당신이 교통사고를 당하던 날도

"여호와의 날"이라는 고백이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다가오고 있는

 "크고 심히 두려운 여호와의 한 날"(2:11)을 부인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미래에 있을 여호와의 날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매일 매일이 여호와의 날임을 망각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호와의 날


요엘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큰 일"을 행하실 그 때가 언제인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그 후에"(2:28)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이를 "말세에"(행 2:16)라고 고쳐서 부르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는 "여호와의 날"이 이미 임하였음을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말세"란 계시사적인 말세,

마지막 계시가 임하였다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은

구약의 계시를 포괄적으로 성취하신 마지막 계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말씀하고있는 말세란

그리스도의 초림으로부터 재림까지의 전 기간을 의미합니다.


바로 우리는

 "말세의 고통 하는 때, 즉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쾌락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 하는"(딤후 3:1-4) 시기를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요엘서의 중심부는 2:12-32절입니다.

 ㉠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 오라,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2:12-13상) 합니다.

㉡ 하나님,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13하) 합니다.

중심부분(2:12-32)이 놓여있는 위치가 어디인지 주목하시기를 바랍니다.


역사적인 사건(메뚜기 재앙, 외침)과,

 역사의 종말에 있을 최후심판을 경고하는 사이에 놓여있습니다.

 이런 뜻입니다.

요엘서는 오늘날도

, "너희가 이제라도 마음을 찢으며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구원을 얻으려니와 끝내 거절하면 심판을 당하게 된다"고 외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 기간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를 알았기에,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 6:2) 하고 간곡히 호소했던 것입니다.



더욱 넘치는 하나님의 은혜


그러므로 요엘서에는

심판의 경고가 두려운 만큼,

그보다 더욱 축복과, 구원과, 은혜가 풍성하게 약속되어 있습니다.

 ㉠ "여호와께서 큰 일을 행하셨다"(2:21)고 말씀합니다.

"큰 일"이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를 너희에게 적당하게 주시리니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전과 같을 것이라"(2:23) 합니다.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내려주시겠다는 약속은,

 ㉡ "내 신을 너희에게 부어 주리니"(2:28) 하신 폭포수와 같은 은혜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믿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2:32) 합니다. 바울은 로마서에게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하면서, 본문 2:32절을 인용하여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롬 10:9-13) 하고

 선언합니다.


이는 행함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는 자에게

값없이 거저 주시는 풍성하고도 넘치는 은혜요, 복음입니다.


 요엘서의 핵심적인 메시지도

인간의 행위로는 심판이요, 멸망이요,

 절망 일수밖에 없으나,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은혜로, 이를 회복시켜주시고

 구원하여주신다는 복음증거입니다.              

출처 : 구속사 파노라마
글쓴이 : 바람이어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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