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사 !!! 구원사!!!

[스크랩] 구속사의 관점에서 본 요한1서 파노라마

하나님아들 2014. 3. 8. 14:43

                                 요한1서 파노라마


                    주제 : 하나님은 빛이시라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요한1,2,3서는 사도 요한에 의하여 기록된 서신입니다. 추측컨대 요한이 본 서신을 기록할 당시는 사도 중 유일한 생존자였을 것입니다.

그런 요한이 본 서신을 기록하는 목적이 무엇인가?

사도는 크게 세 가지 주제를 말씀하기 위해서 기록했습니다. 

첫째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5:13)구원의 확신입니다.

 둘째로 형제 사랑을 위해서입니다.

본 서신에는 형제 사랑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셋째로, 이단을 경계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도는 이 세 가지 주제를 말씀하기 위해서 본 서신을 기록한 것입니다.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함


첫째 주제인 “구원의 확신”입니다.

사도 요한은 복음서를 기록한 목적을,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함이라”(요 20:31) 하고 밝히고 있는데,

 본 서신에서도,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5:13) 합니다.

그러면 구원의 확신은 어떻게 주어지는가?

㉠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하고 물으심과 같이

“예수”가 누구신가에 확고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사도는

복음서나, 서신의 서두를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 1: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요일 1:1) 하고

그리스도가 누구신가 하는 정체(正體)를 말씀함으로부터 시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형제는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에 대한 확고한 대답을 가지고 있습니까?

㉡ 다음은 성자 하나님께서 어찌하여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는가에 확고해야만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2:2),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4:10) 합니다.

어찌하여 사도는 “화목제물”이 되셨다고 말씀하는가?

죄”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단절시켰고, 원수 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화목제물이 되어주심으로 하나님과 “사귐”이 있게 되었음을 말씀하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이를 믿는 자에게 구원의 확신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다음은 둘째 주제인 “형제 사랑”입니다.

사도는 곧바로 형제를 사랑하라 말씀하고 있지 아니합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아니 될 필연성과 당위성을 먼저 말씀합니다.

㉠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4:8, 16) 합니다.

㉡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하고 말씀한 후에,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4:9-11) 하고 그 필연성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엄청난 이 사랑을 알고 믿고, 그리하여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이 부은바 된 사람이라면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너무나 마땅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가 말씀하는 형제 사랑은 윤리적인 차원이 아니라 신학적인 차원임을 명심해야만 합니다. “형제를 사랑하므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3:14) 합니다.

 구원을 얻었다는 것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짐”을 의미합니다.

형제를 사랑함으로 옮겨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 형제를 사랑하는 것을 보아서

그가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사랑하지 않는 자는

 옮겨진 자가 아니요 아직 사망에 거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사탄은 하나님께 속한 자들을 미워(3:13) 합니다.

그런데 그가 그리스도인을 미워한다면

그는 아직 사탄의 진영에 속해있는 자라는 말씀입니다.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


셋째 주제는 “이단에 대한 경계”입니다.

아이들아 이것이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이르겠다 함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2:18) 합니다.

 그러므로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4:1) 합니다. 그러면 적그리스도의 정체가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4:2-3) 합니다.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4:6) 합니다.

이는 표현만 다를 뿐이지 앞에서 말씀한,

 ㉠ 예수가 누구신가?

그는 왜 오셨는가와 결부된 문제입니다.

당시의 이단들은

그리스도가 육신을 입고 오셔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다시 사신 예수시다라는 점을 부인했던 것입니다.

 이런 비진리의 세력들은 오늘날 더욱 맹위를 떨치고 있음을 경계해야만 합니다.

㉠ 사도는 “시험하라”(4:1) 합니다.

그러면 무엇으로 시험하는가?

저희는 세상에 속한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저희 말을 듣느니라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4:4-5) 하고,

“말” 즉 설교로 참과 거짓을 시험하라 합니다.

㉡ 그런데 사도는 그냥 “말”(言語)이라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 하고 “영”(靈)의 활동임을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설교와 함께 진리의 영이 역사하는 것과,

 미혹의 영이 역사하는 설교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진리의 영”이란 성령인데 어찌하여 진리의 영이라 하는가?

그리스도께서 이루어 놓으신 복음진리를 증거하러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결론은 분명해진다 하겠습니다

. 그 설교자가 “진리의 영”에 충만해있다면 누구의 무엇을 증거하기를 열망하게 될 것인가?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하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 2:2) 하게 될 것이 아니겠는가?

 이런 기준으로 오늘의 설교들을 “시험”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사도 바울은 말씀합니다.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골 2:8).

이점에 형제는 확고합니까?    


본 서신의 기록목적인 세 주제와 결부된 핵심적인 단어들이 있습니다.

그 첫째가 “사귐”(1:3, 3, 6, 7)입니다.

구원을 얻었다 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사귐, 즉 교제가 회복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수직적으로는 하나님과 우리와의 사귐이 있고,

 수평적으로는 성도상호간의 사귐을 유지해나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사도는,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는”(1:6) 사람이고,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 하는 자니”(4:20) 즉 가짜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입니다.

 또 본 서신에는 “거짓말 하는 자”라는 말이 4번(1:6, 2:4, 22, 4:20)이나 등장합니다. 이는 거짓 선지자가 있듯이 거짓 그리스도인이라는 뜻입니다.


본문관찰에서 보게 될 것입니다만

 요한서신은 우리의 신앙을 계속적으로 검증을 합니다.

어떤 기준에 의해서인가?

하나님은 빛이시라(1:5),

 하나님은 사랑이시라”(4:8)두 기둥과 같은 진리에 의해서

, 우리 신앙의 진실 여부를 검증을 합니다.

 그러므로 본 서신은

 신학적인 이론이나 추상적인 관념들이 아니라

우리의 내면을 X-RAY 촬영하듯 투시하고, 벌거벗은 듯이 드러나게 합니다.

그리하여 누군가의 말과 같이 본 서신에는 백(白)과 흑(黑)만이 있을 뿐 회색(灰色)이 없습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나니”(3:10) 합니다.


두 번째 핵심 단어가 “속하다는 말입니다.

 이는 소속을 나타내는 말로 16회 정도 등장합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가 있고 마귀에게 속한 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지구상에 많은 나라, 많은 민족이 있다하여도 영적 논리로 하면 두 나라와 두 진영이 있을 뿐입니다. 두 진영에 동시에 속할 수도 없거니와 그렇다고 아무 진영에도 소속되지 않은 중간의 경계인은 없습니다.

빛 가운데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한 자고, 어둠 가운데 행하는 자는 사탄에게 속한자요,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한 자이고, 미워하는 자는 마귀에게 속한 자라고 말씀합니다.

설교자도 하나님께 속한 자가 있고, 세상에 속한 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출신학교나 소속교단으로 분별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복음을 증거하고 있느냐, 세상적인 말을 하고 있느냐 여부로 안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핵심 단어가 “앎”입니다.

 본서에는 “안다”를 의미하는 말이 30회 정도나 나타납니다.

신앙인격은 지정의(知情意)적인 것입니다.

 ㉠ 듣고 아는 것이 먼저입니다.

 ㉡ 그리하여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 행함이 없는 믿음은 자체가 죽은 것이라 하고 행함이 뒤따라야 할 것을 말씀합니다.

 문제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롬 10:14)에 있습니다.

교회에 출석한지 1년이 되어도 복음의 진수를 듣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 오늘의 실정입니다.

그러므로 “앎”과 함께 생각할 핵심어는

“하나님께로서 난 자”(3:9, 5:4, 18) 즉 거듭남입니다.

 거듭남, 즉 태어나는 것이 선결문제입니다.

태어나야 사랑도 하고 교제를 할 것이 아닌가?

그렇다고 교회에 등록하기만 하면 거듭나는 것은 아닙니다.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구원의 복음을 듣고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엡 1:13) 거듭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구원의 복음”이 무엇인가?

복음서를 설교한다고 복음을 전하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은 우리 죄를 인하여 대신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셨다는데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이 말씀하는 “앎”이란 지식에 근거한 확신의 의미가 있습니다.

 사도는 본 서신을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을 “이긴다”는 승리(5:4-5)와, 확신을 의미하는안다”(5:13, 15, 18, 19, 20)는 것으로 마치고 있습니다.

㉠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합니다.


 ㉡ “이것을 쓴 것은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5:13),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5:19-20)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지 않아서 받지를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능력이 없어서 이기지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호세아 선지자가,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호 4:6) 하고 탄식한 대로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변화된 자신의 신분과 지위와 소속을 “알지를 못해서”

평생을 가련하고 가난하고 가엾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케 하려 함이로다”(1:4) 합니다.

어떤 경우에 기쁨이 충만하게 되는가?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거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요삼 1:3-4) 합니다.

 이점에서 유념해야할 점은

이 기쁨이 사도의 기쁨만이 아니라 곧 우리 주님의 기쁨이라는 점입니다


바라기는 이 책을 통해서

㉠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 ㉡ 형제 사랑하며,

 ㉢ 세상을 이기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출처 : 구속사 파노라마
글쓴이 : 바람이어라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