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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왜 하나님은 불신자와의 결혼을 금하시는가?

하나님아들 2014. 2. 1. 16:48

왜 하나님은 불신자와의 결혼을 금하시는가?


불신자와의 결혼을 금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의 타락 후에 즉각적으로 선언하신 하나님의 약속 때문이다. 뱀에게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은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 3:15)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이 서로 원수가 된다고 말씀하셨을 때 그 말씀의 뜻은 뱀의 후손으로 상징되는 사단의 자식들과 여자의 후손으로 상징되는 참된 성도들 사이에 끊임없는 암투가 있을 것임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갈보리에서 사단을 물리치고 승리하셨을 때 이 투쟁은 가장 드라마틱 형태로 성취된 것이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여자의 후손이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영적인 머리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자녀들과 사단의 자식들 사이에 하나님이 적대감을 두신 것처럼 이 두 후손 사이에는 진정한 평화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불신자와의 결혼하는 것은 사단의 자식과 결혼하는 것이다. 이같은 표현이 불신자에게는 매우 불쾌한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 표현은 예수님 당시에 불신자들에 대하여 사용하신 언어였다.

 

왜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혈안이 되었었는가? 예수님이 이처럼 말했기 때문이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함이니라”(요 8:44). 같은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경고하셨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요 15:18-19).

 

예수님의 이 말씀을 우리는 진지하게 생각하여야 한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불신자 중 어떤 특정한 부류에게만 한정시킨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리스도인들을 공공연히 핍박하는 불신자들에게만 한정시킨 말씀이 아니다. 그의 말씀은 기독교인이 아닌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시킨 것이다. 그들 중에는 아주 신사적인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고 친절한 사람, 존경받는 인물, 도덕적으로 선한 자, 교회 출석자들도 포함되어 있다. 비기독교인들 중에는 예수를 아주 싫어한다든지 또는 신자들을 역겹게 생각하지 않는 무리들도 상당수가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자들조차도 실제로는 예수를 싫어하는 자라고 말하였다. 예수님은 그들의 마음속에 무엇이 있는지를 완전하게 아신다. 그러므로 기독 신자라고 말하는 성도들 중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정반대되는 소리를 발해서는 아니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이 세상이 너희를 싫어한다’고 말씀하셨을 때 그것을 우리가 믿는 것이 훨씬 낫다. 더 나아가서 그러한 잣대를 가지고 모든 일을 판단하는 것이 훨씬 덕스러운 것이다. 이러한 믿음의 위에서 매사를 생각해야 한다.

 


이 문제를 보다 확실하게 설명하고자 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1. 불신자와 결혼하는 것은 인생을 위하여 어느 시점에서는 나타나게 될 잠재적인 원수와 결혼하는 것이다.

 

나는 하나님께서 믿지 않는 배우자를 그의 자비하심으로 말미암아 어느 때에는 회개시켜 믿게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부인한다거나 의심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실제로 그러한 경우를 보았다. 그러한 경우가 발생하는 것에 대하여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그러나 이같은 사례조차도 일반적으로 불신자 배우자가 여전히 믿지 않는 자로 남아 있다는 현실은 그대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나중에도 간단히 살펴보겠지만 불신자 배우자가 회심케 된다는 것을 확실히 보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불신자와의 결혼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상대방을 회개시켜 주지 않는 한 일정한 기간 동안 하나님과의 원수인 자와 함께 살아야 하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오늘날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와 같은 쓰디 쓴 경험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의 분명한 경고의 메시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신자와 결혼한 그리스도인들은 배우자가 회심케 되기를 소망하며 결혼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결혼하여 살 때까지는 그 상대방이 어떤 문제를 야기시킬지에 대하여 전혀 알지 못하는 것이다. 대다수의 경우를 보면 그들이 결혼한 상대가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백성들에게 원수라는 사실을 너무나 늦게 알아차리게 된다는 것이다.

 

나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배우자가 회심케 될 것이라는 거짓된 희망에 의하여 속임을 당하여 결혼하게 되었음을 확신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소망이 분명히 하나의 꿈에 불과한 것임을 분명히 말해 주어야 한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7장에서 결혼과 이혼 문제를 언급하면서 그는 배우자의 회심 때문에 불신자가 갈라서기를 원하는 가능성을 직시하였다(12-16절). 이것이 사실일 때 바울은 가르치기를 “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속받을 것이 없느니라”(15절)고 하였다. ‘구속받을 것이 없느니라’고 말한 바울의 의미는 무엇일까? 믿는 배우자가 믿지 않는 배우자로 하여금 갈라서지 않도록 막거나 결혼 생활을 유지하도록 애쓸 필요가 없다는 말이 틀림없다. 그 이유를 15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하나니은 화평 중에서 너희를 부르셨느니라.” 다시 말해서 레온 모리스 박사가 설명하고 있는 바와 같이 ‘이교도가 갈라서기로 결정한 결혼에 매달리는 것은 필연적으로 파탄에 이르고 결국 늘 심한 압박 가운데 살게 되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논쟁할 것이다. 만일 불신자 배우자가 회심케 된다면 결혼 생활을 유지하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이는 가운데 당하는 아픔이나 압박은 가치 있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만일 그러한 결과가 확실한 것이라면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믿지 않는 배우자가 회개하고 주님을 믿는다는 확실한 보장만 된다면 결혼 생활이 파산되어서는 아니된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러한 결과가 확실하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래서 바울은 “아내된 자여 네가 남편을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며, 남편된 자여 네가 네 아내를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리요?”(16절)라고 말한 것이다. 모리슨 박사는 계속해서 주해하기를 ‘불확실한 결과에 의하여 확실한 압력 상태를 정당화할 수 없는 것이다. 결혼을 전도의 도구로 간주해서는 아니될 것이다. 여기서 지침 원칙은 “화평”이다’. 만일 바울이 갈라서기로 결정한 믿지 않는 배우자와의 결혼 생활을 유지하려고 애쓰지 않아야 할 이유를 회심의 불확실성 때문이라고 한다면 ‘회심의 불확실성’의 이유는 불신자와의 결혼을 금하는 충분한 이유가 되는 것이다.

 


2. 불신자와의 결혼은 당신의 영적 생활에 지속적으로 방해 거리가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배우자가 필요함을 보셨을 때 배우자의 존재 의의가 무엇인지를 가장 잘 표현한 말은 ‘적절한 배필’(a suitable helper)이라는 용어이다(창 2:20). 이 표현은 결혼 생활에 있어서 양편 배우자를 위한 주요 의의를 나타내고 있다. 남편은 자기 아내에게 가장 적절한 배필이어야 하며, 아내는 남편에게 가장 적절한 배필이어야 하는 것이다. 남편은 남편 자신에게 특별히 필요한 일에 가장 잘 도와 줄 수 있는 배우자가 필요하다. 그의 삶을 함께 나눌 동반자가 필요한 것이다. 그가 사랑할 수 있는 자가 필요하다. 그의 삶을 함께 나눌 동반자가 필요한 것이다. 그가 사랑할 수 있는 자가 필요하다. 그가 신뢰하고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자가 필요하다. 함께 생각을 나눌 자가 필요하다. 함께 있는 것 자체를 즐거워할 수 있는 자가 필요하다. 그는 가정을 달콤하게 꾸려 갈 자가 필요하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을 적절히 공급해 줄 수 있는 어머니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 위에 그의 영적 생활에 있어서 그에게 진정으로 도움이 되어 줄 수 있는 배필이 필요한 것이다. 그의 영적 건강을 염려해 주는 배우자, 그와 함께 기도할 수 있는 배필, 영적인 문제들을 함께 논의할 수 있는 배필, 영적인 대화를 함께 나눌 수 있는 상대가 필요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아내도 아내의 독특한 필요를 채워 줄 수 잇는 적절한 배필이 필요하다. 아내는 좋은 아내가 되도록 도와 줄 남편이 필요하다. 좋은 가정 주부가 되도록, 좋은 어머니가 되도록 돕는 배필이 필요한 것이다. 무엇보다다 영적인 문제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녀의 모든 신앙생활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신령한 남편이 필요한 것이다. 오직 그리스도인 남편만이 이와 같은 문제를 진정으로 도와줄 수 있는 배필인 것이다. 오직 그리스도인 아내만이 기독교인 남편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도와 줄 수 있는 적절한 배필인 것이다.

 

이것이 가장 바람직한 결혼 배우자에게 요구되는 사항이다. 물론 배우자를 구하는 일에 여러 가지 다른 면들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매력적인 여자를 찾는 것이 잘못이라고 할 수 없다. 관심 사항이 서로 비슷한 자를 찾는 일이나 배경이 같은 상대를 구하는 것이 잘못이 아니다. 적절한 배우자를 선택하는 일에 있어서 여러 조건들을 살펴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가지 조건은 절대로 선택 사항으로 여겨서는 안된다. 그것은 당신의 신앙 문제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배우자라야 한다는 것이다.

 

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상대가 외모가 아르답고, 직업도 괜찮으며, 공통 관심사가 많아 여러모로 대화하기에 용이하고 적절하다고 생각된다면 그것들은 경멸할 이유가 없는 덤으로 얻는 복인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조건들이 되어서는 안된다.

 

정말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영적인 문제만큼은 양보해서는 아니된다. 당신의 배우자가 당신이 선호하는 모든 조건을 다 가지고 있는데 그가 기독교인이 아니라면 모든 것을 다 잊어버려라. 그와 같은 자와 결혼하여 살 때 거기에서 그 어떤 선한 것도 나오지 않음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러한 자는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하여 선택해 놓은 배필이 아니다. 이러한 유혹은 반드시 물리쳐야 한다.

 

내 말을 오해하지는 말라. 나는 신앙을 공유하는 것이 전부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믿는 상대를 발견했다고 해서 그가 당신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배필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내 말의 의미는 당신이 점찍고 있는 배우자는 반드시 당신의 믿음을 함께 나눌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조건들이 무엇이든지 상대방이 그 조건들에 다 맞든지 충족되지 못하든지 간에 한가지 본질적인 조건은 믿음을 함께 지닌 자라야 한다. 그 이유는 이 조건을 가지고 있는 자만이 당신에게 가장 적절한 배필이 될 수 있는 소망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가 참으로 중요한 핵심이다. 이것은 실제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당신의 영적인 문제를 함께 나누지 못하는 배우자와 진지하게 당신의 믿음을 함께 이야기하는 어려움을 한번 생각해 보라.

 

몇 가지 실례를 들어보자. 당신이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신은 한 지교회를 신실하게 섬기며 믿음 생활을 하기 원할 것이다. 주일 예배와 아울러 금요  기도회, 구역 활동 등을 분명히 하고 싶어할 것이다. 그런데 당신의 배우자가 이같은 일에 함께 동참하지 못한다면 얼마나 불행한 인생 여정이 되겠는가? 그 모든 모임에 당신 혼자 가든지 남편이(아내가) 기뻐하지 않는 일에 당신이 참여하게 될 때 당신의 배우자는 당신에게 매우 분개함을 발할 것이다. 당신은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을 함께 나누지 못하는 그러한 배우자와 함께 한평생을 살리를 원하는가?

 

만일 당신이 기독교인이라면 당신의 자녀들 역시 그리스도의 교양과 훈혜로 양육하기를 원할 것이다. 믿지 않는 상대방이 호의적이라고 할지라도 이 문제를 결코 용이한 일이 아님을 발견할 것이다. 당신이 좋아하든 싫어하든 당신의 자녀들은 무엇을 본받아야 할지 혼동하게 될 것이다. 당신이 정말로 주님과 가까이 지내기를 추구하고, 하나님의 길을 가도록 당신의 자녀들을 양육하기를 애쓸지라도 자녀들은 믿지 않는 배우자의 중립적인 영향을 받으며 자라게 되는 것이다.

 

당신의 자녀들에게 훈육이 필요할 때마다 성경적인 훈육에 관한 당신의 견해를 동의하지 않는다면 일관성 있는 훈육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 서로 다른 잣대를 가지고 자녀들을 판단할 때에 당신의 자녀들은 혼란에 빠질 것이다. 당신이 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애쓰기 때문에 당신의 배우자와 당신 사이에 싸움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당신의 배우자는 당신을 기쁘게 하는 외에는 그 어떤 고상한 생각도 가지지 못하는 것이다.

 


- 앤드류 스완슨

출처 : 창골산 봉서방
글쓴이 : 봉서방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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