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찬>
"노년기의 영성과 목회상담"에 대해
반신환 (계명대)
노년기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 것이 현실이고, 논문에서도 밝혔듯이, 우리 사회가 고령화되어가고 있는 것도 현실이기 때문에, 이 논문은 시대의 필요에 부응하고 있는 의미있는 각성제이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며, 노인이 증가하는 시대에, 목사가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야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종교는 연장된 삶에 생명력을 부여하기 위해 위해 무엇을 행하였는가? 종교는 노인들이 삶의 마지막을 향하여 나갈 때 어떻게 도와야 하나? 궁극적으로 종교는 노인들의 풍부하고 성숙한 정서와 영성을 함양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노인에 대한 교회의 과제로, 저자는 "노인의 소리없는 고통의 소리를 들을 수 있고, 풍부한 영성으로 감사와 의미를 느낄 수 있도록" 돕는 것을 제시한다. 노인이 '생명력,' '풍부함,' '성숙함,' '감사,' 및 '의미'를 경험하는 것을 지향하는 점에서, 저자는 노인의 영성에 대한 질문을 제기하고 있다.
저자는 노인의 필요에 적절하게 응답하기 위해, 우선, 노인의 사회적 상황과 심리적 특징을 분석한다. 저자는 노인에게 부정적 영향을 제공하는 사회심리적 특징으로 다음을 지적한다. 그것은, 비자발적 은퇴, 자녀들과의 가치관의 갈등, 외로움, 소속집단의 상실, 및 신체와 사고능력의 퇴화이다. 비자발적 은퇴 때문에, 노인은 자긍심, 대인관계, 경제생활 등에서 고통을 겪는다. 그리고 자녀세대와의 가치관의 갈등 때문에, 노인은 자녀와 친밀감을 유지하려는 소망이 좌절되는 것을 경험한다. 친구와 배우자의 죽음 때문에, 노인은 상처를 받고 외로워한다. 다른 측면으로 이해하면, 노인은 사랑에 대한 욕구가 강하다. 그리고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집단이 없어지면서, 노인은 정체감의 상실을 경험한다. 신체와 사고능력의 퇴화 때문에, 노인은 불안을 경험한다. 그리고 그런 불안은 노화를 촉진한다.
저자는 동시에 노인기에 대한 긍정적 평가도 제시하고 있다. 즉, 자녀의 출산과 양육, 그리고 경제적 부담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성숙한 노인은 창의성을 방출하거나 젊은 시절에 할 수 없었던 지적탐구나 심미적충족을 추구하고 그것을 실현한다.
노인을 위한 방법으로, 저자는 목회자가 수행하는 목회상담을 제시한다. 우선, 저자는 목회자의 연령차이에 따른 역전이와 노인의 전이를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좋은 관계의 형성을 촉구한다. 그 후에, 저자는, 노인을 위한 목회상담에 대해, 개인상담과 집단프로그램으로 구분하여 설명한다. 개인상담에서, 목회자는 노인의 영적 욕구, 물질적 필요, 및 심리적 필요를 만족시키도록 돕는다. 영적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목회자는 고백이나 기도와 같은 영적 자원을 사용한다. 물질적 필요를 만족시키기 위해, 복지기관이나 의료기관과 협력할 필요가 있다. 심리적 필요를 만족시키기 위해, 마음의 평화를 찾도록 돕는다. 부부관계와 성문제도 관심을 둔다. 특별히, 폐쇄적인 노인, 거동이 불편한 노인, 및 노인이 갖고 있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관심을 둘 필요가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저자는, 오히려, 집단프로그램 혹은 동호회를 더 강조하고 있다. 외로움을 느끼는 노인에게, 집단프로그램이나 동호회가 더 효과적이라고 평가하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목회자는 그 집단프로그램을 통해 참여자들의 종교적 관심과 실천이 회복되도록 그 프로그램에 종교적 가치를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상적인 프로그램으로 성경공부반을 추천한다.
저자는 노인의 심리사회적 특징 및 문제에 대해 잘 분석하고 있다.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개인적 목회상담과 집단프로그램를 좋합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여전히 대답되지 않은 질문이 있는 것 같다. 그것은 노인의 영성에 대한 질문이, 목회상담이라는 대답으로 제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생명력, 풍부함, 성숙함, 및 의미로 표현되는 노인의 영성에 대한 추구가, 건강을 추구하는 목회상담 혹은 상담의 방법으로 채워질 수 있을까? 물론, 저자는, '고백이나 기도와 같은 영적자원'과 '종교적 가치'를 강조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 영적자원과 종교적 가치는 오히려 건강의 회복에 종속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영성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2개의 분석을 살펴보기로 한다. Clinebell은 영적 필요의 영역을 7개로 정리한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생동감있는 삶의 철학,
창조적 가치,
사랑의 하나님과의 관계,
더 고차원적인 자아의 지속적 개발,
우주 속에 포함되어 있다는 신뢰할 수 있는 소속감,
초월의 순간들의 재활성화(renewing moments of transcendence)
영적 성장을 양육하는 사랑의 공동체.
Ingersoll은 영성을 10개의 측면으로 분석한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1. 신 혹은 절대자의 개념
2. 의미
3. 관계성
4. 신비
5. 자유의 감각
6. 경험-의식-실천(Experience-ritual-practice)
7. 용서
8. 희망
9. 앎-배움(knowledge-learning)
10. 현재-중심성(present-centeredness)
영성을 형성하는 방법으로 전통적으로 사용되던 것이 영성지도(spiritual direction)이다. 이것의 목표는 하나님이나 예수님을 닮는 것이다. 혹은 개인의 초월적 잠재력을 개발하는 것이다. 혹은, 신의 계시로서 우리가 경험하는 삶을 확신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 주목(paying attention), 듣기, 분별 등을 강조한다.
영성과 영성훈련에 대한 위의 설명들은 개략적이고, 또 노인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닌 일반적인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의 노인에 대한 저자의 분석과 제언을 더 풍성하게 만들기 위한 노력의 기반으로 삼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다른 측면에서 생각하면, 많은 우리의 노인들이 영성을 개발할 수 있는 신체적, 물질적, 및 사회적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개인의 건강과 건강한 환경을 조성하는데 노력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축사에 대한 신학적 및 심리학적 고찰
-칼 바르트와 멜라니 클라인을 중심으로-
홍영택
(강남대학교)
I. 들어가는 말
귀신들림의 문제는 목회자라면 누구나 심각하게 고민해보았던 적이 있을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접근에 있어서 귀신들림이란 실제로 있는가 라는 것이 주된 논쟁의 대상이 되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극단적인 두 가지 태도가 생긴다. 하나는 그런 것이란 없다는 현대 정신의학의 주된 노선을 따르는 것이다. 이런 견해에서는 사람들의 정신 장애에 대해서 정신의학적 접근만을 옹호하게 된다. 또 하나는 귀신들림이란 있다는 견해로서, 이 견해를 가진 사람들은 정신의학적 접근을 경시하며 축사를 내세우는 신비주의적인 경향을 띠게 된다.
본고는 귀신들림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대답을 하는 데 목적이 있지 않다. 본고는 귀신들림을 하나의 현상으로 인정하고, 신학적 및 심리학적 고찰을 통하여 귀신들림에 대하여 보다 통합적인 이해를 해보고자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두 가지 극단적인 입장들로 분리됨으로써 오는 부작용들을 줄이고, 정신적으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에 대한 목회를 보다 효과적으로 하도록 돕고자 한다.
본고는 하나의 축사 사례를 가지고 칼 바르트의 신학과 멜라니 클라인의 이론을 통해 해석함으로써, 축사에 대한 보다 통합적인 이해를 향한 하나의 출발점을 시도하고자 한다.
II. 축사 사례
신동수는 자신의 목회 속에서 직접 경험한 사례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다음은 그가 자신의 석사 학위 논문에서 축사 과정의 배경과 전말을 기록한 것이다.
배경
연구자가 A씨를 처음 만난 것은 감리교신학대학을 졸업하고 G교회에 파송을 받아 목회를 시작한지 수개월 지난 때였다. 당시에 손발이 크게 붓고 오그라드는 병과 그에 따르는 합병증(당뇨병, 위장병)으로 고생하던 A씨는 G교회에서 보통 걸음으로 30분 정도 떨어진 동네에 살고 있었는데 이웃에 있던 K권사님의 전도를 받아들였다.
주일 예배를 마치고 처음 만난 A씨는 45세의 전형적인 시골의 아낙네였는데, 보통 사람보다 키가 좀 작았고 몸이 몹시 말라보였다. 그것은 오랫동안의 병력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나 정신적으로는 전혀 이상한 증상을 보이지 않았다. 몸은 외소했지만 오히려 눈은 총기가 있었고 말하는 것도 상당히 논리적이고 자기의 생각을 잘 표현하는 편이었다.
A씨는 그 동네에서 시오리 떨어진 가까운 마을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마치고 19세 되던 해에 자기보다 네 살 연장인 남편과 결혼을 하여 남편과 함께 김 양식과 농사를 주업으로 삼아 평범한 농촌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A씨는 교회에 나오기 3년 전부터 손발이 붓고 오그라드는 병을 앓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동네 약방에서 약을 지어먹으며 낫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증세는 회복되지 않고 점점 더 악화되었다. A씨는 여러 병원을 찾아다녔지만 정확한 병명을 알 수 없었고 증세가 오히려 점점 더 악화되었다. 점도 쳐보고 굿도 했지만 차도가 없었다. 교회에 나오기 얼마 전에는 용하다고 소문이 난 모 교회 장로님에게 침을 맞으러 갔는데, '당신의 병은 치료될 수 없는 병이고 마지막 길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치유해 주시는 길 밖에 없다'는 절망적인 말을 들었다.
환자의 예수 영접
그때 연구자가 목회하고 있던 G교회는 연구자가 부임한 후 치유하는 교회로 소문이 나기 시작한 때였다. 연구자가 부임할 때는 20명 남짓하던 교회가 암 환자, 소아마비, 중풍, 당뇨병 등의 많은 치유사례로 인하여 1년 만에는 거의 80명 정도의 성도가 모이는 교회로 성장했다. 이런 분위기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A씨는 마지막 희망을 가지고 교회에 나오게 되었고, 특별한 열심을 가지고 예배에 참석하게 되었다.
교회에 나온 첫날 예배 후에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성경말씀을 들려주었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했다. 그리고 안수기도를 하자 고통이 많이 줄어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집에 돌아가면 자주 이전의 고통스런 증상이 나타났고 특히 다시 교회 올 시간이 임박하면 손발이 이전보다 더욱 심하게 붓고 오그라져 예배에 참석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통이 증가되었다. 그래도 A씨는 교우들의 부축을 받아가며 열심히 예배에 참석했으며, 새벽기도를 하기 위해 다른 교우들과 함께 교회에서 잠을 자고 새벽기도회에 참석하여 말씀을 경청했다. 그 결과 날이 갈수록 병세가 호전되어갔다.
첫 번째 이상행동
A씨가 이상한 행동을 보인 것은 교회에 처음 나온 지 한달 정도 지난 때였다. 그날은 추수감사주일이었는데 예배 후에 오랜만에 풍성하게 준비한 음식을 나누었고, 기쁨에 겨운 성도들은 여느 때와 달리, 곧바로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평신도 대표 격인 K권사님의 인도로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다. 모두 넘치는 기쁨으로 찬송하는데 한 노인 집사가 일어나서 춤을 추기 시작했고 이어 다른 교우들도 가세하여 춤판이 벌어졌다. 나중에는 어린이 어른 할 것 없이 모두 덩실덩실 춤을 추게되었다. 그러한 분위기에 익숙하지 못한 연구자도 어느덧 강단으로 올라가 장단에 맞추어 강대상을 두드리며 찬송을 부르고있었다. 그때 연구자는 성령의 임재를 강하게 느꼈고 그들이 부르는 찬송을 통하여 일생에 처음으로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신비한 기쁨을 맛보았다.
연구자는 교우들의 천사 같은 얼굴과 춤사위를 바라보다가 그 속에서 뭔가 다른 분위기의 춤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기쁨으로 추는 춤이 아니고 뭔가 한이 맺혀 있는 듯한 억세고 굳은 몸짓이었다. 직감적으로 그것은 악한 영의 조종을 당하는 것이라고 느껴졌다. 그 춤은 바로 그 A여인의 춤이었다. A여인은 주변사람들과 부딪히며 교우들 속을 휘젓고 다니고 있었다. 나는 잠시동안 방도를 생각하다가, 분위기를 깨지 않기 위해 그와 눈이 마주칠 때를 기다려 손짓하며 강단 앞으로 나오라고 했다. 그러자 그 여인은 갑자기 더 심하게 중국 영화에 나오는 중국 귀신 강시 같이 두발을 모은 자세로 뛰더니 나를 노려보고 소림사 무술에서처럼 두 눈을 공격하는 자세로 검지와 장지를 세우고 몇 걸음에 강단 앞까지 날아오듯이 다가왔다.
그러나 내가 강단에서 자제하도록 명령하고 내려서서 다가가자 더 이상 뛰지 못하고 서서 나를 노려보기만 했는데 가슴이 서늘할 정도의 무서운 눈빛으로 쏘아보았다. 춤을 추던 교우들은 그제서 사태를 알아차렸다. 나는 교우들에게 함께 기도할 것을 청하고 그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그러자 A씨는 잠깐동안 나를 향해 더욱 눈을 부릅뜨고 저항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기도가 시작되자 곧 마루 바닥에 정신을 잃은 듯 힘없이 쓰러졌다. 10여분 정도 교우들과 기도하고 찬송하는 동안 잠을 깬 듯이 일어나 정상적인 상태로 되돌아 왔다.
그후 연구자는 그의 병이 악한 영에 의한 것이라 판단하고 시간을 정하여 그와 함께 자주 예배를 드리며 성경말씀을 들려주었고, 귀신의 의지에 굴복하지 말고 기도하며, 이상한 증상이 나타나면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물리치라고 말해 주었다.
두 번째 이상행동
첫 번째 이상행동이 나타나고 5∼6주가 지난 후에 묘한 사건이 일어났다. 주일 예배를 마치자마자 A씨가 교회당 안의 마루에 쓰러지더니 누운 채로 창을 하는 것이었다. 그 곡조가 얼마나 구성지고 슬픈지 듣는 이의 마음에 격한 슬픔을 일으키게 하는 감화력이 있었다. 그것은 명창만이 낼 수 있는 소리라고 판단되었다. 창에 대해서 전혀 문외한인 여자가 어떻게 그런 예술적인 소리를 할 수 있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창의 내용은 한 맺힌 귀신이 떠나간다는 내용이었다. "간다. 간다. 나는 간다. 원통하고 원통하다.… 예수 믿으니 못살겠어.… 나는 간다.…" 연구자가 누구냐고 물어보자, 자기는 이년의 친척 할아버지이고, 지금까지 밥 잘 얻어먹고 살았는데 이제 이년이 예수를 믿어 자기를 괴롭게 하므로 더 이상 견딜 수 없다고 했다.
나는 귀신을 꾸짖고 그에게서 나가라고 명령을 했다. '이 여자는 예수님을 영접한 하나님의 딸이다. 이젠 너와 상관이 없다.' 그러자 A씨는 곧 정신을 잃고 쓰러졌으며 십여 분 후에 이전처럼 정상적인 상태로 되돌아왔다.
A씨는 자기에게서 전혀 배우지 않은 창이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것을 이유로, 어린 시절에 자기 외삼촌 할아버지가 해남에서 유명한 명창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그 할아버지가 귀신이 되어 자기에게 들어온 것 같다고 했다. 연구자는 A씨가 자신의 상태에 대해 바른 이해를 할 수 있도록 성경을 근거로 설명했다.
"죽은 그 할아버지가 귀신이 된 것이 아니다. 죽은 사람은 산 사람에게 나타날 수 없다.(눅1장26절 참조) 성경에 의하면 죽은 사람이 귀신이 되는 것이 아니고, 귀신은 타락한 천사이며 사탄의 부하이다. 그리고 그 귀신이 창을 부를 수 있는 이유는 귀신이 그 할아버지 속에 들어가서 그 할아버지를 통해 창을 배웠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와 반대로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것은 귀신이 본래 창을 알고 있었고 그 할아버지에게 들어가서 창을 부르게 하였는데, 그 할아버지가 죽자 그 귀신이 당신을 거처로 삼아 병을 일으키며 괴롭히고 있었다.
그러나 당신이 예수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귀신이 당신에게서 머무를 수가 없게되자 귀신이 마지막으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고 한풀이를 하고 떠난 것이다. 이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당신에게서 귀신이 나갔다.
다시 귀신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회개하고 주님을 의지하라.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하셨고, 그로 인해 당신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귀신이 쫓겨나간 것은 주님이 부활하신 증거이고 당신과 함께 계신 증거이다. 당신에게는 이제 귀신이 떠나고 예수께서 거하신다."
치유
두 번째 이상행동과 귀신이 쫓겨나가는 현상이 나타난 후에도 손발이 오그라지는 증상은 그 정도가 격감되었으나 완전히 치유될 때까지는 거의 1년이 걸렸다. 완전히 육체의 증상이 사라지는 동안 예배를 드릴 때 이따금 미약하게 귀신의 의지에 사로잡히는 경우가 있었으나 자신의 의지와 믿음과 교우들의 공동기도의 도움으로 극복했다.
그 후로는 정신을 잃고 쓰러지거나 다른 의지에 붙들리는 일은 없었으며 일상생활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A씨의 사건으로 인해 A씨의 남편과 두 아들이 함께 교회에 나오게 되었고 그 동네의 많은 마을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
신동수는 A씨와의 개인 면담을 통해서 A씨의 주관적 경험에 관해 대화를 나누었다. 다음은 그 대화의 내용에 대한 기록이다.
첫 번째 이상행동에 대하여
A씨의 첫 번째 이상 행동이 나타난 다음날 개인상담 시간에 A씨는 자세하게 자신의 마음 상태와 느낌에 대해서 말해 주었다.
"나의 행동이 정상이 아니었어도 행동과 관계없이 의식은 분명했습니다. 그러나 나 자신이 파악할 수 없고 제어할 수 없는 어떤 힘이 저를 사로잡아 그러한 춤을 추게 했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과 함께 춤을 추기 시작할 때에는 그런 춤을 추고 있는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몇 차례 옆의 사람들과 부딪히자 나 자신의 행동이 좀 이상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다가 전도사님이 나를 부르자 나도 모르게 전도사님에 대해 적개심이 생겨지는 것을 느꼈고, 나의 몸은 나도 모르게 허공을 나르듯 하여 강단 앞으로 가게되었습니다. 그때 전도사님이 나에게 자제하라고 명령하니까 내 몸이 더 이상 움직여지지 않았습니다. 나는 전도사님께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미안한 마음을 표현하려고 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고 오히려 나도 모르게 전도사님을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또한 전도사님이 나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하는 순간에는 이상하게도 마음속에서 '당신이 무언데 내게 명령을 하고 기도를 하는 거야' 하는 생각이 떠오르며 격한 분노가 갑자기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전도사님이 기도를 못하게 방해하고 저항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으나 기도가 계속되자 곧 맥이 빠져서 서있을 수 없었습니다. 쓰러진 상태에서는 힘이 없어서 몸을 가눌 수 없었지만 마음은 편했고 아무런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이상행동에 대하여
두 번째 이상 행동에 대해서도 A씨는 다음날 개인 상담을 통해서 자세하게 자신의 경험에 대해서 말해 주었다.
전도사님의 설교를 듣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크게 깨닫고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나의 마음은 기쁘고 평안했는데 이상하게 나의 의지로 나의 행동을 제어할 수 없었습니다. 예배드리고 일어서려는데 나도 모르게 마루에 넘어졌고 나의 마음이 슬퍼지더니 창을 부르는 사람처럼 배에 힘이 들어가고 입에서는 이상한 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첫 번째의 이상행동에서와 같이 역시 나의 의식이 분명한 상태였습니다. 그것이 창이라는 것은 한참 내 입에서 창이 흘러나온 후에야 알았습니다.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전혀 창을 배운 적이 없는데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전도사님이 오셔서 저를 향해 귀신을 내어쫓는 명령을 하시고 기도하는데 제 몸은 소란을 피웠지만 마음은 평안했습니다. 기도하는 도중에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고 곧 잠이든 것 같았습니다. 깨어나서 보니까 전도사님과 교우들이 찬송하고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신동수는 A씨를 귀신들린 것으로 보고 축사의 과정을 가졌는데, 그는 A씨를 귀신들린 것으로 보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기도할 때 정신을 잃고 혼수상태에 빠진다.
A씨는 정신이상상태에서 기도하면 거의 혼수상태에 빠진다. 몸의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서 안수기도 했을 때에도 간혹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경우가 있었다. 이 경우에 깨어나면 몸의 고통이 사라지고 마음의 평안을 회복했다. 연구자는 대개의 경우 환자의 마음이 흥분되지 않도록 평범하게 대화하는 크기의 목소리로 차분히 기도한다. 정신이상인 경우 마음을 흥분시키지 않는 이러한 기도에 정신을 잃고 혼수상태에 빠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것은 기도를 통해 환자의 내부에서 영적 대결이 일어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약물의 복용 없이 완전한 회복을 보임
A씨는 수개월에 걸쳐 정신이상현상을 보였으나 전혀 약물의 복용 없이 완전한 회복을 보였다. 때로 정신병 중에 전혀 약물을 사용하지 않은 채 완전한 회복을 보일 수 있는 병이 있으나, 주기성을 가진 기분장애가 아닌 경우에는 아주 희귀하다고 한다.(김진, 『정신분열증에 대해 나누고 싶은 이야기』, 213 참조) 또 단기반응성정신장애가 그런 예에 속하는데, 이 경우 진단기준상 증상이 1개월 이내에 회복되어야 하는데, A씨는 그 증상이 회복되기까지 수개월 이상이 걸렸으므로 그 진단기준에서 벗어난다. 귀신에 의한 증상이라면 귀신이 떠남으로 증상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의지적 노력이 정신이상 현상을 극복하는데 유효함
정신병은 기본적으로 생물학적 요소에 기인하면서도 심리적인 영향을 부분적으로 받기 때문에, 의지적 노력에 의해 어느 정도 증상의 완화가 일시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A씨의 경우와 같이 약물의 복용 없이 신앙과 의지적 노력으로 완전한 회복을 보였다는 것은 보통의 정신병의 경우와는 뚜렷이 구별되는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그 이후로 약물복용 없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다는 것도 고려되어야할 점이다.(김진, 『정신분열증에 대해 나누고 싶은 이야기』, 214 참조)
정신이상시기에도 이상현상이 나타난 시간외에는 정상적인 사고와 생활을 할 수 있었음
대부분의 경우 심한 정신이상현상을 보이는 정신병환자라면 다른 정신적 영역들에서도 정상적인 기능이 파괴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A씨의 경우는 예배 전후의 정신이상현상이 나타난 기간을 제외하고는 일상 생활과 대인관계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 이러한 일은 정신병 환자에게는 찾아보기 힘든 양상이다.
자신이 다른 의지에 지배를 당하고 있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느낌
자신은 연구자에게 공손한 태도를 보이고 싶은데 전혀 그렇게 할 수 없는 자신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또한 자신의 마음까지도 이유 없이 분노에 쌓이거나 슬퍼지는 현상을 느꼈는데, 이는 분명히 자신이 아닌 다른 영적 존재의 영향에 의해 일어난 증상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정신질환자 중에서도 마치 다른 존재에 의한 것처럼 지시를 받는 망상을 나타낼 수도 있지만, 그런 정도의 증세가 나타난다면 사고의 다른 영역들도 크게 손상을 받은 상태이기 때문에 자신의 정신상태를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어려울 것이다.
자신이 배운바 없는 창을 부름
A씨는 창을 배우지도 않았고 창뿐만 아니라 창이 아닌 다른 노래도 잘 부르지 못하였고 음정과 박자도 정확하지 않았다. 목소리도 보통사람의 목소리보다 작았고 폐활량도 작아서 창을 한다는 것은 신체조건상 불가능한 일로 여겨진다. 그러나 정신이상의 상태에서 창을 할 때에는 음정과 박자가 정확했고 그 소리도 크고 풍부했으며 소리에 담긴 호소력도 예사롭지 않아서 듣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깊은 감화력을 나타내었다. 일반적으로 정신이상 상태에서는 정상적인 상태에서보다 사고의 능력이 감소된다고 생각할 때 정신이상 상태에서 정상적인 상태에서보다 더 정확한 음악적 표현과 예술성을 나타내기는 매우 어려운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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