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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아랍인의 이상과 현실

하나님아들 2013. 3. 19. 12:42

아랍인의 이상과 현실
  

 


  무슬림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내용과  실제 이루어지는 삶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이므로  마땅히 종교인으로서 해야  할 일과 실제 나약한 인간의 참 모습을 보여 주는  일면이 있다. 이중 너느것이 한국인에게 아랍문화로 그리고 이슬람 문화로 비추어질 것인가? 그렇다면 어느것이 이슬람의 참된 얼굴인가? 책이나 이슬람 관련 교재가 말하는 내용이 모두 실제 일어나고 있는 사실인가?


  아랍세계에서 한국이  깊이 관심을 가지게된 계기는  1973년 제1차  유류파동과, 1978년 제2차 유류파동을  겪으면서이다. 1980년 당시 한국의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한 것도 국내 석유문제 때문이었다.


  아랍세계는 이미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문명을 안고 있었고,  그 안에 유대교와 기독교가  이미 존재한 상태에서 후발주자로  나섰으나 지금은 전세계 인구의 12억이 무슬림이  되었다. 이슬람이 안 들어간 대륙이 없다고  하는 것을 보면 실로  교세는 급속한 성장세를  가지고 있다. 이슬람은  종교로서만 아니라 이슬람이 가는  곳에 이슬람의 언어인  아랍어와 이슬람 문화를  함께 동반했다. 그래서 이전의 토착문화와 섞이면서독특한 아랍문화를 가지게 되었다.


  이슬람 학자들과 무슬림들은  전세계 이슬람이 하나라고 말한다.  그 이면에는 이슬람이라는 축을 중심으로 전 무슬림이 모두 한  형제요, 전 이슬람 국가가 하나의 움막이며 하나의 신앙 공동체이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각 나라마다 고유의 의상이 있듯이 이슬람은  기존의 문화를 말살하지 않아 토착의 신앙이 내면에 잔잔히  흐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민속 이슬람 또는 지역 이슬람이라 한다. 한  나라 국민의 대다수가 민속 이슬람에 젖어있다.


  지금까지 이슬람 학자들이 주로 연구해 온 분야는 이상적이고  공식적인 이슬람이다. 밖으로 나타난 부분은 전하면서 일반대중의  삶은 정확히 전해주지 못했다. 내부에 다양한 것이  내재되어 있어 이를 숨기고, 나아가서는 이슬람 안에서 비이슬람적 요소를 제거하려면 이상적인   이슬람을 제시함으로써 그 이상을 향해 신도들이 나아가기를  바라는 기대에서이다.. 무슬림은 현실을 도외시하는 태도를 갖는다. 가령 아랍어만 해도 쿠란의  아랍어를 표준말로 정함으로서 이슬람을 알고 아랍어를 배우고자 하는 전세계 무슬림들이 그 표준 아랍어를 구사하기를 바란다. 심지어 아랍어 자음 28개 중에서  아랍인이 표준발음을 제대로 못 하는 자음이 셋 이상이나 되고, 문맹률은 적게는 50%,  많게는 70%를 상회하고 있다. 실제 일상생활에서 표준  아랍어를 쓰는 사람이 극소수이다. 카이로 대학 아랍어과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도 표준 아랍어를 쓰지않고 있다. 학생이  못 알아듣는다는 것이다.


  석유가 나오기 이전에는 전혀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이슬람 국가가 이제는 이슬람의 본래의 모습을 찾기를 갈망하고 있다.  세계 어느 민족 못지않게 신앙심을 가지고 일찍이 정신문화에 관심을 두었던 무슬림들은 외래사상의 유입에도 반기를 들고 나섰다. 이슬람의 체제는 완벽하기  때문에 다른 도움이 전혀 필요 없다는 주장이다. 이슬람의 국가이념으로 하지않는  국가는 무슬림 국가는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슬람 국가는  아니라고 못 박았다.  자유시장 경제제도와 사유제산제도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정치적, 사회적 통제를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소속국민이 모두 다 희망하는 사항은 아니다.


  오랫동안 이슬람과 아랍어 관련서를 보면 아랍어의 표준은 베드윈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 베드윈들을 만나본  결과 베드윈의 언어도 퇴색되어 있었다. 이란과 아프카니스탄의 일부  무슬림은 음악이 비이슬람적이라고 말한다고, 어떤  경우에나 음악이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랍국가와 이슬람 국가를 보라. 음악이 이슬람의 표현은  아니었지만 그 지역문화의 표현으로서 아직도 아랍인의 삶 깊숙히 자리하고 있다.  이슬람에서는 옷을 입을 때 목에서 손목과   발목까지 다  덮으라고 말한다. ‘덮고  가린몸’으로서 이슬람과 각기 민족별로 다르게  해석하여 실제 입고 다니는 의상과 차이가  있다. 서구식 행동방식은 퇴폐적이며 기독교적이라고  텔레비젼까지 금하는 나라가 있는가 하면 최근  쿠웨이트에는 위성 안테나가 한  가정에 두어 개씩 있는  집도 있었다. 안방에서 전 세계의 뉴스를 보고 듣는 것이다.

  1.베드윈의 이상과 미덕


  베드윈의 이상


  베드윈은 오늘날 아랍세계 인구의  100%를 차지한다. 마을니아 도시에 살면서 베드윈 태생임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7세기  이슬람 출현  이전에 베드윈의 언어는 아랍어였다. 아랍인은 우마위야조(661~750)에서도 상류사회의 귀족층이었다. 그것은 첫째,  그들이 베드윈 출신이었고 둘째, 아랍어를 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우마위야조의 궁전에 사는 지도층들은  자녀들을 사막에 보내어 아랍 베드윈   분위기 속에서 자라도록 했고 그들에게서 아랍어를  익히도록 했다. 베드윈처럼 아랍어를 잘하는 것이 아랍주의의 표상으로  여겼던 것이다.


  지금도 아랍지역에 가면 흔히 베드윈들을 볼 수 있는데 언어적인 순수성은 크게 떨어졌지만 아직도 과거아랍세계의 표상으로서 영웅시대의 고대 영광의 상속자이며 증거자로서 자부심을 갖는다. 그 결과  베드윈의 윤리와 도덕이 아랍세계에서 중요시 되었다.  조상들이 영광적인 업적을 회상하면서  그들의 초자연적인 행적으로 인해 용기와 지성과 미덕이 후대문화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되었다. 조상들의 이상을 받들어 후손들은  그들의 모범적인 언행을 귀감으로 삼아 가치체계와 행동규범의 기준으로  삼았다. 그러나 아랍의 정신은  영웅적인 시대에만 집착하지 않고  주위환졍과 도전하여 영웅적이고 독특한  사회를 후세에 남기는 데 있다고 보았다.


  베드윈의 환경은 아라비아 사막이다. 그 사막에 사는 사람들은 유목민이다. 사막은 badw(또는  badiya)라 한다. 여기에서  파생한 바드윈(badwi) 또는 바다위(badawi) 가 영어식‘베드윈(bedouin)’인 것이다. 즉,  사막에 사는 사람이란 뜻이다. 동시에  badw의 다른 뜻은‘시작’이란  의미이다. 마치 술이 히브리인과 탈레스(Thales)에게 세계의 시작인 것 처럼 사막은 고대  아랍인들에게는 세상의 시작이었다. 사막에서, 그리고 척박한 땅에서  세계 3대 종교가 출발했다. 기독교가 팔레스타인에서 불교가 인도에서 그리고 이슬람이 아라비아 반도에서 시작되었다. 사막을 건너 본 사람은  온 사방이 막혀 있음을 본다. 멀리 신기루처럼 사막의 헛된 모습이 떠오르고 이따금 오아시스만 군데군데 있을 뿐 길도 이정표도 없다. 그곳에서 오로지  하늘을 우러러 보아야 했다. 하늘에는  하나님이 계셨다. 이것이 곧 이슬람의 출발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늘에만 계시지 않았다. 인간이 이해할 수 있도록 인간의 몸을 입고 내려온 사람은 예수였다.


  사막에서 사는  베드윈이 도시와 마을에서 사는  대부분의 아랍인들과는 매우 멀리 떨어져  있었고, 도시 사람들에게는  여러 세대를 통해  베드윈의 가치관과 이데올로기가 크게 확산되어  보였다. 이것은 아직도 아랍인들의  마음에 베드윈이 변함 없이 우위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막과 사막에 사는 사람들의 관습이 아랍인들의 가치관과 관습이  아랍인들의 마음에 우위를 차지하고 예는 많다.


  물론, 다른 아랍도시에 사는  사랍도 마찬가지이지만,  그 중에도 시리아 다마스쿠스의 명문가정의 예를 들  수 있다. 그들은 자녀를 1년 내지  2년 동안 시리아 사막에서 사는  낙타를 기르는 부족에게 보내 베드윈의 가치관과  태도, 심성과 경험을 배우게 한다. 젊은이들들에게 그 나라  전통에서 가장 좋고 고귀한 것이 무엇인가를  알도록 하는 것이다.  아랍 도시에 사는  젊은이들은 베드윈에게 순화된 아랍어와 품위 있는 태도와 습관을 배운다.


  이상적인 아랍인으로 간주되는 베드윈을  찾아간 사람들로는 중세 때 특히 문법학자와 무슬림 법학자들이었다. 법학자는  베드윈의 선례를 중시하여 법적판결을 했고, 문법학자들도 베드윈의  어법에  맞춰 문법규칙을 정했다. 아랍의 많은 가정들이 전통을 이어가고 조상의  가계를 지키는 것은 베드윈들의 미덕에 대한 향수를 가진 까닭이다.  이런 전통을 지켜 나가는 것은 대도시나  소규모 읍에서 사는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장인(匠人)이나 근로자로 그럭저럭 살아가는 사람들은 베드윈의 전통을 열심히 정성껏 지켜감으로서 사회적인 지위 같은 것을 갖는 것으로 여겼다. 가난하면서도  베드윈의 전통을 지킨다고 하는  자부심과 긍지를 다진 셈이다.


  3000년 동안 사막은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베드윈들은‘사막의 배’라는 낙타와 공생하며 그들이 살아온 생활방식에는 변화가  없었다. 사막에는 베드윈의 자신의 성스런 전통을 지킬수  있었고 언어의 순수성, 혈통의 순수성, 그리고 지구상에는 인간에게 가장 혹독한  것으로 알려진 사막에서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적응력을 키워 갔다. 그런 과정에서 매를 사냥하고 강렬하고 급한 성격, 그리고 튼튼한 근육과 뼈대를  가지게 되었다. 그의 생활은 혼수상태에 있는  사람처럼 거의 활동이 없다가  격분된 성향의 분출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길게  띠처럼 두른 셔츠 위에 길이가 같은 외투를 걸쳐 품위  있는 귀족풍의 풍채를 과시했다. 그의 머리에는 늘어진 천을 대고  그 위에 두꺼운 끈으로 된 왕관을  둘렀다. 이런 의상은 오늘날  아랍시장에서 매우 비싸게  매매되는데, 보기에도 매우  품위 있어 보인다.


  베드윈의 가치관에 대한 논의는  베드윈의 기층을 이루는 사회를 실펴보는 것이 좋다. 베드윈 사회는  아직도 존재하고 있고, 이슬람 이전부터 지금까지 여러 기본적인 사항이 거의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아직도  그 때와 동일한 구조를 이루며 동일한 내적  역동성을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종교적인  상황에서 이슬람 이전의 특징을 그대로 보존해 오고 있다.


  베드윈은 부계사회이고 족장사회이며,  혈통에 바탕을 두고 세워진  강력한 혈통중심의 사회 속에서 산다. 베드윈 사회의  기능적인 사회단위는 ‘이도하는 무리’이다. 공통된 조상을  모시고 사는 많은 대가족이 함께 캠프를  치고 가축이 먹을 초지를 찾아  떠난다. 그러므로 자연히 동족 혼인과 강한  응집력으로 뭉쳐 있다.


  사실 베드윈들은 이렇게  무리를 지어 다니다가 소부족을  이루고, 소부족들이 모여 부족을  이루며, 부족들이 가끔은 부족연합을  이룬다. 좀더 커지면 사회가 형성되는데 대가족과 무리를 이루는 단위가 되었던 혈통집단을 벗어나면 권력구조가 없어지고 권위나  보호막도없어진다. 사막에서는 개인과 그가  속한 혈통집단이 그 밖의 다른 집단과  대항해 주었으나 그 영역을 벗어나면 도움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집단의  결속을 강화시켜 주는 품성은  성인이 되어서도 긍정적인 가치로 간주되어 격려하고  북돋워 준다. 그리고 이 성품은 성인이  되어서도 하나의 이상으로 지지받고 인정된다. 반대로 어떠한  경우라도 집단의 결속을 해치는 성격은 결점으로 간주되어 어린시절부터  벌을 주거나 그런 일을 더 이상 못하게 하며, 개인의  삶을 통해서는 강력한 비난과  질책이 뒤따른다. 어릴 때 각 개인에게 이런 통제를 가하는 사람은 아버지와 어머니, 이모, 이모부, 형제, 자매, 사촌 그리고 대가족의 구성원들이다. 바로 이들의  집단이 사회적 단위를 이루어 캠프를 치고 무리를 지어 다니게 된다.


  여기에 익명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은 개별적으로 서로 알게  되고 이것이 곧 효과적인 사회적 통제를 하게 만든다.  어리면 어릴수록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은 매섭고  간섭하는 이는 많아진다.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그가 따라야 할 사항들이 점점 작아지면서 그를 따르는 사람의  수는 점점 많아진다. 다시 말해서, 나이가 들수록 여러 종류의 압력을 더 많이 받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 앞에서 모범되게  행하든지 그 집단의 도덕적  규범과 집단이 지향하고 있는 가치를 면밀히 지켜야만 한다. 


  베드윈 사회에서 가장 많이 인정받거나 비난받는 성품은 무엇일까? 그것은 집단의 결속을 돕고 이를 부추기는 성품은 집단의 생존에 걸려 있으므로 인정받는 긍정적인 성격이고 그 반대는 부정적인 성품에 해당된다.  이 둘은 짝이 되어 따라다니는데 이를테면 용감성(하마사,  Hamasa)은 비겁과 짝이 되는데,  개인적인 위험이 어떠하든  간에 집단을 방어하기  위한 용기는 장려된다.  그래서 하나의 사회에서 어떤 집단은 다른  집단의 희생물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용감^36^비겁의 짝과  더불어 공격^36^화평 그리고 남자다움(무루와,  muruwwa)^36^온순함이 짝이 된다. 각기 두 짝들 사이에 중요한  차이가 있는데 용감성은 절대적인 가치로서 용감한 행동은 어느 상황에서나 남자들에게  요구된다. 그 반대로 비겁함은 단호하게 많은 사람에게서 멸시의 대상이 된다.  그러므로 남자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비겁함을 보여서는 안 된다.


  반면에, 공격성은 그가 속한 집단의 밖에서만 요구된다. 집단 안에서의 공격성은 질책을 받게 되고  집단 내에서 공격을 범한 자는 문제아로  찍힌다. 다른 집단에 대해 자기가 속한 집단의  권리를 방어하지 못하면 이럴 때의 화평은 부정적인 성품으로  간주된다. 평화를 중재하는  사람은 높이 평가되어  집단 내에서 중재를 맡아  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한다. 이것으로 인해  무함마드가 이슬람을 일으키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무함마드가  메디나 부족 간의  다툼에 중재자로 초청되어 가서 그가 세웠던 것이 새로운 사회,  즉 이슬람 공동체(움마, Ummah)였다.


  집단 내에서 공격성은  비난받지만 화평은 항상 바람직한  것으로 칭찬받는다. 베드윈 사회에서 자주 발생하는 ‘피의 복수’가 있다.  만약 집단 내 어떤 사람이 다른 집단원에게 살해당했다면  희생자의 친척은 그들 집단의 힘이 약화되었음을 고통스럽게 여긴다. 명예가 훼손되었다고 생각하며  피해 입은 집단에서 노골적인 감정적 반응을 한다. 이 때 희생당한  집단의 모든 남자는 복수에 가담해야 할 의무가 있고, 이들 남자들은 각기 5인조 집단(다섯 명의 남자 친척으로 구성된 남성 친척집단)에 속하게 된다.  만약 복수자가 살인자를 찾지 못하면 상대방 살인자의 5인조 집단에  속한 사람이면 아무나 피의 복수의 합법적인 표적이 된다. 물론, 희생자의  5인조 공격요원이 적극적으로 움직인다.  그들은 살인자를 찾아 나서고 부족법에 규정된  대로 살인자를 복수할 계획을 세운다.

 

  반면에, 희생자 가족 중에 화친요원(대개  나이든 사람들)은 두 집단 간의 혈통상  가장 먼 집단에서 한 분 이상의 존경받는  자도자를 찾아 나서 그로 하여금 중재를 맡긴다. 이처럼 피의 복수의 중재와 베드윈 윤리의 특징이 된다. 만약 살인자가 사형에 언도되어  처벌받으면 복수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피가 피를  부른다(Dam yutlub dam)."는 아랍  속담이 있다. 보복이 이루어  지거나 화해가 되어 적절한 보상이 이뤄지면 희생자  가족의 명예가 회복된 것으로 본다. 그러나  피의 복수가 냉혹하기 때문에 타집단을 급습하여 경제적인 이득과 아울러 재미도 얻는 경우가 있다. 피를 뿌리는 것보다  급습(가주, ghazw)함으로써 양측이 피의 복수를 피할 수 있다.  급습의 목적은 상대집단의 가축을 가능한한 많이  강탈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  집단의 가축을 늘리고 상대집단의 가축을 감소시켜  적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사막에서 가축은 생계의 기본이  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지만, 너무 많이 강탈하면  아예 상대집단이 전멸할 우려가 있다. 그러므로  급습도 엄격한 규칙에 따라 이루어 져야 했다. 베드윈의  윤리 가운데 또 하나의 적극성과 소극성이 있다.  전형적인 베드윈의 생활은 비교적  오랜 기간의 소극성(피동성) 뒤에 급습에서 나타나는 광란적인 적극성(능동성)이 있다. 베드윈의 성격은 갑작스럽게 불끈 성을 내다가 쉽게 폭력으로 심지어 살인으로 치닫는 경우가 있는데 그 후에 후회와 오랜 기간의 무기력과 무감각한  상태가 지속된다. 이 점은 오늘날 아랍인의  싸움에서도 역력히 나타난다.  그래서 아랍인의 성격을  가늠해 볼 수 있는 것이다.
  
  베드윈의 미덕
  
  베드윈의 미덕에는 환대, 관용, 용기, 명예, 자존심 등을 든다.
  
  환대


  유목민의 환대의 역사는 성경시대  그 이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가장 큰 보상은 그의  지극한 환대 때문이었다. 창세기 제18장에서 나타나듯,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보낸 방문객을 맞아  전형적인 근동의 친절과 환대를 보여 주었다.  그리고 아브라함과 하나님, 그의 늙은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겠다는 약속을 받는다.


  오늘날 아브라함의  후손인 베드윈의 환대는 자주  사람들에게 오르내리고 있다. 아주 가난한  베드윈 조차도 환대는 자랑스럽게 보여 줘야할  고귀한 미덕이다. 그래서 아랍인의 풍속 가운데서 오늘날  가감이 되었을지라도 매우 인상적으로 남아 있는 것은 환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동안 학자들의 연구에서 집단을 강화시키는 데  필요한 요소 중에서 환대의 역할이 과소평가되어  왔다. 모든 것을 아낌없이 베풀어서 얻은 명성 이외에도 그의 관대한 태도로 맞이하는 그들의 태도에서  말없이 지지를 보내는 고객을  얻을 수 있었고, 때로는  부족 간의 분쟁에서도 환대로 인해  정치적인 동맹으로 이끌 수 있었다. 다시  말하면 환대는 베드윈의 여타 미덕처럼  궁극적으로는 베드윈의 생활 즉 집단을 강화시키는 데 더 큰 목적이 있었다.


  베드윈의 환대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그저 추측만  무성하다. 다만 사막에서 급박하게 필요로 하는 것에 반응하다 보니 그것이 발전되었을 거라는 추측이 있을 뿐이다. 이를테면 어느 한  개인이 그의 친척과 부족의 보호망을 등지고 떠나면  그의 생명은 아예  내놓는거나 진배없었다. 친척도  없고 보호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 가인의 울부짖음이 잘 묘사되고 있다.


  “내 벌이 너무 심해 견딜 수 없나이다.  주께서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오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창세기 4:13^36^14).”


  베드윈에게 환대라는 보호처가  없었더라면 사막에서 모든 아랍인들은 유리하거나 방황하게 되었을 것이다. 환대의 규칙에  따라 방황하는자는 대접받는 손님이 되고 대접하는  사람은 그의 목숨이 위태롭더라도 끝까지 보호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방인이 그를 방문하였을  때 그를 환대하는 것을 거절하거나 손님으로 맞아들인 후에 해를 끼치는것은 집단의 맹세와 기존의 도덕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보호자이신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 된다.


  환대의 규범이 너무  분명하고 광범위해서 그들은 가끔  손님을 위해 더 많은 희생을 요구받는다. 친족의 살인자를 복수해 주는  것을 신성한 의무라 생각하는데 환대가 신성한 의무 이상의 것이 되고 마는  수가 있다. 그 규범이란 것이 손님을 텐트로 맞아들여  그를 보호해 주고 일시적인 피난처가 되어  주어야 하나, 가끔은 집주인의 합법적인 피의 복수의 희생물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아랍세계의 외딴 지역에서는  여성의 성적 불가침을 이보다 더 중요한 환대의 책임을 위해  양보하기도 한다. 남부 아라비아에서는  최근까지도 성적인 환대가 관습으로 내려오고 있다. 사막에서 사는  사람이 가난 때문에 손님에게 3일동안 휴식처를 주고 음식을  제공하는 숭고한 환대의 의무를 저버렸다는 핑계는 있을 수 없었다.


  사막의 풍속 가운데 전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우리가 어리석다고 생각할 정도로 탕자에게  환대를 베푼 어느 베드윈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그는 바니 힐랄 부족의 영웅 아부  자이드이었는데 그가 환대의 의무를 실천하려고 손님에게 차례차례 그의 낙타를 잡아 고기로 먹게  했고, 그는 나중에 굶주리게 되었다는 유명한 일화이다. 그래서  그의 종족이 그의 행동을 높이 평가하여  그 후 다시는 환대라는 이름으로 그의 낙타를 희생시키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낙타 몇 마리를 더 주었다. 그러나 그의 과도한 환대로  인해 낙타의 수는 점점 줄어들었고, 이제 마지막  한 마리만 남게 되었다. 며칠 후  그가 텐트 앞에 앉아 있는데 멀리서 이방인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는 이방인을  손님으로 모시지 않으려고 텐트 속으로 몸을 숨겼으나 그의 성품을 숨기지  못했다. “손님이 다른 텐트로 들어가지 않았소?”라고 그의 아내에게 묻고 나서 아내가 서 너 번 거절하니까 끝내는 참지 못해 손님을 맞아들여 마지막 낙타마저도 희생시켰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착민에게 환대는 어느  정도 유동성이 있어 마을과 도시의 가정에서는 사막의 유목민 텐트에서처럼 그렇게 개방적이지도  않았으며, 성의 구분도 너무 엄격하여  심지어 방문객을 역겹게  하기까지 했다. 그들에게도  환대가 일생 동안 실천해야 될 덕목이었으나  개인생활의 특별한 행사에 맞춰 환대가 요구되었다. 이런 행사에는 혼인,  장례, 할례와 집들이, 그리고 라마단달 동안 마을 단위로 방문객을 대접하고  가난한 이들을 돌보는 것이었다.  유목민이든 정착민이든 간에 환대는 명예,  더 낫게는 체면과 유기적으로 관련되었다. 환대를 아낌없이 한다는 것은  그의 얼굴을 희게 한다는 것이다. 아랍인들에게  흰색의 얼굴은 가장 잘생긴 얼굴이고 얼굴이  희어졌다는 것은 그의 명성이 드높아졌다는 뜻이다. 만약 방문객이 환대를 받지 못하면 전부족과 마을에 알려지게 되고, 그 부족에게 먹칠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환대하는 고귀한 관습은  자신의 얼굴을 희게 하기 위한 개인의 소망일 뿐만 아니라 그와 그의 가족이 속한 사회집단의 평판을 드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요르단 계곡의 동쪽  끝에 위치한 ‘쿠프르 알마(Kufr al^36^Ma)'라는  마을에 가면 “이 마을에서  하룻밤을 묵고 싶은 방문객은  마을에서 가장 부유한 집을 찾아가라.”는 말이 있다. 가장 부유한 자는 마을의 이름을 빚내기 위해 그가 실천해야 할 의무가 환대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관용


  베드윈의 생활을 살펴보면 가장  특징적이고 독특한 덕목이 환대이고 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덕목은 관용이다.  즉, 환대는 더 일반적인 관용의 가장 독특한 표현인 것이다.  아랍 전통사회에서 넉넉하게  주는 관용은 부의  축적과 평형이 되게 하고 과도한 빈부의 차를 좁히는 데  기여한다. 관용은 부의 재분배를 가져다 주기 때문에  나중에는 이슬람에 들어와서 무슬림의  의무인 자카(가령, 연간 재산의 2.5%를 가난한 이들에게 분배)에 그 자리를 넘겨 주었다. 자카(종교세)는 이슬람의 다섯 기둥의  하나로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에게 종교적이고 법적인 책임을 다하게 하는  유일한 재정적인 책임이 되었다. 이런 이슬람의  규범은 옛 베드윈이 가진 관용의 미덕을 희미하게 보여 주는  데 그치고 있지만, 원래 관용은 유목민이나 정착민에게  공동으로 요구되는 미덕이었다. 그것은  하나님이 각 개인의 운명을 지배한다고  하는 믿음과 확신에서 직접 비롯된 것이다.  쿠란 제16장 71절에“알라는 어떤 사람에게 다른 사람보다 식량을 더 많이 주셨다.”즉, 재산의 불공평한 분배는 하나님 뜻의 표현이다.  이슬람의 이런 교리는 부자에게 가난한 자를 위하여  하나님이 우선 재산을 사용하라는 강한 압력이  되었다. 무슬림에게 인색하다는 말은 가장 많이 비난받게  되고, 금요일 모스크 설교에서는 이 점이 가장 많이 강조된다.


  환대는 관용과 너무 밀접하게 연관되어 가끔 두 용어가 같은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그래서 수단 아랍어에서  카람(Karam)이란 말은 관용과 환대라는 뜻을 지니고 있고, 실제로 이들 사이에 명백한 차이가 없다. 환대는 공동체의 찬성을 얻을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수단이며 사회적 존경을 얻기 때문에 자신의 자존심을 높여 주는 역할을 한다. 아랍인은 손님을  대접하는 태도에 따라 사람을 판단한다. 환대가 아랍인의  가장 귀중한 덕목이기 때문에 손님 앞에서  극진히 대접하는 것을 과시하고, 아랍인은 그가 행한 관용이  널리 퍼지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사정이 이러기 때문에  손님접대에서 아주 사소한  적이라도 세심하게 공을 들이게 된다.


  사람이 손님을 맞아 온 신경을 쏟고 공손한  대접과 음식, 음료수, 담배, 꽃 등을 손님에게 드리며 관용을 보여 주기에는 집보다  더 나은 장소가 없다. 그래서 베드윈은 대개 집으로 손님을  초대하는데 유대인은 집안의 모습을 외부인이 보면 영적인 것이 달아난다  하여 집 안을 공개하려 하지 않는다.  아랍인 중에 자존심이 강한 사람은  그가 가는 곳마다 관용이 따라다닌다. 그가  우연히 거리에서 친구를 만나면 한사코 집으로  가자고 하거나 그들이 있는 곳이 집에서 너무나 먼  곳이면 레스토랑이나 카페에 가자고  할 것이다. 만약 친구가  어떤 곳에 가야만 한다고 하면 자존심이 강하고 너그러운 사람은 그 곳까지 택시로 데려다 줄 것이다. 그래서  일부 아랍국가에서는 오토스톱이 가능하다. 길가에서 지나가는 자가용  앞에 손을 내밀고 세우면  대개는 집에까지 태워다 준다.  만약 버스 속에서 친구를 만나면  그들은 각기 상대방의 요금을  내 주겠다고 서로 주장할 것이다. 선물을 주고 돈을  아낌없이 쓰는 것도 똑같은 양상으로 나타난다. 쿠웨이트에서 무슨 일을 하려면 그들이 좋아하는 선물을 꼭 하라는 말이 있다.


  환대와 관용이 이처럼 중요한 덕목이기 때문에 민간의 관습은 이런 이상을 지키며 살 수 있도록 좌절하지 않게 도와  준다. 만약에 초대를 거절하거나 선물을 사양한다면 초청자나  선물을 준 사람의  의도를 묵살하는 예가  된다. 그러므로 전통적인 관습은 일단 초대를 받은  사람은 응해야 하고 선물도 주면 받아야 한다. 이 두가지를 거절하면 무례 또는  모욕이나 무시당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앞에서 언급한 모든 것이 쿠란의  내용과 다 일치하는 관습은 아니지만 가난한 사람과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는다는 데에는 자카도 한몫을 한다.


  용기


  아랍인의 개념에는 용기와  용감성을 구별하기 어렵다. 용감성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위해 자기 생명을 무릅쓰고 행하는 남자의 자발적인 행동을 말하며, 용기는 어떠한 시련이  닥쳐올 때 드러날 수 있는 어떤  표정이나 외마디 없이 자기 통제를 통해 육체적  고통이나 감정적인 굴곡을 견뎌 내는 능력을 이른다. 수단의 아랍인  중에 사춘기 소년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것  중에서 용기를 시험하는 예가  있다. 그것은 채찍을  맞거나 팔을 수숫대나  담뱃불로 지지거나 칼로 몸에 흉터자국을 낸다. 물론 수단 같은  경우 용기뿐만 아니라 부족의 표시로서 얼굴에 상처를 내기도 한다. 비슷한  목적으로 사춘기의 소년에게 육체적인 고통을 맛보게 한다.


이집트에서도 때리고 치고, 뺨을  때려 육체적 고통을 가하는 예가 있다. 소년에 대한 잔인한 육체적  체벌은 아랍국가 어디서나 드문 일이 아니다.  이와 맞물려 아랍국가에서 소년들에게  할례를 행하는  형태가 가지각색이다. 그러나  할례는 어디서나 소년의 용기를 시험하는 것으로 인식된다.  가끔은 이것이 결혼에 대한 예비시험으로 신부가 보는  앞에서 이루어진다. 가장 고통스러운  예는 사우디아라비아의 히자즈  지방과 아시르(Asir)지방에 사는 아랍부족들이  행하는 할례방법이다. 할례시 성기의 피부가 벗겨지고 복부와  넓적다리 안쪽의 피부가 절개된다. 이 때 젊은이들이 단호한  용기를 보여 줘야 하는데, 똑바로 서서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장검이 위아래로 휘둘러질 때  꼼짝 않고 서 있는  것이다. 할례가 이루어지는 순간에 신부는  신랑 앞에 서서 이를  지켜보면서 북을 치며 환희의 소리를 낸다. 만약 젊은 신랑이 훌쩍훌쩍 울면  신부는 결혼을 거절할 권리가 있다. 다른 나라에서는 할례가 덜 격렬하게  실시되지만 어디서나 용기를 시험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일방적으로  소녀들은 용감하지 않다고 인식되어  왔기 때문에 할례가 이루어지는 동안 기쁨을 마음껏 드러내는  일을 맡는다. 유대인에게는 난지 8일 만에 할례가 이루어지는데, 오늘날에는  이를 전담하는 유대인이 있어 외국인에게 돈을 받고  해준다. 성기 표피를 사과 깎듯이 둥그렇게  문지르며 하는데 8일째 되는 때가 고통이 가장 덜하다.


  아랍의 젊은이와 성인 남자에게 용기는 주로 외적으로 나타나는 문제이다. 즉, 아랍의 소년들은 용기 있게 행동할 수 있도록  사회화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표현하지 못한 채 불굴의 용기를 전시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그가  받고 있는 고통을 아파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외적으로 나타내 주면 그는 용기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과장된 행을 드러낼 때  그가 받을 욕설과 반작용을 두려워한다. 아랍인들이  이런 외형의 용기를 환상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은 그의 능력에 어울리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엄청난 성취를 가져다 줄  결과를 생각해서 그의 순간적 긴장에 의해 용기를 보여 주는 것이다.


  명예
  아랍인들의 명예(샤라프,sharaf)에 대한  것은 앞에서 많이 언급되었다. 명예는 강조하지 않아도 집단생존과의  강한 상관관계가 있다. 명예로운  행동은 집단의 결속과 생존에 유익을 주며,  집단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 준다. 반면에 수치스런 행동은 사회적 집단을 약화시키거나 위태롭게 또는 파괴와 손상을 안겨 주게 된다고 생각한다.


  아랍세계에서 명예는 여러 다른 형태를 포용하는  총체적 개념이다. 몇 가지만 언급해 본다면 첫째,  많은 자녀를 가진 남성의 정력에서 명예가  온다고 생각한다. 둘째, 어떤 일을 하면서  동시에 다른 일을 그만둘 줄 아는 것에서 명예롭다고 생각한다. 셋째, 베드윈이 낙타를 기르는 것은 명예스럽지만 장인이나 농업은 불명예스럽다고 말한다. 넷째, 무력과 관련된 것으로 적이 다가오면 용감하게 방어할 수 있는 능력도 명예라 한다. 그러나  부족에게 보호해 달라는 명분으로 뇌물을 주는 것은 명예를 심히 손상시키는 것으로 본다. 다섯째, 규정된 규칙에 따라 급습을 하는  것도 명예로운 일이다. 그래서 급습에 동참하지  않는것은 불명예로 간주한다. 급습자에 대항해서 가축을 지키는 것은 명예로운 일이다. 가축을 소유하는 자체가 명예롭기 때문이다. 

  환대와 관용은 명예의 문제이다. 융숭히 대접하지  않거나 너그럽지 못하면 수치스런 일이 된다. 부모가 순수한 아랍인 혈통을 갖는 것은 명예롭다. 친척 간에 강한 유대감을 보여  주는 일도 명예스럽다. 체면을 지키고 위엄  있게 행동하는 일도 명예스럽다. 그것은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그의  ‘얼굴’이 검게 되는 일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가 속한 집단의 체면은 물론 그의  얼굴을 하얗게 항상 유지해야  한다.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대중적인 이미지는 지켜야 한다. 개인의 명예에 치명적인  해를 끼친 자에게는 복수해야 하고,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영원히 불명예스러운  자가 되고 만다. 물론 여성이 갖는  성적명예도 있다. 그녀의 아버지  가정이 자신의 성적인 문제로 불명예스러운 처지가  될 위험성을 항상 가지고 있지 때문이다.


  명예는 개인으로부터 확대되어 가정, 부족,  그리고 국가에까지 이른다. 그래서 1952년 이집트는 종교법령(파트와, fatwa)을 내려 이집트 정부가 여성에 대한 태도를 현대화시키고, 20세기에 다른 국가에서 하듯이  이집트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응징하엿다. 이런  모든 종류의 명예는  분명히 아랍인의 삶 속에 두드러지고 여러 시대와 장소에서 갑옷과 같은 아랍인의 자아를 둘러싸고 서로 맞물려 있다.  갑옷에 있는 아주 작은 틈이 모든  끈과 고리를 느슨하게 할 때는 위협이 되므로 즉시 갑옷은 수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집단의 생존에 가장 많이 관련되는  명예 신드롬의 두 가지 요인은 정력과 친족애착 정신이다. 베드윈  세계에서 남자가 자녀를 많이 가질 때  특히 아들들을 많이 두었을 때  명예스럽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쉽게 설명하면 많은  자녀는 곧 남자의 정력이 세다는  증거이다. 정력은 다른 미덕이  짓밟혀지더라도 남자에게 받들여지는 주요 특징이  된다. 남자의 정력에 대해 비난이 쏟아지면  그는 그런 의혹을 없애려고 갖은  노력을 다한다. 남성의 발기불능은 아내가 주장할  수 있는 몇 가지 안  되는 이혼사유 중의 하나이다. 남편은 대중에게  그의 수치가 드러나지 않게 조용히  이혼에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사실이  아니면 그것을 입증하려 들 것이며, 이것은 전통적으로 내려온 사생활의 비밀을 포기하고, 공개적인 성적행위를 해야 할 것이다.


‘혐오의 집(바이트 알  샨아, bayt-al-shan'a)'을 사용하여 이웃 사람이  부부관계를 보고 들음으로써  이웃의 관찰과 그 결과가  결혼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다. 이것은 남편이  자신이 있을때만 하는 것이고 대부분 아직도  성생활의 비밀은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이처럼 남자에게 정력은 최고의 미덕이다. 이런 점에서 자녀를 많이  가졌다는 것은 남자의 명예와 이어진다. 그러나  자녀가 많다는 데에는 명예와 존경 그 이면에 더 깊은 뜻이  있다. 자손이 많고 그가 성적 능력이 강하다는 것은 그가  속한 집단에 직접 기여한다는 점을 빼놓을  수 있다. 베드윈 사회에서 모든 것이 동등할때  각 집단의 남자의 비율이 어떠냐에 따라 생존의 기회와 집단의 운명은 달라진다. 남성만이  급습에 참여하고 급습에 대항하여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집단의 생존이나 집단의 안전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여성은 세대를 이어  주는 역할을 한다. 그들이 낳은 남자아이들은  집단의 인력을 증대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베드윈들이 동족 내혼을 우선하는 까닭도 이런  생각에서 비롯된다. 여성이 자녀를 가지면 동족  내에서 길러지는데 그것은 모든 자연적인  증가와 세대교체가 동족 내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기 위함이다.

 

  사실  베드윈 사회에서 예외적으로 족외혼이  이루어지기도 하나 매우 드물다. 왜냐  하면 어느 집단의 여인에게서 태어난 아이는  부계전통을 따르므로, 결국 아버지의 집단에  속하게 된다. 그리고 어머니가 속한 부족의 집단과는 사실상 이방인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원리를 한 걸음  더 진척시켜 보면 가장 우선하는 혼인이 두 형제들 사이의  자녀 간에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그런 혼인의 진정한 의미는 모든  자녀가 동일한 대가족의 일원이 되게 하려는 것이고, 이로써  집단의 수효와 인력, 위세와  명예를 높이게 죄는  것이다. 그래서 젊은 청년은 그의 아버지  형제의 딸(이른바 아랍어로 빈트 암므, bint  'amm)과 결혼해야 할 권리와 책임이 있다. 이런 책임을  이행할 때만 그의 명예가 드러나게 된다. 즉,  부족 내 결속을 강화시키는  행동은 모두 명예스러운 행동인 것이다. 위와 같은 생각은 대가족 내에서 권위의 관계를 강조한다.

 

  가장의 명예를 가족 구성원들에게 그의 뜻이 얼마나  잘 먹혀 들어가느냐 하는 능력에 따라 달라진다. 가족 구성원들에게 존경받는 남자는 가족내에서는 물론, 가족 밖에서도 명예를 얻는다. 충성스럽게 순종하는 가족은 하나로  뭉쳐 강해지므로 다른 경쟁가족과 대항하여 가족의  이익을 보호할 수 있다. 그래서 명예는  집단을 강화시키는데 보조가 된다. 역사적으로 명예심은 집단정신과  매우 끈끈하게 연결되어 둘 다 ’가족정신‘또는  ’친족애착 정신‘이라는  아사비야(Asabiyyah)로 귀결된다. 무함마드가  이슬람의 정신과 위배된다고  하여 ’아사비야‘를 비난했지만, 끝내 이것을 아랍인의 의식에서 제거하지 못했다.  

 

  14세기 아랍역사가 이븐 칼둔은 ’아사비야‘는 인간사회의  기본적인 유대이며 역사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라고 했다. 이 용어의 본래  의미는 부족 간의 결속을 가리키는데, 그것은 부족 또는 부족의 하위단위를  함께 묶는 정신을 말한다. 두번째 의미가  명예심인데 친족집단에 공헌하는 명예심은 아랍부족사회에서  가장 필수적인 표현이다. 아사비야는 동료 부족 구성원에 대한 한없는 그리고  조건 없는 충성을 의미한다. 부족에게 충성하는  것이 남편이 아내와  이혼하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베드윈 부족사회의 특징이 되었던  아사비야는 유목민에게서 정착민으로 넘어오면서 가족과 가문, 혈통결속이라는 형태로 바뀌었다. 친족간의 유대와 주로 가족의 결속은 전통 아랍사회에서  매우 강했다.

 

  가족간의 유대가 얼마나 강한지  몇가지 예를 들겠다. 수단에서 아프마드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1985년 그는 한 달에 200파운드로 7식구를 부양했다. “짜증나지 않느냐?  공부는 언제 하는냐?”라고 물어도 그는 즐겁게 웃고만 있었다. 그 후  수단의 정치적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많은 수단인들이 이민이나 해외 근로자로 이민을 떠났다. 그들이  한 달 내내 번 돈을 모두 수단으로 송금했다. 또다른 예로, 1961년 레바논이 수출로 번 외화소득이 2억 3천만 파운드였는데, 이민자의 송금이  전체 외화소득의 40%에 해당하는 9천 2백만 파운드였다. 레바논인들의  호주 이주는 곧 국내 송금으로  동일시 되었던 것이다. 서구화된 아랍인 상류충일지라도 서구 보다는  아랍인 친족 간의 유대가 더 강하다.  아랍문화는 아직도  ’친족문화(kinship culture)'이며, 가족중심주의(familism)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자존심


  명예는 자존심과 매우 가까워 거의 혼동하기  쉽다. 어쨌든 아랍사회에서 인정받는 규범에 따라 행해지지 않는 모든 언행은 남성의 명예를 손상시키거나 심지어는 명예를 잃기까지도 한다. 다시 말하면 다른  사람의 눈에 비치는 그에 대한 존경심이 손상을  입었거나 무너져 내린것으로  생각한다. 결국 그  같은 결과로 그의 자존심을 건드리게  된다. 일단 명예가 손상되면 그것을 회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이  요구된다. 아예 명예가  땅에 실추되었다면 그것을  회복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명예는 가족의 전체를  대변한다. 만약 가족 구성원의 한 사람이 불명예를 초래했다면, 전가족이 불명예를 당한 것으로 본다. 이때 명예회복은 험한 바다에서 구비치는 파도를  헤치고 가족을 살려야 할 구명뗏목과 같다.  

 

  모든 가족 구성원이 행동규범을 잘 지키는 한 뗏목은  그들을 살릴수 있지만, 가족 구성원의 한 사람  때문에 생긴 제어할 수 없는  파도는 구멍을 뚫고 틈새를 만들어 모든 가족이 빠져  죽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족의 어떠한  구성원도 모두를 파국으로 몰고 갈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려면 남자  구성원들의 행동에 달려 있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행동에 과실이 없어야 한다. 남자들은 가족 구성원 중에서 여성들이 명예를 보호해야 하는 어려운  임무를 갖게 된다. 명예가 실추되면 품위(카라마, karamah)를 잃어버리게 된다. 이들 개념간의 관계는 도미노 이론에 의해 설명된다.  

 

  만약 어느 여성이 명예를 잃었다면 이것은  그녀가 속한 집단의 남자들의 명예를 실추시킨  것이고, 또 남자들의 기품을 잃게 한 것이며, 나아가서는 남자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한 것이다.  만약 남자들이 품위를 잃었다면 어떻게 할까?한  예로, 여성의 명예를 실추시키거나 명예를  위협하면 동족의 규범은 전통적인 치료방안을 내놓는다. 우선,  동족의 남성(아버지나 남자형제)이 그녀를 죽여야 한다.  그들은 가족의 몸에서 과오를 범한 수족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잘라 없앤다. 그래서  그몸이 회복되고 존속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그녀의 애인을  죽인다. 왜냐하면 그들 가족의 일원을 죽임으로서  피의 복수를 불러일으켜야 하기  때문이다.

 

  카람(karam:관용, 환대)은 다른 사람의  존경심에서 비롯되므로  남자가 모욕을 받으면  카람이 손상된 것이다.  이를 회복하기 위해 그 반응을 보여야 한다. 자존심이 강한  남자는 아무렇지 않게 그를 모욕하도록 가만두지 않는다.  그의 품위를 세우려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를  존경할 것을 강요하고 그럼으로써 그의 자존심을 회복한다.  자존심은 쉽게 다른 사람으로부터 손상될 수  있기 때문에 아랍인들은 상대방을 얕보거나 무시하는  행위, 심지어 고의적이지는 않지만  개인에게 모욕을 줄 수 있는 언행을  매우 조심하다. 이처럼 아랍인의 윤리는 하나의 초점, 즉 자존심, 자부심을 가운데 두고 그 주위를 회전한다.  이런 자존심을 지켜주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아랍인이 책임져야 하는 여성(달과  자매들)들의 성적행동이다. 여성들의 명예(이르드,  'Ird)가 중심적인 위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성들은  성적순결을 강요받으며 자란다. 아랍의 자존심이 관련된 또다른 요인은  용기-용감성과 환대-관용이라는 두 개의 신드롬이다. 자존심을 지켜야 한다는 직접적인 목적에서  벗어나더라도 이 모든 미덕은 자기가 속한 집단에  이익을 주고 궁극적으로는 공동체의 생존에 기여하게 되는 것이다.


  성적명예

 

  아랍세계에 있어서  성의 문제는 연금술사가 수련생과  한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연금술의 스승은  금을 만드는 복잡한 단계를 그의 수련생에게  설명한 후에 “이 전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여자를 생각해선 안된다.”고 말했다. 이러한 경고를 주의 깊게 들은  수련생은 그것을 마음에 두지 않으려고 했지만 그의 생각 속에서 스승이 금지했던 내용을 지워버릴  수가 없었다. 마침내 그는 금 만드는 것을 포기하고 스승을 찾아가서 불평을 털어놓으며 말했다. “선생님, 왜 여자를 생각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만약 그건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제가 그런 생각을 결코하지 않았을 거예요.” 라고 말했다 한다. 아랍의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성을  죄악시하는 생각을 자주  불어넣는다. 그리고 아랍문화는  이런 주제를 끊임없이 회상하게 하는 분위기 속에서 살게  한다.

 

  성을 분리시키고 여성들에게 베일을 쓰게 하며  남성과 여성 간의 접촉을  통제하거나 제한하는 모든 세심한 규칙은, 결국 아랍세계에서 성을 정신적으로 선점하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아랍인들이 생각하는 명예의  개념은 보통 한국 사람이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다. 그러나  한국 사람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아랍여성의  성적행위와 관련된 명예에 대한  개념을 이해하려고 할때이다.  한국사람 역시 아내나  딸이 강간을 당하여 다른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체면이 손상된 것으로 생각하지만 이런 경우에 이혼은 반드시 남편의 체면을 살리기  위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랍세계에서 친족문화에서 상황은  다르다. 그런 경우에 아랍인에게는  가족의 유대가 너무 강해서 가족의  모든 구성원의 체면이 손상되고 불명예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런  경우 여성이 관련된  사건과 여성이 관련되지  않은 사건과는 큰 차이가  있다.

 

  아랍세계에서 남자에게  가장 불명예스러운 것은  그의 딸이나 자매 또는 아버지의 형제가 낳은 딸들이 성적으로 몸가짐이 좋지 않았을때 생기는 문제이다. 아내의  간통은 아랍인 남편에게 감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뿐 불명예스럽다고 생각지 않는다. 아랍남성들이 명예에 대한  독특한 사고를 가지게 된 배경을 찾아보려면 아랍인들의 친족집단의 구조와 역동성을 깊이 분석해 보아야 한다. 부계에  의한 혈통적 관계는 결코  나뉠 수 없으며 개인의  생활 속에서도 결코 약화될 수 없다. 이것은 곧 다른  친족집단과 혼인을 하더라도 그녀 자신의 아버지 쪽 가정의  일원에서 결코 벗어날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녀의 아버지 쪽 가정이 그녀에 대한 책임을 계속  요구하기 때문이다.

 

  다른 쪽에서 보면 이것은 결혼한 여성에게 이로운 결과를 주는데 그녀가 어려서 결혼생활을 했을때 그리고 이들이  성년이 되어 그녀의 부양자가  되기 전까지는 매우 유익할 것이다. 그리고 남편가족의  바깥에서 맴돌게 되는 신혼 초에는 항상  그녀 자신의 아버지와 남자형제로부터 도움과 동정심을 받는다.  그녀의 뒤에서 버티고 있는 이들 남자들은  그녀가 필요할 때 그녀를 위해 싸워줄  것이며, 남편가족에게 제재를 가하기도 한다.  여성이 신임을 얻든지 불신을 받든지 간에  그녀의 아버지 가정에 영향을  주게 된다. 이로써 여성은 성적으로 경솔한  짓이나 전통적인 규례에서 어긋난 행동을 한  것으로 의심받지 않도록 끊임없는 책임의식이 요구된다. 남녀가 서로 결혼하기 전에 성관계를 못하도록  막는 가장 큰 억제책은 그녀의 딸들의 성적행동을  가족의 명예와 저울질해 보게 하는 것이다.  만일 딸이 성적으로 경솔한 짓을 하면  그녀의 아버지와 남자 형제들은 불명예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가족의 명예는 죄지은 여자를 처벌함으로써만이 회복될 수 있다.

 

  보수적인 가정에서는 그녀를 죽이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여성의 성적행위는 아랍어로 말할 때, 명예와 수치에 대한 용어와 구별된다. 성적인 경우가 아닐 때 명예는  아랍어로 샤라프(sharaf)라고 하고, 여성과 관련되어  특별히 명예를 말할 때는 이르드('Ird)라고 부른다. 샤라프는  남자의 행실 또는 말하고 행하는 태도에 따라 어느 정도 융통성이 있으며,  그의 샤라프는 회복되기도 하고 높아지기도 하며, 손상되거나 아예 잃어버릴 수도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이르드는 경직된 개념이어서 여성은 각각에게 속한 이르드를  갖는다. 그녀는 이르드와 함께 태어나서  함께 자라지만 이르드가  절대적인 것이므로 더  높이지는 못한다. 다만 여성은 그것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그래서 가벼운  성적범죄라도 여성에게 그녀의 이르드를 잃게 하는 것이며, 한번 잃으면 다시 얻을수 없다. 이르드에서 아랍여성의 육체적 순결을 정신적 개념으로  바꾼 것이나 다름없다. 처녀성과 이르드는 본질적으로 여성의 일부가 되어 왔으며,

 

  이둘은 더 보태질 수 없다. 이들을 잃어버리면 다시 회복할 수 없는 것이다. 이두 가지는 또다른 점에서 유사성이 있다. 여성이 강간을 당하면  그녀가 처녀성을 잃어버림과 동시에 이르드도 잃어버린다.  물론 두 가지가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는데 신혼 첫날밤의 순결은 합법적으로  잃어버리지만 이르드는 잃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숙한 여인은  이르드를 보존하며 그가 죽는 날까지 지키게  된다. 남성에게 샤라프는 거의  전적으로 가족 중  여성들의 이르드에 좌우된다.  사실 남자들은 용감성과 용기, 또는  환대와 관용을 베풀지 못했을때 그의 샤라프를  잃거나 감소가 된다. 그러나 남자들이 용감하고 너그럽게  베풀고 손님을 융숭히 대접하는 것을 어려서부터 배우기 때문에 샤라프를 잃어버리는  경우는 드물다.

 

  물론 위와 같은 것들을 남성들이 공개적으로 어기면 그의 명예는 잃어버리지만 전통적으로 제도화된 육체적인 처벌은 뒤따르지 않는다. 윤리적인 초점에서 벗어난 범죄, 이를테면 살인, 절도,  뇌물수수, 그리고 약속을 어기거나  비행을 저질렀을때 아랍인들의 의견은 다음과 같이 나뉘어진다. 첫째는  이런 행동도 남성들의 샤라프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고, 둘째는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성이 이르드를 범한 결과는 완벽하게 일치를 보인다.  그것은 곧 그녀가 속해 있는 집단의 남성들의 샤라프를  파괴한 것이다. 그러므로 아랍윤리를  배우는 학생들은 샤라프의 핵심은 여성의 이르드를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결론을 맺는다. 간음한 여자를 처벌해야 한다는 요구가 남편에 의하지 않고 아버지쪽 가족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은 궁극적으로 가족집단의 결속을  유지하는데 도움을 준다.

 

  만약 여성이 속한 아버지 쪽  가족의 일원이 아닌 남편에게 그녀를 처벌하도록 허락한다면 가족 구성원의  통제력이 약화된다. 그러나 여성이  처벌받아야 한다면 그녀의 아버지 쪽 가족은 가족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그녀를 죽이다. 여성의 할례에 관한 한 이론적 근거는 소녀들의 음핵절제를 함으로써 혼전 성관계를 막거나 성관계를 못하도록 봉쇄함으로써 순결을 지킨다.  이것은 이슬람 이전의 관습이고 사실은 헬레니즘  시대의 이집트에서 이루어졌다..

 

  이슬람 이전의 아라비아에서는 이런  수술을 무밧지(Mubazzira)라는 전문여자가 행했다.  이슬람 초기조차도 아랍부족에게는  혼인을 위해 이런 할례가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간주되었다. 여성의 할례는  아직도 다음과 같은 아랍국가에서 최근까지 실시되었다.요르단의  베드윈과 일부  소도시  사람들,  그리고 메카,  남부  아라비아의 주파르(zufar),지역과 오만, 이라크 남부의 부족들과 바스라시,  이집트의 부슬림과 콥트 기독교인, 사하라의  일부지역 등이고, 수단에는  이슬람 법학자들이 음부봉쇄를 반대하는 데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실시되고 있다.

 

  남성의  할례는 남성다움과 용감성, 용기를 시험하는 것으로 실시되지만 소녀들에  대한 여성의 할례는 심리적인 영향을 준다. 여성의 할례가 용기를 시험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용기가 여성들과 관련된 덕목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여성의 할례는 남성과 대조적으로 은밀하게 그리고  비밀로 행해진다. 수술은 소년들과  비교해서 소녀들에게 열등감을 주는 것으로 생각된다. 남성의  할례는 남자의 정력을 증대시키는 목적으로 이루어지지만 여성의  수술은 여성의 성에 대한 위협과 성적욕구와 여성다움을 없애는데 있다. 수단에서 행해지는 여성의  할례는 매우 잔인하여 그 충격이 너무 크기 때문에 수단의 소녀들이 영원히 무감각한 상태로 살지 않도록 여성 교육이 필요하다고  보는 이도 있다.

 

  여성이 간음을 범했을때  극형에 처하는 것은 이슬람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사실은 성경시대로 거슬러올라가면 간음은 불임을 유발시킨다는 생각으로 그 죄를 지은 사람이 속한 민족과 집단은 모두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운 땅에서 멸망할 거라고 하여(신 11:17) 중죄에 해당되었다.  고대 근동사회처럼 아랍사회도 부계사회,  족장사회, 일부다처사회이었기 때문에 남자는  성적으로 대단히 자유로웠다. 남자의  성적활동에 대한 제한은 자신의  부부생활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 이럼 상황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이슬람법에 의하면 법적제한이 네명의 아내를 거느릴수 있고, 그가 소유한 노예첩들과 성관계를 갖거나  다른 남자의 법적 관할하에 있지 않는  여인, 매춘부와도 성과계를 가졌다. 남자는 결혼해도 혼외  성관계를 삼가도록 기대되지 않았고 그가 성관계를 가지고 있는  여자가 성적 불명예 행위를 범했을 때만 그는 성범죄의 혐의를  받았다. 여성에게는 그 상황이  매우 달랐다.

 

   여자는 법적으로 혼인한 남편과 성관계를  가져야 했다. 그녀의 성은 결혼하고 있는  동안에는 남편의 독점물이 되었다.  게다가 여성은 그녀의 순결을 첫 결혼할  때까지 지켜야 해서. 그녀의 아버지 쪽 가족의 최고의무는 그녀가 처녀성을 지키는 것이다. 여성은  그녀의 성을 남편을 제외한 다른 사람이  즐기도록 허용하는 것은 가장 중대한  범죄에 해당하는 것이엇다. 베드윈 사회에서 성의  엄격한 격리는 있을 수  없었다. 유목민의 야영지나 목초지를 찾아 장소를  옮기는 동안에는 격리가 항상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다른  가족들의 남성과 여성들이 서로 만나보고 아는 체도 했다.

 

  널리 퍼져 있는 관습에 따라 젊은 남자는 자기 부족, 소부족, 가계안에 있는  소녀들과 혼인했다. 그런 경우  언제나 있을 수 있는 혼전 성관계를 엄중한  규율로서 강력하게 막아야  했다. 베드윈 집단에서  각 개인의 생활은 집단의 안녕에 이바지한다는 점에 주로  가치를 부여했다. 이것은 집단의 명예가 위태로워지면 집단의  일원의 생명을 희생시켜도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하다고 간주되는한(쿠란  4:34에서는 이것을 이슬람 이전의 생각이라함), 그리고 집단의 입장에서 볼때 여성의 주된 가차가 남자성 집단원의 실질적인 어머니 역할을 하고  있더라도 그녀가 여성다운 행실에서 벗어나면 그녀를 죽여야 했다.  

 

  아랍인의 동성연애에 대한 태도는 서구보다 훨씬  더 자유스럽다. 물론  대부분의 아랍세계에 동성연애와  그런 조짐은 성의  다른 표현들과 함께 결코 공개된  적은 없었다. 이것들은 개인의 사생활 문제인데다가  특히 쿠란 26:165~166에서 동성연애를 금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슬람 법학자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동성연애가 이루어지고 있는게  사실이다. 이 밖에 천일야화로 알려진 아라비안 나이트에서 혼전성관계가 자주 언급되고 있으면서 성문제에 대한 도덕적인  무관심을 여전히 드러내고 있다. 10세기 초와  12세기에 아라비안나이트에서 혼전성관계가 자주  언급되고 있으면서 성문제에 대한 도덕적인 무관심을  여전히 드러내고 있다.  

 

  10세기 초와 12세기에  아라비안 나이트가 퍼지고 있었을때 성문제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그 때 어른들은  아이들 앞에서 성문제에 대한 논의와 농담을 서슴지 않았고, 그로  인해 성에 대한 실제적인 태도를 가지게 되었다.  어쨌든 합법적인 혼인에 의한 성관계를 장려되고  혼전 성관계는 어떤 형태로든  금지되었다. 결혼 후에도 다른 남성과 몰래  정을 통하는 것은 매우 심각한 것으로 여겼다.

 

  성교육은 아랍세계에서 매우 빈약하다. 수단의 어느 초등학교  교실뒷면에 성기가 그려져 있었고,  각기 명칭이 곁들여 있었다. 그러나 여성의 성교육은 할머니나 고모, 이모에게서 듣는다. 이슬람 세계에서 성역할의 구분은 엄격하다. 나라에 따라서는 사무실 근무에  여성이 단 한 명도 없는 나라도 있고,  여성이 안쪽 한 구석에  자리잡은 나라도 있으며, 남자나 여자 모두 자유롭게 한  자리에서 일하는 곳도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남자의 역할은 바깥일 하는  사람으로 가족의 부양을 도와야 한다. 이것으로  남자는 사람들과 자유롭게 어울릴 수 있고 여러곳을 혼자 다닌 수도 있으며 가족 구성원의 주요 문제에 결정권을  갖는다.

 

  하지만, 여성들에게는 나들이와 초대에도 자유롭지 못한 나라가 있다.  여성은 항상 남성의 권위  아래 놓여 있다. 남자들은 여성을 보호해야 할 착임이  있으며 여성은 그래서 집에 있어야 할  사람으로 생각한다. 나라에 따라 여성이 돈을 관리하고  혼자 여행할 수도 있지만 같은 입장에서 남자들보다는 제한되어 있다.  여성은 일반적으로 가사를 책임지고, 하인이 아니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남자는 요리를 하지 않았다.

출처 : MyLove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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