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인의 기질
아랍인의 기질은 일반적으로 자존심이 강하고 감수성이 예민하다. 이와 같은 기질이 나타나게 된 배경은 아랍인이 전형적인 남성위주의 사회인데다 아랍어에 대한 긍지, 그리고 이슬람 시대의 영광을 자기의식의 근원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아랍인의 기질은 이슬람과 결부되어 있어 이슬람이 무슬림의 인간관과 우주관을 대변해 준다.
자신이 이슬람교를 믿는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하기 때문에 외국인과 첫 물음이 대개는 인사 후에 ‘무슬림이냐’ 다짜고짜 묻는다. 그것은 동질집단에 속한 사람인가를 묻는 것이다. 나와 같은 사람이냐를 묻는 것이다. 그러나 가끔 아랍\인들은 이슬람을 아랍과 동일시하여 아랍 민족주의와 혼동한다.
이슬람은 과거 속에 사는 종교이므로 과거의 영광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여 이슬람 초기로 되돌아가자는 의식이 깔려 있다. 더구나 19세기 말부터 아랍인들이 서구에 의해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건국되면서 서구 세계에 대한 반발은 더욱 컸었다.
그래서 이스라엘과 유대인에 대한 적개심은 대단하다. 아랍인들은 비 무슬림들에게 약점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쓰기도 하며, 때로는 하찮은 일까지 강하게 반응하는 경우가 있다.
아랍인들은 오랜 세월 외세의 지배를 받아옴으로써 ‘적대감’과 ‘복종’이라는 상반된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스스로 독립할 수 없다고 느끼거나 확신이 서지 않으면 자신을 굽혀 복종하고 어느 정도 상대가 된다고 느끼면 자만, 이기주의, 자기주의를 고집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부터의 작은 비난이라도 굉장한 모욕으로 여긴다. 또, 아랍인들의 개인적인 불안감은 그들의 성격을 친절과 의심이라는 양 극단으로 치닫게 한다. 이들은 과장된 친절로서 자신을 지키려 하므로 손님들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이 진정에서 나온 것인지 생각해 보게 한다. 그러나 무슬림은 이교도, 특히 기독교인에 대해서는 친절을 보이지 않는다. 순니파들은 이란을 중심으로 퍼져 있는 시아파들을 이단시하며 이들을 경계한다.
아랍인은 일반적으로 의심, 공포, 불안정,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을 갖는다. 의심은 개인이 자라온 과정에서 생기기도 하지만, 아랍인의 역사적 소산이기도 하다. 특히 서구인에 대한 의심이 많아 그들이 곧 지배해 버리지 않을까 하여 마음놓고 일하기 어렵다. 공포와 불안정은 미래에 대한 확신이 결여되고 남니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에 관심이 많다. 그들은 좋은 일 하려다 사회적인 비난이 쏟아지면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섣불리 좋은 일에 가담하려 하지 않는다. 아랍사회에서 단 한번의 실수나 실패는 가문의 큰 수치로 여긴다.
베드윈 생활에서부터 오랫동안 배타적인 생활을 해 온 아랍인들은 아집과 자부심이 강하다. 그래서 상거래에 있어서 설사 자기에게 손해가 있을 것 같아도 끝까지 거래해 보려는 아집을 보인다. 반대로 이익이 예상되지만 처음 거래에서 탐탁치 않았을 경우에는 거래를 하지 않으려 한다. 만약에 자존심을 상하게 되면 큰 손해를 입게 된다. 이를테면 상대방이 없는 곳에서 그를 비난하는데 그것을 본인이 알게 되면 자존심에 심한 손상을 입혔다고 생각하고 그를 끝까지 도와주지 않는다. 그래서 상대방의 자존심을 세워주고 전통을 인정해 주면 감사함은 물론 적극 도와준다. 자기들의 생활방식을 이해해 주는 사람과는 쉽게 사귀고 친구가 되지만, 남에게 동정을 바라지 않으며 자부심도 강하다. 아랍인들은 천성적으로 낙천적이며 행동이 느리다. 물론 요즈음 세상이 변하여 서두르는 경우도 있으나 옆에서 서두른다고 말하면 상대방은 수치감을 느껴 이곳저곳에서 자신을 흉본 사람을 공공연히 비난한다.
아랍의 여성들은 환성, 울음, 굉장히 큰 몸짓으로 감정을 표현한다. 아랍인들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시끄러운 곳을 좋아하며 찻집에 모여 오랜 대화를 즐긴다. 이들은 매사 바쁠 것 없다고 하면서 느긋하게 생활을 한다.
사생활의 공개를 싫어하므로 남의 비밀도 끝까지 지켜준다. 가끔 심한 농담을 하여 상대방의 감정을 상하게 하기도 하지만 자신과 의견이 부합되면 절친하게 대해준다. 그러나 대화에서 이슬람이 나오면 무조건 이슬람이 최고라는 논리를 펴서 그 분위기가 썩 좋지 않는 경우가 있다.
무슬림 아랍전통에서 ‘불신자 영역이 하나의 국가(al-kufra millatun wahidan)'라는 표현이 있다. 즉, 모든 무슬림(아랍인 포함)은 하나의 국가를 형성하고 모든 불신자들은 또다른 국가를 형성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이슬람의 지배하에 있는 지역을 다르 알 이슬람(이슬람의 영역)이라 하고, 비무슬림이 지배하는 지역을 다르 알 하릅(전쟁의 영역)이라 한다. 다르 알 하릅은 지하드(聖戰)을 해서라도 정복되어야 할 지역이다.
1945년 11월 2일 이집트 지도자가 발포어 선언 기념일에 데모를 할 것을 요구하자 데모대는 반유대인 폭동으로 변하여 카톨릭, 아르메니아 교회, 그리고 그리스 정교회까지 공격하였던 적이 있다. 이제 아랍사회는 폭력이 거의 불가피하다고 여긴다. 특히 하마스, 히즈불라 지하드 등의 이슬람 무장단체들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그대로는 살 수 없다는 생각에 빠져 있다.
아랍세계에서 어떠한 오명이나 치욕을 받을때 곧장 자제심을 잃거나 감정의 폭발로 치닫는 경우는 많다. 아랍인의 인성을 살펴보면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자제는 기대할 수 없다. 어느 정도 인내심을 보이기는 하는데, 그것은 사막이라는 자연환경의 탓도 있으나 혹자는 종교적인 원인에도 있다고 한다. 무함마드 언행록에 화가 날 때는 불을 끄듯이 세수를 하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화가 날 때 서 있지 말고 앉아 있으라는 것에서 상당한 자제심을 보여주는 격언이다. 재미있는 것은 자제심을 잃는 횟수가 잦다는 것인데 일단 자제심을 잃으면 성난 파도처럼 짧은 시간에 인격을 바꾸어 버리는 것이다.
만약 아랍인의 기질을 자연환경과 관련지어 본다면 사막에서의 와디(비가 올때만 생기는 골짜기)와 바위가 많고 좁은 협곡을 들겠다. 1년에 대부분 메마르고 죽어있던 사막에 비가 오면 갑자기 급류로 바뀌고 큰 바위를 굴리며 몰살로 인해 모든 것을 파괴해 버린다. 그리고 언제 있었냐는 듯이 몇시간 후에 재빨리 가라앉아 버린다. 아랍인들이 갑자기 화를 내다가도 금방 조용해지는 데에서 사막의 와디를 생각나게 한다.
아랍인들은 화가 날때는 소리를 높인다. 물론 시장에서 물건을 팔때에도 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감정의 상처를 받았을 때는 고통을 말과 소리와 제스처를 써서 표현한다.
불평을 털어놓을 때에도 투덜거리며 그가 당한 것을 표현한다. 죽음이 있을때 아랍인 문화는 감정의 폭발을 허용한다. 감정과 슬픔을 공개적으로 드러낸다. 여성들은 큰 소리로 울부짖으며 남성들은 비탄에 젖는다. 강한 충격이 왔을때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남성다움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분노에 대해서 아랍인들은 매우 민감하다. 그는 쉽게 불끈 성을 내고 격분을 삼가지 않는다. 일단 분노가 시작되면 격노는 한계가 없다. 가정내에서의 언쟁은 매일 일어난다. 시리아, 레바논 속담에 “끼니 때마다 싸움이오, 한 술 뜰때마다 걱정이다.”라는 말이 있다. 특히 군중이 모인 곳에서는 억눌렸던 감정의 고삐가 풀리기 쉽다. 고셔(Gauthier)는 아랍인의 감정과 생각을 한마디로 “극단의 공존”이라 표현했다. 이슬람 사회에서 요리, 의복, 언어, 건축, 장식, 음악, 문학, 시, 역사 등의 서양학문이 공존하고 무정부 유목사회에서는 독재가정이 공존하였다. 더구나 독재정부와 민주적인 도덕관이 하나로 혼합되어 있는 것이 무슬림 사회의 특징이다. 레바논의 사회학자 하마디는 ‘아랍인의 기질’에서 아랍인들은 사회적 감각이나 책임이 결핍된 채 자존심을 발동하고 있기 때문에 보편적으로 정부에 대해 반항적이고 협조정신이 부족하여 상호불신의 경향이 많다고 지적했다. 이슬람 사회에서 협동은 아직도 가족적 혈연적인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슬람 공동체
개인, 가족 및 사회 공동체는 사회생활을 영위하는데 있어서 기본 구성단위이며, 이 삼자간의 물질적, 인간적 상호작용 관계는 일찍부터 사회 과학자들의 연구대상이 되어 왔다.
오늘날 아랍 개개인과 그 가족 및 공동체도 오랜 역사를 통해서 문화적이고 종교적 전통을 지니게 되었다.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에서 한 아랍인 개인의 기질은 곧 다른 아랍인과의 공동체 속에서 영향을 주고 받는다. 인간은 수직적으로 신과 관계를, 그리고 수평적으로 이웃 동료와의 관계를 가지며 산다. 사회, 문화적 영역이 다소 수정된다면 그 영역은 이슬람 공동체를 형성하는 신자와 동료 신자간의 결속이 아니라 오히려 개인과 공동체 간의 고리라고 할 수 있다. 개인으로서 인간과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존재론적 현상에서 두가지 양상을 나타낸다. 즉, 신과 인간간의 수직적 관계와 인간과 사회간의 수평적 관계가 한 쌍을 이룬다.
사회, 문화적 실재를 나타내는 수평적인 경우에도 두가지 차이가 있다 .하나는 종교 공동체에 해당하는 신자들간의 상호 주관적인 개념으로서 순전히 이슬람적인 해석이다. 두번째는 구성원으로서의 여러 개별 신자와 종교 공동체간의 인과적인 관계가 있는데 이것은 서구사회에서 볼 수 있다. 이 중에서 첫번째 것을 택하는 것은 개인과 집단간에 존재하는 우선 순위에서 나온 것이다. 우선 순위 문제는 수평적인 축에만 제한된 것이 아니고 수직적인 축도 고려되어야 된다. 다시 말해서 인간보다 신을 우선하는 것이 종교의 원리이다. 결국, 공동체를 이루는 상호주관성이 이슬람의 특징이다.
움마는 실제 이슬람 신자들의 공동체이고 이들이 합쳐져서 상호작용하며, 다소 제도화된 산물이다. 움마는 무언가를 공유하는 생활양식이다. 무함마드식 움마는 무함마드를 통한 계시에 근거를 두고 무함마드의 생활을 모범으로 따르는 신앙 공동체이다. 무함마드 사후 칼리파들은 신자들의 공동체를 제도화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움마는 이슬람의 정치조직과 완전히 겹치는 것이 아니었다. 정치조직 안에서 움마가 구성되고 존속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 결과 움마의 제도화는 다음 두가지 특징을 가졌다. 하나는 자립, 그리고 자활의 움마인데 중앙 집권적이고 계층적인 조직이었다. 또 다른 하나는 움마을 조직화하려는 노력이었다.
이슬람 공동체의 초기 건설자는 아라비아 반도의 부족과 중동지역의 부족집단이다. 이 두 집단은 하나의 연속체를 이루었으며, 이런 친족 또는 부족집단은 움마를 조직하는데 상당한 역할을 하였다. 부족간 연합된 형태는 이슬람 역사에서 움마의 모양을 이루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다. 그리고 널리 퍼진 신비주의 종단은 각 지역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광범위한 조직을 만들어 갔다. 그래서 이슬람이 전파되는데 그들이 두각을 나타냈다.
가장 중요한 이슬람 공동체는 정기적인 집회를 갖는 모스크였다. 종교기금(와끄프, Waqf)에 의해 운영되었고, 금요설교와 비공식적 모임, 그리고 교육을 통해 무슬림의 생각들을 확산시키는데 모스크가 중요한 위치를 가졌다. 이슬람 역사상 많은 통치자들이 이런 사실에 유의하여 모스크를 활용했다. 오늘날에도 많은 정부들이 와끄프의 재산을 조정하거나 실제 관리하고 있으며, 이를 이용하여 짓거나 모스크 유지비로 쓰고 있다.
움마에서 제도화된 것은 아니지만 신자들에게 신앙고백과 결속이라는 두가지 상호활동이 있다. 움마는 공유된 무슬림 생활양식의 청사진이므로 같은 환경에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떠올리게 하고, 그들 간에 모델이 된 행동은 집단의 동질성을 확인시켜 주는데 유익했다. 결속은 공동의 단체에 속하고 있다는 동질성과 안전을 지켜준다는 의미가 있다. 결속은 서로를 확인해 주고 무슬림이 다른 무슬림의 신원을 보충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동료 무슬림의 신원을 확인해 주는 것은 자기 확인은 물론 신앙고백도 포함된다. 여기서 동료는 자신의 거울이 된다.
결속은 동전의 한면과 같고 다른면에는 평등성이 있다. 이슬람에서 결속은 모두가 평등하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결속의 방법으로 신앙고백이 존재한다. 움마의 실질적인 표현은 명절이나 평상시 행사에 서로 나타난다. 전자는 순례와 희생제 축일에 나타나는데 순례는 공동체 의식과 형제애를 고양시키는 행사가 되었다.
아랍인, 이슬람 그리고 중동
전 이집트의 대통령 가말 압둘 나세르(Gamal Abdul Nasser)는 그의 책 ‘이집트의 해방’에서 세개의 동심원을 그려 세계속에서의 그의 조국 이집트를 그려 보았다. 세개중 가장 가운데 있는 원은 이집트를 둘러싼 ‘아랍인’이라 정하고, 아랍인은 우리(이집트)의 부분이오, 우리(이집트)는 아랍인의 부분이라고 하면서 이집트의 역사가 곧 아랍역사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라 정의하였다. 둘째번 원은 아프리카 대륙이라 하였는데 지리적으로는 나일강에 의해 이어지고 지도자적인 책임과 아프리카인의 의식계몽을 위하여 이집트가 묶여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셋째번 원은 대륙과 대양을 잇는 믿음의 형제들간의 영역이라 했다. 그것은 곧 이슬람이라는 둥근원이었다. 그러나 문화적인 관점에서 볼때 나세르의 세 동심원 중에서 두가지만 언급할 가치가 있다. 셋째번 이슬람이라는 원은 의미없는 내용인 것이다.
문화적으로 이집트는 다른 모든 아랍국가처럼 수세기에 걸쳐 이슬람 세계뿐만 아니라 아랍세계에 속해 있다. 그러나 문화적 요인을 관련지어 볼 때 이집트나 지중해 연안을 끼고 자리잡은 어느 아랍국가도 아프리카의 일부가 아니다. 그러나 수단은 국가명 자체가 아랍국가이지만 그 위치가 또 명확하다. 그것은 수단의 삼분의 일인 남부가 아프리카에 속해 있고, 나머지 북부 삼분의 이는 문화적으로 인종적으로, 언어적으로 아랍세계의 일부인 것이다.
문화적인 관점에서 볼때 아랍국가들은 블랙 아프리카(Black Africa)와 공통점이 없으나, 만약 모든 아랍국가가 포함될 수 있는 동심원이 있다면 작게는 아랍세계와 크게는 이슬람 세계가 그 원에 놓일 수 있을 것이다. 이 원은 지리적으로 유럽, 블랙 아프리카, 중앙 아시아 그리고 나이지리아와 이어지는 중간지역으로서 문화적인 정의에 따른 구분이 되므로 이 중개지역이 중동이 되는 것이다.
이슬람이라는 동심원은 아랍인 무함마드가 세운 일신교에 바탕을 둔 세계종교이다. 몇십년 안에 이슬람이 승리를 가지게 된 것은 인류역사에 독특한 현상이 되었으며, 스페인에서 기독교에 무릎을 꿇게 되는 15세기까지 교세확장을 계속했다. 터키에서 이슬람 정권은 18세기까지 강화되었으며, 그 밖의 지역 특히 중앙 아프리카에서도 이슬람은 계속 확장되었다. 오늘날 인류의 오분의 일 내지는 육분의 일이 무슬림이다. 아프리카 대서양 연안에서 파키스탄까지, 그리고 중앙 아시아에서 사하라까지 인구의 90% 이상이 이슬람을 신봉하고 가까이에는 인도네시아가 단일국가로서 1억 5천만명의 무슬림이 있다.
무슬림 세계 안에 둘째번 원 즉 중동이 있다. 중동은 영국이 제1차 세계대전 중에 걸프지역을 일컬었던 말로서 미국도 종전 후 함께 써 왔는데, 지금은 학자마다 지역구분이 다소 다르다. 가령 북으로는 터키, 남으로는 오만, 서쪽으로는 이집트, 그리고 동쪽으로는 이란에 걸쳐있는 모든 지역을 통틀어 중동이라 하기도 하고, 혹자는 대서양의 모로코에서 북아프리카의 수단을 포함하여 터키, 이스라엘, 레바논, 시리아, 이라크, 아라비아 반도의 모든 국가들과 이란,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을 포함하기도 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 지역이 근동(Near East)에 해당하기도 하여 가끔은 ‘중근동’이라 부르기도 한다. 하여튼 우리가 익히 쓰고 있는 중동이란 말은 아라비아 반도를 중심으로 한 서남 아시아로 국한하여 쓰는 것이다.
이슬람에 의하면 세계가 두개의 영역, 즉 이슬람의 영역(House of Islam)과 전쟁의 영역(House of War)으로 나뉜다. 이슬람의 영역은 무슬림의 지배하에 있는 지역이고, 나머지 세개는 비무슬림의 지배하에 있으므로 강제로 정복해서 지하드에 의해 이슬람 영역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는 반면, 중동은 이슬람의 영역에 속한다. 무슬림 세계가 이슬람교에서만 그 정체성(Identity)을 찾고 있지만 중동은 종교가 아닌 문화적 개념이다.
중동은 문화적인 독특성을 특징으로 갖는 문화대륙인 것이다. 물론, 이러한 특징을 갖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이슬람인데, 이슬람만이 이들 민족을 중동이라는 카테고리안에 묶어 두는데 충분한 것은 아니다. 그 예로, 문화적인 관점에서 볼때 중동은 서쪽으로는 대서양까지, 북쪽으로는 지중해, 흑해, 코카서스, 카스피해, 그리고 투르크멘, 카자흐, 타지키스탄 공화국까지, 동쪽으로는 인더스강까지, 남동쪽으로는 아라비아해까지, 그리고 남쪽으로는 수단 영역까지 광대한 지역을 포함한다. 이들 중동지역에는 이슬람뿐만 아니라 크고 작은 기독교 공동체와 유대교 공동체가 있다.
터키와 모로코의 유대인, 시리아, 이라크, 레바논, 이스라엘, 요르단의 기독교인들이 교회를 가지고 있고, 쿠웨이트, 바레인, 아랍에미레이트에도 석유가 나기 전부터 기독교 교회를 가지고 있었다. 중동에서 비무슬림 소수 공동체의 존재와 중요성을 간과해 버리는 예가 종종 있는데, 상당한 관심을 가지면 중동에서의 이슬람 이외의 타종교가 여럿 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앞서 우리는 중동이 이슬람 세계에 의해 둘러싸여 있다고 했으므로 아랍세계가 중동에 의해 둘러싸여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아랍세계는 중동안에 위치한 핵이 된다. 지중해, 흑해, 아라비아해가 아랍세계는 물론 중동과 이슬람 세계와 인접해 있다. 그러나 북쪽과 동쪽으로 아랍세계는 터키, 이란,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과 같은 비아랍인이며 무슬림 중동국가들과 경계를 이루고 있고, 남쪽으로는 아프리카에 이르러 사하라와 수단 등에도 길을 열어놓고 있다.
아랍세계 자체는 지리적으로 두개의 부분으로 나뉘는데, 하나는 서남 아시아이고 다른 하나는 북아프리카이다. 이집트는 물론 서남 아시아는 주민의 모어가 아랍어라는 특징이 있고, 이집트의 서쪽으로 지중해 남쪽 해안을 따라 쭉 뻗은 북아프리카의 아랍국가들은 규모는 작지만 오늘날까지 베르베르어를 모어로 쓴다. 이집트나 아시아에 있는 아랍국가보다는 훨씬 활발하게 유럽어 특히 프랑스어를 식자층의 언어로 쓰고 있다. 아랍국가를 다섯으로 구분하면 첫째번은 지중해 남쪽해안에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 리비아, 이집트가 있고, 둘째번은 이집트의 남동쪽에 아랍국가 수단, 셋째번은 북동쪽에 있는 비옥한 초생달 지역으로 요르단, 레바논, 시리아, 이라크가 있으며, 넷째번은 동쪽에 아라비아 반도의 국가로서 사우디아라비아, 예멘 그리고 마지막으로 걸프지역이 있다.
그렇다면 아랍인은 누구인가? 앞서 말한 세 중심원에 해당하는 아랍인, 중동, 이슬람 중에서 첫째번과 셋째번만이 ‘아랍인의 의식’을 두드러지게 표현해 준다. 물론, 아랍인은 현대 아랍정치에서 자주 ‘중동’이라는 말과 익숙해져 있다. 주로 영어권과 불어권에서 쓰이던 중동이란 용어는 토착화된 용어가 아니기 때문에 아랍인들의 사고속에 문화적 개념으로 자리잡지 못한 것 같다.
‘아랍인(Arab)'이란 말은 이슬람 이전에 아라비아 반도와 시리아 사막에 살던 사람들을 가리켰다. 기원전 854년의 앗수르 기록에 의하면 아랍인들은 낙타들과 관련지어 등장하는게 확실한 것은 그들이 낙타를 기르는 사막의 베드윈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후 28세기를 거치면서 이제는 아랍인이 사막과 관련지어 생각되었다. 기원전 600년쯤 예레미야 3:2에 나오는 직유법’사막의 아랍인처럼‘은 이것을 잘 설명해 준다. 이보다 1세기 전에 이사야(13:20)는 텐트를 치는 아랍인을 가리키면서 그들이 사막에 사는 유목민이라고 생각했다. 이래서 아랍이라는 말과 베드윈(Bedouin)이라는 두 용어간의 개념상의 연관은 너무 긴밀하여 자주 아랍인을 베드윈이라 칭했다.
무함마드가 아라비아 반도와 시리아 사막 외곽지역으로 점령의 세력을 키워가면서 이때부터 ‘아랍’이라는 말은 둘째번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아랍인’이란 이슬람에 개종한 후에 그들의 조상의 언어를 버리고 대신 아랍어를 수용한 사람들을 가리켰다. 동시에, 새로운 영토에서 아랍인 정복자들은 그들 고유의 부족적 특징을 잃고 살았다. 그들이 도시 거주자가 되고 정착함으로써 새로운 국가에서 아랍인 정복자와 그 지역주민간에 있었던 초기의 차이는 점차 사라져 버렸고,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에 북아프리카와 서남 아시아에서 유일한 지배적인 인구가 되었다.
아랍과 서구의 많은 학자들이 아랍인은 누구인가에 대한 대답을 찾으려고 애썼다. 그만큼 아랍인의 용어규정이 어렵지만 이것이 곧 아랍인의 의식구조와 면면히 결부되어 있으므로 그 답을 몇 가지로 나눠 설명하려고 한다.
첫째는, 아랍인이란 아랍어로 말하고 아랍문화 속에서 자라났으며, 현대 아랍국가에 사는 사람으로서 무함마드의 가르침을 믿고 과거 아랍제국의 영광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아랍국가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꼭 그렇지 않은 사람도 아랍인이라 생각한다. 가령, 모어가 아랍어이지만 북아프리카의 프랑스 문화에서 자라는 사람들은 자신이 아랍인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다른 사람들도 그들을 아랍인이라 부른다. 또 비아랍국가에 살고 있는 아랍인도 있을 수 있는데, 이를테면 프랑스, 미국, 영국, 독일, 라틴 아메리카 등지에 살고 있는 아랍인들은 사는 곳은 다르지만 아직도 아랍인이다. 그들은 무함마드를 믿지 않을 수도 있다. 또, 수십만 명의 아랍인 기독교인이 있는 것을 보면 위 정의는 간단하지 않다. 아랍인, 기독교인이다 해서 무슬림만큼 민족애와 조국애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볼수 없기 때문이다. 또, 공산주의자들이나 또다른 이유로 아랍제국의 영광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는 부류도 있다. 더구나 이민을 가서 다른 나라 시민권을 가진 아랍인들도 있지만, 그들 역시 아랍인이라는 동질성을 버리지 않고 있다. 이 밖에도 이집트의 콥트 기독교인과 아랍국가에 사는 유대인들이 있다. 이런 이유로 더 나은 정의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두번째로 바그다드의 소설가이자 시인인 자르라의 정의를 제안하고자 한다. 자브라는 “아랍어를 자신의 언어로 말함으로써 아랍인으로 느끼는 자”는 누구나 아랍인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아랍인들이 각기 다른 정치체계속에 살고 있지만 별개의 국가나 국민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데에서 출발한다. 아랍인들의 사고에는 적어도 1세대 동안에 아랍 지도자들이 품었던 생각은 아랍인은 하나의 국가, 즉 아랍국가를 이룰 거라는 것이다. 지금은 여러 국가로 나뉘어 있지만 조만간 하나로 만들어질 것이며,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사고속에서 모든 아랍인은 형제요, 단일민족의 후손들인 것이다.
이런 사고는 곧 이슬람과 연관된다. 이슬람은 아랍인은 물론 비아랍민족을 보듬고 있다. 이런 점에서 아랍보다는 이슬람이라는 용어가 더 대의명문이 서게 되는 것이다. 거기에는 ‘전쟁의 영역’을 ‘이슬람의 영역’으로 바꿔 나가는 작업이 남아 있다. 그러므로 아랍인에게 이 두 영역의 의미는 내부의 평화를 이교도나 무신론자들의 국가에 심자는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 국가나 비기독교 국가에 자신들의 모스크(사원)를 짓거나 선교활동을 하면서도 자신들의 영역 안에는 타종교의 선교가 절대로 못 들어오게 하는 것이다.
20세기 들어와서 서구지배와 서구문물의 침투로 전쟁의 영역에 대한 개념이 전통을 고수하는 아랍인들에게까지 다소 시대에 뒤떨어진 개념으로 간주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위와 같은 전쟁의 영역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무슬림과 비무슬림 간의 차이는 매우 첨예화하였다.
아랍학자 클리포드(Clifford)는 아랍에 대한 서구의 개입의 결과로 아랍인은 점차 수심에 가득찬 시기심과 방어적인 자존심을 가지고 중세이교도에 대한 증오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고 하였다.
아랍세계와 무슬림 세계 사이에 역사적인 차이가 있음에도 아랍인들은 자주 아랍주의를 이슬람과 동일시한다. 원래 아랍민족의 종교이었던 이슬람이 아랍인을 동일시함으로써 둘 사이의 구별을 어렵게 만들었던 것이다.
4.인간과 자연
자연숭배
이슬람이 아라비아 반도에 들어오기 전에는 아라비아 반도 사람들의 습관 속에 오랫동안 전해 내려와 그 나름대로 믿고 받드는 토속신앙이 있었다. 토속신앙에는 자연숭배, 주물숭배, 주술숭배, 정령숭배(애니미즘), 무당신앙(샤머니즘)등이 있어 오늘날까지 아랍세계에 두루 퍼져 있다. 이러한 자연 숭배 중에는 한국의 곰과 호랑이 이야기에서 전하는 토테이즘이 이슬람 지역에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랍세계에서는 이슬람 이전부터 내려오던 자연숭배, 즉 어떤 자연물을 대상으로 실제 그대로를 의인적으로 생각해서 신으로 믿는 토속신앙이 있었다. 이슬람 이전의 자연신은 우상신으로 발전하여 유목민이었던 아랍인들은 별에 대한 신앙을 가졌으며 여기서 점성술이 발달했다. 자연숭배는 무생물과 생물, 자연생물과 인간 사이에 질적 구분을 못하는 원시신앙으로써 소위 물활론으로 설명된다. 오늘날까지 정통 이슬람(공식 이슬람)에서 카바의 검은돌에 입맞추거나 비벼대는 일, 순례의식의 끝에 면도를 하고 손톱, 발톱을 깎는 관습, 머리털과 손톱, 발톱을 성스런 땅에 묻는 관습은 분명히 물활론의 잔재이다. 머리털과 손톱, 발톱이 톡별히 영혼요소가 충만해 있는 것으로, 그리고 한편으로 영적교재의 통로로, 다른 한편으로는 적에 대한 치명적인 공격수단으로 사용된다.
아랍세계에는 자연숭배와 비슷한 것으로 주물숭배가 있는 데 주물은 단순한 힘을 가진 실물로서 기술적인 주술과는 구별된다. 쿠란의 구절을 몸에 지니거나 호부를 집에 비치함으로써 재앙을 물리치는 것으로 믿는다. 주물신앙과 상간관계를 가지는 주술신앙이 있는데 주술은 신비적인 힘을 원하는 대로 작용시키는데 틀림없는 능력을 가진다고 믿는다. 즉, 자기를 보호할 뿐만 아니라 어떤 대상을 저주하는 데에도 쓴다.
원시적 종교 중에 가장 보편적인 애니미즘도 아랍세계에 흔하다. 정령숭배의 특징은 자연물 그 자체를 숭배하는 자연숭배와는 달리 어떤 신앙대상인 물체든지 그 속에 실체로서 정령이 있어 이 정령의 존재와 활동을 믿는 것이다. 크게 보면 애니미즘에 속하는 샤머니즘은 아랍세계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에서도 무시 못 할 무당사상이 되었다. 그것은 이 샤머니즘이 영적세계의 긍정, 특히 인간영혼 존재신앙의 타당성에 그 뿌리를 두고 있으며, 또 직접적인 기복방법이 인간의 욕구충족에 크게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이상과 같은 물활론적인 신앙과 그 밖의 원시적인 신앙이 그 근원을 찾아 올라가 보면 이슬람 이전의 아라비아 반도에서 발견되고 더러는 정복된 나라에서 수입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애니미즘
민간신앙에서의 잡다한 신령에 대한 것을 애니미즘이라 하는데, 사물에는 영혼 등 영적, 생명적인 것이 두루 퍼져 있어 여러 가지 현상은 그것의 작용이라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 이슬람 이전에 아랍인들은 우상을 숭배했다. 아므루라는 사람이 우상숭배를 아랍인에게 전했다고 하는 설이 있는데, 그는 일부 우상을 샴지역(시리아, 레바논지역)에서 메카의 카바로 옮겼다고 한다. 우상으로 인해 아팠던 사람이 낫고, 비가 오도록 빌었으며, 적에게 이길 수 있도록 우상에게 빌었다. 쿠라이시 부족에게는 카바 신전 내, 그리고 신전 주위에 우상들이 있었다. 알 라트, 알 옷자, 마나트, 야쿠쓰, 야우크, 나쓰로, 왓드, 수와, 이사프, 나일라, 후발 등이 있었는데, 이중 후발의 규모가 가장 컸다. 후발은 붉은 홍옥수로 만든 사람의 형상으로 오른손이 부러져 있었다. 그래서 쿠라이시 부족은 금으로 그 손을 만들었따. 카바경내의 후발 앞에는 7개의 화살이 있었는데 그들은 새 아이가 태어날 때를 모르면 화살을 쏟았다. 이 화살 중에는 죽음의 화살과 혼인의 화살도 있었다. 싸움터네 나갈 때, 여행이나 일하러 갈 때 그들은 후발에게 와서 이런 화살을 써서 신탁을 구했다.
아랍인들이 숭배한 것으로는 후발만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라비아반도 전지역에 집, 나무나 돌 모양의 우상들이 널리 퍼져 있었다. 심지어 카바 주위만도 360개의 우상이 있었다고 전한다. 이렇게 우상이 많았던 것은 아랍의 부족들이 순례기간에 메카에 옴으로써 여기서 얻은 부를 잘 활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각 마을, 각 부족마다 특별히 숭배하던 우상을 갖고 있었고, 부족 전체의 공통적인 우상 이외에 메카에서는 각 가정마다 좋아하는 우상을 가지고 있었다. 각 부족들은 우상을 카바 주위에 놓았다. 그들이 메카에 오면 성지를 방문하고 나서 그들의 우상을 찾아 숭배하고 축성했다.
이런 우상 중에 마나트가 가장 오래 됐으며, 마나트는 심판의 여신으로 특히 죽음을 심판한다고 한다. 아랍인들은 그들 자녀의 이름을 ‘압드 마나트, 자이드 마나트’등으로 지었다. 이 우상은 메카와 메디나 사이의 해안가에 있었고 이 우상을 자랑하던 부족은 아자드, 아우스, 카즈라즈 부족이었다. 이 우상은 무함마드가 히즈라 8년 메카를 정복하러 갈 때 무함마드가 알리 븐 아비 딸립에게 부셔 버리도록 명했다고 한다. 알 라트 우상은 따이프에 있었는데, 그 의미는 ‘신’이란 뜻이고, 시리아의 옛 도시 팔미라와 나바뜨의 유적 속에 남아 있었다. 사각형의 바위 위에 이 우성이 세워졌는데 이 우상을 지키는 사람도 있었다. 아랍인들은 알 라트를 더욱 우상화하기 위해 그들 자녀의 이름도 ‘자이드 알 라트’로 불렀다. 알 웃자는 마나트와 알 라트보다 나중에 나타난 우상인데 메카에서 이라크로 가는 우측의 대추야자 관목 속에 있었다. 아랍인과 쿠라이시 부족은 그들의 자녀 이름을 ‘압드 알 웃자’라 지었다. 위와 같은 우상숭배 이외에도 아라비아 반도에는 다른 교파가 있었다. 그 중에 사비교도가 있었는데 이들 추종자들은 천체와 별들을 숭배했고 예멘, 하란, 이라크 고지에 퍼져 있었다. 상징적인 종교로서 그들은 세상에는 선과 악이라는 두 개의 힘이 있다고 했다.
선의 신은 빛으로 상징되고 악의 신은 어둠으로 상징되었다. 이 종교는 페르시아, 아랍의 동쪽, 특히 바레인 쪽에 퍼져 있었다. 우상을 숭배하던 아랍인에게는 많은 성지가 있었다. 그들의 신앙의 대상은 대부분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물론 그들의 조상들이 물려 준 관습, 풍습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그들은 이런 풍습을 가지고 따르는 데는 열심히었으나, 그들 자신이 직접 그 본질을 알려고 하지는 않았다. 아라비아 반도의 북부에 사는 우상 숭배자들은 다른 지역 사람들보다 훨씬 더 광신적이었고 샴 지역과 팔레스타인에 살던 기독교인과 접촉했을 때 더욱 광신적인 형태를 갖게 되었다. 이 같은 상황은 예멘에서도 있었는데 그들이 기독교를 믿는 에티오피아인과의 접촉으로 광신적인 사람들이 되었다. 아랍인들은 그들의 신들에게 사람을 제물로 바쳤다. 그들의 사당에 가기 위해 긴 행렬을 지었는데 히라에서는 금성(비너스 행성) 을 숭배하고자 많은 기독교인 포로들을 제물로 바쳤다.
시나이 반도에 사는 아랍인들도 이 행성을 위해 인간제물을 바쳤다. 이같은 일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도 아랍인보다 훨씬 전에 있었다. 아랍인들이 기독교인이나 다른 종교인들과 접촉하면서 종교적 열심을 불러 일으키는 데 큰 영향을 받았던 것 같다.
유대교인들은 이슬람 이전에 아라비아 반도에 특히 예멘에 퍼져 있었다. 그리고 또한 와디 알 꾸라, 카이바르, 키야마우, 야스립(후에 메디나가 됨)에는 유대부족이었던 꾸라이자, 알 나디드, 까이누까아 후손들이 살았다. 동양학자 뇔데케는 이 유대인들이 아라비아 반도의 주민이있는데 이들이 유대교를 받아들였다고 말한다. 그러나 다른 역사학자들은 아라비아 반도의 유대인들은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에서 이주했다고 주장한다. 아라비아 반도에 정착했던 유대인들은 토라(모세오경)의 가르침을 전하고 상과 벌에 대해서도 일러 주었다. 그래서 메카, 메디나 등 히자즈 지방에 사는 우상 숭배자들은 유대교의 영향을 받게 되었고, 이 중에 야스립에 사는 사람들이 가장 빠르게 이슬람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기독교는 아라비아 반도의 북부지방에 살았던 타글립, 갓싼, 꾸다아드의 세 부족과 남부에서는 예멘에 퍼져 있었다. 아랍인의 땅에 기독교가 들어오게 된 것은 4세기 동로마의 침입과 그들의 노력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많은 동조자를 끌지 못했으며, 아랍인과 비잔틴 사람들과의 밀접한 관계로 인해 아랍인들이 어느 정도 기독교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남부에서는 에티오피아를 통해, 북부에서는 시나이 반도와 시리아를 통해 수도원을 중심으로 퍼져 갔다. 아라비아 반도의 기독교는 네스토리우스파(이라크의 히라)와 야곱파(갓싼과 그 밖의 샵 지역부족)으로 나뉘었다. 아라비아에 살던 가장 중요한 기독교인은 나즈란(지금의 예멘 땅 근처)에 있었다. 나즈란은 땅이 비옥하고 상당히 문명화된 곳이었다. 주민은 농업, 비단직물, 피혁과 무기거래 등을 했다.
아랍의 우상 숭배자들은 자신들이 갖고 있던 우상숭배, 특히 나무나 돌에 정령(혼령)이 들어 있다고 믿고 초목이나 무생물 속에 깃든 정령을 숭배하는 정령숭배가 많았다. 더구나 물건을 신성시하는 주물숭배도 있었다. 민간에 내려오던 그들의 풍습과 토속신앙이 쿠란 속에 맹렬히 거부되고 있지만 이슬람을 믿지 않는 아랍인들에게, 그리고 심지어 무슬림들에게도 그들 조상이 가졌던 풍습과 정령신앙을 이어받게 되었다. 아직까지 무슬림들 자신에게 내려오는 종교적 관습으로는 순례 때 하는 싸파와 마르와 달리기, 미나계곡에서 사탄을 쫓는다는 의식의 돌던지기, 카바 신전 주의를 돌기, 기도전의 세정의식 등이 있다. 또, 이슬람 이전의 옛 성지나, 일상적 관습(할례, 여아 생매장, 화살촉과 깃털이 없는 화살로 낙타를 쓰러뜨리는 내기놀이등) 등이 부분적으로 남아 있다.
오늘날 무슬림들이 흑석에 키스하는 주물숭배는 여전히 큰 위력을 발휘한다. 흑석이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믿는 것은 무슬림들의 대표적인 주물숭배라 할 수 있다. 그들은 이를 금지하지 않고 미개종교의 원시신앙를 그대로 지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무슬림의 민속신앙이 되어 버린 것이다. 무슬림들은 오늘날까지도 할례(북아프리카에서는 여성에게도 할례시킴)나, 카바 돌기, 흑석에 입맞추기, 다른 성지방문등이 우상숭배의 점전적인 발전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그리고 이것은 아브라함의 신앙과 하등의 관계가 없었다.
무함마드가 아브라함의 신앙으로 그의 동족을 이끌려고 한 노력이 시작되었을 때 아랍인들에게는 종교서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들의 정령숭배나 주물숭배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사비교도, 유대교도, 기독교도가 아라비아 반도에 있었기 때문에 나중에 쿠란에서도 이들 세 종교를 진정한 신의 종교라고 규정지었다. 지금 사비교도는 사라져 버렸고 그들의 역사마저도 알려진 바 거의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찾은 자료에 의하면 사비교도들이 처음에는 시리아에 살았고, 셋과 이드리스의 신앙에 근거하고 있으며, ‘셋(아담의 셋째아들)의 문서’라는 책을 가졌다고 한다. 그 책에는 공의, 진리, 용감성, 가난한 자를 돌보거나 악을 피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들은 7번 기도했고, 그 중 5번을 무함마드가 선택해서 이슬람의 기도시간으로 정했다고 한다. 그들은 죽은 자를 위해 기도했고 밤부터 해뜰때까지 30일간을 금식했다. 또, 그들은 다섯 개의 별들이 질 때 축제를 지켰고 카바를 받들어 모셨다. 어찌됐든 간에 이런 사비교의 신앙이 대부분 이슬람에서 그대로 지켜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사비교는 이슬람에 자리를 넘겨 줌으로써 현재는 전혀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샤머니즘
샤머니즘은 초자연적인 존재와의 직접적인 교류에 의해 점복, 예언, 병치료 등을 하는 종교현상을 말한다. 샤머니즘에서 신령, 정령, 사령 등과 영적교류를 하는 능력을 가지고 치료, 예언, 악마제거, 공수 등을 하는 사람을 샤몬이라 한다. 흔히 우리는 무당 또는 박수라고 부른다. 영적교류를 할 때 황홀상태를 수반하는데 신령이 샤먼에게 옮겨오는 형과 샤먼의 영혼이 영계로 여행하는 형이 있다.
이슬람 이전부터 아라비아 반도에는 카힌이라 불리는 점쟁이가 있었다. 미래를 예언하거나 행운을 점쳐 주는 사람이었다. 당시 사람들이 무하마드를 점쟁이라고 하니까 쿠란 52:29절에서 ‘그대는 점쟁이도 아니고 미친 자도 아니다.’도 계시한다. 또, 일단의 사람들이 이슬람을 전하는 무함마드를 ‘거짓말하는 마법사, 마술사’라고 말한다. 무함마드가 계시를 받는 동안에 그는 신들린 상태에서, 즉 자기의식이 아닌 어떤 다른 자의 말을 했다고 무슬림은 말한다. 다시 말하면 무함마드 개인의 의견이 쿠란에 들어 있지 않다고 설명한다. 어떤 다른 자가 알라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쿠란은 신들린 상태에 들어간 무함마드가 황홀상태에서 되새긴 말들의 집대성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쿠란의 초기계시가 상당히 카힌에 의한 계시, 영적교류 능력을 지닌 샤먼의 인상을 강하게 풍기고 있다.
쿠란에는 또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존재, 진의 장이 있다.
1. (무함마드야, 사람들에게 말하라.) 한 무리의 진이 (무함마드가 쿠란 읽는 것을) 경청하고 쿠란의 정확함과 의미의 풍부함에 놀랐다는 계시를 받았다고 말하라.
2. 그것은 올바른 믿음으로 인도해 주는 것이니 우리는 쿠란안에 있는 것을 믿고 우리 주 이외에 아무 신도 섬기지 않을 것이다.
3. 그분(알라)은 위대하신 분으로 아내도 아들도 취하지 않았다.
4. 우리 가운데 우매한 자가 있어 알라가 아내와 아들을 두었다고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하는 이가 있으니
5. 우리(알라)가 생각건대, 인간도 진도 알라에게 거짓말하리라고 말하지 마라.
6. 인간들 남자들 중에 진의 남자들에게 도움을 구하는 자가 있으나 인간들에게 어리석음만 더해 줄 뿐이다.
7. 인간들이 사악한 대로 진들도 알라는 (죽은 후에) 아무도 부활시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8. 진들이 말하기를 우리가 하늘의 비밀을 도청하려고 하나 불타는 별과 (천사들의) 삼엄한 경비로 꽉차 있음을 알았다.
9. 우리(진)는 실로(보이지 않는)곳에서 앉아 도청했으나(엿듣곤 했으나) 지금 들으려는 자는 숨어서 그를 기다리는 화염을 발견하리라.
10. (도청한 후에)지상에 있는 자에게 어떤 재앙이 있을는지 아니면 그들의 주가 그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실지 우리(진)는 모른다.
11. (쿠란을 들은 후에)우리(진) 중에는 의로운 자도 있고 그와 반대인자도(의롭지 못한자) 있어 우리(진)에게는 무슬림과 불신자 등 여러 길이 있느니라.
12. 그러나 우리(진)는 이 땅에서 알라가 힘을 못 쓰게 할 수도 없고 하늘로 도망가서 알라가 힘을 못 쓰게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13. 쿠란을 우리(진)가 들었을 때 우리가 그것을 받아들였으며 그의 주를 믿는 자는 어떤 손실이나 부당한 대우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14. 우리(진)중에 무슬림도 있고 그들의 불신으로 정의에서 벗어난 자가 있으나, 그의 뜻에 복종하는 자(무슬림)들은 올바른 길을 가도다.
15. 그러나 바른 길에서 벗어난 자는 불타는 지옥의 연료가 되리라.
이상과 같이 무함마드가 쿠란 읽는 것을 진이 들었다고 했고, 진들 중에는 이슬람에서 보면 무슬림도 불신자가 있다고 했다. 더구나 인간의 무리들 중에 진에게 도움을 구하는 자는 어리석다고 6절에서 지적한다.
쿠란 제72장이 진의 장인데, 여기에서 진은 이슬람을 믿는 진과 믿지 않는 진이 있다고 말하다. 진은 인간을 방해하여 해를 주거나 도움을 주는 악령이다. 재앙을 가져오게 하는 존재라고 믿으며, 심지어 인간의 몸 속에 들어와 사람을 미치게 하는 원인이 된다고 보았다. 그래서 메카 사람들은 진에게도 재물을 바쳐 재앙을 막고자 했다.
예멘 지역 이외의 아랍인은 진이라는 존재가 가끔 여러 형태로 나타나 인간의 일상생활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나 대체로 해를 끼친다고 믿었다. 그래서 무함하드 자신도 최초의 계시를 받은 후 그 근원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오랫동안 의심했는데 그는 혹시나 진의 장난에 휘말린 것이아닐까 하여 고민한 나머지 자살까지 고려했다. 그러나 혹자는 쿠란 여러구절에 나오는 진이 암시하는 내용으로 보아 진을 어떤 하나의 혼 또는 악마이거나 보이지 않는 힘이라고 보기도 한다. 사람과 천사 사이에 진이라는 눈에 보이지않는 영이 있다. 진은 흙으로 만들어진 인간과 다르게 불로 만들어 졌으며(쿠란 7:12,55:14~15), 또 진이 원할 때는 사람의 형체를 가질 수도 있고 사람처럼 선할 수도, 악할 수도 있고 죄를 지을 수도 있다.
알라가 아담을 먼저 창조하고 그 형상을 만들어 준 후에 천사들에게 말했다. ‘아담에게 엎드려 절하고 경배하라.’ 그러나 오직 이블리스만 빼고 천사들이 엎드려 인사했다(수라 7:11, 18:50, 2:34). 그래서 이블리스는 신앙을 거부한 불신자(아랍어로 카피르, Kafir)로서 알라의 명령을 거역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블리스는 불에서 창조한 내가 흙에서 창조한 아담보다 낫다고(7:12) 대답했다.
이블리스는 진들 중의 하나이고(18:50) 진의 아버지이다. 천사는 빛으로 창조되었고 자손이 없으나 이블리스에게는 자손이 있다(18:50). 그래서 알라가 이블리스에게 네가 여기서 거만하게 되지 않도록 하늘에서내려가라고 하니 이블리스가 인간들이 부활되는 날까지 유예시켜 달라고 한다(7:14, 15:36, 38:79). 그리고 이블리스는 알라에게 올바른 길(이슬람)을 못 가게 하겠다고 한다(7:16).
이에 알라가 너희 중에 이블리스를 따르는 자는 모두 지옥을 가득 채우리라(7:18)고 말하고, 이블리스는심판의 날까지 저주를 받으리라고 말한다(15:35). 쿠란에는 사단이 아담과 이브를 유혹하여 영생의 나무와 불멸의 권한을 갖게 해주겠다고 말한다(20:120). 그러고 보면 여기서 사단과 이블리스는 같은 존재이다. 이블리스를 제외한 모든 천사가 아담에게 절했다고 쿠란은 전하고(20:116), 이어서 알라는 아담에게 이블리스가 ‘너와 네 아내의 적’이라고 말한다(20:117).
쿠란에는 다신교 숭배자(Mushirk)들은 알라가 아닌 알 라트나 알 웃자, 마나
트 등의 여자 우상을 섬겼는데, 이들은 곧 사단 즉 이블리스를 숭배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알라가 이블리스에게서 그의 자비(rahmah)를 거두어 갔다(4:117~118)고 한다. 쿠란 제72장에는 무함마드 가 쿠란 읽는 것을 진이 들었다고 했고, 진들 중에는 이슬람에서 보면 무슬림과 불신자가 있다고 했다. 더구나 인간의 무리들 중에는 진에게 도움을 구하는 자는 어리석다고 6절에서 지적한다. 무함마드는 쿠란 제114장에서 진과 인간의 유혹에서 오는 두려움을 적고 있다. 그러나 제72장 13절에 진들은 쿠란을 들었을 때 그것을 믿었다고 한다. 성경에는마귀(devil), 사단(Satan), 귀신(demon) 등이 언급된다. 사단과 마귀의 무하들이 귀신이다.
이상과 같이 진은 쿠란에서 두 가지 의미로 쓰인다. 하나는 감각으로 지각할 수 없는 어떤 존재인데, 이 존재들의 기원은 불로 알려진다(15:27, 55:17). 둘째, 불로 창조된 진과 이블리스(devil)는 인간보다 낫다고 말했다. 진의 기능은 쿠란 114장 4~6절에 잘 나타나 있는데, 그 내용은 사악한 사단의 악으로부터 인간의 가슴에 속삭이는 진과 인간의 유혹으로부터 알라에게 보호를 구한다는 것이다. 즉 진이 유혹한다는 것이다.
쿠란에서 사단은 인간에게도 적용되며 악의 우두머리가 사단이다(2:14, 3:174, 8:48, 15:17, 21:827). 그러나 진이 인간과 관련지어 사용될 때는 이슬람 이전의 아랍문학에 나오는, 즉 인간의 눈에는 숨겨진 존재로서 천사처럼 볼 수 없는 존재였다. 또, 이슬람 이전의 아랍시에서 진은 위대한 또는 용감한 남자였다. 또 아랍인들은 외국인이 그들의 눈에서 숨겨져 있으므로 진이라 불렀다(34:12, 13). 더구나 사단을 잠수부라 했는데(38:37), 그것은 바다에 잠수하는 자는 육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오늘날 많은 무슬림들이 성인(聖人)을 통해 용서를 구하는 것도 사실은 고대 아랍인들이 다신숭배에 기원한다.
다신숭배가 진에 대한 두려움, 마술에 대한 공포심에서 이루어졌고,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와 교류할 수 있는 존재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진은 알라와 인간 사이에 존재하며 아담에게 경의를 표하라고 천사들에게 내린 알라의 명령을 불순종한 영마(靈魔)이며, 인간보다는 위에 천사보다는 아래에 있는 영적 존재이다.
더구나 진은 먹고 마시고 종(鍾)을 번식 시키고 있으며 이슬람을 믿는 진은 무슬림의 모든 종교적 의무를 행하지만 이슬람을 믿지 않는 진은 ‘샤이딴(사단)’으로 불리는데 이런 진들의 아버지가 사단인 것이다.
사단은 예수님이 탄생했을 때 셋째하늘로부터 쫓겨났으며, 무함마드가 탄생했을 때 마지막 넷째하늘에서 쫓겨난 자들이라고 무슬림은 말한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도 가장 낮은 하늘로 엿들으러 가서 거기에서 얻은 내용을 가끔 인간 마술사들에게 보내 준다. 그러나 천사들이 그들을 발견하면 즉시 쫓아 낸다. 진은 자주 동물이나 인간의 형태로 나타나므로 향, 춤, 제사의식에 의한 귀신 물리기를 한다.
이 밖에 모든 인간의 발자국을 귀찮게 따라다니며 악을 행하도록 유혹한다고 믿어지는 까리나(Qarina), 쿠란의 구절을 부적으로 몸에 지니는 일, 어떤 쿠란 장은 귀신과 병을 막아내는 데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말하며, 쿠란경전 점(占)도 민속 이슬람에서 번성하고 있다. 더구나 신들린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한 의식은 순전히 물활론적이지만 현재 대부분의 무슬림 세계에서 특히 여성들 사이에 실행되고 있다. 더구나 무슬림들은 보호와 치료, 풍요 등을 얻기 위해 성인들이 자주 출몰한다고 하는 메카의 순례도 민간신앙에 근거한 것이다. 더구나 마귀에 의한 오염으로부터 정화가 필요하다는 세정의식은 이미 육체적 청결의 덕목에서 벗어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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