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내용!! 강해!!

[스크랩] 주기도문 강해 3 - 나라가 임하시오며

하나님아들 2013. 2. 16. 11:51

 

 나라가 임하시오며

마태복음 6:9-13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0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11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12 우리가 우리에게 지은 자를 사하여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동구 루마니아에는 살아 있는 순교자라고 불렸던 리처드 범브란트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언어학자이자 신학박사였던 범브란트 목사님은 나찌가 루마니아를 침공했을 , 가족을 모두 잃는 참변을 당했습니다. 그후 루마니아가 공산화가 되자 지하 조직을 만들어 복음을 전하는 일에 힘을 썼습니다.

 

결국 1948년에 체포되어 14 동안이나 감옥에서 고통스러운 세월을 보내게 됩니다. 범브란트 목사님은 투옥된지 처음 3 간은 지하 감옥의 독방에 갇혀 있었습니다. 따라서 생각을 나눌 만한 벗도, 읽을 있는 책도, 무언가 기록할 필기도구도 없었습니다.

 

지하 감옥에 갇혔기에 새소리, 한포기, 따스한 햇볕조차 구경 없었습니다. 날마다 더러운 감자 껍질로 만든 스프와 1주일에 한번씩 주는 조각으로 생명을 연명해 나갔습니다. 게다나 예수를 부인하라며 자주 끌려나가 고문당하기 일쑤였습니다.  

 

범브란트 목사님이 불굴의 믿음으로 끝까지 예수를 포기하지 않자, 나찌는 그의 정신을 마비 시키기 위해 스프에 마약을 먹였습니다. 결과 범브란트 목사님의 정신 세계는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었고 기억력 상실을 초래했습니다.

 

목사로서 그가 즐겨 애독했던 성경의 내용도 서서히 잊어버렸고, 신학박사로서 수많은 책을 읽고 연구했지만 신학 지식도 사라져 갔습니다. 무려 14 국어에 능통했던 탁월한 언어학자였지만 이제 모국어인 루마니어만을 조금 기억할 뿐이었습니다.

 

어느날 , 그는 조용히 눈을 감고 주님의 기도를 드리기 위해 엎드렸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그런데 다음 말을 이을 수가 없었습니다.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토록 없이 기도했던 주님의 기도였건만 이제는 기억해낼 없을 만큼 그의 정신세계는 마약으로 병들어버렸습니다. 범브란트 목사님은 너무도 슬펐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기도를 가르쳐 주시려고 땅에 오셨는데, 내가 그분의 기도를 잊어버리다니그는 마음을 가다듬고 정신을 집중해서 다시 주님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그리고는 한참동안 아무 말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기억하려고 해도 주님의 기도가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시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내가 주님의 기도를 잊어버렸습니다. 하나님, 그래도 하나님은 마음 아시지요. 예수님 사랑합니다. 예수님 사랑합니다. 아멘.”

 

범브란트 목사님에게 이같은 정신적 암흑상태가 2년간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마약 투여도 중단되고 음식의 질도 개선되었습니다. 후에는 기억력도 회복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토록 그리던 주님의 기도에 대한 기억력이  샘솟듯 솟아오르게 되었습니다.

 

범브란트 목사님은 주님의 기도 마디 마디에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열정을 담아 기도했습니다. 주님의 기도를 드릴 때마다 메말랐던 그의 영혼이 회복이 되고 소망이 넘치도록 밀려오는 감격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14년의 옥고를 치르고 출옥을 하게 범브란트 목사님은 주님의 기도야말로 혹독한 감옥 생활에서 승리할 있었던 비결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에게도 주님의 기도에 대한 간절함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 의미 없이 주기도문을 반복하는 것은 중언부언하는 이방인들의 기도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단어 단어에 하나님을 향한 열정과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님의 기도가 의미하는 바를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주님의 기도는 모두 여섯 가지의 청원으로 이루어졌는데, 처음 가지 청원은 하나님을 위한 기도로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나라, 하나닙의 뜻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그리고 다음 가지 청원은우리를 위한 양식, 우리를 위한 용서, 우리를 위한 구원의 기도입니다.

 

여기에서 기도의 순서가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기도가 먼저이고 우리를 위한 기도는 다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눈을 감고 기도할 때마다. 먼저 구해야할 기도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가 우리의 기도보다 언제나 우선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기도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문 10 상반절입니다.

 

나라가 임하시오며

 

주님의 기도 두번째 청원은 나라가 임하시오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드리는 기도를 드린 후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천국, 천당, 하늘나라, 새하늘과 새땅을 가리킵니다. 모두 동의어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나라, 천국이 임하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천국하면 죽어서 가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전도할 때도 예수 믿고 천국에 함께 가자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정말 죽어서 가는 곳입니까? 만일 하나님의 나라를 사후 세계로만 인정하면, 우리가 나라가 임하시오며라고 주기도문을 외울 때마다, 의미는 하나님 죽고 싶습니다 죽어서 천국가고 싶습니다라는 기도가 되고 맙니다. 과연 주님의 기도가 그런 의미이겠습니까?

 

물론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의 나라와는 분명히 다릅니다. 하지만 죽어야만 있는 나라가 아닙니다. 보다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죽어서도 있지만 살아서도 있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죽어야만 경험할 있는 나라이기도 하지만 살면서도 누릴 있는 나라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내세적이면서 동시 현세적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의 나라와 같이 어느 지역에 영토를 차지하거나 우리의 시공 세계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 가운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시오며 라고 기도할 , 영원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의 현실과 시간 속으로 임하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는 신비입니다. 신비로운 나라가 지금 우리 속에 임하도록 기도하는 것이 주님의 기도입니다. 주님의 기도의 관점은 분명히 사후 세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 세계에 있고, 나라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라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정말 중요합니다. 땅에서 예수님이 전하셨던 메시지의 핵심도 하나님의 나라, 천국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첫번째 설교도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것이고, 팔복의 말씀도 천국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베드로에게 주신 열쇠도 천국의 열쇠였고, 뿌리는 비유도, 겨자씨 비유도 모두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말씀이었습니다. 신약성경의 처음인 마태복음에만 천국이라는 단어가 무려 36번이나 기록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소개하기 위해 땅에 오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예수님은 땅에 오시면서 하나님의 나라도 함께 가지고 오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가져오신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의 눈으로는 수도 없고 인간의 손으로는 만질 수도 없는 곳입니다. 우리의 지혜와 능력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없고 닿을 수도 없는 곳이 하나님의 나라, 천국입니다.

 

사실을 깨달았던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50에서 이같이 증언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받을 없고

 

혈과 육은 인간의 지혜와 능력, 인간의 힘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힘과 능력으로는 결코 하나님의 나라를 이어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간절히 소망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시오며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신비로운 나라가 세상에 임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대체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나라입니까? 하나님의 나라를 이사야 11:6-8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기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먹는 아기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어린아기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어떻게 사나운 이리와 순한 어린 양이 함께 있겠습니까? 어떻게 초식 동물인 송아지와 육식 동물인 사자가 함께 있을 있겠습니까? 어떻게 먹는 아기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을 치며 아기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수가 있겠습니까? 완전한 평화가 이루어지지 않고서는 불가능합니다. 세상의 나라에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서만 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로마서 14:17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로마서는 바울이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편지입니다. 로마는 당대 최강, 최대의 나라였습니다. 모든 것이 풍요롭고 모든 것이 화려했습니다. 먹는 , 마시는 것이 넘쳐나는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로마가 하나님의 나라는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런 물질적인 나라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입니다. 그래서 모두가 의롭고 모두에게 평강이 넘치고 모두 기뻐할 있는 나라, 그곳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같은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의 선행이나 종교적인 열광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성령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성령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가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

 

세상의 나라는 영토가 있어야 하고 주권이 있어야 하고 국민이 있어야 비로소 나라가 됩니다. 그래서 국가의 3요소가 영토, 주권, 국민입니다. 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것이 주권입니다.

 

우리나라가 일제 식민 통치 하에 영토도 있었고, 국민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얼 빼앗겼습니까? 주권을 빼앗겼습니다. 주권을 빼앗기면 국민이 있어도 통치할 없고 땅이 있어도 나라를 잃어버린 것이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본질상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가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 대한민국이 대한민국의 주권과 통치가 이루어지는 나라이듯이,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가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가 임할 나타나는 현상은 매우 다양합니다. 모든 억압에서 해방되고, 어둠의 권세가 물러가고, 병든 자들이 치유되고 ,귀신들이 내어쫓기고, 죽은 자들이 살아납니다.

 

마태복음 12:28말씀입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하나님의 주권으로 귀신이 쫓겨나는 ,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증거입니다.

 

누가복음 4:18 말씀입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성령이 임하셨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가 임하셨다는 것과 같습니다. 그때 가난한 자에게는 복음이 전파되고 포로된 자에게는 자유가 주어지고 먼자는 다시 있고 눌린 자는 해방되는 ,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완전한 평화, 모두의 평화가 이루어지는 , 그곳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세상에서 당하는 고통들, 가난, 질병. 기아, 재난, 전쟁 등과 같은 문제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해야만 해결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가 임하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가 임하시기를 기도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를 전적으로 삶으로 받아들이겠다고 결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삶을 다스리시도록 내어드리는 것이 나라가 임하시오며라는 기도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백날 나라이 임하시오며"라고 기도해도 한낱 중언부언하는 주문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도는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대로 살아가겠다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우리의 삶을 통치하시려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통치는 거부하고, 하나님의 주권에 순종하기 보다는 이기심과 욕망을 따라 살아갈 때가 허다합니다. 그런데 과연 이기심과 욕망으로 가득한 삶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겠습니까?

 

누가복음 6:20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이르시되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예수님은 가난한 자들이 복이 있는데 이유는 하나님의 나라가 그들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욕망을 버린 가난한 영혼, 힘과 능력으로는 아무 것도 없다고 고백하는 가난한 인생, 그래서 오직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만을 사모하는 가난한 삶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는 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곳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바로 우리 안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누가복음 17:21말씀입니다.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 안에 임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다스리시는 영광스러운 나라는 안에 임하는 것입니다. 의와 평강과 희락이 충만한 하나님의 나라가 안에 임하는 것입니다. 천국은 우리 안에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인생에는 평화가 임하지 않습니까? 여전히 걱정과 두려움, 근심과 상처가 우리를 지배하고 있습니까? 밤낮 짜증만 나고, 기쁨은 온데 간데 없고, 삶은 무기력하기만 합니까? 우리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신비로운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우리의 속에서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를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보다 먹고 마시는 것에 관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보다 욕망을 이루는 일에 관심을 쏟기 때문입니다.

 

그래가지고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주는 의와 평강과 희락을 맛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해야 내가 변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야 임해야 행복해집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해야 삶에 기쁨이 충만합니다.  한번 뿐인 인생인데, 천국처럼 살다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한번 뿐인 소중한 삶인데 땅에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누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먹고 마시는 것으로 결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일에만 매달리겠습니까? 결과가 세상입니다. 인간이 자기 욕망에 매달린 결과 삶은 윤택해지고 편안해졌을지 몰라도, 세상은 불의와 탐욕과 거짓과 부패와 전쟁과 기아와 자살과 살인이 끊이지 않는, 지옥같은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천국을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가 지옥 같은 세상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세상이 하나님의 나라가 되로록 기도해야 합니다. 나라가 임하시오며라는 기도는 세상이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는 것이 전제된 것입니다. 세상은 어둠입니다. 천국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의 의미는 세상은 어둠이라는 것입니다. 낮이든 밤이든 상관없이, 주님이 보시기에는 세상은 언제나 어둠입니다. 그렇다면 주일 예배를 마친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그려보십시오.

 

자기 욕망으로 어두워진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이 똑같이 자기 욕망을 가지고 들어간다면, 아무리 그리스도인이 많아도 세상은 절대 변화되지 않습니다. 아니, 조차도 변화시킬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진리의 빛이 되어 세상 속으로 들어간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정직과 사랑과 진리의 빛이 되어 세상으로 퍼져나갑니다. 이곳 저곳에서 각자의 빛을 발하며 어둠을 밝힙니다. 처음에는 빛이 희미하게 보일지 몰라도 하루가 지나고 한달이 지나고 1년이 지나다 보면, 빛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통로가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렇게 확장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라이 임하시오며라는 기도는 우리가 기도대로 살아가겠다는 다짐이기도 합니다. 기도는 언제나 삶과 일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시오며라고 기도해놓고 우리의 삶이 자기 욕망을 따라 살아가는 지옥과 같은 삶이라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있겠습니까?

 

기독교 고전 가운데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라는 책이 있습니다. 1896년에 미국의 찰스 셀던 목사님이 저술한 소설입니다. 내용이 이렇습니다.

 

어느날 미국 레이몬드시의 부유한 교회에 부랑자가 와서 객사하는 일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부랑자는 인쇄공이었는데, 당시 최신 인쇄기술에 밀려 직장에서 쫓겨나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도움을 구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일자리를 주거나 도움을 주는 이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교회에 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마땅히 그를 도울 방법이 없던 교회의 맥스웰 목사는 미안하다는 사과와 함께 그를 돌려보냈습니다. 그런데 일주일 지난 주일예배때 인쇄공이 교회에 들어와서는 다른 사람의 불행에 관심이 없는 기독교인들의 이기주의를 비판하다가 심장병으로 숨을 거두게 됩니다.

 

그때 인쇄공이 맥스웰 목사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쇄공의 죽음과 질문에 충격을 받은 맥스웰 목사는 교인들에게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라는 기준을 가지고 1년만 살아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마디로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대로 살아보자는 제안이었습니다.

 

그렇게 맥스웰 목사와 교인들은 순간마다예수님이라면 어떻을 하실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은 무엇이고,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목사라면 어떤 설교를 하실까? 설교 중에 자기 선전이나 자기 자랑에 몰두하실까? 예수님이 직장인과 사업가라면 출세와 탐욕을 쫓아 은밀한 방법으로 부정을 저지르실까? 주일의 근무는 거절하실까?

 

예수님이 신문 잡지사 사장이라면, 돈벌이 때문에 퇴폐풍조와 음주 음란과 과대선전 기사와 광고를 마구 게제하시며, 일요판 신문도 발행하실까? 예수님이 재산가라면 재산을 무슨 일에 누구를 위하여 사용하실까? 수없이 많은 고민과 생각들을 하게되었습니다.

 

이후 교인들의 삶이 달라졌습니다. 신문사 사장이 권투 관련 소식을 싣지 않기로 했고, 광고 수입이 많은 일요판의 제작을 중단했습니다. 오페라 가수로 스카우트 제의를 받은 성악가는 거리의 부랑아를 위해 성가를 부르는 찬양사역자로 헌신했습니다.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은 상속녀는 빈민들을 위한 지원센터를 건립했습니다.

 

이제 레이몬드 교회의 교인들은 무슨 일을 만나건, 하나님의 생각으로,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에 주파수를 맞추고, 행하였던 것입니다. 그렇게 맥스웰 목사로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는 레이몬드 교회 그리고 레이모든 전체를 하나님의 나라로 변화시켰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나라는 여기 있는 것도 저기 있는 것도 아니라, 바로 우리 안에서 시작되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시기를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가 우리의 삶을 다스리시도록 내어드리십시오.

 

이기적인 욕망을 따라 살아가는 천박한 인생이 아니라,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기도하시고 기도하신대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때, 돈으로 없고 힘으로 얻을 없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 가득한 천국의 삶을 누리시게 것입니다.

 

그리고 안에서 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는 반드시 교회와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로 새롭게 변화시킬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지금도 오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정지홍 목사)

 

 

 

출처 : 좋은씨앗교회 Good Seed Church
글쓴이 : 스티그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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