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내용!! 강해!!

[스크랩] 주기도문 강해 1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6:9-13)

하나님아들 2013. 2. 16. 11:48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마태복음 6:9-13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0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11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12 우리가 우리에게 지은 자를 사하여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오늘부터 우리가 살펴볼 내용은 주기도문으로 불리는 주님의기도입니다. 주님의 기도는 당시 유대인들의 기도와는 많은 차이가 있었습니다. 특히 바리새인들의 외식하는 기도와는 전혀 달랐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회당이나 거리 어귀에서 오랫동안 손을 들고 기도하는가 하면, 우상에게 기도하는 이방인들처럼 아무 의미도 없이 같은 내용을 반복하는 중언부언하는 기도를 했습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기도는 하나님에게 하는 기도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하는 기도였습니다. 이같이 남에게 보이려는 외식하는 기도, 중언부언의 기도는 아무런 능력도 없고 하나님의 역사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바르게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응답도 있고 역사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르게 기도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가 않습니다. 10, 20 신앙생활을 해도 기도가 그리 어려운지 모르겠다고 하는 분도 계십니다. 하나님! 마디 놓고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몰라 침묵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를 내용과 방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것이 주기도, 주님의기도입니다.

 

주님의 기도는 모든 기도의 모범이자 가장 중요한 신앙의 내용을 담고 있는 기도문입니다. 아무리 반복해도 의미가 줄어들지 않고 깊은 기도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해주는 것이 주님의 기도입니다. 가능하면 예배 때마다 주님의 기도를 드리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우리도 예배 중에 주기도 영창을 다시 하게 되었는데, 찬송을 부를 때마다 주님의 기도의 의미를 되새기며 부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이런 질문을 있습니다. 과연 주님의기도가 최상의 기도인가? 그렇습니다. 주님의 기도가 최고의 기도, 최상의 기도입니다. 신앙의 초기 단계에서는 아무 형식도 없이 어린아이가 부모에게 떼를 쓰듯이 기도할 있습니다. 자기 필요에 의해서 나만을 위한 기도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신앙의 연륜이 쌓여가면서도 어린 아이처럼 떼를 쓰는 기도만 하거나 만을 위한 기도에 머무르게 된다면, 사람의 신앙은 여전히 초보 신앙에 불과합니다. 기도에도 질이 있고 격이 있고 수준이 있습니다. 주님의 기도는 그런면에서 최고의 질과 최상의 격과 가장 고상한 수준의 기도라고 있습니다. 

 

주님의 기도가 이렇게 시작됩니다. 본문 9절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예수님은 외식하는 기도, 중언부언을 하는 기도는 이상 하지 말고 이렇게 기도하라라고 말씀하시면서 주님의기도를 가르쳐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특별히  이렇게 기도하라라고 말씀하셨으면 우리는 주님이 가르쳐 주신대로, 그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의 기도 문장이 의미심장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무슨 말씀입니까? 기도는 하나님에게 드려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기도는 바리새인들처럼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거나, 이방인들처럼 사람의 손으로 만든 우상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에게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고백하는 것이 기도의 시작입니다. 우리도 기도할 하나님을 부르면서 기도합니다.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 거룩하신 하나님, 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 그렇게 하나님을 부르면서 기도합니다. 왜냐하면 기도의 대상이 하나님이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이렇게소개하고 계십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속에는 굉장한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땅에 속한 분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구체적으로 의미를 살펴보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높은데 계신 분입니다. 지극히 높은데 계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의 최고, 최선의 감정과 노력과 직관과 산물을 초월해 계시는 분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인간이라 해도 도달할 없는 높은 경지에 계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아무리 견주어도 견줄 없고 아무리 비교해도 비교할 없이 지극히 높으신 분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이나 지식으로 가둘 있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의 이성과 논리로 정의할 있는 분도 아닙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초월해 계시는 분입니다.

 

오늘은 성령강림 첫번째 주일이자 삼위일체 주일입니다. 성부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시고 성자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성육신 하시고, 성령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교회를 세우시기 위해 땅에 강림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우리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분명 성부성자성령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십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2천년 기독교 역사가운데 수많은 신학자, 수많은 목회자가 삼위일체 하나님을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설명하려고 해도 도무지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 땅의 모든 것을 초월하시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누구도 부인할 없는 것은 하늘이 언제나 보다 높다는 것입니다. 하늘은 언제나 땅을 초월합니다. 하늘은 언제나 땅을 덮고도 남습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그런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기도로 하나님을 설득하거나 하나님의 뜻을 바꾸거나,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일 없습니다.

 

땅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우리들이 결코 하나님을 우리의 지식과 생각과 욕망에 가둘 없고, 또한 가두려는 시도를 해서도 안된는 것이, 하나님 바로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55:8-9입니다.

 

이는 생각이 너희 생각과 다르며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으니라

 

기도를 하다보면, 종종 우리의 기도와는 다른 응답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계획과 뜻과는 전혀 엉뚱한 결과가 나올 때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늘이 보다 높음 같이 하나님의 생각이 우리의 생각 보다 높고, 하나님의 길이 사람의 보다 높기 때문입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또한 하늘 위에서 우주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는다면 오늘 태양이 수도 없고 비가 내릴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는다면 바람이 수도 없고 계절이 바뀔 수도 없습니다.

 

마태복음 10:29 말씀입니다.

 

참새 마리가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참새 마리도 땅에 떨어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는다면 우리 중에 누구도 오늘 하루 쉬며 살아갈 없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는다면 정녕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무엇하나 이룰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인간의 역사와 우주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모든 것을 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높은 곳에 올라가면 높이만큼 보입니다. 높이 올라갈수록 넓게 많이 수가 있습니다.그래서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늘보다 높은 곳은 없습니다. 태산이 아무리 높다한들 하늘 아래 뫼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높은 하늘에 계십니다. 하늘에서 세상을 바라보시고 하늘에서 사람 사람을 두루 살피시며 하늘에서 우리의 깊은 중심까지도 지켜보고 계십니다.

 

신명기 32:10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우리가 어디에 있든, 그곳이 아무 것도 없는 황무지이든 사나운 짐승이 몰려다니는 광야이든, 우리를 눈동자와 같이 지켜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지극히 높은 곳에 계시며 우리의 이성과 생각을 초월해 계시고, 세상 만물을 주관하시고 오늘도 높은 곳에서 우리를 지켜보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능력과 힘으로는 하나님께 닿을 수가 없습니다. 땅에서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너무도 높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닿을 있는 비결이 있습니다. 바로 기도입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높은 곳에 계셔도,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우리가 기도할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귀를 활짝 여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우리가 신음하듯 기도하고 속삭이며 기도 해도 하나님은 들으십니다.

 

하나님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이기에 우리같이 연약한 자가 드리는 기도를 통해서도 역사가 나타나고, 기적이 나타나고,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없고 상상할 없는 일들이 기도를 통해 쏟아지는 것은 바로 하나님이 하늘에 계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인생이 달라집니다. 땅에서 기도하면 하늘에 속한 사람이 됩니다. 우리의 기도를 통해 하늘의 계신 하나님의 역사가 충만히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하나님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라고 해서 우리와 전혀 동떨어진 분이 아닙니다. 우리가 닿을 없이 높은데 계신 하나님이라고 해서 우리와 전혀 상관없고 우리를 전혀 상대하시지도 않고 언제나 우리에게서 멀어져만 계시는 분이 결코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십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부터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 되어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12 말씀입니다.

 

영접하는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마음대로 아버지라고 부를 있는 권세가 생겼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십니다. 하나님이 아버지시라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과 우리는 가족입니다. 그것도 부자 지간입니다. 부녀지간입니다. 가족 중에서도 가장 친밀하고 가까운 사이가 부모와 자녀 사이입니다.

 

더우기 예수님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사용하셨던 단어는 아람어인 아빠였습니다. 아름어는 유대인들이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평상 언어였습니다. 예수님은 아람어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셨습니다.

 

아람어로 아빠는 유대인들이 어린 시절 아버지를 불렀던 애칭입니다. 우리말 아빠와 발음도 같고 의미도 똑같습니다. 어린 아이가 아버지를 부를 격식을 차리고 아버님~ 하고 부르지 않습니다. 가장 친근하고 가장 편안하게 아빠하고 부릅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아빠입니다.

 

아람어로 엄마도 우리 말하고 비슷하긴 한데 조금 다릅니다. 그런데 만일 아람어로 엄마를 부르면, 우리 나라에서는 당장 쫓겨납니다. 왜냐하면 아람어로 엄마를임마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임마  아빠는 아빠인데, 엄마는 임마입니다.

 

아버지에 대한 가장 친근하고 가장 친밀하고, 가장 가깝고 가장 편안한 호칭은아빠입니다. 어떤 호칭도 아빠만큼은 안됩니다. 아이들은 태어나서 제일 먼저 배우는 말도 엄마 아빠입니다. 그만큼 아빠는 가장 가깝고 가장 친밀만 단어입니다.

 

우리 다움이가 어리광이 심한 편인데, 어릴적에는 자기가 먹고 싶은 , 사고 싶은 ,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빠 아빠,” 이렇게 연달아 아빠를 두번 부릅니다. “아빠 아빠 콜라마시고 싶어, 아빠 아빠 인형 사주면, 안돼 아빠 아빠 나랑 놀아줘그리고 마직막에 잊지않고 이말을 덧붙입니다. “플리스 아빠이러면 안들어줄 없어요. 아빠라는 앞에 저는 완전히 무장해제 됩니다.

 

그런데 어릴 때만 그런게 아닙니다. 요즘에도 학교 매점에서 무얼 사고 싶어서 용돈이 필요하면, 아빠~ 아빠~하고 얼굴을 얼굴에 대고 비빕니다. 그러면 저도 모르게 손은 벌써 지갑에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바로 이런 아빠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아빠 하나님 하고 부르면 사랑에 속수무책이신 하나님, 내가 가장 친밀하게 부를 있고, 나와 가장 가깝게 계시면서, 내가 가장 편안하게 만날 있는 분이 우리 아빠 하나님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우리에게 하나님이 아빠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당시에 파격 중에 파격이었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른 예도 없었고 하나님을 아빠라고 기록한 문서도 없었습니다.

 

당시에 유대인들은 감히 하나님을 아빠라고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거룩하시고 존귀하신 하나님에 대한 경외감이 너무도 컸던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친근하게 부르지 못했습니다. 야훼라는 하나님의 이름도 감히 부르지 못했어요. 그런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아빠로 부른다는 것은 상상할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기도는 형식은 있었지만 공허했습니다. 거룩한 쉐마의 형식은 있었지만,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그저 형식적으로만 기도할 ,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가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언제나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과 언제나 인격적으로 교제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하나님 아빠에게 기도하라고 가르쳐주십니다.

 

하나님은 분명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만 동시에 우리가 아빠라고 부를 있는 친근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높은데 계시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우리의 가장 가까운데 계신 아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주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우리가 애원하고 부탁하고 아빠라고 부를 , 사랑과 은혜를 한없이 베풀어주시는 아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과 친밀하게 대화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본래부터 하나님의 자녀였던 것은 아닙니다. 어떻게 하다보니 저절로 하나님의 자녀가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힘이나 능력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습니다.

 

에베소서 2:3입니다.

 

전에는 우리도우리의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어떻게 진노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있었습니까? 하나님의 희생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희생하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후에도 하나님의 희생은 계속되었습니다.

 

아빠 하나님은 언제나 자녀된 우리를 위해 희생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희생의 댓가가 아무리 크고 혹독하다 하더라도 기꺼이 감수하십니다. 아빠 하나님의 사랑은 자식을 향해 끝없이 희생하시는 사랑입니다.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들판에 남겨두고 잃어버린 마리의 양을 찾아 나선 목자를 현실적으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들판은 광야입니다. 광야에는 먹을 것이 없기 때문에 언제나 굶주인 맹수들이 먹이감을 찾기 위해 눈을 번뜩이는 곳입니다.

 

그런데 고작 마리의 양을 찾가 위해 굶주린 맹수들이 득실거리는 광야에, 나머지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을 남겨둔다는 것은, 목자의 입장에서 엄청난 희생을 각오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자가 잃어버린 마리의 양을 찾아나서는 것은 양을 향한 희생적인 사랑 때문입니다.

 

한마리의 양을 위해 목자는 자신의 시간과 정력을 허비할 뿐만 아니라, 목자의 전재산에 해당하는 아흔 아홉마리의 양을 희생합니다. 왜냐하면 잃어버린 마리의 양에게 목자는 아빠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도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체면도 당신의 보좌도 당신의 아들도 아들의 생명도 기꺼이 희생하시면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바로 잃어버린 마리의 양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나님은 우리의 아빠가 되셨습니다. 그래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라고 기도할 , 기도 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희생과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서 하나님을 불러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아빠되신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그분의 사랑과 희생을 찬양하십시오. 그리고 아빠 하나님께 친밀하게 기도할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신 분이시고 아빠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그냥 아빠가 아니라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시요 나만의 아버지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는 간혹가다 나만의 하나님으로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기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이기적인 기도를 합니다. 나만 잘되면되고, 자식만 잘되면 라는 식으로 기도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주님의 기도는 하나님을 향해 우리 아버지시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시라면 자리에 있는 우리는 모두 형제요 자매입니다. 우리는 서로 서로 사랑해야 하는 형제요 자매입니다. 내가 미워하고 질투하고 시기했던 누군가를 위해서도 하나님은 희생하시고 사랑하시는 아빠 하나님이 되어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혼자만을 위해 있습니까? 그럴 없습니다.

 

교회는 개인주의의 집단이 아닙니다. 이기적인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형제 자매들의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 생활은 반드시 공동체성이 있어야 합니다. 공동체를 위해 희생할 있어야 하고 공동체를 살리기 위해 헌신할 있어야 합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공동체를 살리는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는 교회를 위하고 이웃을 위하고 타인을 위한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대단한 무언가를 이루기 보다는, 사랑이 넘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말로만 사랑하는 교회가 아니라, 진짜 사랑하는 교회, 서로의 허물과 잘못을 덮어주는 교회, 서로의 상처와 아픔을 위로해 주는 교회, 서로 칭찬하고 격려해주고 세워주는 교회, 서로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시고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자녀요, 우리는 서로 형제 자매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의 기도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드리는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기적이 나타나고 역사가 나타납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땅에 살아가는 우리와는 비교할 없을 만큼 높으신 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와 가장 가까이에 계시고 친근하신 아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주님도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빠 아버지여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주님은 십자가의 형벌 앞에서, 하나님을 향해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시며 가장 친밀한 언어로, 어린아이가 아빠의 도움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허물과 죄악으로 죽어가는 저와 여러분을 살리시기 위해 당신의 유일하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기꺼이 희생하셨습니다.오직 길만이 하나님이 우리의 아빠 하나님이 되시는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이처럼 크신 희생과 사랑을 베푸신 아빠 하나님께 감사하십시다. 그리고 나와 같이 하나님의 자녀가 우리의 형제와 자매를 몸과 같이 사랑할 있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사랑의 주님,

 

욕망과 노예로 진노의 자녀로 살던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심을 감사드립니다.

 

더우기 높은 보좌에서 천하만물 창조하신 하나님이, 지금 우리와 가장 가까이 계시고, 열방을 다스리는 하나님이, 지금 우리와 친밀하게 교제하시고, 인류 역사의 심판자가 되시는 하나님이 지금 우리의 아빠 하나님이 되심을 고백합니다.

 

허물과 죄악 투성이였던 우리를 위해 아빠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도 사랑하시기에 기꺼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희생시키셨습니다. 그리고 너는 아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빠 하나님의 사랑과 희생을 영원히 가슴에 새기고 감사하게 하옵소서.우리의 마음을 다해 힘을 다해 생명을 다해 아빠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옵소서.

 

그리고 하나님의 똑같은 자녀된 우리의 형제와 자매도 몸과 같이 사랑하게 하옵소서.

 

고난과 멸시 속에서도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정지홍 목사)

 

 

 

출처 : 좋은씨앗교회 Good Seed Church
글쓴이 : 스티그마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