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내용!! 강해!!

[스크랩] 4 복음서 개요

하나님아들 2013. 1. 23. 17:21

Ch2 4복음서

 

1. 복음서 접근

 

1) 문학 양식에 따른 읽는 법의 차이

 

공문서와 연애 편지를 읽는 법은 다르고, 이야기 책과 전화 번호부를 읽는 법은 다르듯이 성경도 장르에 따라 읽는 법이 달라야 한다. 우리의 성경은 이야기도 있고, 율법도 있고, 시도 있고, 다른 특수한 형태의 문학들이 있다. 한 책에 산문과 이야기와 논리와 시가 들어 있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문학 장르의 이해에 따른 분위기 파악은 중요하다.

 

이순신 장군이 쓴 ‘한산섬 달 밝은 밤에..’로 시작되는 시조를 보자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하는 적에

어디서 일성 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

 

임진왜란을 이해하는 우리 민족이라면 이 시조로 읽을 때, 몇 척 남지 않은 배로 나라를 걱정하고 있을 때 들려오는 왜구들이 부는 한 가락의 피리소리에도 애간장이 탄다는 이순신 장군의 충정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이를 무협지로 읽어보자.

어디서 들려 오는 한 가락의 피리소리가, 사람의 장기를 끊어 버렸다는 표현이다.

대단한 무림의 고수가 나타난 것이다.

 

이를 신문기사로 읽으면 어떨까?

이 것이 사실이라면, 신기한 현상인 것이다. 특종 중에 특종이며, 전 국민을 공포로 몰아가기에 충분할 것이다. 전혀 다른 의미로 읽혀질 수 있다.

 

무협지와 신문기사와 시는 다르게 읽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성경을 읽을 때 이를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 편지에서는 직설적인 가르침과 명령을 받아들여야 하지만 시에는 많은 은유와 비유적 표현 속에 있는 시인의 감성 속에 있는 하나님의 마음을 읽어야 한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은 복음서라는 성경에만 있는 특별한 장르이다. 역사가 있지만, 역사서가 아니고, 예수님의 전기이면서 전기가 아닌 책이다.

 

복음서는 이야기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야기를 통해 저자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 이야기나 사건 자체는 중요하다. 그러나 때로는 이 이야기가 왜 여기에 위치하고 있는지, 앞뒤 문맥 가운데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는지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

 

앞뒤 문맥의 중요성

 

7:31-37을 먹어보자. 묵상에 익숙한 이는 묵상하고, 성경공부에 익숙한 이는 공부를 해보자.

 

7:31 예수께서 다시 두로 지방에서 나와 시돈을 지나고 데가볼리 지방을 통과하여 갈릴리 호수에 이르시매 

7:32 사람들이 귀 먹고 말 더듬는 자를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안수하여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7:33 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7:34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7:35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여졌더라 

7:36 예수께서 그들에게 경고하사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되 경고하실수록 그들이 더욱 널리 전파하니 

7:37 사람들이 심히 놀라 이르되 그가 모든 것을 잘하였도다 못 듣는 사람도 듣게 하고 말 못하는 사람도 말하게 한다 하니라

 

어떤 것을 깨우쳤는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 있는가?

나의 삶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이 본문만 가지고 묵상한다면 다음의 범주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1. 이방 땅, 낮은 자를 돌보시는 하나님

2. 예수님이 하신 기적은 예수님이 확실한 하나님임을 증명함

3. 복음 전파 막을 수 없다

4. 은혜 받은 자의 불순종

 

그런데 왜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고치시는지.. 지저분하게시리..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여기서 시야를 넓혀 앞뒤 이야기들과 연결시켜 보고 싶다.

6 7절부터 열두 제자를 파송하며 양식이나 배낭이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 것도 가지지 말며라고 이르시는 말이 나온다. 그리고 헤롯의 잔치가 나오고, 이어 오병이어가 나온다. 7장에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씻지 않은 손으로 음식 먹는다고 시비 거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수로보니게 여인과의 이야기 가운데서 자녀의 떡과 먹던 부스러기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에바다 이야기이다.

에바다 앞의 모든 이야기가 먹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에바다 뒤에 나오는 칠병이어 역시 먹는 이야기이다.

떡 이야기의 연속 가운데 에바다만이 유일하게 먹는 것과 관련 없다.

 

6:7-13 열두 제자 둘씩 파송

떡 이야기

6:17-29 헤롯의 잔치

떡 이야기

6:30-56 오병이어

떡 이야기

7:1-23 부정한 손으로 음식/고르반

떡 이야기

7:24-30 수로보니게

떡 이야기

7:31-37 에바다

 

8:1-10 칠병이어

떡 이야기

 

뭔가 에바다를 통해 하시고 싶은 이야기가 있음을 시사한다. 이런 의문점을 가지고 전후 문맥을 연결해보면 중괄식 교차 대구 구조를 발견할 수 있다.

 

A

6:45-56

-떡 떼시던 일 깨닫지 못하고

  B

7:1-23

씻지 않은 손/고르반 - 충돌

    C

7:24-30

수로보니게 여인-

      D

7:31-37

에바다

     c

8:1-10

사천 명을 먹이심-

 b

8:11-13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 구함 충돌

a

8:14-21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에바다 기적 이야기는 6-8장 문맥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부분이다.

그들은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 있다. 그런데 그 기적을 먹는 문제와 연결시키고 있기에 예수님을 로마에서 해방시킬 메시야로 기대하는 것이다.

그 결과 시작과 끝인 A/a에서 제자들이 깨닫지 못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 안쪽 B/b에서는 깨닫지 못하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비난하고 있다.

반면 C/c에서 이방인들은 예수님의 떡을 즐기고 있다.

이런 배경을 가지고 주님은 제자들에게 외친다. 이 소경 같은 자들아 제발 깨달아라. 내가 어떤 메시아인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깨닫지 못하는 특별히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귀먹고 말 더듬는 제자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가지고 다시 한 번 읽어보자. 세상의 고난이 두려워서 진리를 알아도 살아내지 못하고, 말 더듬는 자같이 증거하기를 주저하는 나를 보면서 에바다 하시는 예수님을 생각하며 다시 한 번 읽어보자. 어떤 깨달음이 있는가? 이전과 달라졌는가?

문맥의 중요성에 대해 동의하는가?

 

복음서를 읽을 때는 사건과 이야기도 중요하지만, 이 이야기가 이 자리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이 사건을 통해 저자가 전달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내는 공부와 묵상을 하자.

 

 

2) 4복음서에서의 오병이어

 

4복음서는 같은 듯 하면서도 다르다. 많은 이야기가 중복되는 듯 하면서도 4복음서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기적 이야기는 오병이어가 유일하다. 마태, 마가, 누가는 그렇다 하더라도 세 복음서가 많이 보급된 한 참 후에 쓰여진 것으로 평가되는 요한은 왜 동일한 이야기를 써 놓았을까?  그만큼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리는데 오병이어는 중요한 기적이라고 복음서의 저자들은 생각했던 것은 틀림이 없다.

 

그러면 각 복음서의 저자들은 오병이어가 예수님이 하신 대표적인 기적임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 달리 말하면 내가 마태복음에서 오병이어를 읽을 때와 마가복음에서 읽을 때 같은 깨우침, 같은 묵상을 하는 것이 좋을까? 같은 이야기라면 왜 4분이 모두 이를 자신의 복음서에 채택했을까?

 

그런데 당시 오병이어의 현장에 있었던 유대인들에게는 얼마나 대단한 기적이었을까?

오늘날 우리가 인식하는 만큼의 대단한 기적이었을까?

요한복음을 읽으면 그렇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오병이어의 말미에 다음과 같은 평가가 나온다.

6:14 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예수님을 오실 그 선지자, 즉 모세가 말한 모세와 같은 선지자, 혹은 메시아라는 평가이다. 그런데 그를 찾아 다닌 다른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6:30 그들이 묻되 그러면 우리가 보고 당신을 믿도록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6:31 기록된 바 하늘에서 그들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그들의 생각은 이러하지 않았을까?

메시아라면 적어도 모세가 한 기적보다는 나아야죠. 모세는 무려 40년 동안 200만 인구를 만나로 먹여 살렸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고작 5000, 그 것도 한끼 주고는 메시아라고 말합니까? 정 메시아라면 우리가 믿을 수 있도록 표적을 보여주세요.

 

그들의 입장에서 열왕기하 4:42-44를 보면 엘리사가 흉년이 들었을 때 보리떡 20개와 채소 한자루로 백명을 먹고 남은 기적이 나온다. 이 것보다는 큰 규모의 기적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찾는 민족의 지도자는 모세와 같은 자인데 모세가 베푼 기적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는 말이다.

 

따라서 저자들은 오병이어의 기적이 대단하다. 이렇게 기적을 베푸시는 분은 하나님 밖에 할 수 있는 이가 없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나님이다. 이런 주장을 하려는 것이 아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면 마가는 오병이어를 통해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마태는? 누가와 요한은? 호기심이 생긴다. 이를 알기 위해서 각 책의 문맥 가운데서 오병이어가 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들어야 하는 것이다.

 

각 복음서에서 오병이어의 전후를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마가6

마태14

누가9

요한6

열두 제자 파송

7-13(8)

없음

1-6(6)

없음

헤롯/세례 요한

14-29(16)

1-11(11)

7-9(3)

없음

보고

12제자

세례요한의 제자

사도

없음

오병이어

32-44(13)

13-21(9)

11-17(7)

4-14(11)

 

 

마가복음에서의 오병이어(6:32-44)

마태복음이 28, 누가복음 24, 요한복음 21장인데 비하여 마가복음은 16장으로 다른 복음서에 비하여 짧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병이어에 다른 복음서보다 더 많은 량을 할애하고 있다. 바로 앞에 나오는 헤롯의 생일잔치도 타 복음서에 비해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이 둘은 마가가 중요하게 알리고 싶은 내용으로 보인다.

 

마가에서의 오병이어는 제자들의 활동과 연결되어 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파송 했고, 제자들이 순종한 결과 예수님이 드러났다.

이로 인해 헤롯왕이 불안해 하며 과거 세례요한을 죽인 자신의 생일 잔치를 기억한다.

 

A현재

7-16

제자들의 활동으로 요한의 죽음 기억

12제자 파송

B 과거

17

헤롯이 요한을 투옥함

헤롯의 잔치

C 더 과거

18-20

요한이 헤롯을 책망

B 과거

21-29

헤롯이 요한을 처형

A 현재

30

사도들이 돌아와 활동을 보고함

제자들의 귀환

 

제자들이 돌아와 활동을 보고할 때 주님은 한적한 곳으로 보내며 좀 쉬라고 하였으나 큰 무리가 예수님을 따라 오는 바람에 쉬지 못하고 가르치기를 시작하신다. 저녁이 되었을 때 그들에게 베푼 것이 오병이어 광야의 잔치이다.

두 잔치를 벌이는 두 왕의 모습은 다음과 같이 대조된다.

 

헤롯 대왕

예수님

목 베인 요한이 살아 낫다 - 불안

평강을 주심

동생 빌립을 죽이고 아내를 빼앗음

많은 사람을 고치심

대신, 천부장, 갈릴리 귀인들과 잔치- 백성의 혈세로

52어의 잔치

구하면 주리라 땅 목숨

구하면 영생

체면 맹세와 앉은 자들을 인하여

하나님이 친히 사람으로

세례 요한을 죽임

자신을 죽임

부하에게 요한을 죽이라 명령

제자에게 살리라 명령

 

마가는 독자에게 묻는다. 당신들은 어떤 잔치에 참가하고 싶나요?

궁궐의 호화스러운 잔치를 부러워하지만 그 곳에 참가할 만한 사회적 위치에 있지 않는 그들은 빈들에서 예수님의 잔치를 초라하고 부끄럽게 느낄지도 모른다.

어떤 왕을 원하나요?

그들은 힘 있는 왕 헤롯보다 더 힘 있어 로마를 물리칠 수 있는 메시아를 구하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른 차원의 왕, 영생과 평강의 왕을 보여 주신다.

 

다음으로 이어지는 것이 의미가 있다.

A

6:45-56

-떡 떼시던 일 깨닫지 못하고

  B

7:1-23

씻지 않은 손/고르반 - 충돌

    C

7:24-30

수로보니게 여인-

      D

7:31-37

에바다

     c

8:1-10

사천 명을 먹이심-

 b

8:11-13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 구함 충돌

a

8:14-21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앞에서 다루었던 에바다이다.

연결하여 보면 마가는 기적의 현장을 생생하게 체험하고도 여전히 깨닫지 못하는 제자들을 보여주면서 이렇고 외치고 있는 듯하다.

당신은 제자인가?

헤롯과 예수님을 대조해 보면 누가 진정한 왕인지 알겠는가?

제자로서 당신은 예수님을 당신의 왕으로 인정하는가?

말로만 구하고 행동은 헤롯보다 강한 왕을 찾고 있는 것 아닌가?

어떤 왕이 평강의 왕인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는가?

열려라!! 눈을 떠라!!

 

마가에서의 오병이어는 제자들이 깨닫기를 원하면서 세상의 잔치와 다른 예수님의 잔치, 세상의 좋은 소식 다른 예수님의 좋은 소식을 보여준다.

 

마태복음에서의 오병이어(14: 13-21)

 

마태복음은 헤롯의 잔치와 오병이어 잔치를 대조시키는 것이 마가복음과 비슷하다. 그런데 제자로 시작하지 않는다. 세례 요한이 헤롯에게 죽었다는 보고에도 요한의 제자들을 등장시킨다. 그래서 마가가 제자에 대한 가르침에 집중했다면 마태는 방향이 조금 다름을 느낄 수있다.

 

A

13:1-52

하나님 나라의 8 비유와 해설

  B

13:53-58

고향 배척 - 그들이 믿지 않음으로

A

14:1-21

헤롯의 잔치와 오병이어

  B

14:22-32

바다 위를 걸음 - 믿음이 작은 자여

 

마태복음 13장은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닷가에서 하나님 나라와 8비유를 가르치기를 마친 후 고향에 가서 가르쳤으나 배척당한다. 예수님은 그들의 믿지 않음으로 인해 많은 능력을 행사하지 않으신다. 믿음이 언급된다.

14장은 헤롯의 잔치와 오병이어 이야기로 시작되고, 베드로가 예수님을 보고 물 위를 걷다가 겁먹으며 바다에 바질 때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느냐'하시며 믿음을 언급한다. 그리고 배에 있는 사람들이 고백으로 마무리 한다.

14:33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이 문맥에서 마태복음의 오병이어는 그들이 믿어야 할 하나님 나라를 헤롯의 잔치와 대조시켜 보여주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서 펼쳐지는 모습을 예를 들면 오병이의 현장과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누가복음에서의 오병이어(9: 11-17)

 

누가복음 9장은 12제자에게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저시고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보내시면서 전도에 나선 제자가 갖추어야 할 자세를 가르치신다. 그를이 복음을 전파할 때 헤롯이 듣고 당황하며 과거를 회상하는 문맥에서는 마가의 기록과 흡사하다. 그러나 헤롯의 잔치는 언급하지 않는다.

오병이어 사건이 후에 제자들에게 자신이 누군지 묻는다, 베드로가 하나님의 그리스도라고 고백한다. 그러자 예수님은 십자가 고난과 부활을 예언하면서 제자도를 가르치신다.

 

이 부분을 자세히 오병이어를 중심으로 세상과 헤롯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모른다는 사실이 강조되며, 제자를 대표하여 베드로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장면이 배치되어 있다. 이 구조는 다음과 같다.

9:1-6

12제자 파송

A

9:7-9

헤롯/세상-JC를 모름

  B

9:10-17

하나님 나라 오병이어

    C

9:18-22

제자 JC는 그리스도

  B

9:23-27

제자의 조건

A

 

여기서 오병이어는 제자들에 대한 가르침을 기반으로 독자들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에 해당됨을 알 수 있다.

무엇을 가르치고자 하는 지는 9:28-36은 변화산의 사건과 변화산에서 내려와 귀신을 쫓는 사건이다. 예수님이 변화산에서 내려 오셨을 때 무리 중 한 사람이 자신의 외아들에게 든 귀신을 쫓아달라고 부탁했고 예수님은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쫓아내신다. 그 때 사람들의 반응은 하나님의 위엄에 놀라는 것이다.

 9:43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위엄에 놀라니라

 

하나님의 위엄에 착안하여 베드로 후서 1 16절을 보자

.

벧후1: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벧후1:17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그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벧후1:18 이 소리는 우리가 그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부터 난 것을 들은 것이라

 

베드로가 믿음을 후배들에게 유언 형태의 편지를 쓴 것이 베드로 후서이다. 거기서 베드로는 변화산 사건을 언급하며 그가 직접 본 그 것은 하나님의 크신 위엄이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병이어 이야기도 예수님의 위엄을 보여 주었을 가능성이 크다.

 

9:1-27

제자도를 기반으로 한 오병이어 이야기

9:28-36

변화산 그의 크신 위엄(벧후1:16)

9:37-45

아들 귀신 쫓음- 하나님의 위엄

 

누가복음의 독자들이 생각하는 로마 황제의 위엄은 뭔가 장대하고 업숙하고, 백성을 위압하는 것이었다. 이의 연장이 신의 위엄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누가는 말한다. 하나님의 위엄은 그를 따라온 무리들을 그냥 돌려보내지 않고 하나님 나라를 말해주고, 병도 고쳐 주고, 배도 채워주는 그 자상함에 있다, 하나님의 위엄은 변화산에서 모세, 엘리야와 자신의 죽음을 의논하는 희생에 있다. 하나님의 위엄은 한 부모의 바람대로 그의 아들을 고쳐주는 돌보심에 있다는 것을 이야기 하는 한 부분으로 사용하고 있다.

 

 

요한복음에서의 오병이어(6: 4-14)

 

요한복음의 오병이어 이야기는 공관복음과 전후 문맥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오병이어 기적에 대해 사람들은 그를 모세가 말했던 나와 같은 선지자, 즉 메시아라고 기대한다.

  6:14 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이 예수님을 억지로 붙들어 임금 삼으려는 의도를 아시고 다른 속으로 가버리신다. 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예수님을 좇아가서 바다 건너편에서 예수님을 만나 선생님 왜 저희를 피하십니까 하고 불만 섞인 구애를 한다.

  6:25 바다 건너편에서 만나 랍비여 언제 여기 오셨나이까 하니

 

예수님은 단호히 배격하신다.

 

6:26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그들이 삐졌나보다. 언쟁 같은 질문이 왔다 갔다 한다.

이제는 당신이 뭐 대단하다고 그렇게 폼잡습니까? 모세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작은 기적 보여 주시면서.. 식으로 질문한다.

 

6:30 그들이 묻되 그러면 우리가 보고 당신을 믿도록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6:31 기록된 바 하늘에서 그들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예수님은 모세가 준 떡이 아닌 하나님이 주신 떡으로 교정해 주신다.

그들은 당신이 하나님 아들이라면 그 떡 좀 달라고 한다.

그 때 예수님은 자신이 바로 그 생명의 떡이라고 선언하신다.

 

6: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6:48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요한은 오병이어를 통해 예수님이 생명의 떡이심을 설명하고자 했다고 볼 수 있다.         

 

이렇듯 동일한 오병이어의 사건을 통해 각 복음서에서 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다른 부분이 있다. 우리가 복음서를 읽을 때 전후 문맥을 통해 강조점을 찾으면 그 풍성함으로 인해 우리에게 복음서를 4권이나 주신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다.

 

3) 4복음서의 특징

 

예수님의 행적을 중심으로 쓰여진 성경이 복음서이다.  그런데 복음서는 4권이나 된다.  특히 마가복음의 내용은 거의 95%가 마태복음에 그대로 인용되고, 85%가 누가복음에 나온다. 

마가복음 내용 중 마태 사용

마가복음 내용 중 누가 사용

 

마가 복음의 내용 중 마태나 누가에 나오지 않는 내용은 갈릴리 호수에서의 귀먹고 말 더듬는 자를 고치신 에바다 사건(7:31-37), 벳세다 맹인을 2번 안수하여 고친 사건(8:22-26)과 저자의 요약적 진술들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가복음이 필요했던 이유는 마가복음 역시 특정한 독자를 위해 쓰여졌기 때문이다.

 

마태, 누가, 요한 복음 역시 그들의 공동체와 독자들을 위하여 쓰여졌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그 공동체가 잘 이해할 수 있는 문장을 사용하고, 절실한 메시지를 강조하고 있다. 몇 가지 사항을 비교해보면 뚜렷하게 나타난다.

 

서문 비교

누구나 글의 시작을 가장 고민하며 쓴다. 그만큼 서문은 중요하다. 대부분 글의 마지막에 서문을 붙인 다.  그래서 서문은 본문을 요약하고 있다. 서문을 통해 저자의 의도를 알 수 있다

 

마태

1: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마가

1: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누가

1:1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1:2 처음부터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 된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1:3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1:4 이는 각하가 알고 있는 바를 더 확실하게 하려 함이로라

요한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마태복음은 아브라함, 다윗, 예수에 대한 계보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는 그 독자에게 이 예수님 외에도 아브라함과 다윗의 의미가 컸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헬라어 성경이나 어순이 같은 영어 성경을 읽어보면 예수 다윗 아브라함의 순서이다. 그리고 1:17은 아브라함, 다윗, 예수로 끝난다.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아브라함과 다윗을 계보의 중심에 넣고는 이 것이 예수님의 계보라고 말한다.

 

예수님의 조상을 14대씩 4번으로 나누는 것도 유대인에게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들의 정통성에 대한 자부심을 존중하면서도 슬그머니 다말과 라합과 룻이라는 이방 여인을 조상으로 특별히 바셋바라는 이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야의 아내라는 표현을 다윗과 함께 적어 놓음으로써 그들의 사고 중 깨뜨리려는 암시를 하고 있다.

 

마가복음은 기독교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감옥에 갇히고 재산을 빼앗기고, 극장 식 경기장에서 사자 밥이 되어갔던 원독자들에게 예수님을 복음의 시작이라 선포하며 시작한다. 마치 로마 제국에 대해 전쟁 선포를 하는 기분이다. 그래서 믿음을 지키라, 진정한 왕은 제우스 신의 아들이라 불리우는 로마황제 네로가 아니라 예수님이며, 이 복음서는 그 왕의 소식이다..라고 외치고 있다.

 

당시 로마에서는 황제를 신격화하는 작업을 했었고, 특히 네로는 좋은 소식이란 의미의 복음 즉 유앙겔리언이란 단어를 자신에게만 사용하도록 했었다. 황제가 전쟁에서 승리했을 때 유앙겔리언 하면서 좋은 소식을 전했고, 황제의 생일이나, 차기 황제가 될 가능성이 있는 왕자가 태어났을 대 우앙겔리언..하고 소식을 전했던 것이다.

 

이 유앙겔리언은 예수님의 것이며, 그는 섬김을 받으러 오신 분이 아니라 섬기러 신 분으로, 그가 시험 받을 때에 들짐승과 함께 계셨던 분이며(1:13), 세례 요한을 죽여가며 허세를 부리는 헤롯과 달리 오병이어로 5000명과 더불어 광야에서 잔치를 베푸시는 분이니 너희는 좋은 주인을 모시고 있다고 격려하고 있다.

 

한 편으로는 마가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깨닫지 못하는 제자를 계속 보여주면서 원독자인 당신은 알고 있는가? 머리로만 알고 있는가? 삶으로 알고 있음을 보여주는가를 계속 질문하기 위해 미리 정답을 가르쳐 주고 시작하는 것이다.

 

누가복음은 데오빌로에게 헌정된 책임을 눅1:3에서 밝히고 있다. 물론 데오빌로 뿐만 아니라 데오빌로의 공동체를 위해 쓰여졌을 것이다. 데오빌로에게 각하란 존칭이 쓰여지는 것으로 볼 때 데오빌로 공동체는 로마의 상류층임을 알 수 있다. 데오빌로가 알고 있는 바를 확실히 하고자 하는 목적을 분명히 하고 있다.

 

데오빌로는 아마 여러 가지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는 들었고, 조금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면도 있지만 의심하는 부분도 많은 자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래서 누가는 데오빌로에게 접근하는 방식을 다른 복음서와 달리 논리적으로 조심스럽게 서서히 다가서고 있다. 그가 개략적으로 알고 있는 복음과 예수님에 대해 논리적으로 증거를 확인해 가며 차근차근 읽는 것이 좋겠다는 느낌을 주며 시작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믿음의 결단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요한복음은 아직 구원의 확신이 없는 자에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려는 책이다.

20: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창세기 1장과 같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했는데 그 분은 다른 말로 말씀이란 분이며 예수님이다 라고 선포하며 시작한다. 좀더 친절하게 누가복음처럼 차근차근 설명할 법도 한데, 선포해버린다.

나는 값싼 복음을 주는 것 아냐, 값진 복음이야, 그만큼 이야기 했으면 되었지. 이제 믿음의 결단을 할 때야. 믿기지 않니? 원래 어둠은 빛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야.

 

그러나 그 빛을 증거한 자가 세례자 요한이며, 예수님 자신이며, 현재 그의 많은 제자들이다. 너도 믿어 영생을 얻으라..라고 권유한다

 

그래서 한 구절을 읽을 때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어떤 분인가, 진정으로 그가 그리스도인가를 찾아가며 읽기를 요구하고 있다.

 

 

책의 길이 비교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 복음

28

16

24

21

1072

678

1151

 

 

장절 수로 복음서의 특징을 논하기는 어렵지만, 느낌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장수로는 마태복음이 길지만 절수로 보면 누가복음이 가장 길다. 비워 놓은 요한복음의 절수는 독자께서 직접 계산해보셨으면 한다. 마가복음 보다는 200절쯤 길고 마태보다는 200절쯤 짧다.

 

누가복음이 가장 긴 것은 누가가 많은 사료를 수집해서 엮은 점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데오빌로에게 조심스럽게 증명하고 설득하기 때문이리라 생각된다. 가르침의 책인 마태복음이 다음으로 긴 것도 이해할 수 있다.  설득에 의한 전도가 아니라 믿음의 결단을 요구하는 요한복음은 앞의 두 복음서에 비해 짧다. 더 짧을 수도 있었겠지만 요한 사도가 나이 많아 쓰셨기 때문에 이 정도로 길지 않나 생각도 해 본다.

 

마가복음이 가장 짧은 이유는 영적 전쟁터에 나가는 사람들에게 쓴 책이기에, 목숨이 위태한 원독자들에게 쓴 책이기에 짧을 수 밖에 없다. 그들에게는 긴 설명이 필요도 없고, 긴 설명을 할 시간도 없다. 족보도 없고, 예수님의 어린 시절도 적지 않는다. 사역을 위해 거치는 광야 시험도 2절밖에 되지 않는다. 바로 사역을 전개해 나가신다. 긴급함을 느낄 수 있다. 위급한 자들에게 그 만큼 빨리 달려오고 싶으신 하나님의 마음이 잘 표현되어 있는 것같다.

 

 

복음서 시작 시간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 복음

이방에서

동방박사의 방문

예수님의 세례

세례 요한의 기적적인

수태고지 및 탄생

시간의 시작 전

태초부터

 

마태는 서문을 끝내고 본문의 시작을 동방에서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른 것으로 잡았다. 원독자들에게 예수님은 유대의 왕이시지만, 결국 만민이 예배하러 오는 온 세상의 왕임을 암시하고 있는 것 같다.

 

미가복음의 서문이 끝나면 예수님의 세례로 시작된다. 언제 태어나셨는지 참으로 급하시다. 이후의 행보도 빠르다. 행동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의 행적에 초점을 두고 있다. 기적의 하나님으로 나타나셔서 숨겨진다. 희생의 하나님으로 전개되면서 드러나신다.

 

누가복음은 세례 요한의 기적적인 수태고지 및 탄생으로부터 시작하며 비슷한 기적의 수태고지와 탄생이 예수님께 있었음을 말하고 있다. 이 과정을 통해 고대에서 힘과 권위가 있는 남자 제사장과 십대 소녀의 믿음을 대조해 보이고 있다. 약한 자, 비천한 자가 더 옳은 판단을 할 수 있음을 보여주며, 예수님의 신성에 대해 등장인물들이 고백하고 족보를 통해 누가 자신의 고백이 표현하며 이제 고백을 요구하고 있다.

 

요한복음의 시간은 시간의 시작 전인 태초로부터 시작된다. 예수님의 하나님이심을 전제로 시작한다. 그는 설명할 수 없는 분이다. 그래서 '에고 에이미( I am, 나는 ~이다)'

 스스로 있는 자임을 나타내고 있다.

 

반복되는 단어 비교: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 복음

이루려 함

9

1

0

1

, 즉시

8

40

4

1

성령

11

6

16

10

표적

6

4

5

17

 

구약에서 예언 했던 것을 이루려함이란 단어가 가장 많이 나오는 복음서는 마태복음이다. 마태복음은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구약에서 기다렸던 분이 예수님임을 계속적으로 예언의 성취를 통해 보여주신다.

 

마가복음은 곧, 즉시란 단어가 무려 40회나 사용된다. 모든 것이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 이 글을 읽을 때는 무엇인가 긴박하게 다가오는 탄압을 느끼며, 그러나 전쟁에 나가는 담대한 용사가 되어 읽기를 원한다.

 

성령이 가장 많이 사용되는 책은 누가복음이다. 특히 누가복음의 후편격인 사도행전에 나오는 52회의 성령을 감안하면 이 두 책은 성령이 이끄시는 책이다. 원독자들이 보지 못한 예수님, 그 예수님과 함께 하셨고, 예수님이 가신 후 보내주신 보혜사(Helper)를 통해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해주고 있다.

 

요한복음은 표적의 책이다. 표적이란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님의 메시아 선포를 나타내는 기적 혹은 중요한 메시지를 포함하는 기적을 말한다. 요한복음은 표적들을 통해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나타내주고 있다.

 

원독자를 향한 메시지

 

마가복음은

세상을 향해 진정한 복음이 여기 있다 선포하고 달려가라

두려움 있는가?

부끄러움 있는가?

제자여 너는 담대한 용사가 되라

남들이 보기에는 죽음의 길을, 스스로는 진정한 왕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신

행동하시는 하나님을 따라가라를 강조한다.

 

마태복음은

오래 믿었다는 너.. 많이 안다는 너..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라는 너.. 의로움의 기준을 가지고 있는 너

바로 너에게 깨어져야 할 것 이 있다 새롭게 알아야 할 것이 있다.

네가 자부하며 믿는 것은 국수주의..민족주의, 집단 이기주의.. 좀더 심하게 이야기하면 패거리문화이다. 이 틀을 깨라.

마음을 넓혀라.

땅끝까지 넓혀라..이런 말씀이다

 

누가복음은

너는 여전히 세상의 기준을 가지고 있구나.

남자가 어른이, 사회적 지위가 있는 자가 더 우수해 보이니?

힘 있는 자가 더 좋아 보이니?

예수님의 탄생 과정을 보라. 예수님의 사역 기간 동안 접했던 사람들을 보라

누가 더 가치 있었는가? . 

하나님께는 잃어버린 자가 있었다. 그건 바로 너였었고, 그런데 하나님이 찾아 주셨다.

이제 네가 잃어버린 자를 찾아 나서야 한다.

하나님과 동행하라. 예배하라. 기도하라.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라.. 이런 말씀이다.

 

요한복음은

다시 한 번 예수님의 근본부터 알아보자.

좋으신 예수님..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 분이 하나님이심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 분이 보여주신 표적.. 크고 작은 표적이 너에게 나타날 때 너는 그 분의 나라를 볼 수 있어야 한다.

그 분의 신성.. 그렇지만 너와 일대일로 깊이 대화하시는 가운데 드러내는 그 분의 하나님 되심을 알아라.

그 분의 마지막 기도.. 그렇게 살아라.. 이런 말씀이다.

 

우리는 이 4가지 말씀 모두를 받고 있다.

그래서 풍성하고 행복한 것이다. 

 

 

4) 마가복음 우선설

 

기독교의 전통적 복음서 연구는 4복음서를 통합시키고 조화시켜 예수님의 생애와 가르침에 접근하는 것이었다. 이 관점은 지금도 무시될 수 없지만, 이 관점에서 마가복음은 마태나 누가 복음을 요약해 놓은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기독교 초기 마가복음은 인기가 없었고 마태나 누가 복음이 더 많이 인용되었었다.

그러나 1700년 동안 교회는 4복음서의 통합과 시도를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가장 쉬울 것으로 생각했던 예수님의 생애 연대표조차도 전후 사건의 순서를 배열할 수 없었다. 이는 현대도 마찬가지이다.

 

18세기의 공관복음의 연구에서 마가복음이 타 복음서보다 먼저 기록되었다는 주장이 대두되었다. 형식과 내용 면에서 마가복음은 마태와 누가 복음의 뼈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마태와 누가는

1. 마가복음과 당시에 공통을로 사용되었다고 생각되는 자료, 그들만의 자료를 이용

2. 예수님 생애 전체를 복음으로 평가한 후

3. 마가의 문학적 구조와 신학을 받아 들여 그들의 틀로 사용

4. 그들의 교회 공동체의 신학, 신앙에 따라 재배치

과정을 통해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을 재 창조하였다는 관점이다.

 

대표적인 가설이 스트리터(B.H. Streeter)라는 사람에 의해 주장된 네 문서설이다.

.

안디옥 지역에서 있었다고 가정하는 예수님에 대한 자료 모음을 Q지료라고 한다.

마태가 예루살렘에서 구할 수 있었던 자료가 M 자료라 하고, 누가가 가이샤라 지역에서 수집했던 자료를 L자료라 한다. (여기서 Q는 문서를 나타내는 독일어의 첫자이며, M은 마태의 첫자, L은 누가(Luke)의 첫 자일뿐이다.)

 

 

마가복음

Q 자료(안디옥)

M자료(예루살렘)

L자료(가이샤라)

마태복음

사용

O

O

O

 

누가복음

사용

O

O

 

O

비고

마가의 내용을

마태,누가가

변형시켜 사용

마가에 없지만 마태와 누가

두 책에 등장

마태복음에만

나옴

누가복음에만

나옴

 

위의 내용는 ''이 아니라 '가설'이기 때문에 증거가 없음을 감안하면 좋겠다. 단지 4복음서를 이해하는 좋은 관점이 될 수 있어 소개할 뿐이며, 4복음서의 설명에도 이 관점에서 마가복음을 먼저 설명하고 마태, 누가를 설명하고자 한다.

 

출처 : 강두원의 한권한권먹는성경
글쓴이 : tasty bibl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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