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 1 성경 먹기 개관
1. 성경을 먹는 법
신통방통 꼬부랑통한 하나님의 책 성경
나의 하나님을 정의하라면 난 주저 없이 '신통방통 꼬부랑통' 한 하나님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 분은 나에게 오셔서 이해할 수 없는 말, 상황에 맞아 보이지 않는 말한 마디 툭 던지실 뿐인데, 그 순간부터 나에게 무언가 변화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내가 예수님을 나의 주로 믿게 된 것도 그렇다.
어느 날 나에게 찾아 오셔서 '나를 믿는 다고 말해봐!'라고 말씀하셨다.
'왜요? 난 안 믿는데요'
'그러니 한 번만 믿는다고 말해봐. 그럼 구원을 받을 수 있어'
안 믿는다는데 그러니 라뇨..말도 안 된다며 쫓아 보냈지만 이후로 끊임없이 귀찮게 하셨다. 하도 조르니까 민망하기도 하고, 또 귀찮아서 이제 그만 오라는 심정으로 믿는다고 말 해주었다. 그랬더니 나의 삶과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구원 받은 증거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구원을 확신할 수 있었으며, 구원을 향한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 그리고 과분한 칭찬을 들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어’
신통방통 꼬부랑통한 하나님이시다.
묵상 중 이런 경험이 있다. 일이 풀리지 않는다며 주님을 원망하고 있을 때 오시더니 장난을 거셨다. 옆구리를 쿡 치시더니 모르는 척 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왜 이러세요 하는 마음으로 더 세게 쳤다. 그랬더니 이 번에는 두 번 연속 치시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삐져 있음을 표시하기 위해 더 세게 두 번을 쳤다. 순간 세 번 꾹쿡 치러 오실 주님이 상상되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다가 오실 때 나는 피해버렸고 주님은 넘어졌다. 나는 도망 갔고 우리는 막 웃었다. 3류 영화도 아니고..
주님은 비유와 시청각, 심리전, 심한 질책, 설명, 무엇보다 직접 몸으로 보여 주시며 소통하신다. 신 이신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때 너무 유치하다 싶을 정도로 다가 오셔서 나를 맞춰주신다.
철없는 나를 귀엽게 여기시는 신통방통 꼬부랑통한 하나님이시다.
훈련 과정으로 전도여행을 할 때였다.
규칙은 하나님 음성을 듣고 오늘 묵을 교회를 찾아가야 하는 것이다. 갑자기 한 사람이 자동차의 윈도우 브러쉬(쉴드)를 들고 가는 것이 보이는 것이다. ‘이게 뭐예요? 저 교회 찾는다니까요. 교회를 보여주셔야죠’ 그 때 주심은 본 그대로 말하라고 하셨다. 1시간 후 우리의 음성 들은 것을 종합해서 교회를 찾아 나섰던 한 형제에게서 소식이 왔다. 교회 안에 자동차 정비소가 있어요. 윈도우 브러쉬를 보았어요..
내가 윈도우 브러쉬를 보았다는 것을 말하며 순종하는 순간 주님은 10년 전으로 돌아가서 교회를 만드시고 그 안에 내가 보았던 장면을 정탐하러 간 형제의 시간에 맞춰 연출하고 계셨던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날 위해서라면 과거 현재 미래를 넘나들며 일하는 신통방통 꼬부랑통한 하나님이시다.
주님이 주신 성경 또한 신통방통 꼬부랑통이다.
책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지 않으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도록 만들어진 책이다. 그런데 하나님께 의뢰하면서 성경의 문맥적 배경과 역사적 배경을 공부하면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삶으로 살아 낼 수 있는 책이다. 삶으로 살아내면 더 잘 이해가 되는 책이기도 하다.
신통방통 꼬부랑통한 책이 성경이기에
성경을 공부하는 방법은 일반 책을 공부하는 방법과 같기도 하면서 다르기도 하다.
그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성경을 먹는다는 것
성경이 나에게 필요한 이유는 성경을 통해 아버지를 잘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나는 아버지가 나를 지으신 목적을 알고 있고, 그 목적에 따라 아버지와 오순도순 애기하며 살고 싶기 때문이다. 이를 예배라는 용어로 표현한다면 나를 알고 아버지를 알고 나와 아버지의 관계를 알아야만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모른다면, 하나님께 나의 존재가 누군지 모른다면 나는 전심을 다해 예배 드리는데 하나님은 우상 숭배한다고 꾸짖을 수도 있다.
하나님 찾으시는 예배자가 되기 위해 나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이렇게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는 과정에 성경 공부와 말씀 묵상이 있다.
성경 공부와 말씀 묵상의 강조점은 다를 수 있지만 목적은 말씀을 살아내는 것으로 같다.
묵상을 하는 분들 중 하나님과의 친밀감, 주관적 만남, 매일매일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분들은 묵상을 성경 공부와 분리한다. 그러나 나는 분리하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객관적 이해 없는 말씀 묵상은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른 묵상, 하나님이 원하시는 묵상을 위해서는 성경의 객관적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성경 공부의 목적이 삶에 적용하는 것이라면, 말씀을 삶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그냥 이해하고 외어서는 되지 않는다. 삶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묵상이 필수이다.
성경 공부 |
말씀 묵상 |
객관적 이해에 중점 |
주관적 만남, 적용 중점 |
많은 시간을 집중 |
매일 꾸준히 |
적용 없는 성경공부 할 필요가 있는가? 적용 위해 묵상은 필수 |
객관적 이해 없이 주관적 만남은 위험 이해 위해 공부 필수 |
그래서 성경공부와 말씀 묵상을 구태여 구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공부해야 할 것과 묵상해야 할 것이 다를 뿐, 이 둘은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
공부해야 할 것 |
묵상해야 할 것 |
문맥적 배경, 원독자 배경 강조 찾는 법, 절대진리 찾는 법 |
아버지 마음, 나를 향한 하나님 계획 사탄의 방해(순종 못하게) |
말씀을 살아내고 싶은가? 묵상하라!.
바르게 묵상하고 싶은가? 공부하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예배자가 되려면 공부하며 묵상하라!!
이 정도로 정리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개역개정 성경과 표준 새번역 성경을 비교하면 나의 주장이 이해될 것이다.
개역 개정 |
수1: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
표준 새번역 |
수 1:8 이 율법책의 말씀을 늘 읽고 밤낮으로 그것을 공부하여, 이 율법책에 씌어진 대로, 모든 것을 성심껏 실천하여라. 그리하면 네가 가는 길이 순조로울 것이며, 네가 성공할 것이다. |
이제부터 공부하며 묵상하는 것을 '성경을 먹는다'라고 표현하고자 한다.
성경을 먹는 것은 어떤 방법이든 인풋(input) - 프로세스(process) - 아웃풋(output)를 거친다.
인풋이란 성경을 읽고 어떤 말씀을 살아낼 말씀으로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공부를 할 때는 분석하거나, 진리를 정리하면서 선택한다.
묵상할 때는 마음에 와 닫는 말씀을 주신 말씀 혹은 레마로 취한다.
프로세스는 취한 말씀이 나를 하나님의 관점으로 변화시키도록 하는 과정이다.
하나님과 대화식으로 풀어가기도 하고, 기도, 선포 등의 방법을 통해 하나님께서 나를 조정하시도록 맡긴다.
아웃풋은 내 삶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당장은 나의 의지적 결단이며, 결단에 따르는 실천이다.
장기적으로는 나의 성품을 변화시켜 예수님의 분량까지 자라는 것이며, 그 영향력을 가정과 공동체에 미치는 것이다.
좋은 아웃풋을 내기 위해서는 인풋과 프로세스가 중요하다.
프로세스는 간단하다.
말씀이 결과로 나오게 하는 과정은 내가 하나님을 내 마음에 들게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하나님 마음에 들게 조정하시도록 의탁하는 것이다. 끊임 없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순종하여 삶으로 연결하면 된다.
이 때 진행 과정에 계속적으로 탐욕이 침입하려 할 것이다. 나의 자아가 나가지 않으려 할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프로세스를 이끌도록 해야 한다.
간단하지만 쉽지 않기에 끊임 없이 연습하여야 한다.
신명기를 읽다 보면 상반되는 두 구절을 만날 수 있다.
신7:16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넘겨주신 모든 민족을 네 눈이 긍휼히 여기지 말고 진멸하며 그들의 신을 섬기지 말라 그것이 네게 올무가 되리라
신 7:2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민족들을 네 앞에서 조금씩 쫓아내시리니 너는 그들을 급히 멸하지 말라 들짐승이 번성하여 너를 해할까 하노라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백성에게 그 땅의 모든 민족을 진멸하라고 말씀하신다. 흔적도 없이 없애버리라는 말씀이다. 이는 단번에 없앨 때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조금 내려가면 이 진멸해야 할 민족들을 조금씩 쫓아내시겠단다. 1년 안에 진멸하겠다는 식으로 급하게 멸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진멸과 조금씩은 서로 어울리지 않는 단어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두 단어를 한 단락에서 사용하여 명령하고 있다.
복음의 비밀은 악을 진멸하되 단번에 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끊임없이 한다는 것에 있다.
그래서 프로세스는 간단하지만 숙달할 수 없는 것이기에 쉽지 않다.
프로세스는 결코 숙달될 수 없고, 숙달 되어서도 안 된다.
하나님은 날마다 우리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새로운 생명의 삶을 누리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이 작업을 주님이 다시 오실 그 날까지 해야 하는 것이다.
결론을 내리면 프로세스는 십자가의 힘으로 진행시켜야 한다.
이는 나의 새사람 만들기라는 간단한 작업이다.
단지 끊임없이 해야 하기에, 숙달될 수 없기에 쉽지 않을 뿐이다.
그런데 마음이 편하고 흥분되는 것은 이 프로세스를 작동만 시킨다면, 실패해도 좋다는 것이다. 실패를 통해서도 하나님께서 많은 것을 부어주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관점에서는 항상 성공인 것이 프로세스이다.
우리는 십자가의 힘으로 끊임없이 마치 처음 해보는 듯한 떨림과 기대로 진행만 하면 된다.
문제는 인풋이다.
성경의 말씀 중 오늘은 어떤 말씀을 살아내기 위해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보통은 말씀을 읽다가 내 마음을 찌르는 말씀을 택한다. 젊은이들은 필이 꽂힌 말씀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감성적으로 말씀을 택하면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찌르는 말씀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드는 말씀을 택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마음에 드는 말씀만을 택한다면 아이가 밥을 먹을 때 편식하는 것과 같은 이치의 문제가 생기게 된다. 이는 성경과 하나님을 이해하는데 반쪽이 될 것이며, 삶을 살아내는데도 반쪽이 될 것이다. 아니 그 이하가 될 수도 있다.
이에 대한 보완책으로 하나님께서 강조 하시는 말씀을 인풋으로 하는 것이다.
오늘 내가 공부 혹은 묵상하기 위해 읽는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혹은 인간 저자가 강조하는 말씀을 찾아서 이를 내가 살아낼 말씀으로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성경 공부의 원리를 설명하기 위해 간단한 편지를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하이루~ 방가 방가~ 지난번 만남은 특별히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사랑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저는 괜찮습니다. 당신 부모님께 야단 맞기는 했지만, 진리는 반드시 승리할 거예요. 요즘 미국 유학 생활은 어떠신가요? 음식은 입에 맞으시는 지요? 싸이는 요즘 안 하시는 것 같은 데 도토리는 많이 모으셨나요? 메신저도 안 들어 오고.. 메일도 통 없네요 그래서 너무 보고 싶은 마음에 이렇게 블로그에 발자국 남깁니다. 목요일 독일 월드컵 축구 경기를 보러 상암동 경기장에 갔었어요. 아쉽게 한국팀이 스위스에 졌답니다…
제 비행기는 6월 29일 아침 10시 LA 공항에 도착합니다. ... 중 략 ....
한강이 보이는 남산 타워에서 당신의 사랑 두원 |
하이루~ 방가 방가~
연세 드신 분은 하이루~ 방가 방가~에서부터 막힐 것 같다.
요즘은 잘 사용하지 않지만, 2000년을 전후해서는 아이들의 인사말로 사용되었었다. 이 단어가 무슨 뜻인지 모른다면, 사전이나 인터넷 용어 사전을 찾아 보아야 할 것이다.
이렇게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끼리도 통하지 않는 말이 있는데, 하물며 2000년 전, 길게는 3500년 전에 쓰여진 성경에서 이해하지 못하는 말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본문을 읽다 보면 편지를 쓴 사람과 받은 사람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예를 들면 편지를 보낸 사람과 받는 사람이 만난 적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랑하는 사이인데.. 둘 사이의 어려움은 부모의 반대이다.
수신자는 미국 유학 중임이 드러난다....
싸이는 요즘 안 하시는 것 같은 데 도토리는 많이 모으셨나요?
이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싸이, 메신저, 메일, 도토리를 이해해야 한다.
도토리를 왜 많이 모았느냐고 물어보고 있을까?
설마 도토리 모으는 것이 취미는 아닐 테고..
다람쥐를 무척 좋아해서 일까?.
아니면 도토리 묵을 좋아해서, 다음에 만나서 묵 만들어 먹기로 약속을 했을까?
싸이는 2000년대 초에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했던 인터넷 개인 홈페이지로 이를 통해 자기를 표현하고 글도 남겼다. 도토리는 인터넷에서 사용하는 화폐와 같은 기능을 했다. 이 사실을 모르고 2000년 후인 서기 4000년의 사람이 도토리나 싸이란 단어를 묵상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목요일 독일 월드컵 축구 경기를 보러 상암동 경기장에 갔었어요.
아쉽게 한국팀이 스위스에 졌답니다
편지를 쓴 사람은 목요일 독일 월드컵 축구 경기를 보았다고 한다. 독일 월드컵 축구라는 것으로 보아 편지를 쓴 시기가 2006년인 모양이다. 독일 월드컵 축구 경기를 보러 간 곳이 상암동 경기장이다. 그렇다면 상암동 경기장은 독일에 있어야 논리적이다.
그래서 지금부터 2000년 후의 학자들은 상암동 경기장이 독일에 있다. 아니다 서울에 있다라는 논란을 벌일지도 모른다, 어떤 이는 편지의 기록을 믿고 상암동 경기장은 독일에 있다고 주장할 것이고, 어떤 이는 상암동 경기장이 서울에 있기 때문에 이 편지는 엉터리다라는 결론을 내릴 것이다.
이 시대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는 상암동 경기장이 대한민국 서울에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2000년 후인 41세기의 사람이 상암동 경기장이 독일이 아닌 서울에 있다는 것을 알려면, 2006년 당시의 문화를 알아야 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2006년 당시 젊은이들은 큰 경기가 있을 때, 광장이나 경기장에 모여서 전광판을 보며 축제 분위기로 경기를 즐겼었다. 그래서 편지를 쓴 사람은 독일 월드컵 경기를 보러 독일로 간 것이 아니라, 집 가까운 상암동의 운동장으로 간 것이다.
한국팀이 스위스에게 몇 점 차로 졌는지 알 필요가 있다면, 당시의 역사를 잘 알아야 한다. 편지를 통해 알 수 있는 것도 있지만, 더 잘 이해 하려면 편지를 쓴 사람이나 받은 사람의 상황을 많이 알아야 한다. 이 편지의 수신자와 발신자가 된다면 완벽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성경도 성경이 쓰여진 2000년 전 또는 3500년 전으로 돌아가서, 저자나 처음 읽은 독자들의 상황과 문화를 알고 읽으면 큰 어려움 없이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어렵게 느껴지거나 난해 구절로 남아 있는 것은 대부분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 비행기는 6월 29일 아침 10시 LA 공항에 도착합니다.
블로그에 글을 남긴 가장 큰 목적은 6월 29일 아침 10시 LA에 도착할 것이니 공항에 나오라는 것이다.
그런데 편지를 받는 자가 지난 번 만남의 시간을 생각하며 감격하고 우느라고 이 문장을 못 봤다면, 도토리 이야기에 깔깔대다가 이 말을 보지 못 했다면, 이들의 사랑은 이루어지기 어려웠을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읽을 지도 모를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LA 공항에 나가라고 말씀하시는데, 나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해 하고만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답답해 하실까?
그래서 우리는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는지, 무엇을 특히 강조하고 싶어 하시는지, 어떤 마음을 갖고 계신지를 파악해야 할 필요가 있다.
강조의 유형
성경에서의 강조는 다양한 수사법으로 표현되어 있지만, 반복, 목록, 비교/대조, 대구의 4가지 형식을 기초로 한 응용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4항목을 찾기에 익숙하면 하나님의 강조를 찾기에 충분하다.
강조의 유형 1. 반복 : 반복적으로 사용된 단어, 문장, 사건 묘사 2. 목록 : 특정 주제나 인물에 대한 다양한 묘사들 3. 비교/대조 - 비교 서로 비슷한 점을 비교하며 작은 차이점을 통해 강조하는 기법 - 대조: 서로 다른 점을 비교하여 좋은 쪽을 택하도록 하는 강조 기법 4. 대구 : 단어나 문장이 쌍을 이루는 히브리 문학 기법 |
반복
빌레몬에 대한 수식어 중 동역자가 있다. 다음과 같이 3번 반복된다.
몬 1:1 동역자인 빌레몬
몬 1:17 네가 나를 동역자로 알진대
몬 1:24 나의 동역자 마가
빌레몬서에서는 '동역자'가 중요한 개념임을 말해주고 있다.
실제로 빌레몬서는 시작과 끝이 같은 단어와 형식들로 구성되어 있다.
바울이 빌레몬에세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형제로 받아 들이는 권면을 함에 있어 시작을 동역자란 단어로 시작된다. 그리고 마지막도 바울이 바나바를 버릴 정도로 미워했던 마가가 동역자로 등장한다. 마치 왼쪽 괄호와 오른쪽 괄호처럼 되어 있다. 그리고 괄호 안에 빌레몬 자네가 나 바울을 동역자로 생각한다면, 아니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오네시모를 용서해주시게.. 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동역자는 오네시모를 용서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된다.
왼쪽 괄호( |
본문 |
)오른쪽 괄호 |
1:3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 |
동역자로서 오네시모를 용서 |
1:25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
5명의 사람 이름 |
5명의 사람 이름 | |
동역자 - 빌레몬 |
동역자 - 마가 | |
갇힌자 - 바울 |
|
갇힌자 - 에바브라 |
목록
빌레몬서를 읽으면 바울, 빌레몬, 오네시모에 대한 여러 가지 표현이 있다. 이들에 대한 표현이나 특징을 목록으로 정리해 볼 수 있다..
목록: 바울 |
목록: 빌레몬 |
- 디모데를 형제라 부름(1절) - 예수님을 위하여 갇힌 자(1, 9, 23절) - 빌레몬을 사랑함, 동역자라 부름(1절) - 명할 수 있는 위치에 있음(8절) - 나이가 많음(9절) - 오네시모를 낳음(10절) . 심복으로 삼고, 유익하게 만듬 . 사랑받는 형제로 대함(16절) . 책임을 짐(18절) - 빌레몬에게 도움을 줌(19절) - 여러 동역자들이 있음(24절) |
- 바울의 동역자(1,17절), 사랑받는 자 - 집에 교회가 있음(2절) - 사랑. 믿음이 있음(5절) - 성도들의 마음에 평안을 줌(7절) - 바울에게도 기쁨, 위로를 줌(7절) - 오네시모와 육신적으로 상관이 있었음(16절)-주인 - 바울에게 진 빚이 있음(19절) |
같은 방식으로 오네시모에 대한 표현들을 목록화 할 수 있을 것이다.
빌레몬서에는 이 외에도 누가, 아리스다고, 압비아 등 많은 사람이 등장하지만, 이 들보다는 많은 표현, 반복되는 표현이 있는 바울, 빌레몬, 오네시모가 빌레몬서를 구성하는데 중요함은 당연하다.
비교/대조
바울과 빌레몬을 목록으로 정리하고 나면 두 사람을 비교해 볼 수 있다.
목록: 바울 |
목록: 빌레몬 |
감옥에 있음, 나이 많으나 가족 없음 오네시모가 섬겼으면 좋겠음 |
집에 있음, 젊고 가족도 있음 오네시모를 잡아 벌 주려 함 |
명령할 수 있는 권위자 |
명령을 받아야 할 가정교회 지도자 |
오네시모가 준 피해를 대신 갚겠다고 함 빌레몬에게 받을 것이 있으나 탕감함 |
오네시모에게 피해를 당했음 빌레몬에게 빚이 있으나 갚지 않았음 |
오네시모를 유익하게 만듬 주 안에서 낳음, 심복 삼음 |
오네시모가 무익했음 육신과 주 안에서 관련, 도망감 |
바울은 빌레몬에게 비교하면 누가 세상적으로 편하게 살고 있는지, 그러나 어떤 삶이 우리 그리스도인이 살아야 할 삶인지 판단할 수 있게 된다.
다음과 같은 대조에서는 더 극명하게 나타난다.
잠 3:33 악인의 집에는 여호와의 저주가 있거니와 의인의 집에는 복이 있느니라
악인의 집 |
의인의 집 |
여호와의 저주 있음 |
여호와의 복 있음 |
내가 무엇을 따라야 할지를 확실하게 강조해 주고 있는 것이다.
중괄식 (교차대구, 카이아즘 Chaism)
우리에게 익숙한 헬라식(서구) 문학은 먼저 강조할 결론을 이야기 하고 그 이유를 설명해 가는 두괄식과, 논리를 전개하다가 그러므로 이러하다며 결론을 강조하는 미괄식이 일반적이다.
히브리(유대) 문학에는 중간 부분을 강조하는 중괄식이라는 특이한 구조가 있다. 이를 '카이아즘', '교차 대구'라고도 말한다.
일반적으로 대구란 말이 서로 대칭을 이룬다는 것인데, 교차대구는 대구를 이루되 멀리 떨어져 있는 말과 가까이 있는 말이 교차되어 대구를 이룬다는 의미이다.
대구
|
교차대구
|
교차 대구는 단어난 숫자가 될 수도 있고, 의미가 될 수도 있으며, 한 두 절이 교차대구를 이루기도 하고, 몇 장에 걸친 내용들이 교차대구를 이루기도 한다. 교차 대구의 짝이 맞는 짝수 구조가 있는 반면, 끝에서부터 짝이 맞아 들어가다가 가운데 하나만 남는 홀수 구조가 있다. 이 홀수구조일 경우 가운데 남는 것을 강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창세기의 노아 홍수 이야기는 숫자로 교차 대구를 이루어 7 -> 7 -> 40 -> 150으로 전개되다 8장 3절에서부터 이의 역 순으로 150 -> 40 -> 7 -> 7로 끝나고 가운데 8:1-2절이 남는다
창7:1-8:12
A |
창7:4 |
7일 |
8:1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바람을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줄어들었고 8:2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문이 닫히고 하늘에서 비가 그치매 |
B |
창7;10 |
7일 | |
C |
창 7:12 |
40주야 | |
D |
창 7:24 |
150일 | |
E |
창 8:1-2 |
è | |
d |
창 8:3 |
150일 | |
c |
창 8:6 |
40일 | |
b |
창 8:10 |
7일 | |
a |
창 8:12 |
7일 |
마치 샌드위치나 어린이용 약의 포장 같은 기분이 들지 않는가?
겉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그림과 함께 먹고 싶도록 하는 포장지가 있고, 그 속의 알약을 꺼내면 단 맛으로 끌어 들이고,, 제일 가운데에 아이에게 꼭 필요한 약 성분을 넣어 놓은 구조이다.
고대에는 종이를 구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구약 특히 모세오경은 외었다고 한다. 우리도 어릴 때 천자문을 외는 아이들을 보고 천재니 수재란 말을 했지만, 분량으로 볼 때 모세오경을 통째로 외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바리새인들은 구약 전체를 외었다는 말을 들으면 타임머신 타고 돌아가서 확인하고 싶어진다. 한 두 사람이 왼 것 가지고 과장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서.
과장이 있을 지라도 그들은 말씀을 외어야 했던 것은 사실인 것같다. 많은 것을 외울 때는 첫머리만 따서 외는 우리의 상황에서 본다면 교차대구 구조는 외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구조이다. 교차대구 구조는 첫머리의 반만 외면, 홍수 이야기에서는 7 - 7 - 40 -150만 외면 나머지는 150 -40 -7 -7 저절로 외어지는 구조이다.
그렇다고 가운데 남은 구절을 강조한다는 증거가 어디 있는가? 라는 질문을 할 수 있다. 고대 문법 책이 없는 상황에서 역시 고대로 돌아가봐야 할 일이지만 홀수형 교차대구 형식의 글들을 보면 필자의 경험으로는 거의 95%가 가운데를 강조하고 있었다.
창세기 노아 홍수의 이야기도 A -a , B-b, C-c 의 대구에서 남은 E(8:1-2)가 강조하는 핵심 메시지다.
창세기의 노아 홍수 이야기를 읽으면 어떤 마음이 드는가를 스스로 질문을 해보자.
1. 하나님은 전지 전능한 멋진 분, 통쾌했다.
2. 두려움이 평안으로 변하고, 격려 받고 용기가 생겼다
3, 하나님이 좀 너무하신다는 생각을 표현하진 못했지만 느꼈다.
내가 처음 노아 홍수 이야기를 읽었을 때는 3번이었다. 믿는 자로서 말로 표현하면 안될 것 같지만 하나님이 너무 하신 것 아닌가? 누가 잔인한 하나님이라 말하면 어떻게 대응하지? 그래 죄는 미워하시기 때문에 이렇게 쓸어버리시는 분이야.. 신학적으로는 맞지만 뭔가 궁색한 답변을 머리 속으로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처음 읽었던 사람들은 2번이었을 것이다.
아니 8:1-2가 어떻게 격려와 용기가 된다는 말인가?
원독자의 관점에서 먹자
죽은 사람을 살리는 기적과 소경이나 귀머거리를 치는 기적을 비교할 때 어떤 기적이 더 큰 기적일까? 우리는 당연히 죽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라 말할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엘리야도 죽은 사람을 살렸기 때문에 구태여 하나님이 아니어도 능력 있는 선지자 정도면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소경과 귀머거리를 고친 예수님은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원독자 - 성경을 처음 읽은 독자
원청중 - 구약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지자가 대언하거나 신약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실 때 그 말씀을 직접 들은 청중 |
이 책을 처음 읽었던 자들을 원독자라 하고, 이 말씀을 현장에서 직접 들었던 자들을 원청중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모세로부터 이 이야기를 듣고 있는 원청중 혹은 이 기록을 처음 본 원독자는 모압 평지에서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으로 갈 준비를 하는 출애굽 2세대일 것이다.
그들의 아버지 세대는 가나안 지역을 정탑하고 돌아와서 12명 중 10명이 아낙 자손을 두려워하고 그들의 성읍을 정복하는 것이 어렵다는 말을 과장하여 표현한 결과 회중이 동요하였고, 하나님은 노하셔서 그들을 광야로 보내셨고, 광야 40년 동안 하나님 말씀대로 여호사아와 갈렙 외 20세 이상 된 자들은 다 죽었다.
이를 잘 알고 있는 그들에게도 가나안 정복에 대한 동일한 두려움이 있다, 여전히 아낙 자손을 장대하고 성은 높다. 오히려 40년 전보다 적들의 방어망은 더 잘 구축되어 있다. 두렵긴 하지만 두렵다고 말했다가는 어떤 봉변이 떨어질지도 몰라 아무 말 못하는 그들에게 모세는 노아 홍수의 이야기를 해 주고 있다.
가나안 입성을 눈앞에 둔 용사들아 두려워 떨고 있는가?
홍수 때에 노아 할아버지는 배 안에서 얼마나 두려웠을까를 생각해보자.
한 번도 경험해보지도 못했던 비와 홍수, 생전 처음 만들어 본 어마어마한 배, 그 성능은 누구도 보장할 수 없는데, 비가 위로부터 쏟아질 뿐만 아니라.. 확인할 수는 없지만 땅에서도 물이 솟구쳐 올라오는 느낌.. 창문도 열 수 없는 배 안에서 기약도 없이 않아 있는 노아 할아버지의 가족들..
그러나 그들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기억하고 계시기 때문에..
오늘 너희도 하나님은 기억하고 계신다.
유대인은 하나님께 매맞는 것 두려워하지 않는다. 죄를 지었으면 당연히 벌을 받은 것이고, 벌을 받고 나면 다시 하나님과 백성의 관계가 회복되기 때문에 기왕 맞을 것이라면 빨리 맞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자들이다.
그들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내가 이렇게 고생하고 있는데, 고난 가운데 있는데 혹 하나님은 나를 기억하시지 못하시지 않을까 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부르짖는 기도를 보면 하나님이 기억해달라, 잊지 말라, 돌아 와 달라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고 있을뿐만 아니라, 그들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별히 물이 줄어들게 하기 위해 바람을 땅 위에 불게 하시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의인화 시켜보면 물이 빨리 줄어 들어라고 입으로 바람을 후후 불고 계신 하나님의 이미지를 떠 올릴 수 있다. 기억하시기에 안타깝고 급한 마음으로 바람을 후후 불고 계시는 그 하나님이 현재 본문에서 출애굽 2세대의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그들의 두려움을 평안으로 변화시키기에 충분한 격려였을 것이다.
그들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고 법궤를 맨 제사장들은 흐르는 요단 강에 그냥 발을 내딛는다. 홍해를 건널 때 물을 갈라 놓고 건너게 하는 것과 비교되는 용기이다. 아니 할례 시키려면 강 건너기 전에 4-5개 조로 나누어서 한 조가 먼저 할례 받는 동안 다른 조는 적의 침입을 막고, 순차적을 하는 것이 상식이지만 그들은 명령을 따라 요단 강을 건넌 후 적의 코 앞에서 할례 하는 믿음을 보인다.
강조를 찾고, 원독자 입장에서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의도하시는 바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 하나님의 마음을 내가 살아갈 수 있도록 의뢰하는 것이 성경을 먹는 목적이다.
2. 성경을 먹는 단위
성경을 펴면 신약과 구약으로 나눌 수 있고, 구약은 39권, 신약은 27권의 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책 예를 들어 마태복음으로 들어가면, 장의 구분이 있고, 장은 절들로 구성되어 있다. 출판사에 따라서 각 장마다 장의 요약 내지 제목을 적어 놓은 성경도 있고, 장을 몇 개의 단락들로 나누어 놓고 각 단락의 제목을 적어 놓기도 했다.
여기서 이해하고 넘어가야 할 것은 성경의 말씀은 진리이지만, 처음부터 장, 절의 구분은 진리와 관계 없다는 것이다. 장.절의 구분이나 제목은 단지 출판할 때 말씀 찾기의 편의를 위해 분류해 놓은 것일 뿐이므로 장, 절 자체에는 묶일 필요가 없다.
성경의 장 절이 현재의 모습으로 장 구분을 한 이는 대체로 영국교회의 켄터베리 대주교였던 랭튼(Stephen Langton)일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랭튼은 영국신학자요 역사가이자 시인으로 오랫동안 파리에서 신학을 가르치고 또한 성경주석을 집필했으며. 불가타역 구약을 장으로 나누었다.
그 후 스테파누스(Stephanus Robertus)에 의해 신약성경이 절로 구분되어 출판되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스테파누스는 파리에서 리용으로 말을 타고 가며 절을 나누었다고 한다. 그의 열심을 나타내기도 했지만, 절의 구분에 대한 문제점을 대변하기도 하는 전승이다.
따라서 현재 우리가 보는 성경의 장절이 말씀을 찾기에 편리하지만 이를 전적으로 신뢰할 필요는 없다. 나의 관점에 의해 다시 나누는 것 즉 사고의 단위로 다시 나누는 것은 성경의 이해에 큰 도움이 된다
성경은 한 권 단위로 먹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한꺼번에 성경 66권 혹은 구약 전체를 주시지 않았다. 모세오경을 주셨고, 창세기 출애굽기로 구분해 주신 것이 아니라 모세 오경 한 책으로 주셨다. 여호수아를 주셨고, 요한계시록까지 66권을 써 주셨다. 무려 1500년 이상의 긴 세월 동안 인간의 필요에 따라 한 권씩 주셨다. (주신 단위를 창/출/레/민/신 5권을 한 권, 사무엘 상하를 한 권 식으로 묶으면 권수는 적어지지만 편의상 66권으로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저자를 통해 독자의 상황과 필요를 아시고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성경을 주셨고, 그들이 하나님 말씀을 먹고 삶에 실천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었기 때문에 오늘 나에게 성경으로 전달된 것이다.
물론 성경 66권 전체를 읽어야 함을 부정할 수 없다. 우리에게 주신 것이니 다 읽어야 함에는 누구도 의의가 없다. 그러나 성경 통독이 자칫 성취감 추구로 가는 경향이 있어, 읽고 난 후에도 남는 것이 없는 경우가 허다하므로 생각을 가지고 읽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묵상할 때에는 성경의 몇 구절을 택하여 읽고, 그 중 한 구절이나, 한 단어를 놓고 하나님과 대화함으로써 문맥을 놓치고 자의적으로 해석해버리는 경향이 있는 것도 현실이다.
66권을 통째로 읽든, 10절씩 잘라서 묵상하든 내 삶이 예수님께 좀더 가까워졌다면 잘 한 것이고, 지식과 정보만 많아졌다면 보완책이 있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말씀은 먹어야 한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66권이 통째로 묶여 성경이 되어 있지만, 그 동안 주신 방법을 생각해 보면, 고린도전서나 여호수아 같은 한 권이 읽기의 단위이며, 한 권씩 먹는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로마 교회나 고린도 교회가 바울 사도의 편지를 받았을 때를 상상해보자..
그들은 가정 교회였을 것이고, 교회의 지도자가 교인들을 불러 모았을 것이다. 교회 지도자는 ‘성도님들 모이세요. 바울 사도께서 편지를 보내왔으니 내가 읽어 드리겠습니다.’ 하고는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내려갔을 것이다.
고린도 전서가 16장이라고 해서 ‘성도님들 오늘은 3장까지만 읽어 드릴께요.. 나머지는 다음 주일에 읽읍시다.’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성도들도 한 마디 놓치지 않으려고, 16장을 읽어 가는 동안 귀 기울여 들었을 것이다.
우리가 고린도서를 잘 이해하려면, 고린도 교인이 되어서 읽어야 한다.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에 읽으며 문맥을 파악하고 가운데서 강조하시는 말씀이 무엇인지 찾아야 한다.
고린도 교인들은 고린도전서나 후서를 한 번 들으면 내용을 이해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상황과 문화를 모르기에 다시 읽으면서 이해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한 권 단위로 읽고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문맥과 분위기를 파악한 음 10절 내외로 나누어 묵상에 들어가는 것이 바람직한 먹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3. 성경 전체 보기
성경은 총 66권 1189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히브리어, 아람어, 헬라어 세가지 언어로 약 1,500년에 걸쳐 40명 가량의 저자에 의해 쓰여졌다. 2930명의 인물이 등장하고, 1551곳의 지리적 장소가 나온다.
창세기의 첫3장에는 하나님의 창조가 나온다. 처음 하늘과 땅을 만드셨고, 사람을 만드신 후 처음 안식을 주신다. 그리고 생명 나무와 강을 주시며, 그 동산에서 남편과 아내로 살아가도록 하셨다. 그런데 인간의 타락으로 낙원을 잃게 된다.
그리고 요한 계시록 마지막 3장에는 이들의 회복이 나온다.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새 하늘과 새 땅이 나타나고, 안식이 있으며, 생명나무와 강이 있고, 어린양과 신부가 있어 낙원을 되찾는다. 창세기 첫 3장과 요한 계시록 마지막 3장은 완벽하게 대구를 이루고 있다
창세기 1-3장 |
계시록 20-22 |
하늘과 땅 생명나무와 강 남편과 아내 |
새 하늘과 새 땅 생명나무와 강 어린양과 신부 |
낙원을 잃음 |
낙원을 되찾음 |
우리는 창세기 1-3장이 하나님께서 왜 구원 계획을 세우게 되었는가 하는 하나님 구원 계획의 배경이며, 계시록 마지막은 하나님의 계획이 어떻게 성취될 것인가를 보여 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괄호구조(inclusion)로 설명을 하면 지금부터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그 배경을 보겠습니다. 그리고 구원 계획에 대한 상세 내용과 그 성취 과정을 설명한다, 마치면서 이로써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완성되었습니다. 혹은 완성 될 것입니다 라고 이해할 수 있다.
창세기 1-3장 |
구약 |
신약 |
계시록 20-22 |
왼쪽 괄호( |
내용 |
오른쪽 괄호) | |
하나님 의 계획 배경 |
하나님의 계획과 그 성취 과정 |
하나님의 계획 성취 |
이 그림 위에 각 책들을 배치하면 좋겠다.
구약은 열방의 제사장 나라로서 이스라엘을 모델로 하여 성막과 성전을 통해, 신약은 열방의 제사장 나라로서 새 이스라엘인 성도를 모델로 교회를 통해 예배와 친밀감을 회복해 가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이 때 구약과 신약을 연대기별로 배치해서 이해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왜냐하면 성경은 내가 먹는 것이지만, 내가 먹기 전에 처음으로 먹었던 분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즉 원독자나 원청중의 관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원독자나 원청중의 관점, 그들이 살았던 역사적 배경을 알기 위해 성경을 연대기로 배치하면 유용하다. 특별히 분열왕국의 역사를 기록한 열왕기 상하는 그 시대에 쓰여진 선지서의 이해에,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는 포로기에 쓰여진 선지서의 바른 해석에 필수적이며,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서 역시 시대적 배경을 담고 있는 역사서들과 연결하면 원독자, 원청중의 입장에서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신약에서는 사도행전과 바울 서신의 연결은 말씀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 특히 선지서를 당시의 역사적 관점에서 이해하지 않고 한 두 문장만 떼 내어 이해하는 것이 이단 삼단들의 특징이다.
역사서를 분리하고, 각 성경을 연대기적으로 나누는 이유는 원청중, 원독자의 관점에서 바른 이해를 하기 위해서, 바른 이해를 통해 나의 삶에 적용하기 위해서, 한 마디로 맛있게 먹고 잘 소화시키기 위해서임을 잊지 말자.
구약
구약 시대를 연대기로 나누고 이에 따라 역사서와 시가서, 선지서를 배치하면 다음과 같다. 시편은 다윗 왕의 시대가 중심이 되지만 모세의 시도 있어 범위가 확대될 수 있다.
시대 구분 |
역사서 |
시가서 /선지서 | |
창조시대 족장시대 |
창세기 |
|
욥기 |
출애굽 광야 시대 |
출애굽기 |
레위기 |
|
민수기 |
신명기 |
| |
정복 시대 |
여호수아 |
|
|
사사 시대 |
사사기 |
룻기 |
|
단일 왕국 시대 |
사무엘 상 |
|
|
사무엘 하 |
역대 상 |
시편 | |
열왕기 상 |
역대 하 |
잠언/전도서/아가 | |
분열왕국 시대 |
열왕기 하 |
To 이스라엘: 호세아, 아모스, To 유다 : 이사야, 미가, 요엘, 하박국, 스바냐, 애가, To 앗수르 : 요나, 나훔 To 에돔 : 오바댜 | |
포로시대 |
|
|
예레미아, 에스겔, 다니엘 |
포로귀환 시대 |
에스라 |
에스더 |
학개, 스가랴 |
느헤미야 |
말라기 |
구약의 연대를 계산하는 것은 앗수르의 기록 중 일이 일어난 해가 있는데 이를 천문학적으로 계산함으로부터 출발한다. 이 때가 bc763년인데 이를 기준으로 891년부터 648년은 정확하게 설정할 수 있어 이 중 이스라엘의 역사와 일치하는 부분을 찾아 절대연도로 삼는다. 예후가 북이스라엘 왕과 남유다 왕을 같은 날 죽이고, 북 이스라엘 왕으로 즉위한 해인 840년, 산헤립이 공격하여 예루살렘 외의 성읍들을 정복한 히스기야 14년은 bc701년이 대표적인 절대 연도이다. 이를 기준으로 왕들의 즉위 연도와 성경에 나오는 연도들을 계산한 것이 우리가 아는 구약의 연도들이다.
쉽게 기억하는 방법은 하나님 마음에 합한 왕 다윗을 점수로 매긴다면 아마 10점 만점에 10점일 것이다. 그의 즉위 년도가 10점 만점에 10점인 bc1010년이다. 다윗 왕 전의 사울 왕도 40년 통치(행13:21)했으므로 1050년에 즉위한 것으로 계산할 수 있다.
열왕기 상 6:1 중요한 연대가 나온다.
왕상 6:1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지 사백팔십 년이요 솔로몬이 이스라엘 왕이 된 지 사 년 시브월 곧 둘째 달에 솔로몬이 여호와를 위하여 성전 건축하기를 시작하였더라
그가 40년을 통치(삼하5:4, 왕상 2:11 )했기 때문에 솔로몬은 970년에 즉위했다고 계산할 수 있고, 솔로몬이 성전을 짓기 시작한 시기가 즉위 4년이므로
970 - 4 = 966년으로 계산할 수 있다.
이 때가 출애굽한지 480년이므로 출애굽 연도는
966 + 480 = 1446년이 된다.
이를 기준으로 하면 모세나 아론이 태어난 해, 죽은 해, 가나안 정복한 해 등등을 계산 하는 것이다. 고려해야 할 것은 사울도 40년, 다윗도 40년 솔로몬도 40년(왕상11:42), 통치했고, 엘리의 사사 기간도 40년이라고 기록된 것으로 볼 때 성경의 연대가 현재 우리의 기준만큼 정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성경의 오류라고 말하면 안된다. 현재의 정확도 기준과 당시의 정화도 기준이 다를 뿐이다.
70년대만 하더라도 가게에서 얼마나 갈까요 물으면 두세 개, 대여섯 개, 여나믄(10-12) 개 가져가란 말이 쓰였었다. 이거 얼마 드릴까요 하고 가격을 물으면 돈백원 주세요 라고 말했고, 주는 사람은 90원도 주고 100원도 주었다. 불과 40년 전의 정확도가 이러한데, 3000년 전의 정확도를 우리와 같은 기준으로 요구하면 안된다.
신약
신약의 배치는 구약처럼 시대 배경을 기준으로 배치하는 방법과, 성경이 쓰여진 연대를 기준으로 배치하는 방법이 있다. 복음서와 사도행전은 시대배경, 서신서는 쓰여진 연대를 기준으로 배치하면 다음과 같다.
시대 구분 |
복음서/행전 |
서신서 |
개략 연대 |
예수님 시대 |
마태 복음 마가 복음 누가 복음' 요한 복음 |
|
bc 4 - ad 30 |
사마리아, 안디옥 전파 |
사도행전 |
|
ad 30-45 |
바울 1차 전도여행 |
야고보서 |
ad 46-48 | |
예루살렘 공의회 |
갈라디아서 |
ad49 | |
바울 2차 전도여행 |
데살로니가 전후서 |
ad50-53 | |
바울 3차 전도여행 |
고린도 전후서, 로마서 |
ad54-58 | |
바울 예루살렘 - 로마 |
|
ad 58-60 | |
바울 1차 로마 투옥 |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고새서, 빌레몬서 |
ad60-62 | |
바울 풀려남 |
|
디모데 전서, 디도서 베드로 전서 |
ad63-64 |
바울 2차 로마 투옥 |
|
디모데 후서 베드로 후서, 유다서 |
ad64-68 |
이후 |
|
요한1,2,3서, 요한 계시록 |
ad68 이후 |
마가 복음은 네로의 핍박 시절인 ad 64-68년으로 거의 일치한다. 누가복음은 사도행전과 연결된 책이란 관점에서 바울의 로마 1차 투옥 근처일 것이다. 마태복음은 초기 45-60년 설이 있고, 마가복음 이후에 쓰여졌다는 견해가 있다. 요한복음은 요한 계시록과 비슷한 시점이 될 것이다. 그러나 복음서의 이해에는 시대적 배경보다는 공동체 구성원의 배경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서신서의 경우 해당 시대의 원독자의 상황과 역사적 배경을 알면 보다 정확하게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신약 내용!! 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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